지혜로운 언어생활
성경본문: 잠언 15: 1-4
1.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삿
2. 지혜 있는 자의 혀는 지식을 선히 베풀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쏟느니라
3.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
4. 온량한 혀는 곧 생명 나무라도 패려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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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혜로운 부부가 결혼을 했습니다.
신혼여행을 갔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한 가정되게 했으니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일생을 사랑하고 살까? 우리가 비결을 한번 생각해 보자. 밤새 생각을 나눴습니다.
많은 생각과 대화를 나눴는데 이러한 합의에 도출을 했답니다.
"그래, 그러면 내가 실수하거나 당신이 실수하거나 내가 혹 잘못을 저지르거나 당신이 잘못을 저지르거나 마음속에 피차 서로 섭섭한 일이 있더라도 24시간만 생각해보고 말하자"고 합의를 보았습니다.
이를 그들은 신실히 실행했습니다.
부인이 실수를 해도 24시간 생각해보고, 부인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보고, 각도를 달리 관찰해보고, 이런저런 인내를 가지고 실천을 했더니 행복된 생애를 살았다하는 글을 보았습니다.
이와 반대가 있습니다.
신혼부부가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여행을 가는 중입니다.
여러분 신부 참 힘든 겁니다.
제가 주례를 해봅니다만은 가까이에서 보세요.
눈썹 이만큼 달지요. 화장 두께 이렇지요.
신부가 드레스를 입는데 허리는 얼마나 꽉 졸라 맵니까?
머리는 있는대로 다 치켜 올려서 말고 볶고 해서 끼워 넣습니다.
사람 못 견딥니다.
그런데 신부가 그렇게 하기 위해서 몇 일 전부터 신부화장을 여러가지 화장을 잘되게 하기 위해서도 여러가지 하는게 있답니다.
그래서 결혼식 30분이 딱 끝나고 나면 피로가 갑자기 확 몰려오는 거예요.
시집은 안 가봤지만, 그래서 비행기를 타니까 신랑의 어깨에 기대서 잠이 들게 된겁입니다.
그러니까 신랑이 왠지 모르게 화가 났던 가봐요. "야! 너만 피곤하냐?" 이렇게 된 겁니다.
그 말을 잠결에 딱 듣고 나니까 신부는 착각을 한 거예요.
이렇게 아름다운 내가 신부화장을 하고 기대주면 좋아해야 할텐데 싫어하는구나. 싶어서 "내가 싫어?" 이렇게 된 거예요.
신랑이 딱 받고는 "그래! 싫다." 이런 대답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농담이었습니다.
여러분, 여기 남자들 많습니다. 우리끼리 해야되는데요.
여자 앞에서 싫다는 말 마세요. 이를테면 소비를 많이 한다. 밥을 왜 이렇게 하느냐. 혹은 다림질을 이렇게 하느냐, 이런건 여자들이 다 참습니다.
그런데 여자는 자기가 싫다는 소리는 절대 참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죽어도 이쁘다 그러고 죽으세요. 그래야 가정이 온전합니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 벌어진 거예요.
남자는 자존심이 있잖아요. "그래! 헤어져." 이렇게 된 거예요.
제주도에 딱 내리자 마자 호텔 갔다가 헤어지면 오해받으니까 바로 가자. 내렸다가 다음 비행기 타고 서울 왔어요. 이혼 했어요.
여러분 실제로 있었던 사실입니다.
사람의 말이란 참으로 중요합니다.
누에가 자기 입에서 내뱉은 것으로 집을 짓고 그 속에 들어가 사는 것과 같이, 사람은 그의 말하는대로 환경이 조성되어서 복된 생활을 하기도 하고, 불행한 삶을 살기도 합니다.
그래서 잠언 18:20-21절에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고 말씀했으며, 베드로전서 3:10-11절에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고 말씀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재산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재산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칭찬하는 말입니다.
칭찬의 말은 쓰면 쓸수록 부자가 되고,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줍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전해주는 아내의 따뜻한 말 한마디는 남편의 상처 난 부분을 아물게 하는 놀라운 치유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 한마디 때문에 수고에 대한 보람을 느끼고 삶의 의미를 느낍니다.
강아지를 좋아하는 분의 말을 들어보면 집에 들어올 때, 아내가 강아지처럼 반겨주기만 하면 정말 좋을 것이라고 합니다.
강아지, 그들이 말을 못해서 그렇지 만약 말을 할 줄 안다면 개들은 지상최대의 언어로 자기 주인을 마음껏 칭찬하고 성원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물 중에서 유일하게 인간에게 주신 놀라운 언어능력을 우리 인간들은 너무 남용하고 잘 활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잘못된 언어생활 때문에 얼마나 많은 아픔이 생겨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무섭습니다. 톡 건드리면 팍 터질 것만 같습니다.
특히 요즘같이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철이 되면 불쾌지수는 점점 더 높아지게 됩니다.
아무 것도 아닌 말 한마디 때문에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일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왜 그런 일이 있게 될까요? 칭찬의 말을 듣지 못한 것이 원인입니다.
자동차 운전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런 것을 많이 느낍니다.
상소리가 얼마나 쉽게 나오는지 모릅니다.
그 모습을 보면 마음속에 분노와 한이 맺혀 있는 것 같고, 칭찬 받지 못한 것과 대우받지 못한 것에 대한 억울함이 배여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볼 때 오늘날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지혜로운 언어생활과 성도다운 언어생활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언어생활은 어떻게 되어야 하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지혜로운 언어생활을 가르치는 유명한 본문인데, 이 본문을 통해서 몇 가지 언어생활에 관한 교훈을 받게 됩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1. 첫째, 오늘 본문은 온유한 언어의 중요성을 말해 줍니다.
본문 1절 말씀을 보십시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대답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누군가의 말에 대답할 때 과격하게 대답하지 말고 유순하게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과격한 대답은 상처를 주기 위한 것이지 문제 해결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정말 문제가 해결되기를 원하면 우리의 대답은 항상 유순한 대답이어야 합니다.
어떤 분이 눈이 퍼렇게 멍이 들어서 목사에게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상담을 합니다. 남편이 그랬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여러 얘기가 나오다가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때리기 전에 어떤 말을 했지요?"
"그래 잘났어. 그래도 사내라고. 당신이 해 준 게 뭐가 있어. 때려 봐! 때려! 아예 죽여! 그래도 자존심은 있어서..."
그러니까 목사님이 그 여자 분에게 한마디 바른 말을 했습니다.
"그래도 남편이 훌륭한 데가 있네요. 죽이라고 하는데 때리기만 했으니까..."
성경 말씀대로 됩니다.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그렇습니다. 매도 벌어서 맞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손의 폭력도 폭력이지만 언어의 폭력은 폭력이 아닙니까?
부부싸움에 대한 연구가 많이 있지만 가장 확실한 결론은 100% 일방적인 희생은 없다는 것입니다.
상대방 죄도 있지만 내 죄도 있고 내 허물도 있다는 말입니다.
이웃과의 사소한 일들로 다툼이 일어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허물은 절제된 언어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2. 둘째, 바른 언어생활을 위해서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함을 말해 줍니다.
본문 2절 말씀을 보십시오.
"지혜 있는 자의 혀는 지식을 선히 베풀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쏟느니라."
지혜로운 자가 지혜로운 말을 하고, 미련한 자가 미련한 말을 한다는 것은 더 이상 설명한 것도 없이 당연한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하나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지혜로운 말을 하려고 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먼저 사람 자체가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긍정적인 자아상을 확립하는 것의 중요성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지혜로운 말을 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요?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이유를 정확하게 진단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불평의 말이 많고, 원망의 말이 많고, 말이 유순하지 못한 이유는 자신이 자신에게 가지고 있는 부정적 자아상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가 자기를 긍정하는 사람입니다.
즉 긍정적인 자아상을 가지고 있으면 말도 부드러워진다는 것입니다.
이 긍정적인 자아상은 삶의 전반에 대단히 중요한 영향을 미칩니다.
사람들이 여러 가지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역시 최대의 관심은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일 정도로 자기를 항상 살피고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같이 사진을 찍었을 때 사진이 나오면 무엇부터 봅니까? 자기부터 봅니다.
그 다음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대상은 자기 자녀입니다.
자녀들이 다른 사람과 함께 찍었을 때 자기 자녀만 보입니다.
그 정도로 사람은 자기와 자기의 것에 대한 관심이 많은데, 그처럼 관심을 가지는 대상에 대해 믿음을 가지지 못하고 열등감을 가지면 그의 삶 전반에 걸쳐 대단한 악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러한 악영향이 언어생활에 미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언어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하고, 지혜로운 자가 되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자아상을 확립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고도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열등감이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열등감을 얼마나 잘 극복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 자신을 긍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행복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여러 가지 고민을 합니다.
그 고민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고민이 자신에 대한 고민입니다.
그러나 이 고민 중에서도 꼭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있는 고민과 열등감이 거의 비슷하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열등감을 극복하며 사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영역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무엇이 필요합니까? 기본적으로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가지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전에 한가지 그만둘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비교의식입니다.
그 의식에 젖어 있으면 어떤 사람처럼 텔레비젼을 볼 때마다 자신이 미워집니다.
그 화려함, 그 얼굴, 그 키, 그 환경, 그들이 가진 재능과 인기를 생각하면 고민한 일, 신경질이 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래서 가끔 이런 일로 갈등하는 가정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생각 없이 어느 탤런트 얘기했다가 부부간에 심하게 다투었다는 얘기입니다.
남편의 입에서 강수연 이쁘다는 말만 나오면 아내의 속이 뒤집어집니다.
아내의 입에서 배용준 잘생겼다는 말만 나오면 남편이 속도 뒤집어집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식 가운데 살면 누구의 성공은 곧 나의 불행이 됩니다.
그러면 자기를 미워하다가 참다 못하면 남에게 화살을 돌립니다.
남편에게 화살을 돌리고, 아내에게 돌리고, 부모에게 돌립니다.
그러니까 자연히 유순한 말, 유순한 언어가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여러분들에게 심한 말로 깊은 상처를 주었습니까?
그런 말을 들으면 여러분들은 먼저 그분을 긍휼히 여길 수 있길 바랍니다.
왜냐하면 그는 부정적 자아상으로 오래 동안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며 자기도 통제하지 못하는 열등감으로 신음하는 불쌍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열등감을 극복하고 긍정적 자아상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은 지혜롭고 바른 언어생활을 위해서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비단 언어문제 뿐만 아니라 모든 문제에 있어서 오늘날 이 열등감의 문제는 대단히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열등감은 왜 생깁니까?
열등감은 대개 비교의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또한 교만함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사실상 교만한 마음이 열등감을 부채질하고, 우월감도 부채질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에게 살만한 적절한 모든 것을 주셨다는 겸허한 마음과 자족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로마서 12장 3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는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라."
무슨 말입니까?
나 자신의 한계를 지키고 그 안에서 살아도 우리는 누구보다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입니다.
자기 자신의 분복, 그것만 가지고도 무한한 행복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정도만 가지고도 하나님께 충분히 영광을 돌릴 수 있고, 우리는 얼마든지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물로 그런 생각을 가지는 일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노력해 보십시오. 그리고 누구에게나 열등감이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열등감을 창조적인 기회로 활용하면 됩니다.
열등감을 자기를 향상시키는 추진력으로 삼으면 됩니다.
병적인 열등감은 문제이지만 적절한 열등감은 창조의 자극이 될 수 있습니다.
3. 셋째, 먼저 온유하고 바른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실제적인 문제입니다.
우리는 오늘 온유한 언어의 중요성도 알았고, 긍정적 자아상의 중요성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살리고, 인간관계를 살리기 위해서 어떻게 그 아는 것을 어떻게 실천하는가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여러 가지 실천 방법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를 탓하고 누구에게 기대하기 전에 먼저 바른 언어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반드시 그 공동체는 살아나고, 그 관계는 살아납니다.
오늘 본문 4절 말씀을 보십시오.
"온량한 혀는 곧 생명나무라도 패려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
온유하고 선량한 혀는 사람의 생명을 살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의 위력을 잊지 마십시오. 생명을 살리는 위력이 있습니다.
온유한 말은 상처에서도 새 살이 돋게 하는 위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먼저 가서 유순하고 온량한 말로 사과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못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내부 속에서도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왜 못하느냐고 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대답합니까?
"그렇게 하면 상대방이 정말 자기가 잘한 줄 알고 기고 만장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정말 자신에게 손해일까요? 아닙니다.
우리는 항상 3절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
하나님이 보시는데 손해 볼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알아주신다면 절대로 손해 볼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먼저 따뜻한 손길을 내밀고 따뜻한 언어를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상대방이 너무 미련해서 그 순간을 자기가 높아지는 기회로 활용해도 하나님은 모든 진실을 다 알고 판단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대 사람들은 교양이라는 말과 인격이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누가 교양인이고 누가 인격자입니까?
독일의 언어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인격은 말에 의해서 나타난다고 합니다.
언어가 그 사람의 교양의 척도이고, 인격의 척도입니다.
외모는 세련되었는데 말은 거칠다면 그것은 결코 세련된 것이 아닙니다.
세련된 말을 할 줄 알아야 정말 세련된 것입니다.
그러나 세련된 말을 무슨 상류사회의 말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가장 세련된 말은 바로 칭찬해 주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칭찬해 주는 말은 정말 세련된 말이고 소중한 생명의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있는 곳을 아름다운 말이 넘치는 환경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부모들은 자녀들을 정말 사랑합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어머니의 짜증 섞인 소리가 아이들의 건강을 심하게 훼손합니다.
그런 경우가 많은데 무엇 못해 주었다고 속상해 하지 말고, 내가 그들에게 따뜻한 말 해주지 못한 것을 속상해 해야 합니다.
보약을 찾을 필요 없습니다. 따뜻한 말을 주는 것이 보약보다 소중합니다.
"나에게 당신이 소중해요!"는 그 한 마디가 사람의 건강을 회복시킵니다.
그 말이 남편을 건강하게 하고, 아내를 건강하게 만듭니다.
성경은 칭찬하는 말이 뼈를 윤택하게 한다고 합니다.
골다공증으로 고생하는 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칭찬하는 말입니다.
낙심한 사람에게 "제가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그 생명을 윤택하게 만드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나를 칭찬하는 말입니다.
물질문명은 발달하지만 언어는 갈수록 황폐해져가고 있는 이때에 더욱 겸손하게 우리의 언어를 지켜서 우리가 속한 공동체를 사랑과 용기가 넘쳐 나는 아름다운 공동체로 만드는 초석이 되기를 바랍니다
출처:은혜목회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