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기 나름
이형국
꿈에 ‘이가 빠졌다.’라고 했다. 그 꿈 때문에 이른 새벽녘에 깨어났단다. 이 빠지는 꿈은 흉몽이라고들 하니, 기분이 찝찝하더란다. 먼저 외지에 있는 자식들에게 무슨 일은 없는지 전화했다고 그는 말했다. 시골에 계신 어머니께도 아무 일 없느냐고 알아보고는 꿈자리가 사나워서 그러니 조심하시라며 당부했다. 겸연쩍게 웃으면서 어머니보다는 자식 걱정이 먼저 나더란다. 나는 그럴 수 있다고 맞장구쳐 줬다.
“원래 내리사랑이야, 마음이 그렇게 시키는데 어쩔 수 있는가.”
그는 그날 얘기를 차분하게 풀어놓았다. 눈을 뜨자마자 재수 없는 꿈을 꾸었다면서 아내에게 알렸다. 오늘 하루는 나가지 말고 집에만 머물도록 다짐받으며, 그 자신도 ‘오늘은 집에 있어야겠다.’하고 몸을 사렸다.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하고 요리조리 머리를 굴려보니, ‘그래, 맞다! 중고 매장이나 검색해 보자. 가성비 괜찮은 것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몰라.’하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컴퓨터용 소형 스피커가 필요해서였다.
XX마켓으로 검색해 들어가서 확인해 보았다. 그가 원하던 물건이 마침 올라와 있었다. 가격도 쌌기에 왠 떡이냐며 즉시 전화를 걸었더니, 젊은 목소리의 여인이 폰을 받았다. 얼마 사용하지 않은 것이어서 성능이나 흠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주소를 알려주면 택배로 보내겠다기에 그곳이 어디인지를 물었다. 대충 집에서 걸어간대도 두 정류장 정도의 거리였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얼마 멀지 않으니 당장에 가지러 가겠다며, 만날 곳으로 물건을 받으러 나섰다.
그는 약속 장소 근처에 도착해서 그 물건의 주인인 여인을 찾으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길을 오가는 사람들이 그리 보이지 않았다. 주위가 얼마쯤 눈에 익자 조금 떨어진 곳에 한 여인이 손에 무엇인가를 들고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아, 저 사람이구나! 하며 그곳을 향하여 가려고 발을 옮기는 순간 휘청 중심을 잃고 말았다. 반가움과 안도감이 그의 이성을 성급하게 했나 보다. 보도블록 위에 나뒹굴었지만, 순간적으로 몸을 잽싸게 일으켰다. 창피하다는 마음이 무엇보다 컸기 때문이었다.
양 손바닥은 찰과상을 입었고 무르팍이 아팠지만, 부끄러워 감히 바지를 올려 어느 정도의 상처인지를 확인할 여유가 없었다. 휴대폰이 저만치 떨어져 있어 슬금슬금 다가가 주워 들어보니 액정이 산산이 깨어져 있었다. 주위의 사람들은 그의 직면한 모습에 무관심했다. 다행이었다. 단지 한 여인이 그를 바라보고 있는 게 보였다. 짐작했던 만나려던 여인인가 보다.
절뚝절뚝 다가가서 확인해 보았다. 맞았다. 여인은 상가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참이었다. 여인은 많이 다치지나 않았는지 걱정스레, 그리곤 괜한 미안한 마음에 쭈뼛쭈뼛 물어보았다. 물론 그의 손 상처라든지 폰이 망가진 건 눈으로 봤을 것이다. 여인은 본인 때문에 그가 다치게 된 원인을 제공한 것 같아 미안하다며, 소형 스피커를 넘겨주었다. 물품 대금은 받지 않겠다며, 그냥 필요한 분에게 주는 거니 가져가시라 했다.
그 또한 그러는 게 아니라며 몇 번 거절했지만, 상대방의 완강함에 밀려 두어 번 인사하고는 돌아서 왔다. ‘망가진 폰을 어떻게 해야 하나.’하는 문제가 남았다. 망가져서 너덜너덜해진 액정을 버리려 하다가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곧장 아내 폰을 빌려 수리센터에 문의했다. 부서진 액정이 그대로 있느냐고 묻고는 그렇다 하니까 그럼 수리 신청서 접수만 하면 된다고 했다. ‘아이고, 버렸으면 큰일 날 뻔했네.’ 가슴을 쓸어 담았다. 천신만고 끝에 얻어온 스피커를 연결해 봤다. 성능은 거의 신품에 가까웠다. 이리저리 살펴보니 흠도 없는 게 사용도 별로 하지 않았다는 말이 맞았다.
그는 얘기를 마치며 나에게 의문 부호 하나를 줬다.
“이빨 빠진 꿈이 과연 흉몽이 맞는가?”
그는 흉몽이라 여겼던 꿈을 꾸고는 가족에게 조심하라고 당부뿐만 아니라, 자신도 몸을 사려 집에 머물렀다. 하지만 집을 잠시 나갔다가 넘어져 손과 무릎에 가벼운 찰과상을 입었을 뿐이긴 하나, 그만 폰을 망가뜨렸다. 하지만 어떻든 그가 구하려 했던 소형 스피커는 공짜로 손에 넣었고, 폰도 액정만 바꾼 채 사용하고 있다. 상처야 시간 가면 나아지는 거고, 액정을 바꾼 거야 수리비야 들었지만 대신 폰이 신품처럼 매끈해지지 않았는가. 거기에다 원하던 물건은 공짜로 손에 들어왔고.
이가 빠지는 꿈은 일반적으로 기분 나쁜 꿈이라 한다. 자기 신체 일부가 떨어져 나가니 그렇지 않겠는가. 윗니가 빠지면 윗사람 중에, 아랫니는 아랫사람 중에, 어금니는 부모나 가족 중에 해로운 일이 생긴다고 한다. 다시 말해 흉몽이란 말이다. 그러나 발상을 전환해 보면 그 반대가 된다, 이가 빠지는 것은 충치가 빠져나갈 수도 있으니, 오히려 좋은 꿈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게다가 빠진 곳에 새 이가 나거나 임플란트로 보완된다면 길몽이니, 이 빠지는 꿈 꿨다고 우울해할 필요는 없다.
첨단 과학이 세상을 끌어가는 시대이다. 꿈에 일희일비하지 말자.
나는 철들고부터 많은 꿈을 꾸었다. 남은 생도 그럴 것 같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빠지지 않는 기도문이 있다.
‘제발 숙면이 되게 해주시고 개운한 머리로 일어나게 해주소서.’
잠자리가 사나웠으면, 빨리 잊으려 노력한다. 늙다리가 되어선지 매일매일 닥치는 일에도 버겁다.
꿈은 백일몽이다. 몸만 해칠 뿐이다. 훌훌 털어내자.
(2023.12.13.) (13.7매 1991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