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성격은 참 재밌는 게,
사람들의 통상적인 정의와 심리학에서의 학문적 정의가 완전히 다르다는 겁니다.
우리는 흔히 누군가를 예민하다고 평가할 때,
그 사람의 행동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예민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는 거죠.
이를테면, 내가 볼 때는 별것도 아닌데,
그것에 대해 불평 불만을 늘어 놓는다거나, 고쳐 줄 것을 요구한다거나 이런 식으로 말예요.
반면, 성격심리학에서 정의하는 예민함이란 감각적 예민을 뜻합니다.
즉, 예민한 감각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는 거죠.
이 둘의 차이가 뭐냐?
예민한 행동은 전적으로 나의 불편감을 해소하려는 것이 그 동기라고 볼 수 있는 반면,
감각적으로 예민한 사람들은 나 뿐만 아니라, 타인이 느끼는 불편감에도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오로지 내 편의를 위해서만 행동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내가 어떠한 행동을 했을 때, 남들의 불편감이 나의 편의를 초과할 것 같다면,
아무리 불편하더라도 그냥 참고 마는 습성이 있어요.
남들이 불편감을 느낄 만한 행동, 즉, 자신의 예민함을 어필하는 행동을 좀처럼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성격
예민한 행동 vs 예민한 감각
심리학에서 정의하는 예민한 성격이란 후자를 의미하므로,
타인이 얼마나 예민한 성격을 지니고 있는가를 판단하기란 굉장히 어려운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왜?
예민한 사람들은 초감각으로 인해,
나 뿐만 아니라 타인의 불편감까지 고스란히 느끼게 되므로,
내가 불편한 게 싫어서라도, 남에게 폐를 끼치는 행동을 강박적으로 꺼리기 때문입니다.
즉, 겉으로 봤을 땐, 그냥 매너 좋고 순둥순둥한 사람처럼 보이는데,
어떻게 이런 사람을 두고 예민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어요?
따라서, 우리는 웬만해선 주위 사람들이 얼마나 예민한 성격을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없게 됩니다.
예민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많겠죠.
허나, 그러한 사람들은 심리학에서 정의하는 HSP(Highly Sensitive Person)들이 아니에요.
그냥 까칠하고 신경질적인 사람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거.
예민한 사람들은 자신의 예민성을 거의 표출하지 않기 때문에,
실제와 보이는 것 사이의 간극이 굉장히 큰 성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표출하지 않는 건 비단 예민성 뿐만이 아닙니다.
HSP들은 감정을 표출하는 일 또한 대단히 어색해하는 경향이 있어요.
때로는 그 정도가 심해서, 사람이 너무나도 무감정해 보일 정도로 말이죠.
참으로 흥미로운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민한 사람들은 초감각으로 인해, 감정 또한 굉장히 깊고 강렬하게 느끼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데, 그 누구보다 감정을 잘 느끼는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데는 왜 이다지도 인색한 것일까?
예민한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가 감정에 과몰입된다는 겁니다.
심리학에서는 overwhelmed(압도된다)라는 표현을 주로 쓰죠.
누군가와 갈등을 겪을 때,
이들의 내면은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더 감정적으로 들끓게 됩니다.
예를 들어,
예민한 사람과 평범한 사람이 커플이라면,
평범인은 별일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는 상황도 HSP는 감정적으로 굉장히 격앙될 수 있어요.
어린 아이들이 정말 큰 일들, 정말 괴로운 일들은 엄마아빠에게 잘 이야기 못하듯이,
어른들도 내가 다루기 벅찬 감정들은 쉽사리 밖에 꺼내놓지 못합니다.
나조차도 이 감정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 어떻게 해소해야 할 지 감이 안 잡히는데,
도저히 정리되지 않는 나의 이 거대한 감정을 어떻게 남들에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별일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상대방과 공유할 수 있겠지만,
내 안에서는 지금 이 감정이 너무나도 격하게 끓어오르고 있기 때문에,
내가 이렇다는 것을 상대방이 알게 되면, 정말 큰 일이 벌어질 수도 있겠단 부정적인 예상이 드는 겁니다.
예를 들어,
HSP가 상대방의 뭔가에 핀트가 꽂혀서 감정적으로 너무나도 기분이 상했는데,
지금 이 속을 상대방에게 말해 버리면,
내가 완전 이상한 사람이 되거나, 아니면,
상대방이 큰 상처를 받고 화를 내거나 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만 같은 거죠.
즉, HSP들은 갈등을 겪을 때, 매순간이 마치 절체절명의 위기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왜? 그 거대한 감정에 이미 압도돼 버렸으니까요.
도저히 다루기 힘든 감정들이 나의 내면을 휘감고 있기 때문에,
차라리 그 감정들을 봉인하고, 절대 밖으로 꺼내 놓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민한 사람들이 때때로 입을 꾹 닫은 채 무감정한 사람처럼 구는 이유입니다.
인간에게는 다른 사람들도 다 나처럼 느낄 것이라고 생각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거짓 합치성 편향(false consensus bias)이라고 부르죠.
'남들도 다 그래.' '나처럼 생각할 거야.'
예민한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예민한 사람들은 감정에 압도당할 때,
상대방 또한 나처럼 그 감정에 압도될 거라고 생각하게 돼요.
나도 지금 이 감정 때문에 미치겠는데,
이걸 상대방에게 오픈하게 되면, 일이 훨씬 더 커질 것만 같은 거죠.
그래서, 아무런 말도, 아무런 감정 표현도 없이,
그저 입을 꾹 닫고, 나의 내면이 잠잠해지기만을 기약 없이 기다리는 것입니다.
예민한 사람들이 관계에서 공통적으로 하는 생각이 있어요.
'내가 이렇게 생각한다는 걸 절대 말할 수 없어.'
'분명히 큰 사단이 날 거야.'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이들은 너무나도 민감한 감각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이 봤을 땐, 별것 아닌 일에도 불편감을 느낄 수 있어요.
(스트레스나 불쾌감에 대한 역치가 매우 낮음)
파트너의 사소한 행동, 말투, 습관, 냄새 등등.
이런 것들이 날 너무 괴롭히는데,
너의 이러한 면이 너무 불편해라고 도저히 말을 못하겠는 거죠.
이걸 말하게 되면, 상대방 또한, 내가 느꼈던 것처럼 불편한 감정에 압도될 것 같으니까.
그렇게 되면, 나는 내 것에 더해 상대방의 불편감까지 더블로 감당해야 하니까.
예민한 사람들의 인간관계, 과연 어떡해야 할까요?
일차적으로는, HSP들 본인이 문제겠죠.
내가 너무 예민해서, 과도하게 스트레스를 받는 거니까요.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똑같은 문제로 고통을 겪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이 말인즉슨, 내 파트너가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다면,
애당초 겪지 않아도 될 갈등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즉, 내가 너무 예민한 탓인 겁니다.
이차적으로는, HSP들이 자신의 과민함을 조금 더 수용하고 감정 관리에 만전을 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상대방 때문에 너무 기분이 나쁘다면,
내가 지금 과열된 상태라는 걸 인지하고, 신속히 몸과 마음을 릴랙스 해 줘야 해요.
이 거대한 감정이 진짜 현실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내 예민한 감각이 만들어낸 왜곡된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따라서, 예민한 사람들은 반드시 자신만의 감정 관리 루틴이 있어야 합니다.
심리학에서는 특히, 명상이나 호흡법, 운동 등을 권고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HSP들의 파트너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점은
그들이 입을 꾹 닫고 있을 땐, 아무리 답답하시더라도 그냥 내버려 두시라는 겁니다.
이건 답이 없습니다. 하나님 부처님이 와도 그들의 입은 절대 열 수 없어요.
억울할 수도 있을 겁니다.
참 사람 무던하고 좋아 보였는데, 사실은 이다지도 예민한 사람이었을 줄이야......
하지만, 관계란 게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는 법
예민한 사람들 때문에 답답하고 속이 상할 날들도 있겠지만,
예민한 사람들의 센스 덕분에 기분 좋은 날들도 많을 테니까,
어쩌겠습니까? 이왕 이렇게 만난 거, 서로 맞춰가면서 살 수밖에.
예민한 사람은 자기가 HSP라는 것을 자각하고 내가 왜 이런 지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하며,
그 다음엔 반드시 내가 예민한 사람이라는 걸 내 곁의 소중한 사람에게 고지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나도 그렇고, 상대방도 그렇고,
최소한 이 사람이 예민한 성격이라 이렇게 행동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이해라도 되고, 마음이라도 조금 더 편해지기 마련이니까요.
일단 뭐든지 그 정체를 알아야 대처를 세울 수 있는 법이죠.
좋은 소식은 조만간 예민한 성격에 대한 저의 새로운 책이 출간된다는 점입니다.
이 책이 예민한 분들과 그 파트너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며,
그럼 이만 정보글을 빙자한 홍보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많관부!!!!!
※ 무명자 블로그 : https://blog.naver.com/ahsune
첫댓글 이글을 읽어보니 전 꽤 예민한 사람이라 생각되네여 ! 관련된 책이 나온다니 기대됩니다 !! ^^
완전 우리 집사람 이야기네요. 불만투성이인데 분란을 일으킬만한 말은 전혀 하지 않는...
책 출판 언제입니까!? 10년에 한번 정도 독서 하는데 지금이군요!
드디어 책이 나오는군요 예전부터 책이 나와도 충분하겠다고 느끼고 있었어요^^
책 나오면 꼭 홍보해 주세요! 구입하겠습니다 ㅎㅎ
매번 흥미로운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출간 축하드립니다!
책 언제 나와요
원고는 넘겨줘서 출판사 마감만 남았어요. ㅎ
@무명자
얍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