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미팅
장편 작품 연출부로 참여를 하고 싶었다. 단편영화와 짧은 호흡의 드라마타이즈 촬영만 진행해봤던 탓이었는지 필름메이커스를 통해 드라마, 영화 연출부 지원서를 두 곳 정도 넣었지만 연락이 없었다. 그런데 한 곳에서 연출부 구인은 끝났지만 제작부로라도 일할 의향이 있는지 연락이 왔고, 장편 작품에 어떻게든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시기였던지라 고민 끝에 참여하기로 했다.
10월 21일 오전 8시 30분,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PD와 제작부장이 상시 근무하는 학교 내 프로젝트실에서 미팅을 진행했다. 두 분 모두 매우 피곤해보였다. 사실 내가 갔을 때 자고 계시다가 다급히 일어나셨다. 당장 24일부터 제천에 내려가야 한다는 소식을 미팅을 통해 듣게 되었고, 촬영 전체 회차의 80프로 정도가 지방 로케이션이라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당황하지 않은 척하고, 적극적으로 미팅에 임했다. 면접을 몇 명 더 볼 예정이라고 하셨는데, 내가 운전을 못하기도 하고, 경력은 있지만 제작부로서의 경험은 없었던지라 연락이 안올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2. 합격
당일 저녁 바로 합격 연락을 주셨다. 바로 다음날 리딩이 있고, 그 다음날 제작부 사전 회의를 할 예정인데 올 수 있냐고 하셨지만, 리딩 날에는 선약이 있어서 참여를 못할 것 같다고 했다. 스케줄표를 먼저 요청해 스케줄표를 받았고, 23일 제작부 회의에 참석하기로 했다.
3. 제작부 회의
제천을 내려가기 하루 전인 22일. 이날도 꽤 아침 일찍 만났다. 그런데 도착하니 이미 다른 제작부 후보와 면접을 하시던 중이셨다. 급히 구인을 하신 듯 했다. 이 분은 곧바로 같이 하기로 하셔서 면접을 보자마자 같이 회의를 시작했다.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또 당황스럽지 않은 척 제작부장님께서 브리핑 해주는 것들을 받아적었다. 구글 드라이브를 공유해주셔서 그 안에 있는 로케이션 후보 리스트들과 제작부에서 준비할 비품 목록, 주차장 이슈, 로케이션 이슈 등을 전해 들었다. 직접 사진과 장소들을 정리해 보여주셨고, 해당 장소에서 있었던 사장님과의 트러블이나 관계까지 최대한 상세하게 이야기해주셔서 좋았다. 당일 면접을 보셨던 분은 뒤에 일정이 있으셔서 먼저 가셨고, 나는 외부 식당을 리스트업하는 업무를 도와드렸다. PD는 회계와 예산, 각종 스텝 소통 업무를 하고 계셔서인지 정신이 아주... 없어보였다. 그리고 허리를 다치셔서 보조 기구를 허리에 차고 계셨다. 이런 상황에서 비품을 대여하러 가는데 도와줄 수 있겠냐고 하셔서 그러기로 했다.
조금 당황했던 건 이 지점이었는데, 이날 오후부터 비품 정리를 함께하고 일산에 위치한 불만제로프로덕션서비스라는 곳에서 비품 대여를 했다. 사실 이날 일산까지 가는 줄도 몰랐던 상황이었고, 이 작업이 저녁 늦게까지 걸릴 거라는 것도 몰랐다. 내가 도와드리기로 한 부분이니 끝까지 남아 같이 작업을 했지만, 솔직히 조금 당황스러웠다. 어쨌건 외부 스탭으로 온 사람인 만큼 프리작업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작품에 애정이 크게 없는 상황이었는데, 살신성인할 마음이 없는 상태에서 예상치 못한 나의 인력과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니 “이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나도 모르게 이미 돈을 포기하고 온 현장에서 머리로는 계산을 두들기고 있었나 하는 자아성찰과 동시에 그래도 나라면 이렇게 사람을 쓰지는 않았을텐데... 하는 마음 사이에서 지금이라도 그만둬야하나?라는 고민까지 하게 된 것이다.
각설하고, 프로덕션실에 있는 비품들을 정리하여 차에 싣고 이제 대여 품목들을 가지러 일산 불만제로 프로덕션으로 향했다. 대여한 스타렉스 운전은 PD만 보험등록이 되어있어 PD가 운전을 하게 되었고, 나와 제작부장은 PD의 개인차를 운전하여 불만제로까지 이동했다. 불만제로라고 하는 것은 촬영장비가 아닌 기타 다른 영화제작에 필요한 모든 제작비품들이 구비된 아주 큰 규모의 창고 같은 곳이었다. 우리가 도착한 당시 다른 드라마팀에서 비품을 처리하고 있었는데, 규모와 예산이 큰 곳이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한 번도 쓰지 않은 비품들을 버리고 있었다. 그쪽에서 먼저 혹시 필요한 것이 있으면 가져가라기에 나와 제작부장은 눈이 돌아서 입이 귀에 걸린 채 공짜 비품을 획득하고 있었다. 중요한 건 이때 피디가 전화를 받느라 우리가 아무리 불러도 대답을 하지 않고 먼저 결제를 해버려서 사실 공짜로 주울 수 있는 비품 몇 개를 결국 프로덕션에서 구매하고 말았다. 사장님과의 관계도 있다보니 눈치가 보여 어쩔수 없는 일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몇십 만원은 줄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우리모두 가지고 있었다. 여튼 생각보다 많은 비품을 스타렉스에 실어야 했는데, 운전석과 보조석을 제외하고 다른 의자들을 다 빼낸 상태의 스타렉스였음에도 비품들이 안들어가서 애를 먹었다. 캐노피 3개와 테이블 5개, 의자 여러개, 우산, 난로, 막비닐, 각종 비품 박스 등등 겨울이라 그런지 방한 용품들이 많이 필요해서 그 커다란 스타렉스가 모자랐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이걸 정리하는게 나와 제작부장(여자) 뿐이고, 허리를 다친 피디는 지프에서 노트북을 하는 중이었다.
그나마 다행히도 제작부장이 스타렉스에 어떻게 하면 이 물건들을 넣을 수 있을지 빠르게 계산을 해주어 약간의 틈도 없이 꽉찬 비품 스타렉스를 완성할 수 있었다.
사실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된 것이 아니라, 도우러 오는 마음으로 왔는데, 내 허리가 나가도록 일을 하고 있었고, 다시금 “이게 맞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의 선택이므로 어쩔 수 없다 생각하고, 먼저 간 제작부원을 조금 부러워하며 돌아왔다. 바로 내일... 제천을 가야 하니까...
3. 제천 도착
제작부장과 나는 연출팀 3명을 함께 싣고 제천으로 향했다. 연출팀은 대체로 나이가 굉장히 다들 어린 편이었고, 슬레이터, 인물담당, 미술담당, 스크립터, 조감독으로 구성이 되어 있었다. 물론 2회차를 찍고 인물담당 연출팀원이 그만두게 되어 슬레이터가 미술로, 미술담당이 인물담당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가끔 슬레이트 칠 연출부가 부족할 때 슬레이트를 치기도 했다. 여튼, 이러한 미래를 모른 채 숙소로 향했는데... 그곳은 산중 아주 깊은 곳에 위치한 청소년 수련원이었다. 정말 깊은 산 속이라 차가 없으면 아무도 올 수 없고, 또 아무도 나갈 수 없는... 그런 곳이었다. 배달도 안되는 곳이라, 차가 없는 스텝들은 음식없이 들어가면 아무것도 먹고 마실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를 뒤늦게 깨닫고 후발대인 연출 및 제작부에게 음식을 부탁해 다행히 연출부들의 저녁은 어째 저째 해결은 한 것 같았다. 제작부장과 나는 연출팀을 수련원에 내려주고 곧바로 숙소를 체크하기 위해 이동했다. 매니저 숙소와 배우들 숙소가 다른 모텔이었다. 이는 지역 축제와 스포츠 경기 기간이 겹쳐 방이 없는 상황이라 그렇게 된 듯 했는데, 이 때문에 스탭들의 숙소도 수련원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사실 비용절감을 하는데에는 도움이 되는 상황이었지만, 이동에 있어서 차량 수송이 필수인 상황이었기에 어떻게 보면 인력적으로는 마이너스인 상황이기도 했다. 급히 뭘 가지러 숙소에 와야하거나 다른 스탭을 이동시켜야 할 때 현장에 있어야 할 제작부들이 빠져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에. 그리고 당일 숙소 배정에도 파악이 안된 스탭들이 있어서 급히 방배정 표를 다시 작성해야하는 일이 있었고, 제작부장은 숙소 결제도 하고, 방배정도 관리하고, 속속들이 도착하는 스탭들을 케어하며 동시에 비품 관리도 해야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또 음식 소품 구매를 하느라 돌아다니기도 했다. 제작부장이 운전을 하는 동안 옆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문서 작업들을 최대한 도와드리려고 했다. 특히나 결제와 관련해 복잡한 부분들이 많았는데, 숙소 결제를 할 때도 한 꺼번에 하지 않고 일주일 단위로 한다던가, 소모품이나 간식도 일주일치만 사는 경우가 많았다. 아마도 정산을 할 때 주 단위로 해야해서 그런가 싶기도 했다.
여튼 다른 제작부원은 저녁 7시쯤 도착했고, PD도 조감독 수송과 로케이션을 돌다가 같이 합류하여 제천에서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제작부 식사를 했다. 그만큼 제작 현장이 제작팀으로서의 소속감을 느끼기에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제작부는 저녁에 돌아가 물과 기본 생필품등을 나눠드린 후, 또다시 스타렉스에서 비품들을 싹 꺼내 상황에 따라 꺼내기 좋게 정리를 했다. 후에 이러한 작업을 또 여러 번 했다. 야외 촬영이 많은 날은 더 챙겨야할 물건이 많고, 미술 소품을 추가적으로 넣어서 이동해야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4. 촬영
촬영을 하는 동안 제작부로서 주로 했던 일은 스텝들이 도착하기 전 주차 자리 확보, 촬영 현장 제반 마련(간식, 물, 의상/분장/모니터 테이블 의자 세팅, 쓰레기 담배꽁초 버릴 위치 확보, 필요한 경우, 조식 테이블 마련, 현장에서 쓸 비품 박스 세팅) 등이었다. 비품 박스는 문구류, 청소용품, 멀티탭, 소모품(쓰레기봉투, 물티슈, 막수건)등으로 나누어 정리되어 있었다. 야외 촬영시에는 핫팩이나 따뜻한 물을 마실 수 있는 온수기 설치, 그에 따른 일회용품 세팅 등이 필요해 품이 더 많이 들기도 했다. 한 가지 꿀팁이라면 막의자를 뒤집어 검은 봉투를 씌워두니 그 자리에서 이동이 간편한 쓰레기통 하나가 뚝딱 만들어진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기본 세팅이 끝나고나면 PD는 어디론가 가서 회계와 데이터 백업을 하고, 제작부장은 현장에서 촬영 진행상황을 체크하며 그때그때 필요한 비품이나 물건들을 요청했다.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식사 준비를 하거나 통제를 서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나 이번 촬영 현장은 실내임에도 건물에 사람들이 지나가는 그림자가 비춰지거나 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려 밖에서 통제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두 명이서 통제가 불가능한 구조라 중간 중간 미술팀원 분이 도와주시기도 했다. 도로나 위험한 거리를 통제를 할 때는 조끼와 야광봉, 판넬 등을 세워두었다. 판넬에는 미리 인쇄해둔 안내문구 종이를 붙여두기도 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이런 것들이 더 시선을 끄는 경우도 있어 오히려 눈에 띄지 않게 통제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식당에서는 매번 명단 작성이라는 걸 했다. 덕분에 스탭들의 이름을 빠르게 외울 수 있었다. 처음에는 직접 쓰게 하였지만, 그러다보니 쓰지 않고 가거나, 혹은 인원 파악이 빠르게 안 되는 경우도 많아서 그냥 제작부 한 명이 상주하여 오는 팀원들을 확인하고 제작부가 직접 이름을 작성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 번은 종이가 없어서 휴대폰으로 작성했는데, 꼭 종이로 적어줄 것을 요청하시기도 했다. 아마 정산 증빙에 필요해서였던 것 같은데 그런 것 치고는 PD님께서 종이 회수를 안하는 경우도 있으셔서 원칙상으로 그런 것인가 싶기도 했다.
더불어 1회차 저녁에 촬영 장소가 빠그라져 저녁 촬영이 날아간 일이 있었다. 알고보니 장소를 제공해준 대학교 측과 협의를 하지 않은 채 사무실 내부에 있는 종이들을 치웠던 일 때문이었고, 그 종이들이 하필이면 감사자료였던 탓에 일이 커졌다. 다행히 PD와 다른 책임자들이 싹싹 빌어서 다음날 다시 촬영이 재개되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공지를 제대로 해주지 않아 스텝들과 배우들 측에서 불만이 나오기도 했다. 제작부장은 이런 일을 스탭들에게 다 오픈하면 안된다고 판단했던 것 같지만 키스텝들이 부재한 상황에서 마냥 스탭들과 배우를 기다리게만 하는 것이 최선이었을까라는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더불어 첫 촬영이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미술팀과 제작팀, 연출팀의 역할분담이 제대로 안되어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추후에 다른 분께 여쭤보니 특히 소품이나 바라시 관련해서는 스탭들끼리 미리 얘기를 나누어 서로 부족한 인력이 있을 경우 도움을 요청하고, 소품이 많을 경우 어떤 걸 제작부에서, 어떤 걸 연출부에서, 어떤 걸 미술부에서 준비할지를 미리 많이 얘기를 해야 한다고 들었다. 이렇게 많은 얘기를 나누어도 실제 촬영이 진행되면 서로의 탓을 하며 싸우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나도 다른 현장과 다르게 자꾸만 미술도 연출 비품도 다 제작부에서 챙기는 것이 맞는가하는 의문이 들었고, 제작부도 모두 여성인데다 인력이 많지 않은데 챙겨야 할 짐이 너무 많아지다 보니 중간에서 키스텝들이 정리를 못해주고 있다는 생각에 불만이 생기기도 했다. 이후에는 이런 부분을 말씀드렸고, 감사하게도 피디님과 연출팀 선에서 정리를 하여 어떤 부분을 제작부에서 챙길지, 어떤 부분을 연출부에서 챙길지가 정리가 되어 한쪽에 너무 일이 몰리지 않는 균형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초반 5회차 정도까지 촬영을 진행하며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스탭들이 이해해주는 경우가 많았고, 서로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촬영이 진행된 부분에 있어서는 뒤풀이 자리를 마련해 함께 풀어갔다. 특히 중년 배역으로 출연하신 주연 선배가 제작현장에 많은 애정을 가지고 간식차나 커피차를 지원해주기도 했고, 스텝들의 단합을 위해 뒤풀이 비용을 지원해주시기도 했다. 덕분에 한달동안 소화해야하는 20회차의 분량을 더 으쌰으쌰하여 해낼 수 있었던 부분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이러한 간식차나 커피차, 그리고 뒷풀이 장소 등의 지원이 제작부에게 또다른 하나의 업무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이러한 경우 간식차를 세울 수 있는 장소와 전기를 끌어올 수 있는 곳들을 미리 파악해야 하고, 야외 촬영이나 좁은 실내 촬영의 경우 춥지 않게 이것들을 먹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뒷풀이의 경우도 대부분은 PD가 애를 썼지만 인원과 예산, 시간에 따라 가능한 식당을 함께 리스트업하고 연락을 돌리는 등의 일들을 해야 한다.
이때는 제작부에서 뭔가를 할 때 타이밍과 조감독과의 긴밀한 소통도 중요하다. 한 번은 1회차 저녁 장소가 빠그러진 이후 다음날부터 못 찍은 분량을 찍기 위해 계속해서 달렸는데, 제작부장과 PD는 아무래도 계속 도시락만 먹어야 하는 스텝들을 위해 야식을 준비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여 따뜻한 분식류를 준비했다. 그런데 이게 조감독과 협의가 안 되었던 탓인지 조감독은 시간이 없는 상황에서 품이 많이 드는 음식을 주문한 것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다. 이때의 경험을 통해 되도록 밥시간과 메뉴도 같이 공유를 하며 연출팀과 긴밀히 조율해가는 의사소통 능력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걸 많이 느꼈다.
5. 지방/시골
제천은 시골이다. 번화가라고 해봤자 편의점과 모텔, 식당들이 조금 더 있다는 수준에 불과하다. 나는 프리 기간에는 참여하지 않아 몰랐지만 제작부장과 이야기를 나누며, 또 중간 중간 로케이션 장소들을 미리 답사하고 돌아다니면서 느꼈던 지점들이 있어 마지막으로 정리해 보려고 한다. 지방촬영, 정확히는 제반이 많이 없는 시골 촬영에서 중요한 점은 로케이션에 자주 방문해서 주변 주민들과 친밀도를 쌓는 것이었다. 시골은 바로 앞, 옆, 뒤에 누가 살고, 어떤 일을 하는지에 대해 관심이 많다. 또 소문이 금방 돈다. 지나가는 주민 분이 갑자기 촬영 장소를 빌려준 분의 지인이라며 인사를 하고 가기도 한다. 그러한 상황에서 자칫 쓰레기나 소음 문제로 분란을 만들면 그 동네 전체로부터 비난을 받다가 쫓겨나는 수가 있다. 그래서 PD와 제작부장은 일찌감치 촬영장 주변의 아파트나 주민 분들에게 촬영 관련 자료를 문서화 하여 나눠드리며 정확한 촬영장소와 일시, 기타 유의사항과 죄송한 마음을 담아 배부한 것으로 보였다. 그럼에도 그 자료를 읽지 못했거나, 놓친 주민분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동에 불편을 주면 어쩌냐는 원성을 늘어놓고 가시기도 했다. 더불어 너무 한 장소를 오랜 기간 통제하다보면 처음에는 협조적이던 주민분들도 예민해지기 시작하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 너무 한 곳에서만 찍지 않고 중간 회차는 다른 야외 장소로 이동해 찍는 날로 만드는 것도 좋다. 더불어 화장실이 없는 건물들도 많기 때문에 근방의 식당이나 가게 사장님들과 친해져서 화장실을 미리 확보하고 스텝 식사를 그곳에서 해결하는 것도 좋다. 촬영장 안에 화장실이 있다 하더라도 슛이 돌아가는 동안에는 사용하기가 힘들고, 배우분들도 부담스러울 수 있기 때문에 되도록 촬영 스팟에서 소움이 안들릴 정도의 거리에 있는 화장실이나 근방의 화장실을 확보해놓으면 스텝들이 더 편하게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쓰레기 처리도 미리 어떻게 해야하는지 사장님이나 주민분들에게 물어두면 언제, 어디로 쓰레기차가 오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에 분리수거나 처리가 더 편하다. 또 급한 식재료나 소품이 있을 때 주변 사장님들과 가게의 도움을 빌릴 수 있기도 하다. 제작부장은 촬영이 다 마무리되고 나서 따로 제천을 방문했다고 한다. 촬영 현장 마무리가 필요한 부분도 있었지만 프리 때부터 촬영이 끝날 때까지 협조를 해주신 주민 분들과 인사를 나누려고 했던 것 같다. 이런 태도가 지속가능한 촬영을 만들어주는 것 같다.(촬영 끝, 영원이 바2바2 하면, 우리를 마지막으로 그곳에서 촬영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경기도 쪽 주택에서 촬영을 2회차 정도 진행했는데, 우리 앞의 촬영팀이 쓰레기와 소음 문제를 일으켰던 탓에 우리가 촬영 할 때 주민 분들이 매우 매우 예민해져계셨다. 그래서 더욱 친절하게, 또 쓰레기나 소음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제작부 전체가 스탭들에게 계속해서 공지를 했고, 우리도 공손하고 친절하게 민원에 대처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제작부는 좋은 인상과 넉살이 필요한 것 같다(?)
6. 마무리
쉽지 않은 현장이었지만 소소하고 디테일한 부분에서 업무적으로 배울 지점들이 많았다. 프리부터 참여를 하지 않는 이상, 팀원으로의 소속감도 또 작품에 대한 애정도 갖기가 힘들 거라 생각했는데, 끝날 때 즈음에는 왠지 모르게 이 영화를 더 응원하게 되는 마음이 생겼다. 내가 마음을 붙이는 만큼 현장의 경험이 내 것으로 남는다는 걸 배웠다. 제작부는 가장 먼저 현장에 나와 마지막까지 현장을 챙기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쓰레기와 기타 제반 문제들을 해결하여 눈에 보이지 않게 스탭들의 안전과 편의를 책임지는 엄마 같은 부서인 것 같다. 어떤 분은 제작부를 건물 짓는 사람에 비유했는데, 현장이 일하는 곳 다울 수 있게 지붕이 없으면 지붕을, 화장실이 없으면 화장실을, 식탁이 없으면 식탁을 만들어주는 그런 사람들이라는 의미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