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아름다운 건 섬이 있기 때문이라는데
섬이 아름다운 건 그리움을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외롭고 애틋해 보이는 섬
파도소리 바람소리는 섬이 길어올리는 울음같은 그리움이다
섬을 위로하기 위해 섬으로 다가간다
아니 섬같은 우리가 위로받고 싶어 섬으로 떠난다
황금날개를 달고 비상하고 있는 거금도와
그 옆에서 야생화처럼 다소곳하게 피어있는 연홍도
그 섬으로 간다
"거금 줄란가...?"
남편에게 거금도 가자 했더니 대뜸 되돌아오는 황당한 대답에 어이가 없어 웃음이 터졌다
우스갯소리였지만 사실 거금도(居金島)는 돈과 다름없는 금이 많이 묻혀 있다하여 불리어진 이름이다
그래서인지 거금도에는 금(金)자가 들어가는 지명이 많다
금산,익금,적금,금장 등...
걸어서 바다를 건느고 싶었던 거금대교,
이틀전(12월 16일)에 개통한 따끈따끈한 다리를 버스로 달려간다
"우리는 거금대교를 희망이라 부릅니다"
대교 입구 난간에는 플랭카드가 바람에 나부꼈다
5300여 주민들의 숙원사업이었던 거금대교가 시공 9년만에 결실을 본 것이다
총 길이 2028미터의 이 다리는 전남 고흥군 대흥리(거금도)와 도양읍 소록리(소록도)를 연결하는 교량으로
중앙부분에 167.5미터에 이르는 다이아몬드 모양의 주탑 2개가 케이블로 연결된 사장교이다
고흥반도의 서남쪽 끝 거금도가 육지가 되었다
녹동항에서 거금도까지 배로 30분 걸리던 것이 차로 5분이면 주파할 수 있게 되었다
거금도에 도착하자 금산면사무소 옆에 있는 김일 기념관 및 체육관에 들렀다
2009년 첫 삽을 뜬 뒤 거금대교 개통식 다음날 시공 3년만에 문을 연 '박치기왕 고 김일 체육관'
고인의 생가옆에 세워진 기념체육관은
프로레슬링의 전설인 김일을 기리기 위해 고흥군과 정부,전라남도가 46억원을 지원하여
다목적체육관으로 건립한 것이다.
개관식 하는 날 오후에 열린 세계프로레슬링 대회가 끝난 체육관 실내는 어수선하였지만
한쪽에서는 김일 생전의 활약상과 영광스런 모습 등 일대기를 보여주는 사진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김일은 1929년 거금도에서 태어나 씨름판에서 활약하다가(거금도에서는 그를 이길자가 없었다고 함)
1956년 일본으로 밀항하여 일본인 역도산 체육관 문하생 1기로 레슬링을 시작했다
박치기로 세계 헤비급 챔피온에 올라 20여차례나 방어전을 치렀다
17년이나 투병생활을 하다 2006년 타계했으나 우리들의 영원한 전설로 남았다.
김일 체육관 앞에는 김일의 생가와 김일의 동상인 반신상,공덕비,훈장증 비석과
묘비와 김일이 사랑했던 진돗개 동상 등이 자리하고 있었다.
김일이 박치기로 세계를 제패했을 때 박정희 대통령이 김일을 청와대로 불렀다
대통령이 김일에게 소원이 뭐냐고 묻자
김일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고향 거금도에 전기를 놓아달라고 했다
외딴섬 거금도에 전기를 들인다는 게 난제였지만 대통령은 기꺼이 그 소원을 들어주었는데
섬주민들은 김일더러 바보라고 했단다
그때 다리를 놓아달라고 했었으면 전기는 그저 따라올텐데 하고.
김일 체육관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신양항에서 통통배를 탔는데
불과 5분만에 아름다운 섬 연홍도에 도착하였다
조금 전 점심을 먹으며 마신 고흥의 민속청주 유자향주 탓인지 차가운 바닷바람조차 달콤하게 느껴졌다
우리 일행들을 위해 고흥군청에서 나오신 관광과 계장님께서 특별히 쏘신 유자향주 속에는
청정한 고흥의 맛이 배어있는 듯 시원한 맛이 일품이었다
유자황주는 고흥 9미(味) 중 8미로 민속주 경연대회에 나가 2등을 한 이력이 있는 술이다.
생전 처음 밟아보는 아담하고 작은 섬 연홍도
거금도 북서쪽 바다에 떠있는 조그만 연 같다하여 연홍도(鳶洪島)라 불리다가
본섬인 거금도와 500미터 거리를 두고 연이어 있다고 하여 연홍도(連洪島)라 불리워지는 섬이다.
예전에는 150가구에 아이들도 많았는데 지금은 50가구에 주민 105명이 살고 있고
아이들도 한두명 밖에 없다고 한다
방파제 끝에서 만난 이 섬의 아이들 미모가 도시 아이들 못지않다.
동쪽 해안에서 서쪽 해안으로 넘어가는 얕으막한 언덕에서
도시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비석을 만났다
'烈女端人慶州金氏之碑'(열녀단인경주김씨지비)
유교시대의 산물이라 할 수있는 열녀비가
조금은 생뚱맞게 조금은 아련한 향수로 나그네의 마음을 적신다.
올해 들어 가장 춥다는 겨울군단들의 세력 앞에서도
섬마을의 양파들은 싱싱한 초록의 빛을 잃지않고 있었다
남쪽에 있는 섬의 기후 탓에 겨울속의 봄을 느낀다
자연의 대단한 생명력을 감지하며 서쪽해안으로 내려간다.
섬이 주는 정취와 풍광을 애틋함으로 느끼며 다시 바닷가로 내려서니
우리의 목적지 연홍미술관이 바닷가 옆에서 연분홍 지붕을 이고 하얀 담장을 두른채
다소곳하게 나그네들을 맞이하고 있다
어쩌면 망망대해 넓은 바다를 바라보며 꿈꾸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섬 출신으로 어릴적 추억을 안고 고향을 떠났던 김정만 화백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돌아와
1998년 폐교된 금산초교 연홍분교 900평을 2006년 매입하여 리모델링을 한 뒤
'섬 In 섬 아트센터 연홍미술관'으로 이름지었다
버려진 폐교를 문화예술공간으로 부활시킨 것이다.
이렇게도 예쁜 미술관은 처음 본다며 멋쟁이 부부는 인증샷부터 먼저 한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이라고 해도 될 만큼 예술적인 감각이 묻어나는 미술관 뜨락에서
잠시 행복한 순간을 맛본다
십여년 전 섬마을 아이들이 신나게 뛰놀았을 운동장에서.
미술관 내부로 들어서니 커다란 중앙홀에서는 미술작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중앙홀 옆에는 숙식도 할 수 있도록 방들이 있었는데
미술관에서는 미술작품 전시는 물론 문화예술인들의 체류창작활동 및 단체연수도 할 수 있도록 했단다
또한 이곳은 주민들의 생활복지 공간으로 주민과 관광객들간의 소통의 장소로도 활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미술관 관장인 선호남 관장은
'아름다운 남쪽바다를 정원으로 들인 미술관은 우리가 유일할 것'이라며
섬의 구릉마다 토종갓을 심어 노란 갓꽃으로 섬을 채우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고 한다.
관장님 말처럼 미술관 앞마당은 바다까지 정원으로 확대된다
꿈꾸듯 앉아있는 작은 미술관,섬마을 소년 소녀들이 공부하며 꿈을 키웠을 공간에서
낯선 도시에서 온 어른들이 이리저리 거닐며 바다와 섬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이곳에서는 2007년 탁재훈과 조안 주연의 영화 '어린 왕자'를 촬영하기도 했었다
폐교의 흔적을 조금은 남겨 두었다
들어서는 입구에 있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그렇고 자세히 보면 청색으로 녹슨 학교종도 보인다
다정함이 묻어나는 폐교 미술관은 어른들마저 잠시 동심으로 돌아간다
"커피 한잔 하고 가세요"
미술관 옆 100미터 지점에 있는 백사장에 빛의 속도로 갔다와서
조가비와 고동껍질을 주워와서는 주섬주섬 커피잔을 차려놓는다
뚝딱뚝딱 만든 것 같은 다탁 위에는 어느새 달콤하고 따뜻한 커피향이 피어오르고
소꼽장난을 하는 부부의 얼굴과 가슴결에도 잔잔한 미소가 번지고.
추억의 발자국을 남기며 소담하고 따뜻했던 연홍미술관을 떠난다
작은 미니어처 장난감이라면 호주머니에 넣고 가서 만지작거리며 보고싶을 때 보고싶은
작은 섬마을 미술관을 아쉬움 속에 떠난다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은 아름다운 미술관,금새 그리워질 것 같다
다시 또 오마....이름도 예쁜 연홍미술관아.....
섬의 해안을 돌아나오며 섬의 정취에 젖어들었다
맞은 편 앞바다에는 금당 8경으로 유명한 금당도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적막하고 외로운 섬.터벅터벅 걸으며 섬이 나이고 내가 섬인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여행이란 때로
살아온 세월의 어느 마디쯤에선가 아직 서성이고 있는 자신과 마주하는 일이다
눈빛마저 허랑하게 흔들렸던 상처의 시간을 반추하며 정갈하게 걸러내고 있는 자신을 무심코 바라보는 일이다.
섬동네를 관통하여 걷다보면 이런 폐가도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젊은 사람들이 떠나는 섬,그래서 갓난애기들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섬
섬의 슬픔이다.
그래도 아름다운 섬을 꿈꾸는 주민들이 있고
잊지 않고 찾아주는 사람들이 있어 섬은 아직 슬프지 않다
담벼락을 동심으로 가꾼 섬마을 풍경이 따뜻하고 정겹다.
젊은 어부들이 생의 그물을 엮어가는 연홍도는
거금도의 비상과 함께 한층 도약하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노란 갓꽃으로 물들어 갈 연홍도를 그리며 거금도행 배에 몸을 실었다.
이제 거금도에 도착하면 고흥 10경 중 제 7경인 거금도 해안일주를 할 것이다
아까 만났던 군청 관광과 계장님은 우리가 거금도를 여행하는 동안
통장에 거금을 넣어주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는데...
어찌 된건지 거금도는 거금과 관련이 참 많은 것 같다
남편도 그렇고 계장님도 그렇고...
바다 위에 떠있는 고래등 같은 적대봉(592m)을 가운데 두고
신양항에서 시계반대 방향으로 서남해안을 돌라치면
배천마을~우두마을~연소해수욕장~익금해수욕장~금장해수욕장으로 연결되는데
가는길에 '하얀파도 펜션' 앞에 이르렀다
펜션 앞에서 바닷가 쪽으로 내려가니 수박보다 더 큰 몽돌이 있는 공룡알 해변이 나타났다.
몽돌해변으로 유명한 해변이 국내에 몇군데 있다
거제도 학동의 몽돌해변이 유명하고,재작년에 가본 홍도의 갯돌 몽돌도 컸었고,
올봄에 가보았던 완도 구계등도 인상적이었지만
이토록 큰 몽돌은 정말 처음 본다
늙은 호박보다 수박보다 더 큰 몽돌이 해변을 가득 메우고 있는데
둥근 것,타원형인 것,거의 너럭바위 수준인 것도 있다.
엄청나게 큰 바닷가 바위들이 파도와 바람에 씻기고 깎이어
이런 몽돌들이 되었다는 게 너무나도 신기하다
떡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퍼질러 앉아 파도소리 해조음을 들어보렴
파도가 엮어내는 아득히 먼 바다 이야기 들어보렴.
'국도27호선종점 오천항'이라는 표지석을 지나치며 길을 재촉한다
이 표지석을 보는 순간 거금도가 섬이 아니라는 게 실감이 났다
군산에서 시작 익산~전주~완주~임실~순창~곡성~순천~보성~고흥을 잇는 27호선 국도의 종점이
이곳 거금도라는 것
해설사님은 그랬다 '종점은 곧 출발점'이라고
그래도 난 거금도가 영원한 섬으로 남아있기를 바랬다.
오천항을 지나고 청석마을 가기 전, 섬 사이 수평선에서 해가 뜬다는 소원동산에 이르렀다
팔각정과 전망대가 조성되어 있었는데 발아래에 펼쳐지는 풍광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왼쪽으로 길다랗고 운치있는 백사장과 오른편에는 대취도 소취도가 정답게 누워있다.
해마다 새해가 되면 이곳 대취도에서 뜨는 일출을 바라보며 소원을 기원하겠지
내년이 흑룡의 해라는데 올해처럼 무사히 잘 지나가기를 미리 기도해볼까나.
이제 마지막 행선지 노란 날개가 있는 거금대교 바로 앞 전망대에 섰다
흐린 겨울날씨 속에서 해는 저물어가는 터라 거금대교가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마음의 눈으로 확대하여 본다
우리나라 해상교량 가운데 최초로 복층교량 형식을 도입한 거금대교
자전거와 보행자 도로인 1층과 차도인 2층으로 구분하여 보행자들이 안심하고 다리를 건널 수 있게 된 것이다.
차도 바로 밑 노란 철제빔 안에 있는 보행자 전용도로를 조금 걸어본다
새 다리를 건너가면 다리 아픈 게 낫는다는 속설이 있어 새 다리가 완공되면 다리 아픈 사람들이
많이 건너간다고 하는데
2km되는 다리 끝에서 끝까지 걷는데 40분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한 층을 온전히 보행자의 몫으로 내준 넉넉한 마음을 가진 거금대교야,고맙다.....
거금대교의 주탑과 철제빔이 노란색인 것은
거금도의 금색깔과 고흥의 특산물인 유자색깔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거금대교는 소록대교와 연계하여 아마도 지역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잡을 것이고
지역의 경제활성화에 박차를 가할 것임에 틀림이 없다.
비상하는 황금빛 날개에 조명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다리 밑 상화도와 하화도를 바라보며 우리는 또 버스를 타고 거금대교를 지나갈 것이다
다음에 올 때는 꼭 걸어서 바다를 건너가고 싶다
아참!..... 집에 돌아가면 반드시 통장을 확인해야겠다
거금이 들어왔나하고....ㅎ
첫댓글 여행기를 써서 돈버는 사람들이 있는데 달해님도 언젠가는 신문사 또는 잡지사에서 연락이 오리라 봅니다. 달해님의 답사기가 너무도 좋아 일취월장 이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네요. 섬 여행은 외로움이라는 철학을 함께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섬 여행을 좋아하나 봅니다. 고흥관광을 기획하는 관광계장 왈 "나도 안가봤는디" ,"부산사람들이 연홍도는 어떻게 알았스까이" 라며 동행 해주는 바람에 더욱더 멋진 여행이 될 수 있었기에 달해님 글 읽으며 봄이 오면 다시 한번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달해님 내년에는 기업의 후원을 받아 여행기 출판을 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답사대장 장순복
좋은 곳을 다녀와서 글을 쓸려고 할때마다 제 자신의 왜소함을 많이 느낍니다. 세상의 풍경은 왜 그렇게 오묘하고 신비스럽기만 한지 표현의 한계를 느낄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극찬을 해주신 대장님,감사드려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더 잘하라는 격려의 말씀으로 여기고 내년에도 열심히 박찾사를 따라다니며 한층 더 배우겠습니다. 전 아무래도 박찾사 폐인인 것 같습니다.ㅎ
대장님,항상 건강 돌보시고, 내년에 또 뵙겠습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참,올 한해동안 부족한 제글을 열심히 읽어주신 회원 여러분들께도 이 지면을 빌어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새해에도 가내 두루 편안하고 복많이 받으시기를...꾸벅^^
달해님 맛있는 설명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사진을 무일푼으로 감상할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시어서 감사하고,2012년
흑룡의 해를 맞이하여 댁내 건강과 ,박찾사 장대장님 이하 모든 회원들의 작은 복이라도 이룩수 있는 해가 되시기를 기원.
복 많이 받으십시요.감사합니다.
다녀온듯한 상세한 글과 사진에 여행을 떠나고픈 갈망이 느껴집니다 감사히 머물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