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종문인화의 대가 남농 허건화백의 화론에 ‘樂志論’01 내가 사는 곳에 좋은 밭과 넓은 집이 있으니 “남농이 목포다. 목포는 남농이다!” 한 때는 이런 말이 당연시되는 시절이 있었다. 남농은 진도 사천리 운림산방에서 태어났지만 8할은 목포의 바람이 키웠다고 본다. 한국학호남진흥원이 기획한 ‘호남학산책’은 우리 고장의 사상과 문화, 생활의 지혜와 정체성을 규명하기 위한 인문학 산책길이다. 남농기념관에 소장된 허건의 ‘낙지론’이라는 그림이 있다. ‘낙지론’은 후한(後漢)시대의 학자이자 고사(高士)였던 중장통(仲長統, 179-220)이 쓴 문장으로, 남농 허건은 이 글을 화제시로 써놓고 그림을 그렸다. “내가 사는 곳에 좋은 밭과 넓은 집이 있으니 산을 등지고 냇물을 굽어보며 도랑과 연못이 둘러 있다. 주위는 대나무와 나무들이 둘러싸고 앞에는 타작마당과 채소밭이 있으며 뒤쪽에는 과수들이 심어져 있다. 걷거나 건너는 것을 대신해 배와 수레가 있고 수고를 대신해 줄 하인들이 있으며 부모님을 봉양할 맛있는 음식이 있고 처와 자식을 수고롭게 할 일이 없다. 좋은 벗들이 모이면 술과 안주를 차려 즐기고 좋은 때나 좋은 날이면 양과 돼지를 삶아 조상에 바친다. 동산 위를 거닐기도 하고 숲에서 놀이를 즐기기도 한다. 맑은 물에 몸을 씻고 시원한 바람을 쏘이며 헤엄치는 잉어를 낚고 높이 나는 기러기를 활로 쏘아 잡는다. 기우제 제단 아래서 바람을 쐬고 시를 읊으며 집으로 돌아온다. 방안에선 정신을 가다듬고 노자의 현허(玄虛)를 생각하고 조화의 정기를 호흡하며 지인(至人)의 경지를 구한다. 깨달은 몇몇 사람과 도를 논하고 책을 강론하며 고금의 역사와 인물을 평한다. ‘남풍가’의 우아한 곡조를 연주하고 청음(淸音)과 상음(商音)의 오묘한 가락을 연주하며, 한 세상을 유유히 살며 천지 만상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시대의 책임을 맡지 않고 타고난 생명을 길이 보존한다. 이와 같이 한다면 하늘을 넘어 우주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니 어찌 제왕의 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부러워하랴! -운림산방 주인 남농” 할아버지인 소치 허련서생이 운림각도 부채에 가득 써놓은 ‘산거’의 정신을 그대로 내려받은 느낌을 갖는다. 누구나 잘 알고 있는 호남화단의 한국화 대가(大家) 이다. 그러나 그는 전통의 고답적인 표현양식과 주제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발상을 통해 실경(實景)의 현실감과 아름다움을 화선지에 토해낸 이 시대의 진정한 대가(大家)라고 할 수 있다. 남농 허건(1908-1987)은 호남화단의 거두로서 소치 허련의 손자, 미산 허형의 4남으로 태어났다. 남농은 옛 그림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그림을 끊임없이 추구한 결과 실제 풍경에 이끌리어 현실감 넘치는 산수화를 그려내게 되었다. 이러한 현실 세계의 반영은 더 이상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었던 전통 산수화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데서 비롯되었다. 더욱이 남농은 고향산천에 주목하여 자신의 작품세계를 펼쳤으며, 누구보다 고향을 사랑하고 아꼈던 남농의 진한 여운이 고스란히 그의 그림 속에서 살아난다. 자신의 고향산천을 그리는 손길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그의 그림에는 진한 인간미까지 엿보인다. 신 남화풍의 기법으로 그린 금강산소견 이나 강산무진도 목포 다도(多島) 작품은 채색을 극도로 절제하고 먹의 농담(濃淡)을 이용하여 원경(遠景)과 근경(近景), 음(陰)과 양(陽)의 조화를 사실감 있게 묘사하였다. 채색화풍을 과감히 배격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회화세계를 구축한 하였다. 「주변의 산수를 즐기고 도(道)를 논하며 책을 강론하고 古今의 역사와 인물을 평한다. 세상을 유유히 살며 천지만상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어찌 제왕의 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부러워하랴!」 그는 그 당시 전국을 여행하며 갈필법, 점묘법등을 이용하여 우리나라의 실경산수를 담아내는 데 열정을 다 바쳤다. 우리나라 대표적 나무인 소나무 그림을 제일 많이 그렸는데 소나무는굵고 대담한 필선으로 표현하였다. 즉, 자신감 넘치는 속필을 바탕으로 남도(南道)의 아름다운 풍경을 원숙하게 담아내기도 하고 풍상고절의 소나무도 많이 다작(多作) 하였다. 그림의 법(法)만 있고 그림의 이치(理)가 없으면 안되고, 그림의 이치만 있고 그림의 의취(意趣)가 없어도 안 된다. 남농의 작품세계에 정신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근대 한국 산수화를 대표하는 작가로 평가받고 있는 허건의 작품세계는 신 남화(南畵) 화풍 실경산수로 특히 허건의 농경적 삶에 대한 애착과 고향 산천에 대한 사랑이 작가의 그림을 통하여 남종문인화 진수를 느낄 수 있다. 남농 허건의 제자들은 남종화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문기 있는 사의적 산수화와 전통산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실경산수 화풍을 동시에 추구하여 개성 강한 작가들을 배출하였다. 제자들로는 조방원,신영복,김명제,김천두,곽남배,박익준,박항환,이옥성,허문,하철경,허진등이 있다. |
-은일한 삶에 대한 동경 - 중장통의 ‘낙지론’은 자연 속에서 여유롭고 편안한 삶을 즐기는 것을 찬미하는 글이다. 낙지(樂志)란 ‘자신의 뜻대로 즐거워한다’는 말이다. 마지막에 ‘어찌 제왕의 문에 듦을 부러워하랴(豈羨夫入帝王之門哉)?’ 라는 대목에서 세속적 출세보다는 은일한 삶에 대한 동경과 개인의 평안, 행복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드러낸다. 이 글을 쓴 중장통은 중국 후한 말의 정치가이다. 학문을 좋아하였으며 세상일에 신경을 쓰지 않는 성격이었다고 한다. 41세에 세상을 떠났지만 젊은 시절에 이미 인생을 일찍 달관했기 때문인지 ‘낙지론’을 읽어보면 유유자적 즐기며 욕심에 연연하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살아가는 것을 노래한다. ‘낙지론’을 주제로 그린 그림 중 가장 유명한 그림은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 1745-1806)의 ‘삼공불환도’(三公不換圖)이다. ※조지윤, ‘단원 김홍도 筆〈三公不換圖〉연구-1800년 이후 김홍도 회화의 변화와 간재 홍의영’, ‘미술사학연구’275·276호(한국미술사학회, 2012), pp. 149-175. 이 그림은 1801년 12월 순조가 수두에 걸렸다가 쾌차하자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제작됐다. ‘삼공불환도’에는 간재 홍의영(艮齋 洪儀泳, 1750-1815)이 송대(宋代)의 시인 대복고(戴復古)의 ‘조대’(釣臺)에 나오는 구절을 제목으로 하고 중장통의 ‘낙지론’으로 제발을 썼다. 삼공불환(三公不換)은 전원의 즐거움을 삼공(三公)의 높은 벼슬과 바꾸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김홍도가 그려낸 이 그림은 ‘낙지론’의 내용을 화폭에 구현해내고 있다. ‘삼공불환도’는 4m가 넘는 큰 병풍에 그려진 그림이다. 큰 화면에는 강을 앞에 두고 산자락에 위치한 넓은 저택과 논밭 등 여러 가지 정경이 그려져 있다. 저택에는 손님을 맞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평상에 누워 있는 선비, 베를 짜고 물레를 돌리는 아낙, 집안 한 켠에서 그네를 타는 아이들과 누각에 앉아 바깥 경치를 구경하는 선비의 모습이 보인다. 마당에는 사슴, 학, 닭, 개가 노닐고 연못에는 오리가 한가롭게 떠다닌다. 담 너머 집 밖의 너른 논밭에는 열심히 밭을 매는 농부와 낚시 중인 이가 있다. 멀리 물가의 풍경까지 김홍도는 전원생활의 한가로움과 정취를 화면 가득 담아냈다. ‘낙지론’에 담긴 선비의 생활을 산수화와 풍속화가 적절하게 어우러진 전원생활의 모습으로 충실하게 표현한 것이다. -다도해를 닮은 남농산수 - 허건은 김홍도의 ‘삼공불환도’와는 다르게 풍속적 장면 없이 산수화로서 ‘낙지론’을 그려냈다. ‘삼공불환도’에서 보이는 선비의 일상이나 집안의 정경 등 풍속적 장면이 나타나지 않는다. 아예 처음부터 낙지론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려는 의도가 없어 보인다. 다만 평화롭고 고즈넉한 풍경뿐이다. |
‘낙지론’은 옆으로 긴 형태의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구도를 보여준다. 한쪽에는 근경을, 다른 한쪽에는 원경을 두고 그 사이를 강이나 바다가 가로지른다. 근경 언덕에 소나무와 잡목을 그리고, 그 뒤로 커다란 주산(主山)을 중앙에 뒀다. 화면 오른쪽으로는 섬들 사이를 유유히 항해하는 돛단배 몇 척이 저 멀리 이어지는 원경으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비탈진 야트막한 언덕에 소나무와 잡목, 몇 채의 가옥을 배치하는 구도는 남농 산수의 전형이다. 갈필을 이용해 주산과 잡목을 처리한 표현이 두드러지는데, 군데군데 배치된 나무와 수풀의 처리에서 빠른 붓놀림을 느낄 수 있다. 거칠고 빠른 붓질을 반복한 독필(禿筆)은 허건의 개성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독필(禿筆)은 오래 사용해 붓끝이 닳아서 무뎌진 붓으로 그리는 기법이다. 끝이 갈라져서 거칠고 빠른 효과를 표현하는데 사용한다. 허건이 꿈꾸는 이상적인 자연은 멀리 있거나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가 살고 있는 남도의 아름다움이었다. 진도출신으로 18세 때부터 목포에 정착한 이래 그곳을 떠나지 않은 채 작품 활동을 한 허건은 자신이 살고 있던 지역에 대한 애정을 담아 작품을 제작했다. 상상의 산수인데 마치 유달산과 목포 앞바다의 실경을 보는 듯하다. 그렇기 때문에 ‘낙지론’에 그려진 대상은 더 이상 관념적이지 않은, 어딘가 있을 법한 남도의 풍광인 것이다. 허건이 생각하는, 또는 그려낸 낙지론의 내용은 자신의 고향에 대한 여유로움과 평안함이 아니었을까. 허건의 개성적 회화세계, 특히 산수화의 형식미는 1950년대 중·후반 이후 완성됐다. ‘운림산방주인’(雲林山房主人)이라는 아호도 이때부터 쓰기 시작했다. 전국 각지를 여행다니며 주변의 일상적인 농촌풍경을 비롯해 심산유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재를 취하여 실경을 사생한 그의 산수화에는 현실에 대한 애착이 짙게 나타난다. 이 무렵 허건의 화풍은 그 전에 그린 일본화풍이나 고답적인 화보풍의 산수화와는 다른, 그가 매일 보는 주변의 풍경과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다룬 것으로 고즈넉하면서도 아늑한 정취를 자아낸다. 허건은 저서인 ‘남종회화사’(南宗繪畵史)에서 자신의 화풍을 ‘신남화’(新南畵)라 칭하고 자신만의 개성적인 신남화풍을 찾으려 했다. “내가 추구할 그림의 주체는 조선의 풍토에 맞는 신남화를 개척하려고 고심참담하였으나 지금도 성가(成家)를 못함은 부끄럽다. 그래서 조선의 산천, 조선의 전원정서를 그려보고 조선의 인물을 그려보려고 굳게 결심하고 나섰던 것이다.” ※허건, ‘남종회화사’(서문당, 1994), p. 309. 허건이 추구한 신남화는 관념적 남종화에서 한 걸음 나아가 실경을 바탕으로 우리 주변의 자연을 사실적으로 담아내려 한, 즉 한국의 정서를 바탕으로 순수한 우리의 정경을 그리는 것이었지 않을까. ‘남쪽에서 농사짓는 이’ 남농 허건- 허건은 할아버지 소치 허련(小癡 許鍊, 1809-1892)과 아버지 미산 허형(米山 許灐, 1862-1938)의 영향 아래 전통화의 계승과 더불어 새로운 화풍을 수용해 목포화단의 축을 이뤘다고 평가된다. 화가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그림에 재능이 있었던 허건은 의재 허백련의 스승이었던 무정 정만조로부터 ‘남쪽에서 농사짓는 이’, 즉 ‘남농’이라는 아호를 받았다. 1930년 조선미술전람회(약칭 선전) 동양화부에 입선하여 화단에 이름을 알린 허건은 1944년에는 ‘목포일우’로 선전 총독상을 수상했다. 해방 이듬해(1946년)는 ‘남화연구원(南畵硏究院)’을 열어 후진을 양성했다. 아산 조방원(趙邦元, 1926-2014), 청당 김명제(金明濟, 1922-1992), 도촌 신영복(稻村 辛永卜, 1933-2013) 등 걸출한 화가들이 그의 문하에서 배출됐다. 허건은 제자들에게 ‘내 그림을 본뜨지 말고 개성 있는 자신의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하는데, 제자들 역시 허건의 필법과는 다른 각자의 개성을 보여주는 중견작가로 성장했다. 또한 각자 제자들을 양성하면서 화단에서 활발한 활동을 했다. 이와 함께 1957년 창립회원으로 참여한 ‘백양회’를 비롯한 단체전과 광주·전주·서울·제주 등 경향 각지에서 개인전 혹은 초대전을 통해 전시활동도 왕성하게 했다. 대한민국미술전람회(약칭 국전)에 추천작가·초대작가 심사위원을 역임했으며 말년에는 예술원 회원이 됐다. 전라남도 문화상(1956), 목포문화상(1960), 5·16민족상(1977) 등 많은 상도 수상했다. 산에 사네(山居) -나대경(羅大經)
산은 태고처럼 고요하고 해는 소년처럼 길기도 하네(山靜似太古 日長如小年) 내 집은 깊은 산 속에 있어 매년 봄이 가고 여름이 올 때면(余家深山之中 每春夏之交) 푸른 이끼 섬돌에 차오르고 떨어진 꽃이 길바닥에 가득하네(蒼蘚盈堦 落花滿徑) 문에는 두드리는 사람 없고 솔 그림자 들쑥날쑥한데(門無剝啄 松影參差) 새 소리 위 아래로 오르내릴 제 낮잠이 막 깊이 드네(禽聲上下 午睡初足) 돌아가 산골 샘물 긷고 솔가지 주어와 쓴 차를 끓여 마시네(旋汲山泉 拾松枝 煮苦茗啜之) 허건은 전통산수를 비롯한 고사인물, 화조, 영모, 풍속 등 다양한 소재를 다뤘다. 일본에서 유학한 동생 허림의 영향으로 채색 위주의 분위기 묘사에 뛰어난 작품을 제작하였으며, 광복 후에는 전통적인 산수화의 맛과 현실적 시각을 조화시키는 실경산수를 비롯해 소나무 그림들을 남겼다. ■김선일 화가의 특징 김선일 화가는 대학강단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면서 사숙에서 그룹의 지도 등 산수화, 사군자, 채색화 등을 가르치고 있는 집념의 화가로 알려져 있다. 대학 3년 때 동아미술제 공모전에 입선을 따내면서부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이때에 화가가 되기 위한 결심을 굳혔다고 한다. 그의 초기는 회화 양식과 작품의 경향들은 현대미술교육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한다. 사생주의에 바탕으로 한 현장중심의 실경 산수화, 자연을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화폭에 담는 아카데미즘, 단순한 재현의 의미 등을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그후 사군자를 비롯한 십군자 등 수묵기조의 산수화를 집중적으로 탐색하면서 그의 작품세계는 대상의 미시적인 관찰을 지양하는 화법으로 선회하였다. 즉 표현질의 진수만을 천착하려는 진경화법 등이 작가가 추구해 온 프로세스였다. 피사체로서의 대상은 표현과 방법론의 수단일 뿐, 작가의 정신주의에 내재한 새로운 표현 욕구들이 불붙듯 표현해 온 것이다. 김 화백이 발표해 온 천관산 테마의 그림들 즉 ‘천관산 영화봉’ ‘구룡봉 여름’ ‘천관산 달’ ‘천관 일출’ ‘구룡봉에서 본 천관산’ ‘천관산 천인봉’ ‘천관산 영위정 바위’ ‘천관산 포봉 여름’ ‘ 천관산 미타봉’ 등이 대표적인데, 이 작품들은 색, 점의 보드라운 보료 위해 도심의 건축양식들이 하나의 이미지로 형상을 이루고 있는 모습으로 ‘세상의 의인화’ 기법으로 조형화한 산수경의 표현주의 양식이었다. 이처럼 화면의 이원 구성과 함께 표현주의 양식과 추상적 이미지가 어우러진 형상들은 표현해내고 있는 것이 김선일의 작품세계로, 이러한 점 때문에 평자들은 그의 전도에 희망찬 내일의 가능성과 비전을 보고 있다. 최근 연작으로 발표하는 천관산 주제의 작품들은 김선일 화가의 어릴 적 추억이 사뭇 느껴지는 작품들이다. 특히 ‘천관산 봄’이란 작품은 고향의 앞 바다와 고향 근처에 작은 봉우리가 그려져 있으며 이것은 마치 자신의 본질로 귀향하는 모습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여주면서 우리들 어릴 적 집으로 향하는 향수를 느끼게 해준다. 마치 추억을 이야기 하는 듯한 화폭의 이 그림은 우리에게 좀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듯하여 더욱 친근감을 느끼게 된다. ■김선일-“한국성 지향, 인간중심의 예술 완성 추구” 작가 김선일은 자의식이 강한 한국 화단의 엘리트로 꼽힌다. 김남수 평론가는 “김선일 화가는…한국성을 지향하는 인간중심의 예술을 완성하려고 하는 인본주의를 성취하려고 하는 화가이다, 자연의 현상세계를 작가 나름의 내재율에 의한 재해석 등 또 다른 자연을 만들어가고 있는 독특한 화가다. 그의 예술은 새로운 한국예술 진로의 새로운 지평을 열 것으로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고 평가한다. 최병식 미술평론가(경희대 교수)도 “김선일 화가는 80년대 이후 새로이 등단하기 시작한 한국화단의 제5세대 작중 하나로, 도회의 일상이나 생활주변의 소재들을 과감하게 도입함으로서 과거 자연경에만 한정되었던 산수의 개념을 보다 더 종합적 시각으로 넓히게 되는 경향을 보여 주고 있다. 특히 주제나 소재뿐만 아니라 표현 방법이나 영역에 있어서도 종합적으로 관찰, 그림으로 승화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윤경희 씨(자인제노 큐레이터)도 “동양화의 테크닉은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캔버스를 쓰는 대신 한지를 씀으로서 수정이 불가능하다. …김선일 화가 그림에선 인생에는 연습이 없듯이 한 번에 획을 한지에 그을 때 마다 들어가는 작가의 땀과 열정을 완성된 그림에서 읽을 수 있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김선일 화가의 그림을 보면, 한 획에 정성을 쏟은 흔적, 마치 우리 자신이 참선을 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전해준다”고 평가 하고 있다. 김선일 화가는 “고향 장흥 천관산의 힘찬 용무(龍舞)를 춤추고 있는 두 그루의 소나무. 그 아래 짙푸른 옥색 봄 바다 위 날아오르는 바다 새들과 노닐며 설레는 가슴으로 화폭에 봄을 싣는다”며 “나의 그림은 어쩌면 천관산을 통해서 남도 특유의 현대적인 진경 산수화를 구현하는데 정신을 바쳤다고 할 수 있다. 나를 살찌우는 정신세계는 역시 천관산이 있는 고향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곳을 가는 것이다. 누구나 훌쩍 어느 봄날 고향을 향하듯이….”고 말했다. <김선일 화가 프로필> ∙세종대 대학원 졸업 ∙개인전 36회(인사아트프라자갤러리) ∙칭다오-국제 엑스포(칭다오) ∙아세아 국제 살롱전(중국연변미술관) ∙서울 국제 미술제(서울시립미술관) ∙뉴아트아트페어(이형아트센터)∙뉴아트 비전(알파갤러리) ∙중국.한국 작가 초대전,한국미술흐름초대전(미국 WESTEN GALLERY) ∙경향미술협회전(경향갤러리) ∙대한민국 현대미술 르네상스 초대전(단원미술관) ∙2010 상하이엑스포 한-중-일 초대전(상해미술관) ∙2010 : (시드니 호주 ROyal Hall Of Industries, Moore Park, Sydney,Australia.) ∙2011 : 미국 U.S L.A ART SHOP LA Convention Center ∙2011 : NEWARTSHOP ARTSHOW KIM SUN IL SOIO EXHIBITION(ALPHA GALLERY SEOUL KOREA) ∙2014 : KIAF.COEX(서울) ∎현재 : 미술협회 동방예술연구회 경향미술대전 심사위원, 한성백제미술대전심사, 서울미술협회 이사, 경향미술협회 이사 등 출처 : 정남진 장흥신문(http://www.jhtoday.net) East Wind. Korean Traditional. Paintings Academy. 한국의 한국화는 그 고졸한 멋에서 가히 한민족의 심성과 정신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창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도 잊고 있는 한국과 우리 문화의 본질을 외국인에게 소개한다는 것은 따라서 스스로의 자존을 위한 것일 수 있습니다. 또한 일련의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한국 대중들에게도 우리 그림과 마음을 다시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한국화 수강생 모집 우리의 그림인 한국화의 묘사와 기초 과정을 실습과 동양화론을 지도 합니다. 기초부터 창작에 이르기까지.초급.중급.고급 과정으로 지도하며 한국화 작가 지망생.취미생반은 저녁 시간에 직장인반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평일반: 오전반 10시-1시 까지. 오후반 2시-5시 토요일 특별반: 오전반 10시-1시 까지. 오후반 2시-5시 평일 저녁반; 저녁 7시-9시 까지 가장 한국적인 그림이 가장 세계적인 그림 입니다. 한번 배워 보세요 한국미를 새롭게 발견하게 될 것 입니다. * 한국화는 정신 함양과 마음수련 자기개발에 도움이 된다. * 기초부터 체계적으로 한국화를 하기 때문에 초심자도 누구나 가능하다. 지도 과목 산수화 사군자 채색화 석채화 수묵화 화조화 민화 문인화 한국화 기법 기초 한국화 한국화 이론 외국인 한국화반 한국화 미대 입시반 개인지도로 수업 합니다 수강 신청 서울 송파구 가락동 96-1 가락우성아파트 상가 3층 지하철 8호선,3호선 가락시장 전철역 3번 출구 가락우성아파트 상가 3층 02.406.6569. 010.7643.7355 김선일한국화화실 http://cafe.naver.com/sunil7355 김선일화실 뉴아트샵 www.newartshop.co.kr 김선일화실 http://www.youtube.com/watc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