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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 이어
허름한 다세대로 돌아가는 심호규가 심란한 표정으로
마루턱에 걸터앉았다.
'왜 하필 너와 내가 만났는지..안다면 제발 가르쳐줘..
왜 너를 만났는지? 알려줘?..왜 너를 만나게 되었는지..혹시 넌 아니?...?'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안는 호규였다.
'왜 너지?...왜..선생님인가요...?...그래. 선생님!..'
'..선생님 알려줘요..그래..선생님 알려줘요..가 낫겠어!...그래야 힘이 담길 것 같아..'
'가사가 달라지니..박자나 템포도 많이 엉뚱해질..!'
방안으로 뛰어들어 악보를 펼치고 기호를 쓰며 작곡에 몰두하는 심호규였다.
마구 휘갈긴 악보가 하나둘씩 떨어져 날렸다.
밝은 새벽. 야산을 오르는 심호규는 거의 거지같은 몰골이었다.
'알려줘요 선생님.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왜 잠을 못자는지. 왜 해가 뜨는지. 지금 내가 뭘 하려는 중인지도 몰라요'
좀비처럼 하우스앞까지 왔다가 펌프를 보고 놀라다가
물을 대야에 받아 세수를 하는 심호규였다.
"너네 집은 물이 안 나오냐? 기어이 얼어서 터졌냐?"
"모르겠어요. 몰라요. 밤 새다시피 하는 통에 생각할 사이도 없었거든요"
날자도 얼굴을 내밀었다.
"저 오늘 집에 다녀와야..아니 언제 돌아올지는 모르겠어요. 엄마아버지를 봐야..."
"아침이나 먹고 가" 날자가 한 말이었다.
"아니 생각없어요. 엄마가 맛있게 해줄 거니까...어쩌면...선생님이 아니라...엄마가 알지도..."
호규가 비척거리며 내려가는 것을 보는 부녀
"쟤가 지금 뭔 헛소리를 씨불거리는 거래?"
"지멋대로 휴가는 넘어간다쳐도 와서 기껏 세수만 하고 가다니...점점 불길한 예감이...“
6. 울내를 찾아
버스에서 내려 평범한 농촌으로 걸어가는 청년은 심호규였다. 쇼핑백에 선물인듯 싶은 포장물건 한두개가 담겨있는데 돌연 승용차가 옆에서 멈췄다.
차안에서 운전하던 해맑아보이는 25세가량의 처녀가 웃었다.
검은 선그라스를 쓴 완전 세련된 여자였는데...
"어쩐지 어쩐지 뒷모습이 꼭 너 같더라니..호규 맞지?"
"희..희자아냐?"
"얜 촌스럽게..캐시라고 불러. 나 개명했거든. 태워줄게 타"
"아냐 걸어갈거야. 먼저 가봐..우리집엔 알리지 말고"
"얘가? 간만에 만난 친구 호의를 개무시하네? 너 가수로 잘나가? 이제 스타라 이거야?"
"놀리지 마라..지금은 무명이지만..나도 머잖아 클 거니까. 바쁠텐데 먼저 가봐"
차가 미련없이 떠나고 호규가 중얼거렸다.
"학교때부터 똑똑하기로 소문이 나더니..대학 졸업전부터 게임회사에 특채되어 잘나가는 너와 어울릴 비위는 없다. 보나마나 나만 더 초라해질테니까"
집에 들어서며 엄마와 포옹하는 심호규모습. 털털한 아버지에게 선물 술 따라주는 모습.
김이 오르는 음식을 마구 먹는 모습.
팬 장작을 부억옆 창고에 들여주는 모습.
엄마가 기뻐 웃는 모습. 이부자리에서 엄마 품에 안긴 모습.
단란하게 아침먹는 호규와 부모모습. 비닐하우스서 아버지와 일하는 호규.
동네 옆의 한적한 제방길을 산책하는 호규.
'그래. 동네사람이 혹은 친구가 어떻게 보든 내가 떳떳하고 좋으면 그뿐이지. 엄마 아버진 내 몸 건강 이상은 바라지 않으시니까'
쾌청한 날. 고물상에 당도한 심호규였다.
"자알 헌다. 하루안에 올 줄 알았더니 사흘이나 개기다니.."
"바쁠 일도 없었잖아요. 그리고 저 여기 일꾼이 아니라 학생신분 아니었던가요?"
"학생이믄 더욱 무단 결석은 말아야지!"
"....혹시 나중에 수업료내라는 건 아니겠지요?"
"수업료는 몰라도 내 화장품 값은 생각해야돼!"
"화장한다고 차도가 생길 얼굴도 아니잖아..술값이라면 모를까"
"엄맘마 얘좀 봐? 왜이리 뻔뻔..능청스러워졌지?"
"누...누난 엄마도 없지만 난 엄마가 있잖아. 있었잖아요"
"저..점점?..아배요!!"
"한점도 틀림읎는 말인디 왜 엉뚱헌디다 신경질이냐?"
잡철을 분리하고 프라스틱을 나르고 비질로 청소를 하고 푸대에 걸터앉아 뭔가를 곰곰 고민하는 심호규의 하루였다. 한가해진 오후 하우스에 들르지도 않고 내려가는 호규.
다세대 방안에서도 진중히 골몰하는 호규가 침착히 전화를 했다.
"영애누나? 나 호구...요즘 어떻게 살아? 아, 아니..집안형편도 그렇고 본래 많이 힘들었잖아..친구들은 모두 진학해서 고등학교 다니는데...누나만 그 어린 나이에 공장에 취직해서 동생들 뒷바라지 하느라..오죽 고생이었겠어..나도 마찬가지..친구들은 전문대라도 다니는데...엉뚱한 꿈에 방황하느라...암튼 그래서 나는 누나 이해해..적어도 난 영애누나를 각별히 생각한단 말야..힘내 인생은 따뜻한 거야..나 평택에 있으니까 근방에 오면 꼭 전화해줘..그래..몸 잘챙겨..분명 좋은 날은 올거야..그래 안녕.."
전화를 끊고 잠시 멍청하던 호규가 정신을 차렸다.
'그래..선생님도 엄마도 모를 수...도 있지만..영애누나는 알지도..아니 분명 조금은 알거야!'
바쁘게 악보를 찾아 펼치는 심호규의 눈이 초롱해졌다.
'선생님..엄마..영애누나..날자누나...'
'나, 날 잊지 말아요..날 믿지 말아요..난 모르는 게 너무 많아요..'
쓰던 악보를 마구 구겨서 팽개치는 호규
'날..생각해..요..생각해줘요..?"
"아니, 너무 구차하고 상투적이야..아아 이제 와서 시공부를 따로 해야 되나?"
'비가 오도다-- 눈두 오두다----- 그칠 때도 오려나--?‘
"성은 김이요- 이름은 디에스-- 알파벳 약자로- 디에스이지요--"
라면을 끓이며 흥얼거리는 호규를 날자가 한심하게 쳐다봤다.
"여선생 칭찬에 뻑이 가서 가수 꿈을 가졌다는 것은 들었지만...넌..도대체.."
"말을 함부로 옮기다니 사장님도 이젠 못 믿겠네"
"아부지도 내 말엔 꼼짝 못한다는 걸 몰랐어? 아부지가 사장이라면 난 회장님이라는 것을 알아야지"
"...꼭 정선생님 칭찬만은 아니었어!"
"처음 이후 얼마나 지났는가 몰라도..어느날 새벽녁에 라디오에서 '울내'라는 노래가 흘러나왔었어. 가곡이라는데 멜로디나 가사가 죽였어. 몇 년 후 부턴가 그 노래를 찾으려고 온갖 짓을 다했는데..지금까지도 못 찾았지 뭐야"
"울내..라고?...제목은 그럴싸하네?"
"어쩌면..다큐가 아니라 비몽사몽중인 내게 스쳐간 영감이었을 수도...하여간 헤매던 와중...강원도 한계령에 김시습이 목메여 우는 냇물아..읊어 鳴川이라는 곳이 있고..서울 건천...마르내가 유성룡이 죽어 백성들이 모여 울음바다가 되어 哭川이라 불리기도 했고..충청 서산에도 전라 익산에도 울내가 있는 것으로 보아 사실은 전국 각지에 다 있을지도 몰라. 그리고 보령.."
"보령에 명천동이 있고 이문구가 그걸 호로 썼다는 거 아니냐"
어느새 이사장이 다가와 듣고는 뒤에서 하는 말이었다.
"그래요 울음내..이문구 작가까지 알다니 뜻밖이네요?!"
"뜻밖이라니 야가 날 무시하네? 죽은지 오래 되었지만 정말..아까운 작가였지"
"좋았다! 네 데뷔곡은 울내로 해야거따"
호규의 입이 딱 벌어지고 날자가 하품을 했다.
"이건 네 운명이고 팔자여. 울내..캬아.. 제목만 들어도 울컥하잖냐?"
"...그럴지도..울내..언젠가는..꼭.."
"아니 당장 데부곡이랑게!"
"언젠가 제주출신 여류시인 김병심씨가 '울내에게'란 시집을 출판.."
"시는 있을지 몰러도 노래는 전혀 없었어. 울낸 바로 널 위한 노래란 말여"
"마, 맞아요"
"어, 어쩌면..울내를 찾기 위해 그동안 그토록 헤맨 것인지도...울내란 우리가 구할 수 없는 내부에 존재한 그리움이라던가..아아~"
"가봐야겠어요. 악상이 떠오를 것도..."
"장소가 무슨 문제라고 유난떠냐"
소리에 놀란 호규가 잠시 후 말했다.
"계란 안 넣은 라면은 먹어치워야겠네요. 하여간 일반 하천보다는 작고 도랑보다는 큰 여울을 울내라고 부르는 것도 같아요"
"김소월이 개여울이란 시를 썼다만.."
"정미조가 부른 노래는 알아요..하지만 그보다 쉬우면서도...가슴을 저미는...후비는.."
"날자야. 뭔가 촉이 오는 것 같지 않냐?"
"푸훗, 하루에도 골백번 오는 촉 따위..믿느니.."
방안에서 진중해진 호규가 생각중이었다.
'그래..내 노래야..내 노래였어..내 노래로 만들어야만 돼! 왜 그걸 여태 몰랐던 것인지..?'
'이사장이..선생은 선생인가. 정말 기인..귀인일지도...'
후다닥 몸을 일으켜 오선지를 찾아 긁적이는 호규였다.
'몽상이었지만..처음에 매우 고음으로 시작되었던 것 같아..아으...점차 내려오다...끊길듯 하다가...평정을..찾는 식이었던듯 한데..가락은 가락은...'
몽롱한 눈빛..공허해지며..펜을 내려트렸다.
'막막하지만 천리길도 한걸음 부터라잖아. 시작은 한 셈이니..발상..착상을 했으니 반이상 이뤄진 거야..서둘 필요가...'
'아니 많이 늦었어..지금 한가할 처지가 아니잖아..호구야..힘들겠지만 해내야 돼!'
"국악?...국악인지 몰러도 7호 박스에 가서 위에 책을 걷어내면 많을겨"
창고안 여러 구역중 반평쯤 공간 뚜껑을 열고 책 백여권을 걷어내니 카세트테이프와 씨디등이 산더미 같이 쌓여있었다. 호규가 그것들을 하나하나 살피며 골라냈다.
'파손없이 습기도 안먹어 아직 들을만 할 것 같아..흥보가..? 밥딜런..? 춘향가..별별 노래..영화도 많고...이건 버릴 것이 하나도 없잖아'
다시 막막해지는 태도가 되었다.
'그래..내 창고 수장고..서재였어..천리길도 한걸음부터'
'책은 또 뭐야? 왜 폐지로 처분 않고 여기에 모아 썩히는 거야?'
책을 살펴보다 눈이 빛나지만 이내 막연해지는 눈.
점심을 먹는 중이었다.
"노래 책. 다 듣고 읽었지만 모두 잊어부럿어. 까먹어번졌다고.."
"...용광로의 쇳물처럼 우러나오는 중이겠지요"
"...너 정말 학생같아졌다?"
"저기요...맨 처음 최고음으로 시작되는 노래가 있는지요? 보통은 기승전결처럼 장작에 화력을 더하듯 하잖아요...헌데 거꾸로..폭발로 시작....."
"빅뱅이 그렇잖아"
날자를 돌아본 호규가 손뼉을 쳤다.
"바로 그거야! 빅뱅후에 파동 잔물결과 같은 가락 템포.."
"일본..좀 오래된 가수인데..비슷한 애가 있어.."
"서양에도 여럿인디..."
"이, 이름이 중요해요. 인터넷 검색하면 아주 쉬울 텐데.."
"이 세상에 액기스는 읎어. 원석을 가공제련해야만 물건이 되는겨..동요에도 영점일프로 깃들었을 수도 있단 약이여. 모두 들어보고 읽어봐.."
"그 많은 것들을 어느 세월에요?!"
호규가 부녀를 이리저리보며 말을 짜냈다.
"누,누난 몰라도 선생이라면 올바른..선명한 지도를..해줘야 하지 않을지..."
"틀림읎는 말이지만 교수가 유치원생에게 뭘 가르칠 수 있단 말이냐?"
"....그도 그렇네요...죄송합니다. 선생님. 서재까지 주셨는데...읽어달라고 투정부린 셈이니.."
잠시 조용해졌는데
"쫌전에 말야. 누난 몰라도라니"
"저가 좀 흥분..급해서요 일단 넘어가지요 회장님"
하고는 밖으로 나가버리는 호규에 어이 없어지는 표정의 부녀였다.
"호장님..쟈가 역시 싸가지는 있쟈? 키키큭큭"
날자가 고통스레 머리를 쥐어뜯었다.
"아, 안 그래도 머리 뽀개지는디..갈수록“
.....계속....
대략 구성을 말하자면
7,80년대에 시골에서 흙수저 젊은이들이 대거 도시로 편입되어 민주한국과 선진한국을 일구어냈지요.
...공돌이 공순이로 비하당하면서..ㅜ
그로부터 20년후인 오늘날은 과연 어떤가요?
여전히 그저 오로지 서울로서울로 도시로 흡수되어 시골은 인구가 줄어들고 소멸하는 중이지요.
물론 나라전체가 신생아 출생은 물론 인구가 줄어들어 난리지만...
따라서 이 소설에서 서울이 배경으로 나오는 경우는 일체 없습니다.
지방 중소도시의 좌절한 청춘들의 몸부림이랄지...
주류가 못되는 마이너 무명연예인들의 애환이랄지...
* 좀 쉬어선지 대명바꾸기도 잘 모르겠네요.
'도라온 잠파노'로 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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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도라온 장파노님
중편제 5 잘 읽었습니다
추천곡 개여울도 잘듣고
갑니다
저녁 즐겁게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