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강. 수필의 서두
1. 서두(書頭)의 중요성
冒頭, 虛頭라고도 일컫는 서두의 어의는 대개 발단(opening), 시작(begining)의 개념으로 통한다. 비교적 짧은 형식의 수필에서의 서두가 차지하는 비중은 起承轉結의 ‘起’에 해당하는 순차적인 지위 이상의 格을 갖는다. 특히 주제의 核을 서두부에 장전하는 두괄식 구성의 경우는 ‘起’가 아니라 오히려 ‘結’에 해당하는 부위로서, 그 소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막중하다.
육상경기의 출발점과도 같은 것이 글의 서두이고 보면, 단거리 경주에 해당하는 수필의 서두는 그 글의 성패를 좌우하는 운명적인 부위라고 할 수 있다. 소설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수필에서의 서두는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첫인상’이요, 작가의 입장에서 보면 ‘일기예보’와도 같은 것이다. 예보란 전개될 여러 사상의 맥을 중앙 집결시킴으로써 가능한 유추작용이다. 글에 있어서도 동일하다. 단문이든 장문이든 서두는 논고의 내용을 귀납적으로 집약시키는 예시적인 존재다. 일기예보가 빗나갔을 때의 실망감과 허탈감은 글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다.
수필가 한흑구(1900~1979)는 수필 한 편을 쓰는데 5년(나무), 3년(보리)이 걸렸다고 고백했다. 물론 제목을 정해놓고 대상을 관찰하는데 긴 세월을 요하기도 했겠지만, 어떻게 시작할까를 오래 생각하고, 결국 그의 작품 <나무>에서 그 글의 마무리 문장인 “나는 나무를 사랑한다.”와 글자가 똑같은 문장으로 <나무>의 서두를 썼기 때문이다. 수필가 김진섭의 <<文章私談>에서 “문장의 道는 發端의 藝術이다.”라고 했고, 러시아의 문호 안톤 체홉(1860~1904)도 “대부분의 작가가 소설에서 실패하는 것은 서두와 결말에 기인한다.”고 했다.
2. 서두의 여러 유형
1) 표제(標題)와 연관된 서두
표제설정의 이유나 그 목적을 설명하거나 풀이해가는 방법이다. 이런 서두는 독자가 첫머리만 읽고도 그 내용을 어느 정도 짐작하게 되므로 작자의 솔직성에 일단 친근감을 갖게 한다. 어떤 사물의 특성이나 본질을 관조함으로써 주제의식을 형상화하고자 할 때의 적절한 서두라 하겠다. 다만 맑은 물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서 기대감이나 궁금증을 덜 하게 하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이때에 필요한 서두의 문장은 보다 간결하고 선명해야 효과적이다.
예문)
나무는 덕을 가졌다. 나무는 주어진 분수에 만족할 줄 안다. 나무는 태어난 것을 탓하지 아니하고, 왜 여기 놓이고 저기 놓이지 않았는가를 말하지 아니한다.
- 이양하 <나무>의 서두 -
보리. 너는 차가운 땅속에서 온 겨울을 자라왔다.
- 한흑구 <보리>의 서두 -
2) 중심사상의 핵을 압축한 서두
수필은 ‘단 한 마디’의 문학이다. 길든 짧든 그 한 마디를 위해 씌어져야 하고 , 그 한 마디로 독자의 마음에 파문(감동)을 일으켜야 한다. 그래서 수필의 서두는 때로 그 ‘한 마디’의 예시나 예보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비유나 관조로 주제의식을 형상화하고자 할 때는 더욱 그러하다.
예문)
쌀은 바깥 농사요, 보리는 안 농사다. 쌀은 옥으로 깎아 도회로 보내고, 보리는 노부모가 거칠게 삭힌다.
- 이동주 <蝴蝶夫君>의 서두 -
세상에 가장 가련한 것은 먹지 일하고도 먹지 못하는 것이요, 그 대신 가장 가증한 것은 놀고도 잘 먹는 것이다. 인간의 온갖 불행과 눈물이 반 이상이 여기에 연유함이라 해도 틀림이 없을 것이다.
- 박종화 <陶河와 靑莊>의 서두 -
먹을 만큼 살게 되면 지난날의 가난을 잊어버리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인가보다. 가난은 결코 환영할 것은 못 되나, 빨리 잊을수록 좋은 것인지도 모른다.
- 김소운 <가난한 날의 幸福>의 서두 -
3) 분위기나 상황, 행위로 시작하는 서두
수필을 분위기의 문학이라고도 한다. 그렇다고 기분이나 분위기가 수필의 본질이거나 속성은 아니지만, 묘사나 서술, 또는 행위나 사건의 전개가 가능하지 않은(그럴 필요가 없는) 수필로서는 주제의 형상화를 위한 ‘상황의 통일이나 일체감’, 즉 분위기의 조성은 필연적인 것이다. 특히 관념이나 의식세계를 주제로 하는 수필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예문)
댁에 매화가 구름같이 피었더군요. 가난한 살림도 때로는 운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 수묵빛깔로 퇴색해버린 장지도배에 스며드는 묵흔처럼 어렴풋이 한두 개씩 살이 나타나는 완두창 위로 어쩌면 그렇게도 소담스런 꽃송이들이 소복한 부인네처럼 그렇게도 고요하게 필 수가 있겠습니까. - 김용준 <매화>의 서두 -
저녁을 먹고 나니 퍼뜩퍼뜩 눈발이 날린다. 나는 갑자기 나가고 싶은 유혹에 눌린다. 목도리를 머리까지 눌러쓰고 기어이 나서고야 말았다.
- 노천명 <雪夜 散筆>의 서두 -
4) 인용구로 시작하는 서두
서두부에 명언이나 명구, 권위 있는 사람의 학설이나 주장을 인용하는 방법이다. 이런 서두의 문장을 대하게 되면, 독자는 우선 글에 대한 신뢰감을 갖게 되어 거부감 없이 내용에 접하게 된다. 교훈성이 짙거나 지식의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내용일수록 흔히 시도하는 서두의 일종이다. 자칫 목적성이 지나쳐 그 강도가 높아지면 오히려 거부감을 유발하여 독자의 공감을 잃게 되는 위험성도 있다.
예문)
괴테의 시 가운데 <앉은뱅이꽃의 노래>라는 시가 있다. 어느 날 들에 핀 한 떨기의 조그만 앉은뱅이꽃이 양의 젖을 짜는 순진무구한 시골 처녀의 발에 짓밟혀서 시들어버리고 만다. 그러나 앉은뱅이꽃은 조금도 그것을 서러워하지 않는다. 추잡하고 못된 사내 녀석의 손에 무참히 꺾이우지 않고 맑고 깨끗한 처녀에게 밟혔기에 꽃으로 태어났던 보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 안병욱 <행복의 메타포>의 서두 -
“사람은 생각하는 갈대다”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갈대라고 하는 것은 아마 약하다는 뜻을 나타낸 것이 아닌가 한다. - 이희승 <독서와 인생>의 서두 -
5) 때와 장소, 날씨 등의 제시로 시작하는 서두
때와 장소, 날씨 등을 서두에 두는 것은 글의 주제와는 그리 깊은 관계는 적다하겠으나 내용의 한계성을 명시하는 것으로, 독자에게는 강한 인상을 준다. 호기심과 기대감을 유발하기도 한다.
예문)
9월 2일 오후 한 시. 전주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가 서울 교외를 벗어나자 자연은 갑자기 신선하고 광활한 느낌을 준다.
- 이창배 <全州初訪>의 서두 -
벌써 사십 년 전이다. 내가 세간 난 지 얼마 안 돼서 의정부에 내려가 살 때다.
- 윤오영 <방망이 노인>의 서두 -
6) 인칭대명사로 시작하는 서두
이 방법은 화자가 누구인가를, 내용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솔직히 앞에 내세움으로써 독자에의 신뢰감과 친화감을 유도하는 방법이다.
예문)
나는 그믐달을 사랑한다. 그믐달은 너무 요염하여 감히 손을 댈 수가 없고, 말을 붙일 수가 없이 깜찍하게 어여쁜 계집 같은 달인 동시에, 가슴 저리고 쓰리도록 가련한 달이다.
- 나도향 <그믐달>의 서두 -
어느 때부터인가 나는 메모에 집착하기 시작하여 오늘에 와서는 잠시라도 이 메모를 버리고 살 수 없는, 실로 한 메모광이 되고 말았다.
- 이하윤 <메모광>의 서두 -
3. 서두의 요령
천 리 물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한다. 그 한 걸음이 서쪽을 향하면 서해로 가고, 동쪽을 향하면 동해로 간다. 글의 한 걸음도 예외가 아니다. 서두가 밝으면 밝은 글이 되고, 서두가 어두우면 어두운 글이 된다. 15매 내외의 짧은 글인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2,3매 정도의 앞부분은 한 숨에 써졌지만, 그 뒤가 막히고 끊겨 말이 이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이 경우, 대개는 글의 서두가 잘못 앉았을 때다. 중간부터 말미에 가야 할 문장이 서둘러 앞에 나왔거나 숫제 빠졌어야 할 문장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수필의 서두는 그 글의 성패를 좌우하는 운명적 존재이기도 하다.
1) 그 글에서의 서두는 그 한 문장뿐이다
플로베르 “一物一語” - 그 한 문장을 찾을 일이다.
2) 중심사상을 보다 구체화한다.
수필은 “누에의 입에서 나오는 液이 고치를 만들 듯이 써지는 것”이라면 서두야말로 ‘그 고치에 달라붙어 고착되어 있는 실 끝을 찾는 일’이다. 석고처럼 응고된 고치에서 실 끝을 찾는 일이란 그리 쉬운 게 아니다. 고치에서 실을 뽑으려면 물과 함께 솥에 넣고 오랜 시간 푹 삶아야 한다. 삶다보면, 어느 순간 ‘나 여기 있소’ 하고 실 끝이 몸체에서 풀려나와 하느적 거린다. 이를테면 그게 서두다.
소재를 주제화하고, 그 주제를 다시 구체화하는 고뇌의 과정을 ‘삶는’ 것에 비유한다면, ‘실 끝’과 ‘서두’와의 관계도 분명해진다. 글의 핵심이 되는 중심사상을 보다 구체화한다면 서두는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것이다.
3) 비유·암시적인 문장이 효과적이다.
수필은 대우적인 문학이면서도 직접성을 피하여 완곡하게 우회하는 은근성을 체질로 한다. 그건 보다 효과적으로 독자의 이해와 공감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순차식, 단순구성에서는 대개 완만하거나 겸손한 문장으로 출발하여 말미에 가서 그 주제의 핵을 일반화하는 것이 보통이다.
4) 난해하거나 추상적인 문장은 피하는 게 좋다.
수필의 서두는 그 글의 작가가 아니라 그 글의 말미나 주제가 써준다.
- 鮮明性 · 暗示性
수필감상
강가에서
하동 포구길을 걷는데 둑길 경사면에 노란 코스모스들이 지천으로 피어있었다. 처음 보는 그 작은 꽃들이 일제히 나를 반기며 웃고 있었다. 내 마음은 기쁨으로 넘쳤다. 어느 누가 나를 이리 반기랴. 그들은 깡총깡총 뛰면서 나를 반기는 듯했다.
바람이 불었다. 나는 그 꽃밭에 오래 머무를 수 없었다. 나는 또 걸어야 할 사람이다. 바람이 불어도 그들의 시선은 변함이 없었다. 그들은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곧 돌아오리라. 해지기 전에 다시 돌아오리라.
나는 섬진강을 바라보며 걸었다. 섬진강의 풀섬과 그 풀섬의 하얀 모래톱을 보면서도 마음속에 그 노란 꽃들을 품고 걸었다. 해질 무렵이 되자 발걸음을 돌이켰다. 잿빛 두루미도 강물 위에서 길게 선회했다. 몸은 지쳤지만, 그 꽃들을 다시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발걸음만은 가벼웠다.
강둑이 멀리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꽃들은 여전히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꽃들은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무슨 슬픔 때문인지 나를 외면하고 있었다. 강둑은 길지 않았고 그들과 나의 해후는 너무 짧았다. 꽃도 사람도 시들 때를 아는지, 우리는 흐르는 강가에서 조용히 헤어졌다.
2. 풋감
시골에서 방 한 칸을 얻어 생활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사람에 시달려 불행하다는 생각과 혼자 살면 좀 행복해지지 않을까 하는 변변찮은 생각들을 하고 있을 때였다.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뭔가가 마당에 쿵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누가 돌을 던졌을까? 누가 담장 너머에서 돌을 던졌다면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져 데구르르 구르는 소리도 들렸을 텐데 그런 소리는 아니었다. 누가 집어 던질 수 없을 만큼 훨씬 크고 무겁고 둔중한 것이 떨어지는 소리였다. 그렇다고 누가 야밤에 남의 집 마당에 쇠지레를 때려박을 일도 없을 것이다.
분명히 방금 그 소리는 하늘에서 지심地心을 향해 직선으로 떨어지는 소리였다. 하늘에서 도대체 무엇이 떨어졌을까? 붕새 정도의 새가 맨땅에 헤딩한다면 저 정도 소리가 날까? 그러나 새가 저렇게 추락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운석일까? 운석이라면 순간적이나마 쉿 하는 마찰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 같은 사람이 사는 마당에 벼락이 떨어지면 떨어졌지 하늘의 별이 떨어질 리는 만무할 것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잠자리에서 일어나 그 소리를 확인해야만 했었다. 방문을 여니 사위는 괴괴한 중에 밤하늘은 오늘따라 맑게 개어 마치 딴 세상처럼 찬란한 별나라가 펼쳐져 있었다. 나는 툇마루에 서서 그 빛나는 밤하늘을 한참을 쳐다보았다. 그 별빛에 홀려 한밤중에 깨어나 밖을 살피고 있는 연유를 잠시나마 잊을 지경이었다. 이윽고 시선을 돌리자 마당귀에 무언가 어둑신한 그림자가 서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둠에 묻혀있는 감나무였다. 나는 불현듯 그 소리의 정체를 깨닫게 되었다. 마당이나 함석 지붕 위로 떨어지던 풋감 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난 것이다. 갓난이의 주먹보다 작은 풋감이 떨어진다고 그렇게 큰 소리가 나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문을 닫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으나 밤새워 계속 떨어지는 낙과 소리가 실제로 들렸는지 꿈에서 들렸는지 알 수가 없었으며 그때마다 쿵쿵 심장 뛰는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필시 그 풋감은 저절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감나무가 고의로 떨어뜨렸을 것이다. 한 밤의 어둠 속에서 존재의 심연을 향하여. 대지의 깊은 침묵을 향하여..... 살아있어서 과연 행복한가를 물으며.
[출처] 5강. 수필의 서두|작성자 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