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길 이어걷기 마지막 날,
14코스 초희길 11km를 걷는 날입니다.
14코스 '초희길'의 '초희'는 허날설헌의 본명을 딴 이름입니다.
강릉 도심 중간중간 낮은 야산들을 이어 바다까지 숲길이 이어지는 길로
'초희길'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기대 이상의 만족스런 아름다운 길입니다.
원래 정 코스로 걸으면, 시청주차장에서~경포해변 방향입니다만,
우리는 아침 식사 장소가 경포해변 인근 초당마을이고, 걷기 후 고속버스 이동을 고려하여
역방향으로 경포해변에서 -> 시청주차장(고속버스터미널) 방향으로 걷기로 합니다.
요즘 강릉에는 초당 순두부에서 변화된 짬뽕 순두부가 유행이라고 합니다.
오늘 아침은 짬뽕순두부로 특허까지 받았다는 '동화가든'입니다.
짬뽕 국물에 순두부를 넣었다고 해야 될거 같습니다.
진한 국물 맛에 홍합이 들어가서 구수하기도 하고 얼근한게 공기밥을 말아서 먹으니
딱 해장하는 기분입니다.
가격은 7천원입니다.
동화가든에서 경포해변까지 걸어서 오늘 출발 지점 경포해변에서 인증샷 찍고 출발입니다.
어제 토요일은 제주도에 가시느라 합류하지 못하신 바우길의 산두꺼비님과 황춘영님이
오늘도 함께 길을 안내해 주셨습니다.
산두꺼비님, 볼펜님 벌써 앞장 서서 가시고, 이로님 사진 찍으시다 빠지시고,
저는 여기서 사진 찍고 있고..ㅎㅎ....이렇게 오늘은 모두 12분이 함께 걸음을 잇습니다.^^
환타님도 단단히 준비하시고...
오늘도 바람이 2m로 불고 있지만, 기온이 그리 낮지 않아 상쾌하게 걸을 수 있는 좋은 날입니다.
잘하면 구름도 이쁘게 모여 줄거 같은데, 예쁜 하늘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출~~발~~ 입니다.^^
강문해변을 지납니다.
해변 곳곳에 이런 설치물들이 있어 잠깐 씩 변화를 느껴 봅니다.
타비님, 보니님 출장 스케쥴에 걸리셔서 대타 만들어 놓고 오시느라 애 많이 쓰셨습니다.
함께 해서 즐겁고 유쾌했습니다.^^
방파제도 사진틀 안으로 딱~ 들어오는데요...^^
멋진 강문교 솟대다리를 건넙니다.
경포호....
경호교를 건너,
허균 허난설헌 기념관을 향해...
중간 철새 관망지에서 서너 마리 철새도 조망해 보고...
퍼즐 짜마추기 그림 같던 푸른 하늘, 흰구름에 한 폭의 그림같은 잔잔한 호수도 담고...
울창한 벚나무 도열을 받으며
봄날 벚꽃으로 화려하게 물들 길을 그려봅니다.
오늘은 파란 하늘에 흰구름이 넓게 퍼져 있습니다.
푸르른 소나무, 경포호, 흰눈으로 가린 백두대간에 푸른 하늘....
웅장하면서도 고요합니다.
강릉바우길 14코스와 해파랑길 39코스가 중첩되는 곳
허난설헌 생가의 멋진 '백 년 이음 숲' 도착...
여러 번 들린 이 곳은 다른 때는 소나무숲에 정신이 팔려 생가는 슬쩍 인증샷만 찍고 지나쳤는데,
출발 전 흩어본 요절한 불운의 천재 시인 허초희에 마음이 끌려
오늘은 마음 먹고 둘러볼 요량을 하였습니다만.....
오늘 따라 산두꺼비님께서는 이 곳을 그냥 패스하시네요..ㅠㅠㅠ
그래도 오늘은 이 곳에 자꾸 마음이 머물러 잠시라도 둘러볼 시간을 요청드려 봅니다..^^;;
시대를 앞서 살았기에 한과 아픔을 가슴에 품고 27세의 짦은 인생을 살았던 허난설헌, 홍초희가
걸었을 이 솔밭을 잠시지만 걸으며 그녀의 불운했던 삶과 고결한 시심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타비님, 환타님도 대숲앞에서 묵직한(^^) 폼을 잡아 주시네요^^
이 집은 조선중기(16세기) 초당 허엽이 이 곳 초당동에 기거하였으며,
여기서 조선시대 유명한 그의 딸 세째 '난설헌 허초희'와
그의 아들 다섯 째 홍길동의 저자 [교산 허균] 이 태어난 생가입니다.
당대의 문장가로 불린 아버지 허엽과 아들 허성, 아들 허봉, 허초희, 허균을 포함해
'허 씨 5문장가'로 불리기도 합니다.
마을이 번성하게 되어 허엽선생의 호를 붙여 '초당'이라 칭하게 되었고,
그가 처음으로 바닷물을 이용해 두부를 만들기 시작하자 그 전통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으며,
이 지역에서 만들어진 두부도 초당의 호를 따라 초당순두부로 불리게 되었다 합니다.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의 저자이며 조선 중기 문인이자 혁명가인 허균의 영정입니다.
신분제도와 서얼 차별에 항거하려고 서자와 불만하는 계층을 규합하여 혁명을 계획하다 발각되어
반역을 도모하려했다는 밀고로 능지처참되었습니다.(1569~1618년)
그 까닭에 얼굴없는 역사 인물로 오랫 동안 가려지다가 표준영정을 제작,
2014년 9월 '교산 허균 문화제' 때 봉안식이 있었네요.
집의 구조는 ㅁ자형의 본채와 - 자형의 행랑채로 구분됩니다.
본채는 화강암을 잘 다듬은 장대석을 사용하여 기단을 쌓았고
대문을 사이에 두고 안채와 사랑채로 나뉘며, 그 사이에 광이 있습니다.
오늘은 여류 천재시인 허난설헌이 아닌 '허초희'라는 여인에게 관심이 갑니다.
그녀가 글을 배우고, 시를 지었을 방들과 뜰과 후원을 거닐어 봅니다.
장차 자신의 삶이 그리 아프고 모질거라는 예감을 했을까...
햇살이 따뜻하게 파고드는 툇마루에 앉아 보니님도 다소곳이 미소를 지으시네요...^^
허초희는 탁월한 감각으로 조선과 중국, 일본에서까지 천재성을 인정받았으며,
8세 때부터 신선세계인 상상의 궁궐인 광한전 백옥루의 상량식에 자신이 초대되었다고 상상하고 쓴
'광한전백옥루상량문'이라는 글을 써서 세인을 놀라게 하였다합니다.
그러나 그녀의 삶은 불행했습니다.
15세의 나이에 김성립과 결혼했으나 원만하지 못 했으며, 연이어 딸과 아들을 모두 잃고,
오빠 허봉이 귀양을 가고, 동생 허균은 귀양 갔다가 후에 능지처참을 당하는 불행한 겪었습니다.
그녀는 불행한 자신의 처지를 시로 달래며 지냈는데,
27세가 되던 해에 아무런 병도 없었는데 어느 날 몸을 씻고 옷을 갈아 입은 후
유언과 같은 한 수의 시를 남겼고, 향년 27세로 짧은 생을 마감했으나, 사인은 미상.
“今年乃三九之數 (금년이 바로 3·9수에 해당되니),
今日霜墮紅 (오늘 연꽃이 서리에 맞아 붉게 되었다).“
죽기 전에 난설헌은 작품을 모두 불에 태웠으나 허균이 보관한 시 213수가 전하며,
그녀의 시는 봉건적 현실을 초월한 도가사상의 신선시와 삶의 고민을 드러내는 작품이랍니다.
허난설헌, 허초희가 죽으며 한스러운 3가지를 말했는데,
*작은 나라 조선에서 태어난 것과 *남존여비 사상이 뚜렷한 시대에 여성으로 태어난 것
*그리고 김성림의 처가 된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빛바랜 툇마루에도 잠시 걸터 앉아 봅니다.
죽지사 3
난설헌 허 초 희
우리집은 강릉 땅 강가에 있어
문 앞 흐르는 물에서 비단옷을 빨았지요
아침에 목란배를 한가히 강가에 매어 두고는
짝 지어 나는 원앙새를 부럽게 보았어요
여자가 아닌 여성이길를 원했던 여인....
그녀를 측은히 기려 봅니다.....
수 많은 이들의 발길이 오갔을 댓돌도 유심히 바라 봅니다.
허난설헌(許蘭雪軒, 1563년~1589년 3월 19일)
"초당 허엽의 딸로 본명은 초희(楚姬), 호는 난설헌(蘭雪軒)으로, 일찍부터 신동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글재주가 뛰어났으며 용모 또한 아름다웠고 천품이 뛰어났다
어릴 때 오빠와 동생이 공부할 때 어깨너머로 글을 배웠지만, 딸의 재주를 아낀 허엽은
직접 글을 가르치고 서예와 그림도 가르쳤다
15세에 결혼했으나, 그녀의 시와 글재주가 뛰어나자 남편은 그녀를 기피했고
시어머니의 구박도 계속되었다(펌)"
남편의 냉대, 시어머니의 학대, 18세에 아버지 허엽의 객사, 이어 어린 아들과 딸을 병으로 잃는
슬픔을 당한 뒤, 그때 그녀가 남긴 시가 있어 옮겨 봅니다.
아들딸 여의고서
난설헌 허 초 희
지난해 귀여운 딸애 여의고
올해는 사랑스런 아들 잃다니
서러워라 서러워라 광릉땅이여
두 무덤 나란히 앞에 있구나
사시나무 가지엔 쓸쓸한 바람
도깨비불 무덤에 어리비치네
소지 올려 너희들 넋을 부르며
무덤에 냉수를 부어놓으니
알고말고 너희 넋이야
밤마다 서로서로 얼려 놀테지
아무리 아해를 가졌다한들
이 또한 잘 자라길 바라겠는가
부질없이 황대사 읊조리며서
애끊는 피눈물에 목이 메인다
허균, 난설헌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던 '홍길동' 관련 서적들...
허난설헌 생가터에서 혼자 이리저리 둘러보며 분위기에 푹 빠졌던 관계로
일행과 쳐져 부지런히 뒤를 좇으니 행복아님께서 갈림길에서 기다리고 계시네요.
반갑고 감사했습니다.^^
이제부터 초희길의 진수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어쩜 도심 속에 그렇게 요리조리 산길과 산길을 잘도 연결해 놓았을까요?
강릉 어디서나 푸르름으로 만났던 소나무가 내려다보고 있는 시선을 따라 경포호를 내려다 봅니다.
여기는 춘갑봉 가기 전 이름도 모르는 작은 봉우리입니다.
말끔한 소나무숲이 정갈하기 그지없이 소나무의 기상을 보는 듯 합니다.
구름이 조금씩 모양을 만드는 모습도 자꾸 바라보게 됩니다.
소동산봉수대입니다.
봉수대 설명이 상세히 되어 있네요.
요약하면,
- 옛날에 국경지역 군사정세를 중앙에 급히 보고하는 통신수단으로 파발과 봉수가 있었고
파발에는 말을 이용하는 '기발'과 사람의 도보에 의한 '보발'이 있고, 봉수는 햇불과 연기를 이용했다
- 봉수제도는 고대부터 시행되었으며, 높은 산봉우리에 설치하여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횃불로
외적의 침입, 난리 등 나라의 위급한 소식을 중앙에 전했으며, 밤에만 횃불을 피우던 봉화가
낮에 올리는 연기까지 포함해서 봉화로 통칭되었다.
- 세종4년부터 봉수대 시설을 정비하기 시작해 조선 전기에는 650여 개의 봉수가 있었고
봉화는 전황에 따라 5구분법으로 각 봉수마다 5기가 있어, 평상시 한 줄기 1기, 적 출현 두 줄기,
적이 가까우면 세 줄기, 침입 네 줄기, 접전하면 다섯 줄기 5기로 신호하였다.
- 전국의 봉수는 경흥.동래.강계.의주.순천의 5개 봉수대를 기점으로 목멱산 5봉 봉수대로 집결.
제1봉/함경.강원도->아차산, 제2봉/경상도->광주 천림산, 제3봉/평안.황해도->무악산 동봉,
제4봉/편안.황해도의 해안->무악산 서봉, 제5봉/전라.충청도->개화산 봉수대로부터 각기 받았다.
소동산 봉수대는 원래 인근의 포함배수지가 설치되며 그곳에에 있던 것을 이리로 옮겨 왔답니다.
블루의 변주를 보는 것 같아...^^
산길을 걷다가 잠시 마을로 내려오기도 하고
차로를 걷는가 싶으면 ....
그 길은..
다음 산길을 걷기 위한 연결 역할을 할 뿐이더군요.
역방향으로 걸으니, 왼쪽으로는 강릉 시내를 보며 걷습니다.
아래 파란색 부분이 영동선 종점 강릉역이 있던 곳인데, 1월 15일 모두 허물어졌고
원주∼강릉 복선 철도건설과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위한 새 역사(驛舍)가 건립된다고 합니다.
건너편 보이는 산이 방금 전에 찻길을 통해 건너온 곳입니다.
14코스는 이렇게 찻길과 마을을 통과하며 산과 산이 계속 연이어지며 멋진 코스로 만들었더군요.
아래 강릉바우길 카페에서 떠 온 트랙 사진을 보시면 좀 더 실감이 나실 거 같습니다.
처음에는 춘갑봉, 무슨 고개 하며 이름을 외우다가 나중에 아예 포기해 버렸답니다.ㅎㅎ
이런 길이 산과 마을을 계속 연결하며 도심 한 복판을 가로질러 바다까지 이어집니다.
모선재....묘제를 준비하는 곳인가 봅니다.
강릉시립박물관도 잠시 들려봅니다.
다시 마을을 지나고,
그럼, 또 다시 산길이 나온다는 예보겠지요?...^^
역시나 또 다른 낮은 산을 오릅니다.
요즘 환타님 사진 찍으시는데, 필 받으신거 같습니다.
구름 찍고 무심히 돌아서다 뒤에서 포즈를 잡고 계시는 모습에 깜짝 놀랬드랩니다....ㅎ
이제는 이 길로 곧장 가면 종착 지점에 도달하려는가?
아닙니다요 보니님^^
아직 마지막 산길이 기다리고 있드래요~~ㅎㅎ
이리 오르락내리락 하다 보니 저만치 앞에 높다란 강릉시청 건물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오늘 걸음이 끝나는 거라는 신호지요.
이렇게 14코스를 재밌게 걷고 ,
오늘 걸음을 마치며,
또한 바우길 이어걷기를 마칩니다.
그간 처음 걸음부터 마지막까지 수고로움 마다 않으시고 길 안내를 해 주신 강릉바우길의
산두꺼비님(김재원) 깊은 감사를 드리며, 함께 해 주신 황춘영님께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아, 아직 후기 안끝났구요...ㅎㅎ......늦은 점심 먹으러 강릉에서 유명하다는 교동짬뽕 집으로 갑니다.
강릉을 오가며 몇 번 이 곳을 지날 때마다 늘 줄이 서 있는 것을 보았는데, 저희 팀도 2시가 넘었는데도
잠깐 줄을 서서 기다립니다.
자리 배정 받고 들어가 보니 크지 않은 작은 가게 안 한쪽 벽면이 이 댁 주인분의 정치적 성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랜 만에 보는 얼굴들이 반갑기도 한 면이 있습니다....
환타님, 록키님 빨간 앞치마가 한 10년은 더 젊게 보이게 하는 듯 합니다...ㅎㅎ
드뎌 짬봉 등장....
보기에는 다른 곳과 크게 차이를 못 느끼겠습니다.
국물맛이 진하고 칼칼한게 개운하게 맛나게 먹었습니다만,
왜 그리 유명해졌는지도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맛나게 먹었습니다...ㅎㅎ
강릉 바우길에서 즐거웠던 시간이 끝난다고 생각하니 많이 서운한 마음입니다.
앞으로 어느 길에서 또 즐거운 걸음이 이어지겠지만, 그 동안 정들었던 산두꺼비님, 춘영님,
편안했던 동아호텔, 없는 브랜드 없이 즐비하던 스포츠 매장 거리, 범핀, 올드락카페 등등등..
모두 그리울거 같습니다.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행복했습니다.^^.................꾸벅^^
첫댓글 발도행이 토로님 없으면 어찌될까?
이번 바우길 더 애쓰셨기에 감사에 감사를.. 늘 하시다보니 우리는 너무나 당연히 여기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자세한 설명을 깃들인 후기까지 남기시니 고맙습니다. 바우길 전 코스를 빠짐없이 다 챙기셨기에 좋은 이어걷기로 남았고
사소한 일에도 충실하셨기에 무사히
마치게 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
긴 여정에 수고 많으셨기에 감사의 마음 다시금 전합니다.
넘 좋은길을 조은사람들과 함께해서 행복 했답니다.
토로님의 희생,봉사로 편안한 발걸음을 할수 있었네요~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자고 먹는 걸 비롯하여 모든 면에서 세세한 뒷바라지를 열심히, 내일같이 준비해 주셨던 토로님에게 특별히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토로님이 계셔서 행복하고 즐거웠습니다.
장거리 이어걷기가 계속 이어질 지 어떨지 아직은 잘 모르겠으나, 지리산을 시작으로 소백산, 그리고 바우길까지 오랜 시간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앞으로도 여러 면에서 잘 부탁 드립니다.
허난설헌의 일생과 가족사에 대해 새롭게 공부했어요. 대충대충 막연하게만 알던 사실들을.
토로님의 후기를 볼때마다 감탄을 거듭합니다. 그 열정과 재능이 아깝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고---
덕분에 발도행에서 저는 보람과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되었으니 잘 된 일인가?
참 좋은 길이었죠? 소나무숲 산길, 산책길, 역사유물의 복습길, 약간의 오르막, 시내가 보이는 전망 좋은길, 미술관, 공원길등, 멋지게 올리시고 멋진 길 설명등 이제 언제 어디서 어떤길에서 이렇게 좋게 배울수가 있을가요? 고맙고 수고하셨습니다. 전코스를 도보마다 준비하여 주신 그 정성 고마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