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를 다듬는다. 한 켜씩 옷을
벗기는데 축축하면서도 미끌미끌한 촉감이 손가락을 감친다. 비명과 엉덩방아, 배추 잎을 내치는 동작이 찰나에 교차한다.
몇 호흡이 지났을까? 시르죽은
배추 잎이 조금씩 부풀더니 소란의 주범이 슬며시 고개를 내민다. 민달팽이다. 손가락 두 마디만 한 젤리나 양갱 같다. 그것도 관冠이라고 더듬이
꿑에 곡옥曲玉을 달았다.
아쉬우나마 플라스틱 상자를 거처로
내준다. 널따란 배추 잎을 깔고 상추도 두어 장 덤으로 넣는다. 쌉싸래한 상추가 입에 맞았던 걸까. 상추 잎을 종횡무진, 푸른 몇 줄을 끼적이는
중이다. 맞춤법도 띄어쓰기도 문장부호도 무시한 파격, 오체투지의 문장은 거침이 없다. 저처럼 몸을 던져 밥을 번 적 있던가. 행간에 숨은 은유가
자못 곡진하다.
가을 해가 녀석의 방 쪽으로
서서히 몸을 비튼다. 아직 해거름은 먼데 방 안엔 이른 어둠이 들었다. 커튼을 젖히자 왈칵 햇살이 쏟아진다. 오만상을 구기더니 모로 누우며 반쯤
몸을 접는다. 구부정한 등허리가 감각을 상실한 패각 같다. 어쩌면 녀석의 의식은 여태도 그 방에 기거 중인지 모른다.
고시원엔 고만고만한 방이
즐비했다. 폭이 좁고 길이가 턱없이 긴, 기형적인 구조였다. 앙상한 침대와 신문지만 한 옷장, 노트북과 책 한 권에도 엄살을 떠는 책상이 세간의
전부였다. 한 줌 볕과 바람마저 차단한 방 귀퉁이에 녀석이 웅크리고 있었다. 안색이 백지처럼 창백했다. 군내 풀풀 나는 김치와 곰팡이 꽃이
덕지덕지 핀 식빵, 반쯤 마시다 만 소주 병, 검고 축축한 비닐봉투 속 냄새들이 부풀고 부풀어 공용 냉장고가 터질 듯했다. 맨 앞에 녀석의
이름표를 붙인 찬통을 넣은 뒤 탈취제도 걸어두었다. 세상으로부터 섬처럼 밀려 생의 바닥에 이른 냄새들에 녀석이 익숙해질까
두려웠다.
생애 여덟 번째의 물오름달 아침,
두리반에 심심한 미역국이 올라왔다. 샛문 너머 홀쭉해진 엄마 옆에 얼굴이 작고 붉은 아기가 누워 있었다. 젖을 빠는 새, 머리를 감기거나 목욕을
시킬 때 손가락 마디에 엉기는 힘이 금강金剛보다 단단했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던 구호가 고무풍선처럼 부유하던 시절, 녀석은 엄마가 오
남매에게 준 마지막 선물이었다.
민달팽인 유유자적 새 집을 탐방
중이다. 상자 너머 세상은 관심 밖이라는 듯, 육억 년 전 지구별에 온 이래 뭍 가족의 일원이 된 건 천만 년 전쯤. 낮보다는 밤을, 햇살 쨍한
날보다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습성은 물나라를 향한 향수에서 발원했을 터. 달팽이나 우렁이, 다슬기 같은 사촌들은 그나마 집 한 채를 명의로
받았거늘, 제 한 몸 들일 패각조차 없는 원죄는 어디서 연유했을까? 불현듯 그의 전생이 궁금해진다.
녀석은 천생이 약골인 데다
소심했다. 봄이 막 부푸는 때 세상에 온 뱀띠가 아닌가. 스스로를 지키려면 천적의 뒤꿈치를 덥석 무는 법도 배워야 하거늘, 툭하면 또래에게 맞고
들어왔다. 어쩌다 고향을 찾으면 비실비실 뒷걸음질하며 집으로 내닫곤 했다. 더러 역정이 올라올 때마다 아기 적 손가락에 감치던 체온을 떠올렸다.
엄마 나이 마흔 한 살에 온 늦둥이가 아니던가. 나를 지탱하는 혈액이 녀석의 몸에도 흐른다는 걸 생각하면 가슴이 이내
뜨거워졌다.
그나마 녀석은 무탈하게
자라주었다. 제법 유수한 대학에 입학한 뒤 보충역이나마 국방의 의무도 마쳤다. 한 달여의 훈련을 마치고 온 날엔 한상 그득 어머니의 마음을
차려냈다. 가진 거라곤 몸뚱이뿐인 녀석이 모성마저 잊을까 두려웠다. 졸업 후 취직 대신 공부를 택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아직 희망은 창창하다고
생각했다.
고시원에 젊음을 저당한 채 십여
년이 흘렀다. 실체가 없는 꿈은 때론 고문 같은 것. 녀석은 점점 지쳐갔고 그를 향한 기대의 평수도 점차 좁아졌다. 시력이 급격히 퇴화하더니
눈빛마저 두툼한 렌즈 안으로 숨어 버렸다. 밤낮이 공존하는 한 평坪, 폐선처럼 정박해 있는 날이 늘면서 세상으로 통하는 문마다 꽁꽁 자물쇠를
걸었다.
어느 날, 녀석이 돌아왔다. 십여
년 전, 제 발로 나선 집을 자동차에 짐짝처럼 실린 채…. 악성빈혈이라고 했다. 헤모글로빈 수치가 기준치를 한참 밑돌았다. 줄담배와 폭음,
자포자기식의 체념이 시나브로 심신을 갉아먹고 있었던 게다.
민달팽이 같은 복족류服足類에겐
배가 곧 이동수단이다. 움직일 때마다 점액을 분비해야 마찰을 최소화할 수 있다. 생애 내내 점액에 덮여 살아야 하는 운명인 것이다. 게다 보석인
줄 알았던 눈은 겨우 명암만을 감지할 뿐, 몸 자체가 생체 시계였다. 깊이 젖어보지 않고 어찌 민달팽일 온전히 이해한다 할 수 있을까. 한 채의
집이라 여겼던 플라스틱 상자가 민달팽이에겐 감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밤이슬이 자욱한 공원에 민달팽일
내려놓는다. 슬그머니 V자를 내놓더니 느릿느릿 배를 밀기 시작한다. 낮보다 환한 밤, 우주율의 걸음엔 한 치의 머뭇거림이 없다. 풀섶으로,
맨땅을 가로질러 나무둥치로 기어 가더니 이내 어둠 속으로 스며든다. 가로등 아래 민달팽이가 지난 자리가 보석처럼 반짝거린다.
하루를 탁발해 하루를 사는
민달팽이에겐 하늘이 지붕이자 땅이 이불이었다. 패각의 짐을 벗는 순간 숲이, 온 우주가 한 채의 집으로 와 주었다. 머무르지 않으면 사라지지
않는다던가. 굼뜰지언정 정체하지 않으니 어찌 게으르다 하겠는가? 꼭 배추 잎 같은 납의衲衣 한 벌로 무장한 저 가볍고 당당한 보무라니!
민달팽이의 궤적이 지난날을 돋을새김한다.
녀석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
오해했었다. 한 번쯤 녀석의 마음으로 들어가 행간을 읽으려는 시도는커녕 희망을 남발했다. 더러 반찬을 해 나르는 것 외엔 뜨막했다. 십여 년째
어둠에 위리안치된 육신을 어느 한 날 땡볕으로 내몰았다. 너무 오래 녀석의 체온을 잊고 있었다.
바람이 몸을 뒤채자 갓 구운
비스킷처럼 나뭇잎이 바스락거린다. 비우고 비운 끝에야 비로소 소리를 갖춘, 낙엽들의 오케스트라가 자못 장엄하다. 십여 년만큼 길었을 하루, 막
영어囹圄에서 벗어난 민달팽이의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녀석의 생체리듬 또한 천생이
느림에 맞춰져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더 나아가고 커 가기 위해 웅크리고 있던 건지도, 유난히 긴 겨울잠에 든 거란 생각도 든다. 녀석의
속도를 인정하기로 하니 마음이 한결 가붓하다.
녀석의 창문이 오랜만에 불빛을
달았다. 언젠가 녀석 또한 자신만의 카덴차를 뽑는 날이 올 것이다. 살포시 배추 잎 같은 이불을 꺼내 녀석의 축축한 등에
덮어준다.
한 채의 객수客愁가 사라진 얼굴이
오래전 세상에 오던 날처럼 해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