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주권과 복
창세기 48:15-20
19세기 유명한 사상가이자 화가였던 존 러스킨이 어느 파티에서 손수건을 바라보며 울상으로 앉아있는 한 귀부인에게 다가가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귀부인은 존 러스킨에게 값비싼 손수건을 내보이며 말했습니다. "이 손수건은 최고급 실크로 만든 것인데 누군가가 여기에 잉크를 쏟아 버렸어요. 손수건에 얼룩무늬가 생겨 이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게 됐어요." 존 러스킨이 손수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귀부인에게 손수건을 며칠만 자신한테 맡겨 달라고 했습니다.
미술에도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던 러스킨은 손수건의 잉크 자국을 이용해 아름다운 나무와 숲과 새의 모양을 그려 넣었습니다. 하나의 예술작품이 된 손수건은 그 이전보다 훨씬 고상하고 우아해 보였습니다. 작품이 되었습니다. 귀부인은 그림이 그려진 손수건을 다시 받고는 너무도 감격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생 살면서 한번도 실수하지 않고, 완벽하게 살아온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잉크가 쏟아진 손수건처럼 크고 작은 오점을 만들며 살았을 것입니다. 기억하기 싫은 흑역사와 같은 내 인생의 오점을 명품으로, 명작으로 만들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사람이 아무리 심기일전을 하고, 노력을 한다고 해도, 이런 오점 인생을 명품 인생으로 만들 수 있겠습니까? 노력하고 애쓰면 조금은 개선은 되겠지만, 정말 좋은 명품 인생은 기대하기 힘들 것입니다.
하지만 누군가 내 인생에 개입해서 나를 더 멋진 인생으로 바꿔줄 수 있다면, 이야기를 달라집니다. 정말 신나는 일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런 대박 인생을 꿈꾸며 복권을 삽니다. 로또에 당첨되면 명품 인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주 로또복권 1등에 당첨된 사람이 10명이라고 합니다. 각각 30억 가까이 받았다고 합니다. 참고로 10명 중 아홉 명은 자동번호를 받아 당첨되었다고 합니다. 로또에 당첨이 되었다고 정말 명품 인생이 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말씀 제목은 하나님의 주권과 복입니다. 주권이란 가장 중요한 권리를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주권이란 입법 · 행정 · 사법이라는 국가권력의 기초가 되는 지배 권력을 말합니다. 민주주의에서 국민의 주권은 권력의 핵심입니다. 우리 헌법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합니다. 이 말은 국가를 통치하는 최고의 의사 결정은 국민이 하고, 국민이 결정한 주권으로부터 입법 · 행정 · 사법이라는 통치권이 나온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국민의 주권을 위임하는 대통령과 국회의원, 시장 등을 잘 뽑아야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주권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절대주권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모든 권력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는 말입니다.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최고의 권력, 권위를 가지시고, 만물을 통치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의지를 따라 만물을 다스립니다. 주권 섭리입니다. 건강한 민주주의가 국민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라며, 건강한 신앙이란 바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신앙입니다.
하나님도 자신의 뜻대로 얼마든지 왕도 세우고, 거부가 되게 하고, 미치광이도 됩니다. 성경을 보면 이런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노아를 선택해서 방주를 만들게 하고, 홍수에서 살아남게 합니다. 아브라함을 선택해서 세상에 복을 주려고 합니다. 사울 왕은 버리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을 왕으로 세웁니다.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을 미치게도 했다가 제 정신으로 회복시키기도 합니다.
본문을 보면 야곱은 이런 하나님의 주권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야곱이 병들어 죽을 때가 다 되었습니다. 요셉은 아버지가 병들었다는 말을 듣고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데리고 아버지를 방문합니다. 요셉은 야곱이 왔다는 말에 힘을 내어 침상에 앉았습니다. 야곱은 요셉에게 할 말이 있었고, 축복하려고 일어난 것입니다.
요셉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내가 오래전 가나안 땅, 루스, 벧엘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났는데, 그 하나님께서 내게 복을 주시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내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소유가 되게 하리라”고 말합니다. 이 말을 하고,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을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될 것이라고 하면서 이스라엘의 두 지파로 인정합니다. 이후 므낫세 지파가 되고, 에브라임 지파가 됩니다. 요셉은 장자의 복을 받은 것입니다. 두 몫을 받았습니다. 이후, 므나셋 지파가 되고, 에브라임 지파가 되었습니다.
7절을 보면 야곱은 요셉에게 요셉의 어머니 라헬의 이야기를 합니다. 라헬은 요셉의 동생 베냐민을 낳고 죽었습니다. 죽은 장소가 에브랏입니다. 베들레헴이라고 합니다. 라헬의 무덤은 지금도 예루살렘 남쪽으로 10킬로 떨어진 베들레헴 입구에 남아 있다고 합니다. 예레미야 31:15절을 보면 라헬과 관련된 말씀이 나옵니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왜 라헬은 라마에서 애곡합니까? 라마는 예루살렘이 망하고, 포로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간 장소입니다. 슬픔과 고통의 장소입니다. 라헬은 멸망한 유다를 비유합니다. 나라가 망하자, 자식들은 다 죽고, 남은 자식들은 포로로 끌려갑니다.
이 말씀은 예언으로 예수님에게 성취되었습니다. 헤롯이 동방박사들을 통해서 예수님의 탄생을 알게 되고, 동방박사들은 천사의 지시대로 헤롯에서 돌아가지 않고, 자기 나라로 돌아갑니다. 이때 헤롯은 베들레헴 주변에 살고 있는 두 살 아내 사내아이를 모조리 죽였습니다. 이 잔혹한 사건에 대해서 예레미야 31:15절을 인용하였습니다.
왜 야곱은 라헬의 죽음과 죽은 장소를 강조하고 있습니까? 지금 요셉이 살고 있는 곳은 애굽입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나타나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언약과 라헬의 무덤에 대해서 말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언약 신앙은 주권 신앙입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대로 이스라엘 민족을 번성하게 하셔서 큰 민족이 되게 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이주할 때도 하나님은 이 복을 약속했습니다. 야곱은 이 약속을 믿고,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하며, 두 지파로 인정했습니다.
야곱은 라헬을 언급함으로 요셉이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고, 가나안으로 돌아가야 할 것을 말합니다. 야곱은 라헬이 죽은 곳을 강조함으로 너의 뿌리는 애굽이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가나안에 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연어가 죽을 때가 되면 어떻게 한다고 합니까?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 알을 낳으려고 합니다. 귀소본능입니다. 므낫세와 에브라임에게 주는 메시지도 분명합니다. “너희 둘은 애굽에서 태어났지만, 너희는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다. 애굽 사람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이다. 이스라엘 지파가 되었다. 너희가 돌아갈 땅은 가나안 땅이다. 네 할머니 라헬이 묻혀 있는 곳이다. 반드시 돌아가야 한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살아라!”
그렇습니다. 바울은 우리의 시민권을 하늘에 있다고 했습니다. 비록 우리가 이 땅에 살지만, 잠시 하는 것입니다. 고생과 환난이 많은 땅의 생활을 접고, 영원한 천국의 복을 누릴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바울은 골로새서 3:1-2절에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천국 본향을 바라보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축복하기 전에 요셉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11절입니다. “내가 네 얼굴을 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였더니 하나님이 네게 네 자손까지도 보게 하는도다.” 정말 야곱은 요셉이 짐승에게 물려 죽은 줄만 알았습니다. 요셉을 만나기 전까지 20년이 넘도록 속아서 지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야곱은 요셉을 보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자신의 뜻대로 섭리하시는 분임을 깨닫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야곱의 확신은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안수하는 과정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은 요셉의 큰 아들에게 므나셋의 머리에 오른 손이 아니라 왼손으로 축복하고, 작은 아들인 에브라임에게 오른 손으로 축복합니다. 축복하기 전에 요셉은 아버지의 손의 위치가 잘못되었다고 교정하려고 합니다. 야곱이 요셉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의 아우가 그 보다 큰 자가 되고 그의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면서 동생 에브라임을 형 므나셋보다 앞 세웠습니다.
앞 세웠다했을 때, 앞은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에브라임 지파가 므나셋 지파보다 얼굴 역할을 한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에브라임 지파는 중추적인 역할을 합니다. 모세의 후계자가 바로 에브라임 지파의 여호수아가 나오고,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때, 남북이 분열할 때, 북쪽 10지파의 대표가 에브라임이었습니다. 이후 성경은 북쪽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말로 에브라임이라고 했고, 남쪽은 유다라고 했습니다.
왜 야곱은 요셉에게 나도 안다고 말합니까? 야곱은 무엇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에 대한 바른 깨달음입니다. 인간의 지혜로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인간적인 생각은 당연히 므낫세가 장자의 복을 받는 것이 마땅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야곱은 형 에서와 쌍둥이로 태어났습니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의 예언이 선포됩니다.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길 것이고, 작은 자가 큰 민족이 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비롯 불법으로 장자의 복을 받게 되었지만, 큰 그림으로 보자면,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입니다. 로마서 9:13절에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함과 같다”고 했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삶의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주권을 분명히 경험했고, 그런 영적 안목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요셉의 두 아들의 이름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종으로 팔려왔고, 하나님의 은혜의 주권으로 감옥에서 나와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요셉은 사스낫과 결혼해서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첫째 아들은 므낫세입니다. 므낫세의 뜻은 “하나님이 네게 네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집을 잊어버리게 하셨다”입니다. 요셉의 애굽에서 와서 살았던 생활의 고달픔을 보여줍니다. 둘째 아들의 이름은 에브라임입니다. 에브라임의 뜻은 “하나님이 나를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입니다. 축복과 번성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의 하이라이트는 고난 가운데 번성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 죽음을 통한 영광스러운 부활이고, 영원한 천국의 복입니다.
요셉은 나도 안다고 하면서 21절에서 “나는 죽지만, 하나님은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낸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실 것이라”고 하면서 요셉 지파가 분배받을 땅인 세겜 땅을 언급하며 축복합니다.
창세기 50:24-25절을 보면 요셉의 마지막 유언이 나옵니다. 죽기 전에 야곱처럼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리 당신들이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나님의 주권이란 메이크업과 같습니다. 메이크업은 드라마나 연극, 영화에서 연출자가 연출 의도에 맞도록 출연자의 얼굴, 신체를 화장하는 일입니다. 메이크업은 목적에 따라 좀 다릅니다. 얼굴 윤곽을 강조하거나 카메라에 적절한 피부색으로 만들기 위한 단순한 메이크업이 있고, 신체적인 결함을 눈에 띄지 않도록 하는 수정 메이크업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격 메이크업이 있는데, 극중 인물의 성격에 맞도록 노인도 만들고, 바보가 되기도 하고, 프랑케슈타인 같은 괴물도 만듭니다.
욥을 고난 가운데 내 버려두었다가, 구원하시고, 갑절의 복을 내려 주십니다. 욥은 하나님의 주권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신 이도 여호와이시오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라” 할렐루야! 사무엘을 엄마 한나도 하나님의 주권을 이렇게 찬양합니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예레미야는 유다가 죄로 인하여 벌을 받을 것이며, 구원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다며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합니다. 자기를 조롱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토기장이의 집으로 보내시어 토기장이가 자기 마음대로 그릇을 빚거나 파손하듯이 하나님께서도 유다 백성을 세우시거나 멸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예레미야 18:6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가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하나님의 손에 있는 진흙 한 덩이가 내 인생이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께 어떤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메이컵을 할 때, 잘 부탁합니다. 예쁘게 해 주세요. 우리도 하나님께 이런 부탁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 내 인생을 잘 부탁합니다.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신앙을 갖고 있습니까? 우리에게 복 주실 분은 누구입니까? 실수 많고, 오점 많은 인생을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정말 복이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야곱처럼 하나님 언약 신앙, 주권 신앙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주권 신앙으로 승리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