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랜도 에르난데스 페드로소(1965년 10월 11일 출생)는 엘 듀크 (The Duque의 스페인어)라는
별명을 가진 쿠바 출신 오른손 투수다. 쿠바 내셔널 시리즈 산업, 뉴욕 양키스, 시카고 화이트삭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뉴욕 메츠 등 메이저 리그 야구 국가대표팀에서 뛰었다.
에르난데스의 가장 큰 성공은 양키스가 1998년, 1999년, 2000년 월드시리즈 챔피언쉽을 운영하는 동안
선발투수로써 이루어졌다. 그는 또한 2005년 시카고 화이트 삭스와 함께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했다.
메이저 리그 투수 리반 에르난데스의 이복형이다.
에르난데스는 극도로 높은 레그킥과 에프후스의 피치를 자주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쿠바의 야구경력]
에르난데스는 쿠바 내셔널 시리즈에서 아바나의 산업팀에서 뛰며
1992년과 1996년에 팀이 이 타이틀을 차지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는 또한 시우다드 하바나와 하바네로스를 포함한 팀에서 선택 시리즈에서 아바나를 대표했다.
그는 내셔널 시리즈 10년 선수 생활 동안 126–47, 방어율 3.05이었다.
내셔널과 셀렉티브 시리즈에서 통산 우승률 .728은 리그 기록이다.
에르난데스는 쿠바 야구 국가대표팀의 고정 선수였으며,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에 속해 있었다.
1995년 9월 에르난데스의 이복동생 리반 에르난데스가 쿠바를 망명했다.
쿠바 국가대표팀은 1996년 하계 올림픽에서 에르난데스를 명단에서 제외시켰다.
그 후 1996년 7월 에르난데스는 쿠바 국가 안보에 억류되어
미국의 한 스포츠 에이전트와 그의 관계에 대해 심문을 받았다. 3개월 후, 그는 쿠바 야구에서 금지되었다.
1997년 크리스마스에 에르난데스는 작은 도시 카이바리엔에서 배를 타고 쿠바를 떠났다.
미국 해안경비대는 에르난데스, 그의 동료 노리스 보쉬, 또 다른 야구선수 알베르토 에르난데스(관계 없음)와
바하미 해역에서 5명을 중재하여, 쿠바로 최종 송환이 보류된 불법 이민자들을 위해
이들을 유치장에 감금한 일행을 프리포트(Freeport)에 있는 바하미안 당국에 전달했다.
그러한 사건의 결과 그러나 스포츠 에이전트인 조 큐바스와 쿠바계 미국인 재단(CANF)의
대표들의 로비가 있은 후, 자넷 리노 당시 어트니 장군은 결국 에르난데스(Hernándezes)와 보쉬(Bosch) 모두에게
미국 입국을 허용하는 이른바 인륜적 가석방 이라는 특수한 지위를 제공했는데,
그 이유는 당당 당대의 현실적인 두려움이라고 판단되었다.그들은 쿠바에 반환되어야 하고
다른 직업의 유별나게 재능 있는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국무부의 규정에 따라
미국에 특별 입학 자격을 줄 수 있는 한 부류의 사람으로서 그들의 지위가 회복되어야 한다.
그러나 에르난데스는 이 제안을 거절했고, 결국 코스타리카로 망명 제의를 받아들였다.
당장 미국 레지던트가 됐더라면 야구의 정규 드래프트 대상이 되었을 것이고
그를 선발한 팀과만 조건을 협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인이 아닌 주민으로서 자유계약선수(FA)로서
협상을 할 수 있었다. 에르난데스는 코스타리카에서 두 달 후 뉴욕 양키스가 주선한 비자로 미국에 입국했으며,
이 비자는 4년 660만 달러의 계약을 체결했다.
[메이저리그 경력 뉴욕 양키스]
1998
에르난데스는 1998년 메이저리그 첫해인 12-4로 평균자책점 3.13을 기록했다.
그는 1998년 양키스 월드시리즈 우승 팀의 일원으로 샌디에이고 파드레스를 물리쳤다. 그는 AL 신인 투표에서 4위를 했다.
1999
에르난데스는 99년 메이저리그 투수로서 최고의 한 해를 누렸다.
그는 17 대 9의 기록으로 삼진(157), 이닝(214.1)을 양키스로 세웠다. 1999년 6월 5일 뉴욕 메츠와의 경기 중
한 코믹한 순간에 에르난데스는 레이 오르드óñ데스의 땅볼을 파고들어
1루에서 공을 넣은 글러브를 던져 아웃을 이끌어냈다. 정규 시즌이 끝난 후,
그는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MVP로 선정되었다.
양키스는 결국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상대로 월드시리즈 2연패를 달성하게 된다.
2000
에르난데스는 2000년 정규시즌 동안 평균자책점 4.51을 기록하며 12-13으로 뛰었다. 그 후 양키스는 뉴욕 메츠를 꺾고
월드시리즈 3연패를 달성했다. 에르난데스는 1998년부터 2000년까지 3번의 포스트시즌 동안
8-1, 평균자책 2.23을 기록하며 좋은 활약을 펼쳤다.
2001
에르난데스는 17경기(16초) 평균자책점 4.85로 4-7로 승리했다.
양키스는 4년 연속 월드시리즈에 출전했지만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 패했다.
2002
에르난데스는 24경기에서 평균자책 3.64와 1세이브를 기록하며 8-5로 이겼다(22개 선발).
양키스는 포스트시즌 5연속 진출로 2002년 애너하임 에인절스와 맞대결을 벌였으나 시리즈에서 패했다.
[몬트리올 엑스포스]
2003년 1월 15일, 에르난데스는 시카고 화이트 삭스와 관련된 3팀 거래로 양키스에 의해
몬트리올 엑스포스로 트레이드되었다.
그는 수술을 필요로 하는 어깨에 회전 장치(Rotator)가 손상되어 시즌 내내 경기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양키스 와의 두 번째 스턴트]
에르난데스는 2004년 3월 11일 뉴욕 양키스로 복귀하는 1년 계약을 맺었다.
그는 2004년 시즌의 시작을 로터 커프 수술에서 회복하다가 놓쳤다.
15경기에 선발 등판해 8-2로 평균자책점 3.30을 기록했다. 양키스는 다시 한번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지만
2004년 ALCS에서 월드시리즈 챔피언 보스턴 레드삭스에게 패했다.
[시카고 화이트삭스]
2005년 시카고 화이트삭스 시절 에르난데스는 24경기 만에 평균자책점 5.12에 1세이브를 기록했다.
그는 2005년 ALDS 3차전에서 레드삭스를 상대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에르난데스는 무사 만루 상황에서 2개의 플라이볼 아웃을 유도한 뒤 조니 데이먼을 무실점으로 삼진했다.
화이트삭스가 레드삭스를 플레이오프에서 몰아내면서 승리할 것이다.
화이트 삭스는 월드시리즈에 진출하여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휩쓸어 1917년 이후 첫 우승을 확정지었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2005년 시즌이 끝난 후 에르난데스는 구원 투수 루이스 비즈카노와 함께 전 팀 동료인 하비에르 바스케스와 함께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로 트레이드되었다. 헤르난데스는 9번의 출발에서 평균자책 6.11로 2-4로 이겼다.
[뉴욕 메츠]
2006년 5월 24일, 구원 투수 호르헤 훌리오와 교환하여 뉴욕 메츠로 이적하였다.
에르난데스의 내셔널리그 데뷔 시즌은 그가 생애 처음으로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칠 수 있게 해주었다.
2006년 7월 29일 에르난데스는 자신의 선수 생활에서 처음 2타점을 올렸다.
오르란도는 마지막으로 차를 몰고 달려온 것이 언제였느냐는 질문에 쿠바에서라고 말했다.
그 후, 2006년 8월 20일, 셰아 스타디움에서 에르난데스는 생애 첫 번째 도루 베이스를 갖게 되었다.
에르난데스는 메츠와의 트레이드 이후 내셔널리그 동부전에서 승리하면서 20번의 선발 등판 중
평균자책점 4.09로 9-7로 승리했다. 9월 평균자책점 2.01로 2-2로 뛴
그의 투구는 2006년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에서 메츠의 1차전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플레이오프 시작 전날 외야에서 전력 질주하던 에르난데스는
종아리에 근육이 찢겨 포스트시즌 명단에서 긁혀야 했다. 그는 2006년 11월 14일 메츠에 의해 재계약되었다.
2007년 시즌에는 부상 투수로 에르난데스에게 단 24개의 선발로 제한했지만 건강할 때는 9-5개의 기록,
평균자책점 3.72개, 탈삼진 128개를 기록하며 성공적으로 투구했다. 에르난데스는 2007시즌에 이어 발 수술을 받았고
2008시즌을 메츠와 함께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는 2008년 8월 메츠에 입단할 목적으로 플로리다에서
장기간의 수술 후 재활 프로그램을 받았다. 2008년 8월 말 시즌 마지막 수술을 받아야 했던 발가락 부상으로
에르난데스는 메츠에 공을 던지지 못하고 시즌을 마감했다. 그는 연말에 자유계약선수(FA)가 되었다.
[텍사스 레인저스 조직]
2009년 6월 11일 에르난데스는 텍사스 레인저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다.
그는 트리플 A 오클라호마에 배정되었다. 레인저스는 그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수 있는
스피드와 지휘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를 메이저리그로 불러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그에게 알려주었다. 에르난데스는 2009년 7월 17일에 발매되었다.
발매 당시 트리플-A 레드하크스의 기록은 8차례의 구원 등판 중 2-0이었다.
[워싱턴 내셔널스 조직]
2010년 7월 2일 에르난데스는 워싱턴 내셔널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고 재기를 시도했다.
워싱턴 내셔널스 소속의 루키 리그 걸프 코스트 내셔널스와 더블-아 해리스버그 세너터스의 15 2⁄3이닝 동안
21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평균자책점 2–1을 기록했다. 마이크 리조 총지배인은 에르난데스에게
9월 소환 통보를 하지 않겠다고 통보했고 에르난데스도 조직을 떠났다.
[은퇴]
에르난데스는 2011년 8월 18일 메이저리그에서 공식 은퇴했다.
ESPN Deportes Radio 2017 World Series for ESPN Deportes Radio를 방송하였다.
[논쟁의 여지가 있는 출생년]
1998년 에르난데스가 양키스와 계약했을 때 그는 1969년에 태어났다고 주장했다.
1999년, The Smoking Gun은 그의 전 부인이 제기한 아동 지원 사건과 관련하여 표면화되었던
그의 이혼 포고령을 발표하였다. 메이저리그 공식 사이트는 1969년으로,
ESPN과 Baseball-Reference.com에 실린 그의 페이지는 1965년으로 되어 있다.
[기타 경력]
에르난데스(Hernández)는 쿠바 내셔널 시리즈 챔피언으로 두 번(1992년과 1996년)을 뛴 선수다.
2013년 6월 에르난데스는 제67회 양키스 올드 티머스의 날에 참가했다.
그것은 올드 티머즈 데이에 그의 첫 출연이었다. 그는 2014년에 돌아왔다
[팀]
뉴욕 양키스 (1998–2002, 2004)
시카고 화이트삭스(2005)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2006)
뉴욕 메츠 (2006–2007)
[커리어 하이라이트 및 시상]
4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자(1998–2000, 2005)
ALCS MVP(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