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행본 장 12장 다섯 가지 좋은 빛깔은 눈을 멀게 하고 말 달리고 사냥하는 것은 마음을 미치게 하고 얻기 어려운 재물은 행동을 그르친다. 다섯 가지 좋은 맛은 입맛을 잃게 하고 다섯 가지 좋은 소리는 귀를 멀게 한다 이 때문에 성인이 다스릴 때는 배를 위하지 눈을 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 五色使人目盲, 馳騁田獵使人心發狂, 難得之貨使人之行妨. 五味使人之口爽, 五音使人之耳聾. 是以聖人之治也, 爲腹不爲目. 故去彼取此.1) 다섯 가지 좋은 빛깔은 눈을 멀게 하고, 말 달리고 사냥하는 것은 마음을 미치게 하고, 얻기 어려운 재물은 행동을 그르친다 五色使人目盲, 馳騁田獵使人心發狂, 難得之貨使人之行妨 다섯 가지 좋은 빛깔(오색)은 청·적·황·흑·백색이다. 오색은 모든 색의 기본이므로 사람이 오색 자체를 멀리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이 문장에서 오색이란 꼭 구체적인 빛깔 다섯 가지를 지칭한다기보다 휘황찬란하게 좋은 색깔로 꾸며진 모양을 의미한다. 간혹 "오색은 눈을 기르지만 지나치면 눈을 멀게 한다(왕진)"든지 오색만을 가까이하여 "무색의 색을 반조(反照)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므로 눈이 먼 것이라고 할 수 있다(범응원)"는 해설도 볼 수 있는데, 오색을 상징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낫다고 본다. 뒤에 나오는 다섯 가지 좋은 맛(오미)이나 다섯 가지 좋은 소리(오음) 경우도 마찬가지다. 참고로 오미는 신맛·쓴맛·단맛·매운맛·짠맛이고, 오음은 궁·상·각·치·우다. '치빙(馳騁)'은 말을 달리는 것이고, '전렵(田獵)'은 사냥하는 것이다. 사냥하기 위해 말을 달리는 것이므로 이 둘은 같은 일이다. '광(狂)'은 원래 미친개를 가리킨다. 미친개는 마음이 조급해 한곳에 있지 못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게 되는데, 전렵에 미친 임금도 그랬던 것 같다. 왕진은 치빙·전렵의 중독성을 경계하면서 "거친 벌판을 가로질러 짐승을 쫓으며 까마득한 낭떠러지까지 마차를 달린다. 육룡(六龍: 마차를 끄는 여섯 필의 말)의 튼튼한 발은 만 명의 기병도 따라오지 못하니 수리와 앞을 다투고 곰과 어울려 용맹을 자랑한다. 해와 달이 지고 깃발이 어지럽게 휘날려도 말을 달리면서 돌아갈 줄 모른다. 죽이고 사로잡는 것을 일삼고, 비바람 속에 지내면서 궁실은 비워두니 가히 발광했다고 할 만하다"고 하였는데, 대충 전렵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짐작할 수 있겠다. 앞에서 오색이 단순히 다섯 가지 색깔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보기 좋은 모양을 상징하듯이 여기에서 말 달리고 사냥하는 일도 바로 그것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즐거운 일을 상징한다. 임금의 즐거운 일 중에 사냥이 제일이라는 말이 있다. 다섯 가지 좋은 맛은 입맛을 잃게 하고, 다섯 가지 좋은 소리는 귀를 멀게 한다 五味使人之口爽, 五音使人之耳聾 왕필이나 하상공 등의 주해를 참고할 때 여기에서 '상(爽)'은 입맛을 잃는다는 뜻이다. 해동은 이 글자가 입병을 가리킨다고 하였는데, 그것도 틀리지 않는다. 입병이 나면 입맛을 잃게 마련이므로 두 풀이는 다르지 않다. 『중경음의(衆經音義)』에 따르면 "초나라 사람들은 국이 상한 것을 '상(爽)'이라고 하였다(역순정)." 그래서 이 글자를 쓴 것을 볼 때 『노자』는 초나라 글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그렇지만 원래 갑본에는 이 글자가 '상()'으로 되어 있다. 이 글자를 '상(爽)'으로 바꾼 것은 을본이다. 통행본에서는 이 문장이 앞문장의 첫 번째 구절, 그러니까 "다섯 가지 좋은 빛깔은 눈을 멀게 하고"라는 말 다음에 나온다. 하지만 갑·을본은 모두 이렇게 되어 있으므로 이것이 원래 순서일 것이다. 통행본처럼 되는 것이 더 자연스럽기 때문에 나중에 『노자』를 윤색하면서 후인이 순서를 고쳤으리라고 본다. 『장자』 「천지」에는 이와 비슷한 글이 있다. 대개 본성을 잃는 일에 다섯 가지가 있다. 다섯 가지 좋은 빛깔이 눈을 어지럽혀 눈이 밝지 않게 되는 것이 첫째고, 다섯 가지 좋은 소리가 귀를 어지럽혀 귀가 밝지 않게 되는 것이 둘째이며, 다섯 가지 냄새가 코를 찔러 코를 막히게 하는 것이 셋째고, 다섯 가지 좋은 맛이 입을 더럽혀 입병이 나게 하는 것이 넷째고, 득실이 마음을 어지럽혀 본성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 다섯째다. 이 다섯 가지는 모두 생을 해치는 것이다. 이런 글을 금욕주의로 읽어서는 안 된다. 『노자』나 『장자」는 지금 탐욕을 비판하는 것이지 생활의 욕구를 문제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자』는 아래에서 "배를 위하는" 일을 긍정했고, 『장자』도 지금 "본성을 잃는 일"만 이야기한다. 배고프면 먹고 싶은 것은 본성이고, 그렇게 먹는 것은 배를 만족시키는 일이므로 문제되지 않는다. 요컨대 『노자』와 『장자』는 사회적 욕망만을 비판한다. 사회적 욕망이란 사회적으로 양성된 욕망, 특히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자라난 욕망이다. 이런 욕망은 결코 충족되지 않는다. 몸을 가리면 그만인 옷을 남과 비교하면서 더 아름다운 옷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런 것이다.『여씨춘추』 「서의」에서는 이런 욕망을 '사사로운' 것이라고 하였다. 무릇 사사롭게 보는 것은 눈을 멀게 하고, 사사롭게 듣는 것은 귀를 멀게 하며, 사사롭게 생각하는 것은 마음을 미치게 한다. '사사로운' 욕망이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공정함〔公〕을 견지해야만 하늘의 복을 받기 때문이다. "지혜가 공정하지 못하면 복은 날로 줄어들고 재앙이 날로 늘어난다. 해가 기울면 해가 저물지를 알 수 있다(같은 곳)." 『여씨춘추』 「맹춘기·본생」도 모든 소리와 색과 맛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본성에 해로운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이제 어떤 소리가 있는데, 귀로 그것을 들으면 반드시 만족스럽지만 그 소리를 듣고 나면 귀가 먼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반드시 그것을 듣지 않을 것이다. 어떤 색이 있는데, 눈으로 그것을 보면 반드시 만족스럽지만 그 색을 보고 나면 눈이 먼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반드시 그것을 보지 않을 것이다. ……이 때문에 성인은 소리와 색깔과 맛에서 본성에 이로운 것은 취하고 본성에 해로운 것은 버린다. 이것이 본성을 온전히 하는 도다. 소리·색깔·맛을 취하는 기준은 본성에 이로운가다. 이때 본성〔性〕이라는 말은 삶〔生〕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노자』가 오색·오성·오음 등을 취하지 않는 이유도 그것들이 모두 본성(삶)에 이롭지 않기 때문이다. 배를 위하지 눈을 위하지 않는다 爲腹不爲目 배에는 어떤 특성이 있고, 눈에는 어떤 특성이 있기 때문에 이런 묘사가 가능한가? 여러 설명이 있다. "눈은 만족할 줄 모르므로 성인이 위하지 않고, 배는 족함을 알기 때문에 성인이 위한다(이약)." "눈은 탐하기만 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며, 배는 받아들이기는 하되 탐하지는 않는다(소철)." "배는 무지하고, 눈은 보는 것(지혜)이 있다(여혜경)." "배는 안에 있고, 눈은 밖에 있다. 성인은 안에 힘쓰지 밖에 힘쓰지 않는다(임희일)." 이 모든 해설이 일리가 있다. "배를 위하는 사람은 사물을 이용하여 자신을 살찌우고, 눈을 위하는 사람은 사물 때문에 자신을 수고롭게 한다(왕필)"는 말이 모든 해설을 종합하는 것 같다. 결국 농부의 배를 가지는 것이 지식인의 눈을 가지는 것보다 낫다는 의미다. 앞에서는 눈, 마음, 행위, 입, 귀 다섯 가지를 이야기했으면서도 여기에서는 단지 눈만 이야기한 것은 눈이 사회적 욕망을 촉발하는 감각 기관의 대표이기 때문이다. 공자는 예가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면서 가장 먼저 "예가 아니면 보지 말라"고 했다(『논어』 「안연」). 그러므로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 故去彼取此 여기에서 '저것'이란 눈 또는 눈으로 대변되는 사회적 욕망을 좇는 삶을 가리키고, '이것'이란 배 또는 배로 대변되는 자연적 욕망에 충실한 삶을 가리킨다. 이 말은 여기 외에 두 곳(38·72)에서 더 나온다. 무릇 사사롭게 보는 것은 눈을 멀게 하고 사사롭게 듣는 것은 귀를 멀게 하며 사사롭게 생각하는 것은 마음을 미치게 한다 ―『여씨춘추』 각주 1) * 갑·을본은 서로 일치한다. * 갑·을본이 잘 보존되어 있다. 서로를 보완하여 완전한 문장을 얻을 수 있다. * 맹(盲)은 명(明: 갑본), 렵(獵)은 납(臘: 갑·을본), 방(妨)은 방(方: 갑본)·방(仿: 을본), 상(爽)은 상(: 이하 갑본), 피(彼)는 파(罷), 취(取)는 이(耳)의 본 글자이므로 모두 이렇게 고친다. [출처] 노자 [64] (도편) 다섯 가지 좋은 빛깔은 눈을 멀게 하고, 말 달리고 사냥하는 것은 마음을 미치게 하고, 얻기 어려운 재물은 행동을 그르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