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남긴 흔적을 따라
올가을 들어 첫 추위가 찾아온 십일월 둘째 주말이다. 토요일에 이어 일요일도 제법 쌀쌀한 아침이라 장갑에 얇은 목도리를 두르고 길을 나섰다. 한낮은 기온이 올라갈지라도 날이 밝아오는 이른 아침은 추위가 느껴져 대비했다. 강가로 나가 강변과 들녘을 걸으려고 본포로 가는 30번 농어촌버스를 타려고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반송 소하천 따라 외동반림로 차도 곁 보도를 걸었다.
원이대로 버스 정류장에는 일요일이라선지 차를 기다리는 이가 드물었다. 등산복 차림으로 산악회에서 떠나는 전세버스를 타는 이는 보였다. 나는 본포를 거쳐 북면 온천장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시내를 벗어났다, 용강고개를 넘어간 버스는 동읍 사무소 앞에서 주남저수지를 비켜 갔다. 갯버들 잎사귀가 떨어져 앙상해지니 북녘의 철새들이 속속 날아들 넓은 저수지 수면이 드러났다.
본포에는 내 말고도 할머니 한 분이 함께 내렸다. 할머니는 마을로 가고 나는 강둑으로 올라서니 본포수변공원과 맞닿은 유장한 강물이 흘렀다. 창녕 부곡 학포로 건너는 본포교로 다가갔다. 동읍 본포와 창녕 학포를 잇는 본포교는 길이가 920미터에 이르니 상당히 긴 교량이다. 교량을 건너면서 물길이 흘러가는 방향 풍광을 바라보니 먼 산들이 나를 보고 머리를 조아리는 듯했다.
본포교를 건너 밀양 무안에서 흘러온 청도천이 합류하는 샛강으로 갔다. S자로 휘어져 흘러온 냇물은 가동보에서 낙동강 본류로 흘러들었다. 샛강 언저리는 지난밤이 추운 날씨였는데도 밤을 새워 낚시에 몰입한 태공이 보였다. 부곡 학포에서 초동 반월로 가는 반학교를 건너 제방을 걷다가 여름 철새 후투티를 봤다. 녀석은 남녘으로 내려가지 않고 여기서 겨울을 날 작정인 듯했다.
둑에서 산책로를 따라 습지 공원으로 내려섰다. 길섶은 당국에서 꽃길을 가꾸어 구경꾼을 모으는데 올가을에 코스모스가 저문 자리에 내년을 위해 꽃양귀비 씨앗을 심어 놓은 듯했다. 꽃양귀비는 겨울이 오기 전 싹이 터 내년 봄에 잎줄기를 불려 키워 아름다운 꽃을 피울 테다. 물억새 이삭은 점차 야위어 날렵해가는데 갈대꽃은 무게감을 이기지 못해 바람에 이리저리 일렁거렸다.
인적이 없는 산책로에서 물억새와 갈대의 열병을 받으면서 갯버들을 바라보며 걸었다. 그즈음 내 바로 가까이서 부스럭 소리와 함께 고라니 한 마리가 겅중겅중 뛰었다. 시야에 들어온 전방은 습지 물웅덩이라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고립지라 어떻게 하는지 가만히 지켜봤더니 검불 속에 몸을 숨겨 나오질 않았다. 녀석은 아마 나를 상위 포식자로 여겼는데 나는 살생 의도가 없었다.
초동 연가길에서 강둑으로 올라가니 물억새와 갈대가 펼쳐진 습지는 수산으로 이어졌다. 반월에서 대곡 앞의 너른 들판을 지니자 군데군데 비닐하우스 시설채소 재배단지가 보였다. 지난봄 트레킹을 함께 나선 문우와 함께 지인 농장을 방문해 수경 재배한 상추를 가득 뜯은 일이 떠올랐다. 마을 앞을 지나다 한 할머니가 수로 언덕 디딤돌로 놓을 돌멩이를 옮기려고 해 도와주었다.
성북마을 앞에서 초동 신호저수지로 갔다. 덕대산 아래 국도변에는 초동면 소재지 범평마을이고, 거기서 멀지 않은 신호리에 아주 넓은 저수지로 규모가 주남저수지만큼이나 컸다. 신호지는 민물 낚시꾼들에게 알려진 낚시터라 휴일을 맞아 여가를 즐기는 이들이 더러 보였다. 갯버들이 선 저수지 가장자리는 물억새가 일렁이고 늦게까지 꽃잎이 저물지 않은 연보라 쑥부쟁이꽃을 봤다.
신호지에서 밀양 박씨 선산과 효행을 기린 모선정이 바라보인 찻길을 걷다가 돼지국밥으로 점심을 때웠다. 식후 야트막한 고개를 넘으니 검암마을 앞길을 줄지은 은행나무는 노랗게 물이 들어갔다. 널따란 수로가 길게 이어진 농로를 따라 추수가 끝난 들녘을 걸어 수산에 이으러 제1 수산교를 건넜다. 행정구역은 밀양 하남읍에서 의창구 대산면으로 바뀌어 창원 마을버스가 다녔다. 23.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