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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은동진
발행일 : 2022년 5월 30일
판형 : 140*205
쪽수 : 308
값 : 18,000원
분야 : 역사
■■ 책 소개
대한민국 시작, 100여 년의 역사
임시정부 요인 16인의 이야기를 통해 들려주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탄생 103주년을 맞이하여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과 청남대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이 2022년 3월 1일과 4월 11일에 개관했다. 상하이부터 충칭까지 4,000km에 이르는 임시정부의 험난했던 이동 경로를 비롯해 대한민국 헌법과 국회의 뿌리가 된 임시정부의 법통과 임시의정원의 역사 그리고 국가 이름, 연호, 태극기와 같은 국가 상징물이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전시되어있다. 황제가 주권을 가진 제국에서 국민이 주인이 된 대한민국 시작의 역사 100여 년을 돌아보면서 앞으로의 100여 년을 준비한다는 목적으로 개관한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은 많은 이에게 관심을 받고 있다.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던 인물들을 기리기 위해 각 지자체에서 지역 출신 독립운동가의 기념관이 세워지고 정부 차원에서도 임시정부 관련 기념관이 개관하는 등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지금, 누구나 쉽게 우리 역사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대중적 역사 강의에 힘쓰고 있는 저자 은동진이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와 대한민국 시작의 역사를 임시정부 요인 16인을 통해 들려준다. 이 책에 소개되는 임시정부 요인은 교과서 속 한 줄 정도로 언급되어있거나 임시정부 주축들을 보좌하며 그 주변에서 제 할 일을 묵묵히 했던 인물들로, 저자는 이들의 이야기를 꾸밈없이 생생하게 들려주기 위해 2년여 동안 현장답사와 각종 사료를 면밀히 조사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자신의 명예나 이름을 내세우기보다 조국 독립과 임시정부의 통합이라는 목표를 위해 중국 본토와 만주, 연해주 그리고 미국 대륙, 인도와 미얀마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지에서 활동했던 임시정부 요인들의 일대기와 활약상을 알 수 있게 되었다.
■■ 출판사 서평
‘조국 독립’이라는 목표로 평생을 바친
대한민국 임시정부 소속 애국지사들의 이야기
손주들의 재롱이나 보고 여생을 보낼 노년의 시기 ‘나라를 위해’ 한평생 살아온 고향 땅을 뒤로하고 이국 만 리 먼 길을 떠날 수 있을까? 가문 대대로 누려온 혜택과 전 재산을 ‘나라를 위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바칠 수 있을까? 한 달 내내 일해 받은 월급을 십 원 하나 남기지 않고 ‘나라를 위해’ 내놓을 수 있을까? 혹독한 고문과 수차례 감옥살이하면서도 ‘나라를 위해’ 또다시 목숨을 내놓을 수 있을까?
‘나라를 위해’라는 전제가 붙는다 하더라도 지금의 우리는 이러한 결심과 행동을 선뜻 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100여 년 전 ‘조국 독립’이라는 목표 하나로 평생을 바친 이들이 있다. 1910년 강제 국권 피탈이 일어난 이후 일제의 압제에 고통받고 있던 사람들은 대한제국의 황제 고종의 의문사를 계기로 전국 곳곳에서 3.1운동이 일어났다. 1차 세계 대전 이후 승전국의 식민지에서 일어난 최초의 반제국주의 운동이자 이념과 계급의 차이를 초월한 전 민족적 항일 운동인 3.1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아 국내외 곳곳에서 임시정부가 조직되었고,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는 하나의 통합된 조직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로 1919년 4월 11일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조국 독립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나이 성별 상관없이 중국 본토, 만주와 연해주, 러시아와 미주 대륙, 그리고 인도에서 미얀마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지에서 이름 없이 활동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소속 요인들의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일등 공신
이름 없이 사라진 애국지사들의 삶을 현장답사와 각종 사료로 부활시키다
첫 책 《여기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입니다》를 출간한 후 사람들에게 우리 역사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좀 더 쉽고 재미있게 전달해주기 위해 활동 분야를 넓혀가며 대중적인 역사 강의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저자 은동진은 이번 책을 통해 김구, 윤봉길, 이봉창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임시정부 요인 이외의 16인의 인물을 발굴하여 소개한다. 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소속으로 누구보다 조국 독립을 위해 힘썼던 이들의 활약상과 숨겨진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현장답사는 물론 서적, 논문, 사진, 지도, 연표 사료 등을 면밀히 조사하고 이를 꾸밈없이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16인의 임시정부 요인은 다음과 같다.
- 70대 고령의 나이에 대한제국 대신으로는 유일하게 상하이로 망명한 임시정부의 원로 김가진
- 조국 독립을 위해 외교 활동에 주력한 황금 인맥의 소유자 신규식
- 임시정부 연통제 특파원으로 활동 vs 불교 부흥을 위해 친일 행위. 독립운동가와 친일파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는 이종욱
- 독립운동 세력의 통합을 염원하며 임시정부 요직에 평생을 바친 임시정부의 정신적 지주 이동녕
- ‘하늘을 지배하는 자가 승리한다.’ 일제의 상공을 노리고 최초의 한인 비행학교를 설립한 노백린(feat. 김종림)
- 펜 하나로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언론인 민족 투사였지만 사회주의 운동 이력 때문에 업적이 가려진 조동호
- 임시정부 원로들을 살뜰히 살피며 뛰어난 언어 구사 능력과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임시정부 대내외 업무를 도맡은 임시정부의 그림자 엄항섭
- 가문 대대로 내려온 혜택과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바친 임시정부의 실질적인 소유자 김철
- 강직한 성격과 남다른 포용력으로 중국 고위 관리의 마음을 사로잡은 외교 협상의 달인 박찬일
- 중국어 한마디 못했던 군관학교 학생에서 한중 진영을 오가며 항일 무장 투쟁을 이끈 김홍일
- 임시정부의 유일한 여성 특파원이자 임시정부 원로들의 뒷바라지와 안살림을 책임진 정정화
- 이봉창·윤봉길 의거에 버금가는 세 차례의 의거를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간 불운의 의사 백정기
- 한말 무관학교 학생부터 한국광복군 총사령관까지. 항일 무장 투쟁의 시작과 끝을 함께했으며 대한민국 국군의 기반을 마련해준 지청천
- 강제 징용된 한인 학병 탈출의 물꼬를 튼 학병 탈출 1호 출신 한국광복군 한성수
- 실전 경력과 자상한 성품, 포용력 있는 대인 관계와 지도력으로 한국광복군 대원들의 존경을 받은 오광심(feat. 김학규)
- 미국으로 건너가 선진 군사 기술을 배워 임시정부 군사 전문가로 활동했지만 어디서도 조명된 적 없는 이복원
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의 광복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몇몇 독립운동가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이름 없는 수많은 민중, 저명한 독립운동가 옆에서 그들을 묵묵히 조력하며 이름 없이 희생된 수많은 사람에 의해 해방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누구나 자유와 평등을 누리며 사는 자주 독립 민주 국가인 대한민국을 있게 한 애국선열들의 이야기를 통해 앞으로의 대한민국을 이끌어 나갈 미래의 주역들이 역사에 대해 좀 더 많은 관심과 흥미를 갖고 어떤 사명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 지은이
은동진
서강대학교에서 역사교육 박사 과정을 밟고 있으며 ‘어떻게 하면 역사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사람들에게 전해줄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늘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정설을 재미있게 풀어서 전달해주는 역사 강사로, 경직되고 딱딱한 학문을 누구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말랑말랑하게 만들어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EBS, 이투스, 에듀윌에서 한국사 대표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스마일티비 〈은동진의 알알잼〉, SBS 광복절 특집 다큐멘터리 〈연해주의 별〉, KBS2 〈그녀들의 여유만만〉, TV조선 〈어촌캠프〉, Wee티비 〈슈쾅 타임머신〉, CJ헬로 〈우리 역사의 별〉, EBS FM 라디오 〈쇼미더시티〉 메인 MC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우리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알려주고 있다. 근로복지공단, 국가보훈처, 기업은행, SK홀딩스, BC카드 등에서 강연했고, 하나투어에서 〈전문가 동반 역사 여행〉을 이끌며 많은 사람이 역사에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힘쓰고 있다.
■■ 추천사
독립운동가의 일생과 업적을 정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인물에 따라 자료가 너무 많거나 너무 적고, 사료에 따라 인물을 바라보는 관점에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독립운동사와 관련한 여러 서적과 논문을 섭렵해 독립운동가의 활약상을 시기별·주제별로 구성해놓았다. 또한 사진, 지도, 연표, 사료 등 다양한 자료를 통해 독립운동가의 생애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국 근현대사를 어렵게 느끼는 독자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천안동성중학교 교사 이준연
역사 심화 동아리를 운영하면서 독립운동가의 발자취를 찾던 중 이 책을 접하게 되었고, 그동안 봉인되었던 위대한 독립운동가의 혼이 되살아나는 감명을 받았다. 이 책에 소개된 독립운동가의 삶을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 사명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쏘아 올린 신호탄에 발맞춰 앞으로 더 많은 독립운동가의 연구가 진행되기를 바란다.
- 동두천고등학교 교사 임경환
13년 동안 우리 역사를 가르치면서 늘 미흡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바로 독립투사에 대한 이야기이다. 부와 명예를 버리고 독립을 위해 전진하던 그들의 모습을 오늘날 대한민국 청소년들이 꼭 알아주기를 바랐는데, 독립운동가의 생애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이 책이 그 갈증을 채워주었다. 교육 일선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라면 꼭 읽어야 하는 필독서이다.
- 연천중학교 교사 김기현
일제 식민지 시기 독립운동가의 활동과 사상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청소년기의 삶의 화두에 대한 방향을 제시해줄 수 있다. 이 책은 다양한 관점에서 독립운동가를 조명해놓아 청소년들이 한국 독립운동사를 좀 더 쉽게 이해하고 역사에 대해 관심과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 세화고등학교 교사 이종진
■■ 책 속에서
1919년 10월 10일 김가진 일행은 임시정부의 교통국 이륭양행을 경영하던 조지 쇼의 도움을 받아 만주 안동(단둥)에서 배를 타고 상하이 임시정부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1919년 10월 29일 조선민족대동단 총재 김가진이 임시정부에 도착하자 김구를 비롯한 임시정부의 모든 요인이 큰절로 예를 표하며 맞이했다고 합니다. 그는 대한제국의 대신으로는 유일하게 상하이로 망명해 임시정부의 일원으로 독립운동에 나선 것입니다. (…) 임시정부에 합류한 김가진은 대담한 항일 프로젝트를 준비했습니다. 임시정부에 큰 힘을 실어줄 또 다른 인사의 망명을 추진한 것입니다. 바로 고종의 다섯째 아들이자 순종의 아우인 의친왕 이강의 망명이었습니다. 김가진은 황위 계승 서열에서 순종 다음인 이강이 임시정부에서 활동한다면 일본은 큰 충격을 받을 것이고, 임시정부의 정통성 확보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그는 의친왕 이강과 김가진 등의 이름으로 제2차 독립선언서를 발표하면 국내외 관심을 고조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 김가진, 버림받은 애국자 (p24~25)
그는 친일 행위를 하면서도 독립운동을 멈추지 않았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독립운동가와 친일파 사이에서 엇갈린 평가와 논란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 이종욱은 친일 행각에 동분서주하다가 1945년 일본이 패망하자 8월 17일 기존에 맡고 있던 모든 직책에서 사퇴했습니다. 이후 9월 22일에 소집된 전국 승려 대회에서 부일 협력자 제1호로 지목되어 승권 정지 3년이라는 징계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광복 직후 “이종욱의 자금 조달이 없었다면 임시정부가 유지될 수 없었다.”라고 말한 김구의 증언이 나와 이종욱의 친일 행위가 ‘자발적이냐, 위장이냐’라는 논쟁이 벌어지는 데 영향을 준 것입니다. (…) 이종욱은 일제 강점기 동안 독립운동한 것을 인정받아 1977년 건국훈장(3등급)이 추서되었습니다. 그러나 1930년대 친일 행적이 확인되어 2011년 서훈이 취소되었습니다. 후손들은 ‘친일 행적은 독립운동을 위한 위장’이라며 이의를 제기했지만 보훈처는 받아들이지 않았고 행정 소송에서도 패소했습니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인물인 이종욱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그는 독립운동가인가요? 아니면 친일파인가요?
- 이종욱, 독립운동가인가? 친일 승려인가? (p63~65)
중국 신문 기자 출신으로 글이라는 매체의 묘한 매력을 알고 있던 그는 임시정부에서 글을 쓰는 곳이라면 어디든 참가했습니다.
그중 임시정부가 한국 독립운동사를 정리하기 위해 임시사료 편찬위원회를 설치해 한국 독립의 이론적 근거를 만들고 일본의 침략 사실과 한국 역사의 우수성을 외국 파견 특사에게 설명하기 위해 《한일관계사료집》을 편찬했는데 이 작업에 조동호도 동참했습니다.
조동호가 능력을 마음껏 발휘했던 분야는 따로 있었습니다. 임시정부가 발행한 〈독립신문〉은 창간 당시 한글 활자가 없었는데 조동호가 성경의 한글 자모를 하나하나 떼어내 직접 활자를 주조한 것입니다. (…) 만약 조동호가 없었더라면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배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활자 문제를 해결하자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신문에 글을 쓸 인재가 마땅치 않았던 겁니다. 이번에도 조동호가 나섰습니다. 그는 철혈, 냉열, 철묵, 묵망, 첨구자 등 여러 필명으로 〈독립신문〉에 민족정신을 일깨우는 항일 논설을 실었습니다.
- 조동호, 칼 대신 펜을 든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p111~113)
김철은 고향에서는 무의미하게 세월을 보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형제들에게 조국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결심을 밝혔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처지는 내일의 일조차 가늠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유산인 농토를 팔아 독립 자금으로 쓰겠습니다.”
이번에도 형제들은 그의 제안을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상의 끝에 집안 토지를 팔아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김철뿐 아니라 그의 형제들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식민 통치에 협력하라는 조선총독부의 끊임없는 회유와 협박으로 국내에서 생활이 어려워지자 김철은 고향으로 돌아온 지 2년 만인 1917년에 상하이로 망명을 떠났습니다. 상하이에 도착한 김철은 김규식, 여운형, 장덕수, 선우혁, 서병호 등을 만나면서 조국 독립에 대한 열망을 키워나갔습니다.
- 김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적 소유자 (p144)
초기 임시정부를 운영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과 실무를 담당했던 김철은 임시정부 청사의 법적 소유자이기도 합니다. 1919년 4월 17일 임시정부 청사를 이전할 때 대부분의 경비를 김철과 그의 형제들 그리고 전라도 지방 유지들에게서 모금한 자금으로 해결한 터라 상하이 마랑로 보경리 4호에 있는 임시정부 청사를 김철의 명의로 임대한 것입니다. 또한 김철은 재정을 다루는 데 능하고 상하이에 오래 거주하면서 중국 사정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김철의 생가 터에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 역사관이 세워진 이유입니다.
- 김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적 소유자 (p149)
‘파란만장’이라는 단어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이 김홍일의 일생이 아닐까요? 중국어를 알아들을 수 없어 애 먹던 중국 군관학교 학생을 시작으로 만주에서 독립군을 이끌고 러시아 내전에 참여했고, 중국군 소속으로 북벌과 중일전쟁을 치르면서 장군의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또한 임시정부의 한인애국단과 한국광복군을 지원했고, 해방 이후에는 다시 중국군에 돌아가 한인들의 순조로운 귀국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어렵게 귀국한 후에도 대한민국 국군을 건설하는 등 조국을 위해 기구하고도 사연 많은 평생을 살았습니다.
김홍일 장군의 분투를 귀감으로 삼으면서 수많은 항일 독립운동가의 노력과 희생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김홍일, 한중 진영을 넘나들며 일본과 싸우다 (p201~202)
백정기는 살아생전 세 번의 의거를 시도했습니다.
첫 번째 시도는 1923년 히로히토 천황 암살이었는데 관동 대지진이 발생하는 바람에 급히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미완의 의거는 그로부터 9년 뒤 이봉창이 다시 시도했습니다. 두 번째 시도가 훙커우공원 의거였습니다. 이쯤 되면 백정기와 한인애국단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깊은 인연인 것 같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시도는 육삼정 의거였습니다. 1933년 3월 17일 상하이의 고급 식당 육삼정에서 당시 상하이 주중 일본 공사 아리요시의 암살을 시도한 것입니다. (…) 몇 차례 예행연습을 마친 후 거사 당일 저녁 류자명 의장이 마련한 송별회에 열한 명의 동지가 모였습니다.
“동지들, 저승에서 만납시다.”
간단한 작별 인사를 남긴 백정기와 이강훈은 계획대로 연회가 열리기 전 육삼정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었습니다. 의거를 위해 준비했던 무기 또한 죄다 압수당했습니다. 남화한인청년연맹에 일본 경찰이 심어둔 밀정, 즉 스파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육삼정 의거 실패로 체포된 백정기는 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는 상고를 포기하고 복역하다가 폐병이 악화되어 복역한 지 1년도 채 안 된 1934년 6월 5일 서른여덟 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 백정기, 미완에 그친 의열 투쟁의 주인공 (p218~221)
한인 학병 탈출 1호 한성수의 합류는 한국광복군 내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일본 최고 교육을 받은 엘리트가 일본군의 앞잡이가 아닌 강제 동원되자마자 탈출해 한국광복군을 찾아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한성수의 합류 이후 학병 출신들이 연달아 찾아오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고무된 한국광복군 제3지대장 김학규는 학병들에게 군사 교육을 시키고자 한국광복군 군사훈련반을 설치했습니다.
꿈에 그리던 한국광복군에 입대한 한성수는 한국광복군 군사훈련반 1기생으로 입교해 교육과 훈련을 받았습니다. 5개월 동안 군사・훈련・정신・학교 교육을 받은 48명의 교육생은 졸업 후 한국광복군의 초급 장교로 거듭났습니다. 당시 동료들의 증언에 따르면 한성수는 뛰어난 신체 조건과 음악적 재능, 열정적이면서도 후덕한 인품, 카리스마 있는 지도력 등을 지닌 누가 봐도 멋진 청년이었습니다.
- 한성수, 학병 탈출 1호 한국광복군 (p265~266)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임시정부 요인 중에서 가장 뜨거운 학구열을 가진 인물을 꼽는다면 저는 주저 없이 이복원을 선택할 것입니다. 1914년 6월 13일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이후의 이복원 행적은 잘 찾을 수 없습니다. ‘윌리엄ʼ이라는 이름으로 1916년 6월 클레몬트 근처 업랜드관립소학교를 졸업했고, 독립운동 단체인 대한인국민회와 각종 동포 행사에 적지 않은 기부금을 냈다는 기록을 통해 캘리포니아주 남부 지역에서 노동과 학업을 병행했을 거라고 추정할 뿐입니다.
이복원이 미국에서 소학교(오늘날의 초등학교)를 졸업했을 때의 나이는 무려 30대 중반이었습니다. 심지어 온타리오중학교로 진학해 1920년 6월 졸업할 때의 나이는 마흔 살이 되기 직전이었습니다. 그만큼 그는 새로운 것을 배우고자 하는 의지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 이복원의 학구열은 끝이 없었습니다. 그는 중학 과정을 마친 후 1920년 9월 7일 미국 동부 버지니아주 렉싱턴으로 떠났습니다. 그곳에는 1839년 설립된 미국에서 가장 역사가 긴 주립 군사 대학 버지니아군사학교(VMI)가 있었습니다. 이복원은 더 높은 교육을 받고자 새로운 곳으로 이주했던 것입니다.
- 이복원, 학구열에 불탄 미국 영감 군사 전문가 (p292~293)
3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예순여섯 살의 이복원은 분단으로 북쪽 고향 땅을 밟지 못했습니다. 해방 이후 이미 고령이었기 때문에 특별한 활동은 하지 않았지만 그에게는 한 가지 꿈이 있었다고 합니다.
“저기(중국)에서 생각할 때 귀국하면 국군에 가담하여 이 한 몸을 나라에 바칠 각오를 하고 왔는데 시기가 좀 빠른 모양인가….”
해방된 조국에서 군인이 되고 싶었지만 그 꿈은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대신 귀국한 한국광복군 동지들이 직장을 구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군인처럼 보이지 않는 온유한 인상의 소유자였을 이복원은 조국 독립에 도움이 될 선진 학문을 끊임없이 탐구하다가 마흔 살이 넘은 나이에 중국으로 가서 독립운동에 뛰어들어 12년간 군사 전문가로 활동했습니다. 가족도 없이 독신으로 살다가 6.25전쟁 중 실종된 이복원. 평생을 한국의 군인으로 살기 위해 그 누구보다 뜨겁고 열정적인 삶을 살았던 그를 다시 한 번 조명해봐야 되지 않을까요?
- 이복원, 학구열에 불탄 미국 영감 군사 전문가 (p301)
■■ 차 례
들어가며
1부 임시정부의 기반을 마련하다
김가진 버림받은 애국자
신규식 애꾸눈의 민족 지사
이종욱 독립운동가인가? 친일 승려인가?
이동녕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호자
2부 임시정부, 독립운동을 전개하다
노백린 대한민국 하늘을 열다
조동호 칼 대신 펜을 든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엄항섭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숨은 살림꾼
김 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적 소유자
3부 한인애국단, 임시정부에 활력을 불어넣다
박찬익 대한민국 임시정부 항일 외교의 수장
김홍일 한중 진영을 넘나들며 일본과 싸우다
정정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보이지 않는 버팀목
백정기 미완에 그친 의열 투쟁의 주인공
4부 한국광복군, 조국 독립의 마지막을 불태우다
지청천 한국광복군 총사령관
한성수 학병 탈출 1호 한국광복군
오광심 한국광복군의 맏언니
이복원 학구열에 불탄 미국 영감 군사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