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6월 12일 [음력 : 2006년(丙戌年) 5월(丙辰) 17일(壬申)]
오늘의 감동뉴스는 누가 뭐라 해도 우리의 마음속에 항상 자리잡고 있었던 골프여왕 박세리의 부활은 정말 감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IMF로 국민들의 어깨가 떨어져 있을 때 힘을 주었던 박세리 선수는 국민적인 희망이었기에 더욱 반가운 것 같습니다.
정말 감격스럽습니다. 혹시 우리 주변에도 박세리 선수처럼 장기간 슬럼프에 있는 분이 계시다면 이번 기회에 힘을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자아자.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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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GA- 박세리, 화려한 부활...2년만에 우승(종합)
‘잊혀졌던 골프여왕’ 박세리(29.CJ)가 2년여에 걸친 깊은 슬럼프를 메이저대회 왕관으로 털어냈다.
박세리는 12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메릴랜드주 하브드그레이스의 불록골프장(파72.6천596야드)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시즌 두번째 메이저대회인맥도널드LPGA챔피언십 최종일 카리 웹(호주)을 연장 접전에서 제치고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박세리는 최종 라운드에서 3언더파 69타를 쳐 4라운드 합계 8언더파 280타로 웹과 공동선두로 정규 경기를 마친 뒤 18번홀(파4)에서 치러진 연장 첫번째 홀에서이글성 버디로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지난 2004년 5월 미켈롭 울트라오픈 우승 이후 까닭모를 슬럼프에 빠져 들어 컷오프와 하위권 추락을 번갈아 ‘주말골퍼보다 못하다’는 눈총을 받아왔던 박세리는이로써 화려한 부활의 나래를 폈다.
더구나 부활의 무대가 바로 LPGA투어에서 첫 우승을 올렸던 맥도널드LPGA챔피언십이라 감동은 더했다.
22승을 올린 이후 2년의 세월이 흐른 뒤 23번째 우승컵을 거머쥔 박세리는 메이저 우승컵도 5개로 늘렸다.
또 5개의 메이저대회 우승컵 가운데 맥도널드LPGA챔피언십에서만 1998년, 2002년에 이어 3개를 차지해 남다른 인연을 과시했다.
박세리의 우승으로 올들어 열린 15차례 대회에서 한국 선수 우승 회수는 7차례로 늘어났고 코닝클래식부터 3개 대회 연속 우승의 기록도 세웠다.
박세리의 부활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한편의 드라마와 다르지 않았다.
선두 미야자토 아이(일본)와 팻 허스트(미국)에 2타 뒤진 공동6위로 최종 라운드에 나선 박세리는 9번홀까지는 버디 3개에 보기 2개를 곁들이며 그저 선두권을 지키는데 그쳤다.
그러나 11번홀(파5) 버디로 웹, 그리고 김미현(29.KTF)와 함께 공동선두에 나서면서 본격적으로 우승 각축전에 뛰어든 박세리는 12번홀(파3)에서 무려 20m 짜리 먼거리 버디 퍼트를 홀에 떨구며 단독 선두로 치고 나갔다.
갈길은 멀었고 1타차 2위 그룹에 포진한 추격자는 너무 많았다.
게다가 13번홀(파4)에서 티샷이 러프로 밀린 박세리는 1타를 잃었고 앞서 경기를 펼치던 웹이 15번홀(파5)에서 버디를 뽑아내 오히려 1타차 공동 2위로 밀려났다.
15번홀(파5)에서 1타를 줄여 다시 공동선두로 복귀한 박세리는 16번홀(파4)에서1.5m 버디 퍼트를 집어넣으며 1타차 단독 선두를 되찾았다.
이미 웹이 8언더파 280타로 경기를 마친 상황에서 1타차 선두로 18번홀(파4) 공략에 나선 박세리는 그만 3퍼트 보기로 승부를 연장으로 넘기고 말았다.
하지만 연장 승부는 부활의 무대를 더 짜릿하게 만든 각본과도 같았다.
유틸리티우드로 친 박세리의 두번째 샷은 홀에서 한 뼘거리에 멈췄고 우승을 확신한 박세리는 두팔을 번쩍 지켜들었고 캐디와 포옹을 나눴다.
웹의 4m 버디 퍼트가 홀을 한참 비켜가자 박세리는 마크를 치우고 볼을 내려놓은 뒤 톡 쳐서 쉽게 넣는 ‘탭인(Tap in) 버디’로 우승을 확정지었다.
박세리에 앞서 부활의 노래를 불렀던 ‘영원한 동반자’이자 ‘라이벌’ 김미현(29.KTF)가 박세리에 1타 뒤진 7언더파 281타로 미야자토와 함께 공동3위에 올랐고 ‘천만달러의 소녀’ 위성미(17.나이키골프), 안시현(22)이 공동 5위(6언더파 282타)를차지했다.
또 임성아(22.농협한삼인)와 김영(25.신세계)이 5언더파 283타로 공동 9위에 올라 한국 선수 6명이 ‘톱10’에 이름을 올렸다.
대회 4연패에 도전한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은 4타를 줄이면서 추격전을 펼쳤지만 합계 5언더파 283타로 공동 9위에 머물렀다. kh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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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한국은행 가 만원권 발행
1978년 제42회 세계 사격 선수권대회 2종 기념주화(은화) 발행
한국 조폐공사에서 제조되어 1978년 6월 12일에 발행 되었으며 종류는 2종류로 무광 및 유광 프루프와 민트로 제조되었다.
이 오백원주화는 조폐공사에서 제조되어 1982년 6월 12일에 발행이 시작 되었으며 도안은 전면에 날아오르는 학을 넣었다.
2000년 한국은행 창립 50주년 기념주화(각종 합금의 黃동)
한국 조폐공사에서 제조되어 2000년 6월 12일에 발행 되었으며 종류는 1종류로 민트로 제조되었다.
2002년 한국은행 나 천원 4연 연결은행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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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한국 청소년대표팀, 제4회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축구사상 첫 4위 기록
1983년 6월 12일. 한국 청소년 축구 대표팀은 멕시코 몬터레이에서 전대미문의 기록에 도전하고 있었다. 제4회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준준결승. 상대는 우루과이였다. 아시아에서 태국이나 말레이시아를 이기면 열광하던 때였던 만큼 세계대회 4강은 꿈이나 마찬가지였다.
예선때 스코틀랜드 멕시코 호주와 한조에 편성된 한국은 스코틀랜드 전에서 0대2로 완패했다. 이때 국민들은 `한국 축구의 한계`라며 관심이 시들해졌으나 멕시코와 호주를 잇달아 2대1로 제압, 예선을 통과하자 분위기는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신화의 계절이 시작된 것이다.
우루과이와 운명의 일전에 들어간 한국은 후반 9분 신연호가 선제골을 넣어 기선을 제압했다. 한국은 동점골을 내줘 연장에 돌입했지만 연장전반 14분 신연호가 다시 천금의 결승골을 터뜨려 당당 4강. 전국은 열광했고, 외신들은 빨간 유니폼을 입고 벌떼처럼 공을 향해 덤벼든 한국팀을 `붉은 악마`라 부르며 격찬했다.
이어 브라질과 준결승. 한국은 김종부의 선제골로 세계 최강을 벼랑 끝으로 몰았지만 아쉽게 1대2로 역전패해 결승진출에 실패했다. 결국 한국은 4위에 머무르고 말았지만, `멕시코 4강`으로 한국축구는 한단계 도약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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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 최초 직선대통령에 당선
1985년, 브레즈네프가 죽은지 3년 후에, 새로운 개혁적 성향을 지닌 지도자가 권좌에 올랐다.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소련의 글라스노스트(개방)와 페레스트로이카(재건)을 약속하였다. 그러나 공산 국가는 이미 무너지기 시작하였고, 오직 전체주의가 뒷받침한 철의 유대만이 소련의 각 조각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있었을 뿐이었다. 고르바쵸프가 이 유대를 풀어놓자, 15개의 공화국은 각자 더 많은 자치권을 요구하였고, 특히 발틱해 연안 국가인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는 완전한 독립을 이루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보리스 옐친은 1991년 6월 12일 러시아 공화국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는데, 소련의 심장부에 해당하는 그의 공화국, 러시아에 보다 많은 자치권을 요구하였다.
급진적인 선동가로 평가받고 있는 보리스옐친은 1961년 후르시초프의 반스탈린주의자들의 제거가 극에 달하는 동안 30세까지 공산당에 가입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젊은 기술자는 곧 중앙의회의 서기장으로 지목되었고 힘있는 개혁가의 평판을 얻었다. 1985년 공산당의 차세대 서기장인 미하일 고르바쵸프는 옐친을 중앙위원회 서기장의 자격으로 모스크바로 불렀다. 6개월 후 그는 모스크바 시의회 서기장으로 임명되었다.
1991년 8월 19일, 일단의 강경파 공산주의자 집단이 고르바쵸프를 구금하고 브레즈네프 식의 국가로 복구할 것을 선언하였다. 옐친은 그들에게 대항하였으며, 그들의 쿠데타는 며칠만에 끝나게 되었다. 비록 옐친이 고르바초프를 구출해 내는데 성공했지만, 소련 연방의 통치 구조는 완전히 와해되었다는 사실은 모든이에게 명백해졌다.
즉 고르바초프는 각 공화국들의 연합을 시도하였으나, 결국 소련 공산당과 소련은 자신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1991년 12월 23일, 75년간의 소련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낫과 망치가 그려진 친숙한 붉은 깃발은 마지막으로 내려지고, 새로운 15개의 독립 공화국들의 15개의 깃발이 그를 대신하였다. 1992년 1월 1일, 소련 연방과 소련 공산당은 공식적으로 그 존재가 끝난 것이다.
그 후 러시아공화국으 엘친대통령은 새로운 구도에서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했다. 그가 급진적 개혁안 즉, 러시아경제의 시장경제로의 이행을 발표했을 때 그의 지지도는 폭락하기 시작하였다. 1994년 10월 그는 체첸공화국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투입했다. 그 유혈 사태는 1997년 1월 러시아의 굴욕적 패배를 알리는 러시아군 철수시점까지 계속되었다.
옐친의 건강문제도 또한 문제였다. 1996년 11월 옐친은 심장수술을 받았고 1997년 그는 폐렴에 걸렸다. 이러한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보리스 엘친은 지지도가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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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년 미국의 시인 브라이언트 세상 떠남
"위증과 투쟁, 그리고 살인과 약탈의 무서운 이야기, 이를 가리켜 사람들은 역사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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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안네 프랑크 출생
`다시 평화롭고 조용한 시절이 찾아오리라.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인간의 마음이 선하다는 것을 믿는다`. `안네의 일기`의 저자인 안네 프랑크가 1929년 6월 12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암마인에서 태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 후 안네와 안네 가족은 독일 나치의 유태인 말살정책으로 사춘기를 아버지의 사무실 책장 뒤 숨겨진 골방에서 보내야 했다. 이 일기장은 아버지 오토 프랑크가 둘째 딸 안네의 13세 생일 선물로 사준 것으로 일기에는 1942년 6월 14일부터 가족이 체포되기 사흘 전 1944년 8월 1일까지 은신처인 골방에서의 하루하루 주변 일상사가 기록돼 있다. 그것은 저널리스트를 꿈꿨던, 한 감수성 풍부한 소녀의 성장의 기록이자 시시각각 옥죄어 오는 나치의 마수를 바라보는 연약한 인간의 절규이기도 했다. 또한 그런 와중에도 이웃 소년에 대한 사춘기 소녀다운 첫사랑의 감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1944년 8월 4일 한 네덜란드 인의 밀고에 의해 독일경찰 게슈타포들에 발각된 안네의 가족은 아버지 오토만이 소련군의 아우슈비츠 해방으로 인해 목숨을 건졌고 안네를 포함한 나머지 가족들은 가스실험을 당하거나 굶주림과 병으로 사망했다. 안네 역시 그의 언니와 함께 1945년 3월에 베르겐 벨젠수용소에서 발진티푸스로 사망했다.
`안네의 일기`는 지인인 네덜란드인 미프 히스 부인에 의해 안네의 아버지 오토에게 전해졌고 그는 이것을 `어린 소녀의 일기`라는 제목으로 출판, 그 후 지금까지 50여개국에서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돼 5천만부 이상이 팔렸다. 암스테르담의 프린젠크라흐트 운하 가까이에 있는 안네 가족의 은신처는 현재 박물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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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9년 고려 숙종4년/윤관, 송나라서 <자치통감(資治通鑑)>을 가져옴.
1494년 남아메리카 대륙 발견
1494년 일본 침략군 인천 상륙
1780년 스위스의 초상화가 장 리오타르 사망
1829년 `알프스 소녀 하이디`의 작가 슈피리 출생
1854년 미국 롤필름 발명가 G.이스트만(코닥회사 설립) 출생.
1871년 조선 고종 8년,대원군 각지에 척화비를 세우게 함
1874년 근대 전통춤 명인 한성준 출생
1889년 철도사고/아마하(에이레) 사망 80명
1897년 영국의 정치가 R.A 이든 출생.
1898년 아귀날도, 필리핀의 독립을 선언-임시정부 수립, 대통령에 취임.
1912년 1901년 최초의 노벨 평화상 수상한 프랑스의 경제학자 파시 사망
1924년 미국 제41대 대통령 조지 부시 출생
1925년 우리나라 두번째 민간 비행사 장덕창, 모국방문 비행
1926년 임시정부, 상해에서 광동으로 이전을 결의.
1933년 세계공황대책을 협의키 위한 세계경제회의 런던서 개막
1935년 조선일보 태평로 신사옥 준공
1937년 소련에서 도하체프스키 사건 일어남-도하체프스키 등 8명의 장군
1941년 일본, 소련 통상무역협정체결
1942년 안네 프랑크, `안네의 일기`를 쓰기 시작
1943년 암태도(岩泰島) 소작쟁의 지도자 서태석 사망
1944년 독일 장거리로켓 V1, 런던 공격 시작
1949년 태평양 방위동맹 촉진 국민대회.
1950년 6.25전쟁 13일전… 한국은행 창립
1955년 사육신 묘에 육각묘비 건립
1958년 이원영경사 월북사건 발생
1962년 라오스 임시연합정부 수립
1962년 한국-칠레, 국교 수립
1964년 소련,동독 20년 우호조약 조인
1965년 메사돈사건, 정치문제화
1971년 유엔측, 비무장지대의 평화이용 제의
1972년 법률구조협회발족
1973년 제3차 남북조절위원회 서울서 개최
1975년 인도 고법, 간디수상 선거부정 유죄판결
1980년 오히라 일본 수상 과로로 사망
1981년 한국언론연구원 발족, 초대 이사장에 조선일보사 방우영 사장 취임
1982년 5백원짜리 새주화 발행
1983년 경상남도 양산군서 열차, 버스충돌, 6명사망 35명 부상
1984년 코메콘 정상회담 모스크바서 개막
1985년 스페인.포르투갈 유럽연합(EC) 가입
1986년 언론인 선우휘 선생 사망
1989년 알폰신 아르헨티나 대통령 사임
1989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분리돼 연구기관으로 독립
1992년 브라질에서 `지구환경정상회담` 개막
1994년 오스트리아 EU가입 결정
1995년 북미 준고위급회담서 경수로 지원협상 타결
2003년 16만년전 최고(最古)인류 유골 발견
2005년 김대중 전 대통령, 독일정부로부터 일등 대십자공로훈장 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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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세요!
첫댓글 6월 12일은 유달리 각종 화폐 발행기념이 많이있군요. 아마도 좋은 날인가봐요. 회원님 건강하시옵고 행복하셔야 합니다.
오늘 기념주화 , 가만원권, 500원주화등 우리나라 화폐와 관련된 내용이 많네요. 500원주화 처음보고 무지 신기해하던 기억이 나네요. 오랫만에 들려온 박세리의 우승소식도 반가운 소식입니다.
한국은행 창설일이다 보니 이런 일을 맞춰서 많이 했겠죠?
오늘은 우리나라 화폐에도 큰 이슈가 있었던날이네요...^^ 한번쯤은 읽어본 안네의 일기의 안네 프랑크가 출생한 날이네요... 박세리선수의 우승은 출근할때 라디오에서 우승할것 같다는 것만 듣고 출근해서 보니 우승했더군요...^^ 월드컵이 한창인 지금, 84년엔 세계 청소년축구에서 4강에 올랐던 날이구요... '붉은악마'라는 명칭이 등장하게된 계기가 됩니다.
유독 화폐발행이 많은 날이네요. 박종환 감독의 청소년 4강-아시아와 한국 축구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합니다. 벌떼처럼 공격하고 벌떼처럼 수비하는 토털사커를 보여주며 어린 선수들이 고국을 생각하며 열심히 하였지요, 그때 외신들이 붉은악마들이라 하였습니다. 정신력으로는 단연 세계 최고입니다.
오늘은 즐거운 소식이 많이 있었군요.세계청소년축구 4강,박세리선수의 23번째우승...내일 있을 토고전 반드시 승리해 열심히 응원하는 국민들을 기쁘게 해주길 바랍니다.
1차만원짜리.. 갖고싶다~!
박세리의부활 힘들고어려울때우리의가슴을울려주던그녀...오늘은 돈이많은ㅇ종류가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