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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야구의 라이벌인 연세대와 고려대가 정기적으로 연고전이
(야구를 비롯한 구기종목 친선경기) 가 유명하다면.............
고교야구에서는 라이벌중에 최고의 라이벌팀 정기적인 친선경기로 꼽히는
( 선린상고 對 덕수상고 정기전= 줄여서 선덕전 이라고도 함.)을 말할수 있습니다...
두 학교 모두 재학생 시절 및 프로야구에 걸출한 스타급 선수들을 대거로 진출시킨
야구명문구단 학교로써 아래의 메달들은 사실 저도 이번에 처음 접해보는 메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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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황금사자기 우승 - 출처 동아일보]
서울의 명문 상업고교이자 야구명문이기도 한 선린상고.
아마 70-80년대 고교야구 팬이셨던 분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이름으로 남아있을 것입니다. 70-80년대 고교야구계를 주름잡았던 강팀이었으며, 특히 고교야구의 인기가 막바지 절정으로 치닫을 때 즈음 박노준 - 김건우라는 최고의 스타들로 인해 최고의 인기를 누리기도 했던 팀입니다.
79년 이미 대통령배 우승, 청룡기 준우승을 거두며 고교 정상급 전력을 보이던 선린상고는 대어급 투수들과 막강한 타자들이 즐비했던 80년도 고교야구계에서 최후의 승자로 기록되었던 팀입니다.
당시 선린상고의 성적을 살펴보면,
대통령배 1회전 탈락 (광주일고 5-1 패) 청룡기 우승 (마산상고 5-0 승) 봉황기 16강 탈락 (세광고 2-1 패) 화랑기 준우승 (북일고 2-0 패) 황금사자기 우승 (광주일고 5-3 승)
80년도의 고교야구는 대통령배 우승의 광주일고(선동렬, 허세환), 봉황대기, 화랑기 우승의 북일고(이상군, 김용대), 대붕기 우승의 세광고(민문식), 대통령배 준우승의 광주상고(김태업, 이순철) 등이 군웅할거를 이루던 시기인데, 선린상은 청룡기 우승을 차지한 후 북일고, 광주일고, 세광고 등 강호들이 모조리 4강에 올라 진검승부를 펼치던 시즌 마지막 대회인 황금사자기에서 선동렬 선수의 광주일고를 꺾으며 우승을 차지, 그해 최강의 고교팀 자리에 올랐습니다.
당사 선린상고의 주전멤버를 살펴보면,
투수/우익수 박노준* (2학년, 좌투좌타) 고려대 - OB(86년) - 해태(92년) - 쌍방울(93년) - 97년 은퇴 투수/좌익수 나성국 (3학년, 우투우타) 단국대 - 상업은행(86년) - 프로 미입단 투수/3루수 김건우* (2학년, 우투우타) 한양대 - MBC(86년) - 93년 은퇴 - 97년 복귀 - 97년 은퇴 포수 김현성 (3학년, 우투우타) 단국대 - 한국화장품(86년) - 프로 미입단 1루수 유지홍* (3학년, 우투우타) 고려대 - MBC(85년) - 90년 은퇴 2루수 한두영 (3학년, 우투우타) 단국대 - 프로 미입단 3루수 김종호 (2학년, 우투우타) 단국대 - 프로 미입단 유격수 이정철 (3학년, 우투우타) 단국대 - 프로 미입단 좌익수/우익수 김웅대 (2학년, 우투우타) 연세대 - 프로 미입단 중견수 이경재 (2학년, 우투우타) 연세대 - 프로 미입단 우익수/대타 조영일 (2학년, 좌투좌타) 고려대 - 프로 미입단 * 청소년 대표
지명타자가 없던 고교야구의 특성 상 선린상고는 투수 3명이 외야수와 내야수를 번갈아 보며 계속해서 경기에 출전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포지션별로 주전멤버를 정리하는 것이 다소 복잡합니다.
3학년 언더핸드 투수이던 나성국 선수가 주로 선발로 많은 경기를 등판했으며, 왼손 박노준 선수는 우익수 자리를 지키다 주로 구원투수로 등판을 많이 했습니다. 3루수이던 김건우 선수의 경우, 시즌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투수로 등판을 하기 시작했으며, 주로 3루수 겸 5번타자로 출전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대통령배때만해도 주전 3루수이던 2학년 김종호 선수는 박노준, 김건우 선수와 함께 신입생이던 79년부터 주전을 차지했던 선수인데, 79년만해도 4번타자에 주전 3루수자리를 지킬 정도로 잘나가던 선수였지만, 대통령배 1회전 광주일고와의 경기에서 연거푸 실책을 저지른 후 경기에 잘 모습을 보이지 않게 됩니다.
당시 선린상고의 타선은 팀의 핵심이던 박노준 선수가 붙박이 톱타자로 공격의 선봉장 역할을 했으며, 2번으로는 2루수 한두영 선수나 외야수 김웅대 선수가 주로 출전을 했습니다. 중심타선인 3-4-5번은 거의 붙박이로 유격수 이정철 - 1루수 유지홍 - 3루수 김건우 선수로 구성이 됐었습니다.
당시 선린상고 마운드는 상반기에는 선발 나성국 - 구원 박노준, 하반기에는 선발 김건우 - 구원 박노준의 패턴이었는데, 많은 경기에서 3투수가 번갈아가며 등판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심지어 황금사자기 2회전인 군산상고와의 경기에선 3투수가 7번에 걸쳐 마운드자리를 바꾸기도 했습니다.
80년도 선린상고의 핵심선수는 두말할 것도 없이 2학년 듀오인 박노준 - 김건우 선수였습니다.
[80년 선린상고의 중심 박노준 - 김건우 선수]
1학년인 79년 이미 우익수/투수 겸 톱타자로 대통령배에서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했던 박노준 선수는 2학년으로 진급한 80년에는 더욱 빼어난 기량을 뽐내며 고교야구 최고의 스타 중 한명으로 발돋움 합니다. 톱타자로 나서는 타격에서는 빠른 발과 정확한 타격, 뛰어난 야구센스로 공격의 포문을 여는 선봉장 역할을 맡았으며, 선발투수인 나성국 투수나 김건우 투수가 위기에 빠질때는 마운드로 올라와 경기를 마무리 했습니다. 특히 선동렬 선수가 이끌던 광주일고와 진검승부를 펼친 황금사자기 결승에서는 선발 김건우 선수를 5회부터 구원등판해 광주일고 타선을 2안타 1실점 삼진 8개로 틀어막고, 타격에서는 6회 동점타, 8회 쐐기를 박는 2점홈런 등 당시 고교최고의 투수이던 선동렬 선수를 상대로 4타수 3안타 2득점 3타점의 맹활약을 펼치는 완벽한 '원맨쇼'를 펼칩니다.
신입생 시절 2루수 주전으로 출전은 했지만 박노준 선수에 비해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던 김건우 선수는 3루수겸 5번타자로 청룡기 우승 당시 타격 1위(16타수 10안타)에 오르며 서서히 주목을 받기 시작하더니, 하반기부터는 묵직한 강속구를 뿌리며 마운드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이며 박노준 선수에 못지 않은 스타로 주목받습니다. 김건우 선수는 특히 막강 선린상 타선에서도 유지홍 선수와 함께 가장 믿음직한 타격을 보였으며, 투수로서의 구위는 나성국이나 박노준 선수보다도 뛰어나 3학년이 되는 81년도에 큰 성장이 기대되는 선수로 평가를 받았습니다.
많은 고교야구 팬들에게 너무나도 유명했던 박노준 - 김건우 선수. 이 두 선수외에 선린상고가 80년도 고교최강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데에 큰 역할을 했던 3학년 선수로 3명을 꼽을 수가 있는데, 투수 나성국, 1루수 겸 4번타자 유지홍, 유격수 겸 3번타자 이정철 선수였습니다.
[좌로부터 나성국, 유지홍, 이정철 선수]
언더핸드 투수이던 나성국 선수는 팀내 다른 선수들과 달리 타선에선 큰 활약을 못하던 마운드가 주업인 선수였습니다. (물론 마지막 대회인 황금사자기에선 타격 8위에 오르기도 합니다) 까다로운 구질로 청룡기 우승 당시 4게임 모두 선발로 나와 방어율 0.69의 맹활약을 펼치며 우승의 주역이 되었는데, 당시 고교야구를 열심히 보던 제 기억에도 나성국 선수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는 것을 보면 팀내 스타들이던 박노준, 김건우 선수에 밀려 다소 제 대접을 못받았던 것 같습니다.
1루수인 유지홍 선수는 붙박이 4번타자로 특히 황금사자기에서 맹활약을 했습니다. 경북고와의 8강전에서 연타석홈런을 몰아치는 등 불꽃타격을 보이며 타율 1위(16타수 9안타)를 기록했으며, 최우수선수상, 수훈상, 타점상까지 휩쓸며 고교시절 마지막 대회를 화려하게 장식합니다.
유격수이던 이정철 선수는 수비가 그리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지만 2학년때부터 주전 유격수 겸 3번타자로 출전했으며, 3학년이 된 80년에도 변함없이 3번타자로 황금사자기 타격 2위 등 좋은 활약을 꾸준히 보였습니다.
당시 선린상고의 약점은 내야수비와 포수진에 있었는데, 대통령배 1회전 광주일고와의 경기에선 3루수 김종호, 유격수 이정철, 포수 김현성 선수가 번갈아가며 무려 8개의 실책을 저지르며 광주일고에게 손쉬운 승리를 헌납하기도 했습니다.
80년도 고교야구 최강 선린상고는 당시에도 화려한 멤버구성으로 주목을 받았던 팀인데, 안타깝게도 성인무대에서 그 명성을 이어갔던 선수가 없습니다.
81년도에도 고교야구 최고스타 자리를 지키던 박노준 선수는 고려대 시절 투수로 엄청난 혹사를 당하게 되고, 투수로서 구위가 많이 떨어지게 됩니다. (고려대 시절 한창때는 최고구속이 150km에 이른다는 신문기사도 있었음) 하지만 여전히 투타에서 뛰어난 가치를 지녔기에 프로 입단 시 최대어로 많은 화제를 모았으며, 많은 기대를 받으며 OB에 입단했으나, 투수와 타자 사이에서 방황을 하다 결국 타자로 정착하지만 기대에는 크게 못미치는 성적을 낸채 아쉬운 프로생활을 마무리합니다.
김건우 선수의 경우는 더욱 아쉽다고 할 수 있는데, 81년 세계 청소년대회에서 노히트노런을 기록하는 등 3학년때는 투수로서 더욱 뛰어난 기량을 보이나, 무리한 등판으로 역시 막판에 부상을 당하고, 한양대 진학 후에는 3루수 겸 타자에 전념을 합니다. (간간히 마운드에 오르긴 했음) 박노준 선수에 비해 처지는 대접을 받으며 입단한 MBC에서는 그러나 투수로 전향, 신인시절 최고의 활약을 펼치며 신인상까지 수상해 드디어 만개를 하는구나 했으나, 2년차이던 87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부상을 입으며 투수로서의 생명이 사실상 끝납니다. 이후 타자로의 전향, 은퇴, 복귀 등을 거듭하다 결국 97년에 너무나 아쉬운 은퇴를 하게 되죠....
4번타자이던 유지홍 선수는 고려대 진학 후에도 비교적 좋은 활약을 보였으며, 기대를 받으며 MBC에 입단하지만 큰 활약을 보이지 못한채 은퇴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훗날 LG의 스카우터로 근무하며 '주사위 던지기의 달인'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유명세를 타기도 하지요...
3학년이던 나성국, 한두영, 이정철, 김현성 선수는 무더기로 그해 창단된 신생팀인 단국대로 진학을 하는데, 나성국 선수는 신생팀의 에이스로, 김현성 선수는 주전포수로 꾸준히 출전하지만 큰 활약을 보이진 못하고 졸업 후에는 실업팀에 입단을 합니다. 키스톤 콤비이던 한두영-이정철 선수는 대학무대에서도 별다른 활약이 없었으며, 졸업 후의 진로는 자료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2학년으로 외야수로 출전하던 김웅대-이경재-조영일 선수는 3학년이 되던 81년 팀의 중심타자로 많은 활약을 보이고, 명문인 연세대-고려대에 모두 진학을 하나, 대학무대에서 별다른 활약을 못한채 사라집니다. 조영일 선수는 훗날 모교인 선린상고(인터넷고?)의 감독으로 부임을 하기도 합니다.
80년의 선린상고는 박노준-김건우 선수를 비롯, 많은 2학년들이 팀의 주축을 이뤘던 팀으로 이 선수들이 3학년이 되는 81년에는 고교야구무대를 휩쓸 것이라는 예상을 하게 했으나, 탄탄한 팀웤의 경북고에 밀리며 준우승만 3차례 기록하는 불운을 기록합니다. 특히 경북고와의 봉황기 결승 - 박노준 선수의 발목부상은 너무나도 유명한 일화이지요...
당시 선린상고가 우승문턱에서 번번히 주저앉았던 주요 원인 중의 하나가 허약한 포수-내야진이었는데, 80년에도 다소 허술했던 이 부분은 3학년인 포수 김현성, 2루수 한두영, 유격수 이정철 선수가 졸압하며 더더욱 문제가 심각해져 결정적인 순간마다 실책으로 팀의 발목을 잡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삼각형 모양의 'ㅅ'자가 새겨진 모자에 회색 유니폼이 왠지모를 위압감을 주던 팀, 80년도 고교야구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선린상고의 이야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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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린상고 출신의 대표적인 선수들)
선린상고의 대표적인 대명사는 역시도 ( 박노준 선수와 김건우 선수 ) 입니다.. 그 외에도 프로야구 원년 멤버인 MBC 청룡의 이길환 투수, OB베어스의 김우열 선수 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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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역시 수집을 떠나 , 사회인 야구 선수이시군요 .
자료 즐감입니다.
고교야구 대단했지요..저는 고향과 가까운 군산상고를 응원하였습니다.
군산상고 하면 (역전의 명수)라는 닉네임으로 유명한 학교 아닌가요? ^^ 옛날에 야구명문학교들이 참 많았었는데... 선린상고, 서울고, 휘문고, 배제고, 신일고, 천안북일, 부산고, 광주일고, 광주상고, 군산상고, 경북고 모두다 한마디로 짱짱한 야구명문학교들로써 걸출한 스타들도 많이 배출하였습니다..
요즘은 덕선전 안합니다요...ㅜㅜ
그야말로 기라성 같은 선수들을 배출했지요... 옛 생각에 잠시 젖어봅니다... ^*^!!!
박노준, 김건우가 날리던 시절.. 저는 선린중학교 재학중이었고..ㅎㅎㅎ 그당시 한번도 우승을 못해 속상했던 기억이 납니다..^^
1969년에는 선린 상고가 전국대회를 모두 석권 했다는 전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