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믿음 신뢰로 주님 앞에 회개하라 순종하라 버텨라 견너라 면류관 받을때까지 회개하라 영생 영벌이 있다 지옥도있고 천국도있다 기도가 죄를 없게한다 기도가 칼이다 나는 그리스도 향기 빛 소금이다 나는 거룩하니 너도 거룩하라 의인은 믿음으로 살라
피종진
2002년 12월 29일
바울의 신앙 승리
디모데후서4:7-8
우리 인생은 흘러가는 세월 속에 마치 물이 흐르듯이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 가운데서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가게 됩니다. 한 해가 가면 새 해를 맞이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감격 속에 맞이하지만 어느덧 또 그 해도 저물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지난 날의 모든 세월을 회상하면서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7,8절) 라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바울의 '최후 승리의 개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어떻게 신앙생활에 승리했을까요?
첫째, 선한 싸움에서 승리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7절상) 여기에서 '내가'라는 말은 매우 중요합니다. 신앙은 언제나 1대1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옆에 앞에 있는 분들이 아무리 신앙생활을 잘하고 좋은 일, 복된 일, 영광스러운 일을 많이 해도 내가 그 은혜를 받지 못하고 그 영광에 참예하지 못하면 그것은 한 폭의 그림을 보고 감상하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여러분과 저에게 1대1로 은혜를 체험하기 원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원하며, 천국에 입국하기를 원하며 신앙의 승리자가 되기를 원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싸워야 될 선한 싸움이 많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선한 싸움은 복음전파를 위한 싸움이었습니다. 그는 복음 전파를 위해서 옥에 갇히기도 하고, 태장으로 맞기도 했으며, 독사에 물리기도 하고, 풍랑을 만나기도 했으며,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는 고통을 당하기도 했습니다(고후 11:23∼28). 이러한 가운데서도 그는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면서 옥중에서 빌립보교회를 향하여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고 위로하고 권면했습니다.
신앙의 길은 바로 영적 전쟁의 길입니다. 로마의 철학자 시세르는 '나의 살아가는 것은 곧 전쟁일세'라고 친구에게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악의 영들과 더불어 싸우게 됩니다. 에베소서 6:12에 보면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악한 사탄과 더불어 싸워 승리하기 위해서 날마다 무장을 하고 있어야 됩니다. 말씀의 무장, 기도의 무장, 찬송의 무장, 성령의 무장이 있어야 되고, 영력을 갖추어야 되며, 항상 깨어 있어야 됩니다. 군인이 일선에서 자고 있으면 목도 잘리고 팔도 잘릴 수가 있습니다. 무기를 빼앗길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적을 감시하면서 틈을 주지 말아야 되고, 진격해오는 적을 무찔러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항상 깨어 기도하는 파수꾼이 되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9:27에 보면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영적 전쟁에서 싸워 이기려면 '나'라고 하는 존재를 언제나 죽여야 됩니다. 혈기도 죽이고, 감정도 죽이고, 모든 정욕도 죽이고, 하나님께 합당치 못한 것을 죽이고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악의 영들과 싸워 이기려면 이 세상의 모든 것들에게서 절대로 지배를 받으면 안됩니다. 물질, 부귀 영화, 향락 오락 연락에 지배를 받아서도 안되고 그것을 다 다스릴 줄 알아야 됩니다. 우리 힘은 미약해도 하나님이 힘주시면 능히 세상의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야고보서 4:4에 보면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세상에 아무리 취미, 오락, 연락 등이 내게 필요한 것 같아도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일은 버릴 수 있는 그런 믿음과 결단과 능력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악의 영들과 싸워 이길 수 있는 무기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도 마귀가 세 번이나 도전해왔을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를 물리칠 수가 있었습니다. 또 우리는 기도로서 마귀를 이길 수 있습니다. 주님은 잠자는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마 26:41)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늘 찬송의 생활은 근심을 물리치고, 마음의 고민을 다 물리칩니다. 찬송 속에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십니다. 찬송은 입술의 열매요,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가 됩니다. 하나님께 제사할 때 하나님이 그곳에 임재하시고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을 베풀어주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기도와 찬송의 생활이 습관적으로 계속 되어야 합니다.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고, 경건은 연습이라도 하라고 했습니다.
악한 사탄은 이 마지막 종말에 인류를 한사람이라도 더 지옥에 보내기 위해서 심지어 택한 자라도 미혹케 해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마귀들의 역사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한사람이라도 더 예수를 구주로 믿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 그리고 성령께서는 그 믿는 자를 천국에 합격하도록 그 가운데 역사해주십니다. 깨달음과 감동을 주시고 열매를 맺게 해주시며, 생각과 성품, 인격과 취미를 변화시켜주십니다. 우리는 성령에 사로잡힘 받아야 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우리의 혀가 성령에 사로잡힌 바 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말을 하게 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말을 하게 되며,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도구가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가장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말은 원망하고 불평하는 말입니다. 원망은 멸망을 가져오게 합니다. 우리는 악한 영들에 사로잡힘을 받는 자가 아니라 성령에 사로잡혀서 서로 긍휼히 여기고 용서해주고 싸매주고 위로해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 신앙의 경주에서 승리했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7절중) 우리는 신앙의 경주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믿음의 길을 출발했습니다. 누가복음 9:62에 보면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신앙의 경주에서 승리하려면 앞만 보고 달려가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을 앞에 만드신 이유는 앞만 보고 살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눈을 위에 만드신 이유는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고 위엣 것을 바라보며 살라고 한 것입니다. 주님을 바라볼 때 주님 안에는 기쁨과 영광, 부귀, 재물, 건강, 축복이 다 있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고,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시면 주님 것이 다 우리의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만 바로 믿고 그 안에 있기만 하면 절대 주 안에 있는 자는 망하거나 실패하거나 버림받지 않게 합니다. 주님께서는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고 말씀했고,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 10:29)고 말씀했으며,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신 28:1,6)고 말씀했습니다. 달려가는 자는 절대로 뒤돌아보지 말고 앞만 향하여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해주실 줄 믿습니다.
또 경기하는 자는 인내심을 가져야 됩니다. 히브리서 12:1에 보면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라고 말씀했습니다. 경주하는 사람이 힘들다고 중간에 포기하면 안됩니다. 마라톤 선수들이 열심히 달려 1등을 해서 금메달리스트 되는 것도 귀하지만 이미 메달 순위가 정해졌지만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30분, 40분 뒤에 헉헉거리며 끝까지 달려오는 선수를 보면 전부 다 박수로 환호해줍니다. 비록 우승은 못했지만 용기가 금메달감이라는 것입니다. 그 인내심이 귀한 것입니다. 어떤 분은 달려가다가 1등을 못할 것 같으면 포기해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은 이런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끝까지 인내해야 됩니다. 앞에 있는 상을 바라보고 인내하며 저 천성을 향하여 끝까지 달려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셋째, 믿음의 생활에서 승리했습니다.
"믿음을 지켰으니"(7절하)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 예수를 만난 이후 수많은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한 번도 굴하지 않고 줄곧 그분에 대한 믿음을 지켰습니다.
믿음은 세상의 모든 부와 명예와 쾌락을 합한 것보다 더 가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귀하게 여겨야 됩니다. 믿음을 지킨 자들에게는 의의 면류관(8절)과 생명의 면류관(계 2:10), 영광의 면류관(벧전 5:4)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순간의 만족을 위해 영원한 것을 포기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마태복음 10:22에 보면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했고, 유다서 1:20,21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처럼 복음 전파를 위한 선한 싸움에서 승리하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고 인내로서 신앙의 경주에서 승리하며, 믿음을 귀히 여겨 세상과 타협하지 말고 주님 앞에 서는 날까지 믿음을 잘 지킴으로 승리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희생한 것을 말할수 있어야한다 자신의 모든것을 희생한것이다 전제 제물에 포도주 붓는 의식 마지막순서 바울은 순교를 눈앞에 둠을 직감했다 나는 주님때문에 희생하는가 재자신이 생을 마감할때 다른이에게 주님을 위해 자신의 모든걸 희생했다고 말할수있는가 변함없이 희생하는가 변함이 없어야한다 선한싸움 열심으로 해야한다 인내해야한다 믿음으로 지킨다 면류관 받음을 기억하라 죄와 마귀와의 싸움이다 선한싸움이기고 달려갈길 가도록 마치고 끝내야한다 예수님을 믿고 일하라 믿음과 충성의관계 생애를 마감할때까지 주님께 충성하려면 어떤자세해야하나 면류관 상이다 상받을 일 있으면 말해보자 산제물 나에몸 마음 금제단앞에 드리니 받아주소서 은혜와 복내려 순종하세 하소서 죽음에서 나를구해 주시고 영생을 주신 예수께 경배합니다 등불준비하라 신부가 되어라 면류관 받는거 기억하라 자기 부인 주장 버려라 나에 마음 깨끗하게 완전하소서 내마음 청소하세 하소서 말씀을 깨달음이주사 마음벽을 없게 하소서 모든것이 주께로 말미암아 사오니 우리가 주의손에서 받은것으로 주께 드렸을뿐이야 끝까지 포기하지않고 끝까지 마쳣다 유혹인긴다 인내 열매 맺으리 참는자는 복이있다 믿음을 지켰다 유지 끝까지 믿음 지키기 사랑 믿음있어야한다 신뢰 믿음 가지고 가라 나에 심령에 불붙게 하소서 인내 믿음을 지키라 주님 명령이디 말씀받고 행동하라 끝까지 참으라 충성나온다 주님주인 나는 종 명령받는거 받기 천국에 내자리를 예비했다 마련했다 나에집을 마련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주님 나관계는 가까워라 동행하라 좁은길 십자가의길 함께 걸어야한다 나에 영 일어나서 걸어가게 해라 말씀먹고 행동하면 내영이 살수있다 몸 마음 목숨 뜻다하고 항상 뜨거워해라 내마음이 뜨거워야한다 성령충만 뜨거워해야한다 나에 달려 갈길 마치고 주님주신사명 마지막 호흡다하도록 처음과끝까지 달려갔다 충성을 위해 힘쓴자세 말한다 출생부터 임종까지 주님앞에 있어야한다 달려가고 믿음지키고 선한싸움 열심히한다 죄와 마귀와싸움 마음벽없게 하소서 죄마귀내안에 없게 하소서 자기싸움하여라 바울처럼 예수처럼 싸우라 피흘리기 까지한다 믿음으로 살자 은혜로 말씀으로 예수처럼살라 중고떄 나에게 예배드린거 내가 보았다 그떄도 현재도 미래도 계신다 하나님이 너에게 함께 있다 너는 내안에 나는 너안에 있다 주님께 바치기 생명까지 바친다 매일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라 어려워도 몸 마음 뜻행동 다하여서 희생하라 바울은 30년 넘게 희생했다 나도 희생 한다 나는 상받는다 주님 면류관주신 그날 기대하라 고난 핍박 믿음으로 이기자 내영아 주님앞에 똑바로 서라 참는자에게 인내라는 열매주리라
1. 네 가지 인 재앙(1~8절)
1) 첫째 인 재앙-정복(1~2절)
“[1] 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의 하나를 떼시는데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우렛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2] 이에 내가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어린 양이 일곱 인을 떼십니다.
인을 떼시매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우렛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십니다.
첫 번째 인을 떼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내가 보매 어린양이 일곱 인 중에 하나를 떼시는데 그 때에’. - '어린양이...그 때에''은 마지막 인을 뗄 때까지(8:1) 규칙적으로 나타나는 문구입니다(3,5,7,9,12절).
이는 그 어떤 인간도 뗄 수 없는 (5:3) 종말의 비밀을 어린양 자신이 여심으로 어린양께서 심판을 주관하시는 주체이심을 나타냅니다.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우레 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우렛소리 같이'는 하늘의 소리를 가리킵니다(4:5;요12:29).
한편 '오라'는 말 탄 자에게 명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네 생물의 '오라'는 초청에 말탄 자가 등장하여 즉각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에 보니 흰 말이 있는데. - 요한이 첫 번째 인을 떼고 난 후에 본 환상은 흰 말의 모습입니다. 이는 슥6:1을 반영합니다.
*슥6:1 “내가 또 눈을 들어 본즉 네 병거가 두 산 사이에서 나오는데 그 산은 구리 산이더라”
그러나 스가랴서에서는 색깔이 특정한 의미를 지니지 않는 반면 본서에서는 말 탄 자와 관련하여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흰색은 승리(勝利)와 정복(征服)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 땅에 심판을 위한 재앙을 내리려는 의도를 암시합니다.
그 탄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 본절에서 흰 말이 나오고 그 탄자가 활을 가지며, 승리를 상징하는 면류관(스테파노스)을 가진 것으로 보아 말 탄 자가 승리자(勝利者)요 정복자(征服者)인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가 구체적으로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1) 혹자는 로마 제국이나 로마의 정복자로 해석한다.
(2) 혹자는 메시야로 해석한다.
(3) 혹자는 복음과 그리스도라고 해석한다(1:14; 2:17; 3:4,5; 19:11-16; 20:11).
(4) 혹자는 적그리스도와 악의 세력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5) 혹자는 장차 나타나게 될 어떤 정복자를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이 견해들 중 처음의 두 견해는 과거적 해석으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세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닙니다.
그러나 문맥상 본문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예시하는 것으로 보아 마지막 견해 “장차 나타나게 될 어떤 정복자”가 가장 타당한 듯합니다(3-8절, 16,17절).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 '이기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니콘'은 '니카오'('정복하다')의 현재 능동태 분사로 심판의 현재성을 시사합니다.
또한 '이기려고'는 목적을 나타내는 부정 과거 능동태 가정문으로 궁극적인 승리를 시사합니다.
*“흰 말 탄 자”는 그리스도의 복음 운동을 비유합니다.
계속적으로 일어날 환난들에 대하여 말하려는 이 부분 계시는,
먼저 “이기고 또 이기려”하는 그리스도의 복음 운동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하므로 신자들로 하여금 자기들이 모든 환난을 확실히 승리할 것으로 내다보게 합니다.
그리스도의 승리는 벌써 우리 믿는 자들의 승리입니다.
요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신자들이 환난을 당해도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 환난 중에서도 그들의 영혼은 망하지 않는 까닭입니다(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벌써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에)
2) 둘째 인 재앙-전쟁(3~4절).
“[3] 둘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둘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니[4] 이에 다른 붉은 말이 나오더라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
둘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둘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더니.- 둘째 인에 해당하는 헬라어 '텐 스프라기다 텐 듀테란'은 문자적으로 '그 두 번째 그 인봉'이란 의미입니다.
이것은 첫 번째 인을 단지 '일곱 인 중에 하나'라고 언급한 것과는 달리 시간적 순서를 분명히 나타냅니다.
또한 비록 둘째 인을 뗀 자를 언급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처음 인을 뗀 어린양이 둘째 인도 떼었음이 분명합니다.
이에 다른 붉은 말이 나오더라. - '붉은 말'은 '피 혹은 불같이 붉은 색체의 말'이란 의미입니다.
여기서 붉은 색은 전쟁(戰爭) 혹은 살륙을 암시합니다(12:3;왕하3:22,23;슥1:8; 6:2).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 본문은 말탄 자의 사명을 나타내는 것으로 '붉은 말'이 상징하는 전쟁(戰爭)이나 살륙(殺戮)의 의미와 일치합니다.
'허락을 받아'는 무서운 모든 전쟁들이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도록 의도되었음을 시사합니다.
한편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는 목적을 나타내는 부정 과거 부정사 구문으로 '화평을 제거하기 위해'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이는 붉은 말을 탄자의 사명이 전쟁이나 살륙을 통해서 화평이 사라지게 하는 것임을 나타냅니다.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 - '서로 죽이게하고'는 목적을 나타내는 미래 능동태로 철저하게 끝까지 전쟁을 완수할 것을 묘사합니다.
한편 '큰 칼을 받았더라'는 '큰 무기'를 받은 것을 묘사합니다.
이것 역시 전쟁(戰爭)이나 살륙(殺戮)을 암시합니다.
이 전쟁(戰爭)에 대한 견해(見解)는 네 가지입니다.
(1) 혹자는 '종교적인 핍박'으로 해석한다
(2) 혹자는 적그리스도에 대항한 전쟁으로 해석한다
(3) 혹자는 전쟁을 통한 복음의 전파로 해석한다
(4) 혹자는 로마의 내란으로 해석한다.
이러한 견해들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여하튼 붉은 말의 사명은 전쟁(戰爭)과 살륙(殺戮)을 통해서, 종말을 알리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마24:7,8 “[7]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8]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보면 전쟁(戰爭)은 세상 끝 날까지 있을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 한번 평화의 시절이 올 줄로 잘못 압니다.
그러나 성경은, 전쟁이 이 세상 끝 날까지 있으리라고 하니,
우리는 이 세상에 소망을 전연 두지 않아야 됩니다.
3) 셋째 인 재앙-기근(5~6절).
“[5] 셋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셋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6] 내가 네 생물 사이로부터 나는 듯한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 하더라”
셋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셋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검은색'은 슬픔과 기근(饑饉)을 나타내는 것으로, 셋째 인의 재앙은 흉년(凶年), 기근(饑饉)을 상징합니다(렘4:27,28).
*렘4:27,28 “[27]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길 이 온 땅이 황폐할 것이나 내가 진멸하지는 아니할 것이며[28]이로 말미암아 땅이 슬퍼할 것이며 위의 하늘이 어두울 것이라 내가 이미 말하였으며 작정하였고 후회하지 아니하였은즉 또한 거기서 돌이키지 아니하리라 하셨음이로다”
한편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는 말은 전쟁(戰爭) 후에 식량을 저울에 달아 배급하는 절박한 기근의 상황을 묘사합니다.
이러한 상황은 유혈의 전쟁이 가져다주는 필연적인 결과입니다(겔4:9).
*겔4:9 “너는 밀과 보리와 콩과 팥과 조와 귀리를 가져다가 한 그릇에 담고 너를 위하여 떡을 만들어 네가 옆으로 눕는 날수 곧 삼백구십 일 동안 먹되”
전쟁 때엔 기근도 따라 생기는 법입니다.
마24:8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사람들이 먹을 것이 많으면 도리어 하나님에게서 멀어집니다.
이 세상에 이렇게 기근이 심한 것은,
사람들로 하나님께 가까이 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시37:16 “의인의 적은 소유가 악인의 풍부함보다 낫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의인은 가난함으로 오히려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기근은 심해도 하나님께서 그 때 사람들에게서,
“감람유와 포도주”는 빼앗지 않도록 하신다고 합니다.
감람유와 포도주는, 신령한 은혜를 상징합니다.
내가 네 생물 사이로부터 나는 듯한 음성을 들으니.
'나는 듯하는 음성을' 이 음성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입니다.
(1) 혹자는 어린양의 음성이라고 주장합니다
(2) 혹자는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주장합니다
(3) 혹자는 생물들의 음성이라고 주장합니다.
세 가지 견해 중 처음 두 가지 견해가 타당성을 지닌 듯합니다.
이르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한 데나리온'에 해당하는 헬라어 '데나리우'는 가격을 나타내는 소유격으로 보통 노동자의 하루 품삯입니다(마20:2).
*마20:2 “그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또한 '되'의 헬라어 '코이니케스'는 건강한 남자의 하루 식량을 나타내는 고대 단위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이러한 가격은 당시의 보통 시세의 12배 또는 최고 16배가 되는 가격으로 전쟁과 살륙의 재앙이 있은 후 초래된 심각한 기근의 상태를 시사합니다(마24:7).
*마24: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말라 하더라. - '감람유'와 '포도주'를 사치품이 아니라 일상 생활에 필요한 필수품으로 보아(신7:13; 11:14; 호2:8,22)
본문은 기근의 한계성을 나타낸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본문은 기근의 피해가 심각하게 증대되고 있긴 하나 본격적인 재앙은 아님을 나타냅니다.
4) 넷째 인 재앙 - 사망(7,8절)
“[7] 넷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넷째 생물의 음성을 들으니 말하되 오라 하기로[8]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그들이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로써 죽이더라”
넷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넷째 생물의 음성을 들으니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 '청황색'의 헬라어 '클로로스'는 누르스름한 녹색으로 창백한 모습을 암시합니다.
이는 전쟁(戰爭)과 기근(饑饉)으로 인한 사망(死亡)의 공포를 나타냅니다.
그 탄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란 표현은 의인화된 표현으로 근본적으로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사망'에 해당하는 헬라어 '다나토스'는 70인역에서 '온역'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데베르'를 번역한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것(눅21:10,11)과 에스겔의 예언과도 부합되는 것으로(겔14:21), 흔히 전쟁과 기근에 이어 나타나는 재앙입니다.
*눅21:10,11 “[10]또 이르시되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11]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겔14:21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내가 나의 네 가지 중한 벌 곧 칼과 기근과 사나운 짐승과 전염병을 예루살렘에 함께 내려 사람과 짐승을 그 중에서 끊으리니 그 해가 더욱 심하지 아니하겠느냐”
한편 '음부'의 헬라어 '하데스'는 부정 접두어 '아'와 '보이다'라는 의미의 '이데인'의 합성어로 문자적으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이는 전쟁과 기근과 온역과 같은 온갖 재앙의 결과를 의미합니다(1:18).
*1:18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그들이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땅 사분 일' 땅 위의 전면적인 환난이 일어나되 그 가운데서 사분의 일이라고 해석합니다.
이것은 사망과 음부의 권세가 한정되어 있음을 시사합니다.
한편 '권세를 얻어'는 사망과 음부의 권세가 땅의 사분의 일을 통제하는 막강한 것이라 할지라도 근본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시사해줍니다.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로써 죽이더라. - 넷째 인으로 인한 환난의 구체적인 방편은 겔14:21을 반영한 것으로 앞서 언급된 세인에 의해 실행된 환난보다 강한 것임을 시사합니다.
여기서 '검'은 '전쟁'을 상징하며, '흉년'은 '기근'을 말합니다.
'사망'은 죽음의 특수한 형태인 '온역'을 말하며(2:23; 겔14:21), '짐승으로 인한 죽음'은 전쟁 이후에 나타난 황폐로 인해서 이루어지는 사망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이 세상 끝(대종말)이 오기 전에도 사망의 위협을 늘 받아 왔습니다.
히2:15 엔 사람을 가리켜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이라고 하였습니다.
대 종말이 가까울 때엔 사람들이 더욱 사망의 위험을 느낄 재앙들을 만납니다.
이 세상 끝이 가까울수록 사람들이, 서로 죽일 연구를 쌓아 나가고 있습니다.
몇 백만 몇 천만명을 단번에 죽일 방침을 세워 놓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망의 위험이 증진됨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 위협보다 강한 실력으로 사람들을 영생하게 하는 복음으로 돌아오게 하려는 것입니다.
복음은 사람을 얼마든지 살릴 수 있는 능력입니다.
2. 다섯째 인 심판 - 순교자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9~11절)
1) 제단 아래 순교자(9절)
“[9]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본문은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 증거 때문에 죽임을 당한 순교자들의 영혼에 대한 묘사입니다(1:9).
공관복음에서는 복음 증거로 인한 순교가 여러 모양으로 예고되었으나(마24:9,10; 막13:9-13; 눅21:12-18) 본문에서는 이미 성취되고 있습니다.
그 순교자들은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13:15),
*13:15 “그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18:24)로서, 일반적으로 역사상에 있는 순교 사건들 가운데 죽임을 당한 자들을 가리킴과 동시에 종말에 핍박을 당한 자들을 가리킴과 동시에 종말에 핍박을 당해서 죽게 될 순교자들을 암시합니다.
*18:24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그 성 중에서 발견되었느니라 하더라”
한편 '영혼들'은 순교당한 '목숨'들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그들이 비록 순교를 당했으나 살아있는 사람의 모습으로 보여 진 것을 의미합니다.
제단 아래 있어. - '제단' 하늘에 있는 제단으로 해석합니다.
왜냐하면 본서를 통해 하늘의 제단이 여러번 언급될 뿐 아니라(8:3,5; 9:13; 11:1; 14:18; 16:7) 땅의 제단은 하늘 제단의 모형으로 제시되기 때문입니다(출25:9; 민8:4; 히9:23).
한편 '제단 아래 있어'라는 표현은 순교자들의 순교가 하나님께 드린 산 제물이라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역사적으로 그리스도를 적대한 자들의 흉칙한 박해를 상기시킴과 동시에 복음을 위해 종말에 교회가 순교의 각오를 새롭게 갖도록 합니다.
*순교야말로 자신해서 당할만한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순교는 우리의 결심으로는 당하기 어려운 점입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한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순교는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누구에게든지 힘을 주시면, 그가 순교하게 되어 집니다.
그러므로 순교의 행적을 읽는 자들은 순교자 자신을 숭배하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을 쳐다보아야 합니다.
그때에만 순교자의 행적이 우리에게 은혜 됩니다.
그 이유는, 그의 행적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능력 원천을 증거 있게 깨닫기 때문입니다.
순교는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 집니다.
다른 능력 있는 일들도 기름 붓듯한 성령의 힘으로 하게 됨과 같이,
순교도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골1:10~12 “[10]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11]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12]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이 부분 말씀에 “게”란 글자가 일곱 번 나옵니다.
모든 좋은 일은 하나님께서 신자들에게 은혜 주시어 “하게”하여 주십니다.
스폴존 목사의 부친이 “은혜”에 대하여 설교하면서 나중엔 “죽는 은혜”에 대하여 말하였습니다.
그때에 그는 회중에게 말하기를 “죽음의 은혜는 당신들 이 지금 받지 못하는 것이고 죽을 때에만 받는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여인은 18년간 귀신 들렸다가 예수님의 권능으로 고침을 받았고(눅13:11~13)
*베데스다 못 가의 병자는 38년 만에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괴로운 일을 만나서도 참아 기다려야 합니다.
본문에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란 말은 “죽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이란 말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만한 것은 그 순교자들이 왜 순교하였던가?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순교한 이유는
① 하나님의 말씀이 참됨으로 순교함(마5:17,18).
② 하나님의 말씀이 영화롭고 귀한 까닭에 순교함(롬8:31,벧전1:8,고후9:15)
③ 하나님의 말씀이 곧, 성경이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순교함.
순종치 않으면 죽거나 화를 받으며, 순종하면 영생을 받는 주님의 명령입니다.
2) 순교자의 기도(10절).
“[10]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 '거룩하고 참되신'은 하나님의 신적 속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신실하신 하나님에 대한 순교자들의 확신과 신뢰를 시사합니다.
한편 '대주재여'는 원래 종이 주인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용어로 절대적 권력과 소유권을 가진 자에 대한 호칭입니다(딤전6:2; 딛2:9).
이러한 호칭은 신약성경에서 하나님과(눅2:29;행4:24) 그리스도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었습니다(벧후2:1; 유1:4).
본문에 사용된 이 칭호는 절대적인 권능을 가진 하나님을 지칭합니다.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 '땅에 거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세상에 거하는 자들입니다(3:10; 11:10; 요8:23).
한편 '신원하여'는 구약 성경이나 신약성경에서 형벌과 보복과 연관되어 나타납니다.
이것은 개인적인 보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복의 권한은 인간에게 있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습니다(롬12:19).
*롬12: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본문에 나타난 신원 역시 하나님께 충성하는 자를 핍박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인들에 대한 보응으로 하나님의 궁극적인 심판을 의미합니다.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신약성경에 나타나는 중심 사상 가운데 하나입니다(눅23:34; 롬12:19).
*눅23: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3) 기도에 대한 응답 기도(11절).
“[11]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 '흰 두루마기'는 '옷들을 차려 입는 것'을 의미합니다(3:4; 4:4; 7:9,13; 19:14; 막12:38).
하나님께서 순교자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는 것은 영생과 승리를 보장하심을 시사합니다.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 '잠시 동안'은 시간의 연속을 나타내는 목적격으로 동일한 사건의 연장 속에서의 휴식을 의미합니다.
이는 복수를 신원하는 순교자들의 울부짖음으로부터의 휴식을 나타냅니다(14:13). 한편 '쉬되'에 대하여 혹자들은 '잠시 동안'과 연결지어 '탄원하기를 쉬었다'는 의미라고 주장하며 혹자는 천상계의 축복 가운데 쉼을 의미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닙니다.
왜냐하면 천상에서의 '잠시 동안'이란 시간의 개념이 인간들에게는 영원과 같은 긴 시간이 될 수 있으며(20:3), 의로운 자들의 쉼은 자연히 천상에서의 축복이기 때문입니다(14:13).
한편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 이들 모두가 동일인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순교한 자들을 지칭합니다.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 '차기까지'는 '순교자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소명을 다하기까지'를 의미합니다.
본문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순교자들의 수가 채워져야 종말이 온다는 숫적 개념을 의미 한다 기 보다는 교회가 더 많은 순교를 각오하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함을 시사합니다(7:14; 롬11:25).
*계7:14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롬11:25 “그들을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제목 : 진노와 구원
하나님으로부터 봉인된 책을 취하신 그리스도께서 이제 그 인(印)을 하나씩 떼십니다.
지난주에는 1~5째 인을 떼었습니다.
인을 뗄 때마다 나타나는 사건들은 한 마디로 고통(苦痛)과 환난(患難)의 시대에 대한 상징(象徵)들입니다.
첫 번째 봉인은 흰 말(정복), 둘째 봉인 붉은 말(전쟁), 셋째 봉인 검은 말(기근-경제 혼란), 넷째 봉인 청황색 말(사망), 다섯째 봉인 죽임을 당한 영혼들을 보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현격한 대조를 이루고 있는 두 개의 내용들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먼저 여섯째 인을 떼자 어린 양(그리스도)의 진노가 분출되고(12-17절),
다음에 그 진노 가운데에서 구원받는 성도들의 모습이 나옵니다(7장).
3. 여섯째 인 심판-진노와 큰날(12~17절)
1) 우주적 징조(12~14절).
(1) 천지 대변이 일어납니다(12절)
“[12]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 같이 되며”
큰 지진이 나며. - 어린양이 여섯째 인을 떼자 하나님의 작정 가운데 자연의 질서가 대혼란에 빠지며 마지막 날이 임박했음을 보여줍니다.
'큰 지진'에 대한 경고는 종말의 현상 중 하나로 이미 예시되었고(8:5; 11:13, 19; 16:18; 겔38:19; 욜2:10; 암8:8; 학2:6; 마24:7,8; 막13:8,),
하나님의 형벌로도 나타납니다(사2:19).
*사2:19 “사람들이 암혈과 토굴로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땅을 진동시키려고 일어나실 때에 그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할 것이라”
한편 여섯째 인을 뗀 이후의 자연의 혼란에 대한 해석의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①혹자는 이들을 마24장과 관련하여 사실적으로 해석합니다
②혹자는 이들을 상징적으로 해석합니다.
이 두 견해 모두 타당성이 있습니다.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 같이 되며.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이는 검정색 염소 털로 만든 옷으로 슬픔을 표시하는데 사용되곤 하였습니다(사50:3).
*사50:3 “내가 흑암으로 하늘을 입히며 굵은 베로 덮느니라”
해가 자신의 빛을 상실하고 슬픔을 상징하는 총담 같이 검게 되었다는 것과 달이 핏빛으로 변하는 것은 종말의 현상을 묵시적으로 나타낸 표현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에 있을 우주적 대이변의 심판을 시사합니다(사13:10; 렘4:23; 겔32:7,8; 욜2:31; 3:15; 람8:9; 미3:6; 마24:29).
(2) 하늘의 별들이 떨어집니다(13절)
“[13]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본문에서는 하늘의 별들이 겨울바람에 흔들려 떨어지는 무화과로 비유됩니다.
설익은 열매 같이 별들이 땅에 떨어지는 것은 종말이 임박하였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구약 성경에서도 비슷한 예가 제시되고 있습니다(사34:4; 나3:12, I Enoch 2:1; 41:5; IV Ezra 4:15).
(3) 하늘은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옮겨집니다(14절)
“[14]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지매”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떠나가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페코리스데‘는 '분리하다'는 의미를 지닌 '아포코리조'의 부정과거 수동태로 말지 않은 두루마리 종이를 반으로 자르면 한쪽으로 말리는 현상을 나타냅니다(사34:4).
이는 종말에 있을 하늘의 대변동에 대한 비유로, 하나님을 대적한 자들에게 임할 심판의 엄중성을 나타냅니다.
각 산과 섬이 제자리에서 옮기우매. -본문은 전혀 움직임이 없던 산과 섬들도 지각의 변동으로 요동하는 현상을 묘사합니다(렘4:24).
*렘4:24 “내가 산들을 본즉 다 진동하며 작은 산들도 요동하며”
이러한 종말의 양상은 상징적이든 축자적이든 큰 재앙과 고통을 나타냅니다
2) 우상숭배자들의 반응(15~17절)
(1) 하나님을 대적한 자들은 모두 심판을 받습니다(15절).
“[15]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 틈에 숨어”
본절은 종말의 대변동을 맞아 각 계층의 사람들이 완전히 멸망하게 된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즉 일곱 계급을 언급함으로써 하나님을 대적한 자들은 예외 없이 심판의 대상이 됨을 시사합니다.
땅의 임금들과. - '땅의'라는 언급은 인간들이 처한 모습이 불신앙 상태였음을 묘사해 줍니다.
한편 '임금들'은 궁극적으로 권력을 가진 통치자들을 가리킵니다.
왕족들과 장군들과. - '왕족들' 임금에 버금가는 권력을 소유한 자를 가리킵니다(18:23; 막6:21).
한편 '장군들'의 헬라어 '호이 킬리아르코이'는 보병 약 600명을 지휘하는
'군단의 지휘관'으로(막6:21; 19:18) 군대의 권력을 가진 자들을 지칭합니다.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 본문은 앞서 언급된 권력을 지닌 지배층과는 달리 자기만족적이며, 남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유력한 계층을 가리킵니다(13:16; 19:18).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 '각 종과 자주자'는 사회적으로 자신의 인권이나 자유가 없는 계층과 대개 상업에 종사하는 일반 서민을 가리킵니다.
설사 이들이 지배 계급이나 경제적 부를 누리는 자가 아니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대적하고 마귀의 종이라면, 천지가 대변동하는 종말에는 동일하게 공포와 심판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한편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는 종말에 나타날 고통과 심판을 피하는 모습을 나타낸 것으로 심판의 괴로움을 암시합니다.
(2)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를 가리워 달라합니다(16절)
“[16]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말하되'는 현재 능동태 직설법으로 극적이며 생동감 있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종말에 심판을 당하는 자들이 산과 바위에게 비참한 재앙을 가리워 달라고 하는 요구는 종말(終末)의 재앙(災殃)이 얼마나 참혹한가를 시사해 줍니다(호10:8).
*호10:8 “이스라엘의 죄 곧 아웬의 산당은 파괴되어 가시와 찔레가 그 제단 위에 날 것이니 그 때에 그들이 산더러 우리를 가리라 할 것이요 작은 산더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리라”
한편 '우리 위에 떨어져'는 부정과거 명령문으로 '지금 당장 떨어져라'는 긴급함을 나타냅니다.
이는 10절의 순교자들이 하나님께 신원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없는 무생물들에게 호소하는 비참함을 보여줍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는 심판의 날에 죄인들이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를 간접적으로 시사해 줍니다(창3:8,).
한편 '어린양의 진노'는 역설적인 표현으로 본서에서 유일하게 언급됩니다.
어린양은 희생과 온유의 상징임에도 불구하고 본문에서 더 깊고 영구적(永久的)인 분노를 나타내는 '오르게스'와 연결시킨 것은 철저한 악의 종말을 극명하게 나타냅니다(5:5; 마25:41).
*계5:5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마25:41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3) 견디기 힘든 심판을 받습니다(17절).
“[17]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그들의 진노의'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진노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어린양이 성경 여러 곳에서 동격으로 언급됩니다(22:3,13; 살전3:11; 살후2:16).
이러한 하나님과 어린양의 진노는 역사적 사실이며 동시에 종말론적 심판으로서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대적하는 악에 대한 보응입니다.
한편 '큰 날이'의 헬라어 '헤 헤메라 헤 메갈레'는 문자적으로 '그 큰 그날'이란 의미로 '큰'이 강조된 표현입니다.
이는 악의 무리들에게 임하는 심판의 공포로 인해서 외쳐진 용어로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의 날임을 시사함과 동시에(욜2:11; 습1:14; 유1;6), 하나님의 진노의 범위가 전 우주적이라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누가 능히 서리요. - 본문은 심판으로 인한 멸망이 너무 엄청나므로 그 어떤 죄인도 피할 길 없이 무력함을 나타냅니다(말3:2).
*말3:2 “그가 임하시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이 티스 뒤나타이 스타데나이'는 부정과거 수동태 부정사 구문으로 수사 의문문입니다.
이는 본문을 말한 주체가 15절에 언급된 모든 계층을 대표한 인간들임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그들이 피할 길 없는 엄청난 하나님의 심판에 직면하여 극도의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음을 시사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흰 말(2절)은 ‘정복’을 상징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이 흰 말을 그리스도로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마24:4,5에 예수님께서 적그리스도의 미혹을 첫 번째 징조로 말씀하신 것을 볼 때, 적그리스도로 보는 것이 타당해 보입니다.
적그리스도의 미혹을 조심합시다.
붉은 말(3,4절)은 ‘전쟁’을 상징합니다.
죄의 결과, 그리고 화평하게 하는 복음을 거절한 결과로 전쟁과 파괴, 대결과 분열, 증오와 불화가 생깁니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영원한 평화가 있습니다.
검은 말(5,6절)은 ‘기근’ 곧 경제 혼란입니다.
물가가 너무 비싸서 많은 돈을 지불하고도 극히 소량의 양식 밖에는 살 수 없습니다.
인플레이션까지도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데 사용됩니다.
세상에서의 부요나 물질 대신 다함이 없고 썪지 않는 영원한 생명과 부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청황색 말(7,8절)은 ‘사망’을 상징합니다.
전쟁, 교통사고, 질병, 천재지변 등으로 엄청난 사람들이 죽습니다.
당신은 이런 상황들을 보면서 영원한 삶의 길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때문에 성도들은 박해를 받고 순교까지 당합니다.
나도 말씀대로 살고 믿음을 지키기 위해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잠시동안만 기다리라고 말씀하십니다(11절).
순교자의 피가 핍박하는 자들에게는 복수의 근거가 되고, 불신 세계에 대한 심판으로 성도들의 정당성이 입증되고, 하나님의 정의가 증명됩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당할 고난을 내다보시고 4, 5장에서 먼저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보여주신 것 같습니다.
고난 후에 영광이 있음을 믿으시고 인내하는 중에 하나님 만나는 모두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