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분석을 통한 영적성장에 관한 연구
- C. G. Jung을 중심으로
지도교수 정 태 기
목 차
Ⅰ. 서론 ………………………………………………………………… 1
1. 연구동기와 목적 ․……………………………………………… 1
2. 연구의 방법과 전개 ․………………………………………… 2
Ⅱ. 꿈의 이해 ………………………………………………………… 5
1. 꿈의 일반적 의미 ……………………………………………… 5
2. 꿈의 기독교적 의미 …………………………………………… 8
3. 성서에 나타난 꿈과 계시 ………………………………… 10
Ⅲ. 융의 꿈 이해 …………………………………………………… 15
1. 융에 있어서 꿈이 태동하는 자리 ……………………… 15
2. 융의 꿈 해석에서 꿈 해석의 중요 요소 ……………… 18
Ⅳ. 꿈과 영적 성장 ․…………………………………………… 39
1. 꿈을 통한 하나님과의 만남 ……………………………… 39
2. 꿈을 통한 인격완성 ………………………………………… 51
3. 꿈 분석과 영적 성장 ……………………………………… 58
Ⅰ. 서 론
1. 연구 동기와 목적
인간은 살아갈 때에 두 가지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 하나는 이성의 논리가 지배하는 낮의 세계이고, 또 하나는 휴식으로 이야기되는 잠의 세계이다. 이성이 활동하는 낮의 세계는 너무나 분명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고 잠의 세계는 꿈과 같은 알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이 논문에서는 꿈에 관심을 두고자 한다.
원시인들은 잠과 죽음이 서로 깊은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사람이 죽은 후에도 새로운 상태로 존재하면서 가족이나 이웃의 삶에 계속 영향을 미친다고 믿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이 잠을 자고 꿈을 꿀 때에 영혼이 잠시 몸을 떠나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원시인들만이 죽음과 잠을 신비롭게 생각하고 매료되었던 것은 아니다. 기술과 학문이 고도로 발달한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잠과 죽음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이 때문에 생리학, 심리학, 정신의학, 그리고 정신분석학이 잠과 꿈과 계시의 상호 관계를 매우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또한 종교 역시 꿈과 현실이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 이해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1)
도대체 꿈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잠들어 있는 동안 잠깐 왔다가 사라지는 하찮은 심리적 유희일까?
꿈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이야기해 주는 인격의 핵심인 영의 언어이다. 여기서 영이란 인간이 지니고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하나님의 형상인 영을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다. 꿈은 바로 하나님의 형상인 영이 인간에게 하는 이야기이다. 그런 면에서 꿈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말씀하시는 수단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영이 말하는 언어는 대부분 상징을 통해서 전달된다. 그러므로 이 상징을 이해하지 못할 때 우리에게 주어지는 가장 심오한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총체적 인격의 핵심인 영은 의식의 체계를 초월할 수 있고 시간과 공간을 넘어 설 수 있으며, 이성이 깨닫지 못하고 지나쳐 버린 것을 꿈은 결코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의 삶에 중요한 의미를 의식이 모르고 지나칠 경우 영은 반드시 꿈을 통해 우리의 의식으로 하여금 그 의미를 깨달아 인식하도록 강요한다. 내가 서 있는 현실을 나의 의식이 모르고 있을 때 영은 꿈을 통해, 상징을 통해 내가 서 있는 위치를 분명히 알려 준다. 그러나 꿈을 무시하는 사람은 이렇게 중요한 꿈의 가르침을 받을 수가 없다.
본 논문을 통해 꿈은 허상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 존재하는 분명한 하나의 실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란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애매하게 알고 있는 무의식이 아주 친근감 있게 느껴지게 되기를 바라며, 자신의 꿈과 스스로 대화함을 통해서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나 건강하고 창조적인 삶을 살도록 돕는데 본 논문의 목적이 있다.
2. 연구의 방법과 전개
이 논문은 꿈이 가지는 의미를 살펴보고 그에 대한 정확한 꿈 분석 이론들을 살펴보고 스스로 꿈을 이해하고 꿈의 메시지를 통해 자신의 처한 상황을 극복함으로서 우리의 어두운 그림자상을 회복하고 영적 성장을 돕고자 의도된 것이다.
앞에서 밝힌 연구 동기와 목적을 중심으로 다음의 순서로 전개할 것이다.
2장에서는 꿈의 의미와 꿈의 구조에 대해 다룰 것이다. 프로이트 이후 꿈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꿈이 실제로 의미를 가지게 되었고, 구조가 밝혀지기 시작했지만 그 이전에는 그 위치와 의미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다. 현대의 꿈 이해에도 이에 크게 다를 바가 없기 때문에 그 의미를 분명히 하고자 한다. 꿈이 어떠한 모습으로 메시지를 전하는지를 상징의 이해를 통해 밝히고, 꿈이 기독교 속에서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 그리고 꿈에 대한 이해는 어떠한지를 알아보겠다. 또한 꿈에 대한 기독교적인 고찰로서 성서에 나타난 꿈을 다룰 것이다. 하나님의 계시 수단으로서의 꿈과 환상을 고대 히브리인들은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알아보고 그들의 꿈 전통이 어떻게 전해지게 되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3장에서는 C. G. Jung의 꿈 이해에 대해 다룰 것이다. 융은 프로이트와는 달리 꿈의 구조를 성적 결과로서 보지 않고 꿈속 중심 자기가 전해주는 내적 메시지로 이해했다. 융의 꿈 이해를 통해 왜 꿈을 꾸게 되는지, 꿈을 만들어 내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다룸으로써 꿈이 가지는 기능이 무엇인지, 꿈이 삶에 미치는 영향은 어떤 것인지를 개괄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융의 꿈 해석에서 다루어지는 주요한 상징적 요소에 대해 다룰 것이다. 꿈을 통해 나타나는 자신의 상징이 무엇인지 살펴볼 것이다. 꿈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안다는 것은 곧 자신의 위치와 상황을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열등한 모습인 그림자를 인식하고, 사회 속에서 적응하고 살아가는 자신의 가면을 쓴 모습으로서의 페르조나(Persona), 자신의 내적 인격으로서의 또 하나의 성(性) 아니마/아니무스에 대해 다룰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삶에서 언제나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자기(Self)에 대해 다룰 것이다. 이러한 상징들은 모두 자기 실현 과정에서 인정되고 통합되어져야 할 원형적인 요소들이다.
4장에서는 꿈이 우리의 영성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꿈속에 나타나는 원형의 상징, 특히 내적 자기의 상징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살펴봄으로서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을 체험하고 만나는 통로로서 꿈을 이해 하고자 한다. 꿈은 내속에서 울려오는 메시지이고, 그것은 곧 하나님의 음성으로 이해함으로써 꿈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인격의 완성으로 나아가는 길을 모색하고, 그러한 꿈 분석의 과정이 우리의 영적 성장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고, 꿈과 함께 하는 삶의 풍요로움을 살펴볼 것이다.
5장에서는 우리가 이해한 꿈의 중요성을 삶 속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꿈을 분석하는 기술을 몇 가지 소개하려고 한다. 탈무드에 의하면 분석되지 않은 꿈은 읽히지 않은 편지와 같다고 하였다. 분석되지 않은 꿈은 완전한 꿈이라고 할 수 없다. 꿈 분석은 자신의 꿈에 대한 의식적이고 의도적인 반응이다. 꿈 분석과 내용의 전개는 C. G. Jung의 이론을 기초로 삼을 것이다.
마지막 6장 결론에서는 꿈이 우리 삶에 가지는 영향과 영적인 성장에 관한 본 연구과정을 통합하는 것으로서 마무리 하고자 한다.
Ⅱ. 꿈의 이해
꿈은 우리가 잠든 사이에 일어나는 특수한 정신기능의 일부이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꿈꾸기 전날이라든가 그 이전에 그 사람이 생각한 것, 기분, 인상 같은 과거의 경험과 관계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꿈꾼 사람의 마음에 변화를 일으켜 꿈꾼 뒤에도 어떤 특수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현재와 미래에 작용한다. 꿈은 일반적으로 관념 표상의 연결이 논리적이지 않기 때문에 기억에 되살리기 어렵다. 꿈을 하나도 안 꾼다는 사람이 많지만 대개는 꿈을 꾸면서도 기억하지 못할 뿐이다.
1. 꿈의 일반적 의미
미국의 꿈 전문가 캘빈 홀(Calvin Hall) 교수는 다음과 같이 꿈을 설명한다.
꿈은 수면 중에 겪게 되는 이미지의 연속으로서 그 성질상 시각적인 것이다. 꿈에는 대개 꿈꾸는 사람을 포함한 서너 명의 등장 인물이 나타나며, 몇 개인가의 장면으로 구성되는데, 흔히 꿈꾸는 사람과 관련된 일련의 작용 및 반작용이 따르게 된다. 그것은 마치 꿈꾸는 사람이 연기하고 구경하는 영화나 드라마 제작과 흡사하다. 한편, 꿈속의 사건들은 실제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므로, 꿈이란 하나의 환각에 불과하지만, 꿈꾸는 사람은 마치 그가 실제로 일어나는 어떤 일을 보고 있는 듯이 경험하게 된다.2)
“꿈에 무슨 뜻이 있는가?”하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학 시대에 꿈을 믿는 것은 미신이다”, “꿈보다 해몽이 좋다”는 속담도 있다. 꿈을 해석하는지 소설을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회의적인 사람도 있다. 그런가 하면 “내 꿈은 언제나 맞는다”고 기대를 걸어 보는 순진한 사람도 있다. 또한 꿈을 가지고 점을 치려는 사람들도 있다.
꿈에 뜻이 있다 없다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경험의 문제이며 있다 없다 하는 설득의 문제가 아니다. 꿈에 대한 관조를 통하여 무엇이든 얻은 것이 있는 사람에게는 꿈은 의미가 있는 것이며 그것을 경험하지 못했거나 경험하고자 하지도 않는 사람에게는 꿈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경험하지 않아서 모르는 것을 그러니까 ‘무의미’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꿈에 뜻이 있다면 어떤 뜻인가? 여기에도 실로 다양한 견해의 차이가 있다. 원시인에게 있어 꿈은 흔히 현실의 연장이며, 고대인에게 꿈은 신의 사자(使者)이며, 예언의 수단이며, 이 경향은 한국의 현대인에게도 상당히 많이 남아 있다.3)
또한 시베리아와 중앙 아시아의 샤마니즘에서 꿈은 환자의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내는 구실을 하고, 우테(Ute)인디언 부족은 병치료에 꿈의 해석을 이용했다. 동양인에게도 꿈의 신비력과 초월적인 기능이 무척 오랜 고대로부터 현재까지 인정되고 있으며 그것이 길흉화복의 점복(占卜)의 수단으로 이용되어 왔고 그런 의미의 해몽사전 같은 것은 동서를 막론하고 발견된다.4)
그러나 꿈의 뜻을 알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꿈은 정말 아무 뜻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꿈은 도저히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것도 있다. “이 꿈의 뜻은 바로 이것이다”하고 단정하는 순간, 우리는 그 꿈에 더욱 엉뚱한 해석을 내리는 수도 있다. 꿈은 그야말로 우리의 의식이 쉽게 닿지 않는 미지의 세계(무의식)이다. 그러므로 이 미지의 세계의 의미를 조금이라도 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이 자기의 꿈을 들여다보고 생각해 보고 또한 다른 경험 있는 사람과 함께 의논하는 오랜 경험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꿈을 해석할 때에 통속적인 호기심에 의해 맞는다 안 맞는다, 이런 뜻이다 저런 뜻이다 하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결과를 낳게 된다. 꿈에 나타나는 것은 우리 마음속의 여러 가지 콤플렉스(complex)이고, 꿈을 꾼 사람의 마음속의 콤플렉스를 자극하게 되므로, 사람들은 꿈이 제시하는 실상을 보지 못하고 그 속에서 자기의 콤플렉스를 보게 되기 쉽다. 다시 말해서 꿈 그 자체가 지니고 있는 뜻을 파악하지 못하고 꿈에 투사된 각자의 문제(각자의 그림자)를 꿈의 뜻이라 믿는 것이다.5)
융에게 있어서 꿈은 하나의 스승과 같은 것이었다. 그의 일생을 통해서 그는 수많은 사람의 수많은 꿈을 분석하였지만, 동시에 자기 자신의 꿈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그에게 있어 꿈은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융은 프로이트가 꿈을 감추어진 내용-꿈의 잠재적 내용(latent dream content)과 겉에 나타난 꿈-현시된 꿈의 내용(manifast dream content)으로 나누어, 우리가 보는 꿈 뒤에 숨겨진 무의식의 욕구, 충동, 그 밖의 것들을 알아내고자 하는 입장을 비판한다. 꿈은 상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며 그 속에 의미가 있다고 그는 주장하는 것이다. 가령 꿈에 ‘사과’가 나왔으면 그것은 어디가지나 ‘사과’로서의 뜻을 갖는 것이다. 그것이 아버지나 성적 욕망을 감추고 있는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는 것이다. 융은 이렇게 말한다. “꿈은 감추지 않는다. 그것은 가르친다”6)
2. 꿈의 기독교적 의미
유대인들은 잠을 피조물의 고유한 기능으로 이해했다. 하나님과 인간의 질적인 차이 중의 하나가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는다는 것이다(시121:4). 하나님은 피곤을 모르신다(사40:28). 그러나 인간은 번민이 생기면 잠을 이루지 못한다(단2:1). 하나님은 피조물인 인간이 잠들어 있을 때 그를 신비한 방법으로 다루신다.7)
구약성서의 지혜서 가운데 하나인 욥기에서도 욥의 친구였던 엘리후는 “사람이 꿈을 꿀 때에, 밤의 환상을 볼 때에, 또는 깊은 잠을 잘 때에......하나님은 사람들의 귀를 여시고, 말씀을 듣게 하십니다. 사람들은 거기에서 경고를 받고 두려워합니다(욥33:15-16).”라고 말하면서 고대인들이 꿈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게 한다. 이것은 신약성서 시대에 내려와서도 마찬가지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요셉이 그의 약혼녀 마리아와 결혼하고, 헤롯의 박해를 피해 이집트로 피난가며(마2:13-15), 이집트에서 다시 돌아와 나사렛에 정착하게 되는 것은 모두 꿈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를 따른 것이었다(마2:19-22). 즉 그가 꿈에 나타난 사실을 흘려버리지 않고, 하나님의 계시로 받아들여 그대로 따랐던 것이다. 우리는 이 사실들에서 고대 사람들이 꿈과 환상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가하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전통은 그 이후 바울이나 베드로에게도 그대로 이어진다. 베드로는 욥바에서 머무르고 있던 어느 날 하늘에서 내려온 보자기에 굽이 달리지 않은 짐승들의 고기가 담겨 있는데 그것을 먹으라는 환상을 본 다음에 이방인들에 대한 태도가 달라져서, 그들에게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행10:1-43). 바울 역시 어느 날 마케도니아 사람이 “어서 와서 우리를 도와주십시오”라고 애타게 부르짖는 환상을 보고서, 그것을 하나님의 계시라고 확신하여 아시아로 선교여행을 떠나려던 계획을 바꾸고 마케도니아 쪽으로 선교여행을 떠나게 된다(행16:6-16). 베드로나 바울 모두 꿈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읽었던 것이다.
꿈과 환상에 관한 이런 생각은 초대교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초대교회 교부들이었던 순교자 유스틴이나 터툴리안, 오리겐, 어거스틴 역시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꿈과 환상을 통해서 말씀하시며, 그것들은 영적인 세계의 진리를 알려주는 상징이라고 생각하였다. 지극히 합리적인 생각에서 꿈과 환상에 아무런 의미도 두지 않는 현대인들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5세기경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로 자리잡고, 교회의 제도적인 측면이 강화되면서 점차 변하게된다. 왜냐하면 교회의 제도적인 가르침 이외에 하나님으로부터의 직접적인 계시의 통로를 인정할 경우 교회의 권위는 그 절대성을 주장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쓰인 성서를 라틴어로 최초로 번역한 제롬과 교회의 제도적인 틀을 완성시킨 그레고리 교황은 꿈을 미신이라고 비판하면서, 꿈을 따르기 보다 교회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교회의 이런 주장은 그 다음에도 계속 이어져서, 중세기에 카톨릭신학을 완성시킨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 자신이 꿈과 환상을 통해서 신비한 체험을 많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를 미신으로부터 구하고 기독교 신학을 당시의 과학정신과 조화시키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기초로 해서 기독교 신학을 다시 재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꿈을 무시하는 태도를 취하였다. 꿈과 환상에 대한 교회의 무시는 그 다음에 전개되는 계몽주의 시대의 합리주의와 과학정신에 힘입어서 한층 더 심화되었다.8)
20세기에 들어서자 그 동안 미신의 일종으로 천시 받았던 꿈 해석을 새롭게 이해하려는 운동이 일어났다. 이러한 운동은 지그문트 프로이드(Sigmund freud)가 1900년에 발표한「꿈의 해석」을 통해서였다.9)
초대교회의 꿈 해석 전통에 처음으로 관심을 보인 학자는 융이었다. 융의 꿈 해석 방법과 원리들은 기독교 꿈 해석 전통을 더욱 풍요롭게 하였다. 그는 우리의 꿈이 자신의 삶과 경험에 기초하고 있으며, 자신의 꿈을 가장 잘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데 있어서 초대 교부들과 다르지 않다.10)
꿈에 대한 현대 심리학 연구가 활발해짐에 따라 모든 꿈은 나름대로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우리의 심리적, 영적 성장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꿈 해석을 통해 자신의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이해함으로써 융이 “인격완성”(Individuation)이라고 부르고 있는 정신적인 완전과 영적인 성화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11)
이제 기독교 꿈 해석의 전통은 꿈에 관한 의학적 연구나 정신 치료자들의 임상 경험 덕분에 더욱 풍부하고 알차게 되었다. 그리하여 꿈을 의미 없는 사소한 것으로 보거나 꿈 해석을 위험한 미신으로 여기는 신학 흐름은 거의 사라졌고, 이제는 꿈을 하나님과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통로로 보는 입장이 두드러지고 있다. 물론 심리학계에서도 꿈을 무시하는 학자들은 거의 없으며, 이제는 꿈 해석을 이용하여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 세계를 파헤치는 방법들이 널리 이용되고 있다. 이처럼 꿈을 소중하게 여기는 신학 흐름과 심리학파들을 따라 꿈을 적절하게 해석하기만 한다면 꿈은 자신의 자아를 발견하는 장소요, 하나님과 만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12)
3. 성서에 나타난 꿈과 계시
성서는 꿈에 관한 자료의 보고하고 할 수 있다. 성서에는 특히 꿈에 관한 내용 뿐 아니라 환상이나 천사의 출현, 황홀경, 영에 사로잡힘 등에 관한 구절들이 많은데 이 모든 현상들이 명확한 구분이 없이 묘사되어있다. 성서는 꿈, 환상, 어떤 황홀현상, 천사의 출현, 그리고 성령 체험을 똑같은 방법으로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는 꿈과 환상을 동일한 현상으로 다룰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꿈속에서 자신의 참 모습, 참 자기(Self)를 만난다. 그러나 성서에서는 꿈을 통해 하나님을 만난다. 하나님은 꿈을 통해 자신을 계시해 주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유대 전통에서는 꿈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성서 속의 인물들의 꿈 이해를 통해 살펴보겠다.
야곱은 하란으로 향하는 어떤 길에서 잠을 자고, 꿈 속에서 천사를 보고, 또 깊은 감동을 받는다. 야곱은 제단을 쌓고 하나님과 계약을 맺는다. 꿈을 꾸기 전 야곱은 도망자였다. 그러나 야곱이 꿈에서 깨어나서 일련의 행위와 하나님과의 계약을 맺은 후 그는 히브리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고리를 형성하게 된다. 그 사건 후 그는 형 “에서”에게 속했던 장자권의 축복을 훔쳐 달아나는 단순한 도망자가 아니었다. 야훼와 계약을 맺어, 하나님과 선택받은 그의 백성 사이의 관계를 보다 분명하게 한 그는 장차 온 땅에 퍼져 번성할 민족의 아버지가 될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처럼 중대한 사실이 밝혀진 것은 바로 “벧엘”에서 꿈을 꾸고 그 꿈을 해석하는 동안에 하나님과 나눈 대화를 통해서였다. 야곱은 꿈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직접 찾아오셨음을 확신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꿈이나 환상을 통해서 그들에게 말씀하신다고 믿는 히브리인들의 신앙을 엿볼 수 있다.13)
우리가 성서적으로 꿈을 이해하려면 “하나님이 꿈이나 환상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직접 찾아오신다”는 기본 원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관계를 맺고 싶어하시며 꿈이나 환상과 같은 내적인 경험을 통해서 그 소원을 이루신다.
꿈으로부터 보다 많은 것을 얻으려면 꿈을 이해하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꿈에 대한 반응으로 적절한 행동을 취해야 한다. 야곱은 개인적으로도 성장하고 부족의 지도자로서 충분한 자질을 갖추는데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꿈을 분석하고 행동에 옮겼다.14)
다니엘은 꿈 해석가로서 매우 강렬한 인상을 준다. 다니엘의 꿈 해석은 꿈 해석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보다 깊고 풍요롭게 해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매우 좋은 실례라고 할 수 있다. 다니엘은 하나님을 “기도와 헌신에 대한 응답으로서 자기에게 중요한 일들을 알려 주시는분”으로 믿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신비로운 비밀을 드러내시는 분”이라고 부르고 있다(단2:29-47). 그는 꿈을 해석하는 지혜가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다니엘은 꿈을 해석하는 동안 모든 지혜가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고 그 지혜를 달라고 기도했다. 그는 꿈 해석뿐 아니라 그 내용 자체도 자신의 생각이나 지식 또는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굳게 믿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꿈을 주시는 것은 그 꿈을 해석함으로서 자신의 내부 깊숙이 숨어 있는 생각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라고 보았다.15)
신약에서 예수님의 출생 이야기는 많은 꿈과 환상으로 장식되어 있다. 마리아와 결혼할 때 요셉이 꾼 꿈은 가장 좋은 실례라고 할 수 있다.
요셉은 마리아가 자기와 결혼하기도 전에 아기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조용히 파혼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천사가 꿈에 나타나 마리아와 결혼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얘기해 준다. 요셉은 잠에서 깨어나서 천사가 시키는 대로 했다. 그는 마리아를 자기 집으로 데려와 아내로 삼았다.
요셉은 꿈이 전하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꿈을 예사롭게 보지 않고 소중하게 생각했다. 그는 영의 세계를 직접 만날 수 있다는 것과 꿈을 통해서 이러한 만남이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것을 믿었다. 그는 자기 혼자 힘으로 깨달을 수 없는 지혜를 꿈에서 얻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 요셉은 꿈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떳떳하게 꿈의 메시지를 따라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요셉은 하나님의 뜻이 꿈을 통해 자신에게 전해진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16)
예수님의 출생 이야기에는 이외에도 몇 가지 꿈과 환상들이 더 등장한다. 이 꿈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데, 매우 적극적인 반응과 행동이 뒤따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마리아는 꿈에 천사가 이르는 대로 사촌 언니 엘리사벳을 방문하였고(눅1:36-40), 요셉은 꿈의 경고를 받아들여 가족을 이집트로 데리고 감으로써 커다란 화를 면했다(마2:13-22). 양치는 목자들은 구주가 태어났다는 천사들의 메시지를 믿고 말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찾아 마을로 내려왔다(눅2:9-15). 그리고 동방박사들은 꿈이 지시하는 대로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을 헤롯에게 알리지 않고 자기 고향으로 돌아갔다(마2:12).
구약과 신약에는 여기서 모두 다룰 수 없는 많은 상징 자료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베드로와 바울을 비롯한 초대 기도교인들이 경험했던 꿈이나 환상 또는 성령 체험은 매우 인상적인 것이다. 아마도 요한계시록은 신․구약을 통틀어 신비한 상징 자료들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을 것이다. 성서에 나타나는 이와 같은 상징들은 상상으로나 실제로도 경험되고 있다. 이러한 것은 영적 삶에 의문을 품고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꿈과 환상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우리가 꿈 해석을 통해 이 상징들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을 때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보다 더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다. 상징 경험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선물로 여기는 전통은 구약과 신약을 통해 많이 발견되며, 오늘날에도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힘과 활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다.17)
우리가 꿈이나 그 밖의 상징 자료들을 비롯한 내적인 자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내버려둔다면 우리의 삶은 황폐하게 될 것이다. 이에 반해 이러한 자료들을 잘 가꾸고 소중하게 다룬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보다 활기 차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될 것이다.
Ⅲ. C. G. Jung의 꿈 이해
꿈은 늘 계속되는 일련의 꿈들의 맥락 속에서 나타날 뿐 아니라 전반적인 삶-가정생활, 직장, 사랑과 미움-이 처한 정황 속에서 일어난다. 꿈은 깨어 있는 동안에 삶 속에서 경험한 것들에 대한 가장 깊은 정서적 반응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당연히 당신이 꾼 꿈에 대한 정확한 해석은 그 꿈을 당신의 외부적인 삶이 처한 정황에서 볼 때에만 가능할 것이다.
1. 융에 있어서 꿈이 태동하는 자리
꿈을 만들어 내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 의식이 아닌 것, 즉 무의식이다.
융은 무의식의 내용물이 의식의 세계에 표현되는 것으로 보고 꿈을 대단히 중요시하였다. 꿈을 무의식으로 통하는 길로 보았을 뿐만 아니라, 무의식이 그것을 통해 조정활동을 행하는 것으로 보았다. 왜냐하면 꿈은 의식적 태도의 표현, 즉 무의식의 한 단면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꿈에는 보상기능이 있다. 프로이트가 “나는 왜(why) 이런 꿈을 꾸게 되었을까?”하는 원인론적인 관점에서 꿈을 관찰했다면, 융은 “이 꿈은 나를 어디로(where to) 끌고 가려는 걸일까?”하는 목적론적인 관점에서 꿈에 접근하였다. 이런 관점에서 고찰한 결과 꿈이란 꿈꾼 이의 의식이 무시했거나 소홀히해서 그의 정신적인 삶에 불균형이 생겨났을 경우, 그에게 부족되어 있는 부분을 가르쳐 주고, 개선 가능한 자료를 제공하여 그에게 현상황을 교정시키도록 하기 위해서 꾸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꿈꾼 이가 낮 동안의 삶 속에서 인간 정신의 어느 한 측면만을 일방적으로 발달시켜서 정신의 전체적인 균형이 깨졌을 때, 꿈은 잘못된 의식의 태도를 보상하기(compensate) 위해서 꾸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꿈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되면 우리는 우리 정신의 부족한 부분을 알게 되고 그 부족한 부분들을 보충해서 전체적인 통합을 이룰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18)
꿈이란 정신상태의 자기표현이고, 보상의 원리이다. 즉 꿈은 인간의 정신이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는가 하는 점을 스스로 표현하기 위해서 꾸는 것이며, 그 목적은 의식 상태의 보상에 있다는 것이다.
융은 말하기를 “만약 꿈에서의 행동을 어떤 공식으로 나타낸다면, 보상의 개념이 가장 적합한 것 같다. 왜냐하면 그것만이 꿈속에서의 행동방식을 요약해 주기 때문이다”라고 했다.19)
꿈은 우리의 현상태를 보여 준다. 무의식은 우리가 병들었거나, 고통받거나, 결핍된 것 등을 상징적 메시지를 통하여 알려 준다. 무의식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신적 문제의 원인들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할 필요가 있는 모든 것들을 꿈을 통해 보여준다.
융이 말하는 무의식은 단지 우리 안에서 잘못된 것들을 고치는 것에만 관련되어 있지는 않다. 그것은 최대한으로 우리의 안녕을 겨냥하고 있다. 무의식을 통한 꿈의 목적은 결국 완전한 인격발달이다. 우리 개개인이 타고난 인생의 삶 속에 본래부터 숨겨져 있는 잠재능력을 창조적으로 전개하는 것이다. 이것은 치유를 넘어서서 온전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꿈을 이해하는 것은 어떤 단순한 정보만을 얻으려고 할 것이 아니다. 꿈속에 들어가서 그 꿈을 다시 한 번 살려고 해야 한다. 꿈은 우리에게 위장되지 않은 방식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우리가 꿈을 이해 할 수 없다면 그것은 우리가 현대를 살면서 상징의 언어와 접촉하는 방법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상징은 꿈들의 언어이다. 상상의 세계에 익숙해 있는 사람-소위 ‘원시적인’ 사람들-은 누구나 꿈을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꿈의 상징들은 무의식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것을 표현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흔적을 남긴다. 그 순간부터 인격발달의 방향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예를 들면, 꿈에서 시들어 버린 나무는 너무나 이지적으로, 즉 머리로만 살아왔던 삶을 상징-표현-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상징이 꿈꾸는 사람에게 준 인상은 그 꿈을 꾸는 사람의 삶을 본능이나 자연에 뿌리를 내리게 함으로써 그의 성격을 재형성하게 한다.20)
이러한 융의 생각의 밑바닥에는 인간의 무의식에는 자기-조절 기능이 있어서 언제나 인간의 정신을 통합하고자 한다는 기본적인 사상이 깔려 있다. 따라서 꿈이란 인간의 다른 정신 작용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성장과 완전성의 실현을 위한 내적 충동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21)
무의식은 우리 의식과는 다른 관점에서 우리 삶의 일들을 파악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꿈을 불신하거나 무시하지 않는다면, 우리 장래 일에 대한 미신적인 흥미만을 가지고 대하지 않는다면, 꿈은 우리 삶의 귀중한 내용들을 알려줄 것이다. 꿈에는 분명히 어떤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으며, 우리가 삶의 어떤 문제에 진정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지를 알려주고, 우리 이웃과 병든 관계를 맺고 있다면 어떻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을 가르쳐 준다. 또한 꿈을 통해서 우리는 꿈속에 담겨져 있는 역동적인 에너지를 사용하여 좀더 풍요롭고 활기찬 삶을 살 수 있다.22)
그러므로 우리는 꿈에 대해서 좀더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꿈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를 살펴보아야 한다.
2. 융의 꿈해석에 있어서 꿈해석의 중요 요소
1)그림자 인식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자기를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말에 “저 잘난 맛에 산다”고 하거니와 ‘나’는 다 잘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 나를 못살게 군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주장하면 할수록 나는 나의 약점과 나의 결점을 못 보는 장님이 된다. 무의식 속에는 나도 모르는 또 하나의 ‘나’가 있어 나도 모르게 나로 하여금 실수를 하게 해서 내가 지향하고 내가 주장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순된 행동을 하게 한다.
가) 그림자와 억압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자기를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자신을 생각하고, 자신의 비밀스러운면까지 스스로 생각하고 비밀로 남길 수 있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 속에 빠지면 빠질수록 자신의 약점과 결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자신의 숨은 모습을 보지 못하는 반쪽의 사람이 되고 만다. 무의식 속에는 나도 모르는 또 하나의 ‘나’가 있어서 나도 모르게 나로 하여금 실수를 하게 해서 내가 지향하고 내가 주장하는 것과 전혀 다른 모순된 행동을 하게 한다. 융은 이것을 ‘그림자’라고 했다. 그림자는 꿈을 분석할 때에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고, 그리고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무의식의 요소이다. 그림자는 자아의식의 반대편에 있는 정신요소로서, 자아가 그 존재에 대한 인식을 거부하기 때문에 자아의 반대편에 생기게 된 정신의 한 요소이다.23)
그림자를 만날 때, 자기실현을 향한 제1단계가 이루어진다. 그림자는 정신의 어두운 측면, 즉 의식의 빛 속으로 가져오지 않았던 자신의 일부분이다. 그것은 성격의 ‘원시적인’(미발달 상태나 초기발달 상태에 있는) 측면이다.24) 자아의식이 강할수록 그림자의 어둠은 짙어지게 되고, 선한 나를 주장하면 할수록 악한 것이 그 뒤에서 짙게 도사리게 되며, 선한 의지를 뚫고 나올 때 느닷없이 악한 충동의 제물이 됨으로서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게 된다. 그림자를 인식하지 못할 때, 그것은 본능의 냉혹하고 위험한 양상을 지니게 된다. 그리하여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한 일을 저지를 수 있게 된다.25)
대부분의 경우 그림자를 이루고 있는 내용들은 그것이 그에게 불쾌하거나 유해하게 생각되어서 자아가 배척해버린 요소들이나, 의식될 기회를 잃어버려서 미분화된 채로 남아 있는 원시적인 심성 또는 심리적인 특성들이다. 예를 들면, 사람들이 자기 속에 있다고 인정하기 싫어하는 미숙하고 열등한 속성들이나, 그가 아직 분화시키지 못한 특성을 말하는 것이다. 영국의 작가 스티븐슨이 쓴 소설「지킬박사와 하이드 씨」는 의식적 인격과 무의식적 인격의 이중성을 표현하는 좋은 예다. 하이드는 지킬박사의 그림자라고 할 수 있다. 그 두 사람이 실제로는 한 사람이면서 두 인격을 가졌듯이, 모든 사람 속에는 인격의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동시에 존재한다. 융은 이러한 긍정적인 측면을 자아, 부정적인 측면을 그림자라 불렀던 것이다. 우리 나라 전래동화 속의 흥부와 놀부, 콩쥐와 팥쥐도 한 사람 속의 두 인격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26)
그림자가 본래부터 그렇게 악하고 부정적이고 열등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늘에 가려져 있어서 무의식에 버려져 있어 분화될 기회를 잃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의식되어 햇빛을 보는 순간, 그 내용은 창조적이며 긍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그림자의 부정적인 측면은 대개 상대적인 것이다.27) 드물게 그림자가 긍정적인 측면을 띠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자아의식의 좋은 면이 억압되었을 때이며, 이때 ‘나’는 스스로를 지나치게 열등하다고 생각하고 ‘좋은 것’은 남에게만 있다고 믿는다.28)
그림자는 투사(projection)에 의해서 가장 잘 포착된다. 투사는 어떤 대상에 대해 강력한 감정반응을 일으키고 자아가 그 대사에 집착하게 만든다. 투사가 일어났을 때 자아는 그 대상에 대하여 초연해질 수도 무관심할 수도 없다. 이것이 투사현상의 특징이다. 투사는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므로 자신은 그것이 투사된 자기의 마음(그림자)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를 잘 아는 사람의 눈에는 그가 비난하고 싫어하는 성격의 경향이 바로 그 사람 성격의 일부라는 것이 보인다.
물론 상대방의 성격 속에 실제로 독선적인 면이 있고 속물근성이 있으며 ‘위선적’이고 ‘좋지 않은 면’이 있을 수 있어 사람들이 그것을 정확하게 알아차리고 지적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그림자의 투사가 일어날 경우 그런 열등한 성격이 유난히 두드러져 보이고 주관적인 감정에 사로잡혀서 그 사람 성격의 긍정적인 측면을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거의 없다.
이렇게 다른 사람 속에 있는 열등한 인격의 측면은 자신의 그림자의 투사로써 상대방이 실제로 가진 약간의 성격상의 열등성을 훨씬 과장하여 그를 아주 나쁜 사람으로 만든다. 그런데 ‘그 나쁜 사람’의 상당부분은 사실 그 사람의 무의식에 자기도 모르게 도사리고 있던 자기 마음속의 그림자인 것이다.29)
나) 그림자의 작용
그림자가 사람들의 삶에 장애가 되는 것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림자는 우리가 보통 생각하듯이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림자가 우리 인격의 한 부분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 세상에서 그림자를 가지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림자는 언제나 우리 삶에 참여하기를 원하고 기회만을 엿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림자를 우리 인격에 통합해야 하는 도덕적인 책무를 지고 있다.
그림자에 열등하고 유아적이며 원시적인 속성이 있다면, 그것은 그림자가 한 개인의 의식적인 삶의 영역에 참여할 기회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인격에 “또 다른 측면”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그림자를 교정할 수 있게 된다. 그림자가 우리의 또 다른 관심의 중심에 놓이게 되면, 그것은 변화하게 된다. 자신의 그림자를 다른 사람에게 투사시켜 놓았던 것을 거두어 들이면, 그림자에 부어졌던 파괴적인 에너지는 긍정적인 에너지로 변환될 수가 있다.30)
그러면 어떻게 해서 겉으로 보아 파괴적이며, 위험하며, 부정적인 작용을 나타내는 그림자를 창조적인 것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가? 그 열쇠는 자아의식이 무의식에 대하여 어느 만큼 관심을 가지고 그림자의 존재를 깨닫고자 노력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것이 깨달아질 때 의식의 변화가 생기며 그림자의 부정적 작용이 해소된다.31)
우리가 우리의 마음속의 그림자들을 하나씩 소화시켜 나갈 때 우리의 의식은 그만큼 넓어지며 자기 자신의 통찰은 그만큼 깊어진다. 그렇다고 우리가 종국에 완전히 그림자를 넘어서서 살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분석심리학자들은 그림자는 인격의 전체를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한다.32) 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게 마련인 것처럼 의식이 있는 곳에 무의식적인 것이 있게 마련이다. 그림자를 가진다는 것은 그만큼 자아가 강한 의식성을 가지고 그 특수성, 그 개체성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그림자는 자아의 ‘일방성’ 때문에 외계에 투사됨으로써 인격의 전체성을 실현하기 어려워진다. 그러므로 외계에 투사된 그림자를 다시금 자아에게 되돌려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작업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림자의 존재를 깨닫는다든가 투사된 그림자를 자아에 되돌려 나의 일부로 소화시킨다는 것은 내 안에 내가 비난하는 열등한 성향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는 진정으로 내가 그림자를 의식의 일부로 소화, 또는 동화(assimilation)시킬 수 없다. 그림자가 ‘나’의 일부가 되려면 ‘내’가 그림자를 살려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의식적으로 그 동안 내버려두었던 유치하고 좋지 않다고 생각되던 경향을 스스로 적극적으로 살려서 체험해 보아야 한다. 이것은 당연히 도덕적 갈등을 일으킨다. 그러나 자기실현이 되려면 세속적인 도덕규범과 갈등을 이겨내는 용기가 필요하며 그림자의 의식적인 ‘살림’은 오히려 더 커다란 인격의 해리, 그림자의 무의식적인 지배를 막을 수 있게 된다. 그럼으로써 무의식의 열등한 인격, 그림자를 분화시켜 그 속에 담겨 있던 창조적인 힘이 발휘되게 한다.33)
그림자를 동화시킴으로서 우리는 새로운 몸을 얻게 된다. 본능이 가진 동물적인 측면과 원시적이며 고태적인 정신이 의식이라는 빛 아래 놓여지게 되는 것이다. 그것들은 이제 더 이상 허구나 환상이라는 방식으로 억압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림자를 통합시킴으로서 자아의식은 더 넓어지고, 더 고상해진다. 이에 따라서, 우리 삶은 더욱더 안전하게 되고, 더 밝아지게 된다.34)
하나도 티없는 사람이 되려는 것보다 인간의 마음속에 얼마나 무서운 그림자가 있을 수 있는가를 직시하는 것이 심리적인 의미에서의 첫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다) 꿈으로 나타나는 그림자
그림자는 자동성을 가지고 꿈속에서 인격화되어 나타난다. 친구나 동료나 가족 가운데 누구나, 아니면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 등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림자가 이런 모습을 하고 나타날 때, 우리는 그것이 그에게서 연상되는 우리 인격의 특성 또는 정신적인 요소라고 생각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 인격의 일부를 이루는 부분 인격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것은 꿈속에 나타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꿈에서 그림자는 꿈꾼이와 동성(同性)의 인물(형이나 누나, 가장 친한 친구, 또는 이질적이거나 원시적인 사람)로 나타난다. 즉 꿈꾼 이가 남자일 경우, 그의 꿈에서 도둑이나 거지가 나타났으면 그 도둑이나 거지는 그의 인격의 그림자라고 해석하게 된다. 그들이 나타난 것은 그가 그 도둑이나 거지에서 연상되는 어떤 인격적인 특성을 발달시키지 못해서 그의 인격이 통합을 이루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35)
사 례
그림자는 일차적으로 무의식의 상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그 존재를 명확히 알려면 꿈의 분석을 통해야 한다. 먼저 융이 소개한 사례중에서 그림자상을 나타내는 것 하나를 소개하고, 또 한국인의 꿈 중 그림자상을 나타내는 것 하나를 소개한다.
-미련한 편견을 고집하여 이성적인 토론에 완강하게 저항하는 것으로 유명한 부인.36)
어느 날 그녀는 중요한 사교모임에 참석하고 있는 꿈을 꾸었다. 여주인이 인사하며 말했다. “이렇게 와주시다니 너무나 반갑군요. 친한 분들이 모두 오셔서 당신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여주인은 그녀를 어떤 문 쪽으로 안내하여 그것을 열었다. 꿈꾼 사람이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곳은 외양간이었다.
그 파티의 여주인은 일종의 ‘인도자’이다. 꿈꾼 사람으로 하여금 그녀의 옹고집을 소 외양간이라는 충격적인 이미지로서 지적하고 가리켜준 존재이다. 무의식은 이렇게 해서 꿈을 꾼 사람이 자기를 더 잘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여기서 꿈꾼 사람의 그림자는 ‘외양간’이었다. 그것은 그녀가 결코 자기 속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융에 의하면 이 여자는 ‘그녀의 자부심을 그렇게도 강타한 꿈의 요점’을 처음에는 인정하려 하지 않았지만 결국 ‘자기가 자신에게 가한 핀잔’을 외면할 수 없어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 37세의 중년부인의 꿈37)(불안과 각종 정신적, 신체적 장애를 않고 있었다). 그림자가 꿈에서 무서운 짐승, 추악하고 역겹고 더러운 존재로 나타나는 꿈. 그것은 그림자인지 혹은 부정적 아니무스, 부정적 아니마, 또는 원형의 그림자인지를 구분할 수 없는 상태에 있다.
동생과 함께 가까운 길을 통해 어떤 장소로 가려고 문 하나를 열었더니 돼지들이 우리를 잡아먹을 듯이 수십 마리가 꿀꿀거리며 몰려온다. 무서워서 도망쳐 나왔다. 그런데 저쪽에서 R(분석가)교수님이 오신다. 웬일이냐고 해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길을 가르쳐 주겠다 하신다. 그곳으로 가니 조금 전의 그 문인데 사나운 돼지들이 아주 순한 사람과 같은 돼지로 변해 있었다.
꿀꿀거리는 돼지는 피분석가가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것, 더럽고 추하고 욕심 많은 충동이었다. 깨끗하고 도덕적으로 완벽하고 성실한 의식이 용납하지 못한 탐욕이다. 이 꿈은 그 충동성과 공격성을 부드럽게 하여 의식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데 분석작업의 힘이 중요한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꿈에 나타난 분석가는 실제보다도 과장되고 마술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것은 현실적인 치료자이기 보다 피분석자의 무의식 속에 있는 치료자 원형의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한 초인적인 힘을 가진 이미지는 곧잘 치료자에게 투사되어 이른바 긍정적 전이라는 현상을 일으킨다. 그러나 피분석자는 그러한 능력이 자기 안에 있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야 했다. 그렇게 충분히 인식할 수 있기에는 더 많은 분석 시간이 필요했다.
2) 페르조나
융은 사람들이 그의 바깥 세계와 접촉하는 인격의 부분을 가리켜서 ‘페르조나(Persona)’라고 불렀다. 페르조나란 고대 그리스의 연극에서 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말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한 사람의 진정한 자아를 가리키기보다는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면서 얻어진 자아의 또 다른 측면을 가리킨다. 즉 우리 나라 탈춤처럼 어떤 사람이 노인의 탈을 쓰면 그는 노인의 역할을 하며, 왕의 탈을 쓰면 왕이 되는 것처럼 인간이 집단 속에서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여러 개의 탈을 썼다가 벗었다가 하면서 살고 있다는 뜻에서 이 말을 고른 것이다.
페르조나는 집단정신의 한 단면이다. 그 속에 집단적인 부분이 감추어져 있는데 사람들은 개인적인 행동을 한다는 착각을 가지게 한다. 가면이라는 것은 본래 가면을 쓴 사람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이 지금 한 개인으로서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하지만, 사실상 그는 그에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서, 집단정신의 명령을 이행하고 있는 것이다.38)
사람들이 곧잘 나의 생각, 나의 신념, 나의 가치관, 나의 것이라고 하는 것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은 결코 자기의 생각이 아니라 남들의 생각, 즉 부모의 생각, 선생의 생각, 다른 친구들의 생각이라고 할 만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집단적으로 주입된 생각이나 가치관을 마치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페르조나는 내가 나로서 있는 것이 아니고 남과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나를 더 크게 생각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진정한 자기(Self)와는 다른 것이다. 페르조나에 입각한 태도는 주위의 일반적 기대에 맞추어 주는 태도이며, 외계와의 적응에서 편의상 생긴 기능이 콤플렉스이다. 그리하여 그것은 환경에 대한 나의 작용과 환경이 나에게 작용하는 체험을 거치는 동안 형성된다. 우리가 페르조나라는 가면 뒤에 숨어서 이 세상과 접촉할 때, 우리의 “개인적인 삶”은 찾아볼 수 없게 되며, 우리는 삶의 진정한 모습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게 된다. 집단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동안 자아는 차츰 자기도 모르게 집단정신에 동화되어 그것이 자기의 진정한 개성인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을 자아가 페르조나와 동일시되어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되면 집단이 요구하는 역할에 충실히 맞추어 주는 사람이 된다. 집단이 옳다고 말하는 규범은 무엇이나 지키는 사람이 된다. 예를 들면, 남자란, 여자란 이래야 한다고 할 때 그것은 ‘페르조나’를 강조하는 말이 된다. ‘사람이란 모름지기’하고 시작하는 론은 모두 그런 집단규범이다.
페르조나와의 동일시가 심해지면 자아는 그의 내적인 정신세계와 관계를 상실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을 돌보지 못하게 되고 그 존재조차도 잊어버린다. 결국 자신의 존재를 잊어버리고, 우울증과 같은 장애를 일으키게 된다. 이러한 장애까지는 일으키지 않더라도 페르조나와의 동일시는 가벼운 인격의 해리를 일으킨다. 그러나 이러한 증상은 목적이 있다. 우울증상은 그것을 통해서 밖으로만 향해 온 자아의 시선을 안으로 돌리도록 하는 목적의미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페르조나가 개성을 살리는데 저해가 되고, 또 인격의 해리까지 초래하는 것이라면 ‘페르조나’는 없애야 할 것인가? 그것은 그렇지 않다. 페르조나는 하나의 관계기능이다. 심령이 자아와 무의식을 연결하는 기능을 가졌다면, 페르조나는 자아로 하여금 외부와 관계를 맺게 하여 주는 기능이다.
페르조나는 가상이다. 그러나 그것은 없애야 할 것이라기보다 구별되어야할 것이다. 그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라는 것에 대한 자각은 페르조나를 사회 생활에서 필요한 수단이라고 보고 거기에 절대적인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페르조나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페르조나와의 맹목적인 동일시가 문제되는 것이다. 사회적 역할, 의무, 도덕규범, 예의범절, 이러한 것을 없애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맹신하지 않는 것이다.39)
인간이 집단 속에서 생을 영위하는 이상, 가정과 사회의 교육을 통해서 페르조나를 형성하고 그것을 강화하는 것은 필요한 것이고, 또한 필수적인 요소이다. 다만 자신을 완전히 동일시하지 않고 그 모든 것을 올바르게 발달시켜 나가야 한다.
3) 아니마와 아니무스
남성과는 다른 심리를 지니고 있는 여성은 남성이 전혀 눈뜨지 못한 것에 대하여 여러 가지 사실들을 가르쳐 주는 원천이다. 여성은 남성에게 영감을 의미한다. 남성을 훨씬 능가하는 여성의 예감능력은 남성에게 유익한 경고를 주며 개인적인 것에 관심을 둔 여성의 감정은 남성에게 그가 지니고 있는 별로 개인적으로 관계되지 않은 감정으로 찾기 힘든 길들을 가르쳐 줄 수 있다.
가) 아니마/아니무스의 내용과 기능
아니마/아니무스는 페르조나를 보상하는 정신적인 요소이다. 페르조나가 한 사람이 보통 그의 외부적인 상황과 맺고 있는 외적인 태도와 연관된 정신요소라면, 아니마/아니무스는 그가 그의 내면 세계와 맺고 있는 내적인 태도와 연관된 정신요소이다. 남성의 무의식 속에 있는 여성적 요소를 ‘아니마’, 여성의 무의식 속에 있는 남성적 요소를 ‘아니무스’라고 부른다.40)
아니마는 남성 정신의 여성적인 측면으로서, 예를 들면 친절, 부드러움, 인내, 수용성, 자연에 대한 친밀감, 용서할 준비 등이다. 아니무스는 여성 정신의 남성적 측면으로서, 독단성, 통제하고 주도권을 잡으려는 의지, 투쟁성 등이다. 모든 남성의 정신에는 여성적인 요소가 들어 있고, 모든 여성의 정신에는 남성적인 요소가 들어 있다.41)
아니마/아니무스는 사람들이 태초로부터 이성과 가졌던 종족적 경험의 소산이며, 한 개인에게서는 그가 이성 부모로부터 받은 영향들이 덧붙여져 그의 내면에 생겨난 정신 내용이다.42) 사람들에게 아니마/아니무스가 있기 때문에 그들은 이성을 이해할 수 있으며, 이성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아니마는 남성들에게 여성과 관계되는 모든 정신적인 내용들을 형성하게 하고, 아니무스는 여성들에게 남성과 관계되는 모든 정신적인 내용들을 형성하게 한다. 아니마/아니무스가 하는 중요한 역할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내면적인 상태를 알게 해 주고 사람들을 그들의 내면으로 이끄는 것이다. 즉 아니마/아니무스는 사람들이 바깥 세계에 몰두해 있을 때, 그의 자연적인 성(性)과 반대되는 특성을 통해서 그의 내면적인 상태가 어떤지를 말해주고, 그의 내면에서 진정으로 요청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니마는 흔히 영혼의 이미지(image of soul)라고 불린다.
아니마/아니무스 역시 투사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알려진다. 어떤 사람이 이성에게 첫 눈에 반했다면, 그것은 그가 그에게 아니마/아니무스를 투사했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아니마/아니무스는 꿈에서 이성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어떤 남성이 꿈속에서 아름다운 여인을 보았거나 광녀(狂女)를 보았다면, 그것은 지금 그의 영혼의 상태가 그렇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43)
아니마/아니무스에 사로잡힐 때 사람들은 그 전까지 외부 환경에 잘 적응하던 페르조나를 잃게 되고, 위기에 빠지게 된다.
남자들이 아니마에 사로잡힐 때, 그들은 소위 “악감정”(animosite)44) 상태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원한에 사로잡혀 있거나, 우울해 하거나, 막연하게 불안에 사로잡혀 있거나, 막연한 동경에 빠져서 현실 감각을 잃게 된다. 때로는 허영에 들뜨거나, 감수성이 매우 예민하게 되며, 색정적인 공상에 자주 빠져들게 된다. 마찬가지로 여자들이 아니무스에 사로잡힐 때, 그들은 자기 주장이나 고집, 비난, 잘못된 의견을 굽힐 줄 모르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생각이 옳으며,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렇게 생각한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 이것은 그들로 하여금 더 이상 다른 사람들과 올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융은 아니마/아니무스의 이미지를 객관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재 문제시되는 아니마/아니무스가 우리 내면을 구성하는 정신 요소임을 깨닫고, 그 이미지가 우리에게 알려 주고자 하는 것을 객관적인 모습으로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아니마/아니무스와 만나게 되면, 아니마/아니무스에 담겨 있는 자의적인 힘은 사람들에게 인간의 정신에 있는 다른 질서를 예견하게 해 준다. 다시 말해서 아니마/아니무스는 그의 본성을 뛰어 넘어서 어떤 의미나, 의도나, 소질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 결과,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과 정동을 좀 더 잘 다스릴 줄 알게 된다. 그래서 융은 아니마/아니무스의 이미지와의 만남은 그것을 통해서 “영적인 아이”가 탄생되는 정신의 결합이라고 주장하였다.45)
아니마/아니무스는 각기 4단계의 발전단계를 가지고 있다.
아니마의 첫 단계는 이브(Eve)상으로 본능적이고 생물학적인 여성상이다. 둘째는 파우스트의 헬렌(Helen)이며 이는 낭만적이고 미적 수준의 아니마의 인격화로서 아직 성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셋째 단계는 성모마리아에서 표현되는 영적 헌신으로 지양된 에로스이며, 넷째 단계는 가장 거룩하고 가장 순수한 지혜, 연금술의 사피엔티아(Sapientia)로 표현된다. 모나리자가 그러한 지혜의 아니마와 가깝다.
아니무스의 4발전 단계 중 첫 단계는 레슬링선수나 운동경기의 스타, 타잔처럼 육체적인 영웅이며, 둘째는 낭만적인 남성, 또는 행동적 남성으로 전쟁영웅의 이미지 속에 발견되는데 주도권과 계획된 행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셋째 단계는 교수나 목사의 상으로 ‘말씀’의 사자이며, 넷째 단계는 종교적 체험의 중개자이며 영적 진리로 끌어가는 지혜로운 안내자의 이미지이다. 간디가 이러한 이미지에 가깝다.46)
아니마/아니무스의 의식화는 개체의 통일된 인격의 실현, 즉 자기실현의 과정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함은 말할 것도 없는 일이나 이 작업은 자아와 페르조나와의 구별, 그림자의 인식에 비해서 매우 어려운 과제이다.
나) 꿈에서 만나는 아니마/아니무스47)
융은 “영혼심상을 제일 먼저 전해 주는 사람은 언제나 어머니이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적용되는데, 그것은 그러한 남자나 여자는 어머니로부터 아직 독립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어머니가 꿈에 나타나는 것-특별히 그녀가 소유욕이 강하거나 탐식(貪食)적인 특징을 가진 채로 드러난다면-은 당신의 영혼 심상의 상징이다. 만약 그렇다면 명심할 것이 있다. “당신을 질식하게 하는 어머니의 영향권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당신의 아니마나 아니무스를 의식적인 자아 속에 통합시키는 것이다.” 당신의 영혼 심상을 수용하고, 존중하며, 인격성장을 위한 창조적인 기여자로서 환영한다면 당신은 자신의 영혼 심상이 꿈에서 당신을 삼키는 어머니의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게 되는 것을, 그리고 당신은 어머니로부터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어머니 상 이외의 영혼 심상을 나타내는 꿈의 상징들은 언제나 꿈꾸는 사람과 반대의 성(性)을 가진 사람이다. 남자의 아니마는 꿈에서 자신의 여자 형제로 나타날 수 있고, 여자의 아니무스는 자신의 남자 형제로 나타날 수 있다. 아니무스의 다른 상징들로는 독수리, 황소, 사자, 그리고 발기된 남근상 혹은 탑이나 창과 같은 남근 모양을 한 기타의 것들이 있다. 독수리는 높은 곳과 관련이 있고, 신화에서 하늘은 보통 (고대 이집트 신화를 제외하고) 남성으로 간주되고, 순수한 이성이나 영성(靈性)을 상징한다. 대지는 여성으로 보여지고, 직관이 가미된 감각적인 생활, 즉 감각의 한계 안에 한정된 생활을 상징한다.
암소, 고양이, 호랑이, 동굴, 그리고 배 등은 아니마 상징에 포함된다. 이 모든 것들은 다소 분명하게 여성적인 형상들이다. 배는 바다와 연관이 있다. 그런데 그 바다는 흔히 여성성을 상징하고, 텅 비어 있는 배는 자궁 같은 것으르 상징한다(배를 진수시킬 때, 아직도 우리는 ‘그녀를 항해하는 모든 자에게 복이 있도다’라고 말한다). 동굴은 텅 비어 있고 자궁 같다. 때때로 동굴은 물로 채워지는데, 이것은 여성성에 대한 또 하나의 상징이다. 그 동굴은 땅에서 움푹 꺼진 곳으로서, 그것은-우리가 보는 것처럼-여성의 성(性)에 대한 상지이요, 대지의 자궁이거나 자궁으로 들어가는 질(膣)의 입구이다.
아니마에 대한 보편적인 표현에 대해 언급한다면, 이것은 곤경에 처한 처녀의 형상으로, 소위 ‘영웅’ 신화라고 부르는 것들에서 빈번하게 드러난다. 그것은 아름다운 처녀를 구출하고, 몇몇 경우에는 그녀와 결혼하는 영웅에 대한 주제이다(즉, 그리스의 영웅 페르세우스는 에디오피아의 공주 안드로메다를 바다 괴물로부터 구출하고, 나중에는 그녀와 결혼한다). 민간설화에서 영웅은 키스로서 죽음의 잠을 자는 처녀를 깨운다(잠자는 공주). 곤경에 처한 처녀는 남자의 아니마이다. 그것은 무시당하거나 억압을 당해 왔기 때문에 ‘죽은’ 것이거나 ‘곧 죽게 될’ 위험 속에 있다. 생명을 구출하거나 그녀에게 입맞추는 것은 자신의 여성성을 어두운 감방으로부터 건져 올리고, 그것을 자신의 삶과 행복에 있어서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기꺼이 맞이하는 것을, 그리고 참으로 그것에 복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왕자가 잠자는 공주를 깨우는 것에 성공하면, 수 백년 동안 잠을 자고 있던 궁궐에 있는 다른 모든 사람들이 잠에서 깨어난다. 이것은 남자의 아니마를 ‘깨우는’ 것이 그의 정신의 ‘잠자는’(억압되고, 무시된) 모든 측면들을 깨우기 위한 첫 단계라는 사실에 대한 상징으로 볼 수 있다.
또 하나의 아니마 형상은 매력적인 처녀이다. 온디네(Ondine)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온디네는 영혼이 없다. 그녀는 한 남자가 포옹해 줄 경우에만, 영혼을 얻을 수 있다. 남자여 그대의 아니마에 생기를 주라, 그렇지만 그대의 무의식 심층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라. 거기에 있는 보물을 찾아라. 그런 다음엔 그것을 다시 표면화시키고, 의식의 통제를 유지하라.
민간설화의 아니무스 형상은 난쟁이이다. 난쟁이와 기타의 ‘작은 사람들’은 광산의 지하에서 일한다. 그들은 광산으로부터 금과 기타의 귀중한 물질들을 캐낸다. 이것은 (백설공주가 일곱 난쟁이들을 돌보았던 것처럼) 한 여인이 아니무스를 보살피고 양육하는 경우에 그 아니무스가 어떻게 그녀의 무의식으로부터 귀중한 것들을 많이 가져다 줄 것인지를 보여준다. 그 귀중한 것들은 그녀가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그리고 자기실현을 추구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덧붙여 말하자면, 결혼이나 성교(또는 비교적 현대적이고, 불온한 부분이 삭제된 민간 전승에서는 입맞춤이나 포옹)는 의식적인 자아와 무의식적인 영혼 심상의 합일과 혼합을 상징한다. 그것은 또한 개성화의 마지막 단계인 의식과 무의식의 완전한 합일을 상징한다.
4) 자기
인간의 내면에는 인간 정신의 중심이 있는데, 이 중심은 의식을 뛰어넘으며, 인간의 전일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중심은 자아보다 더 높은 차원의 정신요소이다. 왜냐하면 이 중심은 자아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사람들의 내면에서 내적인 지도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가) 자기의 특성
인간에게는 전체로서 살 것을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 무의식이라고 부르는 마음의 심층에는 언제나 사람으로 하여금 전체가 되게끔 하려는 원동력이 움직이고 있다.
융은 때때로 이것을 ‘자기실현’의 단계라고 부른다. 이 자기는 자아(Ego)와 구별되어야 한다. 자아는 의식세계이다. 자기는 전체적이고 완전히 통합된 정신이다. 이 통합된 정신에서는 상반적이고 갈등적인 요소들이 결합되고 조정된다. 개성화의 이 마지막 단계에서 의식과 무의식은 완전히 통합되어 하나의 조화로운 전체를 형성한다. 이 조화로운 전체는 이전에는 상반적이었고, 그러므로-적어도, 잠재적으로는-상충적이었던 것들이 변화되어 형성된 것이다.
완전한 자기실현의 경우에, 사람의 의식은 더 이상 사고(사태를 머리로 풀어내는 추리)와 공상(이렇게 저렇게 생각하는 것)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완전한 자기실현에는 전에는 무의식만의 소유였던 실재에 대한 직접적인 지식이 들어 있을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사람의 전체적인 정신은 이제 의식적이고, 느끼고,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48)
개성화 과정이란 인간의 여러 가지 정신적 요소들을 통합시켜 주는 인간의 정신 작용이라는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융에 의하면 인간은 대극적인 존재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의식과 무의식, 자아와 그림자, 외적인격(페르조나)과 내적인격(아니마/아니무스) 등 서로 정반대가 되는 관계에 있는 정신적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는 존재라는 말이다. 인간의 정신 구조 내에 있는 이렇게 많은 대극의 쌍 가운데서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발달하게 되는 경우, 인간의 정신적 균형은 깨어지게 되고 그 결과 수많은 문제들이 생기게 된다. 그러나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는 어느 하나의 정신적 요소만을 발달시키기 마련이다. 어떤 때 외부 환경에 적응하다가 어떤 정신적 요소가 원활하게 작용하여 적응에 성공하였을 경우 그 기능은 매우 발달하게 되며, 그 밖의 다른 경우에도 그 발달된 요소는 다른 요소보다 더 효과적으로 적응을 도와줄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요소만을 사용하여 적응력을 높이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사람들에게는 그 발달된 요소만을 쓰게 되는 습관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발달되지 못한 정신적 요소는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이 때 사람들은 자신에게 문제 상황이 생겨났음을 발견하고 다시 자신의 정신적인 통합을 회복시키려고 갖은 애를 쓴다. 그러나 많은 경우 실패하고 만다. 오히려 애를 쓰면 쓸수록 사태는 더욱더 악화되기 마련이다. 이 때 의도적인 노력을 포기해야 된다. 무위의 도(無爲之道)를 터득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많은 의도적인 노력을 포기했을 때 그들의 무의식 속에는 자기(Self)가 활동하게 된다. 왜냐하면 자기는 인간 정신의 중심이며 전일성(全一性)으로서, 인간의 정신 구조 내에 있는 많은 대극의 분열상을 통합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자기(Self) 속에서 인간 정신의 모든 대극적 분열상이 통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 이런 대극적인 요소들이 분열되어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자아(Ego)가 내면적인 지도 요인인 자기의 이끌음을 따르지 않고 자아(Ego)의 의도대로 나아갔기 때문에 생긴 문제이다. 그러나 자아(Ego)가 다시 자신의 의도를 거두어들이고 자기(Self)의 인도를 따를 때 우리의 정신 구조는 통합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개성화 과정에서 자기(Self)가 우리 정신 구조의 수많은 대극적인 요소들을 통합한다고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49)
자기실현은 통속적인 의미의 성인, 군자나 도사를 만드는 과정이 아니다. 그것들은 모두 사회가 만들어 준 ‘성인, 군자, 도사’의 ‘탈’(페르조나)이기 쉽다. 자기실현은 간단히 말해서 농부로 하여금 농부로, 서양인으로 하여금 서양인으로, 한국인으로 하여금 한국인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자기실현이 되면 될수록 그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의 모습을 갖출 것이다. 그는 평범하나 분수를 아는 사람이다. 그는 그가 하여야 할 바를 마음속에 물으며, 그것이 그가 가야 할 길이면 그렇게 간다. 그는 자기와의 일치라는 점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다. 그러나 강하다 약하다 하는 의식을 그는 가지지 않는다. 그는 반성할 줄 알며 그런 의미에서 종교적인 인간이다.50)
나) 꿈으로 나타나는 자기(Self)의 상징51)
융은 신화적인 상징들과 종교적인 상징들 가운데서 사람들에게 누미노제적인 힘을 체험하게 하는 자기의 상징적인 이미지들을 많이 찾아 내었다. 어떤 상징들은 개인의 영혼과 하나님의 궁극적인 합일을 표현한다.
예를 들면, 어린이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당신의 영혼이나 정신에서의 신성(神性)의 ‘태동’, 당신의 자기의 심층에 자리하는-왕좌에 앉아 있는-거룩함, 신혼부부나 성행위를 하는 부부, 또는 남성과 여성 모두의 신체적 특징들을 가진 한 형상 등이다. 그러나 마지막의 두 상징들은 영혼심상의 통합(정신의 남성적인 측면의 ‘결합’)이나 정신의 의식적인 부분과의 무의식적인 부분의 일반적인 상호침투를 나타낼 수 있다.
이러한 심상들이 꿈에 나타날 때, 그 심상들이 개성화의 어느 단개를 상징하는지는 자신이 스스로 판단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자기실현을 향한 진보가 어느 상태에 있는가 하는 문제만이 아니다. 상징이 말하는 것은 당신이 지금 어디에 있느냐가 아니라 당신이 지금 어디를 가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죽음과 부활’의 상징-홍수, 또는 물에 잠김, 고래가 삼켰다가 나중에 토해 냄, 태양이 바다 속에 잠기고 새벽에 다시 떠오름, 또는 시체를 일어나게 하는 생명의 키스 등-은 의식적 자아가 무의식 속으로 내려갔다가 새롭고 변형된 존재로 다시 떠올라 오는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꿈에 드러난 그러한 상징이, 당신이 자기실현 과정의 끝 가까이에 있는 것을 말해 주는지, 아니면 자기실현 과정을 이제 막 시작했거나 또는 시작하라는 권면을 하고 있는 것을 말해 주는지는 자신이 판단해야 할 것이다. 자기실현은 못생긴 오리 새끼가 아름다운 백조로 변형되고, 개구리가 멋있는 왕자로 바뀌는 것과 같은 변형 과정들에 의해서 상징될 수 있다.
융은 자기의 상징을 말할 때 만다라(Mandala)52)를 이야기한다. 만다라는 자기를 나타낸다. 만다라는 정사각형이나 원으로서 대개 분명한 중심점이 있고, 때때로 여러 조각들로 나누어지기도 한다. 쉬리 얀트라(Shri yantra; ‘최고의 얀트라’를 의미함)에는 설계도가 들어 있다. 그 설계도에는 4개의 벽과 4개의 현관 외에도 꼭지점이 위를 향하는 삼각형과 아래로 향하는 삼각형이 있다. 이 삼각형들은 각각 정신의 요소들인 남성다움과 여성다움, 또는 의식과 무의식을 나타내거나 모든 실재에 결합 또는 혼합되어 있다고 믿어지는 정반대의 것들을 나타낸다. 어떤 교회나 사찰 혹은 어떤 방은, 그것이 정사각형이나 원으로 되어 있는 한, 만다라의 형상일 수 있다. 특별히 정원도 정사각형이나 둥근 모양으로 되어 있으며 중심점-예를 들면, 샘 또는 새를 위한 물 쟁반이나 수영장 같은 것-이 있다면, 만다라의 형상일 수 있다.
4라는 수 자체가 일종의 만다라이며, 그러므로 그것은 자기의 상징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정사각형의 4면을 나타내거나, 나침반에서 주요한 지리적 4방향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 나침반은 전체적인 실재, 온전성, 완전을 나타낸다. 어떤 만다라에든 대칭적 균형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것은 자기실현에 도달한 사람의 질서와 조화를 상징한다.
자기실현에 대한 이러한 상징들은 너무도 거리가 멀어서 자신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꿈은 현재 상황에 대하여 무엇인가를 말해 주는 것으로 이해되어져야 한다. 자기실현의 상징들은 자신에게 미래에만 완전히 도달될 수 있는 목표를 가리키고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상징들은 지금 자신의 상황에 대하여 무의식이 반응하는 것이다. 그러한 상징들은 지금 자신이 해야 할(하기 시작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Ⅳ. 꿈과 영적 성장
영성이란 ‘하나님께 응답하는 우리들의 방법’ 또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보다 넓은 의미에서 영성이란 ‘궁극적인 가치를 따라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존재와 행동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1. 꿈을 통한 하나님과의 만남
가) 내 속에 있는 하나님
융은 볼링겐에 있는 그의 별장 입구에 “우리가 부르든지, 부르지 않든지 간에 하나님은 거기 계시다”라는 고대 그리스 신탁을 현판으로 만들어 써 붙였다. 하나님이 인간의 유한한 이성을 무한하게 뛰어넘는 분이라는 그의 생각을 나타낸 말이다. 융에 의하면, 사람들은 하나님을 완전히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머리 속에 하나님은 어떤 분일 것이라고 어렴풋한 모습으로 “하나님의 이미지”만을 그릴 수 있는 것이다.53)
그런데 융은 사람들이 마음속에 그리고 있는 이 하나님의 이미지를 다른 말로 해서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Dieu-en-nous)이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이 이미지가 사람들의 정신 속에 마치 인쇄된 것처럼 찍혀져서, 사람들의 삶에 무한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하나님에 관해서 생각할 수 있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 즉 우리 내면에 그려진 “하나님의 이미지” 덕분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을 통해서 사람들은 신성(la divinite)을 체험할 수 있고, 신성이 가진 누멘적인 힘을 체험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 이유는 사람들에게 이런 정신적인 요소가 들어 있지 않을 경우, 사람들은 하나님에 관해서 생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기 속에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본성과 만날 수 있는 기능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 없이 하나님과 관계 맺을 수 있는 것은 사람들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원형 때문인 것이다.54)
융은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을 원형(原型)이라고 하였다. 그 이유는 그것이 사람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집단적인 무의식에 존재해 왔으며, 때때로 사람들을 누멘적인 힘으로 사로잡아서 매우 강력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55)
융은 하나의 원형으로서 하나님의 이미지가 가지고 있는 특성을 네 가지로 열거하였다.
첫 번째로, 인간에게 종교성은 본능적인 것이며, 하나님의 이미지는 인간의 본성으로부터 표출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인간의 종교적인 행위는 본능적인 성향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인간의 특별한 기능에 속해 있는 것이다.56) 하나님의 이미지는 무엇보다도 심리적인 이미지, 즉 사람들의 신앙이 형이상학적인 실체와 동일시하고 있는 원형적인 본성의 표상인 것이다.57) 원형은 집단적으로 나타나는 어떤 표상을 만들어 내는 선천적인 소질인데, 사람들의 꿈이나 신화 또는 설화의 주제에서 많이 나타난다. 원형은 많은 신화에서 어떤 주제가 문화적으로나 시대적으로 서로 다른 모습으로 그려질지라도, 그 근본적인 주제에 있어서는 동일한 것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여러 가지 신화나 종교적인 도그마에서 하나님의 모습은 그 문화적인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동일한 속성을 가지고 나타난다.58)
두 번째로, 하나님의 이미지는 인간의 정신 활동이 최고조에 도달했을 때 형성되는 것이며, 그 안에 리비도가 가장 많이 담겨져 있고 삶의 깊이 역시 가장 많이 배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삶에 가장 강력하고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심리학적으로 말해서 하나님의 이미지는 원형적인 본성을 드러내는 콤플렉스의 일종이다. 우리는 이것을 투사 작용을 통해서 나타나는 에너지(리비도)의 표현이라고 생각해야만 한다. 하나님이란 명칭은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매우 강력한 어떤 감정적인 것 주위에 모인 콤플렉스에 붙여진 이름이다.59)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관념은 이미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힘까지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속성이 전지전능이나 진선미 등 최고의 가치를 담고 있으며, 종교가 사람들의 삶에 가장 강력하고 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이미지에 이처럼 강력한 리비도가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엄청난 에너지를 품고 있는 정신적인 요소에 의해서 매혹 당하거나 무의식적으로 사로잡힐 수 있다. 사람들 속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정상적인 요소는 ‘신’(神,하나님)으로 표상 된다.60) 이 이미지는 사람들의 삶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왜냐하면 이 이미지가 정신 에너지를 여러 가지 제의나 예식이나 종교적인 행위 등으로 이끌고 가면서 매우 강력한 정신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이 때, 사람들은 때때로 종교체험을 하거나, 인격의 변환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이 이미지에 깊은 정동이 담겨 있으며, 이 정동은 사람들의 삶을 뒤흔들어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힘이 사람들에게 항상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이 가진 자동성을 따라서 작용하며 때때로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어려움을 안겨 주기도 한다. 그래서 융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하나님에게 어두운 측면이 있다는 사실은 즉각적으로 체험하게 된 하나님의 또 다른 모습이다. 처음에 무의식적으로 존재했던 하나님의 이미지는 의식의 상태를 변환시키기에 충분한 것이다.61)
세 번째로, 사람들은 자기 내면에 있는 하나님의 이미지를 다른 모든 무의식적인 내용들과 마찬가지로 자기 밖에 있는 어떤 대상에 투사시킨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이 신(神)이라고 부르는 존재는 심리학적인 견지에서 볼 때, 신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이 신이라고 생각하는 존재, 다시 말해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으며 그가 신이라고 부를 수 밖에 없을 정도로 힘을 가진 정신적인 요소를 자기 밖에 투사시킨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과 질적으로 다른 존재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결코 완전하게 다 알 수가 없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무의식에 있는 하나님의 원형을 투사시켜 놓고, 그 이미지를 하나님이라고 생각한다. 야훼의 이미지나 그리스도의 이미지는 모두 그 당시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성숙되어 왔던 생각들이 형상화되어 밖으로 나온 이미지들이다. 그 사실은 원형이 한 사람 머리 속에서 심리학적으로 완성되었고, 그의 밖에 객관적인 방식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말 수 있다.62)
하나님을 자기 안에 받아들이는 것은 대단히 좋은 일이다. 그것은 행복을 보장받고, 힘을 얻는 것이다 ...... 하나님을 자기 안에 받아들이는 것은 그 자신이 하나님처럼 되는 것이다.63)
네 번째로 융은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이미지는 기독교 교리에서 말하는 것처럼 삼위일체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사위일체적인 특성을 지닌 하나님이라고 주장하였다. 다시 말해서, 전일성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이미지는 기독교에서 말하듯이 성부, 성자, 성령으로 이루어진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아니라, 기독교의 삼위에 또 다른 요소가 덧붙여진 사위일체의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융은 정신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완전한 것, 전체적인 것은 언제나 ‘4’나 ‘원’이라는 상징으로 나타난다고 주장하였다. 그 예로서, 사람들은 옛날부터 계절을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누어 시간을 사등분했으며, 방위도 동, 서, 남, 북, 등 넷으로 나누어 공간을 사등분하였다. 사람들이 이렇게 시간이나 공간을 넷으로 나누어 생각할 필연적인 이유는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삼등분 칠 등분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생각하여 사등분하였다. 그들은 그것들을 넷으로 나누어야만 가장 잘 나눌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사등분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4라는 숫자는 사람들에게 온전성을 의미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밖에도 융은 그의 환자들이 네모난 방 속에 앉아 있거나, 가운데 분수가 있고 그 옆에 넷으로 나누어진 꽃밭에 있는 꿈을 꾸는 것을 많이 보았다. 이들 꿈이 4라는 숫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면, 우리는 그 기원이 무의식에 있는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더구나 환자들이 4와 관계되는 꿈을 꾸는 것은 특별히 그들의 정신이 전체성을 찾아갈 무렵에 많이 꾼다고 강조하였다. 이때 4위성(四位性)은 그들의 정신에 일종의 통합 지휘관처럼 작용하여 정신적인 불균형이나 일탈을 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였다.64) 그래서 그는 사위성은 전체성을 나타내는 상징이며,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을 나타내는 상징이라고 주장하였다.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이 전체성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65)
나) 하나님의 음성
위에서 융이 말하는 하나님 상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제 기독교에서 말하는 꿈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모습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성서를 보면 어디에서나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의 영역에 대한 표현을 볼 수 있다. 예수의 삶은 꿈과 천사의 현현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예수의 사역은 성령에 의한 세례와 악마의 유혹으로 시작되어 변화산상에서 절정을 이루었고, 그 사역의 목적은 하나의 신비인 십자가상의 죽음을 통해 달성되었다. 바울 역시 다메섹 도상에서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하늘로부터 환상을 보고 계시를 들었으며, 이 경험은 그로 하여금 이 세계를 움직이는 새로운 힘과 원칙을 깨닫게 했고 그래서 바울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선포하였고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를 통해 거듭났다는 것을 계속 주장하게 되었다. 여기서 성서를 이용하여 영적 세계가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서 속에는 많은 꿈과 환상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66)
사람들이 꿈을 너무 자주 꾸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꿈을 간과해 버리기가 쉽다. 꿈이 실존하고 있음은 사실이다.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들처럼 꿈 역시 심사 숙고할 필요가 있다.
꿈을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인다면 인간이 지니고 있는 종교적 본능은 지금까지 인간이 의식적인 생각으로 이해했던 것보다 훨씬 더 깊은 차원의 실체로 나타난다. 종교의 근원은 많은 심리학자들의 피상적인 이론이나 오늘날 신학자들의 빈약한 주지주의(主知主義)보다 더 심오하다. 꿈을 신중하게 받아들이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에 관한 독단적이고 교리적인 이론에 더 이상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미지의 실체를 탐구하게 하신다. 그러나 우리의 지식과 이해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우리는 스스로 당황하게 된다. 지금까지 우리가 무언가 알고 있다고 착각해 왔던 지성이라는 수단은 정말 불합리한 현실에 직면하게 될 때에는 더 이상 효과적인 무기가 되어질 수 없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꿈을 비과학적이고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겨왔기 때문에 꿈을 통해 우리에게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은 심각할 정도로 저지를 당하고 있다.67)
샌포드는 꿈과 인간의 종교문제는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꿈을 "하나님의 잊혀진 언어"라고 표현하였다. 꿈은 전체성을 회복할 수 있게 해 주는 인간 내부의 정신적 구심점에서 나오는 음성이다. 이 정신적 구심점은 화해를 가능케 하는 그리스도와 같은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 구심점을 체험한다는 것은 인간의 삶에 있어 가장 고귀한 것이다. 즉 인간들은 그러한 체험을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꿈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렇게 간단히 공식화할 때 몇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자아의 활동과 전통적인 기독교 신학의 계통적 설명을 어떻게 더 비교해서 말할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꿈이 자아의 소리 또는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상(像)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은, 곧 꿈이 인간정신의 능력을 초월하는 실체 즉 형이상학적인 하나님을 표현한다고 말하는 것인가? 그러면 한편으로는 자기(Self), 정신적 구심점 또는 내재하는 하나님과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인류가 멸망할지라도 계속 살아 있을 실재, 즉 초월적 실체이신 하나님을 가능한 조심스럽게 구별해 보기로 하자.
하나님은 누구인가? 아무도 모른다. 그는 존재이다. 그는 생명이며 존재하는 모든 것의 근거이다. 그러나 스스로 존재하는 그 분이 누구인지 아무도 말할 수 없다. 성서에서는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다”(요1:18, 요:14:12)라고 말하고 있지만 신의 존재에 대한 생각은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으며, 사실상 인간은 항상 스스로 신에 의해 심적인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해 왔다. 비록 하나님을 명백하게 증명할 수는 없으나, 의식적으로 꾸민 것이 아닌, 무의식의 근원에서 유래된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융은 이 무의식의 근원을 정신적 구심점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것을 그는 자기(The Self)라고 부른다. 하나님에 대해 심리학적으로 말하고자 할 때에는, 궁극적인 실체로서의 하나님이라는 말의 뜻과 인간 정신 속에 존재하고 있는 자기 또는 하나님의 내적 형상이라는 말의 뜻을 세심하게 구별해야 한다.
인격의 여러 양상들을 화해시키고 조화시키는 것은 자기(Self)의 기능이다. 자기는 전체성과 의미의 원형(Archetype)이라 할 수 있다. 자기(Self) 또는 인간 안에 있는 하나님 형상이 활동할 때에는 반드시 인간의 의식 속에서 하나님의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자기(Self) 또는 내적인 하나님을 형상이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의미의 하나님의 모습과 일치한다고 할 수는 없다. 융이 하나님에 대해서 말할 때에는 정신에 내재해 있는 하나님 형상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형이상학적인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무의식적 정신은 꿈과 그 밖의 정신적 체험을 통해서 의식에 전달된 하나님의 형상을 포함하고 있으며, 또한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창출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68)
융의 제자인 아들러(Gerhart Adler)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이 ‘하나님’이라 부르는 원형이 정신 속에 존재하며, 그것이 의식적인 마음에 부딪혀 올 때 사실적으로 감지된다. 이 때문에 우리는 경험적이고 심리학적인 진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서 우리는 종교란 인간 마음의 근본적인 활동이며, 인간의 정신 속에는 신의 원형적인 상이 깊이 그리고 영원히 새겨져 있다는 것을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심리학은 하나님의 존재를 긍정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원형적인 상인 ‘자기’(Self)를 입증할 수는 있다. 여기 심리학과 종교는 다른 분야에서 서로 마주 보면서 떨어져 있기도 하고 만나기도 한다. 심리학이 정당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우리’안에 있는 ‘하나님’이 초월적 실체와 일치하는 존재일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주시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69)
정신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상은 생명력 있고 활기에 넘치는 실체이다. 자아는 정신적 힘을 분출하며 정신의 구심점이며, 정신발달을 도모한다고 한다. 자아는 정신 안에 있는 나선형 모양의 원에 비유할 수 있다. 그것은 그 안에는 정신적 힘과 잠재력을 둘러싸고 있는 원주이다. 그것은 또한 원 안의 모든 것들과 관계를 맺는 원 중심이요 원의 방향을 설정해주는 나선형 원의 운동이기도 하다. 따라서 자아는 꿈에서 종종 원이나 동그라미 모양으로 상징화되어 나타난다. 또 어떤 때는 힘을 내포하는 상징, 즉 불, 바람, 폭풍, 거대한 짐승, 엔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성서를 읽은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상징하는 이와 유사한 이미지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즉 하나님은 불, 바람, 폭풍, 불타는 병거, 돌아가는 바퀴, 타오르는 횃불로 나타나고 있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이러한 상징들은 엄청난 정신적 에너지 그러한 힘들의 본질적인 결합, 그리고 목적 있는 운동을 나타낸다.
우리의 정신 속에 이렇듯 힘이 넘치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비로소 성서에 나오는 사람들과 초대교회 사람들이 꿈을 하나님의 계시하고 생각했던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사실 꿈은 정신의 내적 힘을 나타낸다. 즉 꿈은 우리를 이 힘의 중심점과 연결시켜 주며, 우리는 그 힘의 도움을 받아 무의식의 지시를 받게 된다. 요컨대 꿈은 우리 속에 있는 하나님의 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해를 통해서 우리는 종교 발달의 필연적 요소들을 이해하게 되며, 심리학과 전통적인 기독교 교리를 더욱 흥미롭게 비교할 수 있게 된다.70)
하나님을 인간 영혼 안에 있는 힘으로 인식하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예로부터 기독교의 의미를 파악하는데 사용되어온 방법이지만 지금은 그것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기독교적 신비주의자 에크하르트(Eckhart)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종종 영혼 안에 힘이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 자신은 이 힘 안에 계셔서 끊임없이 빛을 발하며 온갖 광채를 띠고 타오르며 말할 수 없는 황홀경의 기쁨을 터뜨린다. 또한 하나님은 그의 외아들을 보내셔서 정직하고 주의 깊은 영혼 속에 영원 무궁토록 거하게 하신다. 성부 하나님이 인간 본성으로 그의 독생자에게 준 모든 것을 나에게도 주셨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에게 모든 것을 주신 것처럼 나에게도 모든 것을 주셨다.71)
아우구스티누스도 그것을 분명하게 하고 있다.
우리는 자신 안에 삼위일체 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다는 것을 진정으로 인정한다. 비록 그 형상이 하나님과 같지 않으며 또한 그 형상이 그분과 영원 공존할 수 없는 것이고 동질의 것이 아니라 하더라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다른 어떤 작품보다는 본질에 있어 그 분과 가장 가깝다. 그러므로 그 형상은 회복될 것이고 인간은 더욱 그 분과 닮게 될 것이다.72)
심리학은 우리 안에서 삶의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고 파악하며 융은 이 삶의 과정을 개성화라고 부른다. 이러한 삶의 과정은 인간에게 있는 하나님 형상을 “하나님과 보다 가깝게 닮도록” 회복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어두운면을 살펴봐야 하겠다. 선에 대립되는 어두운면은 성서에서 사탄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사탄은 세상에서 활동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며 파괴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들을 상징하는 인물로 나타난다. 인간의 본성에는 자아를 파괴하거나 전인성을 향해 가는 전체 과정을 망쳐 놓는 많은 악마적인 격정과 감정이 있다는 심리학적인 사실과 지금 언급한 신학적 개념간에는 관련성이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심리학적으로 “사탄”이란 인간 내부에 있는, 악마적인 것처럼 보이는 집단적 힘이 인격화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인간 내부에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방해하는 것은 인간 자신의 무의식이다. 스스로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자신의 악마적인 충동과 타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영적인 나태함, 타협, 그리고 이기주의가 오늘날 인간의 가장 나쁜 적이다. 하나님의 목적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것은 인간이 자기 자신과 자신의 무의식, 그리고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의 영혼을 부인하게 하고 급기야는 악마적인 것에 굴복하게 하는 불리한 상황 등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탄과 삼위일체와의 관계에 관한 문제는 융이 대단히 관심을 가졌던 어두움과 신성한 것과의 관계, 즉 앞에서 언급한 “3과 4”에 관한 문제이다.73) 비록 하나님이 모든 것을 책임지신다고 보는 철저한 유일신론을 주장하더라도 대부분의 신학적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과 사탄은 서로 아무 관계가 없다. 이같은 신학적 입장을 철학적으로 규명한다는 것은 분명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신학의 이러한 입장이 심리학에서는 그다지 어렵지 않게 받아들여진다.
성서에서 하나님과 사탄이 절대적으로 분명하게 나뉘어 있지만은 않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성서에 나오는 하나님의 형상은 선과 악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다. 예를 들면 사무엘상에서 보면 사울이 다윗에게 화를 냈을 때 “하나님에게서 온 악령이 사울에게 내리 덮쳤다”(삼상18:10)고 하였다. 이사야서에는 “빛을 만든 것도 나요, 어두움을 지은 것도 나다. 이 모든 일을 나 야훼가 하였다”(사45:7)74)고 씌여 있다. 구약성서에는 이러한 예가 많이 나오며, 그 중 몇몇 구절은 하나님에게 선과 악은 서로 비슷한 점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75)
우리들 대부분은 하나님을 선하시기만 하고 사탄은 악하기만 하다고 말하는 것에 만족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사람들은 사탄을 하나님의 형상과 지나치게 분리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어두운 힘들을 의식하지 못하고 그것들이 제멋대로 우리와 무관한 상태로 있게 내버려두기 때문에 우리 자신은 그것들의 희생제물이 되는 것이다. 앞장에서도 보았듯이 우리 속의 어두운 부분을 통합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시대의 커다란 문제이다. 만약 우리가 자신을 통합하는데 성공하려면, 먼저 어두운 힘들을 우리가 의식하고 있는 하나님 형상에 통합시켜야 한다. 확실히 깊은 무의식의 심층에서 유래하는 자아의 상징들은 어두운 부분까지 포함하여 인간의 전체를 표현한다. 하나님과 사탄이 겉으로 보기에는 결코 화합할 수 없는 정반대의 존재인 것 같지만 사탄이 없다면 인간의 자아는 결코 충분한 의식을 갖지 못하며 하나님을 인식하고 표현할 만큼 분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꿈 속에는 영적 세계를 구성하는 온갖 무리가 살고 있다. 악마들과 천사들, 사탄과 하나님의 영적인 힘들, 그리고 최초의 기독교인들이 이야기했던 모든 영적 세계들이 밤에 우리를 위해서 다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꿈은 전인적인 인간이 되도록 도와주며 인격의 정신적 구심점을 이룬다. 우리가 꿈을 이해하고 행동할 때 꿈은 우리 내부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과의 의식적인 관계를 맺도록 도와준다.76) 이런 점에서 꿈은 하나님의 음성이다.
2. 꿈을 통한 인격 완성
영성은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하는 방법이고, 성령의 에너지를 사용하여 살아가는 우리의 태도이다. 보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영성이란 궁극적인 가치를 따라 이 세상에서 행동하고 존재하는 방식이다. 꿈 해석에 있어서 영성은 우리의 내부 깊숙한 곳에 갇혀 있는 에너지를 끌어내어 매일의 삶 속으로 보내 주는 통로이다. 꿈을 소중히 다루는 사람에게 있어서 영성은 삶의 여정과 목적지이자 그 과정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다. 또한 자신의 자아뿐 아니라 원대한 하나님의 섭리를 깊이 깨달으려고 노력하면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다.77)
꿈을 해석한다는 것은 자신의 성격을 개조하고 발달시킴으로써 정신적․영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꿈을 해석하다 보면 지금까지 잘 느끼지 못했던 성격적인 결함이나 무의식적인 성향이 있음을 깨닫고 고쳐 나가게 된다. 경우에 따라서 꿈 해석은 의식적인 통찰이 필요 없을 때도 있다. 꿈을 해석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성격의 구조 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화되기 때문이다.78)
어떤 사람의 꿈을 분석해서 관찰해 보면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 맨 처음 꾸는 꿈은 어떤 특정한 문제와 관계를 가지고 있는 데 꿈의 분석을 통해 이 문제가 이해되고 행동에 옮기자마자 그 꿈은 다른 형태의 꿈으로 바꾸어지게 된다. 이것은 마치 훌륭한 선생님의 슬하에서 가르침을 받는 것과 비슷한데 그것은 한 과를 배우고 나면 선생님은 다음 과로 진행해 가기 때문이다. 또한 꿈을 꾼 사람이 어떤 문제가 존재하고 있는지도 몰랐고 그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 많은 문제들을 꿈이 다루어 주고 있기 때문에 꿈의 진행과정을 지켜본다는 것은 아주 흥미있는 일이다. 결국 꿈이라는 것은 꿈을 꾼 사람이 한 번도 대면하지 못했던 방 안의 모든 비밀을 다 드러내고야 만다. 무의식 속에 숨어 있는 과거의 죄책감이나 충격적인 경험들이 의식 속에 부상해서 충분히 이해되고 소화됨으로써 더 이상 정서를 괴롭히지 않을 때까지 죄책감이나 충격적인 경험들은 꿈 속에 나타나서 이야기 할 것이다. 이러한 무의식적인 개인문제 외에도 꿈은 또한 사회 문화에 의해 형성된 집단적인 문제도 내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연속적으로 꾸어지는 꿈에서 일관된 규칙을 가지고 예측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꿈의 구성은 의식의 지배를 초월하기 때문에 일련의 꿈들을 추적하는 데 있어서 의식의 지도를 받아들일 만한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79)
융은 그의 자서전에서 “나의 삶은 그 자신을 실현시키고자 하였던 무의식의 이야기이다. 무의식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은 밖으로 드러나 그 자신을 표출하고자 한다”고 했다.80) 그는 자신의 삶의 본질적인 부분의 핵심이며 의미 그 자체인 무의식과 만남을 “뿌리와 만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만남이 없다면 사람들은 무의미성밖에는 경험하지 못한다. 무의식과의 이러한 관련성을 지속시켜주며, 그것에 계속적인 주의를 환기시켜주는 것은 융에 의하면 종교의 본질이며, 삶의 원천이며, 삶의 의미 자체인 것이다.81)
이것은 의식의 중요성을 과소 평가하려는 것이 아니다. 물론 꿈을 분석하려는 가운데 의식의 중요한 기능을 과소 평가하고 무의식적인 정신 세계를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의식․무의식 둘 다 똑같이 중요하다. 의식보다 더 오래 전에 존재해 왔던 무의식의 영역-집단무의식은 인류 역사만큼 오래되었으나 개인적 무의식은 단지 한 개인이 살아온 인생사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은 당연히 한 사람이 인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더 우월한 지혜와 지식을 포함하고 있다.82)
감정적으로도 지적으로도 진행되어지는 일련의 꿈들이 가져다주는 것은 인격의 변화인데 인격의 변화란 꿈을 통해 자신의 본체를 드러내는 놀라운 정신의 실체에 자아가 굴복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자기 자신들에 대한 이러한 선입견 때문에 꿈을 통해 사람들은 더욱 자기 중심적이 되는 것이 아닌가?”하고 사람들은 종종 이야기한다. 오로지 자신의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욕망에만 몰두한다면 그 말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꿈을 분석하는 가운데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의 모습을 보는 사람은 보다 중요한 정신적 실체에 자아를 내맡기게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좌절하기도하고 괴로움과 굴욕감을 느낄 수도 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자기 중심적인 것이 증가되기보다는 감소하게 되는데 그것은 자기의 자아보다 더 큰 정신적 실체가 그에게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83)
인간의 꿈은 낯선 길을 따라 여행할 때 느끼는 것처럼 신비한 인상을 준다. 그 길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꿈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이러한 질문에 만족하게 대답할 수 없다. 그것은 오로지 창조주이신 하나님에게만 알려진 비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극히 부분적인 대답밖에 할 수 없다. 꿈은 우리로 하여금 ‘자기실현’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유도해 준다. ‘자기실현’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자기실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인격 내부에 존재하는 양극성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 모두에게는 선과 악, 빛과 어둠, 사랑과 증오 가능성들이 내재해 있다. 또한 인간은 모두 남성적인 면이 있는 반면 여성적인 면도 있으며, 이성적인 면뿐만 아니라 열정적인 면도 있다. 인간은 항상 두 가지 심리적 본성인 의식과 무의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짐승과 같은 본능적인 성격과 천사와 같은 영적인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인간은 양면을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다. 융이 말한 대로 인간은 “상반된 것들의 복합체”(complexio oppositorum)이다. 인간은 사실상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꿈속에서 놀랄 정도로 수많은 인간 또는 짐승의 모습들을 대면하게 되는데 이 모두가 꿈을 꾸고 있는 당사자 인격의 또 다른 측면을 나타내 주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성장해 가면서 이러한 여러 가지 특성들 가운데 극소수의 특성만 인식하고 산다. 그 나머지는 우리가 부정하고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데, 의식으로부터 부인된 특성들은 가만히 있지 않고 강제적인 힘을 써서 자신들의 인정을 받아 보려고 자아에 대항해서 투쟁을 시작한다. 결국 인간은 서로 상반되는 양특성들의 복합체라고 생각할 때 인간의 인격은 여러 가지 단편들의 특성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상처를 입거나 파괴된 자아가 자신 안에 존재하는 양극적인 특성들을 더 이상 대처할 능력을 상실했을 때 정신분열증이 발생하는 것을 보게 된다. 놀랍게도 이런 일은 우리의 생활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여기서 우리가 할 일은 우리의 인격 속에 서로 상반되는 두 양극성을 역설적으로 결합시키는 것이다.84)
인간 내부에 서로 상반되는 양극성을 결합시키려는 어떤 힘이 내재하고 있다. 이 힘은 마치 자석처럼 상반되는 것들을 끌어 모으고 결합시켜서 인격의 중심을 형성한다. 인격의 중심은 궤도를 따라 날아다니는 전자들을 지니고 있는 원자의 핵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융은 인격의 중심인 원자의 핵을 “자기”(self)라고 불렀다.85) 여기서 자기는 중심이며 동시에 주변도 되고 인간 전체와 의식과 무의식을 함께 내포하고 있다. 이 자기 즉, 정신적인 중심은 그 자체의 힘으로는 어떠한 일도 완전히 처리할 수 없고 꼭 인격의 집행자 역할을 하는 자아(Ego)를 필요로 한다. 자아의 노력이 없이 중심이 하는 구원의 기능은 효과적으로 발휘될 수 없다. 그럼에도 심리적인 갈등에 대한 궁극적인 해결의 중심은 자기(Self)이지 자아(Ego)가 아니다.86)
여기서 말하는 자기(Self)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명확하고 관찰 가능한 사실을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가설이다. 꿈을 꾸거나 꿈을 분석하는데 있어서 핵심적인 기능을 하는 세 가지 기본 구조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자아(Ego), 자기(Self) 그리고 자아와 자기 사이의 관계이다.87) 자아(Ego)는 성격의 많은 기능을 떠맡고 있다. 성격발달에 있어서 자아가 수행해야 할 과제중의 하나는 전체적인 성격을 어떤 일부와 동일시하지 않도록 함으로써 원만한 성격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또한 완전과 성화로 나아가기 위해서 자아(Ego)는 자아 자체의 요구보다 자기(Self)의 요구를 따라야 하며, 성격이 원만하게 되도록 돕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존재 한 가운데는 성격을 스스로 통전하고 변화시키고 조절하는 자기(Self)가 있다. 융의 집단 무의식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자기는 자기 실현과정의 목표이자 전인적 인격을 나타내는 원형이다. 융이 말하는 개성화는 우리가 자기 실현이라 부르는 말과 같은데 정신 속에 있는 자발적이고 자연적인 과정이다. 꿈을 통한 개성화 방법은 무의식의 창조적인 힘을 활성화하며 또 이것을 의식적으로 정신 전체에 통합시킴으로써 각 개인의 혼란된 방향 감각을 바로 잡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또한 개성화를 통한 자기실현은 무엇보다도 삶에 의미를 부여하며 성격을 형성하는 길이며 또한 세계관을 구축하는 길이다.88)
융은 억압 상태에 빠져 있는 “자기”(Self)를 의식 상태로 끌어올리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에 의하면 의식과 무의식의 가교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바로 꿈이다. 꿈은 꾸는 게 아니라 꾸어지는 것으로서 무의식이 의식에게 보내는 메시지이다.89) 이 메시지를 분석하면 무의식과 자기 상태를 체크할 수 있다. 무의식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무의식의 억압된 요소를 다른 사람들에게 투영한다. 자기 자신의 결점을 자각하지 못하고, 그것을 남에게 전가하여 남을 공격하고 비판한다.90)
융은 완전한 자기실현을 달성하기 위해 "자기"(Self)를 인식하는데 먼저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왜냐하면 자기를 전혀 모르고 자기를 실현하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들은 즉각적인 완성을, 즉 순식간에 완전히 자기를 실현하는 인간이 되는 기적을 요구한다. 실제로 이것은 인간이 인생에서 직면하는 가장 어려운 일로서, 끊임없는 수련, 지속적인 노력, 최고의 책임과 지혜 등을 필요로 한다.91)
자기 실현을 위한 무의식의 움직임은 인격의 총체적 성숙을 가능하게 하는 정신적 중심 개념에 의해서만 적절하게 설명될 수 있다. 더구나 이 자기(Self)는 꿈 속에서 종종 상징으로 표현되는데 이것은 중심의 역설적인 성격을 드러내 준다. 자기(Self)는 언제나 존재해 왔던 것이며 현재에도 활동하고 있으며 앞으로 생성되어질 것이기도 하다. 자기(Self)는 처음부터 정신 속에 타고났기 때문에 늘 존재하고 있고 현재도 계속 활동하면서 아직도 미숙한 단계에 있는 자기실현을 꽃피우려고 애를 쓰고 있다. 인간의 전인성은 궁극적인 면에서 의식을 통해서 인식되어져야 하고, 의식적인 삶을 통해 표현되어져야만 한다. 총체적인 인격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 가지 다양한 요소들이 인간의 자아에 의해 수용되고 표현될 수 있도록 충분한 결합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자기”(Self)가 “태어났다”고 말할 수 있다.92)
인간 안에 내재한 자기(Self)는 인간으로 하여금 내적으로 성숙해 갈 수 있도록 인도해 준다. 인간은 과거의 사건에 의해 영향받을 뿐만 아니라 미래에 바라는 것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무의식은 자기실현의 상, 곧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는 인간”의 상을 지니고 있다. 인간의 행동은 인생의 일상생활 가운데서 이러한 내적인 인간의 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무의식의 의도에 따라 결정되어지는데 이것은 마치 과거에 일어났던 어떤 사건에 의해서 우리의 행동이 영향을 받은 것과 같다. 여기서 두 가지 모두가 똑 같이 중요하다.
자기 실현이란 자기 내부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원이다. 모든 것이 연합되는 중심점이고, 인간의 의식과 하나님의 본성이 서로 어우러져 우아한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생명이다. 그림자도 없고 부정적 사고나 어두운 면도 없는 완전한 인간이 된다는 것은 결코 자기실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완성(completeness)이란 인간의 결점을 포함하는 역설적인 탁월함이다.
특별히 선한 것만 받아들이고 악한 것은 거부하도록 맹렬히 교육 받아온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에게 이 내용은 크게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은 선과 악의 분리가 보편적으로 행해지고 있고 이것은 오늘의 세계에 큰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다. 무엇보다도 꿈은 선과 악의 대립적 문제에 관심을 갖고 새롭고도 고차원적인 통합을 이루는 해결점을 제시하려 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오늘의 핵심적인 문제요 심리적인 지식과 영적인 통찰력간의 경계선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93)
인간이 이러한 자기실현을 향해 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기실현을 위해서는 심리적 통찰과 함께 의미에 대한 신앙적 탐구가 필요하며 다른 사람들과의 집단적 동질성으로부터 홀로 이탈도 해보고 자신과 자신의 그림자에 대한 뼈아픈 관찰도 요구되며 자기 내부에 존재하고 있는 보다 큰 힘에 굴복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참된 자기를 찾으려는 탐구는 수많은 보화와 위대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는 매혹적인 여행이다. 그렇지만 인간 내부에 존재하고 있는 양면성의 깊이를 이해하고 이 양면성의 욕구 때문에 인간이 얼마나 찢겨지고 나누어지는지를 이해하게 될 때 그의 여행은 놀라운 여행이 될 수도 있다.
3. 꿈 분석과 영적 성장
사람들은 흔히 꿈을 꾸고 난 다음 그 꿈이 무엇을 의미하는 꿈일까 하고 의아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꿈에 나타난 사람이나 사건들이 알 수 없는 것들로 채워져서 얼른 그 의미를 알아차릴 수 없기 때문이다.94)
꿈 해석에 있어서 상징이란 꿈을 꾸는 동안이나 꿈에서 깨어난 후에도 강렬한 감정을 일으키는 이미지를 말한다. 잠자는 동안에는 의식적인 통제가 벗겨지는데 무의식은 그 의미 연관에 따라서 여러 가지 상징적인 방식으로 이미지들을 만들어 내게 된다.
상징은 두 가지의 의미를 표출하고 있다. 하나의 의미는 해당되는 그 단어가 이미 그 용례(用例)에 따라서 나타내는 주된 의미이며, 두 번째 의미는 그 주된 의미에서 암시되고 있는 또 다른 의미이다.95) 그래서 상징은 다른 수단을 통해서는 모두 다 드러낼 수 없는 어떤 것의 의미를 하나의 이미지 속에 담아서 표현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 된다. 그러나 상징은 그것이 표상하고 있는 일차적인 의미와 그것에서 표상되는 이차적인 의미 사이에 아무런 연관성도 없이 무작정 그 두 의미가 결합되어서 상징으로 나타날 수 없다. 이 두 의미 사이에는 반드시 어떤 관련성이나 동질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동구밖에 큰 바위가 하나 있다고 하자. 사람들은 그 바위를 수호신으로 여기고 기도하기도 하고 제사를 지내기도 할 것이다. 여기서, 동구밖에 있는 바위가 내포하는 의미와 사람들이 수호신에게서 기대하는 의미 사이에 반드시 어떤 동질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즉 바위가 가진 거대하고 우람한 모습이 수호신에게서 기대되는 강하고 능력 있는 이미지를 불러일으켜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위는 수호신을 상징적으로 나타낼 수 있어도 병아리로는 그럴 수 가 없다. 꿈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꿈의 이미지와 그것이 표상하는 상징적인 의미 사이에는 반드시 유비구조가 작용한다. 그 둘 사이에 아무런 의미의 연관성도 존재하지 않는 상징을 꿈이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이다. 융이 꿈의 이미지에서 개인적인 연상의 중요성을 그렇게도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꿈의 이미지에 담겨져 있는 의미는 언제나 그것과 관련된 그 사람의 과거 사건이나 정신적인 특성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으며, 그렇게 해석되어야 한다.96)
상징에 우리가 주목하게 되는 것은 상징이 형상(image)과 정동(emotic)의 복합체라는 사실이다. 상징에 정동이 담겨 있는 이유는 엘리아데에 의하면, 모든 자연적인 상징 속에는 우주창생(宇宙創生) 때부터 그 상징과 관계되는 모든 사건이 하나의 이미지 속에 담겨 있어서, 그 속에 무한한 정동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물이라는 상징 속에는 태초의 창조사건이나 대홍수에 잠기는 것, 그 다음에 다시 충적토에서 새 생명이 탄생하는 것 등 우주적인 생명과 관계되는 상징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상징은 하나의 사건을 관념으로 변형시키고, 그 관념을 다시 이미지로 변형시키기 때문에 그 이미지 속에는 거기에 본래적으로 담겨 있는 사건들이 표출되고자하는 무한한 정동이 담겨져 있다. 예를 들면, 십자가라는 상징은 그 상징적인 의미를 파악하는 사람에게는 이제 더 이상 하나의 단순한 나무가 아니라 그 속에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이 담겨 있는 경이로운 상징이다. 따라서 십자가에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에 얽혀져 있는 수많은 정동이 담겨 있는 것이다.97)
꿈의 이미지도 사람들이 깨어 있을 때 가졌던 많은 사건과 관계를 하나의 이미지 속에 농축시켜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꿈의 상징에는 변형의 기능이 있다. 꿈을 제대로 해석하기만 한다면 사람들은 상징에 참여해서 상징의 역동적인 힘을 체험할 수 있게 된다.98)
융 분석가 존 샌포드는 그와 상담한 사람에 대한 꿈 해석을 소개하면서 꿈 해석과 치유의 예를 다음과 같이 들고 있다. 그의 내담자 가운데 한 사람은 자기가 꾼 꿈의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99)
“나는 전쟁터에 있었다. 그때 총과 칼을 가진 사악하게 생긴 사람이 나타났다. 나는 도망갔으나 그는 나를 쫓아와서 마침내 나를 죽이고 말았다.”
샌포드는 이 꿈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다. 이 꿈에서 총과 칼을 가진 사악하게 생긴 사람은 꿈꾼 이의 그림자다. 그림자는 꿈속에서 꿈꾼 이와 같은 성(性)으로 나타나며, 악하거나 열등한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 사악한 사람은 꿈꾼 이가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부정적인 욕망일 수 있고, 아주 싫어하는 열등한 인격적인 특성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의 인격의 어두운 부분이다. 그것은 그가 받아들이기를 거부해 버렸기 때문에 그에게 적대적으로 나타났다. 이 꿈에서 전쟁터는 그의 마음의 싸움터이다. 이 그림자가 자신의 인격의 일부이기 때문에 그에게 받아들이라고 촉구하고 있는데, 그는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싸우는 것이다. 그런데 꿈꾼 이는 그의 그림자와 싸우려고 하지 않고 도망간다. 자신의 문제를 받아들이지 않고 도망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문제를 직시하고, 그 문제와 맞서 싸워야 한다. 그런데 결국 꿈꾼 이는 죽게 되었다. 꿈에서 꿈꾼 이가 죽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꿈꾼 이가 다시 태어나기 위해 죽는 것을 의미한다. ‘죽는다’란 말은 ‘변화한다’는 말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새롭게 되기 위해서는 낡은 것은 죽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꿈을 해석한 다음, 어느 날 그의 내담자는 이런 꿈을 꾸었다.100)
“나는 다시 전쟁터에 있었다. 나의 적은 다시 칼을 들고 나에게 다가왔다. 그는 나를 죽이려고 했다. 나는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다 멈추어서 그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래, 나를 죽이고 싶으면 죽여봐.’ 그 적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미소를 짓더니 돌아가 버렸다.”
우리는 여기에서 꿈의 발전을 보게 된다. 처음 꿈과 비슷하지만 꿈꾼 이의 태도가 변화되었고, 사악한 사람의 태도도 변화되었다. 샌포드는 이 꿈을 다시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여기서 꿈꾼 이는 그의 그림자를 받아들이고 있다. 받아들이기가 몹시 싫어서 처음에는 도망을 쳤지만 결국 자신의 문제를 정면으로 받아들이고, “그래 죽일테면 죽여봐”라고 하면서 그림자를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그의 그림자가 미소를 짓더니 돌아가버린 것이다. 자기 인격의 그림자는 처음에는 받아들이기가 어렵지만 일단 받아들이기만 하면 그것은 우리에게 오히려 복이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우리의 약한 부분을 보충하게 하며, 우리의 약한 부분 때문에 우리가 다른 사람의 약한 부분까지 용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그림자는 그가 의도했던 목적을 달성했다. 그러므로 그를 더 이상 죽이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이 꿈에서도 보이듯이 이 내담자는 자기의 문제를 극복하고 신경증에서 나을 수 있었다.
꿈 해석에서도 나타나듯이 꿈속에 나오는 이미지들은 모두 상징적으로 해석되었다. 즉, 사악한 사람, 전쟁터, 칼, 도망치는 행동, 맞서는 행동, 미소짓는 행동 등은 모두 꿈꾼 이의 의식적인 상황과 관련지어서 그것이 담고 있는 이차적인 의미로 해석된 것이다. 이렇게 해석할 때 우리는 이 꿈이 담고 있는 의미를 좀더 명료하게 알 수 있게 된다. 이렇게 해석하지 못한다면 꿈꾼 이는 “이게 도대체 무슨 꿈일까?”, “난데없이 전쟁터가 나오고, 또 내가 적에게 찔려서 죽다니 어찌된 일일까?”하고 의아스럽게 생각할 것이다.
샌포드가 분석한 꿈의 또 다른 예를 보자. 어떤 여자가 다음과 같은 꿈을 꾸었다.101)
"나는 아름다운 옷을 입고 큰 모임에 가려고 버스에 타고 있었다. 버스가 도착해서 내릴 때 내 스타킹 한 쪽에 구멍이 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 꿈에 대한 해석을 샌포드는 이렇게 하고 있다. 이 꿈에서 중요한 점은 스타킹에 난 동그란 구멍이다. 다리는 사람의 몸 아랫부분으로서 우리 인격의 하등한 부분 또는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나 감정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 여인은 자기 성격의 본능적이며 열등한 면을 충분히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가 큰 모임에 가려고 버스를 타기 전까지 자기 스타킹에 구멍이 난 것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구멍이 동그랗다. 동그랗다는 것은 자기(Self)의 상징으로서 완성에 대한 것을 나타낸다. 그녀가 자신의 성격의 본능적이고 열등한 측면을 지금처럼 인식하고 받아들이면 자신을 통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 꿈이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녀는 자신의 성격의 우월한 면만을 드러내려고 하지 말고, 자신의 불완전함을 수용할 때 좀더 성숙한 인격으로 자라날 수 있는 것이다.
꿈에 나타난 이미지들은 모두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 이미지들은 상징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꿈의 이미지들에 담겨 있는 상징적인 의미들을 제대로 해석하여 그 꿈이 담고 있는 의미를 올바르게 파악할 때 사람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변화가 나타난다. 첫째로, 꿈꾼 이에게서 그 꿈 해석에 대한 반응이 나타난다. 그 해석에 동의한다든지, 자기의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서 놀란다든지, 감동한다든지 하는 변화가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그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해서 그 해석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 다음의 변화를 지켜보아야 하는 것이다. 둘째로, 그 해석과 관련된 꿈을 꾸게 된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전에 꾸었던 꿈이 좀더 발전해서 나타난다든지, 꿈속에서 좀더 다르게 행동한다든지 하는 일이 생긴다. 셋째로, 꿈 이외에 다른 변화가 생겨난다. 깨어 있을 때의 그의 행동이 변화된다든지, 그에게서 어떤 증상이 사라진다든지 하는 일이 생겨나는 것이다.
융은 우리가 꿈을 해석할 때는 무의식의 세계가 미래를 내다보는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꿈 한 편만을 가지고 해석하는 것보다는 일련의 꿈을 해석하는 것이 좋다고 강조한다. 즉 시간적으로 이어지는 꿈이나, 같은 주제를 가진 꿈, 어떤 특별한 기간에 꾸는 꿈, 반복해서 꿈에 나타난 이미지들이 어떻게 변화되었는가 하는 사실을 살펴보면서 같이 해석하는 것이 그 꿈의 진정한 의미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강조하는 것이다.102)
꿈의 상징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제대로 해석하기만 하면 우리는 꿈을 통해서 변화된 삶을 살 수 있다. 꿈속에서 자기(Self)를 발견하고 그 완전한 상에 이끌러 자신을 온전하게 통합하거나, 샌포드의 내담자처럼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상징이란, 그 곳에 정동(emotion)과 힘(energie)을 담고 있어서 상징을 제대로 해석하기만 하면 그 정동과 힘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상징이 가진 역동성에 참여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상징을 상징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상징이 가지고 있는 역동성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자기 삶이 따분하다고 느껴질 때 자기 내면으로 눈을 돌려 심층의 소리와 대화하면, 다시 삶의 진정한 의미를 접할 수 있다. 그리고 삶의 깊은 층에서 뿜어 나오는 새로운 기운을 접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삶은 다시금 새로운 역동성에 잠기게 되는 것이다. 우리 심층에는 그 옛날 요정이 살고 영웅이 살았던 무한한 의미의 세계와 에너지가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103)
우리가 꿈을 꾸는 이유는 우리 삶이 우리 눈앞에서 전개되는 경직된 합리성에만 몰두하고 실용주의적인 태도에 몰두하여 내가 이것을 하면 나에게 얼마만큼 도움이 되고 얼마만큼 이익이 돌아오는 가만 따지고 있을 때, 우리 삶은 그렇게 계산적으로 따져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보다 더 그윽하고 의미 있는 측면이 있으며, 그 곳에 살 때 우리 삶에 더 큰 기쁨이 있고 더 역동적인 삶을 살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꿈의 상징들은 우리 삶의 그런 측면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가 그 상징들을 제대로 해석할 때 우리를 그런 세계로 안내해 준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우리 꿈에 진지하고 사려 깊은 고려와 관조의 태도를 보일 때, 우리는 지금보다 더 신중하고 무게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눈앞에 보이는 상황이 변화되는데 따라서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면의 흐름을 따라서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 삶은 무한하게 변화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무한한 가능성이 담겨 있다. 우리는 우리 삶의 전개 단서를 꿈을 통해서 감지할 수 있으며, 그 삶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힘을 역시 꿈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 융이 말한 대로 우리 삶은 무의식의 자기 전개과정이기 때문이다.104)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꿈을 진지하게 관찰하고 그 꿈의 상징들이 펼쳐내는 이미지들을 주의 깊게 살펴볼 때, 우리는 매일매일 삶을 설래이는 기대와 바람 속에서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Ⅴ. 꿈 분석의 실제와 생활
영적인 관점에서 보면 꿈 해석은 하나님과 깊고 풍요로운 관계를 맺는 통로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꿈은 또한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이해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기도 하다. 꿈은 우리에게 해답을 주기보다는 질문을 던진다. 꿈은 가능한 모든 대안을 제시하지만 선택은 우리 자신에게 맡긴다. 꿈이 던지는 질문들은 우리가 해결해야할 문제들을 보여 주고,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실천해야 할 과제들을 깨닫게 해주며, 실생활에서 이 관제들을 실천하기 위한 에너지를 꿈으로부터 끌어내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이를 통해 궁극적 삶의 목적인 정신적 완전과 영적 성화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 꿈 해석 기술들은 꿈이 상징언어를 이해하도록 도와줌으로써 성격적인 결함이나 인간 관계에서 입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게 해준다. 꿈은 또한 자아를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도와주고, 자아로 하여금 무의식이나 영과 긴밀하게 협조하여 보다 건강한 선택을 내릴 수 있도록 능력을 키워 준다.
1. 꿈 기록과 관찰105)
1) 꿈 기록하기
꿈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 꿈을 이용하기 위해서 가장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은 꿈을 기록하는 것이다. 우리가 꿈을 꾼 다음에 그 내용을 즉시 기록하지 않으면 대부분의 꿈들은 뇌리에서 사라지고 만다. 잠에서 깨어나자 마자 자신의 꾼 꿈을 기억나는 대로 자세하게 기록해 두는 것은 꿈 해석을 시작하는 중요한 첫 단계이다. 꿈을 기록하는 것은 가물가물 사라지려고 하는 생각과 감정을 의식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훈련이 되고, 자신의 내부 세계를 보다 분명하게 이해하는 능력을 키워 나가는 데에도 매우 효과적이다.
꿈을 상세하게 기록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단 몇 줄이라도 적어 놓거나, 꿈에 본 영상을 그림으로 그려 두거나, 테이프에 녹음해 놓거나, 또는 친구에게 이야기해 두는 등 다양한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꿈 기록 순서
1. 잠들기 전에 꿈을 꿀 마음의 준비를 하고, 깨는 대로 꾼 꿈들을 모두 기억하겠다고 다짐한다. 과거에 겪었거나 앞으로 일어날 사건들을 머리에 떠올리면서 꿈을 꾸었으면 하는 일들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 잠에 빠져들기 직전까지 “나는 꿈을 기억하며 깨어날 것이다”라고 자신에게 다짐한다. 잠에서 깨어나자 마자 꿈을 기록할 수 있도록 잠자리 곁에 스탠드와 일기책과 펜을 준비해 둔다.
2. 가능하면 꾼 꿈들을 자명종 시계의 알람이 꺼지기 전에 기억해 내도록 노력한다. 아무튼 잠에서 깨어나자 마자 꿈의 내용과 이에 따르는 생각과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꾸밈없이 기록한다. 장면, 행동, 반응, 생각, 태도, 감정, 선택, 등장하는 인물들의 성격 등 꿈에서 겪은 모든 것들을 빠짐없이 적어 놓는다. 색깔, 소리, 맛, 동작, 촉감 등 감각 경험도 상세하게 기록한다. 문법이나 철자 또는 구두점은 틀려도 좋다. 일단 꿈을 기억하여 재빨리 적어 놓은 후 다시 검토하여 문맥이 통하도록 문장을 수정한다.
3. 기록해 놓은 꿈 바로 밑에 “비고”라는 소제목을 붙이고 꿈에 관해 자유스럽게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을 기록해 놓는다. 이 말은 꿈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들을 적으라는 것이다. 세밀한 분석이나 꿈으로부터 너무 동떨어진 생각들은 피하는 것이 좋다. 솔직한 감정, 떠오르는 질문, 연상되는 장면이나 단어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 이러한 것들은 후에 꿈의 의미와 문맥을 보다 분명히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2) 꿈의 관찰(TTAQ)
꿈 일기를 기록할 때에 몇 가지 같이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 "TTAQ"라고 부르는 기술인데, 이 기술은 단순하면서도 매우 커다란 효과를 볼 수 있다. 따라서 꿈 해석에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이 기술만으로도 자신의 꿈을 이해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꿈에 “제목”(T: Title)을 붙인다. 제목은 질문, 감정, 행동, 중요한 장면 또는 그 장면에 대한 반응을 표현하는 짧은 문장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야곱은 자신의 꿈에 “사닥다리와 천사”, “나의 운명적인 꿈”, “하나님과 계약을 맺다” 또는 “하나님과 나”라는 제목을 붙일 수 있었을 것이다. 제목을 붙일 때 생각을 집중하는 방법으로 “이 꿈이 어떤 제목을 원하는가?”라고 자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제목 밑에 “주제”(T: Theme)를 적는다. 하나 이상의 주제가 있을 때에는 꿈에 나타나는 순서대로 주제들을 기록하는 것이 좋다. 야곱이 적을 수 있을 법한 주제를 적어보면, “하나님과 나의 관계”, “땅과 하늘의 연락”, “나의 가족과 부족의 미래”, 또는 “하나님의 신실하심” 등이 야곱의 머리에 떠오른 꿈의 주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주제를 정하기 위해서는 꿈으로부터 조금 떨어져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주제를 찾는 것은 꿈이 우리에게 보여 주려고 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꿈의 직접적인 영향으로부터 벗어나서 객관적으로 그 꿈을 다룰 수 있기 때문이다. 꿈이 복잡하고 혼란스러워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때에는 그 꿈을 여럿으로 분리하여 각 부분의 주제를 찾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우리가 찾아내는 꿈의 주제는 자신의 의식적인 태도를 말해 준다.
셋째, 꿈 속에서 경험한 “감정”(A: Affect)들을 순서대로 적는다. 기쁨, 슬픔, 불안 등과 같은 감정은 꿈을 이루고 있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꿈을 꾸는 동안 나는 꿈을 이떻게 느꼈으며 어떤 감정들에 사로잡혔는가? 꿈을 꾸고 난 후에 느낀 감정은 무엇인가?” 공포, 기쁨, 열망, 불만, 환희, 아늑함, 즐거움, 좌절, 불안, 호기심, 분노 등 현실에서 느끼는 모든 감정들을 꿈에서도 똑같이 느낀다. 야곱은 꿈속에서 경이와 두려움, 경외, 놀라움, 그리고 깨어나자 마자 야훼와 계약을 맺고 싶은 충동을 느꼈을 것이다.
넷 째, 꿈에 대한 “질문”(Q: Question)이다. “과연 이 꿈이 내게 어떤 질문을 하고 있는가?”하는 것이다. 꿈은 해답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던지는 질문이다. 꿈을 올바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해답보다는 꿈이 던지는 질문을 찾아야 한다. 새로운 가능성과 의미 그리고 우리의 영적인 삶을 풍요롭게 하는 지혜가 바로 꿈이 던지는 질문 안에 있기 때문이다. 꿈은 해답을 주기보다 다양한 가능성과 생활태도, 해결해야 할 상황, 치유해야 할 관계, 실현해야 할 잠재력 등을 우리에게 알려 준 후,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묻고 있는 것이다.
TTAQ의 활용순서
1. 제목(T): 자신의 꿈에 제목을 붙인다. “이 꿈은 어떤 제목을 원하는가?”하고 조용히 자문하여 적절한 제목이 떠오르게 한다.
2. 주제(T): 꿈에 등장하는 중요한 주제나 문제를 찾는다. 하나 이상의 주제가 있을 때에는 꿈에 나타나는 순서대로 적는다.
3. 감정(A): 꿈을 꾸는 동안에 가장 강력하게 느낀 감정은 무엇인가? 여러 가지 감정이 서로 교차했을 때에는 역시 경험한 순서대로 적는다.
4. 질문(Q): 꿈은 내게 어떤 질문을 던지는가? 꿈은 내게 어떤 것을 깨닫고 인식하기 원하는가?
세이버리는 우리가 꿈 일기를 작성함으로써 얻게 되는 장점을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첫째, 꿈에는 우리 삶의 내용이 그대로 나오기 때문에 우리 삶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어떤 뚜렷한 성향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둘째, 꿈을 통해서 우리 삶에는 우리를 이끌어 가는 어떤 독특한 운명과 같은 것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셋째, 우리 꿈에 자주 나타나는 이미지, 문제, 인물, 주제 등을 통해서 우리 삶의 중요한 과제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넷째, 어떤 꿈의 경우 울 삶에 어떤 큰 변화가 일어났음을 알려 주기도 하며, 그 전환기를 우리 삶 전체와 연관시켜 생각할 수 있게 한다. 다섯째, 우리 삶을 좀더 넓은 시각에서 조망할 수 있게 한다고 주장하였다.106)
2. 꿈체험하기
꿈을 기록했으면 그 기록을 가지고 꿈 작업(Dream work)을 해야 한다. 꿈속으로 다시 들어가 보고, 꿈에 나타난 이미지들을 살펴보아야 한다. 기록한 꿈이 많을 때에는 꿈들 중에서 가장 잊혀지지 않는 꿈, 가장 강력한 느낌을 주는 꿈, 요즘 삶의 어떤 중요한 문제와 연관되는 듯이 생각되는 꿈을 선택해서 작업을 한다.
꿈을 선택한 다음 꿈을 이용하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첫 번째 방법은 꿈을 본격적으로 해석하는 것이고, 두 번째 방법은 해석을 통하거나, 혹은 통하지 않고 꿈속에 들어가서 꿈에 나타난 인물과 대화하거나 꿈의 상징에 몰입하여 그 이미지로부터 역동적인 에너지를 받는 것이다. 첫 번째 방법은 정신과 진료실에서 분석가에게 꿈꾸었던 내용을 말하고, 그 꿈속에 나타난 이미지들을 함께 분석하는 것과 똑같은 것을 자기 혼자서 하는 것이다. 이때 우리는 현재의 의식상태, 꿈의 내용, 꿈의 이미지에 대한 개인적인 연상, 꿈 이미지에 대한 확충 등을 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먼저 꿈속에 들어가서 꿈의 이미지들을 살펴보고, 그 꿈에 대한 개인적인 연상을 충분히 하며, 상징사전 등을 통해서 꿈 이미지에 대한 문화적, 사회적, 종교적인 의미를 고찰하고, 이 모든 자료를 가지고 꿈의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물론 자기의 꿈을 해석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자기 꿈의 의미를 잘 알 수 있는 것은 자기이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꿈의 의미를 살펴보고 그 해석의 결과 자신의 행동이나 삶에 어떤 일이 생겨나는가 하는 것을 살펴보아야 한다.
두 번째 방법은 지난 밤 꾸었던 꿈속에 들어가서 다시 그 꿈의 이미지들을 생생하게 떠올리는 것이다. 꿈 일기를 보고, 그 꿈을 머리에 떠올리면서 꿈속으로 들어가 다시 그 꿈을 체험한다. 이 때 우리가 그 꿈을 지난 밤 처럼 완전히 체험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꿈속에서 보았던 장면을 떠올리면서, 그 때 느꼈던 감정을 지금 다시 느끼려고 한다면 쉽게 꿈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조용한 시간과 장소를 마련해서 잠시 가벼운 명상 상태에 들어가는 것이 좋다. 명상 상태 속에서 우리의 자아의식이 어느 정도 약화되어 우리는 무의식의 흐름에 더 잘 이끌릴 수 있기 때문이다.107)
명상법 활용 순서108)
1. 외부적인 환경을 고요하게 해야 한다. 곁에 사람이나 동물 등 우리 자아 의식을 흔들어 놓을 수 있는 대상을 정리하고 우리 내면에 접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화선도 미리 빼놓고, 귀마개를 사용하거나, 부드러운 소리가 나는 음악을 틀어놓아 다른 소음을 차단하는 것이 좋다.
2. 내적인 환경을 고요하게 해야 한다. 내적인 환경을 고요하게 하려면 먼저 근육의 긴장을 풀고 자세를 편안하게 해야 한다. 근육의 긴장을 풀기 위해서는 온몸의 경직되어 있는 근육을 풀어야 하는데 특히 팔, 다리, 목 등 경직되기 쉬운 근육을 푼다. 그러나 운동은 너무 오래 할 필요는 없고 5분 정도 한다. 그 다음에 자리에 편안하게 앉고, 몸의 중심을 낮춘다. 이 때 왼발을 오른쪽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고, 오른발을 왼쪽 넓적다리에 올려놓는 결가부좌를 택하거나, 한쪽 발만 다른 쪽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는 반가부좌 상태를 취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이런 자세도 습관이 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으므로 처음에는 자기에게 가장 편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 좋다.
3. 마음의 고요함을 이루는 것이다. 눈을 감고 자아가 우리 생각에 개입하는 것을 최대한 줄이면서 수동적인 태도를 발달시키는 것이다. 이때 머리 속에 잡념이 떠오르기가 쉬운데, 그럴 때 그것을 떨쳐버리려고 싸우면 마음의 고요가 더 이루어지기 어려우므로 싸우려고 하지 말고, 맑고 푸른 하늘을 생각하는 등으로 자아의 개입을 막으면 이내 마음속에 고요가 이루어진다.
4.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호흡에 집중한다. 호흡에 집중하는 이유는 우리 생각을 외부세계와 관련된 모든 것에서 떠나 내면에 집중하고, 내면의 리듬을 따르도록 하기 위함이다. 호흡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여덟을 세면서 숨을 들이쉬고, 다시 여덟까지 세면서 숨을 내쉬는 동작을 계속하면 우리는 다른 잡념을 멀리하면서 호흡에 집중할 수 있다. 이렇게 하는 동안 우리의 호흡은 점점 깊어지면서 마음속의 고요가 이루어진다.
5. 이제는 호흡에 집중하지 않고 머리 속에 꿈의 내용을 떠올리고 그 꿈속으로 들어가 그 속에 잠긴다.
3. 꿈의 이용
꿈속에 들어가서 완전하지는 않지만 처음 꿈꾸었던 때의 감정에 잠겨서 꿈속에 나타났던 이미지들을 다시 체험했다면, 그 다음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꿈 작업에 들어갈 수가 있다. 하나는 각성상태로 나와서 작업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명상속에서 작업하는 것이다.
1) 각성상태에서의 꿈의 이용법
세이버리가 제시한 것 가운데 각성상태에서 꿈을 이용하는 방법에는 질문던지기, 꿈의 자아 따라가기, 자신의 성격 과제 선택, 상징확장법과 상징연상법, 꿈 상징의 형상화 등이 있다.
가. 주요 질문 던지기109)
꿈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우리도 꿈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단순히 어떤 정보를 얻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꿈의 기능과 꿈과 나의 관계를 밝히기 위해서 꿈에게 질문을 한다. 예를 들면, “나는 이 꿈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또는 “이 꿈은 나의 삶에서 어떤 문제를 제기하는가?”하는 질문이다. 이러한 질문은 기능과 관계를 밝히는 질문이다. 이때 우리는 꿈에 나타나는 행동과 영상에 관해 반드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예를 들면, 예수님이 세례받을 때 본 환상을 해석해 보면, “하늘이 두 쪽으로 갈라져 열리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또는 “왜 하나님은 비둘기를 사용하여 내게 말씀하시는가?”라고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질문을 던진 후 꿈 속에서 대답을 찾기보다는 이에 대한 반응을 기다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반응과 상호작용을 기대하면서 던지는 질문은 꿈과 자신의 관계를 보다 깊고 넓게 해줄 뿐 아니라 자신의 자아를 보다 분명하게 알 수 있도록 도와준다. 꿈에게 질문을 던질 때 우리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시각으로 자신의 삶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가능성과 대안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주요 질문 던지기 활용순서
1. 기록해 놓은 꿈을 여러 번 읽은 후, 이 꿈에 대해 묻고 싶은 질문들을 차례대로 적는다. 더 이상 질문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 전까지 이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찾지 않는다.
2. ‘꿈이 내게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무엇인가? 꿈이 내게 주려고 하는 선물은 무엇인가? 꿈 속에서 나는 왜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었는가? 이 꿈은 나의 삶에서 지금 어떤 문제와 가장 관련이 있는가?’ 등 중요한 질문들을 빠트리지 않았는지 살펴본다.
3. 이 질문들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한 두 개의 질문을 골라 표시한 후 그 질문을 선택한 이유를 적는다.
4. 이 질문에 대한 자신의 대답들을 마음에 떠오르는 대로 수정하지 않고 적는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새롭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5. 아무런 대답도 생각나지 않을 경우에는 잠자리에 들 때까지 시간 나는 대로 이 질문을 자신에게 묻고 또 묻는다.
6. 그 날의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기 전에 꿈과 꿈에게 던졌던 질문들과 이 질문들에 대한 자신의 대답을 다시 한 번 살펴본다. 그리고 이 꿈을 통해서 새롭게 깨달은 삶의 의미와 목표가 무엇인지 알아본다.
나. 꿈 자아 따라가기
꿈자아란 꿈 속에 등장하는 배역 중 자기 자신으로 생각되는 부분을 일컫는 것인데, 후에 꿈에 관해 이야기할 때 “나”라고 지칭하게 될 역할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우리는 꿈에 현재의 내 모습으로 나타날 수도 있지만 어린아이나 나이 먹은 노인으로 등장할 수도 있다. 그리고 사람뿐 아니라 동물, 새, 꽃 등 다른 어떤 물체로도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꿈에 나는 긴 날개를 가진 새였습니다” 또는 “나는 길가에 핀 한송이 들국화였습니다” 라고 꿈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
정신적,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꿈 자아의 태도, 행동, 선택, 반응 등을 잘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꿈 자아의 행동이나 태도가 깨어 있는 자아와 많이 다를 때, 즉 꿈 자아가 깨어 있을 때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자신 있게 행동하는 것처럼 보일 때에는 “꿈 자아가 나를 완전과 성화로 나아가게 하려고 모범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고 자신에게 물어 보는 것이 좋다. 만일 평소와는 달리 꿈 자아가 수동적이거나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있다면 “꿈 자아는, 내가 전에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보여 줌으로써 인격적으로 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깨닫고 용기를 내도록 도와주려는 것은 아닐까?” 하고 자신에게 물어볼 수 있다.
“꿈 자아 따라가기” 기술을 잘 활용하려면, 꿈 자아가 했던 행동과 할 수도 있었을 행동들을 서로 비교하고 검토하여 완전과 성화로 나아가는 보다 나은 대안들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꿈 자아 따라가기 활용순서 1110)
1. 꿈을 기록하고 나서 “TTAQ"와 “주요 질문 던지기” 등과 같은 기본적인 꿈 해석 기술들을 사용하여, 꿈 기록한 것을 다시 읽으면서 꿈 자아가 취했던 태도나 행동들을 찾아낸다. 종이에 수직선을 그어 세 개의 난으로 나눈다.
2. 첫째 난의 제목을 “행동”이라고 붙이고서 꿈 자아가 취했던 행동들을 순서대로 적는다. 예를 들어, 꿈 자아가 어떻게 행동했고, 어떻게 말했고, 어떤 것을 선택했고, 상황에 어떻게 반응했는가를 상세하게 기록한다. 꿈 자아가 취한 행동은 꿈에 따라 몇 가지 안될 수도 있지만 많은 경우도 있다.
3. 둘째 난은 이름을 “태도와 감정”이라고 붙이고, 첫째 난에 적은 각각의 행동에 꿈 자아가 어떻게 반응했는지, 그때 느꼈던 감정이나 태도를 옆에 나란히 적는다. 꿈 자아의 행동에서 어떤 법칙이나 성향이 나타나면 놓치지 말고 기록해 둔다.
4. 셋째 난의 이름은 “대안”이라고 부른다. 첫 두 칼럼을 모두 적은 후, “내 꿈 자아의 태도나 행동이 깨어 있는 자아와 비슷한가?” 라고 자문해 본다. 그리고 나서 자신에게 “꿈 자아의 행동과 반응이 마음에 드는가? 아니면 행동이나 태도를 바꾸기 원하는가?” 라고 조용히 물어 본다. 만일 바꾸고 싶다면 꿈 자아가 취할 수 있었거나 취하기 원하는 행동과 태도를 셋째 난에 적는다.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대안을 찾아낸다.
5. 대안들을 서로 비교해 본 후, 어떤 행동이나 태도를 취했을 때 정신적, 영적인 성장에 더 도움이 될 수 잇는지 밝혀 낸다.
꿈 자아 따라가기 활용순서 2111)
“꿈 자아 따라가기2”는 “꿈 자아 따라가기1”의 세 번째 난으로부터 얻은 가능성과 대안들을 바탕으로 꿈을 다시 쓰는 기술이다. 이 기술은 성격발달에 도움이 되는 대안을 찾기 위한 것이다. 특히 이 기술은 보다 적극적인 삶을 살기 원하거나 자신의 감정을 보다 자유롭게 표현하기를 원할 때, 즉 자신의 생활 태도를 개선하기 원할 때 매우 효과적이다.
1. 먼저 “꿈 자아 따라가기1”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인다.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가능성과 대안들을 적는다.
2. 세 번째 난에서 얻은 가능성과 대안들을 사용하여 꿈을 처음부터 끝까지 수정하여 다시 기록한다. 꿈 자아로 하여금 가장 바람직한 행동과 태도를 마음대로 골라서 취할 수 있게 한다.
3. 본래의 꿈과 다시 수정하여 기록한 꿈을 서로 대조한 후 그 느낌을 적는다.
4. 수정한 꿈에 취한 새로운 태도와 선택이 마음에 든다면, 이것이 실생활에서 취하는 태도나 선택과 어떻게 다른지 살펴본 후, 이 새로운 태도와 행동을 삶에서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본다. 그리고 바로 이 방법을 실행하기 시작한다.
수정한 꿈의 꿈 자아는 실제로 깨어 있는 자아라고 할 수 있다. 수정한 꿈은 깨어 있는 자아가 의도적으로 다시 구성한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깨어 있는 자아는 이 기술을 통해 보다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연습을 하게 된다. 자아뿐 아니라 성격도 이 훈련을 통하여 더욱 건강해지고 튼튼해진다. 그리고 성격 구조 속에서 어떤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다. 자신의 성격과제 선택112)
“성격 과제”는 행동, 정서적 반응, 태도, 심리적 방어기제 등을 포함한 전체적인 성격 구조에 구체적인 변화를 주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해, 성격 과제의 목적은 꿈으로부터 얻은 에너지를 이용하여 자신의 성격을 개조하는 것이다.
“성격 과제”를 구체적으로 수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꿈으로부터 분수처럼 흘러나오는 에너지를 느끼면서도 보고 즐길 뿐 성격 개조에 사용하지 않으려 하는 경향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꿈 해석을 꾸준히 하다 보면 이러한 소극적인 경향은 사라지고 꿈으로부터 얻은 에너지를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생긴다.
성격 과제 선택 활용순서
꿈은 때때로 우리 자신의 성격에 나타나는 문제점이나 주제를 부여 준다. 우리는 이러한 꿈을 통해 자신의 성격을 개조하여 보다 완전하고 거룩하게 변화될 수 있다. 꿈과 꿈 해석으로부터 얻은 에너지가 성격 발달과 관련이 있다고 느껴질 때에는 알맞은 성격 과제를 택하여 수행하는 것이 좋다
1. 꿈은 어떤 성격 문제를 제시하고 있는가? 꿈은 나의 태도, 가치, 행동, 습관, 기호, 견해, 편견, 중에서 어떤 것을 고치라고 요구하고 있는가?
2. 꿈과 꿈을 해석한 결과, 어떤 감정과 에너지가 내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는가? 이 감정과 에너지는 나를 어디로 끌고 가려고 하는가? 나의 성격 중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는가?
3. 꿈에서 얻은 에너지를 이용할 수 있는 적절한 “성격 과제”를 택한다. 그 과제는 구체적이고 한정적이며, 곧 시작할 수 있는 것일수록 좋다.
4. 한 번에 마치려 하지 말고 한 걸음씩 나아간다. 과제를 여러 가지 소목표로 나누어 하나씩 성공적으로 실행하여 자신감을 기르게 되면 어려운 과제도 무사히 완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의 과제를 마친 후, 또 다른 과제를 택해서 쉬지 않고 수행해 가야만 꿈으로부터 에너지를 계속 끌어낼 수 있다.
라. 상징확장법과 상징연상법113)
상징확장법은 어떤 상징이 일반적으로 지니고 있는 감각적이고 기능적인 특성들을 모두 밝혀 낸다. 꽃병을 예로 들면, “꽃병은 일반적으로 어떤 기능을 하는가?”라는 질문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 그 대표적인 대답으로서 꽃을 꽂거나 책상을 장식하는 기능을 들 수 있다. 그리고 그 외에도 예술품으로 수집하여 소장한다거나, 어떤 물건을 저장하고 숨긴다거나, 선물로 주는 등 다양한 기능들을 생각해 낼 수 있다. “상징확장법”은 또, 이 상징이 꿈 속에서 지니고 있는 독특한 특성이나 기능을 밝혀낸다. 예를 들면, 꿈 속에서 본 꽃병이 다른 꽃병들과 시각적, 기능적으로 어떻게 다른가를 알아낸다. “상징확장법”을 통해서 우리는 상징이 현재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있다.
“상징연상법”은 꿈의 상징과 다른 상징들을 연결시켜 주는 기술이다. 이 기술의 열쇠는 “이 상징을 통해 기억나는 것은 무엇인가?” 또는 “이 상징에 관해 생각할 때 어떤 것이 마음에 떠오르는가?”하는 질문이다. “상징확장법”이 주로 상징의 객관적인 면을 다루는 반면, “상징연상법”은 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면을 다루는 것이다. 연상을 통하여 상징이 우리의 개인적인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의 영적인 삶은 현실과 유리된 빈 껍데기만 남을 가능성이 크다.
꿈 해석에 있어서 “상징연상법”은 우리가 꿈의 상징에 부가한 주관적인 의미를 밝혀 내는 것인 반면, “상징확장법”은 오랜 역사와 전통으로부터 물려받은 객관적인 의미들을 다루는 것이다. 따라서 이 기술들을 골고루 사용해야만 상징이 지니고 있는 의미를 보다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다.
상징확장법 활용순서
1. 꿈에서 살펴보기 원하는 상징을 고른 후,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진다. “꿈 밖에서, 즉 현실 세계에서 이 상징의 일반적인 특성과 기능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이 상징이 내 꿈 속에서 보여 주고 있는 독특한 특징과 기능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2. “나는 이 특징과 기능들을 꿈 속에서는 어떻게 느끼고 보았으며, 꿈 밖에서는 어떻게 여기고 있는가?” 라고 자문해 본다.
3. 밝혀 낸 상징의 특성과 기능들을 주제별로 분류하여 관찰해서 어떤 특성과 기능이 자신에게 보다 중요한지 가려낸다. 즉, 상징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보다 분명하게 이해한다. 이 상징이 지니고 있는 특성이나 기능 중에서 어떤 것이 나의 현재 상황에 가장 적절한지 알아내어 나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밝혀 내는 것이다.
상징연상법 활용순서
1. 가장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상징 하나를 고른다. 가능하다면 “상징확장법”을 사용하여 객관적인 의미들을 먼저 밝혀 낸 후 “상징연상법”을 통해 드러나게 될 주관적인 의미와 조화를 이루게 한다.
2. 다음과 같이 자신에게 묻는다. “이 상징은 무엇을 생각나게 하는가?”, “어떤 이야기, 사람, 추억, 장소, 상황 등이 머리에 떠오르는가?”, “이 상징은 내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가?”, “그리고 언제, 어디서 이와 같은 감정을 느꼈었는가?”
3. 마음이나 몸에 어떤 새로운 깨달음이 올 때까지 계속해서 상징과 기억들을 연결시켜 나간다. 이 기억들이 상징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서로 무관한 것은 아니다. 상징으로부터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우리는 그 상징과 아직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필요하다면 이 관계를 반대로 추적해 나갈 수도 있다.
4. “상징확장법”을 사용하여 얻은 상징의 객관적인 의미와 “상징연상법”을 통해 발견한 주관적인 의미를 하나로 통합시킨다. “곰곰이 생각하니 이 상징은 결국 나에게 ( )이었다” 라는 문장의 ( )를 계속 채워 가다 보면 이 통합 작업은 저절로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이 때 상징이 지니고 있는 특성들 중에서 나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 즉 다른 것들을 하나로 묶어 낼 수 있는 대표적인 특성을 찾아야 한다.
5. 이처럼 하나로 통합된 상징의 의미를 이용하여 삶에 필요한 근본적인 원리를 만든다. 이 작업에서 해야 할 일은 상징의 대표적인 특성을 바탕으로 “나는 무엇을 하겠다” 는 구체적인 행동 강령을 만드는 것이다.
마. 꿈 상징의 형상화114)
미술, 조각, 공예, 시, 음악, 연극, 춤, 무언극 등 다양한 예술 형식을 사용하게 되면 꿈 상징에 내포되어 있는 에너지를 보다 효과적으로 끌어내어 구체화시킬 수 있다.
진흙으로 꿈에 등장한 지혜의 상이나 공포의 상을 만들고 나면 이 상징이 지니고 있는 에너지가 보다 활기차게 우리에게로 흘러올 뿐 아니라 이 에너지를 보다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다. 이 상징이 손으로 만지고 느낄 수 있는 형상으로 만들어졌을 뿐 아니라 만드는 과정에서 이 형상과 깊은 관계를 맺게 되기 때문이다. 진흙으로 빗거나 그림으로 표현하고 나면 우리는 이 형상화된 상징에 깊은 관심과 애착을 느끼게 된고 이 상징으로부터 자극과 격려를 받게 된다. 진흙으로 만든 상을 책상 위에 올려 놓거나 그림을 벽에 걸어 놓으면, 이 상징은 필요할 때마다 우리에게 에너지를 끊임없이 부어 줄 것이다.
꿈 해석 과정 중에 형상을 만드는 중요한 목적은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만들어 후세에 남기려는 것이 아니라 선물로 받은 상징을 확인하고 이 상징으로부터 에너지를 보다 효율적으로 끌어내어 실생활에 활용하기 위해서이다.
꿈 상징의 형상화 활용순서
1. 먼저 강렬한 인상을 주는 꿈 상징을 고른다. 미술, 조각, 음악, 시 등의 예술 형식을 이용하여 이 상징을 형상화한다. 꿈에 본 상징과 똑같이 만들려고 할 필요는 없다. 상징이 스스로 형상을 이루어 가도록 놓아두고 기분으로 만들어 간다.
2. 그림, 조각, 시, 노래 등을 만들 때 떠오르는 느낌과 통찰을 주의 깊게 관찰한다. 만들어 놓은 작품에 자기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날인과 서명을 한다.
3. 꿈 해석 그룹과 함께 이 기술을 사용할 때에는 만들어 놓은 형상을 보고 이에 대한 느낌을 서로 나누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때 다른 사람들의 작품을 평가하거나 비평해서는 안된다. 자기 자신의 형상이나 꿈에 대한 느낌을 말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좋다. 다른 사람의 작품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말한다는 것은 그의 개인적인 경험에 자신의 태도나 감정을 투사하는 것 외에 아무런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절한 질문을 던짐으로써 형상을 빚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또 다른 면을 깨닫도록 도와주는 것은 나쁘지 않다.
4. 자주 쳐다보면서 친밀한 관계를 나눌 수 있는 곳에 이 형상을 놓아둔다. 관계가 깊어짐에 따라 이 형상으로부터 새로운 통찰과 에너지를 끊임없이 받게 될 것이다.
2) 명상상태에서 꿈의 이용
명상상태에서의 꿈의 이용은 꿈 속으로 들어간 상태에서 꿈을 활용하는 것이다. 이용하는 방법에는 꿈의 인물과 대화하기, 상징몰입법, 상상 속에서 꿈에 들어가기 등이 있다.
가. 꿈의 인물과 대화하기115)
꿈의 인물과 대화하기는 꿈의 이용법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꿈의 인물과 대화함으로써 그 꿈의 의미, 목적, 앞으로의 예후 등 많은 것을 파악할 수 있다. 꿈의 인물과 대화하려면 우리는 먼저 다른 어느 것으로부터도 방해받지 않는 조용한 장소와 시간을 마련해야 한다. 그 다음에 꿈속에 들어가서 꿈에 나타난 인물 가운데서 중요한 인물, 대화하고 싶은 인물을 고른다. 그리고 그에게 묻는다.
“당신은 왜 내 꿈속에 나타났는가?”
“나에게 무엇을 알려 주려고 왔는가?”
“또 당신은 왜 그렇게 행동했는가?”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이같이 질문을 던지면 그 인물은 나에게 자기의 의도, 동기, 목적 등을 이야기할 것이다. 그러면 그와 우리 사이의 대화는 계속되고, 우리는 그로부터 우리 정신의 상태와 무의식의 의도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꿈속에 나타나는 인물들은 주관적인 해석의 차원에서 보면 모두 우리 인격의 요소들이다. 그러므로 꿈의 인물과 대화를 하면 우리는 지금까지 소홀하고, 회피했으며, 억압해 왔던 내용을 모두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대화는 우리 의식의 상태가 약한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대화만으로 끝내기보다 기록해 놓는 것이 나중에 다시 음미해보는 데 도움이 된다. 물론 꿈속에 나타난 인물과만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꿈에 나타난 동물이나 식물 등을 의인화시켜서 대화할 수도 있다. 그것들 역시 우리 무의식의 어떤 요소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천사를 만나 밤새도록 씨름한 야곱은 그 천사를 붙들고 축복해 주기 전까지 놓지 않겠다고 졸랐다. 그리하여 그는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선물로 받았는데 이때 나눈 대화는 다음과 같다.
천사: 나를 놓아라. 동이 트기 시작한다.
야곱: 내게 축복하기 전까지는 당신을 놓을 수 없습니다.
천사: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 야곱입니다.
천사: 사람들은 너를 더 이상 야곱이라고 부르지 않고 “이스라엘”이라고 부를 것이다. 왜냐하면, 네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기 때문이다.
야곱: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천사: 내 이름을 왜 알려고 하느냐?
(천사는 그를 축복한 후 떠나갔다.)
- 창32:27-29
야곱이 이렇게 축복을 받은 것은 그가 천사와 관계를 맺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선물로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과 야곱의 개인적인 관계가 이스라엘 민족과 하나님의 관계로 승화될 수 있었다. 이처럼 깊은 대화는 영적인 근원과의 관계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다.
꿈의 인물과 대화하기 활용순서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앞에서 소개한 기초적인 꿈 해석 기술들을 사용한 후, 꿈에 관해 묻고 싶은 중요한 질문들을 생각나는 대로 적는다.
1. 꿈에 등장했던 인물과 대상 중에 하나를 고른다. 자기도 모르게 끌리거나, 아니면 반대로 피하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는 대상을 고르는 것이 좋다. 이러한 대상들이 대부분 매우 중요한 에너지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2. 그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한가한 시간과 장소를 고른다. 몸의 긴장을 풀고 명상하는 자세로 들어간다. 그리고 기도나 찬송 등, 자주 쓰는 방법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임재와 인도를 받을 준비를 한다.
3.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 인물이나 대상이 등장했던 꿈의 장면을 다시 머리 속에 그린다. 그 인물이 다시 살아나서 움직이도록 놓아둔다. 만일 그것이 횃불이나 열쇠, 집, 구름, 자동차, 그림, 산, 바람, 등과 같은 상징이라면 이름을 붙여 의인화함으로써 그것과 쉽게 대화할 수 있게 만든다.
4. 몇몇 질문들을 던져 대화를 시작한다. 첫 질문을 종이에 적어 놓고, 이 질문을 꿈의 인물에게 묻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한다.
5. 이 질문에 꿈의 인물이 대답했다고 느껴지는 것을 적는다. 문법이나 철자 또는 구두점에 신경 쓰지 말고 펜이 움직이는 대로 자유스럽게 써 나간다.
6. 무엇인가 변하고 해결되었거나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느낄 때까지, 아니면 그만 중단하고 싶을 때까지 계속 대화한다. 왜냐하면, 대화 자체가 소중한 선물이기 때문이다.
7. 더 이상 나눌 이야기가 없다고 느껴지면 “내게 이야기하거나 주고 싶은 것이 더 없습니까?”라고 물어 봄으로써 중요한 메시지를 놓치는 일이 없도록 한다.
8. 대화를 마친 후, 기록해 놓은 대화 내용을 다시 읽고 그 제목과 주제, 대화 중에 느꼈던 감정들, 그리고 그 대화에 관해 떠오르는 질문들을 적는다. 그리고 나서 이 대화를 통해 나에게 전달된 에너지와 깊이 깨달은 바가 있다면 그 것을 밝혀 내고, 이러한 선물을 어떻게 활용해야 나의 삶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생각해 본다.
나. 상징몰입법116)
상징몰입법이란 상징에 초점을 맞추고, 상징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기 위한 기술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꿈속에서 강력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상징을 하나 선택해서, 모든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것을 머리에 떠올린 후 그것과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이다. 이때 상징을 좀더 생생하게 경험하기 위해서는 그 상징이 나타났을 때의 장면이나 소리나 냄새 등을 떠올리면 더 잘 경험할 수가 있다. 이때의 상징은 반드시 나무나 짐승 등 시각적 영상일 필요는 없고, 소리나 냄새나 말을 타고 가는 것이나 바위에서 떨어지는 것 등 행동일 수도 있다. 또한 치유의 힘이 있는 상징들 역시 상징몰입법을 사용하여 그 에너지를 끌어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부서지고 금이 간 인간 관계로 인해 우리의 삶은 늘 갈등과 긴장으로 가득 차 있기 마련인데, 이러한 인간 관계를 회복하려면 치유 에너지가 늘 차고 넘쳐야 하기 때문이다.
상징몰입법 활용순서
1. 꿈 기록을 다시 읽고 마음에 들거나 느낌이 강렬한 상징을 고른다.
2. 상상력을 동원하여 꿈을 머리에 떠올린 후 그 꿈 속으로 들어가 상징에 마음을 집중시킨다. 본래의 꿈에 나타난 상징 그대로를 느끼고 바라볼 뿐 변형시키려 해서는 안된다.
3. 상징을 보다 생생하게 경험하기 위해 접근 방법을 다양하게 바꾸어 분다. 예를 들어, 상상력을 동원하여 거리나 시각을 다양하게 변화시켜 상징의 세밀한 부분까지 모두 살펴본다.
4. 그룹과 함께 꿈 해석을 한다면 상징을 보다 분명하게 느낄 수 있는 질문을 하도록 그들에게 부탁한다. 내가 꾼 꿈의 상징을 그들에게 자세히 설명해 준다면 그들도 그 상징을 나처럼 분명하고 자세히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기술의 목적은 상징을 가능한 한 분명하게 보고 그 상징과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이다.
5. “상징몰입법”을 사용한 후에 ‘나는 이 상징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하고 자문해 보라. 왜냐하면, 이 관계를 통해 상징 에너지, 즉 화해, 치유, 완전, 지혜, 통찰 등이 내게로 흘러 들어와 나의 삶을 변화시키고 성장시켜 주기 때문이다.
다. 상상으로 꿈에 들어가기117)
이 방법은 그 대상을 우리의 꿈이나 성서의 어느 장면이나 우리가 들었던 이야기 가운데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어떤 것으로 명상을 통해 다시 그 속으로 들어가 경험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과거의 꿈이나 성서의 장면 가운데 하나를 택해서 적어도 15분 동안 눈을 감고 깊은 명상에 들어가서 몸과 마음의 긴장을 모두 푼 다음에 그 곳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때 우리는 우리의 상상력을 동원해서 마음껏 상상력이 이끄는 대로 돌아다닐 수 있고, 그들로부터 우리 삶에 필요한 에너지를 받을 수 있다. 이런 에너지는 우리가 특별히 기운이 빠졌거나 우울한 상태에 있을 때, 우리에게 커다란 평안과 힘을 가져다준다.
융은 명상을 통하여 꿈을 다시 꾸는 기술을 “적극적 상상력”이라고 부르고 있다. 깨어 있는 상태에서 의도적으로 무의식에 접근하는 적극적인 상상법이 원만한 성격 발달에 도움이 되는 가장 기초적인 기술임을 융은 거듭 강조하고 있다.
상상으로 꿈 속에 다시 들어가기 활용순서
1. 나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영적 에너지가 있다고 생각되는 성서의 꿈이나 이야기 중에서 하나를 고른다. 성서 본문을 자세히 관찰하여 그 꿈이나 이야기의 내용과 구조를 정확히 이해한다.
2. 적어도 15분 동안 눈을 감고 깊은 명상으로 들어가 몸과 마음의 긴장을 완전히 푼다.
3. 가까이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낀다. 그리고 마음의 문을 열어 그 꿈이나 이야기가 지니고 있는 영적 에너지와 선물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4. 상상력을 동원하여 꿈이나 이야기의 시작 부분을 마음에 자세히 그린다. 예를 들어, 요셉의 꿈을 골랐다면 상상으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 좋다. “요셉의 얼굴은 어떻게 생겼는가?”, “그의 얼굴에는 어떤 감정이 나타나 있는가?”, “그이 눈 색깔은?”, “머리칼은?”, “옷은?”, “그는 어떻게 누워서 자는가? 반듯하게 자는가? 아니면 엎드려서 자는가?” 질문을 하다보면 그 장면을 자세히 머리 속에 그릴 수 있다(성서 본문이 이처럼 자세한 부분까지 이야기하지 않고 있으므로 자유롭게 마음 껏 상상해도 좋다). 상상으로 눈, 코, 귀 등 감각기관들을 모두 동원하면 내면의 자아와 만나는 통로가 쉽게 열리고, 이 통로를 통해서 꿈이나 이야기의 영적 에너지가 나의 자아로 거침없이 흘러 들어올 수 있다.
5. 자유롭게 꿈이나 이야기를 이끌어 가도록 나의 상상력에 모든 것을 맡긴다. 성서 본문에서 많이 벗어날지라도 상상력이 나를 가장 필요한 곳으로 인도할 것이라 믿는다. 꿈이나 이야기 속으로 일단 들어간 후에는 직접 행동으로 참여할 수도 있고, 등장하는 인물들과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6. 이 기술을 사용하는 동안 상상력이 꿈의 드라마를 자연스럽게 이끌어 가도록 적절한 음악을 틀어 놓는 것이 좋다.
7. 마음이나 감정뿐 아니라 나의 몸도 이에 반응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때 일어나는 생각이나 느낌, 몸의 움직임도 주의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8. 이 과정을 자연스럽게 마무리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 후 정상적인 의식 상태로 서서히 돌아온다.
9. 상상을 통해 다시 꾼 꿈 내용을 상세히 기록한 후 날짜를 적고 “TTAQ" 기술을 꿈에 적용한다. “TTAQ”로 부족하면 “꿈의 인물과 대화하기”, “주요 질문 던지기”, “상징몰입법” 등과 같은 다양한 기술들을 사용한다.
Ⅵ. 결론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꿈은 무의미하고 믿을 수 없는 어떤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우리 마음의 요소가 정신의 전체성을 이루기 위해서 매일 밤 만들어 내는 정신현상이다. 우리가 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무시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속에 숨어 있는 의미를 발견하고, 우리 꿈이 알려주고자 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찾아내야 하는 우리 정신의 비밀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꿈에 나타난 상징적인 이미지들의 의미를 파악할 때 모든 꿈은 정말 우리 삶과 대단히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우리 삶에 지금 어떤 것이 필요하고, 어떤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인가 하는 사실도 알게 된다. 더구나 꿈은 우리 삶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어 나갈 것인가 하는 사실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우리 삶은 융이 말한 대로 “무의식의 자기 전개과정”이기 때문이다. 또한 융의 사상에 의하면 우리 무의식이란 그것 자체가 사람들이 하나님에 관해서 알 수 있는 기반이 되기 때문에 우리는 무의식이 만들어내는 꿈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도 있다. 실제로 야곱과 요셉이나 다니엘 등은 꿈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었으며, 베드로나 바울도 꿈을 통해서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우리 삶에는 여러 가지 정신적인 과제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때때로 정신적인 문제 때문에 좀더 큰 통합을 이루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 때 우리가 이런 삶의 과제들 앞에서 올바른 방향을 찾아나갈 수 있는 것은 우리 꿈이 주는 수수께끼와 같은 이미지를 통하는 길밖에 없다. 왜냐하면 무의식의 언어인 꿈은 우리가 그 동안 어떻게 살아왔으며, 그 결과 지금 우리 삶에서 어떤 면이 잘못되어 있는가 하는 점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다른 어느 것보다도 꿈을 분석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꿈은 엉뚱하기만 하고 무의미한 정신현상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의 내면에서 그들의 정신을 통합시키고, 생명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 실현하게 하려는 무의식의 표현이다. 그래서 우리가 꿈을 통해서 우리 정신의 상태에 관해서 좀더 깊이 알 수 있게 되고, 우리 정신의 여러 가지 요소를 통합시킬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삶의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때때로 어려움을 당할 때, 꿈은 우리에게 삶이란 의식에서 파악하고 있는 세계보다 훨씬 더 넓고 깊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그러면서 우리가 여태까지 삶에 대해서 접근해 왔던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해준다. 꿈이 우리에게 삶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형성시켜 주기 때문에 그에 따라서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꿈이 하나님의 언어라고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꿈을 통해서 이 세상에는 그들의 의식세계보다 더 큰 세계, 더 초월적인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세계에서 가르쳐주는 초월적인 안내를 받아서 살아갈 수 있다. 꿈을 통해서 이런 지시를 받은 사람들은 그것이 하나님의 계시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이유는 꿈에서 그들이 그 지시를 받았던 순간은 일상적인 순간이 아니라 루돌프 오토가 “누미노제”(numimose)라는 말로 표현했던 것과 같은, 두렵고 떨리는, 무엇인가 사람들을 잡아끄는 신비한 순간이다. 그들이 그 지시를 따랐을 때 그들의 삶은 한 층 더 높은 차원으로 고양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동안에 위기를 만났을 때 가끔 사는 것이 무의미하고, 삶에 활력도 없으며, 우울하게 생각될 때도 우리는 꿈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런 현상들은 모두 우리가 지금 생명의 원천이며 의미의 원천인 무의식으로부터 떠나서 생긴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런 때 우리는 앞에서 제시한 꿈 이용법을 이용하여 우리 무의식을 살펴 볼 수 있다. 우리가 지금 처한 상황의 원인을 알게 되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알게 된다. 예를 들면, 어떤 꿈을 꾼 다음에 주요 질문 던지기, 꿈의 자아 따라잡기, 꿈의 인물과 대화하기를 하거나, 다른 방법들을 결합시켜서 꿈을 살펴보고 무의식이 지금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를 살펴보면 우리를 억누르고 있던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꿈의 상징적인 이미지를 통해서 우리 무의식에 들어갈 때 무의식은 우리를 생명의 원천으로 이끌어주기 때문이다.
융에 의하면 우리 정신은 서로 반대되는 여러 가지 요소가 통합되어 있는 통합체이다. 따라서 서로 반대되는 요소들은 균형을 이루고 있어야 한다. 어느 하나라도 다른 것보다 더 강조되거나 더 발달하게 되면 그 반대편에 있는 요소에는 그 만큼 어둠이 깊어지게 된다. 따라서 그 요소는 열등하게 되고 미숙하게 되어서 무의식에 잠기게 되는 것이다. 꿈이 보여주는 것은 바로 이 모습들이다. 이 때 우리가 우리 꿈을 분석해 보고, 꿈의 메시지를 제대로 파악하여 그것을 바로잡으면 이 불균형은 제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할 때 그것은 열등하게 되고, 미숙해진 요소는 우리 삶에 여러 가지 문제를 불러 일으키게 될 것이다. 우리가 꿈의 메시지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우리가 꿈의 메시지에 관심을 기울이고, 꿈이 이끄는 대로 살아갈 때 우리는 우리 의식보다 훨씬 더 큰 정신의 전체성에서 나오는 인도를 따라 살 수 있게 되며,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서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Ⅶ.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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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연구논문
김성민, “꿈의 중요성과 그 의미”,「기독교사상」(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7, 3)
_____-_, “꿈의 해석과 융의 심리학”,「기독교사상」(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7, 4)
_____-_, “상징의 의미와 꿈의 해석”,「기독교사상」(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7, 5)
_____-_, “영적인 성장과 꿈”,「기독교사상」(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7, 6)
_____-_, “종교 체험과 개성화 과정”,「기독교 사상」(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3.9)
_____-_, “종교 상징론Ⅰ”,「기독교사상」(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2, 9)
_____-_, “종교 상징론Ⅱ”,「기독교사상」(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2, 10)
_____-_, “종교 상징론Ⅲ”,「기독교사상」(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2, 11)
이부영, “한국전래해몽의 특징에 관한 연구(1),「정신의학보」8월호, 1984.
목 차
Ⅰ. 서론 ………………………………………………………………… 1
1. 연구동기와 목적 ․……………………………………………… 1
2. 연구의 방법과 전개 ․………………………………………… 2
Ⅱ. 꿈의 이해 ………………………………………………………… 5
1. 꿈의 일반적 의미 ……………………………………………… 5
2. 꿈의 기독교적 의미 …………………………………………… 8
3. 성서에 나타난 꿈과 계시 ………………………………… 10
Ⅲ. 융의 꿈 이해 …………………………………………………… 15
1. 융에 있어서 꿈이 태동하는 자리 ……………………… 15
2. 융의 꿈 해석에서 꿈 해석의 중요 요소 ……………… 18
Ⅳ. 꿈과 영적 성장 ․…………………………………………… 39
1. 꿈을 통한 하나님과의 만남 ……………………………… 39
2. 꿈을 통한 인격완성 ………………………………………… 51
3. 꿈 분석과 영적 성장 ……………………………………… 58
Ⅴ. 꿈 분석의 실제와 생활 ………………………………… 66
1. 꿈 기록과 관찰 ……………………………………………… 66
2. 꿈체험하기 ․…………………………………………………… 70
3. 꿈의 이용 ․……………………………………………………… 72
Ⅵ. 결론 ․……………………………………………………………… 88
Ⅶ. 참고문헌 ………………………………………………………… 91
2000학년도전기
석사학위논문
꿈분석을 통한 영적성장에 관한 연구
- C. G. Jung을 중심으로
지도교수 정 태 기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실천신학 전공
김 주 영
2000학년도전기
석사학위논문
꿈분석을 통한 영적성장에 관한 연구
- C. G. Jung을 중심으로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실천신학 전공
김 주 영
꿈분석을 통한 영적성장에 관한 연구
- C. G. Jung을 중심으로
지도교수 정 태 기
이 논문을 석사학위 논문으로 제출함
2001년 2월 일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실천신학 전공
김 주 영
김주영의 석사학위 논문을 인준함
주심________________인
부심________________인
부심________________인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2001년 2월 일
감사의 글
내가 어디로 가야할 지를 물으며 신학을 공부한지 벌써 10년이 된다. 무엇을 하며 이렇게 지나 왔는지 모를 만큼 빨리도 지나버린 시간이다. 이 짧지 않은 시간동안 주위를 돌아보면 참 많은 것들이 변했고, 또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런 시간동안 많은 사람을 만나고 또 많은 결단을 내려야 했다. 앞을 바라보면 어디로 가야할지 또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지만 뒤를 돌아보면 그래도 제법 괜찮은 길을 걸어 온 것 같다. 하나님은 나를 혼자 가게 내버려두지 않았구나 하는 것을 이제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나에게 상담학에 대해 눈뜨게 해 주시고, 또 격려하며 논문을 지도해 주신 정태기 교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스스로의 고민에 빠져 있을 때 교수님은 내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곳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 말씀해 주셨는데 그것이 이 논문을 쓰게 되는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논문에 대해 친절한 조언과 격려로 심사해 주신 재수일 교수님과 최성일 교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논문을 쓰는 동안 나 자신의 꿈을 분석해 주시고 개인적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도움을 주신 이재훈 교수님, 이은경 간사님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나의 삶에 대해 걱정해 주고, 마음으로 늘 함께해 준 친구들, 성국, 노엘, 동일, 대진, 효종, 신, 은정, 진수 형, 은숙 누나 그리고 언제나 친 형제 처럼 돌보아 주고 염려해 준 웅과 윤정 부부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언제나 든든하게 나를 지켜주고 돌보아 주신 형님 부부와 걱정과 안타까움으로 뒷바라지를 하며 시골에서 땀으로 흙을 일구며 고생하시는 부모님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