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에서 반드시 체험해야 할 고택 스테이
대한민국에서 한옥이 제일 보존이 잘 된 곳을 꼽으라면 안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경주 또한 신라 천 년의 수도인 데다 양반들이 많이 살던 도시라 한옥이 많이 남아있지만, 그 수와 보존 상태로 볼 때 안동이 더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경주와 안동 모두 도시이긴 하지만, 경주보다 안동이 인구가 적어 좀 더 예스러운 분위기가 난다. 지명도로 따지면 경주가 안동보다 훨씬 유명한 관광지라 한적한 곳에서 조선 시대 분위기를 느끼고 싶은 사람이라면 안동에 머무르는 것이 좋다.
안동에서 반드시 체험해야 할 것은 고택 스테이다. 안동의 유명한 관광지인 하회마을과 도산서원을 방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백 년 또는 짧게는 수십 년간 그 자리를 지켜온 한옥에서 하룻밤 쉬어가는 건 잊지 못할 추억이 된다.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 살면서 보지 못한 목조 주택 그리고 따뜻한 온돌에서 흙으로 만든 벽의 숨결을 느끼며 하루를 보내는 건 국내여행이 가진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한국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이야기 52 - 임하댐
임하댐은 안동댐과 함께 낙동강 중상류지역의 안정적인 수자원공급과 홍수조설을 위해 낙동강 지천인 반변천에 세워진 다목적댐으로 안동시 임하면 임하리에 위치하고 있다. 이 댐은 높이 73m, 길이 515m, 총저수량 595,000,000㎡의 규모이며, 유역면적이 1,461㎢에 이른다. 조정지댐은 높이 10m, 길 315m이다. 임하댐은 1984년 착공하여 1992년에 준공하였다. 임하댐의 건설로 안동시 임동면을 비롯하여 3개군 6개면 41개 마을이 수몰되었다.
임하댐 건설로 조성된 임하호(臨河湖)는 국내 호수 가운데 8번째로 큰 규모이며, 안동에서 영덕과 청송으로 연결되는 주요 교통로인 34번 국도가 지나가고 있다. 임하호에서 저장된 용수는 하루 40만 t 규모로 금호강 상류 영천댐으로 공급되어 포항지역의 공업용수와 영천지역의 농업용수로 사용된다고 한다. 임하댐 상류지역에서 흘러내려오는 붉은 토사 때문에 흙탕물처럼 보일 때가 많다. 임하호 주변지역은 예로부터 물이 풍부하고 농지도 많은 편이어서 사람이 살기에 좋은 땅이다. 의성김씨 세거지인 영남 4대 길지 중 한 곳으로 손꼽히는 천전마을, 수몰된 지례마을 한옥 등을 옮겨놓은 지례예술촌을 비롯하여 양반들이 살았던 고택들과 전통마을들이 아직도 주변에 많이 남아 있다.
병산서원에 가기 전에 묵은 수애당
다시 안동을 찾은 건 병산서원에 가기 위해서였다. 병산서원은 하회마을에서 언덕을 하나 넘으면 나오는 서원이다.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이 열렸을 때 하회마을에서 하루를 묵고 축제를 관람하기도 했지만 병산서원에 갈 시간은 없었다. 거리가 지척이었지만 일 년 내내 방문 가능한 병산서원과 달리 축제는 고작 일주일 밖에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축제 행사를 보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병산서원을 보기 위해 안동으로 가야겠다는 결심을 하면서 하회마을에서 숙박이 가능한 곳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주말이 되면 하회마을의 몇 안 되는 숙소는 대부분 예약이 끝난 상태라 하회마을에서 묵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도 한옥에서 묵고 싶은 열망은 그대로라 안동에서 고택 스테이가 가능한 곳을 찾아보았다. 그중 눈에 들어온 건 바로 임동면에 있는 수애당이었다. 사진만 봐도 아름다운 한옥인 수애당을 보자 별다른 고민 없이 예약을 완료하고 안동으로 향했다.
금요일에 퇴근을 하고 안동에 도착하니 이미 늦은 시간이었다. 안동시내에서 수애당으로 향하는 버스는 간격이 긴 데다 일찍 끊기기 때문에 마지막 차를 타고 수애당이 위치한 임동면으로 향했다. 버스를 탄 뒤 수애당에서 1㎞ 정도 떨어진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야만 했다. 가로등 하나 없이 어두컴컴한 길을 혼자 걷고 있자니 약간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늦게 도착했음에도 주인아주머니는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나 외에도 혼자 온 남자 손님이 있다며, 고독을 즐기려는 남자들이 많은 날이라며 신기해하셨다. 수애당은 다른 한옥과 달리 현대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시골답게 주변 집들은 불을 끄고 일찍 잠자리에 든 모습이지만, 수애당은 수많은 전구들로 환하게 밝혀져 낮과는 다른 환상적인 분위기를 뽐내고 있었다. 객실 또한 전통 목조 건물 내에 형광등과 같은 일부 현대 기술을 제외하면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었다.
수애당은 독립운동가 수애 류진걸(水涯 柳震傑, 1899~?)이 1939년에 지은 집이다. 임하댐 건설로 1987년 원래의 위치에서 200m 떨어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수애당이 위치한 무실마을은 1550년 무렵 류성(柳城, 1533~1560)이 정착한 이후 전주 류씨 후손들이 460여 년 간 대대로 살고 있다.
류진걸은 1922년 중앙대 경제학과에 입학하였고, 1925년 조선민중대회에서 관동대지진으로 학살된 동포를 추도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항일운동에 참여하였다. 대학 졸업 후에는 일본 최대 건설회사인 대창토건에서 근무하였으며, 나진·선봉 항만, 동해남부선 등 당시 우리나라의 대형 건설사업에 참여하였다.
수애당은 대문채, 정침, 고방채 등 총 3동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대문채는 외양간과 창고를 두고 통칸 온돌방을 두었다. 고방채는 창고, 고방, 화장실, 부엌, 온돌방으로 연결되어 있다. 정침은 팔작기와집으로, 왼쪽에서부터 부엌, 안방, 윗방, 대청, 중간방, 사랑방이 있으며 안방 뒤에는 우물마루로 된 방을 두었다. 수애당에 쓰인 목재는 소나무 중에서도 으뜸으로 여겨지는 춘양목(春陽木)으로 보존상태가 아주 좋다.
수애당에 묵으면 아침 식사 또한 제공해 준다. 전통 한옥에서 양반다리를 하고 가정식을 먹으니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고향인 창원에서 독립해 경기도에서 살고 있는 지금은 이런 가정식을 먹을 기회가 흔치 않다. 몇 가지 반찬을 곁들여 기름진 땅 안동에서 재배한 쌀을 먹으니 수애당에 정말 잘 왔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아침을 먹고 수애당과 무실마을을 둘러보았다. 임하댐의 건설로 인해 수애당의 원래의 자리는 물에 잠긴 상태이며, 이웃한 곳에 살던 사람들은 한옥을 옮겨 짓는 대신 보상금으로 지금 자리에 양옥을 지었다. 덕분에 전통 깊은 안동의 마을은 수애당을 제외하고는 그 흔적을 전부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일본 통치 기간에 대한민국의 많은 한옥이 자취를 감추긴 했지만, 급속한 현대화로 인해 사라진 한옥의 수가 훨씬 많다. 최근에는 사람들이 전통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문화재의 보존에 힘쓰고 있으니 안동의 같은 전통문화가 잘 보존된 마을이 그 모습을 유지하기만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