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제32회 도쿄 올림픽에서 우리나라는 메달 19개로 11위(금6, 은4, 동9)를 했다. 코로나 정국에서도 잠시 올림픽을 보면서 우리나라 선수를 응원했던 즐거움이 있었다. 그런데 중계 방송시 아슬아슬한 경기를 펼칠 때마다 많이 듣는 용어가 있다. 또한 선거철만 되면 뉴스 시간에 지겹게 많이 듣게 되는 말이다. 이 말이 ‘박빙(薄氷)’이라는 용어로서, 음과 뜻은 薄(엷을 박) 氷(얼음빙)자 이다.
워낙 흔히 잘 쓰는 말투이기 때문에 ‘박빙’이라는 낱말이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지 찾아보는 사람은 드물다. 대충 의미는 알지만 대부분 정확히 모르는 말이기도 하다. 간혹 ‘빅뱅’으로 잘못 말하는 경우도 많다. 박빙이라는 말은 대결 국면에서 많이 사용 되는데 주로 스포츠, 정치 선거판 등에서 승부를 가려야 할 때 쓰인다. “박빙의 승부를 펼치고 있다”고 하면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초 접전을 펼치고 있다”는 뜻이다. 선거개표 실황을 중계할 때 이런 말을 많이 쓴다.
한자말 ‘박빙(薄氷)’은 ‘살얼음’을 뜻한다. 이 한자말에 ‘-의’를 붙인 말투로 ‘박빙의 승부’라는 말이 널리 퍼졌다. 얇게 언 얼음을 뜻하는 것으로, 깨어질 듯한 살얼음 두께 정도의 아주 근소한 차이의 승부를 말한다. 또한 ‘승부(勝負)’라는 한자말도 ‘이기고 지는 것’을 뜻하며 다른 의미는 없다. 비슷한 우리말로서는 살얼음판 같은 경기, 살 떨리는 경기, 아슬아슬한 경기, 조마조마한 경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경기, 땀나는 경기 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박빙은 여리박빙(如履薄氷)이라는 말에서 유래 되었다. 동양 최고의 시집이라 하는 시경(詩經) 소아(小雅)편의 마지막 6연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전전긍긍, 여림심연, 여리박빙)’ ‘두려워 벌벌 떨며 삼가는데, 마치 깊은 연못을 건너는 듯하네, 마치 엷은 얼음 위를 걷는 듯하네.’ 주(周)나라 말기의 포악한 정치에 살아가려면 깊은 연못가에 있는 것처럼, 살얼음을 밟는 것처럼 불안에 떨며 조심한다는 이야기다. 위험한 상황에 대비하여 피해야 한다는 말이 한꺼번에 3개가 연결되어 특이하다.
살얼음 위를 걷는 것 같이 불안한 상황을 의미하기도 한다. 살얼음은 살짝 언 얼음을 말한다. 살짝 언 얼음은 쉽게 깨지거나 갈라져 큰 사고가 난다. 겨울에 냇물이 살짝 얼었다면 이 위를 함부로 디디면 안 된다. 얼음장이 순식간에 와장창 깨어지면서 빠진다.
박빙과 비슷한 ‘두 사람이 별 차이 없는’에 해당하는 4사성어가 있다. ‘난형난제(難兄難弟) 누가 형이고 아우인지 알기가 힘들다.’ ‘백중지세(伯仲之勢) 힘이나 능력 따위가 서로 엇비슷하여 누가 더 낫고 못함을 가리기 힘들다.’ ‘막상막하(莫上莫下) 위와 아래를 가리기 힘들다.’ ‘용호상박(龍虎相搏) 두 강자인 용과 범이 서로 싸운다.’ 등이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tvN 방송의 유재석씨과 조세호씨가 진행하는 ‘유퀴즈 온 더 블럭’이란 프로가 있다. 사회에 좀 특별한 사람들을 출연시켜 토크 하다가 마지막에 ‘유 퀴즈’ 하여 퀴즈를 내어 맞히면 100만원을 지급한다. 최근에 어떤 출연자의 마지막에 이 퀴즈를 내었다. 『이것은 아주 얇은 얼음이라는 뜻을 가진 한자어입니다. 근소한 차이나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상태를 비유하는 말인데요. 흔히 긴장감 넘치는 막상막하의 승부를 가리켜 이것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무엇일까요? 』
요즈음은 ‘박빙의 승부’라 말해도 ‘아슬아슬한 한판’인 줄 대부분 아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표현의 다양성도 좋지만 아이들은 이런 말투를 알아듣지 못한다. 무엇보다 박빙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 어설프게 ‘박빙의 승부가 아슬아슬한 한판’으로 알아듣기 보다는, 처음부터 ‘아슬아슬한 한판’으로 쓰면 안 되는 것일까?
아이도 어른도 누구나 쉽고 즐겁게 알아들을 만한 말을 쓸 때에 세상은 아름답지 않을까 생각된다. 상황과 삶이 녹아난 말을 쓸 때에 서로서로 잘 알아듣는 말이 좋다. 사랑을 담아 쉽고 바르게 또한 아름답게 말을 나눌 때 우리사회는 더 행복할 수 있다고 본다.
첫댓글 전전긍긍, 여림심연, 여리박빙.
포악한 정치상황에서 나온 말이라는 건 몰랐네요!
그래서 그 유퀴즈 출연자는 100만원을 타갔나요? ㅎㅎ
100만원 ? 알아 맞춰 보세요....ㅎㅎㅎㅎ
샘 ᆢ우리 이것 모아 출판할까요
<내 생애 지식들ᆢ>
와 좋아요..
출판사 대표님이 그런말 하니 힘이 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