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열이 노후를 보내는 방편으로 산행을 즐긴다. 산행을 소재로 한 수필이 여러 편이나 되었다. 일반적으로 노년세대의 수필에서는 산행을 소재로 하는 수필을 아주 흔히 만난다. 일반적으로 계절의 변화, 자연을 찬미하고, 산의 위압감을 감탄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나의 밖에 있는 자연에 감탄하고, 감성적으로 표현하는 글이 대부분이다. 하재열의 수필세계를 찾아가는 보기글로 산행 자체가 아닌 하나의 에피소드를 소개한 글을 가져왔다. 에피소드를 가지고 내 나름으로 읽기를 하려 한다. 이것은 나의 바깥이 아니고, 나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여준다. 이처럼 그의 내면을 읽으려는 나의 읽기는 나만의 읽기일 수도 있어 독자의 공감을 얻거나. 작가의 동의를 얻지 못할 수도 있으리라. 내가 작가의 수필세계를 쓰면서 늘 강조하는 것은 평 글이나, 수필세계는 독자의 읽기임으로 독자의 창작 글이란 것이다. 지금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작가의 생각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흔히 산행은 노후 보내기의 좋은 생활방식이라면 많이 추천한다. 독자는 혼자 산행하기를 즐기는 듯하다.
산행 중에 비슷한 연령대의 여자분을 만나서 음료수와 떡을 나누어 먹었다. 함께 걸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자는 자신의 가정사까지 세세히 이야기하였으나, 수필에서 보면 작가는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은 듯하다. 여자가 사용하는 언어들이 작가가 듣기에 거북한 말도 있었다. 그래서 몸을 사린 듯하다.
예전에 나도 거의 매주 일요일이면 혼자서 팔공산에 올랐다. 혼자서 산행을 하다보면, 간혹 혼자서 산을 찾은 여자를 만날 때도 있다. 산길을 혼자서 걷다 보면 말이라도 나누어 보고 싶다. 한편으로는 두려움도 나타나는 이중감정을 느꼈다. 왜냐면 좋지 않은 이야기도 많이 들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몸을 사렸다. 이 수필을 읽으면서 옛날의 일이 떠올라서, 작가도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이 수필에서도 여자에게 호의적이기도 하면서, 은연중에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이 보인다. 한편으로는 지금은 저 만치 멀리 가버린 지난날의 젊음을 느껴보고도 싶다는 욕망도 느껴진다. 여기서 작가는 마음의 흔들림을 묘사하였지만, 이런 것은 건전하게 살아왔던 삶의 태도를 나타낸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호젓한 곳에서 여자를 만나고 싶은 것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원초적 욕망이다. 우리는 누구이든 양가감정을 가진다고 하였다. 그 욕망을 어떻게 처리하였느냐는 개개인마다 다를 것이다. 왜냐면 삶의 태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수필세계를 펼치면서 정신분석의 어려운 용어까지 가져오는 이유는, 하재열 작가는 건강한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는 인간의 욕망을 가졌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내가 장황하게 말하는 이유는, 그는 원초적 욕망을 따르지 않고, 사회의 가치를 선택하였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건강한 노년 생활을 보내고 있다.
나는 수필이론을 공부하면서, 수필은 독백문학이다, 라는 정의에 관심을 기울였다. 수필에서 독백이란 드러내기 싫은 나의 내면을 글을 통해서 토로하는 것이다. 내면이란 원초적인 욕망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거의가 도덕에 의하여 부정당하는 것들이다. 그래서 드러내기를 싫어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 수필은 너무 엄숙하여 수필이론에 충실하지 않다고 생각해왔다. 하재열의 수필 ‘어디서 본 사람 같은데요.’는 어느 만큼은 내면을 드러냈다, 라 싶어서 예문으로 가져왔다.
이제 하재열의 수필세계 읽기를 요약하면서 마무리하자.
작가가 살아온 인생행로는 우리시대의 보통 사람들이 살아온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농촌 마을에서 태어나서 도시로 나와 학교를 다녔고, 도시에 눌러앉아서 자신의 삶을 꾸려왔다. 대부분의 평범한 도시민들이 살아온 방식이다. 독자들은 하재열의 수필을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보지 않았을까 싶다.
그의 글에는 고향인 시골 마을을 애타게 그리워하는 내용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냥 그림을 그려서 보여주기만 한다. 회상 속에 그리움을 담아서 표현하지만 나의 유토피아로 그리지는 않았다. 이것은 아마도 도시에서 살고있는 현재의 생활에 잘 적응하여 살아왔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가족 이야기는 아주 따뜻하게 풀어낸다. 할머니-아버지-어머니-나의 이야기도 그렇고, 나-아내-자녀-손주의 이야기도 그렇다. 가정적으로도 갈등 없이 편안하게 살아가는 모습이다. 직장에서도, 그리고 노후를 보내는 현재의 이야기에도 불만과 고통스러움을 호소하는 내용은 없다. 작가는 자기가 살아온 과거도, 노후를 보내는 현재도 받아들인다는 의미이리라. 역설적이긴 해도 이런 삶에서 수필의 소재를 구하기는 더 어렵다. 우리 모두가 경험하듯이 수필의 소재는 살아가는 길에 돌부리라도 있어, 발에 채어 비틀거릴 때를 소재로 다루는 일이 많다. 그런 일이 없을 때는 글 쓸 자료가 없다고 한다.
하재열의 수필은 거의 대부분이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평범한 삶을 다룬 것이 많다. 이처럼 보통사람의 평범한 삶이, 평범함 속에서 우리가 꾸려가는 삶들이 소재가 되어있다. 아마도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독자들은 수필을 읽으면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하재열의 수필세계는 바로 이런 것들이다. 인생의 쓴 맛, 단 맛을 겪은 사람의 글을 읽으면, 그의 특이한 경험에 푹 빠져들기는 하지만, 그것이 나의 경험이 되고 삶이 되지는 않는다. 이처럼 특징적인 삶의 세계를 꺼집어 낼 수 없는 것이 그의 사는 모습이다. 이것이 그의 수필세계이기도 하다.
수필을 쓰는 작가의 입장에서 이처럼 평범한 삶을 살면 수필쓰기가 더 어렵다, 소재로 선택하여 독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작품으로 만들어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러한 삶 속에서도 자기의 수필세계를 잘 구축하였다는 생각이다.
앞으로도 많은 작품이 태어나리라 믿고,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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