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친3주기 오늘은 모친 3주기이다. 코로나가 한창이다보니 인천 남동구의 요양병원에서 쓸쓸한 한평생을 마감하셨다. 남편을 잘못만나 내가 세살때 부친과 헤어져 한평생을 외롭게 보내셨다.
아쉽게도 모친은 나를 직접키우지 않으셨다. 처음에는 함께 외가로 가서 지내다가 사정에 의해 모친 혼자 시내로나가 생활하셨다. 찬주적인 뜨게질 재능으로 삶을 유지했지만 자식을 양육할 만큼의 여유가 없으셨다.
모친과 떨어져 외가에서 생활하던 나 역시도 4학년 여름방학때 큰댁을 거쳐 부친이 있는 부산으로 보내져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내야 했다. 사무치도록 그리웠던 모친이지만 나의 성장과정이 너무나 평범치 못하다보니 그리움이 실망으로 변하여 20대 초에 모친과 해후하였지만 실망만 남긴채 외면하며 살아야 했다.
결혼후 외사촌 누님의 노력으로 다시 모친과 만났지만 독특한 모친의 외골수적인 성격때문에 사투리로 "대면데면"한다는 표현으로 살아가야 했다. 우리가 해외로 이주한 후에는 그나마의 전화통화마저 끊긴채 살아야 했다.
그러다가 귀국 후 이종사촌 딸 결혼식때 큰이모님으로 부터 너희엄마 죽었다는 잘못된 정보를 입수하고 충격을 받아야 했다. 수소문 끝에 모친이 생존해 계심을 알게된 요양병원에 입원중이던 모친을 만날 수 있었다.
지병으로 당뇨가 있었는데, 관리가 잘 안돼 결국은 89세에 별세하셨다. 호적상 3212월 생으로 돼어있는데, 실제 생일이 언제인지는 끝내 확인을 못했다.
노후준비를 전혀하지 못한 나를 위해 모친은 1억여원의 현금을 물려주셔서 마치 목회30여년의 퇴직금을 받은 감격을 누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