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날도 오기는 오는 거였다
1997년 12월! 이런 날도 오기는 오는 거였다.
끼리끼리, 아니 속으로는 어떻게든 나만 더 잘 먹고 잘살자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 후리고 빼앗고 짓밟고 무시하는 '악한' 무리들이 '이제 좋은 세상 다 살았다'고 이를 갈았다. 그놈들이 죽어라고 '호남당'이라고 몰아붙였던 이유가 되었던 절대다수의 호남사람들과 '돈과 권력을 쥔 놈들'만의 세상이 아니라 다같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많은 '선한' 사람들의 승리였다. 그를 위해 오래 피 흘리며 울분을 견디었던 사람들의 승리였다.
피땀 어린 한달치 월급을 고스란히 김대중에게 보냈던 많은 사람들은, 김대중이 당선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원을 풀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런 사실들이 김대중이 대통령을 해나가는 데 불리하게 될까 봐 그 사람들은 말도 함부로 하지 않았다.
김대중 대통령은 당선 이후 '역차별'이라 할 만큼 호남 사람 등용을 조심했다.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호남이 갑자기 '발전'되지도 않았다. 호남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 우리가 대접받을라고 김대중이 대통령 되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제." "그라암! 박정희, 전두환이처럼 자기 고향에다 쏟아붓는 그런 짓을 우리 김대중 대통령도 하믄 안되제." "아이, 봐보랑께! 그라고 돈 쏟아붓드니 인자 거기는 공해 땜시 사람 살 곳이 못 돼 버린 곳도 많다잖은가?"
김대중이 대통령 됐다고 시상이 뭔 달라진 게 있냐고오
오랜 한이 쌓인 사람이 그 한이 풀리면 다른 일에 대해서도 너그러워지는 것처럼 호남 사람들도 상처에 소금을 끼얹는 짓만 당하지 않는다면 과거의 상처에 대해 상당히 너그러웠다. 오랜 핍박의 역사로 인해 긴 것과 아닌 것을 구별하는 정치의식도 성장해 있었다.
"에이 씨부럴! 뭐 김대중이 대통령 됐다고 시상이 뭔 달라진 게 있냐고오!"
"아따, 그래도 김대중이 대통령 됐다는 그것이 시상이 달라진 것이제에. 아, 글고 시상이 어디 대통령 혼자 맘대로 되는 시상이냐고오! 수십년 해처먹은 놈들이 아직도 돈이고 심이고 쥐고 흔든디... 대통령이라도 그눔들 때문에 으추코 해보들 못허고 저 고생 아니겄어? 그래도 그전 시상에서는 꿈도 못꿨던 일들이 요새 안 있등가!" "아니, 그라믄 저 웃녘 웃대가리 놈들은 그렇다 치고, 여그 놈들은 또 머시냐고오! 김대중 이름 빽 하나 믿고 한 자리씩 차지하고서는 벨 지랄염병들은 똑같이 하잖은가?"
"아이, 정치라는 것이 원래 그런 것 아닌가? 긍께 앞에서는 인사를 해도 뒤돌아서면 질로 사람 취급 못 받는 것들이 정치하는 것들 아닌가? 그래도 그전보다는 많이 좋아졌능께..." "좋아지기는! 느그 한압씨 코똥이다, 빌어묵을!"
아직 혈기 있는 사람들은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지만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입을 다물었다. 쉽지 않은 현실에 '김대중'에 대한 애증이 엇갈렸는지도 모른다.
퇴임한 '김대중'이 온다고 했다
진도대교를 건너는 버스 안이었다. 여기저기에 '명량대첩 축제' 플랭카드가 나부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있었다. 거북선을 만들어 띄우는 기념식에 대통령에서 퇴임한 '김대중'이 온다고 했다. 버스에 탄 사람들이 아쉬워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따, 여까지 오셨는디 가 디다봐야 쓴디... 이라고 사람 노릇도 못하고 내 볼일만 바쁘네잉." "금메 말이세. 그 양반 차말로 고상 많이도 했제. 그래도 인자는 괜찮하것제? 진짜로 가서 손이라도 한번 잡아드려야 쓰것인디..."
누군가 다른 사람이 들었으면 당신네 마을 친척 얘기라도 하고 있는 줄 알았을 것이다.
그랬다. 여그 사람들은 '김대중'이 그냥 '대통령'이 아니었다. 일가친척들을 위해 객지에서 무지하게 고생한 '큰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때로 '김대중'이 돈을 밝힌다느니, 그래서 공천장사를 하니까 국회의원들이 그 모양 그 꼴이라느니 하는 소리가 있었지만, 일가친척들 먹여 살리기 위해 때론 험한 일, 양심이 죽을 맛인 일까지도 해야 했던 '큰아버지'처럼, 돈과 권력을 쥔 놈들을 때려잡기 위해서는 '돈'도 '권력'도 '조직'도 필요했던 것이라고 애증의 말미를 맺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그 사람들이 말하고 있는 대상이 '김대중' 이라는 걸 알고 있다. 아, 내 안에도 그 사람들과 같은 심정이 있는 것이었다.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나오게 생겼다'는 참 터무니없는 첫인상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그 점에서는 얄짤없는 내가 '큰아버지'처럼 여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겠는 것이다. 나도 그렇다는 얘기다.
'김대중'은 나에게 오빠나 아버지와 같은 '어른남자'였다
'김대중'은 나에게 오빠나 아버지와 같은 '어른남자'였다. 불의와 뒷거래와 타협을 무조건 잘라내서는 가족들을 먹여 살릴 수 없는 세상을 살고 있는 '어른 남자'들... 동생을 위해, 혹은 가족을 위해 돈을 찔러넣어 새치기표를 구할 수 있어야 하는 오빠, 시골집 처자식에 데리고 사는 처자식들까지 다 먹이고 가르치기 위해 참 지독하게 적성에 안 맞았을 것이 분명한, 돈 버는 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
여기 사람들에게 '김대중'은 쫓기고 빼앗기고 당하는 이 현실에서 오빠나 아버지처럼 현실적으로 그것을 해결해줄 수 있는 기대를 한몸에 안은 '큰아버지'였다. '김대중'은 나름대로 한반도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한 또 하나의 큰 '어른 남자'였다.
그리고 또 '김대중'은 여기 사람들에게 '맏아들'이기도 했다. 논도 팔고 소도 팔아 죽어라고 뒷바라지를 해서 검,판사라도 되면, 평생 가난과 억울함을 삼키고 살았던 당신들 원을 풀어줄 그런 '맏아들'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야 그렇게 키운 자식이 오히려 고향과 가족을 부끄러워하거나 부정하는 '싸가지 없는' 자식이 될 확률이 크지만, 키울 때는 상상도 하지 못하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김대중'은 '싸가지 없는' 자식이 아니고, 정말 효자인 '맏아들'이었다.
돈과 권력이란 참으로 이상하다. 나는 외래어 비슷한 것은 별로 안 좋아하지만 이럴 때는 한번 써먹어야겠다. 아이러니. 굳이 번역하자면 '역설'이라 할까? 왜곡된 돈과 권력이 만들어낸 나쁜 세상을 뜯어 고치기 위해서는 꼭 그만큼의 돈과 권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말 역설적이게도 돈과 권력을 쥔 순간 개인도 집단도 타락한다. 아니, 그것을 쥐려는 과정에서 이미 타락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기무사로부터 손해배상을 청구당한 변호사의 눈물을 보면서 나는 오히려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를 믿지 않는 것도 아니고, 그가 해온 일을, 할 일을 지지한다. 어쩌면 그래서 더 그 눈물이 당연하게 여겨졌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지금처럼, 아니 지금보다 더욱 혹독하게 당했다. 지독하게 당할 만큼 당한 사람은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 이 또한 역설적으로 어쩌면 그가 덜 당해왔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저눔들이 말하는 소위 '잃어버린 10년' 동안 어쩌면 돈과 권력의 맛을 어느 정도 보았는지도 모른다. 가진 걸 빼앗기는 자는 운다. 이미 빼앗겨서 더 이상 빼앗길 것도 없는 사람은 눈물이 나지 않는다. 눈은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부릅 뜰 뿐이다. 아니면 '영혼'을 생각하게 되거나...
내가 이렇게 '함부로'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건, 내 안에 아직 '여자 아이' 하나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돈과 권력은 태어나면서부터 애초에 꿈도 꿀 수 없었던 시대에, 겨우 제 한 입에 풀칠하는 것도 힘겨웠던 '가시나'로 살았기 때문이다.
오빠에게는 아직도 좀 덜 먹고 불편하고 누추하게 살더라도 소박하고 따뜻한 심성을 잃지 말기를 바라고, 아버지에게는 세상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아내를 두들겨패고 살림을 뚜드러깨는 술꾼으로 어린 영혼에 그렇게 상처를 입혀서야 되었겠느냐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고 김대중 대통령'에게도 할 말이 있다.
골목대장 없이 사는 '마을'
골목대장이 있다. 돈과 주먹의 힘을 믿고 온갖 못된짓을 하는 골목대장 밑에는 돈과 주먹의 콩고물을 얻어먹고 사는 놈들이 꼭 있다. 그래서 골목대장의 힘은 유지된다. 그 못된 골목대장을 갈아치우려는 의분의 세력도 있다.
못된 골목대장과 의분의 세력간에 싸움이 시작되었다. 돈과 주먹의 힘이 센 골목대장을 갈아치우려면 그만큼의 돈과 주먹이 필요하다. 그것은 그 또래 집단의 수준이 그 정도라는 얘기다. 돈과 주먹을 손에 넣으려는 만큼 의분의 세력도 못된 골목대장을 닮아가고 있었다. 아니, 돈과 주먹을 손에 넣으려면 골목대장처럼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이 비극이었다.
골목대장이 존재하는 한 돈과 주먹을 위한 싸움은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방법은, 골목대장을 갈아치우려는 노력보다 그 크기를, 세기를 약화시키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돈과 주먹의 힘을 약화시키는 방법은 그 또래집단을 다들 빠져나와 버리는 것이다. 다들 집으로 돌아가거나, 몇몇 착한 아이들끼리 대장을 두지 않고 노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골목대장 없이 사는 '마을'을 만들어서 다른 골목대장에게 휘둘리지 않을 궁리를 하는 것만이 방법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정말은 세상에 골목대장 같은 건 없었으면 좋겠다.
속에 꼬맹이 계집아이 하나가 이렇게 말한다.
'남자 어른'들의 골목대장 노름은 '머시매 아이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돈을 많이 쥐고, 힘이 세면 좋은 일을 많이 할 수 있다는 명분까지 얻어서 돈과 힘의 크기를 자꾸 불려나간다. '머시매 아이들'의 대장놀이 같은 '남자 어른'들이 세상을 두고 벌이는 싸움은 애초에 어떤 명분으로든 '국민을 사랑'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크고 작은 차이는 있을지라도...
시대는 욕망과 편리함을 위해 달리고
'김대중'이 대통령이 된 이후, 때로 목숨을 걸고 피를 흘리며 독재와 억압과 불평등과 어거지와 싸웠던 사람들이, 그 투쟁 이력이 '훈장'이 된 사람들이, 이제 '돈'과 '권력'에 대해 얘기하고 '자리'를 계산했다.(물론, 좋은 일 하기 위해서.) 또 더 좋은 세상에 대한 꿈을 함께 얘기했던 많은 사람들이 이제 아파트 입주권에 대해 얘기하고 해외여행을 계획했다.
시대는 욕망과 편리함을 위해 달리고, 우리의 김대중 대통령은 그 기세와 속도를 제어할 수 없었다. '경제발전'을 약속하며 오히려 욕망을 채우고 편리함을 추구하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 사람들을 위하는 일이라 여기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었다. 그전보다 훨씬 잘 먹고 잘사는데 그럴수록 세상은 풍요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각박해지고 먹고 살기 사나워졌다.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먹고 살기 위해서도 '행동하는 양심'을 잊는 사람들이 무차별적으로 늘어갔다.
김대중 대통령이 박정희와 싸울 때 이 시대는 '부익부 빈익빈!'이라고 외쳤었다. 물론 좋은 대통령 하나로는 절대로 해결되지 못할 인류의 진행방향이지만 그 자신 '부익부 빈익빈'일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의 흐름을 막지는 못했다. 아니 여전히 국가가 '개발'과 '성장'을 주도하는 것을 절대과제로 여겼고 경제회생을 부르짖었다.
가난이 두려워, 아니 이제 그렇게는 살 수 없어서
IMF가 터졌다고 해도, 그것은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언제부터였던가, 아마 88년 올림픽 이후부터일 것이다. 이땅은 이제 이미 너무 많아서 탈이 되었다. 가난, 궁핍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견딜 수 없게 만드는 풍요와 욕망과 편리함이 문제였다. 그리고 그 풍요와 욕망충족과 편리함의 실체는 다음 세대에게서 미리 뺏어온 빚이자 거품이었다.
마치 오빠에게, 아버지에게 대들듯이 나는 '고 김대중 대통령'에게 대들고 싶은 심정이었다. 좀 가난한 걸 견디면서 살자고, 가난한 걸 견뎌내야 '행동하는 양심'이 될 수 있다고, 왜 그렇게 말해줄 수 없었는지...
바통을 이은 노무현 대통령도 그 점에서는 다르지 않았다. 풍요와 욕망과 편리함에 길들여진 '어린 백성'들은 그것을 빼앗길까 두려워, 가난이 두려워, 아니 이제 그렇게는 살 수 없어서 '생존'을 위해서, 다른 것은 죽거나 말거나 '경제'만을 살리겠다는 악당 대통령에게 결국 나라를 갖다바치고 말았다.
그나저나 나는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난 후, 독재와의 오랜 싸움에서 이긴 이땅이 이제 모르는 사이에 배부르고 쉽고 편하게 살 수 있는 '돈'이라는 먹구렁이에게 몸이 칭칭 감겨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독재와 불평등 때문만이 아니라 제 스스로의 욕망과 이기심 때문에도 세상이 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세상은 시나브로 양심뿐만 아니라 영혼조차 팔지 않으면 살 수 없게 되어가고 있었다.
정말 '돈'이 필요 없는 세상을
애초와 돈과 권력과 자리와는 인연이 없는 팔자와 시대를 살고 있는 나(그런 나가 아니라도,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이라도, 아니 그럴수록)는 단지 먹고 살기 위해 끊임없이 '돈' 계산을 해야 하고 그런 돈을 얻기 위해 영혼의 숨통을 막아야 하는 삶을 살지 않을 수 없었다. 산다는 건 결코 이건 아니다, 고 깨닫게 되었다.
혹독한 수탈만 아니면 그럭저럭 먹고 살며 양심과 영혼을 잃지 않고 살 수 있었던 우리 땅의 '오래된 미래'를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돈'이 필요 없는 세상을, 그런 삶의 방식을 찾지 않으면 세상은 그 먹구렁이에게 단단히 잡아먹히고 말 것 같았다. 누군가가 '돈' 없이도 아주 잘 살아주지 않으면 세상은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같은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같은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인가? 정말 '돈'이 필요 없는 세상을 그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자급자족! 그것이다!
그리고 가능한 일이었다. 비어가는 시골에서는 맨몸뚱이라도 반기는 집도, 땅도, 사람들도 있었다.
돈과 권력은 '서울'이 작아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서울에 보다 더 많은 사람이 몰리고 그래서 더 생존경쟁이 치열해져야 집값도 월세도 자릿세도 올라가는 것이다. 그건 곧 돈이 돈을 저절로 버는 일이 더욱 쉬워진다는 것을 뜻하고, 그 돈으로 권력을 쥐고 또 그 권력으로 돈을 쥐는 것이다. 먹고 살기가 각박해질수록 사람들은 더욱 돈과 권력에 휘둘린다.
서울을 빠져나가는 것이야말로 나 자신과 동포와 인류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가장 훌륭한 결정이었다. (끝)
장진희 (무주에서 7년동안 농사짓고, 진도로 옮겨와 텃밭을 일구며 섬마을에서 글을 모르는 어르신들과 필리핀 등 국제결혼한 엄마들과 그 자녀들의 공부를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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