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의 결혼 10주년이 되는 해
- 2015년 우리 집 10대 뉴스 -
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정석곤
2015년 을미년 마지막 날이다. 광복 70주년인 올해엔 작년 세월호 사건으로 어두웠던 그림자가 없어지고 기쁜 날만 있길 원했다. 그런데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으로 온 나라가 비상사태였고, 극심한 가뭄으로 농부들의 마음이 타들어 갔다. 다행히 벼농사가 풍년이라 농심을 달랠 수 있었다. 얼어붙은 남북관계가 최고위급 회담으로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져 이산가족의 한을 조금이라도 풀어 주었다. 지금도 세계는 IS 테러로 많은 생명을 잃고 불안에 떨고 있다. 올해 우리 집에서 일어난 일을 되돌아보고 뉴스 10개를 선정해 보았다.
1. 비시무사역 장로 시작
1979년 4월, 순창읍교회를 떠날 무렵 기도제목으로 정한 지 14년 만에 장립將立을 받았다. 1993년 6월 13일, 희년교회 전 이름인 덕진중앙교회(고 김태수 담임목사)에서 장로가 되었다. 그때가 전주 전동교회에서 덕진중앙교회로 옮긴 지 9년째로 나이는 44세였다.
한국기독교장로회 헌법에는 시무 장로 정년이 70세이지만, 우리 교회 정관에는 65세로 하고, 70세까지는 비시무사역 장로라고 한다. 정관에 따라 올해 1월 1일부터 시무장로 22년 만에 비시무사역 장로가 되었다. 그러나 늘 시무장로라 생각하며 교회 활동을 하려고 다짐했지만 그렇게 못했다. 겨우 시온 성가대원과 희년개척교회 설립추진위원장, 그리고 교회 감사를 맡아 감당했다.
2. 정태이 돌잔치
내 생일이 사흘 지난 10월 17일 오전 9시 44분에 내게도 딸이 태어났다. 그날의 감격과 감동이 채 가시지도 않는데 벌써 한 해가 지나 태이의 첫 생일을 맞게 됐다. 아들 태산이 돌잔치는 많은 지인을 불러 성대하게 치렀는데, 태이는 전주에서 친가와 외가 직계가족들끼리만 모여서 조촐했지만, 더욱 축복이 넘치는 돌잔치를 가졌다. 둘째라서 그렇다는 이유도 있다. 나중에 태이가 ‘왜 오빠처럼 돌잔치를 안 해줬느냐?’ 며 타박할지도 모르지만, 아빠 엄마로서는 더욱더 마음이 따뜻해지고 온전히 태이에게 축하해 주는 시간이어서 무척 좋았다.
우리 태남매, 태산이와 태이가 서로 사랑하며, 하나님께 감사하길 바란다. 작은 일상에서도 행복을 느끼며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사랑스러운 아이로 자라길 바란다.
(막내며느리 박은주 제공)
3. 전북동장로회 회장으로 당선
현직에 있을 때부터 한국기독교장로회 전북동장로회 활동을 시작했다. 나무를 심는 것처럼 십년지계로 실행위원, 부서기, 서기, 회계, 총무, 감사, 부회장을 1년씩 차근차근히 했다. 부회장은 3명인데 선임 부회장을 했다.
1월 7일(수) 동일교회당에서 제35회 정기총회가 열렸다. 규칙에는 회장은 무기명 비밀투표로 과반수 득표자를 선출한다고 되었지만, 해마다 규칙을 정지하고 선임부회장을 회장으로 추대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런데 올해엔 총회를 앞두고 ‘법’을 주장하여 두 번째 부회장과 경선을 했다. 1차에서 내가 과반수가 넘어 당선됐다.
1년 동안 임원과 회원들의 협력으로 임기를 잘 마치게 돼 하나님과 회원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앞으로도 증경회장과 고문으로서 전북동장로회의 발전에 협력하는 장로가 되고 싶다.
4. 채운 엄마 용이초등학교로 복직
둘째며느리 채운 엄마는 작년 3월 1일 자로 평택에서 교사들 사이에 인기가 많은 용이초등학교로 발령을 받았다. 바로 그 학교에 입학한 채운이에게 참 엄마 노릇을 하려 1년 육아휴직을 했다. 휴직을 마치고 그 학교로 복직했다. 워낙 맡은 일을 잘 해내는 성격이라, 한 해를 쉬었다가 다시 시작한 채운 엄마의 직장생활은 걱정이 안 되었다.
내가 출퇴근 시간이 오래 걸리고, 학교 일로 늦게 오는 날이 많아, 매일 아들 채운이와 이현이를 데리고 출퇴근하며 집에서도 고생하는 게 맘속으로 안타까웠다. 용이초등학교에 근무하는 친구로부터 채운 엄마가 학급관리와 업무도 잘 처리한다고 주변 선생님들의 칭찬이 자자하다는 말을 들으니 어깨가 으쓱해졌다.
하나도 잘하기가 어려운데, 언제나 사랑스러운 아내, 좋은 엄마, 훌륭한 스승으로 1인 3역을 거뜬히 해내는 채운 엄마가 역시 최고다.
(둘째 아들 상진 제공)
5. 미국 서부와 동부 여행
미국의 동부와 서부, 두 번의 여행 코스를 한꺼번에 3월 12일부터 24일까지 12박 13일 여행이었다. 아내와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해 시내와 금문교와 선착장, 요세미티국립공원, 바스토우 텐저 아울렛, 갤리코 은광촌, 그랜드 브라이스 자이언 캐년, 라스베이거스, 그리고 LA의 스타 거리, 맨스차이니스 극장,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관광했다.
동부 뉴욕 공항으로 이동한 다음날 약 8시간 이상을 달려 캐나다로 가서 1박을 하면서 나이아가라폭포를 관광하고 워싱턴 D.C로 돌아왔다. 워싱턴 D.C의 국회의사당, 백악관, 자연사박물관, 한국전쟁기념비와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전망대, 록펠러센터, 자유여신상 유람선, 센트럴 파크를 관광했다. 다시 샌프란시스코 공항으로 와서 인천행 항공기로 갈아탔다.
6. 대가족 1박 2일 여름휴가
3년 전, 충남 태안군 안면도에서 1박 2일 대가족 여름휴가를 보냈다. 막둥이 손자 태산이의 수술과 막내며느리의 임신으로 두 해를 그냥 넘겼다. 올해는 8월 13일(목) 오전에 충북 단양 대명리조트에 열넷이 모이기로 했다. 둘째, 막둥이, 큰애 네와 우리 내외 순으로 도착했다. 아쿠아 월드 4번 원두막에서 간식을 점심으로 먹으며 지칠 줄 모르고 실내 수영장과 뜨거운 노천장 물놀이를 했다. 저녁과 아침 식사는 리조트에서 준비해 간 음식재료로 별미를 조리해서 먹었다.
다음날, 충주호 유람선을 타고 단양팔경 가운데 구담봉과 옥순봉을 구경하고, 점심으로 단양의 맛 자랑인 ‘마늘 정식’을 먹었다. 고수동굴을 관람하며 피서를 즐기기도 했다. 남은 팔경 구경과 못다 나눈 가족 간 정의 아쉬움을 안고 헤어졌다. 아내랑 둘째의 안내로 단양팔경 가운데 도담 삼봉과 석문을 구경하고 왔다.
7. 슬우의 사춘기 시작
슬우는 하나밖에 없는 귀한 아들이다. 4년 뒤에 딸 슬아가 태어났지만, 우리 집안의 장손이자 첫 손자라 온 가족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그러나 첫돌이 지나기 전에 아내의 직장문제로 본가에 슬우를 맡기고 떠나는 아내는 차에 타는 순간부터 울었다. 아내랑 서울과 전주를 오가며 본 슬우의 유아 시절이 마음 아팠다.
굴곡이 많은 아빠의 삶 때문에 그리 안정적이지 못한 유년시절을 보낸 슬우는 벌써 전주서천초등학교 6학년이다. 슬우에게 그 무섭다는 사춘기가 온 것 같다. 아직은 엄마의 보호 아래에 있지만 이제 활동을 자기 주도적으로 시도하려 하고, 친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 엄마의 현명한 지도와 아빠의 배려로 슬우가 사춘기를 슬기롭게 잘 넘겼으면 좋겠다.
(큰아들 상훈 제공)
8. 러시아와 북유럽 4개국 여행
연거푸 9월 3일부터 14일까지 11박 12일 부부해외여행을 가기가 미안해서 인천공항에서 세 아들 내외에게 문자를 보냈다. 모스크바를 거쳐 노르웨이 오슬로에 도착했다. 오슬로 시내,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경기장, 게이랑에르 피요르드, 빙하박물관, 송네피요르드를 구경하고 로맨틱 산악열차를 탔다. 브뤼겐 어시장과 거리를 다녔다. 오슬로 선착장에서 초호화 유람선을 탑승하여 1박하며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가서, 안데르센 동상과 인어공주 동상 등을 둘러보았다.
스웨덴의 스톡홀름으로 이동해 대성당, 시청사와 왕궁 외관 등을 보았다. 또 초호화 유람선에서 1박하며 핀란드 수도 헬싱키로 가서 시벨리우스 공원과 암석 교회 등을 구경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브르크로 가서 여름 궁전 내부와 정원, 겨울 궁전으로 사용했던 에르미타주 박물관 등을 보고, 모스코바로 가서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레닌언덕, 클레물린 궁, 성 바실리 성당, 붉은 광장, 굼 백화점 등을 바삐 돌아다녔다. 모스크바 공항에서 러시아 항공기로 귀국길에 올랐다.
9. 잔병치레 관리
작년 12월 말에 단골 치과의원에서 웃니 왼쪽 2, 3번 잇몸의 염증을 제거하고 신경 치료를 시작했는데 11월에야 끝났다. 바로 2주 뒤에 임플란트로 하려고 진즉 심하게 흔들린 아래 왼쪽 의치인 어금니 하나를 뺐다.
오른쪽 콧구멍 안에서 염증으로 콧물이 심하게 나와 동네 이빈인후과 의원에서 치료를 받다 중단했다. 다시 시작했는데 낫지 않았다. S동에 있는 소문난 의원을 찾아가 3개월쯤 치료를 받다 그만두었는데 저절로 나았다.
왼쪽 어깨를 위아래와 앞뒤로 움직이지 못하고, 휘돌리기와 옆구리 운동도 할 수가 없었다. 봄부터 찜질과 마사지를 했지만, 효과가 없어 동네 통증클리닉의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다. 동네 한의원에도 갔다. 많이 좋아져서 찜질과 마사지만 받으며 스트레칭을 하고 있지만, 온전히 치료된 게 아니다. 이제 잔병 관리에 관심을 가질 때인 것 같다.
10. 증도와 임자도 여행
증도여행을 올해는 넘기기가 싫었다. 아내와 내 생일 다음날인 10월 29일, 1박 2일로 출발했다. 증도대교가 놓여 전주에서 2시간 30분쯤 걸려 도착했다. 면 소재지의 문준경순교기념관과 Treasure Island(보물섬)에 신안해저유물을 전시한 배 모형의 전시실을 관람했다. 되돌아 나와 면 소재지를 지나 짱둥어다리를 건너 우전해수욕장과 해송 숲을 신안갯벌센터까지 바다와 솔바람을 마시며 왕복 5km 넘게 걸었다.
‘가고 싶은 집’에서 민박을 했다. 아침 일찍 신안갯벌센터 바닷가를 둘러본 뒤에 썰물 때인 노두 길로 하도를 가서 MBC-TV 수목드라마 촬영지인 ‘기서의 집’도 구경했다. 태양염전을 관찰하고 문준경전도사 순교지와 무덤을 보고, 면소재지로 나왔다. 문준경전도사님이 세운 중동리 교회를 들러본 뒤에 상정봉에 올라 문준경전사님의 기도 바위도 가 보았다.
증도를 나와서 교감 때 한 번 가보았던 임자도를 배로 들어가 부두식당에서 점심을 먹고서 소재지를 둘러보고 나왔다. 오면서 국화꽃으로 장식한 함평국화축제장 정문에서 지는 해를 뒤로한 채 사진만 찍고 돌아왔다.
올해는 둘째 상진이가 결혼 10주년을 맞는 해다. 또 내가 정년퇴임을 한 지 4년째를 맞는 해다. 이것저것 하고 싶은 일이 늘어나 그런지 2015년 을미년은 글도 많이 쓰지 못한 채 쏜살 같이 지나갔다. 2016년 병신년(丙申年)은 4월 13일 총선을 잘 치러 정치가 안정되고 민생경제가 회복되어 서민 생활이 좀 더 나아지길 기도한다.
(2015. 12.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