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 마음 한 순간이다. 소중하다면 존중하고 지킬거 지키고 아껴줘라 ♡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 우리가 확고하게 믿고 있는 진리조차도 시대와 상황과 처한 입장에 따라서 변한다.
이 세상의 모든 현상 또한 正 - 反 - 合으로 돌고 돌아가면서 變하고 循還한다.
세상 이치가 이와같으니 항차 朝夕으로 變하는 사람 마음이야 오죽하겠는가. 해서 사람 마음 변하는 건 한순간이다. 때문에 편하다고 함부로 대하지 말고
편할수록, 그리고 소중할수록, 또 가까운수록 , 더 존중하고, 지킬거 지키고, 아껴줘야 한다.
잘해 준다고 막 함부로 대하거나 무시하지 말고
늘 져 준다고 만만하게 보지 말고 곁에 있을 때 잘 해줘야한다.
인류 5000년 有史이래의 기록들을 살펴보면, 성공한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을 잘 챙기고 돌보아서 그들의 조력으로 그 자리에 올라갈수있었고. 또 긴급한 순간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총 295년간 이어오던 중국의 춘추시대(기원전 770~476년)에서 전쟁이 없었던 해는 고작 38년에 불과했고, 그 후 전국시대 (기원전 475년~222년)로 이어진 254년 동안 전쟁 없이 평화가 유지되었던 시기도 기껏 89년에 불과했다. 하룻밤 자고 나면 무슨 전투에서 몇 십만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여오는 살벌한 시대에는 개인적으로 유능한 인재를 많이 거느린 유력자가 정치를 끌어나가게 되고, 유력자의 집에서 숙식을 하며 조력을 하는 인재들을 소워 ‘식객. ‘문객’이라고 하였다.
그 춘추전국시대의 이른바 전국 사공자(四公子)는 제나라의 맹상군(孟嘗君), 조나라의 평원군(平原君), 위나라의 신릉군(信陵君), 초나라의 춘신군(春申君)을 가리킨다. 기록에 따르면 이 사공자의 식객이 한때 3천 명에 달했다고 한다. 누구든지 한 가지 장기만 있으면 그들의 문하에 들 수 있었으며, 식객들은 신분의 귀천과 관계없이 똑같은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이들 사공자는 선비를 양성하는 것으로 유명해지기도 했지만, 또한 선비를 양성함으로써 일정 정도 국가의 보전에 기여했다.
전국 사공자, 그중에서도 특히 맹상군은 칭찬할 만한 점이 많은 인물이었다. 사람을, 그리고 재능을 포용하는 그의 도량은 일반인들이 감히 본받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한 예로 맹상군의 어느 식객이 그의 부인과 정을 통한 적이 있었다. 누군가 그것을 두고 볼 수 없어 맹상군에게 사실을 고했다.
“측근으로서 감히 공자의 부인과 정을 통하다니, 이는 너무도 의리를 저버리는 짓입니다. 당장 그를 죽여버리십시오.”
맹상군의 대답은 너무나 의외였다.
“아름다운 사람을 보고 서로 좋아하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이 일은 한쪽으로 미뤄두고 더 이야기하지 맙시다.”
1년이 지나서 맹상군은 자신의 부인과 정을 통했다는 바로 그 식객을 불러 말했다.
“당신은 이곳에서 꽤 오래 머물렀습니다. 큰 벼슬은 기회가 없었고, 또 작은 벼슬은 당신이 원하지 않았지요. 위나라의 군주가 저와 좋은 친구인데, 수레와 가죽옷, 비단을 준비해줄 테니 그 예물들을 갖고 위나라에 가서 그곳 군주와 사귀어 보길 바랍니다.”
결국 그 식객은 위나라로 가서 중용되었다.
나중에 제나라와 위나라는 서로 관계가 악화, 되었다. 위나라 군주는 천하의 제후들과 연합하여 제나라를 침공하고자 했다. 그때 맹상군의 부인과 정을 통했던 그 사람이 군주에게 말했다.
“맹상군은 제가 보잘 것, 없는 사람인데도 주군께 저를 추천해 주었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안젠가 제나라, 위나라 양국의 선왕들께서 말과 양을 잡아, 맹세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제, 위 양국의 후계자들은 절대로 서로를 침공해서는 안 되며, 혹 침공한 자는 죽인 말과 양의 운명이 될 거라고 말입니다. 지금 위가 제후들과 연합하여 제나라를 공격한다면 곧 선왕의 맹세를 어기는 꼴이 됩니다. 게다가 맹상군을 기만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주군께서 제 충고를 들어주신다면 그만이지만, 만약 들어주시지 않는다면 이 보잘 것 없는 자는 뜨거운 피로 주군의 옷깃을 적실 것입니다.”
위나라 군주는 그의 설득과 위협 때문에 결국 제나라를 공격하지 않았다.
제나라 사람들은 나중에 이 일을 전해 듣고 “맹상군은 일을 잘 처리하여 화를 복으로 바꾸는 인물이다.”라고 말했다.
그와 관련된 일화 중에 '鷄鳴狗盜'란 사자성어를 생기게 만든 일화가 있다.
어느 날, 맹상군 집에 행색이 남루한 사람들이 들어왔다.
“그대들은 무슨 재주가 있는가?”맹상군이 묻자 두 사람이 대답했다.
“저는 개 흉내를 잘 냅니다.”
“저는 닭 울음소리를 잘 냅니다.”
다른 식객들이 비웃었지만 맹상군은 둘을 받아들였다. 얼마 후, 맹상군은 왕의 명령으로 진나라에 갔다. 진나라 소왕은 맹상군의 인품에 반해 재상으로 삼으려 했지만 신하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맹상군은 어질지만 제나라 사람입니다. 이참에 그를 아예 없애 버리시지요.”솔깃한 소왕은 맹상군을 옥에 가뒀다. 맹상군은 소왕이 아끼는 후궁에게 사람을 보내 구해달라고 했다. 후궁이 조건을 걸었다. “호백구(여우의 흰 겨드랑이 털로 만든 옷)를 내게 준다면 구해 드리지.” 맹상군은 이미 호백구를 소왕에게 선물로 바친 터였다. 개 흉내를 잘 내던 사내가 나섰다. “제가 다시 가져오겠습니다.”
그날 밤, 사내는 개를 흉내 내면서 궁중 창고로 숨어 들어가 호백구를 훔쳐 나왔다. 후궁의 간청으로 풀려난 맹상군이 서둘러 도성을 빠져나오려는데 이른 새벽이라 관문이 열리지 않았다. 긴박한 상황에서 닭 울음소리를 잘 내는 사내가 ‘꼬끼오!’ 하고 울음소리를 내자 수문장이 관문을 열었고, 맹상군은 제나라로 돌아왔다.
계명구도(鷄鳴狗盜)는 쓰임에 따라 뜻이 달라진다. 학문이 깊지 않으면서 잔재주만 지닌 사람을 가리킬 때는 부정적 의미가 크지만, 하찮은 재주라도 어딘가에 쓸모가 있다는 뜻으로 쓰일 때는 긍정적 의미가 강하다.
이와같이 주변 사람들을 잘 챙겨주면 언젠가는 쓸모가 있기에 성공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옛말에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마음 속은 모른다"라고, 사람마음이 늘 한결같다고 변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지 마라.
물은 건너봐야 그 깊이를 알수가 있고 사람은 겪어봐야 그 마음을 알 수가 있다.
사람 마음 변하는 건 한순간이기 때문이다.
실수가 계속되면 실망하게 되고
실망이 계속되면 포기하게 되고
포기가 계속되면 외면하게 된다.
사람이 사람에게 등 돌리는 게 이렇게 쉽다.
그러니까 소중한 사람을 놓치지 않으려면 맹상군처럼 계속 노력해야 한다.
사람의 마음은 세월의 조각들이 하나 하나씩 흐른 뒤에야만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수가 있다.
오래보고 사귀어야 그가 진정한 친구인지 참된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사람을 넓게 사귀면 얻는 것도 있고 잃는 것도 있는 법이다.
伯牙絶絃에서 보듯이 우리가 살면서 자기를 알아주는 鍾子期같은 평생에 한 명의 진정한 벗을 얻을 수 있으면 그것으로도 우리는 만족할 수 있으리라 본다
나에게 소중한 사람은 무슨 대단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 아니라 함께 밥을 먹고 전화를 걸고
오늘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바로 곁에 있는 당신같은 사람들이다.
첫댓글 곁에서 자주볼수있는 사람들이 소중한 사람이네요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고운밤 되세요
많은 것을 느낍니다.
좋은글 잘 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고운밤되세요
맹상군이 아주 대단한 인물이네요
보통 사람이 아닌 도인 같습니다
배워야할 부분이 참 많습니다
행복한날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