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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뉴스&스크랩 스크랩 에피소드 미국경제의비밀 1
지니아빠 추천 0 조회 872 07.09.20 11:40 댓글 13
게시글 본문내용
[부자들이 공부하는 미국 경제의 비밀①] 파산하지 않는 ‘영원한 제국’
정부 재정 누적적자 4조 달러… 美 주도 ‘세계화’에 해답 있어
토머스 프리드먼의 『세계는 평평하다』라는 책이 아니더라도 세계는 확실히 평평해져 가고 있다. 평평해진다는 것은 기업과 돈이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넘나드는 것을 말한다. 특히 이 ‘평평한 세계’에서 미국 기업과 세계 경제가 ‘자유롭게’ 만나고 있다. 이 자유로운 만남의 밑그림은 미국에서 나온다. 신자유주의와 맥이 닿는 대목이다. 이른 새벽 눈 비비고 일어난 증시 관계자들은 가장 먼저 미국 월스트리트와 백악관 동정을 살핀다.

그렇다면 우리는 미국과 미국의 전략과 그들의 경제를 아는가? 북한 핵문제와 FTA로 미국 경제와 한국 경제의 ‘자유로운 만남’이 눈앞에 있지만, 자신 있게 “예스”라고 대답할 사람은 많지 않다. 아쉽고 안타까운 현실이다. 국내의 손꼽히는 부자들은 벌써 이런 흐름을 속 깊게 공부하고 있다. 그들은 왜 공부를 할까? 뭘 알고 싶어 할까? 미국 경제와 디플레이션 전문가로 부자들의 공부 모임에 초빙받는 홍성국 대우증권 리서치센터장(상무)의 지상 특강을 5회에 걸쳐 싣는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국제전화는 흔한 단어가 아니었다. 한 통화 하려면 집에서건 회사에서건 상당한 눈치를 봐야만 했다. 하지만 축구 선수 차두리는 값싼 인터넷 전화 덕분에 아버지 차범근 감독과 통화료 부담 없이 수시로 통화한다. 일반화된 인터넷 전화와 크게 하락한 통신요금 덕분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맥도널드 햄버거 가격도 3년 전 그대로다. 손가락만 한 3만원짜리 휴대이동장치(USB)에 두 시간짜리 영화가 한 편 들어가는 플래시 반도체 가격은 1년에 50%씩 떨어진다. 21세기 들어 한국은 극단적인 내수 침체를 겪었지만 수출은 4년 만에 2배로 늘었다. 이것이 바로 흔히 말하는 세계화(Globalization)의 효과다.

세계화가 진전되면서 전 세계 소비자들은 값싼 물건을 풍부하게 사용하고 있다. 10년 만에 본격적인 지구촌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런 세계화의 선봉장인 동시에 강력한 수호 세력은 미국이다. 한마디로 미국은 세계화 없이 존재할 수 없다. 미국은 지구촌 세계화의 이익을 거의 독점적으로 향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9·11 테러를 기점으로 세계는 또 다른 무질서에 빠지고 있다. 최근 3~4년간 남미를 중심으로 정권을 잡은 세력은 대부분 반미 성향의 좌파정부다. 그동안 선진국에서 세계화를 강력히 추진하던 보수정당들은 지지도가 급속히 하락하면서 영국·일본·호주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반미주의 물결이 거세지고 있다.

프랑스나 독일은 미국과 냉랭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남미 국가를 결집해 공공연하게 반미 세력의 연대를 꾀하고 있다. 국가 간의 관계도 불편해지고 있다. 세계화로 지구촌 시대가 열리면서 민족주의는 과거의 이념이 되었다. 그러나 민족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국가 간의 영토 분쟁이나 민족 간의 충돌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심한 상태다.

자, 이것이 세계화의 두 얼굴이다. 미국이 강력하게 추진하는 세계화는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있다. 그런데 왜 다른 한쪽에서는 반세계화, 반미주의가 날로 거세질까? 미국은 왜 과거와 달리 세계화를 유지하기 위해 무력까지 써가며 비난받을 행동까지 서슴지 않는가? 도대체 세계화와 미국은 어떤 연관이 있는가? 세계화는 어떤 부작용이 있는가? 이것이 현재 세계화 속에 감춰진 갈등이다.

“홍어 리필됩니다”

지난해 말 발간된 토머스 프리드먼의 『세계는 평평하다』란 책은 이런 세계화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국내에서도 세계화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이 책은 정보기술(IT) 의 발달과 국가 간의 장벽이 제거되면서 세계가 평평해진 결과, 이제 전 지구인은 같은 시간대에 세계적 차원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알려주었다. 그가 말하는 세계의 ‘평평화’란 ‘세계화’를 달리 표현한 것이다.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란 광고 때문인지 올 상반기 석류 주스는 대단한 히트를 쳤다. 석류 주스를 개발한 음료 업체인 롯데칠성은 올 2월부터 8월까지 360억원어치를 판매, 수입이 짭짤할 전망이다. 음식료업계에서는 이런 히트상품이 자주 나온다.

그런데 석류가 귀하고 맛있다는 것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석류의 수입지역이 ‘이란’이라는 것이다. (충격적이다!) 또 요즘 뷔페 식당에 가면 예전에는 보기 어려웠던 훈제 연어가 흔해졌고, 일부 남도 음식점에서 삼합을 주문하면 주인은 “홍어를 추가로 리필해 줍니다”라는 친절한 말까지 덧붙인다.

갑자기 연어나 홍어의 어획량이 늘어났기 때문일까? 아니다. 연어는 캐나다와 북유럽, 홍어는 칠레에서 싼 가격에 자유롭게 수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프리드먼의 평평화 논리를 적용하지 않더라도 한국은 이미 홍어·연어·석류와 같이 과거에 귀했던 먹거리가 싸고 흔해졌다. 한국은 또 지난해 벨기에를 비롯한 헝가리·스페인 등 16개 국가에서 전체 소비량의 약 13%에 이르는 삼겹살을 수입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옷이나 신발과 같은 소비재, 각종 산업재 등에도 각국의 제품이 뒤섞인 채 값싸게 팔리고 있다. 순수 토종 물건이 사라진 것은 당연하다. 혼성화(Hybrid) 세상인 것이다. 이런 세계화는 갈수록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휴대전화를 보유한 전 세계 25억 명, 인터넷을 사용하는 9억여 명에 달하는 평평화 동력이 산맥을 깎고, 강에 다리를 놓고 있다.

덕분에 5~6년 전만 해도 해외에 나갔다가 귀국할 때 카메라·캠코더를 하나씩 구입해 오는 풍경이 사라졌다. 어느 곳이든지 여행할 수 있고, 운송비가 줄어들면서 지역 간의 물가 차이가 없어졌고, 그 결과 카메라 같은 공산품 가격은 세계 어느 지역이나 비슷해졌다. 굳이 해외에 나가서 사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물건값이 비슷해졌을 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가격이 싸졌다는 점이다.

세계적 차원에서 원자재를 조달하고 효율적인 유통망을 통해 상품을 배송한 결과 제품 원가가 내려갔기 때문이다. 더구나 각각의 업종 선두권 업체들이 치열한 경쟁을 통해 세계시장을 독식했고, 대량생산으로 원가를 줄였다. 인건비가 싼 중국 등으로 생산지를 옮긴 것도 한 요인이다. 세계화는 낮은 가격으로 세계적 수준의 서비스를 어느 곳에서나 가능하게 했다.

어떻게 이런 현상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을까? 13세기 칭기즈칸이 단기간에 세계의 헤게모니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중앙아시아의 지형이 평평한 초원이라는 점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초원에서는 산맥과 같은 장애물이 없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공격할 수 있다. 저항세력이 있을 경우 빠르고 강력한 기마병을 보내 손쉽게 제압, 대제국을 건설했다.

한때 유행했던 ‘계급장 떼고 붙어보자’란 말은 동일한 조건에서 실력으로만 경쟁하자는 뜻이다. 세계화도 같은 원리다. 칭기즈칸 시대처럼 국가라는 장벽이 제거되고 경영여건이 동일하다면 경쟁력 있는 선구적 기업이 쉽게 세계를 지배할 것이다. 승리와 패배는 세계적 차원의 헤게모니를 잡았는지 여부에서 판가름난다.

세계적인 1위 기업이 될 경우 독점적인 이익을 누릴 수 있다. 2등 기업은 1등에 흡수 합병될 가능성이 높다. 세계 최고의 철강업체였던 한국의 포스코가 세계 3위 업체로 내려앉은 것은 1, 2위 업체인 미탈(Mittal)과 신일본제철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중소형 철강사를 흡수·합병하면서 몸집을 키웠기 때문이다. 미탈은 최근 세계 2위였던 아세라(Arcelor)를 인수해 2위인 신일본제철과의 격차를 더 크게 벌렸다.

포스코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인도에 100억 달러짜리 철강 업체를 세우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윈도로 전 세계를 평정하면서 어떤 기업도 PC의 운영체제(OS)분야에 진출할 수 없게 만들었고, 넷스케이프를 고사시켜 자사 제품인 익스플로러로 세계를 통일했다. 이제 기업의 경영목표는 세계를 대상으로, 세계를 전부 장악하는 것으로 변하고 있다.

평평해진다고 시장 진입 기회가 많은 것도 아니다. 현재 국적이 없는 초국적(Trans-national) 기업들은 거의 모든 영역을 선점하고 있는데, 대개는 경쟁자가 없는 블루오션 시장에 자리하고 있다. 혁신적 아이템 없이 새롭게 시장에 진입하는 기업들은 레드오션 시장에서 이전투구해야 한다.

美 국가경영 목표가 세계화

평평해진 세계의 실질적 패권자는 초국적 기업이다. 초국적 기업은 세계를 대상으로 사업을 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대부분 미국 기업이다. 본사는 미국에 있고, 미국 정부를 등에 업고 세계를 평평화시키는 선봉장이다. 물론 생산기지는 미국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활발한 아웃소싱을 통해 중국·인도 등 신흥공업국에 공장을 두고 있다. 최근 BRICs(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국가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지만 중국 수출의 약 60%는 외자계 기업의 자회사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인도 경제 성공의 상징적 기업인 인포시스(Infosys)의 경우 실제 지분의 절반은 미국 자본으로 간주되는 외국인 투자가이고, 영업 대상 지역도 미국이 70%를 차지한다.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는 미국 기업은 아웃소싱을 통해 무려 78%의 이익을 가져가지만, 중국·인도와 같은 아웃소싱 대상국은 불과 22%의 이익만을 가져가는 것으로 분석했다.

제조업뿐만이 아니다. 전 세계 금융기관도 거의 미국 자본이 장악하고 있다. 표면적으로 미국 경제가 전 세계의 27%에 불과하지만 실질적인 지배력은 훨씬 크게 느껴지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런 미국 기업들이 세계를 대상으로 활동하려면 진출국가의 규제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국가 간의 경계가 허물어져야만 진출입이 용이하다. 세계가 평평해진 상태에서만 미국 기업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정부의 규제, 노동 운동으로부터의 자유와 공기업의 민영화를 세계 각국에 요구한다.

이를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라 하는데 여기서 자유는 경제, 특히 기업 경영의 자유를 의미한다. 따라서 기업이 자유를 얻게 된다는 것은 세계화, 특히 ‘미국화’된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바로 이런 이유, 그러니까 ‘미국화된 세계화’ 때문에 미국은 다른 나라와 마찰을 빚을 수밖에 없다.

이론적으로 세계화 체제에서는 경쟁력 있는 기업이라면 어느 기업이든지 세계 최고 수준에 오를 수 있다. 그러나 실제 나타난 결과는 대부분 미국 기업이나 미국식 세계화를 추종하고 있는 일본·영국 기업들만이 이 수준에 도달해 있을 뿐이다. 오히려 세계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이전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었던 여타 국가의 기업들은 미국 기업에 흡수 합병되든지, 아니면 점점 쇠퇴하고 있다.

이 결과 미국 기업들의 순익은 세계화가 본격 시작된 21세기 이후 급속히 증가했다. 1990년대 미국 기업 이익은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7~8%였지만 이 수치가 급격하게 늘어나 지난해에는 세계 최고 수준인 무려 GDP의 12%까지 증가했다. 세계화가 미국에는 최고의 선(善)이고 유일한 국가 경영 목표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상한 돈의 흐름

그러나 미국은 사실 중병을 앓는 환자다. 동서 냉전 종식과 1990년대 이후 미국이 세계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면서 미국인들의 소비벽은 더욱 커지고 있다. 20세기를 통해 나타났던 긴 전쟁에서 미국이 유일한 전승국이 되면서 미국인들은 자신의 경제력 이상으로 소비하고 있다.

▶평평한 세계에서 미국과 미국의 기업들은 유일한 패권자다.

저축은 없고 소비만 있다. 미국 인구는 세계 인구의 5%이지만 에너지는 20%나 소비한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미국의 누적 경상수지 적자가 6조 달러나 된다. 올해에도 경상수지 적자는 GDP의 약 6.5% 수준인 8000억 달러를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런데 8000억 달러가 도대체 얼마나 되는 금액일까? 8000억 달러를 시간당으로 계산해 보면 한 시간에 9000만 달러다. 우리 돈으로 따져보면 한 시간에 무려 870억원씩(1달러당 960원으로 계산) 빚을 내서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과소비는 연간 개인소득 대비 부채 비중을 120%로 올려놓았다. 역사상 가장 높은 수치다.

정부도 소비에 열중하고 있다. 미국 정부의 재정수지 적자 누계는 올해 말이 되면 약 4조 달러가 될 전망이다. 여기에 향후 세금 감면, 사회보장 비용 증가, 그리고 이라크 전쟁과 같은 국제 분쟁 개입 비용이 더해지면 규모는 더 늘어날 것이다. 상황이 이런 데도 미국 정부가 파산하지 않는 것은 참으로 희한하다.

이상한 것은 이런 암울한 상황에서도 미국이 힘들고 어려운 제조업을 해외로 이전시키고, 소비를 늘리는 서비스업 중심으로 경제를 운영한다는 점이다. 저축률이 꾸준히 줄어들던 미국은 이미 3년 전에 ‘제로(0)’ 수준에 도달했다. 그런데도 미국 정부는 세금을 깎아주면서 소비를 독려하고 있다. 이런 미국이 과연 언제까지 존재할까?

만일 해외에 풀린 약 6조원(누적 경상수지 적자)의 달러가 다른 나라 화폐로 전환된다면 어떤 현상이 나타날까? 아마 이런 상황이 온다면 1997년 한국이 겪었던 외환위기와 유사한 상황이 미국에서 나타날 것이다. 그 결과 미국은 세계의 헤게모니를 상실하고 국제질서와 경제는 대혼란에 빠져들 것이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기는커녕 점점 더 많은 자금이 미국으로 몰리고 있다. 지난해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약 8000억 달러였지만 미국으로 유입된 해외 자본은 경상수지 적자보다 1523억 달러나 더 많았다. 경상수지 적자를 상쇄하고도 남는 돈이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가? 차차 살펴보겠지만 답은 바로 세계화에 있다. 모든 장벽이 사라진 평평한 세계에서 미국과 미국의 기업들은 유일한 패권자다. 따라서 평평한 정글 상황이 무한히 지속되어야만 미국은 높은 소비를 지속할 수 있고, 달러를 세계의 기축통화로 유지시킬 수 있다. 세계화 체제에 균열이 생기면 미국은 붕괴된다.

이런 절박한 이유 때문에 FTA를 통해 미국의 저작권과 농업을 보호하고, 미국 중심 세계화 체제에 도전하는 이란·북한 등에 대해서는 강력한 무력 사용을 배제하지 않는다. 확실히 미국은 세계화가 본격화된 21세기 들어 달라졌다. 세계화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만약 미국이 약화된다면…

세계화 체제를 유지해야만 쌍둥이 적자에도 불구하고 외환위기를 방어할 수 있고, 세계가 지금보다 더욱 평평해질 때 미국은 ‘국민국가’를 초월해 초국가, 즉 제국이 될 수 있다. 미국은 18세기 이후 출범한 국민국가가 아니다. 미국은 세계화를 기본 환경으로 깔아놓고 그 체제를 중앙에서 통제하는 시스템 관리자 역할을 하고 있다.

PC에 비유하면 미국은 국가가 아닌 중앙처리장치(CPU)에 해당하고 나머지 국가들은 PC를 구동하는 메모리나 보조 기업장치로 볼 수 있다. 물론 미국은 이런 그들의 전략을 드러내놓지는 않는다. 그러나 미국은 이미, 그리고 실제로 세계의 CPU 역할을 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특정 국가가 국가 이상의 절대적 위치에 존재할 경우 일정 부분 불평등은 불가피했다. 과거 로마제국은 주변국의 착취를 기반으로 로마의 호사스러운 소비를 유지시킬 수 있었다. 미국은 혜택을 독점하면서 미국만은 다르다는 ‘미국 예외주의’를 일반화시켰다. 그 결과 세계는 다시 갈등에 싸여가고 있다. 미국은 환경 협약인 교토의정서를 비준하지 않고 있다. 국제형사재판소 협약에도 가입하지 않으면서 유엔의 결정을 무시하고 IMF나 세계은행을 실질적으로 요리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이 약화된다면 세계는 평화롭고 고성장을 이룰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한 대답은 ‘노’라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세계화 현상은 이미 일반화되었기 때문에 세계가 다시 국가 간 산맥과 강으로 분리된다면 그 피해는 엄청날 것이다. 현실적으로 다시 되돌릴 방법도 없다. 이미 세계는 평평해졌고 모든 현상이 서로 영향을 주는 상호의존적으로 변했다. 이제 미국의 문제는 세계의 문제가 되었다. 미국의 금리 변화가 국제 원자재 가격이나 서울 강남의 부동산 가격에도 영향을 줄 정도로 세계는 충분히 평평하다.

여론이 엇갈리고 있긴 하지만 한국은 아직까지 미국 중심의 세계화 체제에 그런대로 잘 적응하고 있는 모습이다. 세계적 경쟁 속에서도 상당수 대기업이 승리하면서 내수침체와 같은 어려운 상황에서 수출을 꾸준하게 늘려가고 있다. 힘들지만 여러 분야에서 세계 상위권을 유지하고도 있다. 수출 중심 경제인 한국의 입장에서 세계화에 대한 적응 여부는 거의 생존권을 가름한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미국과 세계화의 갈등에 참여하기보다는 틈새에서 세계적 기업을 육성하는 것이 유일한 과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과 세계화 현상을 제대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과거의 미국과 현재의 미국이 왜, 어떻게 다른가, 미국의 실제 모습은 어떠한가, 그리고 이런 변화가 한국에는 어떤 영향을 줄까? 차례로 훑어보자.<계속>

 

 

[부자들이 공부하는 미국 경제의 비밀 ②] 서비스업만 비대한 속 빈 ‘거인’
제조업 없이 성장하는 이상한 산업구조…버팀목은‘3중 융합 체제’

▶미국의 제조업은 갈수록 허약해지고 있다. 세계 최대 자동차 업체인 GM이 안고 있는 위기는 미국 제조업 자존심의 현주소라고 할 수 있다. 사진은 2005년 11월 21일 GM 제1, 제2공장에서 일시적으로 해고 조치된 노동자들이 떠나는 장면이다.

어렸을 때 미제(美製)라는 용어는 ‘가장 좋은 것’ 혹은 ‘최고’의 의미였다. 미제는 껌·담배·자동차·비행기 등 거의 모든 물건 중 가장 좋은 제품을 일컫는 대명사였다. 오죽했으면 미제는 X도 좋다고 할 정도였을까.

그런데 우리 주변에서 슬그머니 미제가 사라지고 있다. 제니스 TV와 RCA 냉장고를 기억하는 계층도 이제는 50대를 넘겨야 한다. 미국에서 수입하는 물건은 농산물이나 의약품, 일부 IT 부품, 그리고 무기 등으로 점차 종류가 줄어들고 있다. 실생활에서 미제 물건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미국의 경제 규모는 독일과 일본이 부상하기 이전인 1960년대까지는 전 세계 경제의 거의 절반을 차지했다. 미국의 강대함은 과거의 로마나 중국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당시 미국 경제의 강력함은 규모뿐 아니라 질적인 수준에서도 세계 최고였다. 음식료·섬유에서부터 우주 항공 분야까지 미국 경제는 세계 경제 자체였다.

1970년대부터 제조업 약화

그러나 1970년대를 고비로 미국의 제조업 경쟁력이 약화되면서 미국 경제는 양적인 면과 질적인 면 모두에서 급전직하하고 있다. 특히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4%에 불과하고 고용 인원도 1967년 30%에서 지금은 8%대로 줄어들었다. 독일의 제조업 고용 비중이 20%가 넘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의 제조업 비중은 경제력에 비해 매우 낮은 상태다.


미국의 업종별 수출 비중을 보면 이런 변화가 확연해진다. 1960년대 미국의 수출 품목은 자동차·철강 등 제조업이 주요 수출품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당시의 수출 품목이 수입 품목으로 변화하고 있다. 미국의 소비에서 미국 내부에서 생산하는 제품의 비중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표 참조>

1960년대 미국 경제의 상징은 자동차 산업이었다. 당시 미국의 자동차 수입은 전체 소비량의 4%였다. 10년이 흐른 1970년에는 11%, 1986년에는 31%로 늘어났다. 그리고 최근에는 미국 경제의 상징이자 자존심인 GM이 파산 위기에 처해 있고, 포드는 올해 자동차 부문에서만 90억 달러의 손실이 예상된다. 크라이슬러는 독일의 벤츠에 인수되었다. 델파이(Dellphi)와 같은 자동차 부품 업체도 경영위기를 맞고 있다.

세계 항공기 시장을 거의 독식했던 보잉은 이제 유럽의 에어버스와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휴대전화나 메모리 반도체도 핀란드와 한국에 추월당했고, 자동차는 일본과 유럽·한국의 협공에 맥을 못 추고 있다. 성장산업이며, 미국이 가장 많이 소비하는 디스플레이(LCD, PDP)는 생산조차 못하고 있다.


금융시장은 어떨까.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미국 기업의 경쟁력 약화로 최상위 신용등급인 ‘트리플A(AAA)’ 등급의 기업들이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2005년 4월 말 현재 S&P와 무디스로부터 트리플A 등급을 받은 비금융 회사는 엑손모빌, 제너럴 일렉트릭(GE), 존슨 앤 존슨(J&J), 화이자, UPS, 오토매틱 데이터 프로세싱 등 단 6개사에 불과하다. 그나마 제조업은 GE, J&J, 화이자 등 3개사다.

그러나 지난 1980년 S&P와 무디스가 트리플A 등급을 부여했던 기업은 각각 32개, 58개였다. S&P는 2002년 652개사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했는데, 이는 등급을 상향 조정한 기업 수에 비해 5배나 많았다. 이렇게 미국의 제조업이 약화되면서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 하락도 예상된다. 미국은 2030년 이전에 투기등급으로 국가 신용등급이 하락할 것으로 S&P는 전망하고 있다.

미국에서 제조업이 약화된 본질적 이유는 미국이 세계의 헤게모니 국가라는 점이 가장 큰 원인이다. 세계의 헤게모니 국가는 당연히 세계 최고의 생활수준을 갖는다. 따라서 물가와 인건비도 세계에서 가장 높다. 모든 것이 비싼 미국에서 물건을 생산한다면 당연히 국제경쟁력이 약화된다.

그래서 미국은 1960년대 초반부터 독일과 일본에 진출해 생산기지로 삼았다. 이후 독일과 일본이 급성장하자 한국·대만 등 동아시아로 생산기지를 옮겼고, 지금은 중국을 비롯한 BRICs(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지역으로 이동 중이다.
백인들의 이공계 기피 현상

1960년대 미국 민간 노동력의 30% 이상은 노조에 가입되어 있었다. 이는 오늘날 기준으로 약 3배에 달하는 수치다. 당시 철강이나 자동차 같은 대규모 제조업 근로자들은 실질적으로 모두 강성 노조에 가입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노조를 설득하기보다 무마하는 전략을 취했다. 다양한 사회보장 제도를 도입하거나 강경 탄압을 병행해서 노조 활동을 무마시켰던 것이다.

1950년대 최초로 확정급여형(DB) 연금을 정착시킨 GM이 경영위기에 빠진 것도 지나치게 많은 퇴직자 연금 부담 때문이다. 이 제도의 맹점은 추가로 임직원 숫자가 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해당 연금과 지급 책임이 있는 기업은 파산이 불가피하다. 마치 한국의 국민연금이 2047년께 인구 감소로 파산위기에 처한 것과 동일한 상황이다.

급기야 통신 업체인 버라이존은 올 초 노조 가입 대상이 아닌 간부직원 5만 명에 대해 연금 지급을 중단했다. IBM·휼렛패커드·모토롤라 등 세계적 기업들이 신입사원에 한해 연금 지급을 중단키로 결정했다. 인건비 상승과 기업의 지나친 연금 부담, 비싼 물가 수준 등이 미국 제조업의 경쟁력을 구조적으로 약화시키고 있다.

요즘 거론되고 있는 이공계 위기론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산업구조가 금융 등 서비스업에 집중되면서 따분하고 힘든 이공계를 기피하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백인들의 이공계 기피현상이 심한데, 미국의 과학자 중 이민자와 유색인종의 비율이 급상승하면서 (미국 입장에서 볼 때는) 과학기술의 안정성이 낮아지고 있다.

합법적 이민자 중 대학 교육을 마친 사람은 21%에 이른다. 하지만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 중 대학 교육을 마친 사람은 8%밖에 되지 않는다. 미국으로 이주하는 아시아계는 모국에서 학업 성적이 최상위권에 드는 ‘스타’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 귀국할지 모른다. 외국인들이 미국의 산업현장을 누빈다는 사실은 미국이 조금만 어려워져도 중요 산업이 흔들릴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최근 중국은 해외 석학 1000명을 교수 요원으로 채용하는 ‘111’계획을 발표했다. 우선적인 영입 대상이 미국에 있는 화교 교수일 것은 뻔하다.

미국 경제의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제조업이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노동생산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확실히 미국의 노동생산성은 유럽에 비해 높았다. 미국 노동부 분석에 따르면 미국이 높은 노동생산성을 보였던 것은 숙련도 증가와 같은 노동력의 질적인 개선이 아니었다.

생산 과정에 사람보다 기계화 등 자동화 투자를 늘린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밝히고 있다. 1995년부터 2003년까지 미국의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연평균 3.1%에 달했다. 그러나 노동생산성 증가율을 분석해 보면 자본 심화(자동화 투자)가 1.75%, 총요소 생산성 증대가 1.14%, 그리고 노동의 질 향상은 0.17%에 불과한 실정이다.

한계에 부딪힌 생산성 증가

업종별로 봐도 실정은 비슷하다. 1990년대 이후 미국의 생산성 향상은 음식료와 같은 서비스 산업에 IT 기술과 혁신적 경영기법을 도입한 것에 바탕을 두고 있다. 맥도널드나 KFC 매장의 주방은 과거의 음식점과 달리 거의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에서 음식을 만들고, 손님은 기계처럼 식사한다. 문제는 향후 서비스 산업도 점점 포화 상태에 돌입하면서 추가적인 생산성 향상 가능성이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제조업이 약화되면서 미국 경제의 서비스 경제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의 산업구조는 79%가 서비스 산업이다. 다른 선진국들이 70% 내외임을 감안하면 미국의 서비스 산업 비중은 지나치게 크다. 서비스 업종은 자동화가 어렵고 다른 나라로 수출하기도 어렵다.

제조업의 약화는 주요 소비재의 해외 수입을 확대시키고 있다. 경상수지 적자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원인 중의 하나다. 하지만 레이건 이후 집권한 정권들은 내수 부양으로 경기를 부양하는 정책을 반복적으로 구사, 정부나 민간 모두 엄청난 부채에 시달리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이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에서 탈피하는 방법은 없을까? 있다. 가장 원론적인 방법은 대외 무역을 통해 무역 흑자를 달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인들의 지나치게 높은 소비 성향과 제조업이 약한 산업구조 때문에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해소는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 따르면 세계 경제 전체가 연간 1%포인트 성장하면 미국의 수출도 동일하게 1% 늘어난다. 그러나 수입은 무려 1.7%나 늘어난다. 미국인은 경제가 좋아진 정도보다 약 70%나 초과 소비하기 때문이다.

이런 특이한 현상이 나타나는 국가는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미국뿐이다. 한국 등 대부분의 국가는 세계 경제 성장률이 높아지면 당연히 수출이 크게 늘면서 국내 경제도 호전된다. 그러나 미국은 경제가 성장할수록 오히려 부채(경상수지 적자)가 늘어나는 모순적 구조에 빠져 있다.

▶미국은 제조업 대신 금융과 저작권이 포함된 비제조업을 강력하게 육성하고 있다. 사진은 전 세계의 축제가 된 아카데미 시상식. 올 3월 제78회 시상식에서는 영화 ‘앙코르’의 리스 위더스푼이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절대로 파산하지 않는 비밀

좀 과격한 말이지만 이런 지경이라면 당연히 미국은 파산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은 생생하다. 그 비밀은 미국이 제조업을 포기하는 대신 세 가지 융합 전략을 효과적으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미국이 존재할 수 있는 첫 번째 이유는 전 세계 금융산업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군수산업과 일부 첨단산업을 제외한 제조업에 한해 미국은 여타 국가의 추월을 허용한다. 하지만 금융산업만큼은 철저히 보호한다. 유럽 등 일부 국가의 헤지펀드 규제 움직임에 미국이 초강경 태세로 대응하는 것은 경제의 혈맥인 금융산업을 장악해 달러와 미국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일본·중국·유럽 은행들의 지분을 인수하면서 세계 경제의 기본 틀을 미국 중심으로 만들고 있다.

둘째는 미국 기업들을 세계 최강으로 만드는 것이다. 미국 내에 공장을 짓지 않지만 해외 아웃소싱을 통해 중국 등 세계 도처에 공장을 가지고 있다. 세계적 수준의 미국 제조업체들은 해외에서의 생산 비중이 50%를 넘는다. 이 결과 미국 정부와 소비자는 빚더미에 쌓여 있지만 미국 기업은 엄청난 이익을 거둔다.

신경제와 세계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21세기 들어 미국 기업의 이익은 매년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 중에 있다. 또한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된 대형 기업(S&P 500 기준)의 경우 1994년부터 지금까지 16년간 평균 자기자본이익률(ROE)이 무려 15%나 된다. 이렇게 미국 기업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이익률을 보이면서 미국과 달러의 안전판 역할을 한다.

셋째 비결은 강력한 비제조업이다. 미국은 생명공학, 영화, IT 소프트웨어, 패스트푸드, 항공·우주 산업에서 높은 경쟁력을 갖고 있다. 여기에는 공통적인 특징이 하나 있다. 지적재산권이라는 진입장벽이 있다는 점이다. 현재 한국과 미국의 FTA 협상 쟁점은 의약품·영화시장, 그리고 농산물이다.

모두 미국이 가장 높은 경쟁력을 갖고 있는 산업이다. 지적재산권은 한 번 취득할 경우 그 권리가 장기간 지속되고, 지적재산권의 판매로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 한국에서 생산되는 세계 최고급 휴대전화는 원천 기술을 개발한 미국 퀄컴사에 1년에 약 3000억원씩 특허 사용료를 지불한다.

이런 세 가지 전략이 성공하기 위한 전제 조건은 완벽한 수준의 세계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미국 기업이 자유롭게 전 세계를 활보하면서 마진이 큰 서비스업과 지적소유권을 유지할 수 있다면 미국은 제조업 없이도 충분히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

이런 3중 융합 전략에도 불구하고 제조업이 약한 미국 경제는 건강하지 않다. 미국의 가장 큰 자랑인 지적재산권은 언제든지 복사가 가능하다. 할리우드 영화도 2~3일이 지나면 즉시 복사판 DVD나 CD가 유포된다. IT 소프트웨어나 미국이 엄청난 투자비를 들인 신약도 며칠 안 가 복제 소프트웨어나 유사한 성분의 대체 약물이 판매된다. ‘반지의 제왕’이건 ‘다빈치 코드’건 개봉된 영화는 서울이나 중국 상하이의 길거리에서 1만원에 3~4개씩 살 수 있다.

어디 이뿐인가. 할리우드의 메이저 스튜디오는 프랑스와 일본이 소유하고 있다. 세계 5대 음반 회사 중 4곳은 미국 소유가 아니다. 미국에서 가장 큰 출판사는 독일인이 소유하고 있고, 일본 바깥에 있는 스시 판매점 수가 미국 바깥에 있는 맥도널드 매장 수보다 많다.

더 재미있는 현상은 미국 기업이 해외 아웃소싱에 매달리는 사이 해외 기업들이 미국 내에 위치한 기업들을 마구 사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중국이 미국의 정유 업체를 인수하려 할 때 미국 보수층이 국가 전략산업마저 넘겨줄 수 없다는 정치적 논쟁으로 비화되어 결국 무산시킨 사례가 대표적이다.

FTA를 고집하는 이유

하지만 미국은 이 세 전략을 고수하기 위해 어떤 일이든지 한다. 2004년 미국의 컨설팅 기업 직원이 쓴 『경제저격수의 고백』이란 책자가 주목받은 적이 있다. 다소 음모론적 시각이지만 미국 자본이 남미나 아시아의 일부 후진국 경제를 흔들어 폭리를 취하는 과정을 수기 형식으로 소개한 책이다. 저자는 기득권 계층의 방해로 책을 출간하기도 어려웠고, 때로는 생명에 위협을 느낀다고 밝히고 있는데, 어쨌든 이 책은 미국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은 수시로 무역장벽을 강력하게 친다. 섬유·철강·자동차·반도체 등 업종 구분 없이 미국에 물건을 수출하려면 규제가 심하다. 반대로 미국이 강점이 있는 영화·의약품·군수물자에 대해서는 언제나 시장 개방을 요구한다. 세계화의 기준으로 추진되던 다자간 무역협상인 도하 개발 어젠다(DDA)가 실시될 경우 제조업 경쟁력이 취약한 미국은 가장 버티기 어려운 국가가 된다.

DDA는 전 세계 모든 국가 간의 무역규칙을 제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정한 경쟁을 하면 미국에 공장이 있는 기업은 경쟁에서 승리하기 어렵다. 또한 2000년 기준 부가가치 생산액이 2500억 달러에 불과한 농업을 보호하기 위해 무역협상 과정에서 미국은 제조업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왜냐하면 현재 미국에는 다 합쳐도 인구가 캘리포니아주 한 곳의 인구에도 못 미치는 주가 25개나 존재한다. 이 25개주 50명의 상원의원이 미국 농부의 복지를 책임진다. 반면 제조업이 발달한 캘리포니아에서는 그만큼의 인구를 2명의 상원의원만이 대표한다. 그래서 미국은 농산물 시장 개방을 항상 강력하게 요구할 수밖에 없다.

이런 한계 때문에 미국은 여러 나라와 서로 다른 조건하에 자유무역협정을 맺고 있다. FTA가 바로 그것이다. 전 세계가 공통의 무역규칙을 만든다면 모두가 편리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 내 제조업의 약화로 미국은 공정경쟁을 하기 어려워졌다. 실질적으로 봐도 수출할 물품이 별로 없다.

따라서 세계가 모여 보편적 규칙을 만들 경우 미국 내 제조업은 추가로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따로따로 만난다. 1대1로 만나서 상대방의 약점을 들춰야만 미국의 이해를 지킬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한·미 FTA는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취약한 제조업 때문에 미국은 갈수록 경제논리보다는 미국만의 이기심으로 다른 나라를 대할 것이다. 미국의 제조업이 취약한 것은 미국 경제의 위기이자 세계와 한국의 위기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인의 과소비는 어느 정도일까

세계 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뭘까? 가장 큰 문제느 미국인의 소비다. 미국인은 경제력에 비해 지나친 소비를 한다. 개인은 물론 정부도 마찬가지다. 개인은 저축 없이 자신의 연간 소득 대비 무려 130%나 되는 빚을 지고 있고, 정부의 누적 재정수지 적자는 현재 4조 달러를 넘었다.

미국은 유가가 오르거나 환율이 절하되어도 소비가 줄지 않는다. 과소비를 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사회가 만들어져 있는데다 미국인들의 생활 패턴도 절약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미국 영화를 보면 은행 대출 이야기가 단골로 나온다).

미국의 주택은 거의 단독주택이다. 약 9000만채 이상으로 추정되는 단독주택은 대부분 목조 건물이면서 난방은 대부분 경유 보일러에 의존한다. 뜰 앞의 잔디를 키우기 위해서는 물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평균 출퇴근 거리는 세계에서 가장 멀고 거의 1인당 1대씩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다. 이 결과 전 세계 휘발유의 6분의 1을 미국이 소비한다. 기정에서 사용되는 전지 전압도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220V를 사용하지만 미국만 아직도 110V다. 축구를 제외한 모든 프로스포츠는 미국 시장이 가장 크다.

미국이 경상수지 적자의 악순환에서 탈피하는 방법은 없을까? 크게 네 가지로 상상해볼 수 있다. 먼저 과소비 지향적인 미국인의 생활방식을 통째로 바꾸는 방법, 둘째로는 거칠고 힘들며 인건비가 싼 제조업을 부활시키는 방법, 셋째로는 미국인이 스스로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는 방법, 마지막으로 군사비와 사회보ㅇ장 비용을 대폭 삭감해 재정적자를 줄이는 방법이다.

문제느 어느 것 하나 만만치 않다는 사실이다. 미국인의 생활방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의식 전환뿐 아니라 대중교통 수단 마련 등 투자 배용이 엄청나다. 제조업 부활이나 저축률 증대는 미국인 스스로 가치관이 변하지 않는 한 기대하기 어렵다. 군사비를 줄일 경우 미국의 헤게모니가 붕괴되면서 달러가치는 급락할 가능성이 높고, 사회보장비용 축소를 추진할 정치 세력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다. 소비의 질곡에 빠진 미국발(發) 세계의 비극인 셈이다.

 

[미국 경제의 비밀 ③] 세계 지배하는 ‘달러의 힘’

엄청난 경상·재정 적자에도 끄떡없어…해외서 자금 흡수해 국제수지 맞춰

기업이나 가정에서 부도가 나는 것은 버는 것보다 빚이 많을 때다. 빚이 많아서 이자마저 갚지 못할 경우 개인은 신용불량자가 되고 기업은 부도를 맞는다. 국가라고 다르지 않다. 국민의 씀씀이가 헤퍼져 빚이 늘어나면 해외에 자산을 매각하거나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자금 여유가 있는 나라에서 돈을 구걸해야 한다. 한국도 불과 9년 전 외환위기라는 치욕을 맛보면서 전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맸고, 많은 자산이 헐값으로 해외자본에 넘어갔다.

1996년 한국은 143억 달러의 경상수지 적자가 나면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4%를 넘어서자 곧바로 다음해 외환위기에 빠졌다. 이런 상황은 정도의 차이일 뿐 여타 동아시아 국가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1996년 GDP 대비 경상수지 적자로 볼 때 태국은 7.9%, 인도네시아는 2.9%를 기록하면서 이들 국가는 한국보다 먼저 외환위기에 빠져 IMF의 가혹한 처방을 받았다. 멕시코·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지역뿐 아니라 스웨덴·핀란드와 같은 선진국들도 해외 빚 때문에 한국과 유사한 외환위기를 겪었다.

하지만 예외인 나라가 있다. 미국은 최근 4년 연속 GDP 대비 경상수지 적자가 4%를 넘었고, IMF 전망에 따르면 올해와 내년에는 6.5%를 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외환위기 당시의 한국보다 훨씬 심각한 것이다. 그러나 외환위기는커녕 오히려 높은 고성장이 장기간 지속되고 있다. 왜 그럴까? 왜 미국만 예외인가?

왜 미국만 예외인가

경제 논리상 경상수지 적자가 커지면 자국 화폐 가치가 하락한다. 그리고 부족한 만큼의 외자를 수혈받아야 한다. 그러나 세계에서 경상수지 적자가 가장 큰 미국만은 외환위기가 발생하지 않는다. 2005년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약 8000억 달러이며 그동안 쌓인 누적 경상수지 적자는 무려 5조3000억 달러다. 이는 2005년 말 기준 GDP 12조5000억 달러의 42%에 이른다. 이 얘기는 미국이 빚을 전부 갚으려면 1년 중 5개월은 생산만 하고 전혀 소비하지 않아야 갚을 수 있다는 말과 같다. 올해에도 8000억 달러의 경상수지 적자가 발생하면 내년에는 한 해의 절반인 6개월간 생산만 해야 빚을 갚을 수 있다.

이상하지 않은가? 왜 미국은 엄청난 경상수지 적자에도 끄덕 없는가? 더구나 달러 가치에도 큰 변화가 없다. 바로 이 현상을 규명하는 것이 미국을 제대로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다.

미래학자인 레스터 서로는 이에 대해 미국이 지나친 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세계가 1년에 4% 성장한다면, 미국은 경상수지 균형을 맞추기 위해 영원히 연 3%만 성장해야 한다. ‘영원히’라는 말을 강조하고 싶다.” 여기서 ‘영원히’는 세계 평균보다 매년 1%포인트 적게 성장해도 경상수지 적자를 갚을 수 없다는 의미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 시절부터 미국 혼자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졌다. 이렇게 경상수지 문제가 치유 불가능의 상태에 돌입하고 있는데 이를 다른 용어로 ‘글로벌 불균형’이라고 한다.

이상한 것은 이런 어려운 상태에서도 달러 가치가 지켜지는데다, 자금이 미국으로 몰려들고 있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간단한 답은 미국 이외 국가들이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를 메워 주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외환위기 당시 한국이 해외에서 자금을 조달해 외환위기에서 탈출했듯이 미국도 끊임없이 해외에서 자금을 흡수해 국제수지 균형을 이루고 있다.

어떻게 자금을 흡수할까? 2004년 서머스 전 미국 재무부 장관은 이 자금 흡수 과정을 ‘신비로운 길’을 통해 이루어지는 ‘공포의 균형’으로 표현했다. 그런데 정말 신비로운 것은 미국으로 자금이 흘러들어가는 것이 별다른 정책이나 미국의 강요가 없는 상태에서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전 세계의 ‘자진 납세’ 현상

<그림: 신비로운 길의 흐름도>를 보자. 제조업이 약한 미국은 공산품과 원자재를 대규모로 수입할 때 그 대가로 달러를 지불한다(기초 자본순환). 수출대금으로 달러를 받은 국가에서는 달러가 쌓일 것이고, 이들 국가는 이런 여유 달러로 미국의 예금이나 국채, 그리고 주식을 매수한다. 중동이나 유럽 국가처럼 미국과의 무역 비중이 작은 국가들도 외환보유액을 미국에 투자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자동으로 해결됨과 동시에 자금까지 풍부해지는 역설적 현상이 발생한다.


자금이 풍부해진 미국 경제는 과소비를 통해 고성장을 이룬다. 그리고 일부 자금은 다시 미국 이외 국가의 주식·채권이나 원자재 등 다양한 자산에 재투자된다(2차 자본순환). 이것이 바로 ‘신비로운 길’이다. 미국 이외 국가나 개인 간의 상거래에서는 이런 현상이 발생하지 않는다. 경제력보다 더 많이 소비하지만 부족한 자금을 공산품을 수출한 국가가 대신 갚아 주고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미국의 입장에서는 정말 신비롭다.

얼마나 경이로운(?) 현상인지 현재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인 시니어 부시 전 대통령조차 이를 주술(Voodoo) 경제학이라고 평했을 정도다. 그러나 이 신비로운 길이 무너지면 세계는 대재앙을 맞을 수밖에 없다. 미국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런 국제자본 흐름의 균형을 ‘공포의 균형’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기업이 부도 위기를 맞을 경우 오히려 은행 등 채권단에 큰소리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빚 독촉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내가 부도가 나면 당신 은행도 안전할 수 없다’고 협박하기도 하고, 때로는 추가로 자금을 빌려주면 자력갱생하겠다고 호소하기도 한다.

이렇게 적반하장을 할 수 있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우선 부도 위기에 있는 기업이 매우 커야 하며 부채도 엄청나야 한다. 부도가 날 경우 채권단의 타격도 커야 한다. 현재의 미국이 바로 그런 상황이다. 올해 말이 되면 누적 경상수지 적자가 6조 달러를 넘긴다는 것은 엄청난 부채공화국이라는 의미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큰 목소리를 내고 있다. 중국 등 대미 무역흑자국에는 환율 절상 압력을 넣기도 하고, FTA 협상에서 보여주듯이 농산물이나 영화시장 개방을 강요한다. 묘한 것은 대개 이런 나라들은 달러를 대규모로 보유한 미국의 채권국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미국 앞에서는 고개를 떨군다.

세계 경제 세 가지 장악 비결

미국은 이런 상황에서도 외환위기를 겪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국제수지 균형을 이룬 유럽보다 더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2000년 이후 미국은 연평균 2.6% 성장했지만 선진 유럽연합(EU) 지역은 1.8%, 일본은 1.7% 성장에 그쳤다. 실업률에서도 미국은 4.8%에 불과하지만 독일은 10.6%, 프랑스는 8.9%나 된다. 같은 기간 중 유가는 3배 올랐고, 미국은 9·11테러를 겪었고 이라크 전쟁을 치르고 있다. 왜 부채투성이의 미국은 건재한 것일까?

첫째 이유는 미국이 여타 국가에 비해 너무 강하다는 현실에서 출발한다. 미국이 강하기 때문에 달러도 강하다. 물론 미국이 해외에 진 빚, 즉 누적 경상수지 적자 6조 달러를 한꺼번에 갚으라고 한다면 미국은 바로 외환위기에 빠진다. 그러나 지금 달러는 전 세계 공용 화폐다. 달러는 남대문 시장뿐 아니라 북한, 태국의 푸껫, 중국의 오지에서도 자국 화폐와 동일하거나 오히려 높은 대접을 받는다. 이를 기축통화 효과, 일명 세뇨리지(seigniorage) 효과라고 한다. 달러가 기축통화이기 때문에 전 세계 모든 상거래는 달러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금융거래뿐 아니라 원자재 가격이나 많은 통계도 달러 기준으로 작성된다.

이런 현실은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해도 달러 가치를 지키는 일을 우선시하게 만든다.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했을 때 대부분 대량살상무기(WMD)나 원유 때문에 이라크를 공격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이라크가 수출 원유 대금 결제를 달러가 아닌 유로화로 전환하려는 시도를 한 것도 큰 배경이었다. 달러가 기축통화 역할을 수행하는 한 달러는 가장 안전한 통화가 된다.

자본시장이 개방된 국가 금융기관의 외국인 지분율은 매우 높다. 한국에서는 불과 8년 만에 상장 시중은행 소유권의 70%가 해외투자가에게 넘어갔다. 일본과 중국도 금융기관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규모로 해외 자금이 출자되고 있다. 유럽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 결과 대부분의 나라에서 주식시장 전체의 외국인 지분보다 금융기관의 외국인 지분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 시장 전체의 외국인 지분율은 40%이지만 은행은 70%다.

이런 현상은 금융기관의 세계화 움직임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은행을 매수하는 외국인 투자가들이 미국계 금융기관을 경유해 투자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익숙한 골드먼 삭스, 모건스탠리 등 대형 투자은행뿐 아니라 론스타 등 사모펀드가 바로 은행을 매수하는 해외 자금의 정체다. 그렇다면 이 외국인 투자가들의 국적은 어디일까. 이에 대한 통계는 불분명하지만 이들이 미국과 달러 가치의 안정에 기여하는 것은 분명하다.

근거는 있다. 이들 금융기관의 본점 소재지는 미국이다. 모든 회계 처리와 재무제표는 미국의 회계 기준을 따른다. 이 금융기관에 투자한 투자가들은 달러를 기준으로 경영상태를 평가한다. 또한 운용자산도 대부분 기축통화인 달러로 표시된다. 이런 현상은 달러가 기축통화이기 때문에 당연한 현상이다. 따라서 달러 가치의 급변동은 이들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단순한 손실이 아니라 경영상 최대 위협이 된다. 또한 글로벌 금융기관에 투자하는 투자가들도 주식을 중심으로 자산을 운용하는 미국의 기업이나 개인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이런 인과관계 때문에 글로벌 금융기관들은 미국의 영향권에서 달러 방어의 첨병 역할을 수행할 수밖에 없다. 실질적으로 미국은 전 세계 금융기관을 지배하고 있다. 이것이 둘째 이유다.

▶세계화의 토대이자 매개체인 달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달러가 출렁거리면 세계 경제가 들썩거린다.

셋째는 미국과의 무역에서 엄청난 흑자를 기록한 국가들이 풍부한 외환보유액을 미국의 국채 등 달러 자산에 투자한다는 점이다. 특히 동아시아 국가들에서 이런 현상이 매우 심한데, 미국과 환율 전쟁 중인 중국의 경우 미국 국채를 6353억 달러를 보유하고 있다(2006년 상반기 현재). 또 중동 국가들은 원유 수출대금인 오일머니를 대부분 유럽계 은행에 예금한다. 그러나 유럽계 은행은 유럽에 마땅한 투자처가 없기 때문에 오일머니를 미국의 달러 표시 자산에 투자한다. 지난해 말 기준 7대 원유 수출국의 해외 증권투자는 3431억 달러나 된다. 결과적으로 오일머니는 미국 국채에 투자되어 미국의 외환위기를 막아주는 데 일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금 흐름에서 비극적인 아이러니가 탄생한다. 신비로운 길을 통해 중동의 원유 수출 대금이 미국 국채 매수에 사용된 결과, 중동 자금이 미국의 이라크 전비를 일부 대주는 ‘이상한 구도’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런 구조 때문에 달러 가치의 하락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자산 가격의 폭락 위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세계 경제가 달러를 매개로 미국계 금융기관이라는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적 상황을 감안해 미국의 누적 경상수지 적자는 ‘글로벌 유동성’이라는 긍정적 의미로 명칭이 바뀌었다. 미국이 초과 소비한 결과물인 글로벌 유동성이 미국에서 외환위기를 방어하는 셈이다.

中 인민은행 총재의 무례

2005년 2월 22일 일부 언론에 한국은행이 외환보유액을 다변화할 것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이 보도가 나가자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외환시장은 크게 출렁이면서 달러 가치가 급락했다. 당황한 한국은행은 다음날 급히 이를 부인했고 달러 자산 보유를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계 자본시장에서 ‘BOK(한국은행) 쇼크’라고 불린 사건이었다. 같은 시기 일본의 고이즈미 당시 총리가 “외환보유액의 국가별 통화 비중을 다각화해야 한다”고 언급하자 일본 재무성이 총리의 발언을 즉각 부인하는 이상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두 해프닝은 하나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강력한 달러의 위상에 뭔가 이상한 조짐이 나타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었다는 점이다. 세계의 기축통화인 달러가 한국은행 관계자의 말 한마디에 가치가 급락했기 때문이다. 달러 가치가 약해진 것은 역시 누적 경상수지 적자 규모가 너무 많고, 부족한 자금을 동아시아 특정 국가들이 메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아시아 주요 국가의 외환보유액은 2006년 7월 현재 중국 9411억 달러, 일본 8719억 달러, 한국 2257억 달러, 대만 2604억 달러 등 총 2조7192억 달러이고, 4개국이 보유한 미국 국채는 1조1000억 달러다. 따라서 동아시아 국가들이 일거에 미국의 국채를 내다 팔면 미국은 바로 공황 상태에 빠질 수 있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미국의 외환위기를 막아주고 있는 셈이다.

미국은 수시로 중국에 대해 위안화 평가절상을 요구한다. 그러나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올해 가질 거의 1조 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중국 압박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미국이 위안화 절상을 요구하면 중국은 외환보유액 중 달러 비중을 줄이겠다고 간접적으로 위협한다. 달러 대신 금(金)으로 외환보유액을 유지하려는 시도를 숨기지 않는다. 이미 중국의 외환보유액 중 달러 자산 비중은 2004년 82%에서 현재는 70%대 초반으로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지난해 중국의 인민은행 총재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다보스 포럼에서 미국의 통화 절상 압력에 대해 ‘당신들이나 잘하세요’라는 무례한 언사를 했지만 미국은 무대응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화 덫에 걸렸나

이런 모순된 상황은 세계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높이고 있다. 조그만 충격에도 달러 가치가 요동친다. 과거에는 중동 정세가 불안해지면 안정 통화인 달러 가치가 상승했지만 지금은 거의 영향이 없거나 때로는 약세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 유가가 오르면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더욱 늘어날 것이고 이 결과 미국 경제가 어려워진다면 달러 약세가 불가피해지기 때문이다.

최근 2년간 미국이 17회에 걸쳐 정책금리를 인상했지만 미국인들은 해외자산 투자를 늘렸다. 미국의 투자가들은 BRICs 등 이머징 마켓, 10여 년의 구조조정 후 경기 회복세가 뚜렷한 일본이나 독일 등 미국 이외 지역으로 투자처를 늘리고 있다. 반면 미국과의 무역에서 대규모 흑자를 기록했던 동아시아 국가들과 중동의 오일머니만이 미국 투자를 늘렸다. 미국인의 해외 투자가 늘어갈수록 달러 방어는 힘들어진다.

하지만 현명한(?) 미국 투자가들은 달러를 회피하기 시작하는 모습이다. 그래서 약 3조 달러 이상으로 추정되는 미국의 해외 투자자산이 미국으로 회귀할 것인가의 여부가 미국의 운명을 좌우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이나 미국 최고의 경제 분석가인 스티븐 로치도 달러 약세에 베팅하고 있다.

이것은 일종의 아이러니다. 국경 없는 자본주의, 다시 말해 자금 흐름의 세계화가 정착되면서 표면적으로 미국이 글로벌 유동성을 조정하고 있지만, 정작 미국 내 투자가들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덫’에 걸린 것이다.

달러 가치의 안정 여부는 세계 경제의 최대 과제다. 언젠가는 이 ‘신비로운 길’이 무너질 것이다. 미국은 물론 달러 중심의 경제구조를 가진 한국은 신비로운 길이 사라질 때 엄청난 혼란을 겪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위기는 몇 번의 조짐을 보인 후 일순간에 오는 것이 역사의 법칙이다. 당장 위기가 닥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10년 이후라는 긴 그림 속에서 보면 전조 증세는 벌써 여러 곳에서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에 집 사도 괜찮을까
한국뿐 아니라 경제가 발전한 선진국에서도 부동산 시장은 항상 골칫거리다. 너무 오를 경우 물가를 비롯한 경제에 부담을 주고 하락할 경우에는 소비가 급속히 줄어든다. 현재 한국은 개인 자산 중 부동산 비중이 83%로 추산된다. 독일이나 네덜란드도 70%를 넘었고, 미국도 60%나 된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주택 가격이 상승하는 구조에 싸여 있다. 연간 100만 명 이상의 이민자, 베이비붐 세대(1945~1955) 자녀들의 결혼 적령기 진입 같은 인구구조적 특성, 높은 이혼율과 단독 가구의 증가, 그리고 전 세계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결과 다양한 비즈니스 기회를 얻기 위한 수요들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주택의 평균 건평은 약 2300평방피트(약 64평)다. 프랑스 주택은 평균 946평방피트(26.4평), 독일 932평방피트(26평), 스페인 917평방피트(25.6평)에 비해 훨씬 크다. 공공 임대주택을 선호하는 유럽에 비해 미국은 자가 주택을 선호해서다. 자가 주택 보유 비율은 미국이 전체 가구의 68%나 되지만 프랑스는 54%, 독일은 43%, 그리고 스위스는 30%에 불과하다.

미국인들은 다양한 주택금융 제도를 이용해 대부분의 주택은 융자로 구입한다. 평균적으로 주택가격에서 융자금의 비율은 70%를 넘는다. 따라서 금리가 올라가면 주택 가격이 하락하고, 반대로 금리가 내려가면 주택 수요가 늘어 가격도 상승한다. 21세기 이후 미국 주택 가격 상승 원인 중 저금리 현상도 큰 영향을 끼쳤다. 은행 융자로 평수를 넓히고 새로운 집을 짓고 있지만, 개인의 가처분 소득 대비 부채 부담은 사상 최고 수준인 130%다.

최근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서 미국 주택 가격 하락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눈덩이처럼 커지면서 장기적으로 달러 약세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주택 가격이 크게 올랐고, 대출금리 또한 오르고 있다. 이런 이유로 내년 초까지 미국의 주택경기는 세계 경제 흐름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다.

미국에서 주택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한다면 미국의 소비 감소와 수입 축소로 우리 경제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미국에 집을 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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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07.09.20 11:40

    첫댓글 무척 긴글이지만 한번쯤 읽어보면 좋을것같아 퍼왔습니다

  • 07.09.20 11:53

    감사합니다. 미국의 최첨단 무기는 금융업이지요. ㅎㅎ.

  • 07.09.20 13:21

    좋은글에 저도 모르게 다 읽어버렸네요..감사합니다...

  • 07.09.20 13:57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공부하게 되네요..^^

  • 07.09.20 18:28

    길지만 정말 재밌고 유익한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 07.09.20 19:10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 07.09.20 19:37

    좋은 글 감사합니다.

  • 07.09.20 21:33

    감사합니다.

  • 07.09.21 02:04

    이거 아침에 읽을 려다 못 읽었네요~~~~~!!..낼 오후 쯤이나 차분히 읽어 보렵니다~~~~~~!!지니 아빠님 감솨여~~~~~~~~

  • 07.09.21 10:15

    길지만 잘 읽고 갑니다 ^&^

  • 07.09.22 17:50

    잘읽엇습니다. 연재물이면 계속올려주세요

  • 07.09.23 22:13

    우와 너무 재밌게 잘 읽었어요. 이런 정보 정말 정말 너무 감사합니다.

  • 07.10.01 17:51

    정말 좋은 자료입니다....덕분에 경제공부 많이 했습니다....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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