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함,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인내로써 지켜내는 행위
네이버블로그 http://blog.naver.com/qhss9910/ 심연 (배철현 지음) - 착함
자립을 위한 첫째 조건은 편하고 익숙한 장소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그런 곳을 집이나 고향이라고 한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시작되기 직전 나는 집과 고향을 떠나 먼 곳으로의 여정을 시작했다. 비행기로 20여 시간을 날아 도착한 곳은 보스턴에 있는 하버드 디비너틱 스쿨(Harvard Divinity School).
이곳은 다양한 종교인들이 만나 서로를 이해하고, 자신이 선택한 종교에 대해 심오한 수련을 하는 곳이다. 그곳에서 나의 기나긴 유학 생활이 시작됐다.
내가 이곳에서 공부한 첫 번째 주제는 종교였다. 석사과정을 마친 뒤, 종교와 문명의 배경이 된 고대 언어에 매료된 나는 다시 셈족어와 인도―이란어 고전문헌학을 전공했다. 이때의 시간들은 나의 긴 학문 여정의 씨앗이 되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렇게 소중하게 매달렸던 오래된 자아를 유기할 수 있었던 혁명적 시간이었다.
1988년 가을부터 1989년 봄까지 미국의 석유 재벌 록펠러가 지어주었다는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나는 새로운 정신세계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새끼 거북이가 알을 깨고 나온 뒤 바다의 심연으로 들어가 미역 줄기로 연명하는 것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4층으로 된 기숙사는 한 층에 스무 명의 학생들이 거주했다. 중간에 부엌이 있어서 각자 식사를 해결하는 시스템이었고, 각층에는 화장실과 샤워실을 공유하는 네 개의 방이 붙어 있었다. 싫든 좋든 네 명이 한 해 동안 함께 살아보라는 학교 측의 숨은 의도였는지 모른다.
나와 함께 화장실과 샤워실을 공유한 친구들의 프로필은 이랬다. 우선 키가 2미터나 되는 흑인 ‘스탠리’는 미국인이며 한 대형 교회의 목사였고, 시카고 대학 티베트어 교수로 있다가 현재는 네팔의 국제 불교학교 원장으로 있는 ‘나왕 조르덴’은 티베트 출신 불교 라마승이었다. 그리고 현재 FBI 암호 해독가로 일하는 무신론자 ‘존’ 그리고 한국에서 다양한 종교를 접해보지도 못했고 배울 기회도 없었기에 종교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무식했던 내가 한 해 동안 함께할 운명의 네 남자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기숙사 생활은 종교와 삶에 대한 나의 시각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다. 당시 나의 목표는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학점으로 박사과정에 들어가는 것뿐, 그 외에는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는 이기적인 인간이었다. 이런 내가 난생 처음 보는 각양각색의 ‘다른’ 인간들과 한곳에 모여 생활하게 된 것이다.
종교가 다를 뿐만 아니라 종교가 업(業)인 사람들과 함께하는 생활은 가히 가관이었다. 저마다 자신이 믿는 신앙 체계가 우월하며 최고라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아침이면 모두 볼일을 보고 씻고 학교에 가야 하는데, 여럿이 사용하다 보니 화장실과 샤워실이 항상 복잡하고 더러웠다.
문제는 스탠리 목사였다. 그가 화장실과 샤워실을 사용하고 나면 상상할 수도 형용할 수도 없는 지독한 냄새가 났다. 얼마나 지독한지 두세 시간은 접근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더 힘든 것은 그런 화장실과 샤워실을 우리가 직접 청소까지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 지독한 곤경에서 빠져나갈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나는 나머지 세 명에게 기숙사 화장실과 샤워실을 사용하지 않고 학교 체육관 샤워실을 사용할 테니 대신 화장실 청소 당번에서 제외시켜달라고 통보했다. 어떻게든 그 상황을 피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던 나는 아침 일찍 학교 체육관에서 하루를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늦게 기숙사로 돌아와 화장실을 들여다본 나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화장실은 물론 샤워실까지 먼지 한 점 없이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었고, 향까지 피워져 있었다. 티베트에서 온 나왕 스님이 남모르게 청소를 하고 향까지 피워놓은 것이다.
그는 그때부터 1년간 수행하듯 묵묵히 화장실을 청소하고 향을 피웠다. 그런 그를 보면서 나는 붓다를 떠올렸다.
붓다의 가르침 중에 “도덕적으로 사는 것”이 “남을 위해 사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붓다에게는 그저 신비로운 종교 체험이나 금욕 생활 그리고 한계를 극복하는 자기 증명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해탈(解脫)을 경험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붓다는 히말라야 산맥에서 홀로 유유자적하는 삶, 즉 니르바나(Nirvana)의 상태에 거하지 않았다. 그는 땀내 나고 가난하고 북적이는 시장 바닥으로 돌아와 보통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자신뿐만 아니라 모두를 위한 헌신적인 삶을 살았다.
열반에 든 뒤로는 초월적 평화에 탐닉하는 영적 유혹에 빠질 뻔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내 유혹을 떨치고 길거리에 머물며 40년 동안 자신이 깨달은 바를 사람들에게 널리 알렸다.
인생의 최고의 가치는 자비(慈悲)다. 붓다는 상대방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는 마음, 상대방이 사랑하는 것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마음인 ‘자(慈)’와 상대방이 슬퍼할 때 함께 슬퍼할 수 있는 마음, 상대방이 슬퍼하지 않는 환경에 살 수 있도록 노력하는 마음인 ‘비(悲)’를 실천했다.
대승 불교에서 영웅은 ‘보디샤트바’, 즉 보살(菩薩)로 불린다. 보살이란 자비를 깨닫고 묵묵히 실천하는 존재다. 붓다는 깨달음의 직전에 열반의 희열 속으로 사라지기보다 세상의 고통, 그 고통의 한가운데로 돌아와 사람들과 함께 희로애락을 견디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 결정을 거침없이 행동으로 옮겼다.
이것이 붓다가 말한 ‘도덕적으로 사는 것’의 진정한 의미다. 도덕이란 지켜야 하는 율법이나 관습적 규칙이 아니다.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며 세상 고통의 한가운데서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다. 함께 희로애락을 경험하며 자기 삶의 의미와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가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왕 스님은 붓다의 가르침을 온몸으로 실천해보인 영웅적 존재였다.
마침내 한 해가 지나 기숙사에서 퇴거할 즈음이었다. 무신론자 존이 우리를 불러 앉혔다. 그는 스탠리 목사나 내가 믿는 종교를 ‘가짜’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자신은 무신론자이지만 종교를 갖게 된다면 티베트 불교를 택하겠다고 했다. 나왕 스님의 조용하고 ‘향기로운’ 행위의 결과였다.
존은 종교인이란 무엇을 믿고 주장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을 알아차려 집중하고 행동하는 자라고 말했다.
종교는 흔히 신념 체계로 잘못 알려져 있다. 많은 사람들이 믿음의 대상인 절대적 존재가 중요하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종교에서는 진정 무엇을 믿는지가 중요하지 않다. 믿음이란 자신의 삶에서 소중한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그 과정에서 습득한 행동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것이다.
성급하고 편협한 종교 간의 비교는 종교 간에 우열을 매기고 자기 종교의 기준에서 다른 종교를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기 십상이다.
‘다름’을 ‘참아주는 행위(톨레랑스)’는 이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경이라는 의미로 바뀌어야 한다. 한 종교만 옳다는 독단적인 주장은 지난 2000년 이상 면면히 흘러와 인류 역사를 형성시킨 종교 전체에 대한 모독이다. 종교마다 나름의 독특한 상징체계와 행동 양식이 존재한다. 이것들을 깊이 연구해보면 각각의 종교에서 지향하는 ‘길’은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착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토브(tob)’이다. 이 단어는 ‘선하다’라는 뜻과 ‘향기’라는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 ‘착한 사람’은 일반적으로 수동적인 의미가 강조되어 자신의 생각을 감추고 남의 의견에 동의하는 자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착한 사람’이 아니라 ‘멍청한 사람’이다. 토브를 지닌 사람은 자신이 의도하지 않아도 그의 생각과 행동에서 좋은 향기가 풍긴다.
착함이란 자신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고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찾아 인내로써 지켜내는 행위다. 그리고 ‘나는 향기로운 존재인가’를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연습하는 삶이다.
어느 날 나는 티베트 스님 나왕에게 왜 매일 혼자서 청소를 하는지 물었다. 그러자 그가 대답했다. “그냥 좋아서.” < ‘심연, 나를 깨우는 짧고 깊은 생각(배철현, 21세기북스, 2019)’에서 옮겨 적음. (2023. 3.11. 화룡이) >
첫댓글 스님의 말이 참 좋습니다
“그냥 좋아서.”
그냥 좋아서 일하고
공부하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그냥 좋아서!'
글 속에 묻혀 사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