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증인, 증인이 위원장이에요? 왜 위원장의 생각까지 재단하려고 그래요? 위원장은 그렇게 생각한다는데 위원장이 생각도 못 합니까? 어디서 그런 것을 배웠어요? 위원장이 진행하는 과정에서 ‘그렇게 생각이 된다’라는 생각을 임성근 증인에 맞춰서 생각을 고쳐먹어야 됩니까? 임성근 사단장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에요? 제가 보기에는 부끄럽고 비굴한 군인일 뿐이에요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국민들이 다 지켜보고 있는데 위원장 생각까지 재단하려 합니까. 사과하세요.”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저는 위원장님 생각까지 재단하지 않았습니다.”
정청래 “사과하세요”
임성근 “그렇게 느끼셨다면…”
정청래 “토 달지 말고 사과하세요”
임성근 “그렇게 느끼시도록 한 점에 대해서 사과드립니다”
정청래 “토 달지 말고 사과하세요”
(같은 대화 두 차례 반복)
정청래 “일어나세요. 10분간 퇴장하세요. 임성근 증인 때문에 진행을 할 수가 없어요.”
21일 국회에서 열린 22대 국회 첫 입법청문회의 한 장면입니다. 민주당 등 야당 법사위원들은 이날 국민의힘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야당 단독으로 ‘채 해병 특검법’ 입법청문회를 열었습니다.
정청래는 이날 청문회 초반부터 증인들에게 “답변에 따라 퇴거명령을 하겠다. 주의하시길 바란다. 그냥 집으로 가라고 하면 본인들 좋은 일이기 때문에 10분, 20분, 30분 단위로 퇴거 명령을 할 테니 밖에 나가서 성찰하고 오라는 뜻”이라고 엄포를 놓더니, 정말로 회의 내내 주요 증인들을 10분 단위로 번갈아 가며 내쫓았습니다.
학교 다닐 때 무섭던 학생주임 선생님이 떠오르더군요. 국회를 5년 출입하면서도 처음 보는 광경이었습니다.
저만 낯선가 했는데 국회 경력이 오래된 민주당 보좌진들도 “내쫓는 경우는 없었다”고 하더군요.
6월 21일 국회에서 열린 채 상병 특검법 입법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
더불어민주당 박지원 “퇴장하면 더 좋은 것 아니에요?”
정청래 “성찰하고 반성하는 의미입니다.”
박지원 “한 발 들고, 두 손 들고 서 있으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껄껄껄”
정청래 “그건 모르겠습니다. 제가 잠깐 말씀드리면, 우리 증인들 다 같은 대한민국 국민이고 가장일 수 있고 엄마일 수 있고 형님일 수 있고 아들일 수 있고, 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한 번쯤 채 해병 부모의 심정으로 한 번 돌아가서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중략)”
임성근 전 사단장에 이어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도 10분간 퇴정당한 뒤 박지원과 정청래가 주고받은 대화입니다. 청문회를 보면서 제가 느꼈던 불편함이 무엇인지를 정청래가 스스로 잘 설명해 주더군요.
그의 말마따나, 누군가에겐 역시 부모이고, 가족인 사람을, 무엇보다 같은 국민을, 심지어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이라 죄가 확정되지 않은 사안에 대해 저렇게 조리돌림하듯, 인민재판하듯 고압적으로 대해도 되는 겁니까.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6월 21일 채 상병 특검법 입법청문회에서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다. 이 전 장관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이날 증인선서를 거부했다.
정청래 “증인, 국어 모르십니까. 유죄 판결을 받을 사실이 드러날 염려가 있기 때문에 증언을 거부할 수 있다고 되어 있는데 그것 때문에 거부한다면 유죄 판결을 받을 사실이 드러날 염려가 있어서 증언을 거부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왜 그렇다고 답변을 못 합니까?”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 “위원장님, 증언 거부권은 법률에 의해서 인정되는 권리로 있습니다.”
정청래 “증인, 알고 있어요. 제가 다시 묻습니다. 유죄 판결을 받을 사실이 드러날 염려가 있는 경우에는 증언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이 조항 때문에 지금 증언을 거부하겠다고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지금 본인이 유죄 판결을 받을 사실이 드러날 염려가 있어서 증언을 거부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맞지 않습니까?”
김 사령관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고.”
정청래 “그렇기 때문에 받을 염려 유죄 판결을 받을 염려가 있어서 증언을 거부한다고 볼 수밖에 없는 거다, 이런 얘기예요.”
김 사령관 “오히려 위원장님께서 그렇게 위원장님께서 발언하시는 부분은 증언 거부권을 침해하고 진술을 강요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겠습니다.”
이날 밤 10시 넘어까지 약 12시간가량 진행된 청문회는 내내 이런 흐름으로 진행됐습니다.
보통 국회에서 청문회가 열리면 야당 의원들은 그 어느 때보다 “우리가 국민의 대표”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지금 국민을 무시하는 거냐”는 무적의 논리를 앞세워 출석한 주요 정부 관료들이나 증인들을 압박하는 거죠. 이미 잔뜩 위축된 증인들로선 이 논리에 맞서 싸우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같은 ‘국민의 대표’인 여당 의원들도 참석하는 거죠. 과도하다 싶을 때 여당 의원들이 발언 중간에라도 끼어들어 항의하고 반발하는 겁니다.
야당 의원들도 같은 동료 의원에겐 증인 대하듯 하진 못하거든요. 그렇게 자연스레 논리와 힘의 균형이 맞춰지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사실 민주당은 이번에 야당으로선 그냥 자기들 일을 한 겁니다. 민주당 일부 의원들의 태도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어쨌든 자기들 입장에선 국민 공분이 들끓는 채 상병 사건의 주요 증인들을 국회에 세워 적나라하게 따지고 든 거니까요.
지켜보기에도 민망하고 불편했던 청문회는 결국 국민의힘이 여당 역할을 전혀 못 한 탓인 겁니다.
국민의힘이 청문회장에 들어왔더라면, 정청래나 법사위원들의 과도한 공세에 “그건 지나친 억측”이라고 반발하고, 무례한 발언엔 “왜 갑질을 하냐”고 따져 물을 수 있었겠죠.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는 청문회로부터 이틀 뒤인 23일에야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증인에 대한 갑질, 조롱, 모욕 행위는 헌법에 따라 국회에 부여된 권한을 넘어서서 국회의 권능과 품위를 훼손하는 행위”라며 정청래에 대해 주의 및 경고 조치를 해달라고 요구했더군요.
청문회 당일 청문회장 밖에서라도 했어야 할 소리를 그나마도 주말인 토요일이 지나고서야 한 겁니다. 다 끝나고 하면 뭐합니까. 역시 웰빙 정당답습니다.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가 6월 23일 국회 의장실에서 열린 원 구성을 위한 양당 원내대표 회동에 참석해 우원식 국회의장(오른쪽)과 악수하고 있다.
요즘 대체 ‘여당’이 과연 존재하긴 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분들 많으실 겁니다.
국민의힘은 5월 30일 22대 국회가 개원한 뒤 지금까지 한 달 가까이 한 번도 국회 업무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민주당이 6월 5일 야당 단독으로 민주당 출신 우원식을 뽑고 10일엔 법사위 등 11개 상임위원장을 뽑아가는데도 보여주기식 규탄대회와 의원총회만 했을 뿐이죠.
민주당은 이미 22대 국회가 개원하기 전부터 저런 식으로 원 구성을 하겠다고 엄포를 이어왔습니다. ‘찐명’ 박찬대가 원내대표 선거에 출마하면서 “법제사법위원장과 운영위원장은 민주당이 확보하겠다”고 공약한 게 두 달 전, 4월 21일입니다. 국회의장 선거에서도 “법사위와 운영위는 민주당이 하는 게 맞다”는 후보들의 주장이 줄을 이었고요.
민주당이 정말 저럴 줄 몰라서 당한 거라면 국민의힘은 아직도 자신들의 상대를 너무 모르는 거고, 알고도 대책 없이 당한 거라면 정말 무능한 겁니다.
그렇게 11개 상임위를 눈앞에서 뺏기고도 국민의힘은 일주일 내내 답 없는 의총만 이어갔습니다. 의총을 통한 의원들의 의견 수렴도 중요하죠. 하지만 지금은 정치적 결단력이 더 필요한 순간입니다. 이럴 때 결정을 내리라고 원내지도부를 뽑는 거고요.
그런데도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는 19일에야 뒤늦게 “법사위원장과 운영위원장을 앞의 1년은 민주당이 맡고 1년 뒤 2년 차에는 국민의힘으로 돌려달라”고 제안했습니다. 고작 그런 제안을 할 거였으면 차라리 진즉 했어야죠.
그리고 민주당이 그걸 받을 사람들입니까. 당장 민주당 박찬대는 “향후 1년간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고 실천으로 신뢰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한다면 검토 가능하다”고 답했더군요. 거의 ‘알아서 기어 들어오라’는 수준입니다.
국민의힘 원내지도부가 대책 없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북한은 수차례 오물풍선을 날렸고, DMZ 군사분계선까지 침범했습니다. 러시아와는 대놓고 군사조약을 강화한다고 나섰고요. 하지만 국회에선 단 한 번의 국방위원회도, 외교통일위원회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민주당이 ‘여당 몫’이라며 위원장을 비워뒀기 때문이죠. 사실 국방위와 외통위는 성격상 여당이 챙기는 게 맞습니다. 그런데도 국민의힘은 ‘국회 보이콧’이란 명분 아래 자신들의 역할을 방기했던 겁니다.
계파색이 옅은 한 민주당 중진 의원은 “국회의원은 무조건 국회 안에서 싸우는 거다. 국민의힘 입장에선 불리하고, 부당해 보이겠지만 그래도 국회 안에서 계속 자기들의 주장을 펼치면 그게 조금씩 여론에도 반영이 된다. 저렇게 보이콧만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고 하더군요.
결국 추경호 원내대표는 오늘(24일) 오전 남은 7개 상임위를 수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국회가 개원한 지 약 한달 만이니, 많이 늦은 감이 있지만 그나마 다행입니다.
지금부터라도 국민의힘이 진정성 있게 여당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면 그 땐 여론이 지지해 줄 겁니다.
그게 소수여당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