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저 역시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전자회사의 기술직으로 근무를 하다 부모님의 끈질긴 설득으로 공무원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지요.
그러나 맡은 업무가 규제, 단속업무라 도저히 적성에 맞지않아 3년 6개월을 근무하고 과감하게 사표를 내게 됩니다.
남들은 그 좋은 자리를 왜 떠나느냐고 하였지만 영세업자를 단속하는 일과 판에 박힌 듯한 업무처리에 괴리감이 들기도 하였지요.
그러던 중 경기도 안양에 위치한 전파연구소(지금의 국립전파연구원)에서 모집공고가 나와 체신부에 원서를 접수하고 전송주사보(통신기술직 7급) 시험에 합격하여 발령을 받게 됩니다.
전공이 전파분야라 그리 어렵지 않게 근무를 하게 되었으며 전파연구소역시 규제기관이라 검정과 검정1계에서 형식검정 업무를 맡게 됩니다.
형식검정은 현재 "적합성평가"라는 말로 바뀌었지만 무선기기는 허가 전에 반드시 통과하여야 하는 국가공인 시험 절차 입니다.
즉 무선기기의 성능을 정부가 정한 기술기준에 의해 평가하고 보장받는 일종의 시건장치로 당시에는 전파연구소에서만 시험 및 검정합격증 발급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관련 산업이 점차 커지게 되고 대기업인 LG정보통신, LG전자, 삼성전자 등이 이 사업에 영역을 확대 할 당시였습니다.
이때에는 모토로라, 국제전자, 맥슨전자, 한창, 텔슨 등이 무전기와 코드없는 전화기 생산을 하는 정도여서 10여명의 직원 만으로도 시험, 검정이 가능하였습니다.
1990년대 중반 IT산업이 급물살을 타면서 관련 정보통신 산업은 급격하게 늘어나게 되고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 등지에 수출길이 열리게 되면서 더욱 IT시장은 커지게 됩니다.
특히 유선통신 위주였던 국내의 통신시장이 이동통신이 개방됨으로 인해 지금까지 모토로라에 의지하였던 2G 단말기를 우리가 직접 만들어 보자고 하여 LG정보통신 및 삼성전자가 이 시기에 단말기 사업 팀 및 연구소를 개설하게 됩니다.
그러나 형식검정을 받으려면 구미에서 안양까지 기지국 장비를 화물차에 싣고와야 했고 크기가 커 장비를 분해 한 후 시험실로 반입하여 다시 조립을 하는 등 불편한 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시험기간동안 담당직원은 안양에 출장을 와야 함은 물론이고 불합격 처분이라도 받게되면 회사로서의 타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전파연구소장 및 체신부 본부에 건의를 하였습니다. 제조사에서 직접 시험을 하고 이 성적서를 바탕으로 인증을 내어주자고요.
처음에는 그걸 어떻게 믿을 수 있냐고 반신반의 하였지만 대기업의 기술력과 인력구조가 공무원 조직보다 월등히 우수하며 장비 또한 좋다고 보고서를 작성하였습니다.
검토 끝에 드디어 승인이 떨어지고 자체 시험기관 지정을 내어주기 위한 점검목록, 품질문서, 제출받을 자료 등을 확정하여 무선분야 제1호 시험기관으로 현대전자(지금의 HCT)가 어렵게 지정이 됩니다.
그 이후로 대전에 위치한 한국이동통신주식회사(지금의 SKT), LG정보통신, 삼성전자 등이 자체시험기관으로 지정을 받게 됩니다. 이 당시 삼성전자는 LG정보통신 보다는 후발주자 였습니다.
이러한 연유로 하루는 LG정보통신 본사 사보 편집실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전파연구소 검정1계를 취재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날짜를 정하고 취재에 응하였는데 여성 기자분이 글 쓰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외모가 별로라 업무만 마치고 바로 돌려보내었습니다. 정녕 남자의 마음은 이런 것인가요?
그리하여 나온 기사가 아래의 사진과 같습니다.
당시 LG정보통신은 통신장비 즉 TDX 교환기, 무선기지국, 중계기 등을 만드는 회사였고 LG전자는 가전제품을 만드는 회사였습니다. 그러다 그룹 차원에서 2000년 9월 1일 LG전자로 합병이 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본사는 여의도 쌍둥이 빌딩에 있고 사업장은 구미에 있습니다.
한창 잘 나갈때는 구미사업장에 가보면 컨베어밸트가 쉴 틈없이 수출 물량을 쏟아내고 있었고 수많은 직원들이 조립 및 테스트 라인에서 밤낮으로 일하고 있어 정말 역동적인 때였다고 생각이 됩니다.
이 당시 같이 업무를 하였던 LG 분등의 이름을 기억해보면 이봉하, 진창현, 민성식, 주득원, 신종홍, 배근호 등인데 현재 국가공인시험기관 대표도 계시고 너무 열정적으로 일하시다 간암으로 돌아가신 분도 있습니다.
제가 직접 시험을 할 당시는 시험성적서를 수기로 작성하였고 지금은 이미 공소시효가 끝나서 하는 말인데 합격기준의 3dB 정도는 초과가 되어도 그냥 모른척하고 협의하여 넘어갔었습니다.
기업체 로써는 이 타이트한 기준을 맞추려면 필터나 패턴을 다시 바꾸고 추가로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들어가야 했기에 지금으로 봐서는 저도 한국의 정보통신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를 했다고 봐야 되겠지요.
구미사업장에 한번 실사를 가려면 당시 공무원 봉급으로 자가용은 어림도 없어 열차를 타야 했는데 1호선 전철의 마지막 역인 수원역까지 가서 무궁화호 열차로 동대구까지 가서 다시 통일호로 갈아타고 반대방향인 구미역으로 갔었습니다. 무궁화호는 구미역을 정차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이렇게 어렵게 다녔으며 하루에 다녀오는 것은 불가능 하였습니다.
LG정보통신 회사 차원에서는 크게 마음먹고 구미의 최고급 호텔을 숙소로 마련하여 주었으나 덩치만 커지 하도 낡아서 창문이 덜컹거리고 방음도 잘 안되었습니다.
그래도 이때는 정부와 기업이 어찌되었건 한국의 IT산업을 성장시켜보자고 노력을 하였고 그 결과 일본이라는 거대한 공룡을 따라잡는데 성공하였습니다.
(미국 STRATACOM 사의 CEO가 보낸 감사의 편지)
정보통신부 시절에 일본 총무성에 협의할 일이 있어 출장을 갔는데 일본의 공무원은 아무리 큰 기업의 직원이라도 만나주지를 않더군요. 오로지 문서로만 왔다갔다 하니 무슨 일이 제대로 되겠습니까?
지금까지도 일본의 고압적이고 권위적인 공무원들을 생각하면 일본의 앞날은 불을 보듯 뻔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신나게 전파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던 어느 날 관리과 서무계장이 저를 부릅니다. 가보니 지금 정보통신부 본부에 자리가 비었는데 기술적으로 잘 아는 사람을 추천해 달라고 하니 가볼 마음이 없냐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본부에 올라가면 승진은 초고속으로 될 테니 서기관 정도는 따논 당상인데 저는 싫다고 하였습니다. 본부라는 곳이 정책부서라 실제로 측정기를 만지고 실무하는 것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일을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타고나기를 전파 DNA가 뼈 속 깊이 박혀있는 저로써는 서류만 가지고 놀기에는 너무 아니다 싶어 거절을 하였더니 서무계장의 눈이 동그래집니다.
남들은 가고싶어도 못가는 본부를 단번에 거절하다니 이놈 참 특이한 놈이네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서기관 달고 퇴직 해봤자 뭐하겠나 싶어 참 잘했다 싶습니다. 퇴직하여도 불러주는 곳 있고 젊은 사람과 실무를 할 수 있는 것은 지금껏 실무형으로 살아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보통의 공무원은 순환보직 이라고 하여 3~4년 마다 업무를 옮기는데 저는 30년 근무하는 동안 승진 등을 위하여 한번도 기술과 관계없는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기술기준의 제정 및 개정, 전파환경특성연구, 전파간섭분석업무, 인증시험, 인증심사 등 골수 엔지니어로만 살았습니다.
그러다보니 강의, 출제, 심사, 기술평가 등에서 불러주더군요. 지금도 김영래 대표님이 이끄시는 KES 에서 전문위원으로 근무하고 있으니 국장 출신이 삼식이 하는 것 보다는 훨씬 나은 것 아닙니까?
(정보통신의 날 김대중 대통령 으로부터 받은 친서)
경남 창녕의 촌 구석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냈고, 컨베어밸트가 한창 돌아가던 산업화 시대에 전자 특성화 공고를 나왔으며, 운이 억세게 좋아 정보통신부 소속 기관에서 30년 간이나 전파관련 업무를 하였으며, 지금은 IoT, 5G, AI, 자율주행차, 빅데이터 등의 4차 산업 분야에 종사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인생에서 1,2,3,4차 산업을 다 경험 한 셈이지요.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시대에 나보다 잘난 사람은 엄청나게 많지만 전파라는 매체 하나로 살아온 인생이 결코 후회스럽지 않습니다. 아니 아주 재미있었고 앞으로의 인생 또한 전파와 함께 할 것입니다.
한국의 IT 역사에 있어 선두에 섰던 LG정보통신과의 인연을 깊이 생각하며 앞으로도 대한민국의 저력을 전 세계가 감히 넘볼 수 없도록 미력하나마 저 또한 그 일에 일조하고 싶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HL2VA 이정호 씀^^
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자료를 정리하는 차원에서 글을 써보았습니다.
늘 건강하십시오.^^
와우 .... 우리 멋쟁이 VA OM...
글 잘 읽었습니다...
멋진 인생 입니다.
홧 팅!!!
국장님 잘 지내시죠? 한번 뵙는다는 것이 쉽지를 않네요.
언제 억지로라도 시간내어 들러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제가 가지지 않은 많은것들을 가지고 계시기에 존경해 마지 않습니다.
공무원으로써 현역에 계실때 열심히 노력하신 흔적은 너무나도 크게 보입니다.
현재 까페에서는 자신을 최대한 낮추시어서 까페가족분들에게 봉사하시는
리얼 타임기자님으로 남아 있음에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
항상 건강하시고, 하시고자 하는일들이 늘~ 잘되어지시기를 바랍니다. ^^
예전 향수를 글로 옮겨보았습니다. 하지만 특별히 뭘 잘한 것은 없고요
저 정도의 공적이 없으신 분들도 없다고 봅니다.
베이비부머 시대에 태어나 치열하게 경쟁하며 살았지만 전파라는
매개체로 이때까지 살 수 있음에 감사하고 앞으로도 할 수 있다면
끝까지 전파라는 공통 분모를 가지고 살겠습니다.
항상 진솔한 격려를 아끼시지 않으시는 방장님께 감사드리며
우리 함께, 그리고 같이 가십시다.^^
va 이정호 om님도 lg와 인연이 있으시네요. 저도 금성사로 입사해서 lg로 퇴사를 했는데....
LG 그룹이 워낙 크다보니 종사자도 많고 연관된 분들도 많더라구요.
고등학교 시절 동기들이 졸업 후 열차 한량을 전세내어 구미로 대량
갔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글잘보았습니다.
저도 IT분야에서 일하다보니 오엠님 글 읽으면서 예전생각이 다시 떠올랐네요.
동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 댓글 주셔서 또한 감사드립니다.^^
인생 글 잘보고 갑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저만치 수고하지 않은 사람이 있겠습니까?
앞으로도 열심히 살겠습니다.^^
잘 정리해 놓으신 글 잘 보았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읽어주시고 공감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직 나이가 그리 많지는
않지만 이렇게 하나 둘 정리를 해두면 좋을 것 같아서 써 보았습니다.
자주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