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산신씨 시조 신숭겸의 생애
평산신씨 시조 신숭겸 장군은 신라말(서기 877년 경) 전라도 곡성 현(전남 곡성군 목사동면 구룡리)에서 탄생하셨
장군의 처음 이름은 능산이었으며, 휘(諱:돌아가신 조상 또는 높은 어른의 이름)는 숭겸이요, 시호(공신이 죽은 뒤 임금이 추증하는 이름)는 장절공이다.
장군은 태어나면서부터 기골이 장대하고 천성이 용감하고 명민스러웠으며 활쏘는 재주와 무예가 뛰어나 장수다운 기질을 갖추고 있었다.
장군은 태생지 곡성 용탄에서 얻은 신령한 용마를 타고 신유봉, 비래산, 동리산, 화장산 등지에서 활을 쏘며 무예를 닦는 한편 독서당을 지어 문장도 익혀 15세에 유과(儒科)에 급제하기도 하였다.
2. 고려의 개국
태생지 곡성에서 닦은 무예가 출중하여 태봉국의 기장(騎將)이 된 장군은 궁예왕이 폭압하여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고 민심이 흉흉하므로 배현경, 홍유, 유금필, 복지겸등과 모의하여 궁예를 폐위하고 형제 결의한 왕건을 왕으로 추대하고 고려를 개국함으로써 개국원훈 벽상공신 대장군으로서 고려국 500년과 삼국통일의 기틀을 다졌다.
3. 사성(賜姓: 姓을 주다)
고려태조 왕건이 개국공신 모든 장수들과 함께 황해도 평주에 사냥을 갔다가 삼탄에 이르러 마침 점심때가 되었는데 기러기 세 마리가 하늘높이 맴돌고 있는지라 태조가 "누가 저 기러기를 쏘겠는가?" 하니 신장군이 나서서 "신이 쏘리다" 하였다.
태조가 활과 안마를 내리리 신장군이 "몇째 기러기를 쏘리까" 하였다. 태조가 웃으면서 "세째 기러기 왼쪽 날개를 쏘라" 하였다. 신장군이 활을 쏘아 명한대로 그 기러기를 맞히니 태조가 탄복하여 평산(平山)으로 관향을 삼게 하였다.
4. 순국 , 위왕대사
태조10년 후백제 견훤군과의 대구 동수대전(대구 지묘동)에서 순국하셨다.
견훤군이 신라를 침공하여 왕족을 도륙하므로 태조가 동맹관계인 신라를 돕고자 팔공산에서 견훤군을 맞아 싸웠으나 워낙 수가 많은 후백제군에게 도리어 포위되어 위급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때 신장군은 그 용모가 태조를 닮았으므로 태조를 숨기고 대신 어의와 어차로 변장하고 적군과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셨으니 그 충절이야 말로 일월과 같이 밝고 별과 같이 빛난다 하겠다.
신장군의 위왕대사(爲王代死:왕을 위해 대신죽음)로 간신히 목숨을 건진 태조 왕건이 신장군의 높은 충절을 기려 벽상호기위 태사 개국공 삼중대광 의경익대 광위이보 지절저저공신(壁上虎騎衛 太師 開國公 三重大匡 毅景戴 匡衛怡輔 砥節底定功臣) 을 추봉하고 장절이란 시호를 내렸다
[출처] 평산신씨 시조 신숭겸의 생애 |작성자 풀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