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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69] (도편) 가장 좋은 것은 백성들이 임금이 있는 것만 아는 것이고
통행본 장
17 · 18장
가장 좋은 것은 백성들이 임금이 있는 것만 아는 것이고
그 다음에는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이며
그 다음에는 두려워하는 것이고
가장 나쁜 것은 임금을 모욕하는 것이다.
믿음이 부족하면 불신이 생기니
머뭇거리며 말을 아낀다
공을 세우고 일을 이루어도
백성은 모두 자기 스스로 그러하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대도가 사라지자 인의가 생겼고
지혜가 나타나자 큰 거짓이 생겼다
육친이 불화하면서 효도와 자애로움이 생겼고
나라가 혼란해지자 곧은 신하가 생겼다.
太上下知有之, 其次親譽之, 其次畏之, 其下侮之. 信不足, 焉有不信, 猶呵其貴言也. 成功遂事, 而百姓皆謂我自然. 故大道廢, 焉有仁義. 智慧出, 焉有大僞. 六親不和, 焉有孝慈. 邦家昏亂, 焉有貞臣.1)
가장 좋은 것은 백성들이 임금이 있는 것만 아는 것이고, 그 다음에는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이며, 그 다음에는 두려워하는 것이고, 가장 나쁜 것은 임금을 모욕하는 것이다
太上下知有之, 其次親譽之, 其次畏之, 其下侮之
'태상(太上)'은 본문과 달리 태고 시절 무명의 군주(하상공)나 대도가 펼쳐지던 상고의 세상(임희일)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번역도 약간씩 달라지지만 대의에는 큰 차이가 없다. 모두 그 탁월함을 자각하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다스려지는 것이 가장 훌륭한 통치라는 뜻이다.
"백성들이 임금이 있는 것만 아는 것이고"라는 구절은 판본에 따라 '하(下)'를 '불(不)'로 고쳐 "임금이 있는 줄 알지 못하는 것이고"로 되어 있기도 하다(오징본 등). 뜻은 통하지만 백서 및 초간문은 모두 본문과 같다.
마지막 구절의 "가장 나쁜 것〔其下〕"은 통행본에 모두 "그 다음에는〔其次〕"으로 되어 있고, 초간문도 마찬가지다. 뜻은 같다.
왕필에 따르면 "무위의 일에 머무르면서 말 없는 교화를 행하는 것(2)"이 임금이 있는 것만 알게 하는 길이다. 그렇게 하지 못하고 "선함을 세우고 시혜를 베풀면" 백성들은 임금을 사랑하고 존경하게 된다. 그렇게도 못해서 "권위에 의존하게 되면" 백성들은 임금을 두려워하게 된다. 그렇게도 못해서 "꾀로써 나라를 다스리면 백성들이 그 명령을 피할 방도를 생각해내어 좇지 않으므로" 임금을 모욕하게 된다. 그러므로 가장 나쁜 상태는 『논어』에서 말하는 "법령으로써 이끌고 형벌로써 질서를 잡는다면 백성은 법망을 요리조리 피하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이다(「위정」)"라는 말과 비교된다. 다른 해설도 대개 이와 같다.
『한비자』 「난삼」은 여기에서 말하는 가장 좋은 상태를 인치의 자의성을 극복하는 법치의 장점과 연결시킨다. 곧 인치(덕치) 시스템이 원활히 돌아가기 위해서는 항상 훌륭한 통치자가 필요하지만 법치 시스템에서는 법을 엄격히 적용하면서 상벌을 분명히 하기만 하면 국가 사회를 이상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난삼」의 논지는 『회남자』 「주술훈」 및 「주술훈」을 참고한 『문자』 「자연」에도 그대로 계승된다. 이렇게 되어서 군주의 할 일, 역할이나 의무가 축소되고 그와 함께 군주의 안전과 이익이 최대화되는 통치술이 법가적 무위이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본문에 나타난 이상 사회는 잘 알려진 요임금의 태평성대와 자주 비교되었다. 요임금 시절에 길에서 격양(擊壤)하고 있는 농부를 만난 어떤 이가 그 즐거운 모습을 보고 요임금의 덕을 칭송하자 농부는 요임금이 무슨 상관이냐며 반문했다는 것이다. 이 고사는 『제왕세기』나 『논형』의 여러 곳에서 등장한다. 이때 농부가 불렀다는 노래가 이른바 '격양가'다.
나는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쉬며
우물을 뚫어 물을 마시고 밭을 갈아 밥을 먹는다네
요임금이 무슨 힘을 썼겠는가
본문에서 『노자』가 말하려는 것과 이 노래의 정신은 차이가 없다. 또 『논형』은 이 고사가 『논어』에 나오는 이런 말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한다.
크도다, 요임금의 임금됨이여! 높구나! 오직 하늘이 위대하거늘 오직 요임금이 그를 본받았으니 그 덕이 넓고도 넓어 백성이 이름을 붙일 수 없었다(「태백」).
유가가 요·순을 칭송하기 시작한 것은 묵가가 우왕을 칭송한 뒤라는 지적이 있다. 그렇다면 이 글은 보다 늦은 시기에 『논어』 속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전통에 조금 더 비판적 태도를 취하려고 한다면 최술이 그랬던 것처럼 『논어』에 이런 『노자』적인 사유가 등장한다는 것을 들어 『논어』가 얼마나 나중에 (구체적으로는 전국 중기에) 만들어진 책인지를 주장할 수도 있다.
믿음이 부족하면 불신이 생기니 머뭇거리며 말을 아낀다
信不足, 焉有不信, 猶呵其貴言也
이 문장의 앞 두 구절은 통행본에 여러 다른 형태가 있다. 왕념손은 그것들을 본문처럼 정리하면서 여기에서 '언(焉)'은 '이에〔於是〕'라는 뜻이라고 하였다. 정리조는 이 견해를 받아들이면서 통행본의 다른 형태는 '언'의 용례를 잘 몰랐던 사람들이 『노자』 본문을 손댄 결과라고 하였다. 거의 모든 해설도 왕념손의 견해를 채택하므로 여기에서도 따른다. 다음 글(18)에서도 같은 용례가 나온다. 갑본(案)과 을본·초간문(安)의 글자는 모두 '언(焉)'과 통하는 글자다.
'유(猶)'는 앞글(15)에서처럼 여기에서도 머뭇거린다는 뜻이다. 백서와 초간문의 글자는 원래 '유(猷)'이지만 서로 통한다. 이밖에도 통행본에서는 '유(悠)', '유(由)' 등 다른 글자를 쓰기도 하는데, 이것들이 모두 통한다는 설도 있다(장송여).
'귀언(貴言)'은 말을 아낀다는 뜻이다. 일부는 '귀'를 글자 그대로 보고 부정적 의미에서 "말을 귀하게 여긴다"는 뜻으로 보기도 한다(왕진·육희성·임희일). 하지만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임금의 믿음직함이 백성에게 부족하면 백성들도 불신으로 응대하여 그 임금을 속이는데(하상공)" 그 믿음직스럽지 못함은 대개 말을 함부로 하는 것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성인은 "말을 아껴 도로 되돌아갈 뿐이니, 말을 아낀다는 것은 말 없는 교화를 베푸는 것이다(여혜경)." 이렇게 보는 게 좋겠다.
공을 세우고 일을 이루어도 백성은 모두 자기 스스로 그러하다고 말한다
成功遂事, 而百姓皆謂我自然
'자연'의 '연(然)'은 이와 같다〔如此〕는 뜻이다(오징). 곧 자연은 스스로 이와 같다는 뜻이다. 또 '연'에는 이룬다〔成〕는 뜻이 있다(『광아』 「석고」). 그러므로 자연은 스스로 이룬다는 뜻이다. 두 의미가 모두 통한다. 『노자』의 자연 개념은 나중에 좀더 서술하겠다(다음 참조).
그러므로 대도가 사라지자 인의가 생겼고, 지혜가 나타나자 큰 거짓이 생겼다
故大道廢, 焉有仁義, 智慧出, 焉有大僞
모든 통행본에는 '그러므로'라는 말이 없고, 그래서 이하의 글이 마치 독립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백서 갑·을본과 초간문에 모두 이 말이 있으므로 보충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이 글은 앞글(17)의 부연 설명이다.
초간문에는 "지혜가 나타나자 큰 거짓이 생겼다"는 구절이 없다. 원래부터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빠뜨린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 여기에서의 '언(焉)'은 앞에서 설명했듯이 모두 '이에〔於是〕'의 뜻이다. 일부에서는 '언'을 '어찌'라는 뜻으로 새겨서 "그러므로 대도가 사라지면 어찌 인의가 있을 수 있으며……"라는 식으로 해석하고, 그에 근거하여 『노자』가 인의를 부정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언'의 용례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아마도 『장자』 「마제」의 "도덕이 사라지지 않았다면 어찌 인의를 취하겠는가〔道德不廢, 安取仁義〕"라는 용례를 이 문장에 잘못 적용함으로써 생긴 오해인 듯하다.
이 문장은 특히 인의에 대한 부정적 언급 때문에 『노자』의 반유교를 상징하는 말 중의 하나로 이해되어왔다. 그래서 유교 국가에서 『노자』를 옹호하려던 사람들은 흔히 이 문장의 반유교적 함축을 부정했다. 가령 소철은 "대도가 융성하던 때는 인의가 그 가운데 행해지고 있었으므로 백성들이 알지 못했다. ……육친이 바야흐로 서로 화목하면 누가 효도하고 자애롭게 행동하지 않을 것이며, 국가가 바야흐로 다스려지면 누가 충신이 아니겠는가. 요임금은 불효하지 않았지만 효도에 순임금을 드는 것은 요임금에게 고수(瞽叟) 같은 아버지가 없었기 때문이고, 이윤·주공이 불충한 신하는 아니었지만 충신으로 용봉(龍逢)·비간(比干)을 드는 것은 그들에게 걸·주가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하여 『노자』가 결코 인의·효자(孝慈)를 부정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육희성도 장문의 논설을 통하여 같은 뜻을 피력하고 있다. 하상공 이하 여러 주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노자』 같은 후발 주자가 세상의 주목을 받기 위해 현학에 도전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장자』도 유·묵의 도덕(인의)과 자신의 도덕을 비교하여 자신의 우월성을 선전한다.
무릇 지덕의 세상에서는 금수와 함께 살고 만물과 함께 어우러져 군자·소인의 구분을 몰랐다. ……도덕이 사라지지 않았다면 어찌 인의를 취할 것이며, 성정이 서로 떨어지지 않았다면 누가 예악을 사용하겠는가. ……통나무를 쪼개서 그릇을 만드는 것은 공장의 죄이고, 도덕을 훼손시켜 인의를 행하는 것은 성인의 잘못이다(「마제」).
『노자』의 영향을 받은 글로 보이지만 어쨌든 『노자』와 같은 동기에서 유·묵의 인의를 비판한다. 『노자』는 유·묵을 포함하는 중국의 보편 정서에서 홀로 동떨어져 있지도 않고, 동시에 상식적 정서에 도전하기도 한다.
육친이 불화하면서 효도와 자애로움이 생겼고, 나라가 혼란해지자 곧은 신하가 생겼다
六親不和, 焉有孝慈, 邦家昏亂, 焉有貞臣
왕필에 따르면 육친은 부자·형제·부부다. 비슷하지만 『여씨춘추』는 "무엇을 육척(六戚)이라고 하는가? 부모·형제·처자다(「계춘기·논인」)"라고 하였다. 엄밀히 따지면 왕필의 정의는 정확하지 않다. 이런 관계에서 촌수를 따질 때 따지고 있는 본인은 적어도 부·부 중의 하나이므로 기껏해야 오친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논인」처럼 보아야 '육친'이라는 말에 들어맞는다.
을본에는 '방(邦)'이 '국(國)'으로 되어 있다. '정신(貞臣)'은 통행본에 대개 '충신(忠臣)'으로 되어 있다. 초간문에는 '정신(正臣)'이다. 부혁·범응원본은 백서처럼 되어 있다. 범응원에 따르면 엄준·왕필본은 모두 고본(범응원본)과 같았다고 한다.
크도다 요임금의 임금됨이여
높구나 오직 하늘이 위대하거늘
오직 요임금이 그를 본받았으니
그 덕이 넓고도 넓어
백성이 이름을 붙일 수 없었다
―『논어』 「태백」
각주
1) * 갑·을본은 서로 일치한다.
* 갑·을본으로 서로를 보완하여 완전한 문장을 얻을 수 있다.
* 10구 이하의 글은 통행본에서 18장으로 윗글(17)과 분리되어 있다. 하지만 통행본과 달리 백서와 초간문에는 모두 이 글 앞에 "그러므로〔故〕"라는 말이 있어서 이 글이 윗글과 이어지는 글임을 알려준다. 또한 초간문에는 이 두 글이 서로 붙어 있다. 통행본에서 맞붙은 글이라도 초간문에서는 그 순서가 지켜지지 않는 것이 보통이므로 이렇게 두 글이 붙어 있을 경우에는 원래 하나의 글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내용적으로도 두 글은 이어진다. 이런 점을 반영하여 여기에서도 함께 해설한다.
* 태(太)는 대(大: 이하 갑·을본), 모(侮)는 모(母), 언(焉)은 안(案: 갑본)·안(安: 을본), 유(猶)는 유(猷: 을본), 지혜(智慧)는 지쾌(知快: 갑본)·지혜(知慧: 을본), 효자(孝慈)는 축자(畜玆: 갑본)·효자(孝玆: 을본), 혼(昏)은 혼(: 갑·을본)의 본 글자이므로 모두 이렇게 고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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