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 06
S#1. 수찬의 집 앞. (낮)
5회 연결 상황에서.
강형사 : 연수연씨라는 분을 아십니까?
수찬 : .....
덕길 : 누구요?
수찬 : .....
강형사 : 연수연씨를 아십니까?
수찬 : ......
덕길 : (수찬 옆으로 다가서서) 지금 누구라고.....
수찬 : 그런 사람 모릅니다.
덕길 : (수찬을 보는)
강형사 : 같은 고향에서 20년 넘게 함께 자란 사람을 모른다고 하시는 겁니까?
덕길 : 대...대체....무신 일 땜시....그러시는 가요?
강형사 : 7월 9일 발생한 연수연씨 살인 사건 때문입니다.
수찬 : (흔들리는)
강형사 : (빠르게 수찬의 표정을 살피고)
덕길 : 살....살...인 사건이라믄.....사람이 죽었다는.....말씀인디....
수찬 : 그런 사람 모릅니다.
덕길 : (다시 수찬을 보고)
수찬 : 전 약속이 있어서 그럼.....(강형사를 밀치고 나가버리는)
강형사 : 백수찬씨?
수찬 : (무시하고 걸어가버린다)
강형사 :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확실한 증거 가지고....
덕길 : 정....정....말이여요? 수연이가 죽었다는 것이?
강형사 : (뭐야 하는 표정으로) 연수연씨를 아십니까?
#.2 씬. 길. (낮)
달리는 수찬의 차.
수찬, 굳어진 표정으로 운전하고 있다.
회상 플레쉬 컷.
시골 마을 일각에서 뒤돌아보며 환하게 웃는 수연의 모습.
갑자기 다가오는 앞 차.
수찬, 놀라서 급하게 핸들을 꺾어 길가에 차를 멈춘다.
핸들을 붙잡고 고개를 숙이는 수찬.
#.3 씬. 초등학교 운동장. (낮)
덕길, 그네에 멍하니 앉아있는.
덕길 : (이게 무슨 일인가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눈만 꿈뻑이는)
수연 : (E) 덕길 오빠?
덕길 : (홱하고 뒤로 고개를 돌리는)
나뭇잎만 바람에 흔들리고.
회상 플레쉬 컷.
머리에 새참 바구니를 이고 손을 흔드는 수연의 모습.
덕길 : (순간 눈물이 핑 돌아 하늘로 고개를 젖히고, 이를 악문다) 복도 지지리도.....
벨 소리.
아이들 몰려나오는.
예슬, 고니, 영 걸어오는.
고니 : 한번만 더 믿고 맡겨 달라니께.
예슬 : 다섯 개나 틀려놓고 뭘 더 믿고 맡겨? 난 너 공부 좀 하는 앤 줄 알았어.
고니 : 나가 급하게 전학 오고 하는 바람에 정신적으로 안정이 좀 안 되서 그런 거제.
영 : 촌놈.
고니 : 이씨. (주먹 드는데)
예슬 : 난 폭력적인 거 정말 싫다고 했다.
고니, 영 주눅 들고.
영 : (얼른 예슬 옆으로 달려가서) 예슬아, 수학 숙제 내가 대신 해줄게.
예슬 : 그건 우리 할머니 말로 하면 앓느니 죽는다는 거거든.
고니 : 그럼 다른 거 뭐 도와줄 것은 없는겨?
예슬 : 됐어. 편해보자고 한 내 잘못이다.
고니 : 그럼.....(얼른 예슬 가방 들면서) 넌 왜 자꾸 너 가방을 너가 들고 그래쌌냐.
덕길 : (E) 고니야?
고니 : (보면, 덕길 그네 앞에 서있다)
#.4 씬. 피자 집. (낮)
고니, 열심히 피자 먹고 있는. 그 앞에 덕길 앉아있는.
고니 : 아따, 엄청 맛있어부러요. 아들이 피자 피자혀서 왜들 그러나 혔드니만 다 사연이 있었구만요.
아부지도 좀 드서요.
덕길 : 난 되부렀어. 너나 많이 묵어.
고니 : 그려도 너무 묵는 거 같아서.....피자집 오실 거면 예슬이도 같이 오자고 허시지....점수 딸 기회였는디.
덕길 : 기, 기양....내 새끼만 먹이고 싶었어야.
고니 : 그런 것이요, 아버지 가족 이기자주의라고 하는 것이어요.
덕길 : 가족 이기자가 아니라, 가족 이기주의.
고니 : 아, 야. (그러면서 또 열심히 먹고) 진짜 무지하게 맛은 있어부네요.
덕길 : (콜라 고니 입에 대주면서) 목 메야. (그러면서 자신의 목이 멘다. 울컥하는 심정 숨기려 고개를 돌리는.
그러다 다시 열심히 먹고 있는 고니를 보는)
#.5 씬. 준석의 사무실. (낮)
준석, 전화 받고 있는.
준석 : 아, 네. 별 말씀을요. 네, 네, 다음에 뵙겠습니다. (전화 끊고, 인터폰 누르는)
윤희 : (E) 네, 팀장님.
준석 : 들어와요.
윤희, 들어오는.
준석 : 진성 김회장님 댁 며느님 득남 축하 화환 보냈습니까?
윤희 : 아, 네, 그거요.
준석 : 어떻게 알구?
윤희 : 그게요. 우연히....저번에 김대식씨 부인 잘못 되셔서 병원에 문상 갔다가 김회장님이 지나가시는 걸 봤거든요.
간호사한테 무슨 일인가 슬쩍 물었더니 큰 며느님이 득남하셨다구.
회장님하고 예전에 만나셨을 때 큰 아드님이 애가 안 생겨 걱정이라고 하시던 말씀을 들은 적이 있거든요.
집안 일 밖으로 안 알리시는 어른이시라 조금 망설이긴 했는데
그래도 좋은 일이라 화환 정도 보내는 건 어떠랴 싶어서.....왜요? 뭐라고 하세요?
준석 : (보는)
윤희 : 보고를 드릴까도 했는데, 아부하는 거 같다고 하실까봐 그냥.....
준석 : 고맙다고 골프 한번 치자고 하시네요.
윤희 : (눈치 보면서) 잘못 한 건 아니죠?
준석 : 우연히 그런 일 알게 되면 알아서 처리해요.
윤희 : 아, 네, 알겠습니다.
준석 : 나가봐요.
윤희 : (나가려다가 돌아보며) 저기 경비는 법인 카드로.....
준석 : 정윤희씨 법인 카드도 있습니까?
윤희 : 팀장님 번호 그냥 불러줬는데.....
준석 : 그거 불법입니다.
윤희 : .....
준석 : (서류 넘기면서) 본인 구두 같은 거 사고 그럼 안 됩니다.
윤희 : 아. 제가요. 그런 식으로 사는 사람은 절대 아니거든요.
그리고 이왕 맘먹고 사자고 들었으면 구두 같은 거 사겠어요.
아파트 한 채 사버리고 콩밥 먹지.
준석 : (서류 넘기면서) 내 카드 한도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윤희 : (킥 웃는)
준석 : (보면)
윤희 : 제 유머 받아치기 쉽지 않은데 대단하세요. (엄지손가락 들어 보이고 나가는)
준석 : (웃는)
#.6 씬. 동네 길. (낮)
윤희, 버스에서 내리며 핸드폰 받는.
윤희 : 아니, 고 쪼그만 게 뭐 그리 먹고 싶은 게 많은데? 아침저녁으로 식탁 메뉴도 다 지 좋은 거로만 먹으면서.
(핸드폰 귀에서 떼면서) 알았어, 사가면 될 거 아냐. 왜 소리는 지르고. 돈은 엄마가 주는 거야.
(핸드폰 끊고 투덜거리며 걸어가는) 이건 딸이 아니라 머슴이야, 머슴.
#.7 씬. 동네 술집. (낮)
윤희, 들어서며.
윤희 : 사장님? 닭꼬치 2인분만 포장이요. (그러다 술 마시고 있는 수찬을 보는)
시간 경과.
윤희 : (술잔 내려놓으며, 끅하고 트림하는) 내가 오늘은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내가 술 먹는 복은 타고 났어요.
수찬 : (술만 마시는)
윤희 : 전임까지 다시고, 희희낙락 하시더니 무슨 일이실까? 어떤 사모님께서 용돈 못주겠다고 하시나.....
수찬 : (술만 마시는)
윤희 : (보다가. 이상하다 싶어서) 아저씨?
수찬 : (무시하고 술만 마시는)
윤희 : 무슨 일 있어요?
수찬 : 술 마실 거면 조용히 마시다 가.
윤희 : .....
#.8 씬. 동네 길. (밤)
수찬, 윤희 걸어오는. 윤희 포장 봉투 들고.
윤희 : (수찬이 오늘은 좀 이상하다 싶고) 잘렸어요? 된 줄 알았는데, 안된 거예요?
수찬 : .....
윤희 : 그러게 전임도 실력으로 따야지, 여자 등에 업고.....
수찬 : (한 켠에 앉는)
윤희 : 집에 안가요?
수찬 : 먼저 가.
윤희 : ......실망 너무 과도하게 한다. 아, 이번에 안됐으면 다음에 되겠지.
그 사모님한테 봉사 좀 더 열심히 하고....
수찬 : 가라니까.
윤희 : (핸드폰 울리고) 여보.....(핸드폰 귀에서 떼고) 다 튀겼어, 지금 간다니까.
닭이 없어서 양계장까지 가서 잡아왔어, 됐어?
(걸어가는데, 뒤를 돌아보면, 풀 죽어 앉아있는 수찬. 마음이 조금 안됐다 싶기도 하고, 혼잣말로)
그 여자도 그래. 그렇게 몇 날 며칠 몸이 부서져라 고생을 시켰으면 전임 좀 달게 해주지.
#.9 씬. 윤희의 집 식탁. (밤)
윤희, 꼬치 봉투 턱하니 올려놓는.
선우, 미희, 예슬 앉아있는.
윤희 : 그걸 못 기다리고.
선우 : 버스에서 내렸다는지가 언젠데....
예슬 : 두 시간도 훨씬 넘었어요.
윤희 : 닭이 다 떨어져서 기다리다.....끅....
미희 : 또 펐니? 참 대단하다.
선우 : 치킨 튀기는 동안에 한잔만 하자 하다가 내리 펐지 뭐. 안 봐도 비디오다.
아무리 술독에 빠졌다고 저 지경이 되나.
미희 : 아버지도 저 정도는 아니셨잖아요?
선우 : 청출어람이다.
윤희 : 백교수 말이야. 전임 안 됐나보던데.
미희 : (화들짝) 뭐?
선우 : 아니, 전임 됐다고 동네잔치까지 했는데.....
윤희 : 풀이 팍 죽어있던데 뭐. 남자가 쫀쫀하게 그만한 일로.
미희 : (버럭) 네가 그 심정 어떻게 안다고 쫑알거려.
S#10. 수찬의 집 앞. (밤)
수찬, 허적허적 걸어오면. 갑자기 날아드는 덕길의 주먹.
수찬 : (푹하고 쓰러지는, 올려다보는)
덕길 : (멱살을 잡아 일으키는) 몰러? 모른다고야? 너가 수연이를 모른다고?
너가 사람 새끼여? 너가 사람 새끼냐고?
갑자기 끼어들어 덕길의 팔을 잡는 미희.
미희 : 왜 이러세요? 가뜩이나 전임 못 되서 풀 죽어있는 사람한테? 위로는 못할망정 패긴 왜 패?
시험 못 친 애 때리는 엄마도 아니고, 뭐야? 당신?
덕길 :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싶고)
수찬 : (덕길이 잡은 멱살 뿌리치고 집 안으로 걸어들어가는)
미희 : 백교수님? 너무 낙심하지 마세요. 제가 그 여자 얼굴 보니까 그렇드라구요.
믿음이 가게 생기질 않았드라구요.
너무 실망 마시고 다음 기회를 노려보세요, 네? 백교수님?
덕길 : 지금 뭐라고 하시는 거래요?
미희 : 몰라서 물어요? (팩하니 돌아서서 가버리는)
#.11 씬. 수찬의 서재. (밤)
수찬, 의자에 기대 앉아있는.
덕길, 들어오는.
덕길 : (보다가) 수연이가 죽었디야. 수연이가 죽었다고.
수찬 : (눈을 감는)
덕길 : 수연이가....(울컥해지고) 수연이가 죽었다잖여. 그 가여운 것이.....
그 불쌍한 것을 모른다고야? 너가 그러면 안 돼불지. 너가 워째 수연이를 모른다고....
수찬 : 나 몰라. 연수연이 누군지....난 몰라.
초인종 소리.
#.12 씬. 수찬의 집 앞. (밤)
강형사, 서있는. 고니, 뒤를 향해.
고니 : 아부지, 교수 아저씨 찾아오셨다는디....
#.13 씬. 수찬의 집 마당. (밤)
수찬, 강형사 마주 서있는.
강형사 : (작은 녹음기를 들고 서있다)
노인 : (E) 아, 확실하다니께. 수찬이하고 수연이하고 친구여, 친구. 나이도 같지 아마.
여자 : (E) 그럼요, 갸들이 동갑내기라 애려서부터 늘 붙어다니고 그러지 않았남요.
강형사 : (녹음기 끄고) 이래도 모른다고 하시겠습니까?
수찬 : 그래서요?
강형사 : 네?
수찬 : 알면요? 알면 뭐가 어쨌다는 겁니까?
강형사 : (심호흡하고) 사건이 말이죠. 연수연씨가 7월 9일에 살해 됐다 그겁니다.
근데 그 소지품에서 핸드폰 번호가 하나 나왔거든요.
끝자리가 지워지긴 했지만, 과학 수사로 결국 밝혀냈는데,
그 핸드폰 주인이 누구냐 하면. 바로 저 집에 사는 단명희씨였다 그겁니다.
수찬 : (단명희의 집 쪽을 보고,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싶고)
강형사 : 그런데 단명희씨도 처음엔 연수연씨를 전혀 모른다, 딱 잡아뗐어요. 아주 딱.
그런데 역시 과학 수사로 연수연씨와 단명희씨가 10년 전쯤에
같은 회사에 근무 한 적이 있다는 걸 밝혀냈거든요.
그런데도 역시나 딱 잡아뗐는데, 제가 두 사람이 꽤 친하게 지내드라. 하는
동료 직원의 증언을 가지고 집요하게 추궁을 했다 그겁니다.
수찬 : 대체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강형사 : 좀 들어보세요. 그런데 심리적으로 압박을 받던 단명희씨가 불행하게도 그만 세상을 떴다 그거죠.
그래서 수색 영장을 발부 받아서, 수색 영장 받기 쉽지 않았지만, 그게 유일한 단서라서....
수찬 :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냐구요? 돌아가신 분 얘긴 또 뭐고?
강형사 : 그런데 단명희씨 컴퓨터 블로그에서 뭐가 나왔느냐.
백수찬씨 사진으로 도배가 된 파일이 나왔다 그겁니다.
그 얘기 모두 듣고 있는 하니. 한 켠에 몸을 숨기고 서서 듣고 있다.
하니 : (손으로 입을 가리고)
강형사 : 이제 이해가 되십니까?
수찬 : (무슨 말인지 도무지 모르겠고) 내 사진이 왜?
강형사 : 글쎄요, 죽은 연수연씨와 단명희씨, 그리고 백수찬씨, 과연 무슨 관계였을까요?
수찬 : ......
강형사 : 백수찬씨?
수찬 : (보면)
강형사 : 07년 7월 9일 오후 11시부터 오전 01시까지 뭘 하셨는지 말씀해주셔야겠습니다.
수찬 : ......
강형사 : 단도직입적으로 말씀 드리죠. 지금 현재로썬 백수찬씨께서
연수연씨 살인 사건의 가장 유력한 용의자라는 사실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알리바이를 증명해 주셔야겠습니다.
수찬 : ......
#.14 씬. 영재의 집 거실. (밤)
영재, 문 열어주는. 하니, 들어오는.
영재 : 무슨 맛사지를 이렇게 늦게 받아?
하니 : 그, 그게 중요한 게 아니구. (영재의 손을 잡아끄는) 빅뉴스야, 빅뉴스.
#.15 씬. 수찬의 서재. (밤)
수찬,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는.
덕길 들어오는.
수찬 : 왜 또?
덕길 : 강형사님이 왜 또 오셨댜?
수찬 : ......
덕길 : 왜 오셨냐고 묻잖여?
수찬 : 내가 수연이를 죽였대.
덕길 : (굳어지는)
#.16 씬. 덕길의 방. (밤)
고니, 이불 걷어차고 잠들어 있는.
덕길 : (들어와서 고니 옆에 앉는, 고니 배 위에 이불을 덮어주는) 뭔 일이랴, 이것이.....
#.17 씬. 영재의 집 거실. (밤)
하니, 물까지 벌컥 벌컥 마시면서 얘기에 열중 해 있는.
영재 : 별.....
하니 : 그러니까 백교수님하고 저 옆집 죽은 여자하고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는 거지.
또 살해 된 여자하고도 관계가 있고. 엄청난 사건이지? 응? 엄청나지?
영재 : 당신은 아무 말 말고 가만 있어. 괜히 동네 여자들한테 이러쿵 저러쿵 하지 말고.
지저분한 사건에 입 보탤 거 없어.
조용한 동넨 줄 알았더니, 이런 거 소문나면 집값만 떨어지는데....
하니 : 맞다. 집 값 떨어지겠다. 어쩌냐?
#.18 씬. 동네 길. (새벽)
선우, 하니, 보경, 모여 서있는, 각자 손에 신문 한부씩 들고.
보경 : 세, 세상에.
선우 : 죽은 새댁하고....에이 말도 안돼.
하니 : 제 귀로 똑똑히 들었다니까요. 죽은 그 여자 솔직히 새초롬하니 분위기가 좀 묘했잖아요.
보경 : 허긴 그런 타입이 뒤로....
선우 : 못써들. 젊은 나이에 죽은 것도 가여운데, 그런 험한 말까지
하니 : (자르며) 백교수님 사진이 그 여자 컴퓨터에 도배가 돼 있드라잖아요.
그게 뭐겠어요? 아무 관계도 없는데, 왜 옆 집 남자 사진을 그렇게 도배를 해놨겠냐구요.
대식 : (E) 지금 뭐라고 하는 겁니까?
여자들 돌아보면, 대식 서있는.
#.19 씬. 수찬의 집 마당. (새벽)
수찬, 땅바닥에 패대기 쳐지는.
대식 수찬을 잡아일으켜 다시 패대기 치는.
동네 여자들 담장 옆에서 조마조마한 심정을 구경하는.
선우, 보경, 하니.
대식 : 너 뭐야? 너랑 내 마누랑 무슨 사이였냐구?
수찬 : (기가 막히고)
대식 : 말을 해보라구, 말을.
수찬 : (대식의 팔을 잡는)
대식 : 어, 잡어.
수찬 : 진정하세요. 저, 댁 와이프하고 아무 사이 아니었습니다.
대식 : 그런데 왜 네 마누라가 니 사진을 가지고 있어? 왜.
수찬 :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하늘에 맹세코 아무 사이도 아니었습니다.
선우 : (얼른 끼어들며) 그래, 진정 좀 해요.
내가 동네 돌아가는 사정은 내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환한 사람인데
내가 전혀 아무 낌새도 못 챘으면 아무 일도 없었던 거야. 내 말 믿어. 내 말 믿으라니까.
대식 : (털썩 주저 앉으며) 그런데 왜.....그런데 왜.....이 사람 사진을 내 마누라가 가지고 있냐구요, 왜.
#.20 씬. 윤희의 집 거실. (아침)
윤희, 선우, 미희, 식탁에 모여 앉아 있는.
미희 : 말도 안돼.
선우 : 말도 안돼지. 백교수가 어느 모로 보나 그럴 사람이 아닌데.
윤희 : 또 모르지.
미희 : (버럭) 모르긴 뭘 몰라.
선우 : 그런데 희한하지. 그 새댁 컴퓨터에 왜 백교수 사진이 도배가 되어 있냐 그거여.
예슬 : (E) 사진 찍는 거 그 아줌마 취민데.
선우, 미희, 윤희 돌아보면.
예슬 : (수건으로 얼굴 닦으며 서있는)
#.21 씬. 대식의 집 거실. (아침)
대식, 선우 앉아있는.
선우 : 우리 예슬이가 몇 번 봤다네. 사람들 모르게 이 집 새댁이 사진을 찍고 그러드래.
왜 저 아줌마는 숨어서 사진을 찍나 그랬다고 하대.
저번에 이 집 마당에 공 줏으러 들어왔다가 부엌 창에서 몰래 사진을 찍고 있는 것도 봤다고 그러네.
대식 : 그럼....왜 하필 그 인간 사진만.....
선우 : 그거야 모르겠지만, 백교수하고 이 집 새댁하고 이상한 사이였다는 건 오핸 거 같어.
대식 : ......
#.22 씬. 동네 길. (낮)
수찬, 집에서 나오는. 윤희 뛰어오는.
윤희 : (수찬을 보고, 표정 멈칫하는. 뭐라고 말을 하려다가 뛰어가는)
보경, 영 따라 나오며.
보경 : 보조 가방 가져가야지. (영에게 들려주고, 영 뛰어가고 수찬을 보고. 눈인사하는. 표정이 어색하기만 하고)
하니, 영재 나오는.
하니 : 일찍 들어올 거지?
영재 : 나가봐야 알지.
수찬을 보고.
하니 : (어색하게) 아, 안녕하세요?
수찬 : 네. (어색한 표정으로 지나가는)
미희 : (E) 백교수님?
수찬 : (돌아보면)
미희 :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다정한 표정으로 옆에 서며) 지금 나가시나 봐요?
수찬 : 네.
미희 : 방학인데, 약속 있으신가보다, 일찍?
수찬 : 네.
미희 : 백교수님?
수찬 : .....
미희 : 전 믿어요, 백교수님. 세상 사람들 모두 백교수님께 돌을 던진다해도 전 아니예요.
언제까지나 백교수님 편이라는 거 잊지마세요.
수찬 : .....
#.23 씬. 커피숍. (낮)
수찬, 영주 앉아있는.
영주 : 지,지, 금 무슨 말을 하는거야?
수찬 : 어려운 거 아니야. 그날, 그 시간에 같이 있었다는 것만 증언해주면 돼.
영주 : (커피를 마시고)
수찬 : 좀 복잡한 문제가 생겨서 그래.
영주 : 딴 여자도 있었던 거야?
수찬 : 그런 거 아니라니까. 옛날에 고향에서 같이 자란 여잔데 살해 됐대.
어쩌다 꼬여서 나도 용의선상에 올랐는데, 자기가 증언만 해주면 깨끗이 해결 될 문제야.
거짓말을 해달라는 것도 아니잖아.
영주 : (찻잔 냉정하게 내려놓으며) 알잖아? 나 귀찮은 일 싫어하는 거.
수찬 : 아, 알아. 근데 자기가 증언을 안 해 주면 내가 귀찮게 생겨서 그래.
학교로 형사 찾아오고 그러면 모양새도 좋지 않고.
자기 증언은 확실하게 비밀을 보장 될 테니까....
영주 : 세상에 비밀이 어딨어?
수찬 : .....
영주 : 벽에도 귀 있는 거 몰라? 그런데 함부로 증언이다 뭐다 하고 나섰다 말 새면?
백교수가 책임 질거야?
수찬 : 자기 난처하다는 거 아는데. 내 사정이 좀 그렇다.
영주 : 나 약속 있어서 가봐야겠어. (일어서며) 그리고 당분간 우리 만나지 말자.
수찬 : (따라 일어서며) 자기야? 자기야?
영주 : 먼저 나갈게. (냉정하게 걸어가 버리는)
수찬 : ......
#.24 씬. 준석의 사무실 휴게실. (낮)
준석, 식사하고 있는, 윤희 앞에 서있는.
준석 : (보고) 앉아요.
윤희 : 아닙니다.
준석 : 앉아요. 언제부터 그렇게 예의 발랐다구.
윤희 : (참자) 앉으라고 하시니까 그럼 앉겠습니다. (앉고)
준석 : (빈그릇에 밥을 덜어서 윤희 앞에 놓아주는)
윤희 : (보고)
준석 : 난 원래 소식이거든요.
윤희 : 전 원래 대식이라 이건 양에 안찹니다.
준석 : 그럼 반찬 많이 먹어요.
윤희 : 수저도 없고.....
준석 : (자기 수저 앞에 놓아주는) 안 쓴 겁니다.
윤희 : 수저로 어떻게 반찬을.....(그러다 바구니에 담겨 있는 상추쌈 보고) 아, 됐네요.
(밥 푹 퍼서 상추에 싸서 입에 넣는) 이게 우리 회사 농장에서 무농약으로 키운 거거든요.
준석 : (무심하게) 그래요?
윤희 : 레저 타운 식당에도 우리 회사 채소만 공급 되잖아요.
준석 : 네.
윤희 : 무농약이라 그런가 진짜 연하고 싱싱하네. (얼른 다시 싸서) 자, 드셔 보세요.
이 쌈장이 이게 보통 쌈장이 아니거든요. (몸까지 일으켜 준석의 입에 퍽하고 대주는)
준석 : (깜짝 놀라는) 지. 지저분하게....
윤희 : 네?
준석 : (순간 조금 미안하고) 정윤희씨나 먹어요. 난 원래 결벽증이 좀 있어서 남의 손닿은 거 잘 못 먹어요.
윤희 : 참 골고루 하세요.
준석 : (보는데)
혜미 : 죄, 죄송합니다.
준석 : (보고)
윤희 : (자리에서 일어서는)
준석 : 무슨 일로.....
혜미 : (초밥 봉투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외근 나갔다가 초밥을 좀 사와서....
노크를 했는데도 대답이 없으셔서 그냥 두구 가려고...
준석 : (어색하기만 하고)
윤희 : (의자 밀어주며) 여, 여기서 같이 드세요. 전 그럼.....(나가는)
준석 : 아, 앉아요.
혜미 : (마지못해 앉는) 제가 방해를 했나보네요.
준석 : (보면)
혜미 : 식사 하시는데.....(초밥을 꺼내놓는)
준석 : 난 날생선 잘 못 먹는데.....
혜미 : 그래요? 제가 괜한 짓을 했네요. 늘 식당 밥 올려다 드신다고 해서 별미로 어떨까 해서 일부러 사왔더니.
준석 : 혜미씨가 먹으면 되겠네요.
혜미 : 저도 지금은 생각이 없네요.
준석 : .....
혜미 : 저.....
준석 : (보면)
혜미 : 정윤희씨에게는 스스럼없이 대하시는가 봐요.
준석 : .....
혜미 : 그 친절 직원들에게도 베푸시면 어떨까 싶네요.
준석 : .....
혜미 : 직원들이 준석씨를 너무 어려워하는 거 같아서요.
준석 : .....
혜미 : 그럼 전 방해 그만하고 나가볼게요. (일어나 나가는)
준석 : ......
#.25 씬. 비서실. (낮)
윤희, 찻잔 두 개 쟁반에 받쳐 들고,
혜미 나오는.
윤희 : 차 준비 했는데.
혜미 : 팀장님과 격의 없이 지내는 건 좋은데 회사에 소문은 안 나게 해줬으면 좋겠네요.
윗분이 편하게 대해주신다고 너무 예의 없이 행동하면 이상한 소문나기 쉽잖아요.
내 입장 이해하죠?
윤희 : .....
혜미 : 비서들 종종 그런 소문에 휘말려서 그만 두는 일도 많다고 해서 하는 말이예요.
어렵게 얻은 자리라고 들었는데. 오래 지켜야죠.
회장님께서 총애하셨던 분이라 저도 아끼는 마음에 하는 말이니까
곡해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걸어가는)
윤희 : 뭐....뭐야? 안방마님이 대감마님한테 꼬리치는 하녀한테 겁주는 거랑 비슷한 거 같기도 하고.....
말 참 묘하게 하네.
#.26 씬. 준석의 집 거실. (낮)
혜미, 한여사 앉아있는.
혜미 : (메모지 들고 앉아서 적고 있는) 잘 먹는 음식은?
한여사 : 입이 짧은 애라서 딱히 잘 먹는다고 할 건 없는데....
혜미 : 날 생선은 안 먹는다고 하던데요? 초밥도 안 먹는 게.....
한여사 : 초밥을 안 먹어? 그랬던가.... 집에선 거의 한식으로 먹으니까.
혜미 : 외식 할 때라도.....
한여사 : 우리 집은 거의 외식이 없는 집이야.
혜미 : 네. 취미 생활 같은 것도 별로 안하는 거 같던데요?
한여사 : 골프는 내가 배우라고 해서 프로 코치한테 레슨을 좀 받긴 했는데 즐기는 거 같진 않고.
그것도 딱히 뭐라 할 게 없네.
혜미 : 네.
#.27 씬. 고사장 집 서재. (밤)
고사장, 혜미 앉아있는.
고사장 : 회장님 댁에 찾아 갔었다구?
혜미 : 네. 준석씨에 대한 정보를 좀 얻을까 해서요.
고사장 : (웃으며) 별로 건진 건 없을 텐데?
혜미 : 네.
고사장 : 그 어른 아들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으시지.
아들한테 눈길 주셨던 건 그 배우하던 여자애하고 스캔들 났을 때 잠시였을 거다.
당신의 불운한 운명에만 집중 하시느라 다른 데 신경 쓸 여력이 없으신 양반이라.
혜미 : 그 소문은 사실인가요?
고사장 : (보면)
혜미 : 고참 여사원이 예전에 떠돌던 소문을 얘기해줘서요.
고사장 : (미소 짓고) 회장님이 밖에 봐둔 여자 자궁을 들어냈다는?
혜미 : .....
고사장 : 여자들 입방아겠지. 사실이라고 해도 누가 알겠냐.
혜미 : 회장님 문병 가고 싶다고 했더니 그럴 거 없다고 딱 자르시던데.
고사장 : 남편에 대한 원한이 깊으신 분이니. 너도 그 집 사람이 될 테니 알아둬서 나쁠 거 없겠지.
만석꾼 집안에 무남독녀 외딸로 귀하게만 자라시다가 일본 유학 갔던 정혼자가 불의의 사고로 죽고,
집안에서 부리던 무지랭이나 다름없는 남자를 아버지의 강압에 못 이겨 남편으로 맞으셨으니
불운한 분이라면 불운한 분이겠지.
혜미 : 왜 그런 신분 차이가 있는 결혼을 하신 거죠?
고사장 : 옛날 분들 아니냐. 한번 정혼 했으니 이름 있는 대가집으로 출가할 길은 막혔고,
가세도 조금씩 기울어가고 하나 있는 귀하디 귀한 딸 믿고 맡길 남편감은 필요하고,
돌아가신 그 어른 아버님께서 집안에서 부리던 종이나 다름없는 젊은이를
눈여겨보다가 사위로 얻으신 거지.
가난하지만 똑똑한 젊은이를 데릴사위로 얻는 게 그 양반한테는 최선의 선택이셨던 거 같더구나.
혜미 : 그렇다고 남편에게 원한까지 가지실 건? 아버지의 선택이셨다면?
고사장 : 돈 때문에 당신과 결혼 했다고 생각하시는 거겠지. 첩 자궁을 드러냈다는 소문이 나는 것도
부부 사이가 원만하지 못했다는 증거일테고.
혜미 : ......
고사장 : 쉽지 않은 집안이고, 쉽지 않은 상대다.
하지만 부모 정모르고 자란 친구일수록, 한번 정을 주면 헤어나지 못하는 법이다.
네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얼마나 힘을 갖게 되느냐도 결정 되겠지.
혜미 : .....
#.28 씬. 혜미의 방. (밤)
혜미, 화장대 앞에 앉아있는. 그 위로.
고사장 : (E) 부모 정 모르고 자란 친구일수록 한번 정을 주면 헤어나지 못하는 법이다.
동네 길에서 마주쳤던 준석과 윤희의 모습.
휴게실에 마주 앉아 식사를 하던 준석과 윤희의 모습.
혜미 : (차가운 표정으로 거울을 바라보는)
#.29 씬. 병실. (밤)
준석, 유회장 옆에 앉아있는.
준석, 문 쪽을 보는. 간호사 들어오고.
준석 : (약간 실망의 기색이)
간호사 : (유회장 상태 체크 하고 나가는)
준석 : (다시 앉고)
윤희가 원맨쇼 하던 모습이 스치고.
준석 :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시계를 들여다보고, 문을 보고)
씬.29-1 여행사 내. (밤)
미희, 사무실 쪽으로 움직이면서, 직원에게.
미희 : 가이드들한테 단단히 주의 줘. 또 보신 관광이다 뭐다 해서 고객들 끌고 다니면 다 해고라고.
직원 : 네.
#.30 미희의 사무실. (밤)
윤희, 서류 정리하고 있으면.
미희 : (들어오면서 뒤에 대고) 예약 상황 제대로 확인해.
(문 닫고 윤희에게) 똑바로 해라, 똑바로. 저번처럼 괌하고 싸이판 섞어놓지 말고. 전세기는 따로 분류하고.
윤희 : 해도 너무 하는 거 아니냐? 월말마다 이렇게 부려먹으면서 용돈을 따로 챙겨주는 것도 아니고.
미희 : 빚에서 까주잖아. 근데 정말 너 깡통 찬 거야?
윤희 : 관리대상 종목이래.
미희 : 네가 하는 짓이 그렇지. 지가 뭘 안다고 주식은. 도대체 누구 꼬임에 빠져서 주식엔 손을 댄 거니?
윤희 : 내가 귀가 그렇게 얇은 사람이야? 꼬임에 빠지게? 나의 단독 결단이었지.
미희 : 네가 무슨 국가 원수냐? 단독 결단은?
수민, 야참 봉투 들고 들어오는.
수민 : 야식 사왔어요.
미희 : 누가 사오랬어?
수민 : (윤희 보면서) 많이 드시잖아요?
윤희 : (얼른 봉투 받으면서) 고마워요. 역시 수민씨 밖에 없다니까.
수민 : 일찍 안 끝나실 거 같죠?
윤희 : 아니예요. 조금만 기다려요.
미희 : 뭐야? 둘이 또 고스톱 치려구? 누구 돈 따먹겠다고 그 짓들을 한다니?
수민 : 오락이죠 뭐.
윤희 : (동시에) 오락이지.
미희 : 둘이 사겨라. 아주.
수민 : 전 윤희씨가 우리 사무실에 나왔으면 정말 좋겠어요.
윤희 : 그건 안 된다니까요. 제가 없으면 우리 회사 바로 그날로 문 닫아야 하거든요.
미희 : 과대망상엔 아직 특효약 없다니?
(핸드폰 울리고) 여보세요? 네? 전데요? 아니, 그걸 왜 거기로 보내요?
주소 하나 제대로 못 알아내고 수고비 받아요? 내가 지금 갈 테니까 기다려요. (전화 끊고 가방 드는)
윤희 : 크레임 걸렸어?
미희 : 나 좀 늦을테니까 다 끝내고 들어가. (급하게 나가는)
수민 : 들어가세요, 사장님.
윤희 : 뭐가 저렇게 급해?
수민 : 요새 뭐 극비리에 추진하시는 일 있나봐요? 흥신소 직원 같은 사람도 찾아오고....
윤희 : 흥신소? 요즘도 그런 게 있나?
수민 : 어머, 모르세요? 요즘 바람난 남편들 때문에 거기가 얼마나 성업 중인데요.
윤희 : 자기가 바람 날 남편이 어디 있다구.
#.31 씬. 동네 길. (밤)
윤희, 걸어오면, 수찬 나무 밑에 쪼그리고 앉아 왝왝거리고 있는.
윤희 : (지나가려다, 수찬의 등을 두드려주는)
수찬 : (보는, 그러다 토하고)
윤희 : 얼마나 마셨길래 이러나.
수찬 : .....
시간 경과.
나무 밑에 앉아있는 수찬과 윤희.
윤희 : 좀 편해요?
수찬 : .....
윤희 : 하긴 토했다고 편해지나. 사면초과실텐데.
수찬 : .....
윤희 : 죄를 지었으면 그냥 자수를 해요.
수찬 : (홱하고 윤희의 멱살을 잡는) 네가 뭘 알아? 네가 뭘 안다고 떠들어?
윤희 : (놀라고 분해서) 경찰이 그랬다며? 당신이 가장 유력한 용의자라구?
안 죽였으면 알리바이 대라고 그랬다며? 동네에 소문 쫙퍼졌어.
술먹고 왝왝거리는 것도 괴로워서 그러는 거잖아? 그렇게 괴로울거면 자수를 하라는데 왜성질이야?
수찬 : 제비짓하던 여자하고 붙어 있었다. 근데 그 여자가 알리바이 못대 주겠단다.
됐냐? 이제 고소하냐? 제비 짓하던 새끼 잘 됐다 싶냐?
윤희 : (빤히 보다가) 사람을 죽일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어.
수찬 : .....(보다가 맥 없이 멱살 놓고 팔 늘어뜨리는)
윤희 : 그냥 그렇더라구. 그렇게 독한 인간은 못 되는 거 같드라구.
내가 주먹 날릴 때마다 고스란히 맞는 것도 그렇고.
수찬 : 난 여자는 안 때린다.
윤희 : 그러니까. 죽은 사람이 여자라며. 때리지도 못하는데 죽이기야 했겠냐구.
수찬 : (보다가 픽 웃고 마는)
윤희 : (웃는)
수찬 : 근데 왜 반말인데?
윤희 : 그러는 댁은?
수찬 : 내가 댁보다 제조연월이 얼마나 오래 됐는 줄 아냐?
윤희 : 오래 됐다고 자랑하는 거냐? 지금?
수찬 : 내가 첫사랑에만 성공 했어도 댁만한 딸이 있네요.
윤희 : 내가 그 눈물겨운 첫사랑하고 닮았다며?
수찬 : (웃고) 그래, 맞먹어라, 맞먹어. 아예, 친구 먹자, 친구.
윤희 : 내가 늙다리 친구 둘 일 있냐?
수찬 : 한마디도 지는 법이 없지.
윤희 : 입 뒀다 뭐하게?
수찬 : 아, 그래, 친구 먹자니까.
윤희 : 친구 아저씨?
수찬 : 호칭 참 기발하다.
윤희 : 알리바이 증명 못해서 감옥 가면 사식은 넣어줄게, 친구 좋다는 게 뭐겠어.
수찬 : 너한테 사식 받아먹기 싫어서라도 내가 알리바이 증명 해내고 만다.
윤희 : (수찬 어깨 두드리며) 결의 좋고.
#.32 씬. 병실. (밤)
준석, 유회장 옆에 서있는.
준석 : 확실한 아버지 편 안 오네요. 오늘은 심심하시겠어요. 갈게요.
(돌아서다가, 다시 보며) 저도 오늘은 심심했어요.
#.33 씬. 수찬의 방. (밤)
수찬 들어와 벌렁 침대에 눕는. 어둠 속.
덕길 : (E) 너냐?
수찬 : (놀라서 벌떡 일어나는)
침대 밑에 앉아있는 덕길.
수찬 : 뭐? 뭐야?
덕길 : 너가 그랬냐? 수연이?
수찬 : 뭐? 뭘?
덕길 : 수연이.....너가 죽였냐고?
수찬 : 미쳤어? 내가 수연일 왜 죽여?
덕길 : 걸리적 거렸을 거 아녀. 네 놈은 출세하고 싶어서 이 여자 저 여자 찝쩍거리며 사는 제비 놈인게
수연이가 더 이상 그러고 살면 안 된다고 했을 거 아녀.
수찬 : 수연이가 나한테 뭔대? 지가 뭐라고 내 인생에 감놔라 배놔라 하는데?
덕길 : 니 아들을 낳은 여자니께.
수찬 : (멍하니 굳어지는) 뭐?
덕길 : 니 아들을 낳은 여자니까 자기 새끼 에비가 그 꼴로 사는 건 볼 수 없었을 거니께.
수찬 : 지...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덕길 : .....
수찬 : (일어나서 덕길을 잡아일으키는)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냐구?
덕길 : 고니.....니 아들이여. 수연이가 낳은.....
수찬 : ......
#.34 씬. 수찬의 집 거실. (밤)
덕길, 어둠 속에 앉아있는.
#.35 씬. 수찬의 방. (밤)
수찬 : (힘없이 침대에 앉아있는)
#.36 씬. 수찬의 집 거실. (밤)
수찬, 방에서 나와 어둠 속에 앉아있는 덕길을 보고, 덕길의 방으로 가는.
#.37 씬. 덕길의 방. (밤)
고니, 잠들어 있는.
수찬 들어오는.
수찬 : (믿기지 않는 눈으로, 다가서지도 못하고 서서 잠든 고니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38 씬. 수찬의 집 거실. (밤)
덕길, 어둠 속에 우두커니 앉아있고.
그 위로 스치는 회상씬.
시골 집 마당.
어린 아이를 보태기에 싸 들고, 가방 들고 서있는 수연.
덕길 : .....수연아?
수연 : 오빠가 좀 맡아줘요. 애는 순해요.
덕길 : 수연아?
수연 : 오빠 밖에 없어서.....오빠 밖에 믿을 사람이 없어서.....
덕길 : 누, 누구 애여?
수연 : ......
덕길 : 수, 수찬이 앤겨?
수연 : (눈물을 주루룩 흘리는)
#.39 씬. 수찬의 집 부엌. (밤)
식탁 앞에 마주 앉아 있는 덕길과 수찬. 각자 소주병 하나씩 들고 앉아있는.
덕길 : (쭉 마시면서) 너 애냐고 물으니께 아무 말도 못허고 눈물만 주루룩 흘리더라. 그것이 8년 전이여.
수찬 : (술을 마시는)
덕길 : 그 모습이 월매나 애닮던지 내 가슴이 뭉그러지는 줄 알았다. 너가 뭔 짓을 했는지 알겄냐?
수찬 : 내.....내.....내 애란 말이지?
덕길 : 어려서 너 하는 짓 그대로 혀, 저 놈이.
수찬 : 아, 아니야. 그럴 리 없어.
덕길 : 에라, 이 호로 새끼야.
수찬 : 그랬으면 왜.....그랬으면 왜.....
덕길 : 짐승도 지 새끼는 알아보는 법이여. 나가 아무리 길바닥에 나앉게 생겼다고
내 새끼까지 달고 너한테 빌붙으러 왔겄냐?
살면서 정 붙이믄 그때 얘기해주려고 혔어. 고니 저것도 충격 좀 덜 받게.....
수찬 : (일어서며) 아냐. 아냐. 뭔가 잘못 된 거야. 그랬으면 수연이가 왜?
덕길 : 왜? 뭣이?
수찬 : 내 애라고 한 것도 아니라며?
덕길 : 오죽혔으면 말도 못허고 울기만 했겄냐? 에비 없는 자식 낳아 키운 그 심정이 오죽 했으면?
그 가여운 것을 버리고 도망친 너 같은 놈은 사람 새끼도 아녀.
수찬 : 아냐. 아냐. (힘없이 방으로 걸어가는)
덕길 : (혼잣말) 너가 아무리 그런다고 니 새끼가 남의 새끼 되겄냐.
#.40 씬. 수찬의 방. (밤)
수찬, 침대에 앉는.
회상씬으로 연결.
#.41 씬. 동네 길. (밤)
실루엣으로 처리.
수찬 : (수연을 잡으며 무릎을 꿇는)
수연 : (가방 들고 냉정하게 돌아서는)
수찬 : (마지막까지 손을 놓지 못하고)
수연 : (뿌리치고 뛰어가는. 다가오는 검은 색 승용차. 승용차에 올라타는)
수찬 : (고개를 꺾고 어깨를 흐느끼는)
#.42 씬. 수찬의 집 거실. (아침)
수찬, 덕길, 고니 밥 먹고 있는.
수찬 : (물끄러미 고니를 보는)
덕길 : (수찬과 고니를 슬며시 곁눈질 하는)
고니 : 아부지? 오늘은 국이 좀 짠 거 같은디?
덕길 : 싱거운 날이 있으면 짠 날도 있어야제.
고니 : 일간성이 있어야 하는 거 아녀요?
덕길 : 일관성, 일관성.
고니 : 예슬이가 사람은 일간성이 있어야 한다고 하던디?
덕길 : 가족 이기자 주의도 갸가 가르쳐 준겨?
고니 : 야.
덕길 : 갸는 똑똑한 척은 독판 다하문서 워째 그리 지대론 게 없는겨.
고니 : 그랴도 갸가 우리 반에서 1등인디.
덕길 : 등수도 안 나오는디? 그걸 어찌 아냐?
고니 : 자기가 그랬는디, 영이 자식도 그렇다고 허고.
덕길 : 그럼 좀 지대로 된 걸로 갈쳐달라고 혀.
고니 : 아니, 갸가 날 뭘 갈치겠다고 하는 것은 아니고, 내가 줏어듣는대로 하는 거이제. 아저씨?
수찬 : (보면)
고니 : 지가 아저씨 덕을 쪼매 보고 있구만요.
아저씨가 허라는대로 여자애들한테 헌께 인기가 날로 상장가라니께요.
덕길 : 상종가, 상종가.
고니 : 아부지는 좀 새겨들으면 안 되겠는가? 대화가 안 되잖여.
지는요, 아저씨. 앞으로 인생으 목표가 확실해졌어라.
수찬 : .....
고니 : 아저씨처럼 되는 것이 지 인생 목표라니께요.
수찬 : (일어나 나가는)
고니 : 참말로 존경해요. 아저씨.
수찬 : .....
덕길 : 얼른 먹고 학교나 가.
#.43 씬. 커피숍. (낮)
수찬, 급하게 걸어오는. 영주 앉아있는.
수찬 : (자리에 앉으며) 당분간 만나지 말자며? 어젠 당황해서 그런 거지? 갈까? 지금 바로 가면?
영주 : 백수찬?
수찬 : (보는)
영주 : 너 뭐하는 자식이야?
수찬 : .....
영주 : 너 그렇게 더티한 놈이었니?
수찬 : 자기야?
영주 : 알리바이 증언 못해주겠다니까 바로 그딴 걸 집으로 보내?
수찬 : 자기?
영주 : (물을 확 수찬의 얼굴에 뿌리는) 자기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수찬 : .....
영주 : 너 오늘로 해직이야. (일어서는) 너 앞으로 그딴 식으로 살지마. 이, 더.러.운. 자.식.아. (걸어가는)
수찬 : (멍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44 씬. 경찰서. (낮)
강형사, 뭔가를 뚫어지게 보고 있는.
김형사 뒤로 걸어와 들여다보는.
김형사 : 정미희. 무슨 사건이예요?
강형사 : (미소 짓고)
김형사 : 새 사건 배당 됐어요?
강형사 : 연애 사건이다.
김형사 : 치정이예요?
강형사 : 딱 내 스타일 아니냐?
김형사 : 결혼상담소에 등록 했어요? 그런 거 무드 없어서 싫다면서요?
강형사 : 사랑이라는 게 말이다. 벼락이거든. 순간 으악 하고 내려 꽂히는 거야.
그런 걸 결혼상담소 같은데서 맞겠다는 말이 되냐?
김형사 : 벼락 맞으면 사랑이고 뭐고 없이 그냥 가거든요.
강형사 : 네가 사랑에 대해서 뭘 알겠냐.
김형사 : 백수찬 알리바이는 어떻게 됐는데요?
강형사 : 심리적으로 압박을 주고 있으니까 답이 오겠지.
김형사 : 그러다 튀는 건 아니구요?
강형사 : 그럼 내가 범인입니다 하고 자백하는 꼴이니 찾아내서 잡아넣으면 되는 것이고.
#.45 씬. 동네 길. (낮)
운전하는 수찬. 핸드폰 블루투스 기능으로.
수찬 : 아, 며칠 내로 입금 시킨다니까요. 내가 언제 결재일 어긴 적 있습니까?
아 그땐 여행 가느라 깜빡 했던 거구. VIP 고객을 이렇게 관리하면 곤란 하죠.
내가 일년 카드 사용 금액이 얼만지 모르는 것도 아니실테고.
기다려보세요. 아, 기다리라니까.
차 멈추고. 차에서 내리면서. (탁 끊는데 다시 울리는 벨)
수찬 : 여보세요? 네, 맞는대요. 아, 네. 아 그게 제가 사정이 있어서 몇 달 연체가 됐는데.
리스 좋다는 게 뭡니까? 뭐요? 반납이라니? 내가 거기랑 하루 이틀 리스 거래 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야박하게 나오면 정말 곤란하죠.
이 차 만기 되면 내가 인수 한다니까, 인수 한다구. (앞 보면)
서 있는 강형사.
강형사 : (손짓으로 인사하고)
수찬 : (전화 끊고)
강형사 : 뭐 많이 쪼들리시는 일 있나봅니다.
수찬 : 그건 형사님이 아실 거 없구요.
강형사 : 물론 그거야 제가 알 거 없고. 제가 알고 싶은 건 사건 당일의 백수찬씨 알리바이 뿐이죠.
수찬 : 이거 합법적인 거 맞아요? 이런 식으로 선량한 국민 괴롭히는 거?
단지 알고 있었다는 것만 가지고 이러는 건..... 고향이 같은 사람이 나 하나도 아니고.
덕길 형도 같은 고향인데 그럼 덕길형도 용의잡니까?
강형사 : 양덕길씨는 연수연씨의 핸드폰 번호를 가지고 있던 단명희씨 컴퓨터에 사진이 있진 않았죠.
아, 참, 오늘 백수찬씨 동네 아주머니 분께서 새로운 증언을 하나 해주셨는데.
수찬 : .....
강형사 : 연수연씨와 연애질한다는 소문이 동네에 돈 적이 있었다는데?
수찬 : .....
강형사 : 아, 죄송합니다. 표현이 거칠었네요. 사귄다는 소문이 돈 적이 있었다구.
수찬 : .....
#.46 씬. 학교 교정. (낮)
수찬, 강형사 서있는. 영주 걸어오는.
영주 : (무시하고 가려면)
수찬 : 형사분이신데. 그날 증언을 좀 해줘야 할 거 같아서.
영주 : 너, 정말.....
수찬 : 해직까지 됐는데, 나도 나 살 궁리해야 할 거 아냐.
영주 : .....
강형사 : (다가와서 신분증 보이고) 강북서의 강역개 형삽니다.
영주 : (날카롭게 보고)
강형사 : 살인 사건 때문에 찾아왔습니다.
사건 당일의 알리바이로 백수찬씨께서 민영주씨와 함께 있었다고 해서 말이죠.
영주 : 그런 일 없어요. 해고된 분풀이로 이러는 거예요. (걸어가는)
강형사 : 아니라는데요. 다른 거 찾아보셔야겠네.
수찬 : .....
#.47 씬. 수찬의 집 앞. (낮)
수찬, 힘없이 걸어오면.
하니, 보경 뭐라고 수군거리고 있다가 얼른 집으로 각자 들어가는.
수찬 : (무안하고)
덕길 우편물 잔뜩 들고 서있는.
덕길 : 뭔게 이렇게 많디야. (수찬에게 주면)
수찬 : 버려.
덕길 : 고지서 같은 것도 있는디.
수찬 : (집으로 들어가 버리는)
#.48 씬. 수찬의 방. (낮)
수찬, 침대에 누우면, 덕길 우편물 들고 들어오는.
덕길 : (우편물 침대 옆 테이블에 놓으며) 벌금용지도 있어야. 이런 거 제때 안내믄 큰일 나는 거 아녀?
수찬 : 귀찮아. (얼굴 묻고 눕는)
덕길 : (보다가) 저그 말이다. 어젯밤에 수연이가 꿈에 보이던디.
수찬 : ....그래서?
덕길 : 너, 아니제? 그건 아니제? 아니다 싶으면서도 혹시나 혀서.
수찬 : (벌떡 일어나며) 형은 날 그렇게 못 믿어? 내가 사람 죽일 놈이야? 그것도 사랑했던 여자를 죽일 놈이냐구?
덕길 : 사랑을 허긴 혔냐?
수찬 : .....
덕길 : 형사양반은 자꾸 찾아와쌌고 내 맘도 불안해서 그랴.
에미도 그렇게 불쌍하게 죽었는디 에비까지 죄인이믄 고니 놈이 너무 가여워서.....
수찬 : 날 그렇게 몰라? 정윤희도 난 범인 아닌 거 같다고 그러더라. 사람 죽일 사람은 아닌 거 같다구?
덕길 : 윤희씨야 워낙 순진하고 착한께로.
수찬 : 나가. 나가라구.
덕길 : 난 믿는디. 사람이라는 짐승이 워낙 요상해서.....(나가는)
수찬 : (베게를 벽에 던져버리는)
#.49 씬. 미희의 방. (낮)
미희, 옷 갈아입으며 핸드폰 중.
미희 : 네? 해....해....고요?
윤희, 문 여는.
윤희 : 밥 먹어.
미희 : (윤희가 문 연 것도 모르고 흥분해서) 아니, 집안 일로 무슨 해고를. 지 마누라 단속 못한 게 잘못이지.
무슨 그런 공과 사도 구분 못하는 인간들이 다 있어.
죽자고 공부해서 교수 된 사람을 지 마누라하고 바람 좀 폈다고 잘라?
윤희 : 무....무슨 소리야?
미희 : (윤희 보고, 놀라는)
윤희 : 무슨 짓을 한 거야?
미희 : (전화 끊고)
윤희 : 무, 무슨 짓 했지? 그렇지?
미희 : 또 유럽 여행 한다고 하길래 확 열 받아서.....
윤희 : 열 받아서 뭐?
미희 : 캄보디아에서 찍은 사진.....그 남편한테 보냈지 뭐.
윤희 : (기가 막히고)
#.50 씬. 윤희의 집 거실. (낮)
선우, 상 차리고 있으면.
선우 : 안 내려온대?
윤희 : 죄의식에 시달려서 못 먹겠대요.
선우 : 뭔 의식?
윤희 : 그런 거 있어요. 엄마는 좋겠어.
선우 : 뭐?
윤희 : 유능한 딸 둬서 좋겠다구.
선우 : 너 월급 오르냐?
윤희 : 아, 됐어.
선우 : 아. 가서 예슬이나 불러와.
#.51 씬. 동네 길. (낮)
윤희 걸어오는.
고니, 영, 줄넘기 잡고 빙빙 돌리고 있고.
예슬 껑충 껑충 뛰고 있다.
예슬 : (발에 걸리고) 팽팽하게 잘 잡으라니까.
고니 : 영이 쟈가 그랬는디.
영 : 아니다. 고니 저 자식이.
예슬 : 공통 책임이야.
고니 : 공동 아니냐?
예슬 : 공동이랑 공통이랑 같은 말인 것도 모르니?
고니 : 아, 알어야.
윤희 : 밥 안 먹어?
예슬 : 잠깐만, 이거 기록만 세우고.
윤희 : 상 다 차렸단 말이야.
예슬 : 삼십번만 하면 돼. 이번엔 잘들 하는 거다.
고니, 영, 응 하고 대답하고.
윤희 : 저건 할머니가 오냐 오냐 하니까 무서운 게 없어.
(돌아보면, 수찬 우두커니 앉아있다) 뭐해요? 여기서?
수찬 : 애들 노는 거 보잖아.
윤희 : 친구 먹었다고 말 본격적으로 까는구나.
수찬 : 그럼 그쪽도 까시던가.
윤희 : 난 워낙 경로사상이 투철해서 반반 섞고 했네요.
수찬 : 그러시든가.
갑자기 달려와 요란한 소리 내면서 멈추는 승용차.
애들 놀라서 비켜서고.
수찬 일어서는. 영주 남편 차에서 뛰어내리는.
영주, 차 안에 난감한 표정으로 앉아있고.
남편 : (수찬을 보고) 너 이 새끼. (마구잡이로 수찬을 잡아 두둘겨 패는)
윤희 : (놀라서) 왜, 왜 이러세요? (그러다 차 안에 앉아있는 영주 보고 상황이 이해 되는)
아이들 놀라서 입 벌어지고.
고니 : (달려들어) 왜 이런다요? 우리 아저씨한테.
남편 : (고니를 밀쳐내고)
고니, 그 바람에 옆으로 쓰러지고.
남편 : (수찬을 마구 짖밟으면서) 사내 새끼가 할 짓이 없어서 유부녀나 꼬여내?
전임 자리 하나 얻자고 그 더러운 짓을 하냐, 이 새끼야? 네가 그러고도 사람 새끼냐?
고니 : (울면서) 우리 아저씨한테 그러지 마서요.
수찬 : (맞으면서 우는 고니를 보는. 슬로우로. 맞는 모습과 우는 고니의 얼굴, 교차 되면서)
고, 고니 좀 데려가.
윤희 : (남편을 말리면서) 이보세요? 이보세요? 분하신 마음은 알겠는데.....
수찬 : (절박하게 소리 지르는) 고니 좀 데려가라구, 제발.
윤희 : (순간 멈칫하고, 우는 고니를 일으켜 세워 데리고 가는. 영, 예슬 따라가고)
죽을 만큼 맞는 수찬.
수찬 : (맞으면서 울며 걸어가며 돌아보는 고니를 보는)
영주, 차에서 내리는.
영주 : (버럭) 그만 좀 해.
남편 : (순간 멈칫 하고)
영주 : 아무 것도 아니라고 했잖아. 다시는 그런 일 없다는데 정말 창피하게 왜 이래?
남편 : .....
영주 : 그러게 관심 좀 갖지 그랬어? 당신이 그러지 않았으면 이런 일도 없었다구?
(울면서) 미안하다구. 잘못했다구. 그러니까 여기서 끝내자구.
이혼 하자면 해준다는데 진짜 왜 이러니?
남편 : 누가 이혼 한대?
영주 : ......(우는)
남편 : (다가와 영주 팔 잡고 걸어가는)
영주 : (남편 어깨에 기대 울면서, 차에 올라타는)
차 떠나는.
수찬 : (만신창이가 되서 멍하니 앉아있는)
#.52 씬. 동네 언덕. (낮)
수찬, 입이 터지고 눈에 멍이 들고 말이 아니다.
윤희, 구급약통 들고 걸어오는.
윤희 : 어디 갔나 했네.
수찬 : .....
윤희 : 응급실 가야 하는 거 아닌가?
수찬 : .....
윤희 : (옆에 앉아서 구급통 여는) 무지하게도 팼네. 이리 대봐요. (수찬 얼굴 돌리려고 하면)
수찬 : 됐어.
윤희 : 되긴 뭐가 돼. 이 꼴로 어떻게 집에 들어가려구. 고니 많이 놀란 거 같던데.
수찬 : .....
윤희 : (수찬의 얼굴에 약 바르고, 밴드 붙이고) 좀 매를 버는 스타일이구나 하긴 했지만, 너무 심하다.
수찬 : 제비 새끼가 그렇지 뭐.
윤희 : 무슨 자학 모드. 철학이 있는 제비라며? 내 앞에 앉은 여자가 원하는 남자가 되어준다.
수찬 : 그런다고 제비 아니냐.
윤희 : 알면 됐구. 이빨 빠진 건 없어요?
수찬 : 없어.
윤희 : 그럼 큰 돈은 안 들어가겠네.
수찬 : (웃고)
윤희 : 이 상황에 웃음이 나오나?
수찬 : 그러게. 근데 댁이 웃기잖아?
윤희 : 아, 주체 할 수 없는 이 유머 감각은 어째야 쓸까나.
수찬 : (웃음 터트리다가 아, 하고 입 문지르는)
윤희 : 살 살 좀 웃지. 웃긴다고 그렇게 심하게 웃나? 이 사람아?
#.53 씬. 수찬의 집 거실. (낮)
수찬, 들어오는. 덕길 방에서 나오는.
덕길 : 사단 있었다며?
수찬 : .....
덕길 : 상태 보니 알만 허다. 고니 놈 상태도 안 좋다.
들어가서 달래가지고 나와라, 밥 먹게. (부엌으로 움직이고)
수찬 : (덕길의 방으로)
#.54 씬. 덕길의 방. (낮)
고니, 벽에 기대 고개 숙이고 앉아있는.
수찬 들어오는.
수찬 : 많이 놀랬냐?
고니 : 지는요, 아저씨, 참말로 아저씨 존경 했거든요.
수찬 : .....
고니 : 근디요. 오늘 보니께 그건 아니다 싶네요.
수찬 : 밥 먹자. (나가는)
고니 : .....
#.55 씬. 수찬의 방. (낮)
수찬, 침대에 앉는. 눈물이 핑 도는, 참느라 입술을 깨무는.
#.56 씬. 미희의 방. (낮)
미희, 이불 쓰고 누워있는.
윤희, 들어오는.
윤희 : 더운데 찜질하냐? 잘했다, 잘했어. 애들 보는데서 사랑하는 남자 패대기 쳐지는 거나 보게 하고.
미희 : (이불 확 걷고)
윤희 : 그 여자 남편이 와서 죽지 않을 만큼 패고 갔어.
미희 : 백교수를?
윤희 : 그럼 누구겠냐?
미희 : 아니, 뭐 그런 인간이 다 있어? 바람 난 지 마누라나 두들겨 패던지 하지.
윤희 : 그 여잔 고상하게 차에 앉아서 지애인 남편이 패는 거 관람하고 있더라.
미희 : 아니, 무슨 그런 인간 같지고 않은 것들이.
윤희 : 진짜 언니 유능한 건 알아줘야겠다.
아무리 제비라지만, 멀쩡하게 교수 노릇하고 있는 남자 하루아침에 백수 만들고.
미희 : (버럭) 내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니?
윤희 : (버럭) 머리 좋은 인간이 그런 계산도 안 되디?
#.57 씬. 수찬의 집 앞. (밤)
수찬, 미희 서있는.
미희 : 진짜, 진짜 뭐라고 사죄를 드려야 할지.
전 정말 상황이 이렇게 악화되리라곤 예상도 못하고.
수찬 : 제가 자초한 일인 걸요.
미희 : 백교수님?
수찬 : 이제 교수 아닙니다.
미희 : (울먹해져서) 죄송해요.
수찬 : 아니라니까요. 다 제 잘못인데.....
미희 : (덥썩 수찬 손잡으며) 수찬씨, 인생 제가 책임질게요. 제가 져요, 수찬씨 인생.
수찬 : 저 자신도 책임 못 지는 인생을 어떻게 책임지시겠다고. 그러지 마세요.
미희 : (울음 터트리며) 정말 미안해요, 수찬씨.
#.58 씬. 레스토랑. (밤)
준석, 혜미 앉아서 식사하고 있는.
준석 : (포크 내려놓는)
혜미 : 많이 안 드시네요?
준석 : 네.
혜미 : (포크 내려놓고)
준석 : (보면)
혜미 : 많이 먹었어요. 그리고 보면 우린 소식하는 걸론 좀 닮은 거 같네요.
준석 : (물 마시는)
레스토랑에서 열심히 먹던 윤희의 모습이 잠시 스치고.
혜미 : 그렇죠?
준석 : 네?
혜미 : 무슨 생각?
준석 : 아닙니다.
혜미 : 우린 말 많이 하는 거 귀찮아하는 것도 닮은 거 같다구요.
준석 : .....
혜미 : 우린 꽤 조용한 커플이 되겠어요. 애들 낳으면 조용한 가족이겠네요.
준석 : .....
혜미 : 저 농담 한 건데....
준석 : (무표정)
혜미 : (무안해서 물만 마시고)
#.59 씬. 병원 복도. (밤)
준석, 걸어가는. 병실 앞에 서면, 유회장만 누워있고.
준석 : (조금 실망스러운)
#.60 씬. 동네 길. (낮)
이삿짐 트럭 서있고.
보경, 선우, 하니, 서있는.
선우 : 좀 도와줘야 하는데.
하니 : 이삿짐 업체에서 와서 하는데 뭐 도와줄 게 있나요?
선우 : 잘 되서 떠나는 게 아니라 마음이 그렇네.
영자, 걸어오는.
영자 : 어머, 누구네 이사 가나봐요?
보경 : 외출 했다 오세요?
영자 : 웨딩 페스티벌이 있다고 해서. 출가할 딸 두니까 갈 데도 많네. 그런데 누구네?
하니 : 김대리님이요. 애기 혼자 키우기도 그렇고 해서 본가가 있는 광주로 발령 요청 했대요.
영자 : 아, 그래요. 요즘 내가 바빠서 동네일에 영 신경을 못썼더니,
선우 : 워낙 바쁘셔서 김대리 상당했을 때도 못 뵙겠드라구요.
영자 : 그때야.
보경 : 아, 왜 그때 말씀 하셨잖아요? 다니시는 점집에서 혼사 앞두고 액 있는 집에 가는 게 좋지 않다고.....
선우 : 그게 다 미신 아닌가.
영자 : 그러게요. 미신인 거 알면서도 혼인 앞둔 딸 둔 에미다 보니 뭐 하나 조심스럽지 않은 것도 없고.
다 딸 둔 죄죠 뭐. 사람 노릇도 제대로 못하고.
보경 : (얼른 끼어들며) 회사 사람으로 들어오는 거겠죠? 김대리 집이요? 외부 사람 들어오면 좀 그런데?
선우 : 우리도 외부 사람인데 좀 그렇겠네?
보경 : 아이고, 예슬이네야, 입주 초부터 함께 살아서 가족 같지만 나중에 들어오는 외부 사람이야, 그런가요.
하니 : 그리고 보니 백교수님도 외부 사람이었네요. 통 그런 거 못 느끼고 살아서 몰랐네.
보경 : 근데 난 요즘은 좀 거리가 생기고 그렇드라구. 사람 마음 참 간사하지.
영자 : 아니, 왜? 백교수가 뭐 서운하게 한 게 있나?
보경 : 사모님, 그게요.
선우 : 아, 뭐 좋은 일이라구.
보경 : 그래도 사모님은 아셔야죠. 동네 제일 어른이신데.
#.61 씬. 대식의 집 거실. (낮)
텅빈 집. 대식 멍하니 서있는.
아줌마, 부엌에서 그릇 챙겨 나오는.
아줌마 : 참, 이거 찬장 저 안에서 나오던데요. (작은 노트 하나를 내미는)
대식 : (받아서 열어보는)
#.62 씬. 동네 길. (낮)
조깅하는 수찬, 뛰면서 웃는.
명희 : (E) 그 사람은 오늘도 뛴다. 그리고 웃어준다, 오늘도.
그이는 이제 뛰지 않는다. 회사 일에 지쳐서 그이는 이제 뛰는 걸 잊어버렸다.
새벽마다 동네 언덕에서 만나던 그 때를 그이는 이제 기억하지 못한다.
#.63 씬. 영자의 집 마당. (낮)
수찬이 향수를 선물하던 모습. 동네 여자들.
향수를 받고 수줍게 미소 짓는 명희.
명희 : (E) 그 사람이 나에게 쟈스민 향수를 선물 했다. 나에게 어울리는 향이라고 했다.
그이는 이제 기억하지 못한다. 당신한테선 라일락 냄새가 나. 그렇게 말해주던 시절을.
그이는 이제 늘 똑같은 말을 한다. 계획적으로 살자, 계획적으로.
#.64 씬. 대식의 집 거실. (낮)
대식, 눈물이 글썽한 눈으로 노트를 보고 있다. 그 위로.
명희 : (E) 그 사람 사진을 자꾸 찍게 된다. 이러지 말자 하면서도....
#.65 씬. 명희의 집 마당. (낮)
대식, 손에 꼭 노트를 쥐고 나온다.
걸어오는 수찬을 보는. 그 위로.
명희 : (E) 날 보고 웃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좋아서.
이젠 날 똑바로 봐주지도 않는 그이가 서운할 때면 자꾸 나도 모르게 그 사람 사진을 찍게 된다.
지난 시절 어느 땐, 그이도 날 보고 저렇게 환하게 웃어주던 시절이 있었는데.....
대식 : 저기요. (지나가려는 수찬을 불러세운다)
수찬 : (어색하게 보는)
대식 : 미, 미안 했습니다.
수찬 : ......
대식 : (인사하고 걸어가는)
수찬 : (바라보는)
#.66 씬. 수찬의 방. (낮)
덕길, 걸레질 하고 있는. 수찬 들어오는.
덕길 : 왜 벌써 들어온디야? 여기 저기 가봐야 할 때 많다믄서?
수찬 : (침대에 앉고)
덕길 : 다른 자리 알아보러 나간다믄서?
수찬 : 벌써 소문 쫘하게 나서 선생 노릇은 그른 거 같아.
덕길 : 너 왜 핸드폰은 안 받냐?
수찬 : 왜?
덕길 : 무슨 자동차 리스 회사에선가 전화 왔던디. 연체 되서 오늘로 차 회수해 간다고.
수찬 : 뭐? (벌렁 누우며) 아 맘대로 하라고 해, 맘대로.
덕길 : 차도 돈 주고 산 거 아니었냐? 무슨 차를 회수 해 간다고 그래쌌냐?
수찬 : 아, 몰라.
덕길 : (테이블 위에 우편물 보고) 이건 속도위반 딱진데 이런 건 내야 하는 거 아니냐?
뭐여? 양평에서 찍힌 거네. 이것은 청평이고.
참 여러 군데도 돌아다녔다. 평자 돌림만 돌아다녔냐?
수찬 : (퍼뜩 일어나 우편물 보는)
#.67 씬. 동네 길. (낮)
수찬, 급하게 뛰어나오는. 직원 차 상태 보고 있는.
수찬 : 뭡니까?
직원 : 연락 드렸을 텐데요. 차 회수하러 온다구?
수찬 : 지금 내가 급하게 갈 데가 있거든요.
직원 : 택시 타셔야겠네요.
강형사 차 다가오고.
강형사 : (차에서 내리며) 백수찬씨?
수찬 : (돌아보는)
#.68 씬. 길. (낮)
운전하는 강형사,
그 옆에 앉아있는 수찬, 벌금 용지 보여주면서.
수찬 : 그날이거든요, 이 날이.
강형사 : (슬쩍 보면서) 날짜는 맞네요.
수찬 : 요 옆에 이 네모 칸 가려진 거 안에 앉은 게 그 여자거든요. 아, 이런 건 왜 가리고 그러나?
강형사 : 댁들 같은 분들 때문에 그게 그렇게 된 거거든요.
수찬 : 좀 빨리 가시면 안 될까요?
강형사 : 규정 속도는 준수해야죠.
수찬 : 제가 마음이 급해서요.
강형사 : 제가요, 형사지, 댁 운전기사가 아니거든요.
수찬 : 백 명의 범인을 잡는 것보다 한 사람의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지 말아야 하는 게
경찰의 의무 아닙니까?
강형사 : 그래서 지금 운전해주잖아요.
#.69 씬. 모텔 내. (낮)
강형사, 수찬, 직원 서있는.
직원 : 기억 안 나는데....
수찬 : 나랑 그 여자랑 토요일마다 거의 오다시피 했는데 왜.
직원 : 그런 분이 한 둘인가요?
수찬 : (난감하고) 그러지 말고, 이거 정말 중요한 일이거든요.
직원 : 기억이 안 난다니까요.
강형사 : (둘러보다가, 천정 보면서) 저, 저건 뭡니까?
직원 : 네?
강형사 : 카메란 거 같은데?
직원 : 아, 네. 감시 카메라예요. 요즘 워낙 좀도둑들이 많아서요.
(씩 웃으며) 아시잖아요? 여기 손님들이 한번 잠들면 워낙 깊게 잠이 드셔서 문을 따도 모르고....
강형사 : 저것 좀 봅시다.
#.70 씬. 모텔 내 방. (낮)
감시 카메라 화면. 수찬 영주, 걸어 나오는. 밑에 찍힌 시간.
수찬 : 저, 저 보세요? 시간 시간?
강형사 : 저도 눈 있습니다.
#.71 씬. 동네 길. (낮)
수찬, 강형사 차에서 내리는.
수찬 : 이제 확실하게 용의 선상에선 벗어난 거죠?
강형사 : 아, 그 참. 그렇다니까요.
수찬 : 근데요?
강형사 : 벗어났다구요.
수찬 : 저 말고, 딴 용의자는 누굽니까?
강형사 : 그건 왜요?
수찬 : 그냥 좀 궁금해서요.
강형사 : 수사 기밀입니다.
수찬 : .....
강형사 : 깊은 사이였던 건 맞죠?
수찬 : ....
강형사 : 연수연씨하고? 그런 걸 묻는 거 보니 그렇네 뭐.
미희, 걸어오는,
미희 : 수찬씨?
강형사 : (화들짝 밝아지고) 아, 안녕하세요?
미희 : 네?
강형사 : 전....(신분증 보이면서) 전 강북서 강력계 근무하는 강역개 형삽니다.
미희 : (의아하게 보는)
강형사 : 제가 명함이 없어서.
미희 : (수찬에게) 그 수사 하신다는?
강형사 : (나서며) 네, 저 맞습니다.
미희 : 수고하시네요. 저기요, 수찬씨? (수찬을 끌고 가면서)
강형사 : 자주 뵐 겁니다.
미희 : (수찬에게) 많이 괴로우시겠어요?
수찬 : 이젠 자주 볼 일 없는데.
강형사 : 전 강역갭니다, 강역개, 이름이 강역갭니다, 강력계가 아니구요.
미희 : 저 사람 왜 저래요?
수찬 : 모르겠는데요.
미희 : 저기요, 수찬씨. 강남에 있는 유명 학원을 운영하는 제 친구가 있거든요.
거기에 수학 선생을 구한다거든요. 페이가 장난이 아니예요.
수찬 : 저 수학 잘 못하는데....
미희 : 네?
수찬 : 수학 못 한다구요.
미희 : 아. 네, 전 수학 쪽에 강하실 거 같아서. 원예학과가 이공계 아닌가요?
수찬 : 아닌데요?
미희 : 아, 아니구나, 그럼 국어 선생은 어떠세요?
수학은 정식 직원이지만 국어는 파트 타임이라고 해서 제가 말씀 안 드렸는데,
국어 자리도 있다거든요. 문과면 국어가 맞으시겠다, 그것도 페이는 세구요.
제 친구니까 조금만 버티시면 정식으로....
수찬 : 저, 국어도 약한데.
미희 : 그, 그럼.....사회, 사회도 있다고 했거든요.
수찬 : 그것도....
미희 : 교수시잖아요?
수찬 : 제 분야만 파는 타입이라.
미희 : 그래도 기본이....
수찬 : 제가 제 분야가 아니다 싶은 건 바로 바로 잊어버리는 타입이라서....
#.72 씬. 윤희의 집 마당. (낮)
평상에 상 차리고 있는 윤희, 덕길, 고니, 예슬.
수찬, 미희 걸어오는.
미희 : 엄마는?
윤희 : 동네 아줌마들하고 찜질방 가셨어.
미희 : 다 늦게 왠 찜질방?
윤희 : 김대리님 이사 가는 거 보고 싱숭생숭들 하시다구.
미희 : 핑계도 많지. 또 무슨 수다들을 얼마나 떠시려구.
윤희 : 양씨 아저씨가 찬밥 나물 넣고 많이 비볐어, 빨리 와 앉아.
덕길 : 그냥 덕길씨라고 부르랑께요.
윤희 : 그래도 연세가 있으신데.
덕길 : 아이고, 연세는요, 지가 먹으믄 얼마나 먹었다고.
미희 : 거의 우리 집에 와서 사시네요?
덕길 : 지가요? 꼭 그런 건 아닌디?
윤희 : 왜 그래? 내가 라면 끓여먹는다니까 밥 비며 먹자고 하셔서 오신 건데.
이거 다 가져오신 거야.
수찬 : 살림 참 알뜰하게 한다. 막 퍼다 동네 먹이고.
윤희 : 먹는데서 인심 난다는데, 그 양반 참 까칠하기는.
덕길 : 야 이러는 거 하루 이틀인가요. 참, 어찌 됐냐? 알리바이 증명 하러 간 것은?
수찬 : 해결 됐어.
덕길 : (일어나며) 해결 됐냐?
수찬 : 됐어.
미희 : 어머, 알리바이 증명 하셨어요?
수찬 : 네, 했습니다.
미희 : 어떻게요?
수찬 : 그냥 했습니다.
덕길 : 저기, 애들 듣는데서 자세하게 할 야그가 아니구만요.
미희 : 아, 네.
윤희 : (손 내밀며) 어쨌든 축하할 일이네요.
수찬 : 축하는 무슨. (그러면서도 악수하고)
윤희 : 사식 무슨 돈으로 넣어주나 걱정했는데.
수찬 : 변변찮은 사식 넣어주고 생색만 무지하게 낼까봐 내가 서둘러 증명 했잖냐?
미희 : 두....둘이.....꽤 친한 거 같다?
윤희 : 응. 친구 먹었거든.
미희 : 친, 친구?
윤희 : 술친구.
미희 : (머쓱하고) 아, 오늘같이 좋은날 찬밥 비벼 먹어서야 되겠어요?
너 가서 등심 좀 사와, 한. 우. 로. (지갑에서 수표 꺼내주는)
수찬 : 그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윤희 : 사겠다는데 그냥 두세요.
수찬 : 사면 제가 사야죠. (지갑 열어 카드 꺼내려 하는데)
덕길 : 너 카드 다 정지잖여?
#.73 씬. 윤희의 집 마당. (밤)
고기 굽고. 덕길 노래 부르고.
미희, 윤희, 수찬, 맥주 마시면서 고기 먹고. 주거니 받거니 분위기 화기애애하고.
덕길 : (윤희 그윽하게 보면서) 널 만났다는 건 외롭던 날들의 보상인 걸, 그래서 나는 맞이하게 된 거야...
수찬 : 오늘 노래 좀 된다 형.
미희 : (수찬에게) 제가 보기엔요. 저 아저씨 윤희 쟤한테 흑심 있어요.
수찬 : 더위 먹어서 그래요.
윤희 : 친구 바쁜가?
수찬 : 왜?
윤희 : 안 바쁘면 술 좀 따르지?
수찬 : 그냥 따르라고 해라.
미희 : (이 인간들이 너무 가깝다 싶고, 얼른 맥주병 들어 술 따라주고) 여깄다, 여깄어.
위아래도 없이 넌 반말 찍찍.
수찬 : 그러기로 했는데요 뭐.
미희 : 안돼요. 애 버릇 나빠져요.
#.74 씬. 병실. (밤)
준석, 유회장 보고 앉아있는. 문 쪽 보고.
준석 : (무료해서 몽테크리스트 백작을 펴는. 윤희가 한대로 해보는.
그러다 자신이 하고 있는 짓에 계면쩍어져서 킥하고 웃는)
#.75 씬. 윤희의 집 마당. (밤)
윤희, 미희, 덕길. 수찬 술에 거나해져 있는.
미희 : 저는요, 딴 거 없거든요. 일편단심, 조건은 그거 하나거든요. 제가요, 세 번을 당하고.....(울먹)
덕길 : 자꾸 세 번이라고 하시는디 대체 뭣이?
윤희 : 이혼이요, 이혼.
덕길 : 야? 그럼 이혼을 세 번씩이나?
미희 : 왜요? 그래, 나 세 번 이혼 했어? 세 번 이혼하는데 댁이 도와준 거 있어?
남편놈들이 하나같이 바람둥이라서 이혼 했다 왜?
덕길 : 아니, 저가 뭘 어쨌다구? 아니, 저는 한번도 허기 힘들어서 캄보디아까지 가서 그 난리를 쳤는디
세 번이나 하신 게 존경스럽기도 허고....
윤희 : 존경이래, 존경. 왜 핏대는 세우고 그러냐? 전 형부들한테 맺힌 게 많아서 그래요, 이해하세요.
미희 : 형부는. 그런 놈들이 무슨 형부야?
덕길 : 술 좀 오르시나 봐요?
그 사이, 수찬의 핸드폰 울리는.
덕길 : 핸드폰 쭉 꺼놓더니 언제 다시 켰어야?
수찬 : 새로 생기는 학교 자리 하나 알아봐주기로 한데서 연락 오기로 했거든.
어, 뭔 번호가 이러냐? 여보세요? 아, 형? 응. 나야 잘 있지. 형은?
.....(듣다가 벌떡 일어나는. 그 바람에 윤희 앞에 술잔 쓰러지고)
덕길 : 워매, 이를 워쪄.(얼른 닦아주고)
수찬 : 뭐? 그....그게.....형 그럼 난......이렇게 갑자기? 언제? 아니, 그럼.....형 당장 어디로 가라구....
아니, 미안하면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나한테 대책을 세울 시간을 좀 주고.....
형? 형? (전화 끊겨 있고, 멍하니 서있는)
덕길 : 뭐? 뭔데 그래야?
수찬 : .....
덕길 : 뭔데 그래싸?
수찬 : 우....우리....집에서 나가야 해. 당장.
덕길 : 그게 뭔 소리여? 집 니 집 아니었냐?
수찬 : 아냐.
덕길 : 그, 그럼 워쩌케 되는 것이여?
수찬 : 뭐가 어떻게 돼? 우리.....이제 노숙자 신세 되는 거지.
그런 수찬의 모습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