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죽산안씨 사과공파 까페
광주안씨 감찰공파보(1957)의「안성원류세전록(安姓源流世傳錄)」
1983년 간행된 《광주안씨 대동보》에 실린 상임 수석부회장(常任首席副會長) 안상수(安相洙)씨가 쓴 서문의 내용 중에 안성원류세전록(安姓源流世傳錄)을 인용한 기록으로, 원문은 1957년 광주안씨 감찰공파보에 실린 것이라고 했다.
사전을 찾아보니 원류(源流)는 ①물이 흐르는 원천(源泉). 수원(水源) ②사물(事物)이 일어나는 근원(根源)을 뜻하고 세전(世傳)은 대대(代代)로 전(傳)하여 내려옴을 뜻한다.
문제점을 요약해서 보면, 안성원류세전록(安姓源流世傳錄)을 인용하기에 앞서 “첨언(添言)코자 함은 사간파보(思簡派譜)에 있어 누대파보(屢代派譜)에 등재(登載)되어 있는”이라는 표현으로 보아 이글을 옮긴 안상수(安相洙)는 광주안씨 사간공파(파조 사간공 안성)의 역대 파보에 등재되어 있는 안씨 성의 원류에 대하여 대대로 전해 내려온 기록을 옮긴 것으로 짐작된다.
그렇다면 광주안씨 사간공파의 파보에는 이같은 내용에 대해 언제부터는 모르지만 언급된 적이 있었단 말이 되는 것이다.
"기미보(己未譜, 1739년)에는 상기 문헌(上記文獻)이 수록(收錄)되지 아니 하였으며 또한 대동보 편찬회(大同譜編簒會) 구성상시(構成常時, 구성할 때) 대종회의(大宗會議)에서 금반(今般, 지금) 대동보(大同譜)는 기미보(己未譜)에 의거(依據)하여 편찬(編纂)하기로 결의한 바 있으므로 사간파보(思簡派譜)에 등재(登載)된「안성원류세전록(安姓源流世傳錄)」문헌(文獻)은 대동보(大同譜)에 등재하지 아니함을 이해(理解)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했다.
다시 말해 1739년 최초 광주안씨 족보(기미보) 때 수록되지 못한 관계로 광주안씨 대동보 편찬 때 안성원류세전록(安姓源流世傳錄)은 논란이 되었고, 기미보에 등재되지 않았던 내용이라 대동보에 등재하지 못했다는 말로 짐작된다.
그렇다면 광주안씨 문중, 특히 사간공파에는 안씨 성의 원류에 대해 대대로 전해 내려온 기록이 오래 전 부터 있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안씨족사탐구의 주장을 보면 1957년 간행한 감찰공 파보에 한 차례 실린 것이고, 광주안씨 족보 중 유일하게 농서이씨설을 시조설로 인정한 기록이라고 한다. 1983년 광주안씨 대동보는 파보일까? 말 그대로 대동보의 서문이라는데...
그렇다면 역대 광주안씨 사간공파의 파보 발간은 몇 차례 있었고, 남아있는 것은 있는지 궁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