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제49코스 트레킹 (화진포 – 거진항)
- 위 치 :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 거진읍
◆ 트레킹의 의미
트레킹은 심신 수련을 위해 산이나 계곡 따위를 다니는 도보 여행으로 풀이한다. 등반과 하이킹의 중간 형태로, 하루에 15~20킬로미터 정도 걸으며 야영 생활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트레킹은 느리지만 힘이 드는 하이킹이라는 정도의 의미로, 등반과 하이킹의 중간 형태이다. 히말라야의 산기슭을 걷는 '히말라야 트레킹'이 대표적이다. 트레킹은 원래 남아프리카의 네덜란드계 주민인 보어인의 언어로 '우마차를 타고 여행 한다'라는 의미로 사용되다가 단순히 '여행하다, 이주하다, 출발하다'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네팔에서는 산지 등을 여행할 경우 정부가 트레킹 허가증(Trekking Permit)을 발행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경제 성장에 따른 여가 시간 증가로 트레킹이 인기를 얻고 있으며, 1990년 한국 트레킹클럽이 결성되면서 트레킹 동호인 모임이 늘고 있는 추세이다.
<단체기념사진>
Ⅰ. 개황(槪況)
1. 일 시 : 2015. 1. 18. 08:00
2. 구 간 : 해파랑길 제10구간 / 49코스
3. 참석인원 : 44명(새내기 13명)
4. 트래킹코스 : 화진포 – 응봉 – 해맞이산림욕장 - 거진항
5. 교통정보
- 빠른 길 찾기 정보
▶ 검 색 지 : KBS춘천방송총국 ➠ 화진포호 ▶ 거 리 : 143,7km ▶ 소요시간 : 2시간16분
- 다녀온길 : 중앙고속도로 동홍천IC진출 – 성산교차 – 철정교차 – 한계교차 – 용대교차 – 진부령로 고성(간성방면) - 찻골길 – 화진포호(하차), 거진항(승차)
- 동원차량 : 강원 70바 1708 박 철 수
6. 날씨상항
◆ 기상전망
- 2015년 01월 14일 06:00 발표 강원도 기상전망 : 1. 17일은 동풍의 영향으로 강원도영동에 눈 또는 비가 오고, 그 밖의 날은 고기압의 가장자리에 들어 가끔 구름 많겠고 기온은 평년(최저기온: 영서 –12 ~ -9도, 영동 –5 ~- 3도, 최고기온: 영서 1~2도, 영동 3~5도)과 비슷하거나 조금 높겠다고 전망하였다. 강수량은 평년(영서 1mm, 영동 1~3mm)과 비슷하거나 조금 많겠으며 바다의 물결은 동해상에서 17일과 22일에 1.0~3.0m로 높게 일고, 그 밖의 날은 0.5~2.5m로 일겠다고 하였으므로 해파랑길 트래킹 환경은 “이상 없음”으로 판단했었는데 당일 찾아가는 길목에서 이슬비 세례를 받는 바람에 착잡한 심경에 사로잡히기도 했었다.
◆ 오늘의 날씨
7. 활동상황
○ 08:00 --- KBS춘천방송국 앞 출발(설악휴게소 경유) ○ 10:22 --- 화진포주차장 도착 ○ 10:31 --- 이기붕부통령별장관람 ○ 10:42 --- 이승만대통령별장관람 ○ 10:45 --- 이승만대통령화진포기념관관람 ○ 11:10 --- 화진포생태박물관관람 ○ 11:35 --- 단체기념사진촬영 및 일정안내 ○ 11:36 --- 들머리진입 ○ 12:08 --- 전망대 ○ 12:13 --- 응봉 정상 ○ 12:20 --- 점심식사 ○ 13:07 --- 화진포해맞이교 ○ 13:28 --- 해맞이공원 ○ 13:41 --- 산림욕장갈림길 ○ 14:34 --- 거진항 도착 ○ 14:35 --- 자유 투어 ○ 16:00 --- 거진항 출발 ○ 18:20 --- KBS춘천방송국 도착(설악휴계소 경유)
Ⅱ. 지역특성
<화진포호 전경>
1. 지역유래
- 오늘 트레킹 나들목이 소재한 현내면과 거진읍 연혁을 살펴본다.
- 현내면 연혁
► 1910년 한일합방 이후 한나루(大津里)라 개칭, 1945년∼1950년, 1952년까지 북한 공산치하에 있었고, 그동안 6.25로 인해 철도는 파괴되고 이 마을의 200여 호의 가옥이 잿더미로 폐허가 되었다. 1954. 10. 21 : 대한민국 행정권이 수복되어 경향 각지에서 이곳에 피난민과 전재민이 일시에 많이 몰려 대진리 일원만 9,000여명으로 늘어 대진 1,2,3리 분할 관할하였다. 1973. 7. 1 행정구역 조정으로 2개리를 늘려 대진4, 5리로 분할하여 오늘에 이른다.
- 거진읍의 연혁
► 1935년 오대면을 거진읍으로 개칭,1945년∼1950년 38°선 이북에 소재하여 북괴치하, 1954.10.21 수복지구 임시 행정조치법에 의거행정권 이양, 1973. 7. 1 대통령령 제6543호로 "읍"승격. 1981. 7. 1 법정리 15개리를 17개리로 행정리 26개리를 28개리로 조정하여 오늘이 이른다.
2. 해파랑길 살펴보기
<고성군관광안내도>
- 해파랑길은 동해안을 따라 걷는 국내 최장거리 걷기여행 길이다. 2009년에 처음 기획되었고, 2010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와 동해안의 19개 기초자치단체, ‘(사)한국의 길과 문화’가 5개년 계획으로 본격적인 조성에 들어갔다. 해파랑길은 현재 총 50개 코스에 노선이 770㎞에 달한다. 해파랑길’이란 이름은 떠오르는 해(太陽)와 파란 바다(海), 그리고 파도를 길동무 삼아 함께 걷는 길이라는 함축적인 의미를 갖는다. 태양을 닮은 해파랑길의 상징물은 사람의 얼굴과 동해안의 해안선, 울릉도, 독도를 절묘하게 배치해 해파랑길의 각종 안내사인물 등에 이용하고 있다.
- 해파랑길은 통일전망대에서 부산 오륙도까지 10구간 / 50개코스 / 770km를 걷는 길이다. 해파랑길의 대단원은 우리나라 최북단 고성 제진검문소에서부터 시작된다. 기대 이상의 절경과 명승지가 펼쳐진 고성 해파랑길은 봉포 해변을 지나 관동팔경의 하나인 청간정에서 그 첫 번째 절경을 풀어놓는다. 고색창연한 송림에 둘러싸인 청간정을 돌아 나온 길은 잘 정돈된 산책로와 해변이다. 이름처럼 예쁜 아야진항을 사뿐히 돌면 거친 해안 풍광이 일품인 청학정이다. 겨울 철새 도래지로 이름 높은 송지호를 지나면, 왕곡마을에서 강원 북부에서만 볼 수 있는 양통집이라는 독특한 구조의 전통가옥을 만난다. 가진항을 지나면 해파랑길은 농로와 천변길 등으로 다양한 변주를 울린다. 고성의 대표적인 어항인 거진항을 지나면 해맞이산책로다.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을 오르면 화진포 호수와 화진포 앞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김일성별장과 화진포해양박물관 앞을 지나 만나는 곳은 분단국가의 현실을 맞닥뜨리는 통일안보공원이다. 해파랑길의 마지막인 50코스 제진검문소부터 통일전망대 구간은 도보가 금지된 곳이다. 통일안보공원에서 출입신고서를 작성하고, 차량을 이용해야 한다. * 걷기가 금지된 고성 최북단 ‘제진검문소 - 통일전망대’(약 5km) 구간은 15명 이상 인원이 일주일 전에 ‘통일안보공원에 신고할 때에만, 군부대 협조를 받아 걷기가 가능하다. 앞으로 각종 트래킹 코스 중 명승지를 골라 시리즈로 엮어 안내하고자 한다.
Ⅲ. 산길여정
<화진포호 전경>
- 1. 2월 정기산행일정에 해파랑 길 등 트레킹코스를 반영한 이유에 대해서는 지난주 태백산 산행후기 Ⅲ. 산길여정 편 서두에서 언급한바 있었다. 참석률 저조라는 당면현안을 슬기롭게 극복해 보고자 의도한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었다고 설명하였다. 간단히 정리하면 정기산행일정 동행에 부담을 느끼는 소외계층을 겨냥한 상품이었던 것이다. 그 분들에게 동참기회를 제공하여 예전과 같은 차고 넘치는 분위기 조성을 기대했던 것이다. 그 연장선에서 오늘 해파랑길 제10구간/49코스 중 백미인 화진포 – 거진항 구간을 선정하였다.
- 결과는 한마디로 대박이었다. 금년 첫 트레킹 길에서 안타를 쳤던 것이다. 불가피한 사정에 의해 참석하지 못하신 회장님과 총무님 자리만 남을 정도로 차고 넘치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바람에 희열을 느끼면서 흥분을 감추지 못하였다. 매번 2 ~ 3명 정도는 부도가 났었는데 오늘은 그 빈자리마저 자연스럽게 채워지는 바람에 인원수 파악하는 데에도 훨씬 수월하였다.
- 춘천을 출발하면서 안개비가 내리는 바람에 불길한 예감에 휩싸이기도 하였다. 해발 520m 진부령을 넘으면서 지척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안개가 자욱하여 현장의 환경이 여의치 않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10:00경 간성읍지역을 벗어나면서 가랑비도 간곳없이 사라지고 시계가 시원하게 트이면서 기상환경이 급변하였다. 오늘 고성군 현내면 지역인터넷 날씨예보는 오전 4㎜미만 비가 내린다고 하였다. 날씨예보마저 딱 맞아 떨어졌던 것이다. 참석률 좋고, 트래킹 환경마저 좋았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 오늘은 소한과 대한 어간의 혹한기임에도 불구하고 영상의 포근한 날씨를 보였다. 또한 영동지역에 건조주의보가 내릴 정도로 겨우내 눈이 안 내렸기 때문에 눈을 보고 죽으려 해도 눈이 없었다. 이런 정보를 미리 알고 겨울철 필수장비인 아이젠 준비를 홍보하지 않았었는데 이점 역시 안타감이었다.
- 10:20분을 넘기면서 화진포주차장에 도착하였다. 빠른 길 찾기 정보에 따라 10:30경 일상을 열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었는데 이점 역시 딱 맞아 떨어졌다. 그러나 매표소를 들어서면서 주차료가 없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성인 일인당 3,000원의 입장료가 있었던 것이다. 안내준비를 하면서 이점을 간과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부랴부랴 군경원호 및 경로우대자 현황파악에 들어갔다. 44명 중 17명이 무료입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머지 27명으로는 단체입장권 구매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눈물을 머금고 일인당 2,300원씩 30명분 단체입장권 69,000원을 납부 하는 라 부산을 떨었다. 그 바람에 12,000원을 챙기기는 하였다.
- 화진포관광단지는 성수기가 아니라서 그런지 한산하였다. 단체고객은 우리 일행 분들이 유일하였다. 간간히 팀을 이룬 관광객 정도가 고작이었다. 오늘은 트래킹에 앞서 1시간 동안 화진포 주변 볼거리를 먼저 관람하고 난 후 11:30분까지 주차장에 집합하여 트래킹 길에 오르기로 하였다. 오늘 트래킹은 운영시간을 4시간으로 잡고 15:30까지 거진항 수산시장 하산을 예고하고 들머리에 들었다.
- 화진포관광단지 내 관광은 이기붕별장에서 시작하여 이승만대통령별장, 이승만대통령화진포기념과, 화진포생태박물관, 화진포호, 화진포해변 순으로 관람하였고, 화진포의 성(김일성별장)은 트래킹코스에 들면서 경유하였다.
<이기붕별장>
- 10:31 이기붕별장 경유
- 이기붕별장은 이승만과 김일성 별장 사이 호숫가에 위치해 있다. 이기붕 별장은 1920년대에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건축되어 현재까지 보존된 건물로서 해방 이후에 북한공산당 간부 휴양소로 사용되어 오다가 휴전 후에 부통령이었던 이기붕의 처 박 마리아가 개인별장으로 사용하였다. 1999년 7월 전시관으로 개수 운용하고 있다. 박 마리아는 생전에 인근 고성군 대진읍에 대진교회를 세우고 자주 이곳을 찾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별장 내 집무실과 응접실 등이 갖춰져 있으며, 주전자, 촛대, 문갑 등이 보관돼 있다.
<이승만대통령별장>
- 10:42 이승만대통령별장 경유
- 대한민국의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는 조선왕조말 1904년에 구국의 밀사로 미국에 갔다가 1910년에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서울YMCA의 학감으로 국민 계몽과 교육에 힘쓰면서 1911년 전국순회 전도 여행 중 이 곳 외국인 선교사 별장에 들려 친교를 맺은 일이 있었다. 그러나 일제가 105인 사건을 계기로 이박사를 체포하려 들자 1912년에 다시 미국으로 망명한 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 구미위원부 위원장으로 독립운동을 주도하다가 1945년에 해방된 조극에 돌아와 3년간의 건국투쟁 끝에 현대국가의 창업을 이룩하였다.그 후 1950년 6월 25일 남침한 공산군을 우리 국군이 물리쳐 고성군을 수복하고 이승만 대통령이 군민을 격려하며 이곳을 시찰한 것은 1953년 11월 8일 이었으니 그에겐 실로 42년만의 감격적인 방문이었다. 이때 대통령은 김동석 방첩대장의 안내로 자신이 기억하고 있던 이 별장을 찾아 휴양지로 정해 동해안의 군사적 요지인 이곳에서 낚시도 하고 자연을 즐기면서 남북통일을 구상 하였다. 이 별장은 1945년, 윗쪽의 기념관 자리에 단층건물(슬라브 27평)로 신축되었으나 1960년 후 방치, 철거 되었던 것을 1999년 7월 육군에서 본래 모습대로 현 위치에 복원하였다. 이승만 별장에는 침실과 거실, 집무실, 평소에 끼던 안경과 여권, 편지 등 유품이 진열되어 있다
<이승만대통령화진포기념관>
- 10:45 이승만대통령화진포기념관 경유
- 이승만대통령화진포기념관에는 이대통령의 친필휘호, 의복과 소품, 관련도서, 유품 등이 현대적으로 전시되어있다. 2007년 2월에 고성군과 육군복지단에서 윗쪽의 육군관사로 사용하던 건물을 보수하여 2007년 7월에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으로 개관하였다. 이승만 별장 뒤에 새로 지어진 기념관으로 이승만대통령의 업적 등 일대기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화진포해양박물관>
- 11:10 화진포해양박물관 경유
-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화진포 관광지구 내에 위치한 화진포 해양박물관은 세계적으로 희귀한 각종 조개류, 갑각류, 산호류, 화석류, 박제 등 1,500여종 40,000여 점을 전시한 패류박물관과, 각종 수조에 수중생물 125종 3,000여 마리를 각각의 서식 환경과 컨셉에 따라 보여주는 어류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1층 어류전시관에는 180도 머리 위를 휘감는 수량 3백여 톤의 해저터널을 갖추었고, 2층은 오션비치, 아름다운 동해바다, 무척추 동물관과 입체영상관 등으로 꾸며져 있다. 특히 2층 입체영상관에서는 "호수가 된 화진포", "바다의 하루", "신비한 바닷속 여행" 등을 상영해 생생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해양박물관은 780㎡크기의 3층 건물로, 1층과 2층에 세계적으로 희귀한 각종 조개류, 갑각류, 산호류, 화석류, 박제 등 1,500여종 40,000여점이 전시되어 있고 디오라마관, 영상관을 설치하여 우리나라와 동해안에서 서식하고 있는 어류의 서식생태를 볼 수 있도록 하였다. 3층에는 휴계시설을 꾸며놓아 편안하고 안락하게 화진포일대와 동해바다의 멋진 풍광과 함께 차와 음료를 즐길 수도 있다.
<화진포해변>
- 1973년 개장된 화진포해변은 수만 년 동안 조개껍질과 바위가 부서져 만들어진 모나즈 성분의 모래로 구성된 백사장이 펼쳐져 있는 곳으로 모래를 밟으면 소리가 나고 개미가 살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바닷물이 깨끗하고 수심이 얕은 동해안 최북단에 위치한 고성군 시범해수욕장으로 기암괴석이 신비의 극치를 이루고 있으며 광활한 화진포 호수에 울창한 송림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자연풍광이 수려한 해변으로 화진포의성(김일성별장), 이승만초대대통령 별장, 이기붕별장, 화진포해양박물관 등이 있으며, 동해에 한가로이 떠 있는 금구도의 대나무 숲과 갈매기의 나는 모습은 천하의 절경이다. 1990년 11월 24일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고 조성계획이 수립되어 주차장과 화장실 등 기반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화진포호 주변 조망안내>
- 송지호는 송림과 해당화가 어우러진 철새도래지이자 고성8경 중 제3경이다. 고성에는 강 하구와 바다가 닿는 곳에 생긴 석호가 두 곳 있다. 송지호와 동해안 최대의 화진포호가 바로 그 곳이다. 호숫가에 해당화가 만발해 이름 붙여진 화진포는 둘레 16Km의 동해안 최대의 자연호수이며 넓은 갈대밭 위에 수천 마리의 철새와 고니가 날아들고 울창한 송림으로 둘러싸여 주변경관이 빼어나 예부터 주변에 유명한 별장들이 많았던 곳이다. 화진포호는 강원도 지방기념물 제10호이다. 화진포(花津浦)는 (이 일대는 옛적에 가평(加平)이라고 했다) 동해와 연접하여 자연풍광이 수려하고 면적 72만평 둘레 16Km의 광활한 호수의 주위에는 울창한 송림이 병풍처럼 둘러쌓여 있다. 수심이 얕고 해저가 청아하여 주옥같은 백사장이 명사십리(明沙十里)를 이루고 있다. 해안의 솔밭에 펌프를 박으면 자연수의 물맛이 특이하게 나오므로 상수도 시설이 필요 없는 특징도 있다. 수천 년 동안 조개껍질과 바위가 부셔져 만들어진 화진포해수욕장은 호수와 교류되어 있는 염담호수(鹽淡湖水)로 해수욕장으로는 최적지로 국내외에 널리 알려져 있으며 연어, 숭어, 도미 등 갖가지 어족이 서식하고 있다. 관광지로서도 아무 손색이 없는 소지와 요건을 풍부히 가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모래 빛이 하얗기로 유명하고 모래에 모나즈(monaz)성분이 많아 모래를 밟으면 감촉이 부드럽고 개미등 곤충류(昆蟲類)가 살지 않으며 맑은 동해의 해수가 화진포 담수와 교차하여 해수욕장으로도 최적지이다. 전해오는 전설에 의하면 이 호수의 이름은 원래 열산호(烈山湖)로 불렸다. 화진포 건너 마을에 열산이라고 하는 마을이 있고 화진포 물속에서 옛날의 열산현(烈山縣)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해 큰 비가 내려서 열산현 마을이 송두리 채 물에 떠내려가고 마을이 있던 곳이 차차 물에 잠기기 시작하여 지금의 호수가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이곳 사람들은 열산동 산쪽으로 마을을 옮겼다고 하는데 날씨가 좋고 바람이 잔잔하여 물결이 일지 아니할 때에는 그 옛날 촌락이 있던 터와 담장을 쌓았던 자취가 보인다고 한다. 가을과 겨울이면 철새들이 떼 지어 찾아와 넓은 호수에서 유유히 노닐기도 한다. 또한 호수주위의 경치가 좋아 죽정(竹亭), 모연(暮煙), 풍암(楓岩), 귀범(歸帆), 장평(長坪), 낙안(落雁), 가평(加平), 야종(夜種)을 화진팔경(花津八景)이라고 하는데 거진읍 원당리와 죽정리 쪽의 푸른 소나무를 화진포에서 바라보면 마치 정자를 이루고 있는 것 같아 옛날에는 화진정(花津亭)이라 하였고 저녁 해가 서산에 기울면 죽정, 원당, 산학리에서 저녁 짓는 굴뚝연기가 한 폭의 풍경화를 이루어 태평세월을 실감케 한다. 가을이 되어 바위 부근에 단풍이 곱게 물들게 되면 그 경치는 더욱 일품이다. 호수와 맞닿은 바닷가에서 조각배에 몸을 싣고 고기잡이하던 돛단배가 돌아오는 풍경은 마치 선경(仙境)이라 할만하다. 이 외에도 백사장이 광활하여 마치 큰 평야를 연상케 하고 떼 지어 놀던 기러기가 하늘 높이 날았다 호수에 내려앉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과도 같다. 겨울이 되어 호수가 얼고 무성했던 갈대가 쓰러지면 황금벌판과도 같아 옛날에 봉이 김선달이 서울부자에게 큰 평야라고 속여 이 호수를 팔았다는 전설이 있다.
- 고성군문화원에서 1997년도에 발행한 고성지역의 기층문화에 의하면 화진포 팔경(八景)은 아래와 같다.
► 제 1경은 원당리 마을 앞에 호수에 비친 반달 그림자와 누런 가을곡식, 단풍나무가 어우러진 풍광이 아름다워 '월안풍림(月安楓林)',
► 제2경은 화포리 찻골에서 저녘 밥을 짓는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모습이 한폭의 그림과 같다하여 '차동취연(次洞炊煙)'
► 제3경은 호수 주변 모래밭에 피는 빨간색 해당화가 봄에 피는 모습이 영롱하여 '평사해당(平沙海棠)',
► 제4경은 호수동편에 있는 장평부근에 찾아오는 많은 기러기의 울음소리가 청명하여 '장평낙안(長坪落雁)',
► 제5경은 화진포 앞바다에 떠있는 금구도(金龜島)의 모습이 한가로워 '금구농파(金龜弄波)',
► 제6경은 화진포 호수의 물이 바다로 빠지면서 바닷물과 부딪치며 물길이 솟아오르는 모습이 마치 용(龍)이 물을 차는 듯하여 '구용치수(龜龍治水)',
► 제7경은 풍암별장에서 보이는 돛단배가 한가로이 노니는 모습이 정겨워 '풍암귀범(楓岩歸帆)',
► 제8경은 모화정리(茅花亭里:지금의 죽정1리)의 호수변의 모래밭에 아름다운 정자가 있어 '모화정각(茅花亭閣)'이라고 하는데 조선시대의 풍류시인인 김삿갓이 화진포에 머무르는 동안 이를 읊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 당시 거진읍 냉천리에 있었던 건봉사와 현내면 명파리에 있었던 조제암에서 은은히 울려오는 목탁과 독경소리는 듣는 이로 하여금 심금을 울리며 삼매선경에 이르게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고성군의 군화인 해당화가 이곳에서 집단으로 피어나고 있으며 1970년대부터 겨울 철새이면서 천연기념물 제201호인 고니와 청둥오리 등 철새가 많이 날아와 호수일대에 장관을 이루고 있다. 초도리 앞 500m해상에는 1,000여 평 면적의 섬인 금구도(金龜島)라 이름 붙여진 이곳은 신라시대 수군의 기지로 사용해 해안을 지키던 곳으로 섬의 북쪽에 석축이 일부가 남아 있고 대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섬의 중심부에서 와편과 주춧돌이 1997년 4월 문화재연구소 학술 조사반에 의해 발견되기도 했다. 지금은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가을동화'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더욱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 화진포호 전설을 소개한다. 옛날 옛적에 이화진이라는 심성 고약한 시아버지와 마음씨 착한 며느리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한 스님이 이화진의 집에 시주를 받으로 왔다. 구두쇠 시아버지는 소똥 한 바가지를 퍼다 스님에게 붓고는 그를 멀리 쫒아 버렸다. 이미 몇 년 전 두번이나 다녀간 스님에게 좁살을 한 숟갈이나 퍼준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이 모습을 본 며느리가 미안한 마음에 쌀 한되를 가지고 스님 뒤를 얼른 따라 나갔다. 하지만 스님은 보이지 않았고 서늘하 느낌에 뒤를 돌아보니 집터가 퍼런 호수로 변해 있는 것이 아닌가. 애통해하던 며느리는 결국 병을 얻어 죽고 이후 나라에는 홍수와 흉년으로 기근과 전염병이 끊이질 않았다. 마을 사람들이 며느리의 넑을 위로하기 위해 매해 굿을 해준 뒤로는 농사가 잘되고 전염병도 사라졌다고 한다.
<화진포의 성(김일성별장)>
- 11:39 화진포의 성(김일성별장) 경유
- 화진포의 성(김일성별장)은 외국인 선교사 셔우드 혼이 예배당으로 사용하였던 건물이다. 김일성은 1948년부터 1950년까지 처 김정숙, 아들 김정일, 딸 김경희 등 가족과 함께 하계휴양지로 화진포의 성을 찾았다. 48년 8월 당시 6살이던 김정일이 소련군 정치사령관 레베제프 소장의 아들과 별장입구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찍은 사진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화진포의 성은 지상 2층 석조 건물로 지어져 당시 건축물로는 제법 화려함이 엿보인다. 그러나 이 별장은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훼손돼 방치되다가 2005년 3월 옛 모습으로 복원하여 운영하고 있다. 화진포의 성의 절경 중 빼놓을 수 없는 곳은 마주 보이는 금구도라 불리는 바위섬으로 화진포 해변에서 3백여m 떨어진 금구도는 거북 모양을 닮은 데다 가을철이면 이 섬에서 자라는 대나무 숲이 노랗게 변해 섬 전체가 황금빛을 띤다. 여름에는 사람들이 배를 타고 건너가 해초, 전복 등을 따며 해수욕을 즐길 수 있다. 화진포의 성이 동해가 내려다 보이는 해안 언덕에 위치한 것과 달리 이승만 별장은 바다는 보이지 않고 화진포 호수만 내려다보이는 곳으로 서로 3km 정도 떨어져 자리하고 있다.
<응봉 정상석>
- 12:13 응봉도착
- 들머리에서 응봉정상까지 1,5km / 1시간 남짓 걸렸다. 오름 구간은 계단길이 잘 조성되어 부담 없이 오를 수 있다. 워낙 길이 잘 나 있기 때문에 진로선도에 문제가 없다. 정상 직전 전망대에서 숨을 고르면서 화진포호를 눈 팅 한 다음 정상에서 다시 재조명하면서 화진포관광단지 내 이모저모를 살필 수 있다. 응봉 정상일원은 민둥산이다. 나무 한그루 없이 주변이 말끔히 정리되어 조망에 도움을 준다. 정상에는 정상 122m를 알리는 정상석, 화진포소나무숲산림욕장안내도, 돌탑1기가 있다. 정상에서 화진포 해변을 비롯하여 화진포호 일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날씨만 좋았다면 금강산 끝자락 까지도 조망이 가능하였을 것으로 보였지만 오늘은 시야가 제한되어 아쉬움을 남겼다. 그러나 비가 멈추어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이었다. 응봉은 매 응(鷹)자, 봉우리 봉(峰)자를 쓴다. 응봉이란 이름을 가진 산은 서울 성동구, 울진, 부산 가덕도, 대구, 북한산, 화악산, 홍천, 영월, 횡성 서원 등에도 있다. 또한 매봉이란 이름을 가진 산은 촌천 동내면, 인제, 가평, 구미 음성, 양산, 청계산 등에도 있다. 응봉과 매봉은 풀이 상 뜻을 같이한다. 정상석 뒷면에 “옛날부터 화진포 호수 동쪽에 위치한 높은 산이 매가 앉은 형상과 같다고 하여 매 응(鷹)자를 써서 응봉이라고 불렀다” 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들머리에 들면서 예고한대로 정상일원에서 점심식사 시간을 갖았다. 영상을 웃도는 포근한 날씨 덕분에 재킷과 장갑을 벗어 던지는 호기를 부릴 수 있었다.
- 고성은 본인 개인적으로 각별한 인연을 맺은 곳이기에 오늘따라 더욱 감회가 새로웠다. 2012. 1. 15. 09:14 현내면 배봉리 봉화마을입구에서 해남 땅끝 마을까지 국토종단 길에 올랐었고, 2012. 12. 12.10:06 제진검문소 앞에서 걸어서 해안일주 제1회 차 첫 날 일상을 열었던 곳이기 때문이다. 오늘 해파랑길 트래킹 화진포-거진항 구간은 언제인가 때가오면 한 번쯤 기회를 잡을 요량으로 마음먹고 있었는데 그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해맞이공원 전경>
- 13:07 해맞이공원 경유
- 해맞이공원 쉼터에서 여유 있게 소요하면서 거진항 일원 조망을 즐긴 다음 선발팀을 먼저 하산시키고 후미 팀과 합류하기 위해 현장에 머물렀다. 후미 팀 중 오랜만에 산행 길에 동행하신 원로 분 한 분께서 힘겨움을 호소하시면서 발길이 늦어졌던 것이다. 더군다나 공동묘지 구간을 빠져나오면서 거진항 방향 능선으로 진로를 이탈하는 우여곡절을 겪는 바람에 더욱 발걸음이 늦어졌다. 이 분들과 동행하기 위해 뒤에 쳐졌던 두 분 역시 삼림욕장 갈림길에 이르러 이리 갈까? 저리 갈까?를 망설이면서 우왕좌왕하는 바람에 공원현장 합류를 포기하고 발길을 되돌려 마중 길에 올랐다. 현장에서 죽은 말 지켜보듯 우두커니 서있는 것 보다는 차라리 마중을 나가는 편이 훨씬 좋을 것으로 판단하였던 것이다. 해변길 포토존 지점에 이르러 후미 팀과 합류하여 동행하였다.
- 해맞이산림욕장은 2007년부터 2009까지 3년에 걸쳐 조성되었다. 거진 등대 해맞이 공원은 국비, 도비, 군비를 합쳐 10억 원이 투입되었으며 태양, 조개, 고래, 인어, 넙치, 등대, 복어 등 바다의 신화, 등대의 이미지, 지역의 특성을 표현한 조각품 8점이 설치되어 특색 있는 조각공원으로 조성하였다. 공원에는 폭 3m 길이 1.5㎞의 자연친화적인 황토산책로가 조성되었다. 거진 등대 해맞이 공원 주변으로 조성 면적 187,000㎡에 해송 외 2종의 상록수와 낙엽수 263본을 식재하여 산림욕장 숲 조성을 완료해 해맞이 공원을 찾는 여행객들에게 쾌적한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매월 마지막 주말에 열리는 ‘화진포 일출 걷기’에 참여하는 관광객들에게 새로운 걷기코스로 각광받는 한편 탁 트인 거진 시가지와 바다를 모두 조망할 수 있는 공원에 조각품과 웰빙산책로가 조성됨으로써 전국의 여행객들에게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거진항 전경>
- 14:34 거진항 도착
- 날머리 도착예정시간을 무려 1시간을 앞당겼다. 이유는 소요제원 판단에 오류가 있었거나 아니면 주어진 시간을 뜻있게 활용하지 못하고 서둘렀다는 점일 것이다. 정답은 후자 쪽에 무게를 뒀다. 지금까지 산행을 통하여 속도전에 익숙해 있었던 점이 기능하였을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거진항에 도착하면서 자유 투어 시간을 갖았다. 자유 투어 시간은 1시간을 기본으로 잡고 상황을 지켜보면서 융통성 있게 운영하기로 하였다. 일상운영상 시간적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 자유 투어 시간에는 두 팀으로 제대가 갈렸다. 먹거리에 마음을 둔 식당 팀 23명과 수산시장 쇼핑에 마음을 둔 시장 팀 21명으로 자연스럽게 갈렸다. 자유 투어를 통하여 1시간30여분 상당 여가를 즐긴 후 귀로에 올랐다.
- 참고로 오늘 대미를 장식한 거진항을 소개한다. 거진항은 38도선 이북(북위 38˚ 26')에 위치한 건설부지정 제2종 항만이다. 접적지구라는 입지적인 조건 등으로 오지 어촌으로만 여겨왔던 이곳은 지난 1973년 거진면이 읍으로 승격되면서 항구 주변에 현대식 고층건물이 들어서 상업도시로 면모를 갖추어 동해북부 어업전진기지로 성장해 가고 있다. 거진항은 5백여 년 전 한 선비가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가던 중 이곳에 들렀다가 산세를 훑어보니 꼭 클 '거(巨)'자와 같이 생겨 큰 나루 즉 거진이라 불리고 있다는 전설이 뒷받침하듯 거진항은 태백산맥 줄기의 구름이 해안을 에워 싸고 있어 오래전부터 천혜의 어항으로 발달해왔다. 거진항의 최대 인구는 오징어가 가장 호황하던 1970년대로 이 당시 인구는 2만5천명이었으며 1981년 소도읍 가꾸기 사업을 실시하여 초가집의 초라한 옛 모습을 찾을 길 없는 현대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다. 1930년대엔 120호의 작은 어촌으로 현재의 항구는 긴 백사장이었으며, 어선은 소향 전마선으로 연안 2마일 내에 당일 출항하는 1일 어업으로 노를 저어 고기를 잡았다. 겨울에는 명태, 여름에는 연안에서 등잔불을 켜고 오징어를 잡았고, 가을에는 멸치잡이가 흥행했었다. 이곳은 해방 전 많은 양의 정어리가 잡혀 이것을 처리하기 위해 일본사람의 정어리 처리 공장이 3개소나 있었으나 해방 후 갑작스런 정어리 흉어로 지금은 그 자취가 없어졌다. 당시 어민의 생활은 영세했으며 잡아온 고기는 판로가 없어 인근 농촌에 머리에 이고 다니면서 곡식과 교환하는 생활방식을 취하였다. 거진항의 발전은 명태가 유도했다고들 말한다. 이 지방엔 명태주산지로 별미음식이 다양하다. 신선한 명태 아가미만을 따내 무우채와 함께 버무린 "명태 서거리", 차좁쌀로 버무린 "명란식혜" 등의 별미 음식이 많다. 어선 출어 때 마다 만선을 기원하는 성황굿은 특유의 별미음식을 차려놓고 무사고와 풍어를 빌어오다가 풍어제로 바뀌었으며 예나 지금이나 풍어를 바라는 어민들의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주요 어종은 명태, 문어, 광어, 전복, 해삼, 멍게 등이 많이 잡히며 자연 성게의 알인 운단을 채취하여 일본으로 수출하기도 하였다.
Ⅳ. 주요(주변)볼거리
- 오늘 트래킹코스 주변에는 소개할 만한 곳이 많다. 대부분 발품, 눈품 팔면서 거쳐 갔던 곳들이지만 인식을 새롭게 하는 차원에서 통일전망대, 송지호, 금강산자연사박물관 정도를 소개한다.
□ 통일전망대
- 고성 통일전망대는 동해안 최북단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명호리의 해발 70미터 고지위에 위치하고 있다. 해발 70m 지점에 위치한 전망대는 금강산이 가깝게는 16km, 멀리는 25km정도 거리로 해금강은 대부분 지역이 한눈에 들어온다. 또한 해금강 주변의 섬과 만물상(사자바위), 현종암, 사공암, 부처바위등도 조망할 수가 있다. 중앙의 산악 능선을 바라보면 금강산 1만 2천봉의 마지막 봉우리인 구선봉(낙타봉)과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을 지닌 감호를 볼 수가 있다. 이외에도 일출봉, 채하봉, 육선봉, 집선봉, 관음봉 등이 보인다. 금강산 최고봉인 비로봉은 맑은 날씨에만 모습을 드러낸다. 전망대에서 눈을 돌려 바다를 바라보면 해금강이 불과 5km 떨어져있고 일출봉을 비롯한 금강산의 신선대, 옥녀봉, 구선봉, 접선봉과 바다의 만물상이 손에 잡힐 듯 펼쳐지고 아래에는 조국분단의 현실을 직접 볼 수 있는 비무장지대와 휴전선 철책이 우리의 가슴을 무겁게 하고 있다. 전망대의 주변에는 1983년 세운 지름 1.25m, 높이 1.87m, 무게 500근 규모의 통일 기원 범종을 비롯, 높이 39m, 전등 1천5백 개가 달려 있는 전진십자 철탑, 민족웅비탑, 1985년 세운 마리아상, 통일 미륵불, 351고지 전투전적지 등이 자리 잡고 있다. 통일 전망대의 관문격인 통일안보공원은 전망대 남쪽으로 10km가 채 못 되는 거리에 국민 안보현장으로 활용하고 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해 지난 1987년 세운 곳으로 출입신고소, 주차장, 교육영화상영관, 매점, 식당 등을 갖추고 있다. 남한 최동북단에 위치한 고성통일전망대는 조국의 분단현실을 실감할 수 있는 국내 최대의 통일 교육장이다. 1983년 통일의 의지를 다지고 망향과 분단의 설움을 다소나마 달랠 수 있는 기념비적 명소로 알려져 있고 98년부터 금강산 관광이 시작된 후 더욱 더 국내·외 방문객들이 끊이질 않고 있는 곳이다.
□ 송지호
- 겨울철새인 고니(천연기념물 제201호)의 도래지인 이곳은 물빛이 청명하고 수심이 일정해 도미와 전어 등 바닷고기와 잉어 같은 민물고기가 함께 살고 있다. 송지호 일대 735,952평이 국민관광지로 본격적인 개발 분위기가 조성된 것은 1977년 10월 15일 이후이다.
◆ 기본현황
○ 위 치 :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오호리, 인정리, 오봉리 ○ 면 적 : 관광지 주위면적 - 735,952평 ○ 호수둘레 : 4km (약 20만평) ○ 기 후 : 기온 - 최고 33.8℃, 최저 - 12.2℃, 실측기온 26.5 ℃ 수온 - 실측기온 26.5℃ ○ 만 수 시 : 수심 5m , 수면적 49.5㏊ ○ 갈 수 시 : 수심 4.5m , 수면적 44.5㏊ ○ 수소이온농도(PH) : 7.2 비중 : 1.007 ○ 서식어류 : 잉어, 숭어, 돔, 빙어, 장어 외 4종 ○ 특이사항 : 겨울철 철새인 고니의 도래지 ○ 교 통 : 오호리에서 0.5㎞ 동해 해변북쪽 국도변
◆ 송지호전설
- 현재 전해지고 있는 전설로는 조선 초기 약1500여 년 전에 송지호는 비옥한 땅이었는데 이곳에 정거재(鄭巨載)라는 부자가 마을 한가운데 살고 있었다. 이 정씨는 어찌나 심술이 많고 욕심이 많은지 포악하기로 이름이 높은 부자로서 고래 등 같은 커다란 집을 짓고 많은 종들을 거느리면서 권세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었다. 성격이 포악하고 인색한 정(鄭)부자는 일꾼들은 물론 마을 주민들에게 까지 사소한 일에도 트집을 잡고 횡포를 부렸다. 또 소작인들에게는 무리한 수탈을 하였다. 어느 화창한 봄날 장님이 딸의 손에 이끌려 정(鄭)부자집 문을 두드렸다. "앞을 못 보는 불쌍한 거지이오니 한 푼 도와주십시오." 라고 말하자 정(鄭)부자집 종이 말하기를 "여기가 뉘 집인 줄 알고 동냥 구할 생각을 하시오? 어서 돌아가시오. "정부자집 종들은 주인이 알아채지 못할 때 보내려고 했으나 "이런 부자집에서 동냥을 못하다니?" "가라면 빨리 가시오. 주인마님이 알면 매가 춤을 추오." 이런 말들로 장님 거지와 종들이 옥신각신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 "웬 놈이냐? 단잠을 깨우는 놈이" "그 놈을 어서 끌어 들여라." 라는 정부자의 호령이 떨어졌다. 대청마루에 앉은 정부자에게 도움을 요구하는 장님을 한참 노려보던 정부자는 "저 놈이 내 재산에 달걀 하나를 더 보태는 것을 방해한 놈이다. 닭이 막 알을 낳고 있는 꿈을 구고 있는 중인데 그 꿈을 깨게 하다니 아이고 원통해라. 저 놈을 마구치고 오줌이나 잔뜩 먹여 보내라." 고 소리쳤다. 장님거지는 동냥을 한푼도 받지 못한 채 종들에게 모진 매를 맞고 피투성이가 된 채 쫓겨나 길가에서 두 부녀가 울고 있는데 이때 금강산의 유명한 고승이 지나가다 발길을 멈추고 울고 있는 장님에게 사연을 물었다. 그러자 장님 부녀는 고승에게 그간에 있었던 일을 자세히 이야기를 하였다. 고승은 장님거지에게 몇 푼의 엽전을 들려주고 정(鄭)부자의 집을 찾아 목탁을 치고 염불을 외우며 시주를 요청하였다. 그러자 "시끄럽구나. 저 중놈에게 쇠똥이나 한 짐 지워 보내라"라는 정부자의 호령이 떨어졌다. 종들은 고승을 외양간에 끌고 가 시주걸망에 소똥을 잔뜩 담은 후 중을 내쫓았다. 고승은 문간에 나와 옆에 놓여 있던 쇠절구를 정부자의 금방아가 있는 쪽으로 던졌다. 그러자 쇠절구가 떨어진 곳에서 물기둥이 치솟기 시작했다. 고승은 왼쪽 두루마기의 고름을 뜯어 옆에 있는 소나무 가지에 걸고 주문을 외며 사라졌다. 고승이 사라지자 물기둥은 일곱 줄로 늘어나 정부자의 집과 금방아간 그리고 논이 물에 잠기기 시작했다. 놀란 종들은 중이 묶어 놓고 간 두루마기 고름에 매달려 물속에서 나올 수 있었으나 정부자는 물귀신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하여 송지호가 되었다고 하는데 지금도 맑은 날 오봉산에 올라 송지호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부자집의 누런 금방아가 보인다고 전한다. 그 후 금방아가 탐이 나서 물속에 뛰어 들어간 채 영영 돌아오지 않은 사람만도 수백 명이나 된다고 전해지고 있다.
□ 금강산자연사박물관
- 금강산 자연사박물관은 대지 4,000평, 건평 600평에 우주와 지구를 형상화한 국내 초유의 박물관 이다.
● 운석 500여점 전시의 국내 최대 운석박물관 ● 고생대 화석 500여점, 중생대 화석 300여점, 신생대 화석 500여점 전신의 자연사 박물관 ● 세계의 광물 1,000여점 전시 ● 200여점의 세계희곤충 전시 ● 세계를 한눈에 보는 세계유명 건축물 모형관
- 운석이란 지구밖 기원의 물질(extraterrestrial material)로써 화성과 목성 사이에 있는 소행성대에서 날아오는 소행성과 태양계에서 멀리 떨어진 우주공간에 있는 쌍별의 저장창고로 알려진 오르트 구름대와 퀴퍼대, 또는 달이나 화성의 표면에서 나온 비위와 우주공간을 지나 지구의 중력권에 붙잡혀 낙하한 것으로 45.5억 년 전의 원시태양계 내에서 형성된 소 천체의 파편들이다.
- 화석이란 과거, 현재, 미래를 연결시켜주는 고리이며 자연사의 기본적인 증거자료로서 과거 지질시대(1만년 이전)에 살았던 생물의 유해와 유적의 흔적으로 생물체의 구조를 알 수 있는 물체, 발자국이나 기어간 자국과 같은 생활흔적뿐만 아니라, 배설물도 화석으로 취급한다.
- 광물이란 광물이란 무기적으로 생성된 천천산 고체로서 일정한 화학조성과 일정한 결정구조를 갖고 있는 물질로 1종 또는 그 이상의 화합물로 되어 있으며, 지각을 이루는 암석의 구성단위 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광물의 종류는 약 3,700여종으로 발견된 광물의 대부분은 장석, 석영, 운모, 각섬석, 위석, 감람석, 방해석, 점토광물 등이고, 이 밖의 광물의 양은 대체로 희소하다. <자료출처 : 고성군>
Ⅴ. 특기사항
- 트레킹 후 자유 투어 : 해녀횟집 먹거리 팀 23명, 거진항 소요 팀 : 21명
Ⅵ. 산행을 마치고
<해맞이공원 해변길 전경>
- 오늘 해파랑 길 트레킹을 통하여 새로운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당초 이 상품을 기획하면서 기대 반 우려 반이었는데 결과는 대 만족이었다. 발상의 전환을 통하여 소외계층을 의도적으로 겨냥했던 것이 주효했던 것이다. 오늘 일상운영을 통하여 앞으로 산행일정 기획 방향을 새롭게 설정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 의미가 컸다.
- 오늘은 저조했던 참석률을 제고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던 점, 비가 멈추면서 트레킹 환경이 좋았던 점, 주변 볼거리가 풍성했던 점, 트래킹 코스 전 구간을 통하여 결빙구간이 없었던 점, 예정시간 이전에 안전사고 없이 일상을 갈무리할 수 있었던 점, 회장님과 총무님의 빈자리를 두 분 부회장님께서 완벽하게 메워 주시고 일상운영에 협조해주시고 도움 주신 분들이 많았던 점에서 그 어느 때 보다도 감사해야할 사안들이 많았던 일상으로 치부하고자 한다. 도움 주시고 수고로움이 컸던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리면서 해파랑길 제10구간/제49코스 트레킹 일상정리를 마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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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해파랑길 트래킹에 동행하여 자리를 빛내 주신 모두님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일정운영에 협조해 주시고 도움 주신 모든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두 분 부회장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빈자리 완벽하게 대행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보잘 것 없는 후기방
방문 해 주시고
읽어 주시고
댓글 까지 남겨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좋은곳 잘다녀 오셨습니다
모두 모두 수고 하셨구여
두분 부회장님!
회장님과 저의 빈자리 채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단 반응이 좋았구요
이 분위기 끊임 없이 쭉 이어갈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이었습니다.ㅎㅎㅎ
장문을 보노라니 동참못한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대장님 잘 보고 갑니다 수고 많으 셨어요~^^
고맙습니다.
회장님과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이 컸습니다.
다음 주 조령관문에서 뵙겠습니다.
늦게 문 열고 들어와보니 변함없이 영양덩어리 대장님 후기가 생각을 살찌웁니다~예쁜 이름의 해파랑49길 모두님들께 쳐 주신 만루 안타였씀은 물론 개인적으로도 딱!! 이었습니다~^^ 별로 한 일도 없는데 치하 해 주신 님들께도 고맙습니다 ^^
애교 넘치는 짧은 댓글
어쩜 그렇게 재치가 있대유 ~~~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