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삼년 전인가보다
차를 몰고 가던 길에 시장기가 들어 장터를 찾아가니 마침 오일장이 열렸다
먹을거리도 많고 구경도 할 만하여 돌아다니다가 허름한 국수집에 앉았다
잔치국수 딱 하나만 파는 할머니 국수집인데 시장 변두리에 자리를 잡은
시골 노인들의 쉼터 같은 곳이었다.
솥단지에서 멸치국물이 끓고 있고 즉석에서 삶아 그 국물에 잘게 선 김치와 김 몇 조각에
참기름 서너 방울 떨어트린 것이 양념의 전부였다
시장기였을까 참으로 멋진 맛이었다.
간소한 양념 이였지만 입에 잘 맞았으며 시골 노인네의 포근한 인상이 지금도 지울 수 없는 기억이다
그것보다도 더 인상적인 것은 좋은 음식점 다 놔두고 젊은 부부가 두 아이를 데리고
옆자리에서 국수를 먹는 모습이었다.
아이들이 투정하지 않고 잘 먹는 모습에 마음이 동하여 작은 소리로 물었다
편한 자리와 깨끗한 식당을 놔두고 어째 여기서 식사를 하시우? 했더니
서민식당이 멋있잖아요! 라는 것이다
낭만을 아는 부부였다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내 주었고
오일에 한 번씩만 문을 여는 국수집이란다.
장날만 문을 여는 셈이다
그러나 이 마저도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고 했다
허름한 식당엔 손님이 오지 않는단다.
단골 고객도 자꾸 황천으로 떠나가고 새로운 고객은 오질 않으니 어쩔 수 없는 현실이 되고 만 것이다
안타까운 마음이다
내 나이 사십 쯤 일 때
수색시장 좁은 골목에 주점이 있었다
철판 하나 놓고 얼큰하게 볶은 돼지껍데기
오징어에 김치, 부추와 파를 썰어 넣은 빈대떡
두부부침도 있었고 맛없는 국수도 있고
김치를 넣고 끓이는 콩나물국은 춥거나 비 오는 날엔 일품이었다.
퇴근 때면 차를 타는 정류장이 거기에 있어 자주 들렸던 곳이다
위생으로 따지자면 빵점이지만 인심은 백점이던 진짜 목로주점이다
철판 하나에 한쪽은 돼지볶음이고 한 쪽은 빈대떡이고 모퉁이엔 두부를 부치다 보니
양념이 이리도 붙고 저리도 붙어 안주 맛이 짬뽕 맛 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럽게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갈 곳 없는 술꾼들이 난리가 났다
푼돈으로 삶을 즐기던 사람들이 지친 얼굴로 배회하며 할머니의 주검을
안타까워했다
서민을 위한 봉사자가 떠났으니.........
실로 술과 안주가 너무 저렴하여 누구도 그 자리를 대신하지 않았기에
목로주점은 문을 열지 않았다
저절로 나도 그들도 뿔뿔이 헤어졌다
빈부 없이 친 할 수 있었던 그런 곳이었는데 할머니의 빈자리로 인하여
모두가 공중분해하고 만 것이다
장터에 가면 장터국수, 수구레 국밥 ,소머리 국밥, 선지 국밥, 돼지국밥,
돼지 창자볶음에 순댓국이나 순대가 생각나는데
술꾼이라 그런지 순전히 술안주 쪽으로 생각을 많이 하게 되고 자주 먹는다.
자주 가던 일산시장에 순댓국집이 있었는데
허름하고 우중충 하기도 했지만 워낙 오래 된 집이고 예전엔 솥도 걸어 놓고 머리고기도
삶고 순대도 만들어 손님도 많았고 맛 집으로 소개도 되었던 집인데
지난 해 갔더니 거의 파리를 날리는 수준이 되어 버렸다
두 분이 너무 늙은 것도 원인 이지만 주위에 큰 순댓국집이 생겨 손님이 그리로 가기 때문인데 참으로 마음이 안타까웠다
사람들은 추억의 순댓국집으로 인정은 하지만 굼뜬 몸으로 차려주는 음식에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대의 흐름이 안타깝다
옛것을 그리워하는 것은 아니지만
옛것 속엔 정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위생이라는 것 때문에 또한 편하고 좋은 환경을 찾아 좋은 음식점으로 가고
돈이 있는 사람들은 어마어마한 식당에서 황제 대접을 받으며 맛난 음식에 취해 살겠지만
사실 돌아서면 황제가 아닌 일반인으로 돌아간다.
서민식당 그 곳엔 어머니 같은 쥔 양반이 있지 않는가?
또 오셨소?
허름하게 사는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감사해야 하는 곳이다
어느 해 친구들과 강원도 삼척에서 산행을 마치고 하산하던 길에 소나기가 된통 내렸다
비 피 할 곳을 찾다 들어 간 식당에서 따끈한 국밥을 먹고 술을 한잔 하였는데
술이 떨어지자 주인이 방에서 꺼내 온 것은 인삼주였다
그 술을 다 먹었는데도 병에 들어간 술값만 쳐서 달라는 주인의 마음 씀씀이에 감탄사를 다 쏟아 붓고 온 적이 있었다.
두 해만에 다시 찾으니 우릴 기억하던 쥔 양반의 웃음 띤 얼굴
물론 그 날도 대취하였다
나를 기억하는 사람
그런 쥔장이 있는 곳이였다
어찌 나의 기억에서 사라질까?
맛 집을 찾는 손님이 되어 식당의 위생과 음식의 질을 찾는 이도 있겠지만
정을 찾아 갈 수 있는 맛 집은 흔하지 않다
어딘가 엔 있겠지.만..
빈대떡 한 장에 막걸리 잔을 내밀며
어디서 오셨소? 하고 물어 보는 주인의 얼굴을 웃음으로 대답 할 수 있는 곳
잔치국수 한 그릇을 먹으며 두리번거릴 수 있는 곳
허름해도 옛것이 살아 있으면 더 좋고
난 왜 자꾸 음식 맛보다 쥔장의 훈훈한 맛을 그리워할까?
그건 아마도 그런 시절을 살아 왔기 때문일 거다
세월의 무게 때문에 짓눌린 인정은
그을음마저 지워지진 체 묵은 이야기로 쌓여
문턱에 걸린 거미줄에 이슬만 채워져
향수가 된 어머니의 솜씨가 갇혀 버렸다
할머니가 손님을 기다리던 영상이 흐려져
이젠 간판마저 흔들흔들
한 시대가 가는가보다
부뚜막에 솟아오르던 하얀 김
휘젓던 나무주걱이 보고 싶은데 나를 외면하고 고개를 저으니
덤으로 주던 포근한 한줌의 정이 그립다
시간이 흐를수록 변질되어가 번호가 붙은 식탁에 앉아
풋내 나던 시절을 그리워하네.
시절을 따라가지 못하는 마음만 서글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