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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네딕도( 聖 Benedicti )와 불타는 <성 베네딕도 회 왜관 수도원> 雪鄕 朴 聖棟 ![](https://t1.daumcdn.net/cfile/cafe/12410E294AC7C6282F)
<성 베네딕도( 聖 Benedicti )>의 축일은 7 월 11 일이다. <성 베네딕도( 聖 Benedicti )>는, <기원후 480 년>, <이탈리아(Italia)>의 중부에 있는 <누르시아(Nursia)>에서 <고대 로마 제국(古代 Roma 帝國)>의, 부유(富裕)했던 <귀족 가문(貴族 家門)>에서 태어난 <누르시아의 베네딕도( Sanctus Benedictus de Nursia - 라틴어)>를 일컫는 말이다. 기원후 480 년 - 543 년 3 월 21 일, 수도사 베네딕투스(修道士 Benedictus )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누르시아의 베네딕도>에게는, 쌍둥이 여동생인 <스콜라스티카(Scholastica - 베네딕도 수녀회의 창설자)>가 있다. 기원후 480 년 - 543 년, ![](https://t1.daumcdn.net/cfile/cafe/1216DF234AC7CCA223)
<성 베네딕도( 聖 Benedicti )>와 <성 스콜라스티카(聖 Scholastica)> <성 베네딕도( 聖 Benedicti )>는, 제 10 대 <로마 교황>의 이름도 <베네딕도>이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계급(階級)>을 물려받는 <행정관(行政官)>으로서의 교양(敎養)을 몸에 익히기 위해 <유모(乳母)>와 함께 <로마(Roma)>로 유학(留學)의 길을 떠나 <로마(Roma)>에서 공부(功扶)를 했다. 그러나, <로마(Roma)>의 환락(歡樂)과 퇴폐(頹廢)에 물들지 못했던 <성 베네딕도( 聖 Benedicti )>는, <로마 공민 학교(Remo 公民 學敎)>로부터 퇴학(退學)을 당했다. 퇴학(退學)의, 이유(理由)는 아주 간단했다. <음탕(淫蕩)하지 못해 환락(歡樂)을 꿈꿀 줄도 모른다> 퇴학(退學)을, 당한 <성 베네딕도( 聖 Benedicti )>는 너무나 <열(熱)>을 받은 나머지 <귀족(貴族)>의 계급(階級)마저 버리고 <로마(Remo)>에서 가까운 <엔피데(Enpide)>의 <시골 마을>로 내려갔다. 그리고, 고독(孤獨)한 삶을 즐기기 위한 방법으로 <엔피데(Enpide)>의 <시골 마을>에 있는 <수비아코 계곡(Subiaco 溪谷 - 네로 황제의 별장이 있는 곳)>의 천연 동굴(天然 洞窟)이었던 <사크로 스페코 동굴(Sacro Speco 洞窟 - 거룩한 동굴)>에서 사람들을 피해 가면서 까지 <3 년>간을 <홀로 서기>의 <은수(隱修 - 숨어서 도를 닦음)> 생활에 들어갔다. 그러나, 운명(運命)이란 <바랄 때는 꿈도 꾸지 못하다가 바라지 않을 때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다. <수도사 베네딕투스(修道士 Benedictus )>의, 영성(靈性)이 얼마나 뛰어났던지 목동(牧童)들에게 <교리(敎理)>를 가르친지 얼마안돼 세간(世間)으로부터 <베네딕투스(Benedictus )>의 명성(名聲)이 알려지면서 <베네딕투스(Benedictus )>를 따르는 사람들이 하나, 둘 <사크로 스페코 동굴(Sacro Speco 洞窟 - 거룩한 동굴)>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어느 날, <베네딕투스(Benedictus )>는 <엔피데(Enpide)> 근처에 있었던 <비코바로(Vicovaro )>의 <수도 공동체 원장(修道 共同體 院長)>이 되어달라는 청탁(請託)을 받게 된다. 따라서, 퇴폐(頹廢)와 문란(紊亂)에 찌들어 있던 <로마(Roma)>의 <비코바로 수도 생활(Vicovaro 修道 生活)>에 <베네딕투스(Benedictus )>에 의한 새로운 개혁(改革)이 시도되는 <엄격한 규칙>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선배 수도사(先輩 修道士)>들은 <수사장 베네딕투스(修士長 Benedictus )>가 설쳐대는 꼴이 매우 못마땅했다. 그리하여, <수사장 베네딕투스(修士長 Benedictus )>를 살해(殺害)할 음모(陰謀)를 꾸미고 <점심>을 먹을 때를 틈타서 <포도주(葡萄酒)>에다 독약(毒藥)을 넣었다. <수사장 베네딕투스(修士長 Benedictus )>는, 음식(飮食)을 먹기 전에는 언제나 <성호(聖號 - 거룩한 표식의 상징으로 로마교 신자가 이마, 양어깨, 가슴 밑으로 내리 긋는 십자 형식)>를 그엇는데, 이상하게도 <성호(聖號)>가 그려지는 순간에 <술잔>이 깨어져버렸다. 부지 불식간(不知 不識間)에, 깨우침을 얻은 <수사장 베네딕투스(修士長 Benedictus )>는 <장탄식(長歎息)>을 후 ........... 하고 크게 터트린 후에야 <비코바로 수도원(Vicovaro 修道院)>을 떠나서 은둔처(隱遁處)인 <수비아코 계곡(Subiaco 溪谷)>으로 돌아갔다. 그 후, <수사장 베네딕투스(修士長 Benedictus )>는 자신을 따르는 <12 명>의 제자(弟子) 만을 거느리고 <작은 수도원>을 만들어서 본격적인 <수사 생활(修士 生活)>에 들어갔다. 하지만, <비코바로 수도원(Vicovaro 修道院)>의 <플로렌시오 신부(Florencio 神父)>는 <수사장 베네딕투스(修士長 Benedictus )>가 제자(弟子)를 거느리며 으시대는 꼴을 보지 못해, <수사장 베네딕투스(修士長 Benedictus )>를 몰아부쳤다. <기원후 525 년>, <수비아코 계곡(Subiaco 溪谷 - 네로 황제의 별장이 있는 곳)>에서 떨려난 <수사장 베네딕투스(修士長 Benedictus )>는 <몬테 카시노 산(Monte Cassino 山)>으로 이동(移動)했다. <기원후 530 년>, <몬테 카시노 산(Monte Cassino 山)>에 있던 <아폴론 신전(Apollon 神殿)>을 때려치우고 그 곳에다 <성 베네딕도 수도원( 聖 Benedicti 修道院)>의 모체(母體)가 되는 <몬테 카시노 수도원(Monte Cassino 修道院)>과, <몬테 카시노 성당(Monte Cassino 聖堂)>을 세웠다. 그리고, 그 동안에 <아폴론 신(Apollon 神)>을 믿고 받들었던 <이교도(異敎徒)>들을 모두 하나같이 <기독교(基督敎)>로 개종(改宗)시켰다. 아울러, <성 베네딕도 수도원( 聖 Benedicti 修道院)>의 모체(母體)가 만들어짐에 따라 <베네딕토 규칙(Regula Benedicti)>이라는 책(冊)을 저술(著述)하여 <금욕 생활>과 기도(祈禱), <수사(修士)의 공부(功扶)>, <육체 노동과 역할(役割)>이라는<세 가지 교리(敎理)>로 본격적인 <기독교 공동체(基督敎 共同體)>의 운명(運命)에 영향(影響)을 미친다. <성 베네딕도( 聖 Benedicti )>의, <베네딕도 규칙(Regula Benedicti)>은 그 후 <서방 교회(西方 敎會)>의 <수도원 법전(修道院 法典)>의 제도(制度)가 되었고 오늘 날의 <베네딕도 수도회(Benedicti 修道會)>가 자랑하는 <몬테 카시노 수도원(Monte Cassino 修道院)>은 산성(山城)의 의미 <베네딕도 수도회(Benedicti 修道會)>의 <총본부(總本部)>가 되었다. 오늘 날의, <성 베네딕도( 聖 Benedicti )>는 <서유럽 수도회의 아버지>로 불리우고 있다. 우리나라의, <한국 로마 가톨릭 교회(천주교)>에서는 <성 베네딕도 회( 聖 Benedicti 會)>를 <분도회(芬道會)>라 부르기도 한다. <성 베네딕도( 聖 Benedicti )>란, <좋게 말한 축복의> 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검은 로브(robe - 아래위가 붙어 하나로 된 길고 헐렁한 겉옷)에 하얀 두건(頭巾)을 쓴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탈리안(Italian)>의, 농부(農夫)와 기술자, 건축가, 화학자, 동굴 학자들의 수호신(守護神)이다. <성 베네딕도 회( 聖 Benedicti 會)>의, 상징물(象徵物)은 1), 종(鐘), 2), 깨진 컵(Cup), 3), 베네딕토 회의 수도복· 4), 지팡이(杖), 5), 부리에 <빵>을 물고 있는 <까마귀>이다. 따라서, <성 베네딕도 회( 聖 Benedicti 會)>는 <평화’(pax)와 기도(祈禱)하고 일하라(ora et labora)> 하는 슬로건(slogan)으로 하나의, 통일된 수도회(修道會)가 아니며 각각의 수도원(修道院)들이 하나의 <독립된 수도회(修道會)>를 이루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때문에, <성 베네딕도 회( 聖 Benedicti 會)>의 <존재 의미>보다는 <베네딕도 규칙서(Benedicti 規則書)>를 따르는 수도원(修道院)들이 존재한다는 표현으로 보아야 더 마땅할 것이다. 따라서, <베네딕도회 총 연합회(Confederatio Benedictina)>가 존재하지만 서양(西洋)의 <예수회(Jesus 會)>나 <프란체스코 회(Francesco 會- 작은 형제의 수도회)>와 같이 권위(權威)와 권한(權限)을 자랑하는 <중앙 집권적>인 조직 기구(組織 機構)가 아니다. 때문에, <베네딕도 총 연합회(Confederatio Benedictina)>에 소속되어 있는 수도원(修道院)들은 상호의 신뢰(信賴)속에서 <종속(從屬) 관계>에 있지 아니하기 때문에 <경제>와 <인사 문제>에 있어서도 <총 연합회>의 간섭(干涉)을 전혀 받지 않고서 독자적(獨自的)으로 운영권(運營權)을 가지는 <자치적 수도원(monasterium)>들이다. 그러나, <베네딕도 총 연합회(Confederatio Benedictina)>에도 <21 개>의 <연합형 수도원(聯合型 修道院)>들의 <연합회(Congregatio)>와 <21 개>의, <연합형 수도원(聯合型 修道院)>에도 속하지 않은 <독립형 수도원(獨立型 修道院)>들과 <독립형 수도원(獨立型 修道院)>에 예속(隸屬)되어 있는 <수도원(修道院)>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연합형 수도원(聯合型 修道院)>들과, <독립형 수도원(獨立型 修道院)>들이 헙쳐져서 하나의 <성 베네딕도 회( 聖 Benedicti 會)>의 <총 연합(總 聯合)>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따라서, <성 베네딕도 회( 聖 Benedicti 會)>의 직위(職位)에는 1), <수석 아빠스(Abbas primas - 성 베네딕토 수도회의 총 연합을 대표하는 )> 2), <총재 아빠스(Praeses - 각 연합회마다 그 연합회를 대표하는 )> 3), <총 아빠스(Archiabbas - 각 연합회마다 그 연합회를 대표하는 )> 4), <아빠스(Abbas - 각 자치 수도원을 대표하는 )> 5), <원장(院長 - 각 수도원 장 )>이 있다. 그리고, <성 베네딕도 회( 聖 Benedicti 會)>의 <전 세계 베네딕도 수도 회원>들의 양성(養成)과 학문(學文) 연구를 위해 <기원후 1,888 년>에 설립된 <로마 가톨릭 수도회(Ordines monastici)>의 <성 안셀모 대학교(聖 Anselmo 大學敎)>가 있다. <성 베네딕도 회( 聖 Benedicti 會)>의, <오딜리아 연합회(Congregatio Ottiliensis Ordinis Sancti Benedicti)>라 부른다. <연합회(聯合會)>의, 이름을 구분하는 것은 <전 세계>에 산재해 있는 <성 베네딕도 회( 聖 Benedicti 會)>를 구별하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경북 칠곡군 왜관읍(慶北 漆谷郡 倭館邑)>에 <성 베네딕도 회 왜관 성 마오로 쁠라치도 수도원>이 있다. (聖 Benedicti 會 倭館 聖 Maoro Flacido 修道院) <성 마오로>와 <성 쁠라치도>는 <성 베네딕도>의 <12 명 제자> 가운데 한 사람들이다. <오딜리아 연합회(Congregatio Ottiliensis Ordinis Sancti Benedicti)>의, <자치 수도원(自治 修道院)>이다. <왜관 수도원(倭館 修道院)>으로 불리운다. <기원후 1,952 년 7 월 6 일>, <한국 군사 분계선>을 넘어서 온 <베네딕도 회, 덕원 수도원>과 중국(中國)의 <베네딕도 회, 연길 수도원>의 수사(修士)들이 월남(越南)하여 설립하였다. <기원후 2,007 년 현재>, <140 명>의 수사(修士)들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서울, 대구, 부산 찍고 남양주(南楊州 - 경기도), 중국의 화순, 미국의 <뉴저지> 등지에 <분원>과 <수도원>이 있다. 미국의 <뉴저지>에 있는 <수도원(修道院)>은 <원장좌>의 <예속 수도원>으로, <기원후 2,002 년 1 월 25 일>에 <왜관 수도원>에서 인수(引受)하여 <8 명>의 <한국인 수사(韓國人 修士)>가 파견되었다. 남양주(南楊州 - 경기도)의, <성 요셉 수도원>은 <기원후 1,998 년 3 월 19 일>에 <원장좌 예속 수도원>으로 승격(昇格)되었다. <기원후 2,006 년 11 월 1 일>에는, <전남 화순군(全南 和順郡)>에 새로운 <수도원(修道院)>을 설립하였다. <기원후 2,007 년 4 월 6 일 새벽 1 시 35 분> <경북 칠곡군>의 <왜관읍 성베네딕도 회> <왜관 성 마오로 쁠라치도 수도원>의 <본관 건물>에서 원인 모를 불이 났다. <기숙사>로, 사용하던 <3 층> 건물에서 불이 발생해 아래층으로 번졌다. <기숙사>, 건물에는 <20 명>이 잠을 자고 있었으나 <화재 신고>를 받고 출동한 <한국 소방서 구조 대원>들은 <소방 병력 169 명>과 <소방차 26 대>의 차량과 장비로 <화재 현장>에서 인명을 무사하게 대피시켰다. 그 불은, <3 층> 짜리 <목조 건물>을 삽시간에 태우고 <1 억원> 상당의 <재산 피해(한국 소방서 추산)>를 낸 뒤에야 <4 시간 20 분>만에 진화됐다.
불에 탄, <왜관 수도원> 본관은 <기원후 1,975 년>에 건립된 <벽돌조 3 층>의 건물로 전체 면적 <8, 200 평방미터 ㎡ >중에서 <1, 464 평방미터㎡ >가 불에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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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네딕도 회 왜관 성 마오로 쁠라치도 수도원>의 불타는 본관 ![](https://t1.daumcdn.net/cfile/cafe/18750E184AC7C0130A)
불탄 본관 ![](https://t1.daumcdn.net/cfile/cafe/187537184AC7C0B70A)
불탄 기숙사 ![](https://t1.daumcdn.net/cfile/cafe/195DE42C4AC7C8FF10)
불탄 본관 ![](https://t1.daumcdn.net/cfile/cafe/205D952D4AC7CB5515)
불탄 본관 ![](https://t1.daumcdn.net/cfile/cafe/11566E2A4AC7D16425)
불타는 <몬테 카시노 수도원(Monte Cassino 修道院)>, <제 2 차 세계 대전> 때의 전세(戰勢)가 <연합군>으로 기울어 가던 <1,944 년 5 월 18 일>, <이탈리아>의 로마 남동쪽에 있는 <몬테 카시노 수도원>을 연합군이 맹공격을 했다. <연합군>의 대공세에 밀린 <독일군>은 <몬테 카시노 수도원>의 <언덕>으로 퇴각해 사령부를 세웠다. <연합군>은, <공중>과 <지상>에서 무차별 폭격과 포격을 가해 <이탈리아 국가 기념물>인 이 수도원을 완전히 파괴했다. <유럽 수도원>의 발상지인 <베네딕투스 수도회>의 총본산인 <몬테 카시노 수도원>은 <제 2 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에야 <교황 바울 6 세>에 의해 <1,964 년>에 재복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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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몬테 카시노 수도원(Monte Cassino 修道院)>, ![](https://t1.daumcdn.net/cfile/cafe/13584A2B4AC7D53D32)
망가져버린 <몬테 카시노 수도원(Monte Cassino 修道院)>, ![](https://t1.daumcdn.net/cfile/cafe/19585A2B4AC7D5A42D)
폭삭 내려앉은 <몬테 카시노 수도원(Monte Cassino 修道院)>, ![](https://t1.daumcdn.net/cfile/cafe/195D042D4AC7D63832)
독일군으로 싸워서 세상을 떠난 <몬테 언덕의 폴란드 병사>들의 무덤, 독일군으로 싸워야 했던 우리 폴란드 병사들은 당신들의 자유를 위해 하느님에게 우리의 영혼을 건넸다. 우리의 영혼은 이탈리아의 대지에 주어졌고 우리의 영혼만을 폴란드에 보냈다. <폴란드 제 2 군단>의 군장이었던 <안데르스(Anders) 장군>이 <4 개 국어>로 된 <폴란드 병사>들의 묘비를 세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