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타인이란 존재를 항상 신경쓰며 살아갑니다.
인간에게는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본능이 있는데,
이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무리를 이룸으로써 포식자에 대항하고자 했던
구석기 시대의 진화적 산물이라고 볼 수 있어요.
즉, 우리는 사회 생활을 하는 대부분의 시간동안,
우리의 실체를 그대로 드러낸다기보다는
외부에 보여지기를 원하는 이상적인 이미지대로 생활하려고 노력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성은 특히 남녀 관계에서 정점을 이루게 되죠.
작용 반작용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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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는 몹시 예민한 사람이다.
하지만 자신이 예민하다는 걸 주위 사람들이 알게 되는 걸 싫어해서
평소에는 그렇지 않은 척, 매우 대범하고 무던한 척 보이려고 노력한다.
자신의 바램대로 회사 사람들은 모두 다 A를 대인배처럼 여기게 되었다.
A는 내가 바란 이미지대로 사람들이 자신을 봐 주는 게 기뻤지만 문제가 있었다.
사람들이 A에게 점점 스스럼없는 행동, 무리한 요구 등을 해 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A는 대범한 사람이니까~'
'A는 뭐든지 다 받아주는 사람이니까~'
A는 점점 지쳐만 갔고,
사람들이 자신을 내가 만들어낸 이미지대로 봐 주는 걸 더이상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나 원래 이런 사람 아니야라고 주변에 이야기할 수는 없다.
이제 와서 무르기엔, 너무 멀리 와 버렸다.
A는 지금 이러저러한 고민들과 스트레스 때문에 머리가 터질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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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미지와 실체가 각각 존재합니다.
이미지는 보통, 페르소나란 이름으로
남들에게 이렇게 보였으면 좋겠다 싶어 만들어 쓴 이상적인 가면을 의미해요.
이러한 이미지와 실체 사이의 간극이 최대치가 되는 시점이 보통 사랑에 빠질 때인데,
통상적으로, 상대방의 가치를 높게 볼 수록, 내가 만들어낸 이미지의 이상적 강도 역시 높아지게 됩니다.
소개팅에 나갔는데,
내가 봐도 너무 괜찮은, 반드시 잡고 싶은 상대가 나왔다.
이런 상황에선, 사람이라면 인지상정, 약간의 긴장과 함께 최대한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소개팅이 잘 돼 만남을 쭉 이어나가게 됐다면,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하게 되죠.
이게 바로 사랑에 빠진 사람들 특유의 "뒤를 생각하지 않는 퍼포먼스"입니다.
페르소나 플레이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존재합니다.
내가 만들어낸 이미지의 유지를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노력과 부지런함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 이미지의 이상적 강도가 클 수록, 내가 들여야하는 노력의 양은 더욱더 증가할 수밖에 없겠죠.
즉, 애초에 단거리 경주에나 효율적이지, 상대적으로 기나긴 마라톤에는 유효한 전략이 아니라는 겁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만약 연애까지만 생각하고 즐긴다면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겁니다.
연애는 상대적으로 단거리 경주에 가까운지라,
전력질주하다 힘이 빠지면 자연스럽게 이별로 향하면 그만이니까요.
그런데, 연애 후 결혼의 흐름이라면 어떨까요?
누가 봐도 괜찮은 사람을 나의 전력질주 퍼포먼스로 잡아놨는데,
결혼하고 나서 점점 나의 이미지가 벗겨지기 시작하고 실체가 드러난다면,
그때 가서 상대방이 느끼게 될 실망감은 과연 어떠한 수준일까요?
사실 인간관계에서 가장 편하고 안전한 길은
내가 온전히 나로서 존재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나를 알리는 일입니다.
내가 어떠한 성격이라는 것을 주변 사람들이 알고 있으면, 그에 맞춰서 나를 대하기 마련입니다.
A는 내향인이니까, 혼자만의 시간을 최대한 방해하지 말아야지.
B는 외향적이니까, 놀 일이 있으면 같이 놀자고 불러야겠다.
일종의 작용 반작용의 법칙인 셈이죠.
연애와 결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누군가와 단거리 경주가 아닌 마라톤 경주를 함께 하고 싶다면,
한시라도 빨리 나의 실체를 꺼내놓고 그 사람이 나의 진면모를 사랑할 수 있는지 가늠해봐야 해요.
그렇게 했다가, 그 사람이 저를 좋아하지 않으면 어쩌죠?
어쩔 수 없습니다.
나는 키가 작은데, 상대방이 키 큰 사람을 좋아한다고 해서,
평생토록 키높이 구두를 신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언젠가는 반드시 구두를 벗어야 하는 순간이 오게 되며,
상대방이 느끼게 될 실망감과 배신감은 충분히 관계 갈등의 기폭제가 될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욕심이죠.
현실의 나보다 더 나아보이고 싶은 욕망
나보다 더 괜찮은 사람과 함께 하고 싶은 욕망
물론, 이미지로 포장된 결혼도 성공적일 수 있습니다.
관계를 위한 나의 노력과 희생이 평생토록 뒷받침될 수 있다면 말이죠.
나의 실체를 좋아해주는 사람과 함께 머나먼 여행을 떠날 것인가?
내 이미지를 좋아해주는 사람을 위해 기나긴 출장을 떠날 것인가?
선택은 각자의 몫입니다.
※ 무명자 블로그 : https://blog.naver.com/ahsune
첫댓글 오~ 결혼을 생각하는 것이 문제인 것 같네요 ㅎ 늘 고맙습니다 ^^
처음부터 너무 잘 해주지 말라는 어른들의 말씀은 경험에서 비롯된...ㅋㅋ
연애와 결혼의 결정적 차이라고나 할까… 아님 미성숙할때의 연애와 여러 실수 뒤 비교적 성숙해진 뒤의 연애의 차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