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갈수록 사는 게 팍팍하다. 너나 할 것 없다. 나이와 성별을 가리지 않고 대다수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는 듯하다. 당연하다. 수많은 젊은이들은 높은 취업 장벽 앞에서 한숨을 쉬고, 나이든 이들은 그들대로 앞날이 불안하거나 끝이 보이지 않는 책임에 허덕이고 있다.
그래도 해가 바뀔 때마다 많은 이들은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를 품는다. 또는 스스로 뭔가 달라지겠다고 다짐을 하기도 한다. 어쨌거나 새해를 앞둔 사람들은 새로운 출발을 기약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새해 벽두에 ‘도전’을 화두로 삼는 것이 무용하지는 않을 터다. 존 베이커라는 미국 육상선수가 있다. 그는 1944년에 태어나 1970년에 스물여섯이라는 이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이들이 많을 것이다. 세계 신기록을 세운 것도 아니고, 올림픽엔 출전조차 못해 본 ‘무명’이니 말이다. 그러나 적어도 뉴멕시코 주 앨버커키에서는 다르다. 그의 모교가 아예 그의 이름을 따서 개명할 정도였다. 그것도 학부모 전원이 찬성했다.
베이커는 앨버커키의 만자노 고교 시절 육상을 시작했다. 친구 덕에 육상팀에 들어갔다니 체격 조건은 그리 뛰어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도 타고난 승부근성 덕에 크로스컨트리 경기의 성적은 좋았다. 3학년 때는 뉴멕시코 주에서 가장 잘 달리는 선수가 되었다. 전성기엔 ‘무적의 존’으로 불렸단다. 1962년 대학 진학 후 1마일(1600미터) 경주에 집중하면서 승승장구했고 마침내 유력한 올림픽 대표선수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그는 지독한 연습벌레라고 불렸다. 지역신문에 “사막에서 뭔가가 엄청난 속도로 지나갈 때 혹시 UFO가 아닌지 놀라지 마라. 행여나 사냥을 할 때는 개를 꼭 잡고 총을 함부로 쏘지 마라. 그건 모두 달리는 베이커일 뿐이다”라는 기사가 실릴 정도였다.
하지만 베이커의 영광은 거기까지였다. 1969년 그는 에스펜 초등학교 체육교사로 근무하면서 뮌헨 올림픽에 대비한 훈련을 하던 중 쓰러지고 말았다.
병명은 악성 고환암. 6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는 시한부 진단을 받고 몇 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18개월 정도 더 살았을 뿐이다. 그의 나이 26세였다. 그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고, 독특한 교육 방법을 고안했으며, 누구보다도 아이들을 헌신적으로 사랑했다.
누구보다도 위대했던 존 베이커의 《마지막 질주》
베이커는 암 진단을 받은 후 절망에 빠졌다. 그는 자살하기 위해 근처 산의 낭떠러지로 차를 몰고 가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이내 돌아섰다. 자신이 평소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해라. 결승점에 도달하기 전에는 절대로 포기하거나 주저앉지 말라”고 가르쳤던 날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는 “앞으로 내 삶이 얼마나 남았든 상관없다. 내 삶을 나의 소중한 아이들에게 바치겠다. 한번 병과 싸워보겠다” 고 결심했다.
학교로 돌아간 그는 교육방침을 바꿨다. 직접 리본을 만들어 최고로 잘한 학생과 최선을 다한 학생 모두에게 달아줬다. 최선을 다한 이를 1등 한 이와 똑같이 대하는 교사가 몇이나 될까? 나아가 그는 기관지염 때문에 달리기를 포기한 학생이나 팔에 장애가 있는 학생처럼 어쩔 수없이 달리기를 그만둔 학생들을 트랙 담당 부코치나 공식 장비관리자로 임명하는 등 여러 가지 직책을 맡기고 스스로 하는 법을 가르쳤다.
베이커에게 달리기의 목적은 메달을 따고 기록을 경신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육상팀은 힘든 일을 하는 것, 실패를 경험해보는 것, 다시 한 번 시도하는 것,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것 등 삶을 헤쳐 나가는 방법을 배우는 곳이다. 우리의 목표는 모든 것을 통해 긍정적인 삶을 배우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얼마 남지 않은 삶에서 최대한 많은 아이들과 함께 하기를 원했던 베이커는 듀크시(앨버커키의 별칭)의 연합 육상클럽의 코치가 되었다. 거기서 8~13세의 여학생 선수들에게 “항상 최선을 다해라. 그 최선에서 한 발자국만 더 나아가라” “중요한 것은 승리가 아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오늘 빼먹은 훈련 날은 다시 오지 않는다” 등 생생한 교훈을 전했다. “우리가 우리를 존중하고, 서로 사랑하고 격려하며, 우리의 일에 최선을 다한다면 모두가 챔피언” 이란 것이 그의 가르침이었다.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 정신을 흐릿하게 만드는 진통제 투여를 거부하며 마지막까지 버티던 그의 삶이 헛되다고 할 이가 있을까.
그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고, 독특한 교육 방법을 고안했으며, 누구보다도 아이들을 헌신적으로 사랑했다. 길지 않은 그의 삶은 사람을 울린다. 우연히 베이커의 대학후배가 된 한국의 체육학도가 그에게 반해 온갖 자료를 섭렵해 써내려 간 《마지막 질주》(권영섭 지음, 사과나무, 2009)에는 그의 삶이 온전히 담겨 있다. 《마지막 질주》는 이색적인 책이다.
4285킬로미터 도보여행과 인생의 담금질
《와일드》(셰릴 스트레이드 지음, 우진하 옮김, 나무의 철학, 2012)는 멕시코 국경에서 캐나다 국경까지 4285킬로미터에 달하는 트레킹 코스인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을 석 달여에 걸쳐 홀로 주파한 20대 여성의 또 다른 도전기다. 1995년 당시 작가를 꿈꾸던 셰릴 스트레이드는 생의 바닥을 친 상태였다. 4년 전 세상에서 유일하게 사랑하던 어머니를 암으로 잃었다. 어머니를 잃은 아픔에 낯모르는 남자와 하룻밤을 즐기고 마약까지 하는 바람에 결국 19살에 했던 결혼은 이혼으로 막을 내렸다 .
생의 막다른 골목에 몰린 셰릴은 “강한 의지와 책임감, 맑은 눈을 가진 사람, 의욕이 넘치며 상식을 거스르지 않는 그냥 보통의 좋은 사람” 이 되기 위해 PCT에 도전한다. 한데 PCT는 해발 2000미터가 넘는 능선과 찌는 듯한 사막이 공존하는 도보여행 코스다. 그녀는 배낭을 메고 산을 타본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일곱 달 동안 야외용품을 구입하고, 응급조치부터 휴대용 정수기 사용법까지 수많은 서바이벌 기술을 갈고 닦았다. 그리고 6월 어느 날 캘리포니아 남쪽 끝에서 첫 발을 내디뎠다. 처절하지만 장엄한 투쟁의 시작이었다.
여행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겨드랑이 방취제부터 책까지 집어넣은 배낭은 자기 몸무게의 절반에 달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일어설 수조차 없었다. PCT는 하루 평균 20km 이상을 걸어야 석 달 안에 주파할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경험이 없는 만큼 아무리 걸어도 하루 10km 남짓이 고작이었다. 등산화를 잃어버려 중간보급소까지 ‘테이프로 만든 신발’로 걷기도 했다. 발은 부르트고, 어깨는 배낭에 쓸리는 등 몸은 ‘깨진 유리잔’처럼 느껴졌다. 그 몸부림은 “PCT를 마칠 때 발톱 6개가 빠졌다” 는 한 줄로 정리된다.
셰릴은 여행의 길 위에서 자연을 배우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 인생의 전환점을 찾는 데 성공한다. 물론 돈이 없다고 야영장에서 쫓아낸 부부나 스물여섯 살 젊은 여성에게 지분거리는 남자를 만나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인생의 담금질’의 하나였을 뿐이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인생이란 얼마나 예측불허의 것인가. 그러니 흘러가는 대로, 그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라는 《와일드》의 마지막 구절은 절절한 공감을 끌어낸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요기 베라라는 미국 야구선수가 있다. 1940년대 후반부터 50년대까지 뉴욕 양키스에서 활약하며 10개의 우승 반지를 낀 전설적 포수다. 선수 은퇴 후에는 뉴욕 양키스의 감독에 올라 월드시리즈 2연패를 달성하기도 했다. 그는 수많은 명언을 남겼는데, 가장 널리 알려진 명언은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 이다. 이 말은 감독을 하던 뉴욕 메츠가 꼴찌로 처지자 어떤 기자가 비아냥거렸을 때 그가 의미심장하게 던진 한마디였다. 실제로 그해 뉴욕 메츠는 거짓말처럼 대반전에 성공하여 월드시리즈까지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분투하다가 최종전 7차전에서 장렬하게 패배했다.
더 내려갈 곳도 없는 밑바닥에서 올라오더니, 만신창이가 되어서도 죽을힘을 다해 싸우다가, 정상을 단 한 발자국 남기고 힘이 다해 쓰러진 이 각본 없는 드라마는 아직도 미국 야구팬에게 전설로 회자되고 있다. 이처럼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자세야말로 새해를 맞이한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까? 당신이 어디에서 누구와 무엇을 하는 사람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실패가 아니다. 무릎이 꺾이고 쓰러져도 다시 또 일어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말로 피해야 할 것은 바로 ‘포기’다. 실패한 자에게도 내일의 해는 뜬다. 하지만 포기하는 자에게 내일은 결국 또 포기하고 마는 어제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자.
김성희 칼럼니스트, 언론인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난 그는 중앙 중·고교, 고려대 법과대학 행정학과와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을 졸업했다. 1983년 기자 생활을 시작, 한국일보·중앙경제·중앙일보·동아일보에서 정치부·편집부·문화부 기자 생활을 하고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출판팀장으로 정년퇴직했다.
참고도서
《마지막 질주》(권영섭 지음, 사과나무, 2009)
《와일드》(셰릴 스트레이드 지음, 우진하 옮김, 나무의 철학, 2012)
사진 1. 유망주 존 베이커는 악성 고환암 진단을 받고 선수 생명의 끝을 맞이했다.
사진 2. 인생의 밑바닥으로 곤두박질 친 셰릴은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해 4285킬로 미터에 달하는 도보여행을 떠난다.
사진 3. 요기 베라는 명언 제조기로 통한다. “섣불리 예상하지 말라. 특히 미래에 대해선”이라 는 그의 또 다른 명언에는 미래에 대한 자만이나 두려움을 걷어내는 힘이 있다
첫댓글 실패를 경험해 보는 것. 다시 시도하는 것... 이 말 속에 함축되어 있는 인생의 깊고 넓은 맛을 우리네 부모들이 이해한다면 우리 아이들의 삶이 얼마나 흥미롭고 풍요로운 것이 될까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