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성 저궤도 광업 및 연구용 우주정거장 로스(Los)의 아침이 밝아왔다. 물론 여기서 아침이라 함은 로스 메인프레임에 내장되어 있는 장기간 우주체류용 ED(Every Day)사이클 프로그램에 따라 정해진 시간마다 기온이 바뀌고 불빛이 바뀌고 벽 내장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자연의 소리가 달라지는 기간중 아침을 말하는 것이였다. 태양이 뜨고 진다는 의미에서의 아침은 로스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로스는 언제나 수성의 그림자 뒤에 숨어서 태양풍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피하고 있었다. 그러니 태양이 뜨고 진다는 의미에서 본다면 로스는 언제나 밤인 셈이였다.
수성의 그림자 뒤에 언제나 숨어있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였다. 수성은 한 때 태양과 너무 가깝기에 마치 달과 지구의 관계처럼 수성이 태양의 기조력에 사로잡혀있다 생각 된 적이 있었다. 한 행성이나 항성의 중력에 다른 행성이 너무도 강력하게 붙잡혀서 공전 주기와 자전 주기가 동일해지고 마치 지구에서 달을 보면 언제나 똑같은 면만 보이듯 계속 똑같은 면이 모항성및 모행성을 바라보고 있는 상황을 기조력에 사로잡혀있다고 말한다. 안타깝지만 20세기의 과학자들은 틀려도 크게 틀렸다. 수성은 태양의 기조력에 사로잡혀 있지만 충분히 강하게 사로잡혀있지 않기에 2:3의 비율을, 즉 2번 공전을 할 때마다 3번 자전을 하는 살짝 부족한 비율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로스가 수성의 그림자에 남아있기 위해서는 정지궤도로 공전하는게 아니라 정지궤도보다 아주 살짝 빠른 속도로 공전을 해야만 했다. 게다가 조금이라도 그 속도를 제대로 계산하지 못한다면 언제 수성의 그림자를 떠나서 강력한 태양풍을 직접적으로 맞이하고 무시무시한 방사능과 무시무시한 복사열을 맞이하게 될 지 몰랐다. 2년마다 3번의 자전, 즉 2년마다 겨우 1번의 자전을 더 하는 수준 가지고 너무 극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을텐데, 수성의 2년은 지구로 따진다면 겨우 175일이였다. 수성이 태양의 기조력에 완벽하게 사로잡혀 있었다면 그냥 대충 그림자 아무곳에나 정지궤도로 박아 놓고 모든 일이 다 해결됬을테니 제법 아쉽다 할 수 있었다. 특히 그 치명적인 위협에 언제나 시달리고 있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북미 침엽수림이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푸르고 높은 하늘 위로 뻗어올려진 풍경 한 가운대, 통나무집이 하나 있었다. 그 통나무집은 침엽수림을 갓 베어 짓은듯 여전히 나무에 푸르른 빛이 가득했고 크기는 대략 20평 내외로 보였다. 창문은 유리가 아니라 통나무 벽에 구멍을 뚫어서 자그마한 나무 판자 2개를 붙혀놓은 것이였고, 창문 위에는 적갈빛 뻐꾸기 시계 하나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통나무집은 안에 따로 벽 없이 하나의 방으로 되어 있었는대 방의 바닥에는 장판 용도로 깔아 놓은 나무판자 위에 불곰의 가죽이 통채로 생기 넘치게 깔려 있었다. 그 외에도 불이 이글거리며 타오르고 있는 벽난로 위에 순록의 머리 박제가 당장이라도 뛰어오를듯 생기 넘치게 매달려 있는 것이 매우 인상 깊은 모습이였다. 벽난로 옆에는 적갈색 나무로 몸체를 짰고 스프링과 면화로 만든 하얀 매트리스와 이불이 있는 침대 한대가 놓여져 있었다. 그 침대에서는 30대 남자 한명이 안락하게 쿨쿨 자고 있었다. 머리카락은 관리를 잘 하는지 짧은 스포츠 머리가 인상 깊었고, 깊은 흑회색 머리카락과 눈썹은 제법 기품있으면서도 유쾌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키는 대략 180 내외 정도로 보였다. 입고 있는 옷은 일종의 플라스틱 합성섬유 종류로 보였는대 색깔은 옅은 하얀색이였고 상하의가 하나로 되어 있는지 따로 나뉘어지는 부분 없이 발목부터 팔목까지 이어졌다. 가슴 한쪽에는 존 햄턴이라는 이름이 검은색으로 상감 돼 있었다.
뻐꾹거리며 뻐꾹이 시계가 시간을 알렸다. 아침 7시였다. 존 햄턴은 휴스턴의 린던 존슨 스페이스 센터에서 1년간의 훈련과정을 거치며 컴퓨터와 의사들이 계산 한 최적의 라이프사이클을 유지하고 있었고, 이 라이프사이클을 뒤흔들만한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아침에 일어나며 피로감을 느낄 일은 없었다. 그렇기에 존 햄턴은 그리 요란하지 않은 뻐꾹이 소리에도 큰 문제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의 피로감도 느껴지지 않는 아주 개운한 아침이였다. 침대맡의 나무창문을 삐꺽이며 열면 보이는 주위의 침엽수림과 통나무집 인테리어는 언제 봐도 존 햄턴의 마음을 편안하게 안정시켜줬다. 물론, 우주정거장 로스의 안에 정말로 통나무집과 침엽수림이 있는 것은 아니였다. 존 햄턴의 실제 거주구역은 침대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20평 넓이의 텅 빈 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존 햄턴의 거주구역이 통나무집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것은 존 햄턴의 안구에 이식 된 32k x 32k 해상도의 증강현실 망막이였다. 로스의 메인프레임은 어디에 어떤 것이 어떻게 보여야하는지를 존 햄턴의 증강현실 망막으로 전송하고, 그러면 증강현실 망막은 현실과 다름 없는 초고해상도의 이미지를 사실적으로 표현해 보여준다. 그러면 따로 별다른 추가비용을 지불할 필요 없이 너무도 간단하게 수많은 풍경들을 공간과 시간의 제약 없이 정거장 어디에서나 관람할 수 있었다. 자연이라고는 수경재배농장을 제외하고는 눈 씻고 찾아도 볼 수 없는 정거장 로스에서 삭막하기 짝이 없는 회색 벽만 보며 수성시간으로 10년간 살다보면 자연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정신적으로 불안정해지기 마련이였다. 여전히 개발단계에 놓여있는 증강현실 망막을 굳이 정거장 로스에서나마 상용화한 이유였다. 다만, 귀 건강 이유 때문에 따로 초소형 이어폰을 이식하진 못했으며, 대신 어디에나 달려있는 벽 내장 스피커로 증강현실의 소리 문제를 해결하고 있었다.
존 햄턴은 자리에서 일어나 통나무집을 나왔다. 통나무집 밖에는 당연히 침엽수림이 보였다. 존 햄턴은 침엽수림을 보며 명확하게 말했다.
"미스 프레임(Ms. Frame), 트레이닝룸으로 가고 싶어."
"식은죽 먹기죠. 잠깐만 기다리세요. 멋들어진 오솔길 하나 뚫어서 내놓을테니."
프랑스 악센트의 젊은 여성 목소리가 허공에서부터 들려왔다. 존 햄턴의 개인적 취향을 반영한 메인프레임의 목소리였다. 목소리는 최대한 기계적인 톤을 없애서 마치 실제 여성의 목소리처럼 들렸고, 말하는 내용도 딱딱한 명령문이 아니라 아주 자연스럽고 현실적인 문장이였다. 일부로 명칭도 메인프레임이 아니라 메인프레임을 살짝 비튼 미스 프레임이라 불렀다. 메인프레임과 정거장 운영자간의 애착관계를 자연스럽게 만듬으로서 외로움과 고독감을 덜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애초에 괜히 AI라 해서 괴상한 기계음으로 딱딱한 명령문만 말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
여하튼, 존 햄턴의 명령을 들은 메인프레임은 침엽수림 한가운대에 오솔길을 만들어냄으로서 트레이닝룸까지의 길을 보여줬다. 만약 존 햄턴이 오솔길이 아니라 배경의 침엽수림을 탐험하려 한다면 우선 메인프레임의 경고메시지를 받게 되고, 그 후에도 계속 탐험하려 한다면 메인프레임에 의해 강제적으로 증강현실이 해제되며 존 햄턴이 벽을 향해 돌진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그 후에도 방향을 바꾸지 않고 계속 걸어가려 한다면 당연스럽게도 벽에 부딪히고 고통을 통해 교훈을 얻게 된다. 존 햄턴은 특별히 자해충동이 느껴지지 않았기에 침엽수림 배경 대신 오솔길을 걸었다. 걷는 와중 존 햄턴은 메인프레임과 잡담을 나누기도 했다.
"햄턴씨, 제가 여기 오고서부터 느낀게 하나 있는대요, 여긴 비가 안 내려서 참 좋은 것 같아요."
"그래, 나도 그점은 참 마음에 들더라고. 비 맞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던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 중금속이 듬뿍 함유 된 빗물을 콧구멍과 입으로 마시면서 머리도 화끈하게 한바탕 감아버리는 사람은 그저 자해를 좋아한다고 밖에 보이지가 않잖아? 돌아도 아주 제대로 돈거지."
"어락 보바마는 아마 동의하지 않을걸요. 전에 체스터에서는 비 맞으면서 아주 연설 잘 하던대."
"어락 보바마가 아직도 임기중이던가? 그 아저씨 이미 임기 끝나지 않았어?"
"재선했죠. 릿 몸미랑 한바탕 붙었는대 황인 뒷심이 아주 제대로 먹혀서 멋들어지게 재선에 성공했잖아요. 지구 소식도 좀 듣고 사세요. 살다살다 인공지능이랑 정치 이야기 해서 망신 당하는 사람을 다 보네."
"뭐, 이런 말도 있잖아. 거리가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나는 아무래도 이제 지구인이 아니라 수성인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어머, 수성에서 2년 좀 살았다고 지구에서의 35년 인생을 부정하시는 것인가요?"
"8년. 수성에서 2년 아니라 8년 살았지. 여긴 수성인대 수성시간을 써야하지 않겠어."
그렇게 잡담을 하며 얼마나 걸었을까, 잠시 후 시야가 확 넓어지며 숲 안쪽의 넓찍한 공터가 나타났다. 그 공터는 트레이닝룸이니만큼 다양한 운동기구가 놓여져 있었다. 존 햄턴은 메인프레임에게 명령을 했다.
"미스 프레임, ED(Every Day)스케줄 베타를 진행해줘."
"알겠습니다. ED 스케줄 베타의 트레이닝룸 구간을 오전 7시 18분 32초에 실행합니다."
"지구에서도 하지 않던 매일매일 운동을 벌써 8년동안 하고 있네. 이러다보면 언젠간 캘리포니아 주지사처럼 될 수 있지 않을까?"
"계산기를 돌려볼 필요도 없는 질문이네요. 될 수 있을 것 같으세요?"
ED스케줄은 매일매일 라이프사이클을 유지하기 위해 반복해야하는 스케줄을 말하는 것이였다. 그 스케줄은 우선 상황에 따라 알파, 베타, 감마의 세 종류로 나뉘어지고, 세 종류의 각 스케줄은 다시 여러 구간으로 나뉘어지게 된다. 그 구간은 어디에서 스케줄을 진행하느냐에 따라 메인프레임이 알아서 적절한 구간을 실행해주고, 구간의 순서만 정확하게 유지한다면 정확히 몇시에 어떤 구간을 진행하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정거장 운영자가 자유시간을 자율적으로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ED스케줄 베타의 트레이닝룸 구간을 메인프레임에 의해 실행되자 당장 해야할 운동이 시야 왼쪽 위 구석에 떠올랐고 시야 오른쪽 위 구석에는 타이머가 떠올랐다. 시야 왼쪽 위 구석에 떠오른 운동을 오른쪽 위 구석에 떠오른 타이머만큼 수행하고, 다음 떠오른 운동을 다음 떠오른 타이머처럼 수행하고, 해당 구간이 모두 끝날 때까지 그것을 계속 반복하면 됬다. 대략 1시간 정도 운동을 하고 나니 트레이닝룸 구간이 모두 끝났다. 땀으로 범벅이 된 존 햄턴은 말했다.
"휘유, 이제야 끝났네. 매일 아침마다 1시간씩 운동을 해야한다니, 학교 가기 싫은대 억지로 가야하는 초등학생이 된 기분이야. 미스 프레임, 물 좀 시원한거 한병으로 갔다 줘. 땀 좀 닦게 수건도 주면 고맙고."
흙 바닥에서 초록색 줄기가 꿈틀거리며 솟아 올랐는대, 그 줄기의 가장 윗쪽은 마치 접시처럼 넓고 평평해서 물이 가득 찬 라벨 없는 유리병 하나와 옅은 하얀색 수건이 놓여 있었다. 당연하지만, 원래는 그냥 바닥이 열리면서 나온 것일 뿐이였다. 메인프레임은 한마디 덧붙혔다.
"학교보다 더 심각하죠. 여긴 땡땡이도 없잖아요."
존 햄턴은 그 말에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유리병을 붙잡고 입에 댄 채 꿀꺽꿀꺽 시원하게 물을 마신 존 햄턴은 수건으로 얼굴과 목의 땀을 닦으면서 말했다.
"지구로 돌아가고 나면 우선 처음 보이는 맥도날드에 들어가서 가장 맛들어진 빅맥을 하나 시킨 후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과 함께 콜라를 마시며 뜯어 먹을거야."
"참 야망이 넘치네요."
존 햄턴은 밥 먹기 전에 땀도 좀 씻고 옷도 갈아입을겸 오솔길을 걸어 샤워실로 향했다. 정거장 로스의 샤워실은 물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 물이 아니라 고압 수증기로 샤워를 했다. 제법 끔찍하게 들리지만 익숙해지면 의외로 괜찮았다. 존 햄턴도 린던 존슨 스페이스 센터에서 처음 고압 수증기 샤워를 훈련했을 때는 도저히 익숙해질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겨우 3일만에 익숙해졌다. 사람의 적응력은 의외로 대단한 법이였다. 존 햄턴은 우선 샤워실 앞에 있는 탈의실에 들어가서 가만히 섰다. 탈의실은 하얀색 타일과 구멍이 송송 뚫린 적갈색 플라스틱 바닥으로 이루어진 약 2평 넓이의 공간이였다. 그곳에서 가만히 서있으면 인체에 무해한 화학약품이 0.1 mm 단위로 정밀하게 분사되서 입고 있는 옷의 조직을 녹여 액화시킨다. 그러면 옷은 자연스럽게 옷에 스며든 온갖 노폐물과 함께 바닥의 구멍으로 흘러 들어가 사라진다. 그 후 존 햄턴은 샤워실에 들어가 한쪽에 있는 물안경과 마스크를 익숙하게 쓴 후 하얀색 타일로 되어 있는 샤워실 한 가운대에서 묘한 자세를 취한채 섰다. 우선 존 햄턴은 양팔을 높게 처들어 겨드랑이가 드러나도록 했고, 다리도 살짝 무릎을 구부린 게다리로 구부려서 무릎 뒷쪽과 사타구니가 드러나도록 했다. 그러면 메인프레임이 알아서 고압 수증기를 조절하며 몸을 씻어냈다. 다만, 고압 수증기가 입, 코, 눈으로 들어가며 불쾌함을 유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그 부분은 물안경과 마스크로 방지했고 대신 세수를 통해 씻어내곤 했다. 여기서 굳이 세수를 하는 이유는 진짜 물을 통해서 씻는다는 느낌을 주기 위한 이유도 제법 컸다. 그런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장기간 우주체류의 스트레스 수치를 결정하니까.
샤워실에서 깔끔하게 노폐물을 씻어낸 존 햄턴은 장미 향기가 은은히 풍겨오는 장미수로 세수도 기분좋게 끝냈다. 그렇게 샤워를 끝낸 존 햄턴은 탈의실에 들어가 부드러운 철사를 얼기설기 얽어 만든 괴상한 덩어리를 몸에 걸친 후 샤워실에서의 자세를 취했다. 그러면 아까는 화학물질을 정밀분사했던 분사기가 공기와 반응하면 급속도로 굳어지는 반액체 플라스틱 섬유를 발사해 철사 덩어리를 기본 뼈대 삼아 조립하며 취향에 맞는 옷을 조립한다. 이 플라스틱 섬유는 고효율 재활용이 가능하니 장기간 우주 체류에 아주 적합하다 할 수 있었다. 아까 입었던 옷과 조금의 차이도 없는 옅은 하얀색 플라스틱 옷을 입게 된 존 햄턴은 철사 덩어리를 몸에서 분리하며 투덜거렸다.
"나도 면으로 된 옷 같은 거 입으면 안 되나?"
"아마 95%의 고효율 재활용이 가능하고 간단하게 캔에 담아서 운송할 수 있으며 가격도 저렴한 플라스틱 섬유 대신 닳아 없어지고 주기적으로 세탁 해야하고 운송도 복잡하며 가격도 그리 저렴하지 않은 면을 수성까지 가져오는 추가비용을 햄턴씨 월급에서 직접 지불한다면 휴스턴에서 아주 기쁘게 가져다줄걸요."
정거장 로스에서 먹는 식사는 우주에서 음식을 먹는 것이니 맛이 없을 것이란 편견을 가지기 쉽지만, 오히려 왠만한 요리보다도 맛 좋고 영양가 있는 음식들로만 메뉴가 가득 차 있었다. 철저히 진공 포장 된 식재료들은 지구시간으로 매년 3~4번씩 정거장 로스에 도킹하는 나사 소속 정기항행 화물선을 통해 철저히 냉동되서 신선함을 유지한채 배송 돼 오고, 정거장 운영자는 그 식재료를 가지고 직접 요리를 하거나 메인프레임에게 요리를 맡겨 수많은 종류의 맛 좋은 요리들을 맛 볼 수 있었다. 지구와의 주기적인 연결을 통해 물자공급이 원활히 이루어지기에 가능한 일이였다.
혹자는 이리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왜 굳이 다양한 비용을 지불하고 노력을 하면서 신선한 식재료를 보급해주는가? 굳이 그래야 할 필요가 있나? 있다. 당연히 그래야 할 필요가 있으니 하는 것이다. 우주에서의 장기체류는 가장 튼튼하고 건강한 정신조차도 서서히 파고 들어 극도의 스트레스 상태로 만들 수 있었다. 우주에서 산다는 것 자체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있지만, 지구에서는 당연히 간단하게 누리던 것들을 더 이상 누리지 못한다는 것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향수도 제법 컸다. 물론 사람의 적응력은 대단하니 다양한 불편은 감당할 수 있지만, 그 불편을 감당함으로서부터 오는 스트레스 상태는 정거장 운영자의 정신을 불안정하게 해서 돌발사태로 이어질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갑자기 정거장 운영자가 우울증에 걸려서 메인프레임을 파괴하고 정거장에 장착되어 있는 원자력 엔진을 가동시켜 수성의 그림자를 떠나고 태양을 맞이해 산채로 타죽으며 240억 달러짜리 정거장도 함께 태워먹을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했다. 나사는 240억 달러짜리 위험을 감수하거나, 불필요한 추가인원을 정거장에 배치해 함께 우울증에 빠져 함께 정거장을 태워먹을 위험을 감수하거나, 메인프레임에게 비상시 정거장 운영자를 제압및 감금할 수 있는 기능을 추가해 인권단체로부터 인공지능의 권한 상승에 대해 매섭게 공격 받을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 매년 백만달러의 추가지출이라는 비교적 간편하고 저렴한 비용과 심리상담 프로그램을 메인프레임에 내제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면과 스프링으로 만들어진 푹신푹신한 매트리스도 그 백만달러에 포함 돼 있었다.
존 햄턴은 오솔길을 걸어 침엽수림 한가운대에 놓인 적갈색 나무 테이블과 의자를 발견했다. 나무 테이블은 옷칠이 되어 있어 보기 좋게 번들거렸고, 마치 중세 영화에 나오는 기다란 테이블처럼 양쪽으로 길게 쭉 뻗어 있어 총 8개의 의자가 서로를 바라보며 가지런히 놓여져 있었다. 나사는 점쟁이가 아니기에 이 정거장이 지금은 정거장 운영자 한명만 주둔중인 광업 및 연구용으로 사용되지만 미래에는 어떻게 사용 될지 몰랐고 그래서 약간의 추가 비용을 지출해서 일부러 커다란 식탁을 만든 것이였다. 우주는 유비무환이란 말을 매일같이 중얼거려도 부족한 공간이였다. 존 햄턴은 익숙하게 의자 하나에 앉아 몸을 뉘였다.
"미스 프레임, 식재료가 얼마나 남았지? 내가 기억하기론 다음 정기항행 화물선이 로스에 도착할 때까지 지구시간으로 5일 밖에 안 남았는데 그럼 슬슬 식재료가 바닥날 때 아닌가?"
"뭐, 그렇게까지 부족한 것은 아니죠. 비상시에 대비해 지구시간으로 1달치의 비상식량을 상시보유하고 있으니 식재료가 바닥난 음식중에 정 먹고싶은 것이 있다면 그거에서 까먹어도 되니까요."
"그럼 치킨카레정식 하나 만들어줘."
"햄턴씨, 치킨카레정식이 정말 질리지도 않나요. 누가 보면 인도에서 태어났지만 카레 한번도 못 먹어본 귀신이라도 들린줄 알겠네."
"카레, 치킨, 만두, 이 3개는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먹어도 절대 질릴 수가 없어. 그러니 그중 2개가 들어간 치킨카레정식이 질릴리가 있나."
과연 틀린 말은 아니였다. 전자파로 익힌 치킨 위에, 카레가루와 진공냉동보관 된 야채를 송송 썰어 만든 카레를 부어서 만드는 치킨카레를 메인디쉬로 하고, 살짝 대친 샐러드, 대체 나사에서 뭔 수작을 부린 것인지 갓 짠 오렌지 주스처럼 신선한 맛이 나는, 오렌지 주스 가루를 물에 타 만든 오렌지 주스, 접시 위에 남은 카레를 닦아 먹는 용도로 주어지는 식빵 2장을 곁들인 치킨카레정식은 언제 먹어도 질리기 힘들었다. 잠시 기다리자 식탁 근처의 나무 하나에 초록불이 띵 하고 들어오며 나무 그루터기 한가운대가 번쩍 열려 치킨카레정식이 담긴 네모난 플라스틱 판이 나왔다. 존 햄턴은 여유롭게 자리에서 일어나 치킨카레정식을 집어 들고 다시 의자에 앉아 포크와 나이프로 치킨카레정식을맛 좋게 먹었다. 정거장 로스의 메인프레임에는 증강현실 망막과 연동해서 시각및 청각적인 면에서는 현실과 아무런 차이점을 찾아볼 수 없는 게임을 즐기는 기능이 내제되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 햄턴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누가 뭐라해도 아침식사였다. 게다가 야외에서 먹는 밥 만큼 맛있는 밥도 드무니, 침엽수림을 배경으로 한 식사시간은 일반적인 식사보다도 더 즐거웠다.
존 햄턴은 풍경도 감상하며 30분에 걸쳐 식사를 마쳤지만 식사를 마친 후에도 여유롭게 오렌지 주스를 홀짝이면서 샐러드의 방울토마토를 하나씩 집어 톡톡거리며 씹어먹었다. 그러던 존 햄턴은 문득 한가지 호기심이 들었다.
"미스 프레임, 혹시 순록 닌자를 본 적 있어?"
"제 알고리즘을 짜고 인공지능을 성장시킨 나사 공학자들중에는 온갖 종류의 기괴한 취향의 긱(Geek)들이 있었지만 그들중 단 한명도 순록 닌자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해볼 만큼 괴상한 사람은 아니였어요."
"뭐든지 최초의 경험이란게 있는 법이지. 순록 닌자가 저기 침엽수림 위에서 눈빛을 번뜩이며 튀어나오도록 해줄 수 있어?"
"햄턴씨, 제가 10억달러짜리 최신형 양자컴퓨터라는 것은 알고 계시죠?"
"아니까 이런 부탁도 하는거지."
메인프레임은 과연 10억달러 값을 충분히 한다고 할 수 있을만한 양자컴퓨터였다. 대략 1분만에 순록 닌자의 3d 메쉬, 텍스쳐, 애니메이션, 그래픽이펙트, 사운드이펙트, 물리엔진을 모두 연산해낸 메인프레임은 온몸에 시커먼 닌자복을 두른 채 눈 한쌍과 뿔 한쌍만 내놓은 순록 닌자가 고고하게 침엽수 한그루 위에 앉아 존 햄턴을 내려보는 모습을 만들어냈다. 애니메이션은 아주 자연스러웠고 물리엔진은 조금의 오차도 없이 적용되서 순록 닌자가 꼭대기에 앉아 있는 침엽수 한그루가 순록 닌자의 무게 때문에 살짝 구부러진 모습을 자연스레 연산해냈다. 메인프레임은 심지어 적절한 일본풍 음악도 하나 찾아서 배경음악으로 틀어놓기까지 했다. 존 햄턴은 낄낄거리며 오렌지 주스를 홀짝 거렸다.
"나사는 저것도 프리도메인으로 공개할까?"
"아마 그러겠죠. 나사가 프리도메인으로 공개 안하는 소프트웨어는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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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eyes.nasa.gov/
이걸 보셔서 수성과 지구의 공전을 비교하신다면 제가 아래에 쓰는 글이 훨씬 편하게 이해 되실 것입니다. 아주 멋지기도 하고요. 과거로 쭉 돌리면 파이오니어가 지구에서 발사되는 모습도 보입니다 ㅎ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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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과 지구의 공전주기는 4.152:1의 비율을 가지고 있다. 간단히 말해 지구에서 1년은 수성에서 4.152년인 셈이다. 공전주기가 정확히 맞아 떨어지지는 않고 정확히 원으로 도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완전히 딱 떨어지지는 않지만, 그래도 지구시간으로 1년마다 지구와 수성이 최소 3번에서 최대 4번까지 매우 가까워지는 때가 생기는 것이였다. 바로 이 때 지구 ISS에서 나사 소속 정기항행 화물선이 출발해 수성 저궤도 광업및 연구용 우주정거장 로스에 도착한다. 이유는 간단했다. 태양 - 수성 - 지구가 딱 일렬로 늘어설 때 수성과 지구간의 거리가 가장 짧아지고, 거리가 짧다는 것은 물자를 오고보내는 가격이 가장 싸다는 것이니까.
물론 정확히 태양 - 수성 - 지구가 딱 일렬로 늘어설 때 정기항행 화물선이 출발하는 것은 아니였다. 만약 그런다면 정기항행 우주선이 1달간의 항해 후 수성에 도착할 쯤에는 이미 수성이 1달간의 추가 공전을 통해 저 멀리 사라져 있을테니까. 여기서 나사 공학자들의 멋들어진 예술이 펼쳐진다. 그들은 지구의 궤도와 수성의 궤도를 정확히 계산하고, 정기항행 화물선의 엔진 상태와 속도도 정확히 계산하고, 다음번 태양 - 수성 - 지구가 일렬로 늘어설 때 정확히 지구와 수성간의 거리가 어떻게 될지도 정확히 계산하고(지구와 수성은 정확히 원 궤도를 도는 것이 아니니 서로간의 거리는 항상 다르다), 만약 금성의 중력을 이용해 정기항행 화물선의 속력을 추가가속할 수 있다면 정확히 언제 발사해야 얼마나 가속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정기항행 화물선이 수성 공전궤도에 도착 무렵 수성의 위치가 어디에 있을지도 정확히 계산하고, 그 모든 계산을 통해 지구에서는 수성과 지구가 일렬로 늘어설 때보다 얼마나나 빨리 정기항행 화물선을 발사해야 정기항행 화물선이 수성의 궤도에 도착할 무렵에 수성에 정확히 도착할 수 있을지를 계산해낸다. 그러면 나사 공학자들의 계산결과가 정기항행 화물선의 항법컴퓨터에 입력되고, 정기항행 화물선의 항법컴퓨터는 그 계산결과를 정확히 따르며 조금의 오차도 없이 출발하고 선체를 미세조정한다.
이 모든 과정을 한마디로 줄이자면,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목적지로 우주선을 발사해서 우주선이 도착할 때가 되면 원래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 궤도를 공전하고 있는 수성이 하루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도착하도록 조절해서 발사하고 항해하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거의 모든 일을 실제로 일어나기 전에 미리 관측하고 예측할 수 있는 우주에서만 볼 수 있는 하나의 예술이라 할 수 있었다. 당연하지만 그러한 항법상의 복잡함 때문에 모든 것은 미리 계산을 마친 값을 항법컴퓨터가 그대로 따라서 항해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지고 승무원은 비상시에 대비한 한명의 관리자만이 탑승한다. 만약 예상치 못한 사태가 발생해 화물선의 궤도를 변경해야할 일이 생긴다면 화물선은 승무원에게 현 상황을 설명하고 현 상황에서 항법컴퓨터가 자동으로 대처를 취할 수 있도록 승무원에게 허락을 요구하고, 승무원이 허락한다면 항법컴퓨터는 이미 나사 공학자들이 계산했던 값을 기반으로 화물선 궤도를 어느 방향으로 어느 속도로 얼마나 바꿔야 원래 계산을 그대로 수행하면서도 현재 맞이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지 파악하고 재계산한다. 그러니 영화나 게임처럼 승무원이 직접 조종대를 잡고 우주선을 조정하는 일은 극도로 드물었다. 우주를 항해한다는 것은 한낱 조종사가 개입하기에는 너무 복잡하다. 우주를 항해하는 것은 조종대를 잡고 패달을 밟아 가속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게 아니라, 세계최고수준의 공학자 여러명이 공학용 계산기와 양자컴퓨터를 옆에 끼고 며칠에 걸려 계산을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수많은 수치들중 단 하나를 겨우 0.1만 바꾼다해도 수성에 도착하는 대신 허공에 도착할 수도 있었다. 항해가 시작하기 전이라면 몰라도, 항해가 시작한 후에는 컴퓨터가 승무원을 보조하는게 아니라 승무원이 권한을 가지고 상황을 파악하고 판단하며 허락함으로서 실질적인 일을 처리하는 컴퓨터를 보조했다.
존 햄턴의 일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존 햄턴이 휴식을 취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밥을 먹거나, 여가를 즐기거나, 잠을 자고 있을 때도 메인프레임은 24시간 활동하며 영하 170도의 수성 그림자 부분 지표면의 광업지구를 운영하고, 광업지구와 정거장 로스를 오고가며 지표면에서 채굴한 광물을 정거장 로스에 저장하는 무인드론을 조종하고, 지구에서 전송한 연구 프로젝트 블루프린트를 그대로 따라 연구환경을 조성하고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정거장 운영자의 육체및 정신적 건강상태를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정거장 운영자가 상황을 파악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모든 자료와 정보를 정리해 간편한 형태로 전송해준다. 물론 정거장을 운영하며 정거장의 전력 상태, 냉난방 상태, 내구도 상태, 창고 저장용량 상태, 보급품 상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조절하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옛날이라면 사람 열명이서 해야할 일을 메인프레임 혼자서 처리하고 정거장 운영자는 그저 현 상황을 파악하고 판단하며 메인프레임을 보조하는 역활만을 맡은 셈이였다. 괜히 인권단체가 인공지능을 두려워하는게 아니였다. 현재로서는 인공지능 양자컴퓨터의 값이 억소리 나올정도로 거대했기에 우주산업이나 정부지원 랩에서만 활용됬지만 만약 인공지능 양자컴퓨터의 값이 급락하고 인공지능 양자컴퓨터와 완벽하게 자동화 된 공장들이 합쳐진다면 1차 산업과 2차 산업에서 인간의 노동력은 더 이상 요구되지 않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냥 한두명의 관리자만 있으면 단 한명의 노동자도 필요로 하지 않으면서 무지막지한 생산성을 보여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1, 2차 산업에서 직업수요의 폭락이 자연스레 뒤따르겠고, 인구의 대다수는 실업자가 되고 그 실업자중 많은 이는 3차산업으로 빠져들겠지만 그래도 절대다수는 그저 실업자를 벗어나기 위해 정부 외우주 식민개척 프로그램에 참여해 외우주 식민지를 개척하는대 인생을 바치게 될 것이였다. 물론 현재로서는 외우주는 커녕 화성이나 수성까지 사람을 보내는 것도 무지막지하게 비싸기에 제한적인 자원 식민지나 겨우 개발해둔 상태이지만, 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진다면 수만명 단위로 지구를 탈출하는 것이 현실화 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지구의 인구와 직업수요와 경제규모가 안정화 된다면 1, 2차 산업은 거의 대다수가 인공지능에 의해 운영되는 상황에서 3차 산업과 기술개발및 예술에만 전적으로 직업수요가 남겠고 그 인구는 현재의 90억보다는 훨씬 적은 상태에 도달해 더 이상 줄어들거나 늘어나지도 않게 안정화되지 않을까 싶었다.
존 햄턴은 별다른 가구 없이 옅은 은빛 책상과 의자만 있고, 3면의 벽은 모두 무광 백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책상과 의자 뒷쪽에 벽은 하나의 거대한 유리로 이루어져 있어 아래의 빛나고 뒤틀린 수많은 도로와 하늘을 뚫고 올라가는 스카이라인이 훤하게 보이는 업무실에 앉아 있었다. 당연하지만 역시 증강현실 망막이 보여주는 풍경이였다. 기계화와 부가가치산업을 전적으로 도입해 새로운 성장동력 삼아 대도시로 부활한 디트로이트 다운타운의 모습이였다. 존 햄턴은 편안한 의자에 쭉 기댄채 눈을 감고 있었다. 하지만 존 햄턴이 쉬고 있냐면 그것은 절대 아니였다. 존 햄턴이 눈을 감았을지언정 증강현실 망막은 메인프레임으로부터 정보를 꾸준히 전송받아 존 햄턴이 파악하고 판단해야하는 정보와 자료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딱히 특별한 것은 없었다. 화물선이 현재 어디에 위치해있는지를 간략히 3d 지도에 표현한 모습과 메인프레임이 처리한 자료들을 정리해서 일괄적으로 모아놓은 정보만 있었다. 하지만 존 햄턴은 조금의 게으름도 부리지 않고 메인프레임이 처리한 자료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살펴보며 현재 어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파악하고 판단했다. 파악하고 판단하는게 사실상 존 햄턴의 유일한 일인대, 그것이라도 열심히 해야하지 않겠는가. 존 햄턴은 2096년 8월 11일의 나사 소속 수성 저궤도 광업및 연구용 우주정거장의 ED(Every Day) 보고서를 모두 읽은 후 눈을 떴다. 존 햄턴은 눈이 뻑뻑한지 눈두덩이를 검지와 중지로 어루만진 후 기지개를 폈다.
"미스 프레임, 정거장 운영자 평가란에는 '문제없음'이라고 알아서 기록해둬. 오늘도 딱히 별 문제는 없더라. 으하으!"
"2096년 8월 11일, 나사 소속 수성 저궤도 광업및 연구용 우주정거장 ED 보고서의 정거장 운영자 평가란에 '문제없음' 이라고 기록하겠습니다. 피곤하신 것 같은대 뭐 마실거라도 가져다 드릴까요?"
ED 스케쥴이나 ED 보고서 같은 공식적인 업무를 처리할 때는 메인프레임의 자유대화 기능이 잠시간은 억제됬다. 조금의 문제 없이 의사소통이 이루어져야하기 때문이였다. 존 햄턴은 괜찮다는듯 손을 내저었다.
"아냐, 지금 보니까 오렌지 파우더 재고량이 살짝 부족하더라고. 다음 보급 올 때까지 5일간 버티려면 좀 아껴 마셔야겠어. 난 그냥 풍경이나 좀 감상할게."
"필요하면 부르세요."
존 햄턴은 기지개를 한번 더 쭉 편 후, 의자에서 일어나 유리벽에 걸어가서 아래의 거대한 메트로폴리스를 감상했다. 수많은 고가 도로, 헬리콥터, 8차선 도로, 10차선 도로, 차량정체, 초고층 빌딩이 강렬한 태양 아래 번쩍거리며 빛나는 모습은 인간 문명의 강력한 힘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불 앞에서 돌덩이를 두들기며 덩쿨을 가지고 나무 막대에 묶은 후 우가거리며 서로의 두개골을 찧어 뭉개던 원시인이 어느새 이토록 강대해졌다. 해저부터 밀림까지 인간이 없는 곳은 지구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고 지구의 어느 생물도 인간을 위협할 수는 없었으며 인간은 이산화탄소를 통해 지구 전체의 기후를 바꿀 수 있었고 원하는 생물을 자유자재로 멸종시킬 수 있었으며 새로운 생물을 유전자 배양해서 야생에 풀어놓으며 생태계를 제어하며 초고층 빌딩을 통해 하늘까지 솟아오르고 인간이 살 수 없는 황무지에도 대도시를 건설하고 대도시와 대도시를 도로와 비행기와 함선으로 연결하며 합쳐진 힘으로 지구를 탈출해 우주까지 뻗어나가 그 누구보다 더 태양과 가까운 곳을 탐험해서 사람이 살 수 있는 자그마한 정거장을 건설하고 외계 행성을 탐사하고 채굴해 그 값진 자원을 지구로 수송할 수 있었다. 그리고 원래는 빛나지 않는 행성에 빛덩어리를 끝없이 깔아 매일 밤마다 반짝이며 빛나도록 만들었다. 세상 그 누가 그럴 수 있을까. 돌고래가 그럴 수 있을까? 아니면 침팬지나 오랑우탄이? 아니면 고릴라가? 그것도 아니라면 개미가 그럴 수 있나? 아니다, 오로지 인간만이 그럴 수 있다. 인간만이 문명을 만들어 문명을 발전시켜 과학을 개발해 미지를 탐사하고 미지를 개척하며 문명의 범위를 인지의 경계까지 확장시킬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힘, 인간 문명의 강대함, 인간이라는 위대한 종족이 펼쳐낼 대서사시의 완결이자 시작이였다. 존 햄턴은 짧게 말했다.
"노을."
그러자 태양이 저물고 노을이 떠오르더니 노을의 부드러운 빛에 디트로이트 다운타운은 은은히 불타올랐다. 고가도로와 8차선및 10차선 도로들은 자동차 라이트에 번쩍이며 빛났고 지평선 너머까지 뻗어진 건물들의 숲은 벌써부터 온갖 호황찬란한 빛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에 질새라 하늘 끝까지 뻗어오른 초고층 빌딩은 인간 문명의 장대한 기념비로서 위엄찬 빛을 온세상에 뿜어냈다. 그 모습은 세상 무엇보다도 아름다웠다.
첫댓글 잘 읽고 갑니다. 오바마가 2096년에도 대통령이라니, 도대체 몇선이여...
ㄴㄴ 오바마 아니에요. 그의 이름은 어락 보바마, 황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