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0년대, 인류는 1kg당 무려 2,000만 달러나 하는 귀중한 자원 언옵테늄 채취를 위해 다른 행성 판도라를 개발하려 한다. 판도라는 거대 암석이 공중에 부유하고, 커다란 나무들이 밀림을 이루고 있는 신비로운 행성이다. 인간들은 그곳으로 대규모 부대를 파견해 땅속에 묻혀 있는 언옵타늄을 재취하고 발굴하기 위해 정착하여 지구에 필요한 자원들을 재취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대기가 인간에게 해로운 독성을 띠고 있다는 것인데 이산화 탄소 농도를 적당히 중화하고 미량의 유독 물질을 걸러주기만 하면 지구의 공기와 비슷해지므로 작은 사이즈의 호흡기로도 오래 버틸 수 있으며 때문에 야외에서는 작은 산소 마스크만 쓰고 다니면 된다. 이 과정에서 인류는 판도라의 원주민인 나비족과 접촉하고, 이들과 더 잘 교류하기 위해 인간과 나비족의 DNA를 섞어 만든 인공 육체를 인간이 조종하는, 말 그대로 분신(avatar)을 만들어낸다. 아바타는 나비족과 매우 흡사하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고 DNA 베이스가 되어 아바타를 조종하는 사람의 얼굴을 조금 닮는다. 손가락 갯수나 코의 모양 등 외모가 척 봐도 나비족과 다르니 딱히 위장하기 위해서는 아닌 것 같고, 그보다는 나비족의 거부감을 완화시키고 판도라의 거친 환경에서 제대로 활동하기 위한 목적인 듯.
주인공 제이크 설리는 하반신마비 장애인인 전직 해병 출신이지만 본래는 형인 톰 설리가 조종할 예정이었던 아바타를 형의 죽음으로 인해서 그가 대신하여 판도라로 파견되어 물려받아 조종하게 된다. 부대원들과 인사를 나눈 뒤, 아바타 신체 접속 실험에 곧바로 성공하자 몇십 년 만에 걸을 수 있게 되어 엄청난 기쁨과 해방감을 느낀다. 아직 마저 진행해야 할 테스트가 남아있다며 움직이지 말라고 진정시키려는 의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여 바깥으로 뛰쳐나가 마구 달리며 속시원한 자유를 만끽한다. 제이크는 직후 바로 그들의 프로그램 진행의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투입되고 사령관인 쿼리치 대령은 그에게 이번 임무를 잘 완수하고 나면 그를 다시 걸을 수 있게 해준다고 약속한다.
어느날 아바타의 몸으로 팀들과 수색 작전을 펼치던 도중 토착 생물인 팔루루칸의 공격으로 일행들과 떨어져 숲속에서 길을 잃는다. 해매는 제이크를 발견한 오마티카야 부족의 여전사 네이티리는 화살로 그를 겨누지만, 에이와의 계시를 느끼고 당겼던 시위를 푼다. 밤이 되자, 제이크는 난탕들의 공격을 받는데 지켜보던 네이티리는 그를 구해준다. 제이크는 감사를 표하고 함께 부족을 만나고 싶다며 그녀를 따라가는데 네이티리는 거절하며 인간의 아바타인 그를 위험한 인물이라 판단하고 외면하려 한다. 그러나 그 순간 다시한 번 제이크를 향한 에이와의 강한 계시를 눈으로 재차 확인하고 그를 부족들이 있는 곳으로 데려간다. 부족원들은 인간의 언어를 쓰는 그를 매우 경계하지만 에이와의 계시를 받았다는 네이티리의 말이 인정되어 네이티리의 아버지이자 오마티카야 부족을 이끄는 에이투칸에게 결국 합류를 허락받게 되고, 그들과 동화되는 방법을 배우도록 지시받는다. 이를 알게 된 본부는 제이크를 스파이로 사용하기로 결정하고, 그에게 오마티카야 부족에 더욱 깊숙히 침투하여 그들의 모든 특성들을 파악하고 상세히 보고하라 지시하며 그 또한 강한 동조 의사를 비춘다.
몇 달 동안 제이크는 네이티리의 가르침으로 판도라 행성과 나비족의 언어와 생활방식, 역사, 지리, 전통 문화 등등을 차례차례 익히고 학습해 나간다. 그들의 탈것인 팔리나 이크란 같은 동물들과 신경삭으로 소통, 공감하여 길들이는 데 성공하고 차차 나비의 삶의 방식들을 터득하며 완벽에 가깝게 적응해나간다. 네이티리는 이런 제이크에게 완전히 마음을 열게 되며 결국 서로 사랑에 빠지고, 진심어린 소통으로 나비족들의 두터운 신뢰를 얻은 그는 정식으로 그들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는 의식까지 치른다.
그러나 제이크는 점차 본인이 속한 부대보다 나비족에 더욱 공감하게 되고, 아바타 프로그램의 본래 목적과 임무를 서서히 잊게 된다. 3개월이 지난 어느 날 아침, 쿼리치 대령의 강경 지시로 불도저가 그들의 자연과 생태계를 무차별적으로 밀어붙이기 시작하자 제이크는 이를 막아서며 조종 카메라를 깨 부수고, 부대원들에게 그는 반역자가 되고 만다. 그레이스 박사는 판도라에 있는 모든 생물들은 하나로 연결되어있고 교감을 통한 의사소통을 한다는 사실을 밝히며 이것이야말로 언옵타늄보다 더 위대하고 중요한 발견임을 피력하고 무력을 사용하지 말라고 호소한다. 그러나 회사의 총 관할자 파커 셀프리지와 군인들은 이를 비웃고 그레이스를 조롱하는 발언을 하며 무시해버린다. 제이크는 죄 없는 이들을 죽게 할 수는 없으니 자신이 그들에게 피신할 수 있도록 타협을 해보겠다고 파커에게 호소하고, 단 1시간의 유예를 얻게 돼 그레이스와 함께 마지막으로 아바타에 접속해 나비족을 설득하려 한다. 그렇지만 이 과정에서 네이티리에게 불가피하게 자신의 스파이 노릇을 고백해야만 했고, 엄청난 배신감에 분노한 네이티리를 비롯하여 나비족 전원은 그에게 실망하며 사기꾼이라 몰아세우며 결국 그레이스와 함께 처형당할 위기에 처해 포박된다.
그 시각 쿼리치 대령은 부대를 이끌고 스콜피언 건십으로 폭격을 감행해 홈트리를 쓰러트리고 수많은 나비족을 학살한다. 슬픔에 차 대피하던 와중 네이티리의 어머니이자 나비족의 영적 지주인 모앗은 제이크에게 정말 니가 나비족의 일원이라면 우릴 도와달라는 말과 함께 그레이스와 제이크를 풀어준다. 이 와중 네이티리는 부족의 리더인 아버지를 잃게 되고, 위로하려는 제이크에게 다시는 나타나지 말라고 울부짖으며 비통해한다. 그때 본부에서 아바타 접속 장치를 강제로 끊어버리고, 제이크와 그레이스는 본부에서 노엄과 함께 영창에 갇히게 된다.
파일럿 중 나비족을 말살하는 것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반감을 품은 여군인 트루디가 그들을 감옥에서 빼내 탈출할 수 있게 도와준다. 그러나 명령 없이 전투기를 가동시키다 커맨드 센터에 의해 발각되고, 분노한 쿼리치 대령이 탈출하는 그들을 향해 무자비하게 발사한 총탄에 의해 그레이스 박사는 중상을 입고 만다. 제이크는 다시 아바타에 접속하고, 이크란을 타는 실력이 출중했던 그는 나비족의 신용을 되찾기 위해 단 한명의 선택된 전사만이 오를 수 있는 최강 전투력을 가진 이크란인 '토르크' 를 길들이는데 성공한다. 그는 토르크 막토가 되어 침통해하는 나비족 앞에 모습을 나타내고, 츠테이와 네이티리를 비롯한 나비족 전원은 경이로워하며 그의 진심을 받아들이고 판도라를 지키기 위해 함께 투쟁하기로 결심한다. 제이크는 모앗에게 죽어가는 그레이스 박사를 어떻게든 살려주기를 부탁하고, 모앗은 그레이스 박사의 정신을 그녀의 아바타 몸으로 이전하려 그들만의 영적 의식을 진행하지만,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부상을 입은 박사의 심신이 매우 허약해진 탓에 끝내 정신을 옮기지 못하고 사망하게 된다.
제이크는 네이티리와 함께 판도라 행성에 있는 여러 나비족들을 찾아가 자신들을 도륙하는 인간들과 맞써 싸우자고 외치며, 각 부족들을 그의 말을 따라 모두 한 마음 한 뜻으로 결집하도록 한다. 전쟁은 시작되고, 땅에서는 팔라를 타고 있는 기마 부대가 AMP 슈트 지상군과 맞서고, 하늘에서는 이크란들을 타고 있는 공중 부대가 스콜피언 건십을 위에서 기습하는 방식으로 싸우지만, 결국 인간 부대의 압도적인 화력에 밀려서 전멸할 위기에 처한다. 이 와중에 트루디와 츠테이를 포함한 많은 나비족이 전사한다. 그런데 나비족의 수호신인 에이와가 제이크의 기도에 응답한 것인지, 하늘에서 수많은 이크란들이 몰려와 스콜피언 건십들을 소탕하고, 지상에선 기관총에 맞아도 끄떡없는 토착 생물들이 몰려와 AMP 슈트 부대를 밀어내 상황이 단숨에 역전된다. 인간 측 병력들은 거의 전멸하였고, 쿼리치는 용캐 홀로 탈출해 AMP 슈트를 입고 네이티리를 공격해 사살하려던 찰나 제이크가 나타나 그와 대결을 벌이다 쿼리치가 접속 기기를 건드려 아바타와 접속이 끊어진다. 깨어난 제이크는 산소마스크를 향해 몸을 움직이지만 불편한 다리로 인해 어려움을 겪으며 점차 의식을 잃어간다. 쿼리치가 제이크의 아바타 몸을 베기 직전 네이티리는 깔려있던 동물 사체에서 간신히 빠져나와 아버지가 물려준 활로 쿼리치의 심장을 두번 명중시키는데 성공한다. 그녀는 황급히 접속장치가 있는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가 인간의 몸인 제이크를 처음으로 마주하게 된다. 산소마스크를 씌워주자 힘겹게 호흡하며 ‘I see you’ 라고 인사를 건네는 제이크를 보고 네이티리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화답하고, 장애가 있는 그의 작은 몸을 보듬는다.
기적적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끈 나비족은 생존한 지구인들을 전부 지구로 돌려보내고, 나비족의 편에서 도왔던 몇몇의 부대원들은 예외로 판도라에 잔류할 수 있게 된다. 제이크는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영상을 남기고, 불완전한 자신의 인간 육체에서 아바타 육체로 정신을 완전히 이동시키는 영적 의식을 진행한다. 이제는 영구히 인간이 아닌 나비족으로서 눈을 뜬 제이크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오른다.
출연진
샘 워싱턴, 조 샐다나, 시고니 위버 등
감독
제임스 카메론
주장 : 폭력은 허용되어야 한다.
근거 1 : 역사 속에서 폭력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으로서 작용했다. ( 강창욱 )
근거 선정 이유
시대의 흐름에서 문명이 발전하며 그 속에서 인류의 역사는 평화적인 방법이 아닌 폭력적인 방법으로
흘러가게 되었고 농경사회가 시작되며 인간 사회는 폭력으로 얼룩지게 되었다.
한정된 자원과 인간의 무한한 욕구로 인해 좁게는 부족 간, 넓게는 국가 간의 물리적인 폭력을 동반한
전쟁이 발생하였다. 전쟁에서 승리한 쪽은 패자 쪽을 약탈 및 지배하며 기존 패자 쪽의 사회 질서를
승자 쪽으로 동화시키거나 무너뜨리며 기존의 양분된 사회 구조를 변화시켰다.
따라서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과학 기술이 발전하게 되고 동시에 문명이 발전할 수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로서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전쟁이었던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이 있다.
1차 세계대전은 군사·과학 기술 모두 미흡한 상태에서 발발하였지만 전쟁 중 야포와 기관총 등의 새로운
무기가 개발되어 단순한 백병전의 전술에서 탈피함과 동시에 군사·과학 기술 모두 발전하였다.
2차 세계대전은 1차 세계대전에 비해 첨단 기술이 많이 개발되고 활용되었다.
대표적으로 군사적으로 중요한 목표물을 탐지할 수 있는 장비로서 전자파를 발생시켜 표적에 송신하고
표적으로부터 반사된 신호를 수신하여 목표물을 탐지하는 레이더 기술이 개발되었다.
레이더 기술이 개발되어 영국이 독일의 폭격을 미리 감지하여 대량 인명 살상을 방지할 수 있었다.
레이더 기술은 전쟁용으로 개발된 기술이지만 군사 전략에 필수로 사용되는 장비로 국한하지 않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항공기 관제탑에서 사용되거나 지질 탐사, 우주 탐사 등에도 사용되며 교통·기상 등 다양한 민간
분야에서 활용 및 상용화되었다.
이처럼 물리적인 폭력이 동반된 전쟁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원동력(힘)으로서 작용하여 역사 속에서 인류 사회가
발전하는 데에 기여했기 때문에 폭력은 허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근거 2 : 폭력은 생명체의 가장 원초적인 행위 중 하나이며 사회의 발전과 규율은 적절한 폭력을 요구한다. ( 이승관 )
근거 선정 이유
영화를 보면 인류는 1kg당 2천만 달러 값어치의 광물인 “언옵테늄”을 얻기 위해 외계 행성인 판도라를 개발하려 한다. 그 과정 중 인류는 행성의 원주민인 “나비족”을 쫓아내기 위해 무력을 행사하고 “나비족”은 자신들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인류를 공격한다. 인류는 자신들의 이익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폭력을 가하였고 “나비족”은 자신의 터전을 지킨다는 목적을 가지고 폭력을 가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생각할 것이다. 애초에 인간이 “나비족”에게 폭력을 가하지 않았더라면 생기지 않았을 문제라고. 하지만 잘 생각해보자. 우리가 동물 다큐멘터리를 볼 때 초원의 사자가 사냥감을 물어 죽이고 잡아먹는 것을 보고 나서 어떤 생각을 할까? 별 특별한 생각이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약육강식의 생태계에서 강자가 약자에게 하는 당연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영화 아바타에서 우리가 죄악감을 느끼는 이유는 “나비족”이 사람의 말을 하는 지성체로서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나비족”을 지성체가 아닌 그저 외계인 혹은 동물로 같은 입장으로 본다면 인류와 “나비족”은 서로의 목적성을 가지고 폭력을 행사한 것일 뿐이다. 한 번 가정을 해보자. 우리가 집에 가는 중에 저 멀리서 두 사람이 뛰고 있는 것이 보인다. 앞에 모자를 푹 눌러쓰고 본인의 것 같지 않은 가방을 들고 뛰는 사람을 경찰이 쫓고 있다. 결국에는 경찰이 도망가던 사람을 제압하고 넘어뜨려 손을 뒤로 넘긴 후 수갑을 채웠다. 다행히도 소매치기범이 경찰에 붙잡힌 것이다. 저 경찰관은 사회(국가)의 규율을 지키기 위해 공권력에 기인한 폭력을 행사한 것이다. 하지만 폭력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가정해보자. 경찰은 눈앞에 범인을 두고도 말로 범인을 설득해야 하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나올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데는 적절한 폭력이 필요하다.
근거 3 : 폭력이란 힘으로 규율에 어긋남을 바로잡고 통제할 수 있다. ( 이유찬 )
근거 선정 이유
폭력은 어긋난 규율을 바로잡는다. 이영화엔 전반적으로 폭력이 아주많이 깔려있다. 처음 주인공 제이크가 팀원들과 조사를나갔을 때 혼자 길을잃어 숲속의 동물들과 조우하고 공격을받았다. 이는 단차원적으로 그저 동물의 포악한성격으로 비춰질수있지만 이는 본인의 서식처와 아이들이 외부인에게 피해를 입을 수 있어 지켜내기위해 공격했다고 생각할수있으며. 나비족의 전사가 순찰중 제이크를 발견했을 때 또한 그를 속박하고 활로 위협하였다. 이또한 이방인에게는 당연한 방어태세라고 볼 수 있다. 영화의 후반부 결국 협상이결렬된 인간들은 그들이원하는 자원을 얻기위해 나비족의 서식처를 폭격하고 공격했다. 이로인해 나비족또한 자신들의 안전과 삶의터전을 지키기위해 전쟁을준비하며 끝에 전쟁에 승리한다. 전쟁에 승리한후 인간들을 다시 돌려보낼때에도 그들은 총과 활로 인간들을 경계했다. 이처럼 폭력은 자신의 안위를 방어하기위한 수단으로도 볼수있으며 이를 활용하지못하면 평화롭게 해결되지 못할문제는 결국 죽음으로의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폭력은 당연히 허용되야한다. 이런 모습들은 어쩌면 인간사회속 모습과 비슷할지모른다. 우리사회에는 너무많은 폭력들이 존재하지만 모두가 인정하고 알고있는 법으로 예시를들어 범죄자가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의지대로 직접 감옥이나 처벌을 받는걸 상상할수있겠는가. 그들을 강제로 끌고가고 처벌하는것또한 폭력의 일종이며 이는 절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폭력의 처벌이없다면 그들은 마음대로 날뛰고 피해자는 자신들의 안전을위해 똑같은 폭력의 연쇄를 낳을것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정당성의 폭력은 허용되어야한다.
근거 4 : 인류 역사상으로 폭력을 막을 방법은 폭력밖에 없었다. ( 김은하 )
근거 선정 이유
왜냐하면 아바타 영화 안에 인간이 외계인들을 침략하고 그 외계인들은 사는 곳을 못 쓰게 만들었다. 그리고 무기와 기계를 사용해서 공격했다. 체이크 남자 주인공이 한번 이야기해보자고 했는데 인간 쪽들은 들어주지 않고 그래로 폭력을 행사했다. 그래서 상대방도 소통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해결 방법을 못 찾았다. 그러므로 폭력의 진행을 막을 방법은 폭력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하면 폭력은 허용해야 할까요? 폭력을 막겠다고 더 큰 폭력을 휘두른다고 한들 그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생각 해보는 영화였다. 우리는 폭력을 싫어하지만, 폭력을 막기 위한 정당한 폭력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 때도 있다. 그리고 침략을 받은 외계인들은 자기와 자기 사는 곳을 존재할 수 있다면 힘을 내서 싸워야 한다. 결국은 해결할 방법은 폭력 밖에 없다 = > 폭력은 허용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반론하겠습니다. 폭력을 해도 아무 제제를 할수없다면 경찰이 살인자를 진압하는과정중 조절하며 힘을사용하다 도리어 또다시 살해를당하거나 과잉진압을 한후 처벌을받을때 또 폭력으로 처벌자들을 죽일수있습니다. 이렇듯 폭력의 힘은 사용하는 주체의 뜻이지 주관적으로 바라볼수없습니다. 그렇기에 폭력은 폭력으로 진압가능하다는 주장이있고 집단의 폭력은 그 집단을 보호할수있다고 주장합니다 경찰이란 이름으로 절대적인 힘을 가진것이 아니기에 동등한 인간으로써 폭력은 어쩔수없습니다. 혹여 과도한 폭력없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제압할수있다는 의견이 있으신가요?
현재 우리나라 헌법에는 과잉진압 및 과실치사에 대한 법이 있습니다. 경찰도 무조건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닌 법으로 인정되는 공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며 그 이상을 행하는 경우에는 그것을 진압하기 위한 폭력이 행해집니다. 위와 같은 경우는 폭력의 주체의 문제이지 폭력을 문제의 논점으로 잡는 것은 잘못됬다고 생각합니다.
근거2,3에 반박합니다. 폭력이 사회발전과 규율통제를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은 사회발전과 규율통제를 위해서는 어떠한 폭력이 가해지더라도 정당하다는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민주화 운동 당시 신군브세력은 사회발전과 통제를 목표로 무차별 폭력을 가하여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였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세력은 사회발전을 위해 폭력을 가한 것이 아닌 전두환 및 신군부세력 본인들의 이득과 권력을 챙기기 위한 폭력이었습니다. 그에 반해 시민군들은 그들에게 저항하며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였는데 시민군들이 행사한 폭력은 사회발전과 규율을 위한 폭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근거 4에 반박하겠습니다. 인류 역사 상 폭력을 막을 방법은 폭력밖에 없다고 하셨는데 3.1운동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던 시기, 우리 조상들은 1919년 3월 1일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평화적 만세시위를 일으켰습니다. 이후 전 세계로 독립운동 확산,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등 대한민국의 독립의지를 펼치며 일본에 빼앗긴 주권을 되찾는데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처럼 역사 속에서 폭력을 막을 방법으로 폭력 뿐만 아니라 비폭력 운동 또한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근거 4는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정우솔 학우분께서의 주장을 반론하겠습니다. 3.1독립운동 진행되기전에 우리나라는 폭력행사를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독립운동 이후 6.25전쟁 일어난 시대에서 복한군들은 남한을 침략 했습니다. 남한은 폭력을 막기위해 폭력행사를 사용했습니다. 3.1독립운동은 일제강점기 통치사회 벗어나고 그 순간폭력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지만 폭력은 멈추고 더 진행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독립운동은 폭력은 막을 방법인라면 왜 6.25 전쟁때 사용 안 하고 폭력행사를 사용할까요? 따라서 근거 4번은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답변 감사합니다. 김은하 학우분께서는 3.1운동으로 그 순간의 폭력을 막을 수 있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폭력을 막았던 사례로 볼 수 없는 것 인가요? 대부분의 역사 속에서 폭력을 막기 위해 폭력을 사용했었습니다. 하지만 3.1운동과 같이 폭력을 비폭력으로 대응했던 역사도 있었는데 폭력을 막을 방법으로 폭력밖에 없었다는 근거4에 오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점을 지적해주셔서 감사합니다.반론하겠습니다. 3.1운동은 그 순간의 폭력을 막을 수 있다고 부정하지 않지만 그 방법은 아무상황에서 할 수 없기 때문에 적절한 방법이 아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폭력행사를 받은 순간 운동방법을 사용하면 폭력을 막힐 수 없습니다.그리고 더 큰 폭력행사를 사용해서 폭력을 마치었다는 근거4번에 오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근거2에 반박합니다. 만약 폭력이 허용되지 않으면 '범인을 검거할 때 범인을 두고도 말로 범인을 설득해야 하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나올 것이다' 라고 하셨는데 하지만 여기서 그 범인을 잡기위해 경찰이 과잉진압을 하게 된다면 그 경찰이 오히려 비판 받으며 법의 처벌을 받게 됩니다. 그렇다면 폭력의 적절한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혹시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실 까요?
답변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범죄자를 검거 할 때 그 경찰관의 판단에 따라 즉각 사살도 가능합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범죄자를 검거 할 때 뼈라도 부러지게 된다면 오히려 범죄자들이 경찰을 소송하겠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마다 과잉진압의 법률이 달라 저는 상대적이라 생각합니다.
나비족을 말살하려는 인간들의 계획 및 실행 과정에서 나비족의 삶의 터전이 파괴되었습니다. 이를 지키기 위해 나비족은 목숨을 걸고 투쟁하였고 끝내 전쟁에서 승리하며 인간들을 판도라에서 내쫓을 수 있게 됩니다. 정리하면 평화로운 상태에서 전쟁 상태, 그리고 전쟁 상태에서 평화 상태로 회귀하는 사회적인 변화가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근거 3번에 반박하고자 합니다. 폭력이 규율을 잡고 통제할 수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현대 사회에서 폭력으로 규율과 통제를 잡을 수 있다고 하면 법은 왜 있고 경찰들은 범인을 잡을 때 폭력을 쓰지 않고 제압만 해서 경찰서로 데려가 법의 심판을 받게 할까요? 물론 악질 높은 범죄자를 잡을 때 폭력을 쓰는 경찰도 분명히 있겠죠 하지만 아무리 경찰이라고 해도 폭력을 하면 폭력을 한 대가를 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경찰이 쓰는 폭력은 공권력에 포함되는 폭력이며 범인을 잡는 경우에는 상황에 따라 폭력을 행사합니다. 범인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며 순순히 잡히는 경우에는 폭력을 행사할 필요가 없지만 만약 범인이 도망을 치거나 흉기를 휘두르는 등의 경우에는 경찰은 폭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경찰이 자신의 폭력에 대해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경우는 경찰의 공권력에서 벗어난 그 이상의 폭력을 행사하였을 경우 그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며 보통 그것을 경우에 따라 과잉진압 또는 과실치사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항상 동일한 상황이 아닌 다른 상황에 다른 폭력을 행사하고 그 폭력을 행사하는 주체도 다 다르기에 그에 맞는 틀을 정해야 하는데 사회에서 정한 틀을 우리는 법이라고 부릅니다.
좋은 지적 감사드립니다 예를 들자면 감옥에 갇혀있는 죄수가 탈옥을 시도하자 교도관이 죄수에게 몽둥이로 죄수를 패서 죽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교도관은 과실치사로 조사를 받고 재판에서는 과실치사보다 더 높은 사형을 받았습니다 이것도 법에 포함되는데 이래도 폭력이 정당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좋은 질문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소민 학우분께서의 주장을 반론하겠습니다. 먼저 들어오는 폭력인지 안 들어인지 그를 막기위한 폭력을 사라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폭력은 금하다면 폭력행사를 없어질 수 있을까요? 그런 말을 확신하지 않습니다. 폭력은 실재 존재하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소민 학우분께서의 주장을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안녕하십니까 근거2에 여쭤볼게 있습니다. 정당성의 폭력은 허용되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정당성은 시대나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한 나라에 군부독재정권이 들어서서 정권에 반대하는 소수의 국민들을 폭력으로 통제하고 그 사실을 은폐 및 조작하여 다수의 국민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게 된다면 이 경우도 정당한 폭력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근거 4에 반박합니다. 폭력은 오직 폭력으로만 해결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헌데, 이 부분에서는 상당히 모순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폭력을 폭력으로 진압하게 되면, 이론상 특정 폭력을 제압한 다른 폭력은 결국 또 다른 폭력을 일으키게 됩니다. 다시 말하자면, 계속적인 폭력만 반복되는 악순환이 발생하게 되고 영구적인 폭력이 일상이 되고 말 것입니다. 둘째, 근거 4에서는 아바타라는 영화를 예시로 들어 외세 또는 외계의 침략에는 폭력만이 정답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한국사를 살펴보았을 때, 서희는 고려를 침략하려는 거란을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몰아내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이러한 반례를 보았을 때, 폭력을 폭력으로 상대하는 것은 옳지 않은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네 반론하겠습니다. 폭력을 폭력으로 상대하는 것은 옳지 않은 방식이라고 생각한다면 역사적의 흐름을 알아보겠습니다. 고려시대에는 비폭력적인 방법을 사용했지만 다른 시대에서는 비폭력적인 방법을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외냐하면 비폭력적인 방법을 효과가 있다면 다음 전쟁들을 일어나지 않다는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역사적의 보면 6.25전쟁 때 복적군들은 남한에 내려오고 침략했습니다. 이에 남한은 저항하기 위해 폭력행사를 사용했습니다.그 대 적군들은 많이 죽었고 남한승리 되고 지금까지 평화롭게 되었습니다.그 사건을 통해 폭력을 폭력으로 상대하는 것은 옳은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례를 살펴보기위해 우리나라의 법을 봐야학겠습니다. 가정폭력, 학교폭력에 약한 사람은 폭력이기 때문에 몸고통과 정신고통을 받았는데 법은 가해자를 너무 가볍게 처벌이 된다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과목 몇년 후에 그 피해자 앞에 도 나타났습니다. 그때 피해자 입장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법을 해결할 수 없으면 자기 혼자 방법을 찾습니다. 자기의 받았던거 그 사람이 다시 줘야 된다 방식으로 해결하게 될 경우가 있습니다. 몇년 가까운 유스에 나온 사건 '한남자가 살인이었습니다. 과목 들어가기전에 '사람을 죽기라도 몇년만 과목을 처벌받고 나오면 도 다시 폭력행사한다고'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현재시대에 범죄 처벌은 더 강하게 되면 폭력은 폭력으로 막은 방법을 사용안 할 수 있다는 말할 수 있죠. 그 것들 생각만 하죠 실제로 법을 해결된 경우가 있지만 나머지 피해자는 마음을 원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근거3에 대해서 반박을 하겠습니다. 폭력은 사회에 어긋날 규율을 바로 잡을 수 있다고 하셨는데 마틴루터킹이나 넬슨만델라를 통한 흑인인권운동은 폭력과 제재속에서도 꾿꾿이 인권운동을 했습니다. 경찰은 그들을 막지 못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근거1에 대해서 반박하겠습니다. 1차세계대전에는 미흡한 상태였지만 2차세계대전은 첨단기술이 발달하셨다고 하셨습다. 하지만 문명적으로는 발덜했을지는 몰라도 인류는 엄청나게 크나큰 피해와 희생인 있었습니다. 과연 누군가의 희생으로 존재하는 발전은 의미가 있는 걸까요??
근거4에서 폭력은 폭력으로만 막을 수 있다고 하셨는데 폭력의 종류가 무조건 심각한 상해를 입히는 것만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 가벼운 찰과상을 일으킨 폭력이었음에도 이를 똑같은 폭력으로 대응하는것이 무조건적인 해결방법인지 묻고 싶습니다. 조금만 참고 신고하면 상대만 처벌을 받는 일을 쌍방폭행으로 같이 처벌받게 되는데도 이것이 유일한 해결방법일까요?
네. 저의 경우에 이야기하겠습니다.초학생때 저의 뒤에 앉아 있는 친구는 맨날 저에게 대리고 옷을 지저분하게 썼습니다.계속 참고 참고 두서너번 이야기를 해보고 선생님께서 말을 해주어도 그 친구가 그대로 행동 을 했습니다. 작은 상져지만 아픕니다. 그래서 어느날 저의 저항 했습니다. 그때부떠 지급까지 그 친구는 저에게 대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유일한 해결방법을 생각합니다.
반론하겠습니다. 폭력을 해도 아무 제제를 할수없다면 경찰이 살인자를 진압하는과정중 조절하며 힘을사용하다 도리어 또다시 살해를당하거나 과잉진압을 한후 처벌을받을때 또 폭력으로 처벌자들을 죽일수있습니다. 이렇듯 폭력의 힘은 사용하는 주체의 뜻이지 주관적으로 바라볼수없습니다. 그렇기에 폭력은 폭력으로 진압가능하다는 주장이있고 집단의 폭력은 그 집단을 보호할수있다고 주장합니다 경찰이란 이름으로 절대적인 힘을 가진것이 아니기에 동등한 인간으로써 폭력은 어쩔수없습니다. 혹여 과도한 폭력없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제압할수있다는 의견이 있으신가요?
현재 우리나라 헌법에는 과잉진압 및 과실치사에 대한 법이 있습니다. 경찰도 무조건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닌 법으로 인정되는 공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며 그 이상을 행하는 경우에는 그것을 진압하기 위한 폭력이 행해집니다. 위와 같은 경우는 폭력의 주체의 문제이지 폭력을 문제의 논점으로 잡는 것은 잘못됬다고 생각합니다.
근거2,3에 반박합니다. 폭력이 사회발전과 규율통제를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은 사회발전과 규율통제를 위해서는 어떠한 폭력이 가해지더라도 정당하다는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민주화 운동 당시 신군브세력은 사회발전과 통제를 목표로 무차별 폭력을 가하여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였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세력은 사회발전을 위해 폭력을 가한 것이 아닌 전두환 및 신군부세력 본인들의 이득과 권력을 챙기기 위한 폭력이었습니다. 그에 반해 시민군들은 그들에게 저항하며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였는데 시민군들이 행사한 폭력은 사회발전과 규율을 위한 폭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근거 4에 반박하겠습니다. 인류 역사 상 폭력을 막을 방법은 폭력밖에 없다고 하셨는데 3.1운동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던 시기, 우리 조상들은 1919년 3월 1일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평화적 만세시위를 일으켰습니다. 이후 전 세계로 독립운동 확산,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등 대한민국의 독립의지를 펼치며 일본에 빼앗긴 주권을 되찾는데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처럼 역사 속에서 폭력을 막을 방법으로 폭력 뿐만 아니라 비폭력 운동 또한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근거 4는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반론하겠습니다. 3.1 운동을 예시로 들어 주셨는데 3.1운동을 하기 전에는 수많은 폭력적인 시위도 많았습니다. 만약 우리 조상들이 아무런 폭력도 쓰지 않고 그저 평화적으로 독립운동을 하였다면 과연 일본이 물러났을까요?
안녕하십니까? 정우솔 학우분께서의 주장을 반론하겠습니다. 3.1독립운동 진행되기전에 우리나라는 폭력행사를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독립운동 이후 6.25전쟁 일어난 시대에서 복한군들은 남한을 침략 했습니다. 남한은 폭력을 막기위해 폭력행사를 사용했습니다. 3.1독립운동은 일제강점기 통치사회 벗어나고 그 순간폭력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지만 폭력은 멈추고 더 진행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독립운동은 폭력은 막을 방법인라면 왜 6.25 전쟁때 사용 안 하고 폭력행사를 사용할까요? 따라서 근거 4번은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답변 감사합니다. 김은하 학우분께서는 3.1운동으로 그 순간의 폭력을 막을 수 있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폭력을 막았던 사례로 볼 수 없는 것 인가요? 대부분의 역사 속에서 폭력을 막기 위해 폭력을 사용했었습니다. 하지만 3.1운동과 같이 폭력을 비폭력으로 대응했던 역사도 있었는데 폭력을 막을 방법으로 폭력밖에 없었다는 근거4에 오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점을 지적해주셔서 감사합니다.반론하겠습니다. 3.1운동은 그 순간의 폭력을 막을 수 있다고 부정하지 않지만 그 방법은 아무상황에서 할 수 없기 때문에 적절한 방법이 아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폭력행사를 받은 순간 운동방법을 사용하면 폭력을 막힐 수 없습니다.그리고 더 큰 폭력행사를 사용해서 폭력을 마치었다는 근거4번에 오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근거2에 반박합니다. 만약 폭력이 허용되지 않으면 '범인을 검거할 때 범인을 두고도 말로 범인을 설득해야 하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나올 것이다' 라고 하셨는데 하지만 여기서 그 범인을 잡기위해 경찰이 과잉진압을 하게 된다면 그 경찰이 오히려 비판 받으며 법의 처벌을 받게 됩니다. 그렇다면 폭력의 적절한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혹시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실 까요?
그 폭력의 적절한 정도는 상대적인 것이 아닌 절대적인 것으로 과잉진압 및 과실치사에 대한 법률에 의거하여 규제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답변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범죄자를 검거 할 때 그 경찰관의 판단에 따라 즉각 사살도 가능합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범죄자를 검거 할 때 뼈라도 부러지게 된다면 오히려 범죄자들이 경찰을 소송하겠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마다 과잉진압의 법률이 달라 저는 상대적이라 생각합니다.
근거1에 여쭤볼게 있습니다. 영화상에서 폭력으로인해 어떤 사회적 변화가 일어났나요?
나비족을 말살하려는 인간들의 계획 및 실행 과정에서 나비족의 삶의 터전이 파괴되었습니다.
이를 지키기 위해 나비족은 목숨을 걸고 투쟁하였고 끝내 전쟁에서 승리하며 인간들을 판도라에서 내쫓을 수 있게 됩니다.
정리하면 평화로운 상태에서 전쟁 상태, 그리고 전쟁 상태에서 평화 상태로 회귀하는 사회적인 변화가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쟁과 같은 폭력없이는 사회적 변화가 없을까요?
전쟁 및 투쟁 등의 폭력이 기반된 행동들이 적극적인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냅니다
안녕하십니까 근거 3번에 반박하고자 합니다. 폭력이 규율을 잡고 통제할 수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현대 사회에서 폭력으로 규율과 통제를 잡을 수 있다고 하면 법은 왜 있고 경찰들은 범인을 잡을 때 폭력을 쓰지 않고 제압만 해서 경찰서로 데려가 법의 심판을 받게 할까요? 물론 악질 높은 범죄자를 잡을 때 폭력을 쓰는 경찰도 분명히 있겠죠 하지만 아무리 경찰이라고 해도 폭력을 하면 폭력을 한 대가를 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경찰이 쓰는 폭력은 공권력에 포함되는 폭력이며 범인을 잡는 경우에는 상황에 따라 폭력을 행사합니다. 범인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며 순순히 잡히는 경우에는 폭력을 행사할 필요가 없지만 만약 범인이 도망을 치거나 흉기를 휘두르는 등의 경우에는 경찰은 폭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경찰이 자신의 폭력에 대해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경우는 경찰의 공권력에서 벗어난 그 이상의 폭력을 행사하였을 경우 그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며 보통 그것을 경우에 따라 과잉진압 또는 과실치사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항상 동일한 상황이 아닌 다른 상황에 다른 폭력을 행사하고 그 폭력을 행사하는 주체도 다 다르기에 그에 맞는 틀을 정해야 하는데 사회에서 정한 틀을 우리는 법이라고 부릅니다.
좋은 지적 감사드립니다 예를 들자면 감옥에 갇혀있는 죄수가 탈옥을 시도하자 교도관이 죄수에게 몽둥이로 죄수를 패서 죽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교도관은 과실치사로 조사를 받고 재판에서는 과실치사보다 더 높은 사형을 받았습니다 이것도 법에 포함되는데 이래도 폭력이 정당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한 통제가 없었다면 지금보다 더욱더 범죄가 판을치는 세상일것입니다 말그대로의 무법지대이며 폭력과 힘만이 서열을 가리는 기준이 됩니다 그걸 방지하기위해 국가가 경찰과 공권력이라는 거대한 힘으로 억누르고 있는것입니다.
안녕하십니까. 근거4에 반박합니다. 폭력은 폭력으로 막아야 하기 때문에 폭력을 허용해야 한다는 말은 애초에 원인이 없었다면 폭력은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됩니다. 먼저 들어오는 폭력부터 일어나지 않도록 금한다면 그를 막기 위한 폭력 또한 사라지지 않을까요?
안녕하십니까. 좋은 질문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소민 학우분께서의 주장을 반론하겠습니다. 먼저 들어오는 폭력인지 안 들어인지 그를 막기위한 폭력을 사라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폭력은 금하다면 폭력행사를 없어질 수 있을까요? 그런 말을 확신하지 않습니다. 폭력은 실재 존재하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소민 학우분께서의 주장을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네, 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폭력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오늘날 폭력이 불법화된 지금 폭력을 폭력으로 막아내는 사례의 예를 들어주실 수 있으신가요?
예를들어 현재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폭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가 저항하기 위해서 폭력행사를 사용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근거2에 여쭤볼게 있습니다. 정당성의 폭력은 허용되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정당성은 시대나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한 나라에 군부독재정권이 들어서서 정권에 반대하는 소수의 국민들을 폭력으로 통제하고 그 사실을 은폐 및 조작하여 다수의 국민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게 된다면 이 경우도 정당한 폭력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국민에게 정당성을 부여한다는 부분 자세히 설명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사례가 있나요?
안녕하십니까. 근거 4에 반박합니다. 폭력은 오직 폭력으로만 해결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헌데, 이 부분에서는 상당히 모순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폭력을 폭력으로 진압하게 되면, 이론상 특정 폭력을 제압한 다른 폭력은 결국 또 다른 폭력을 일으키게 됩니다. 다시 말하자면, 계속적인 폭력만 반복되는 악순환이 발생하게 되고 영구적인 폭력이 일상이 되고 말 것입니다.
둘째, 근거 4에서는 아바타라는 영화를 예시로 들어 외세 또는 외계의 침략에는 폭력만이 정답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한국사를 살펴보았을 때, 서희는 고려를 침략하려는 거란을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몰아내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이러한 반례를 보았을 때, 폭력을 폭력으로 상대하는 것은 옳지 않은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네 반론하겠습니다. 폭력을 폭력으로 상대하는 것은 옳지 않은 방식이라고 생각한다면 역사적의 흐름을 알아보겠습니다. 고려시대에는 비폭력적인 방법을 사용했지만 다른 시대에서는 비폭력적인 방법을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외냐하면 비폭력적인 방법을 효과가 있다면 다음 전쟁들을 일어나지 않다는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역사적의 보면 6.25전쟁 때 복적군들은 남한에 내려오고 침략했습니다. 이에 남한은 저항하기 위해 폭력행사를 사용했습니다.그 대 적군들은 많이 죽었고 남한승리 되고 지금까지 평화롭게 되었습니다.그 사건을 통해 폭력을 폭력으로 상대하는 것은 옳은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시대에서는 비폭력적인 방법이 적절하지 않다고 하셨는데 현대 시대에 보면 가정폭력, 학교폭력에 폭력으로 폭력을 막을려 하면 문제가 해결 되지 않을뿐더러 더 큰 문제가 야기 될 수 있는데 이러한 사례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그런 사례를 살펴보기위해 우리나라의 법을 봐야학겠습니다. 가정폭력, 학교폭력에 약한 사람은 폭력이기 때문에 몸고통과 정신고통을 받았는데 법은 가해자를 너무 가볍게 처벌이 된다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과목 몇년 후에 그 피해자 앞에 도 나타났습니다. 그때 피해자 입장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법을 해결할 수 없으면 자기 혼자 방법을 찾습니다. 자기의 받았던거 그 사람이 다시 줘야 된다 방식으로 해결하게 될 경우가 있습니다. 몇년 가까운 유스에 나온 사건 '한남자가 살인이었습니다. 과목 들어가기전에 '사람을 죽기라도 몇년만 과목을 처벌받고 나오면 도 다시 폭력행사한다고'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현재시대에 범죄 처벌은 더 강하게 되면 폭력은 폭력으로 막은 방법을 사용안 할 수 있다는 말할 수 있죠. 그 것들 생각만 하죠 실제로 법을 해결된 경우가 있지만 나머지 피해자는 마음을 원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근거3에 대해서 반박을 하겠습니다. 폭력은 사회에 어긋날 규율을 바로 잡을 수 있다고 하셨는데 마틴루터킹이나 넬슨만델라를 통한 흑인인권운동은 폭력과 제재속에서도 꾿꾿이 인권운동을 했습니다. 경찰은 그들을 막지 못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흑인인권운동이 어긋난 규율이며 사회에 혼란과피해를 야기한다면 더 강하게 제제하고 탄압했을겁니다 하지만 시대상으로 그들은 자신의 권리를 되찾기위해 주장했을뿐이며 당시의 백인입장에서 잘못되었다고 그들을 학살할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안녕하십니까 근거1에 대해서 반박하겠습니다. 1차세계대전에는 미흡한 상태였지만 2차세계대전은 첨단기술이 발달하셨다고 하셨습다. 하지만 문명적으로는 발덜했을지는 몰라도 인류는 엄청나게 크나큰 피해와 희생인 있었습니다. 과연 누군가의 희생으로 존재하는 발전은 의미가 있는 걸까요??
희생이 있더라도 발전이 있다는 것은 충분히 의미가 있습니다. 인간은 실수를 할 수 있고 이를 책임지며 더 발전하고 더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에 후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발전된 문명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계대전 같은 경우는 유대학살을 비롯한 일방적인 학살이 존재했으며 아무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죄없는 민간인들도 많이 죽었는데 이것이 과연 희생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일방적인 학살에 대항하는 연합국 측의 추축국에 대한 대응 공격이 폭력이 포함되었고 이 공격으로 인해 추축국의 학살 행위가 저하되었으므로 유의미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류의 피해로 인해 전쟁을 위한 첨단 기술이 발달한다면 더 큰 피해를 낳을 텐데 의미가 있을까요?
기술이 발달하게 되면 인류가 발전할 수 있는 계기로서 작용하기 때문에 유의미합니다.
동의합니다. 기술이 발전 함으로써 인류는 더욱 발전하게 되어 풍족한 삶을 누리게 됨으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근거4에서 폭력은 폭력으로만 막을 수 있다고 하셨는데 폭력의 종류가 무조건 심각한 상해를 입히는 것만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 가벼운 찰과상을 일으킨 폭력이었음에도 이를 똑같은 폭력으로 대응하는것이 무조건적인 해결방법인지 묻고 싶습니다. 조금만 참고 신고하면 상대만 처벌을 받는 일을 쌍방폭행으로 같이 처벌받게 되는데도 이것이 유일한 해결방법일까요?
네. 저의 경우에 이야기하겠습니다.초학생때 저의 뒤에 앉아 있는 친구는 맨날 저에게 대리고 옷을 지저분하게 썼습니다.계속 참고 참고 두서너번 이야기를 해보고 선생님께서 말을 해주어도 그 친구가 그대로 행동 을 했습니다. 작은 상져지만 아픕니다. 그래서 어느날 저의 저항 했습니다. 그때부떠 지급까지 그 친구는 저에게 대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유일한 해결방법을 생각합니다.
저도 이 의견에 동의하는 바입니다. 그저 가만히 있거나 누군가가 이 일을 해결 해주기를 바란다면 아무것도 바뀌는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폭력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여기서 주장의 폭력은 불가항력적인 폭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폭력이 아닌이상 자신에게 큰 위해가 가해질수 있을때를 가정으로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근거1 강창욱님에 의견에 대해서 동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