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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군청 앞의 선정비를 이리로 모아 사현대라 명명했다. 이들 선정비, 불망비, 청덕비, 거사비 가운데서 다산 선생의 제자와 동시대 분ㅇ로 한자 이름이 같은 이학래 군수의 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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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이후 토쿠가와 막부에 파견된 외교 문화 사절단인 통신사가 1607년에 처음 파견된 이후 400주년 기념으로 통신사 기념행사가 있었다. 1763년 음력 8월 16일 추석 다음날 조양각에서 영천과 인근의 경상좌도 고을들에서 험한 바닷길 왕복 2년 걸리는 여행을 하는 일행들에게 전별연이 베풀어졌다. 고구마를 일본에서 처음 가져온 정사 조엄의 서기관이 32세의 청성 성대중이었고, 제술관이 남옥, 부사 서기관이 현천 원중거였다. 청성은 30년 뒤에 53세에 흥해군수로 부임했고, 현천은 8년 뒤에 청하에 있는 송라찰방으로 부임해 왔다. 이들은 당대의 문호들이라 조선을 대표하는 문장가로 일본에 가서 일본의 문인들과 시를 주고 받으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이들의 기록에 송라 찰방 남범수의 이름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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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의 3대 누각은 촉석루, 영남루, 서세루(명원루, 조양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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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개의 시, 기문 현판이 조양각에 걸려 있다. 그 중에 영천 북안 내 고향 마을 출신으로 조선 3대 가사문학인으로 유명한 노계 박인로의 시판도 이렇게 보인다.
하늘이 지은 기이한 바위 위에,
사람이 제일가는 누각을 열었네.
황학이 떠나간 밝은 달 아래 창,
단청 입힌 난간 악양의 가을.
땅은 멀리 삼산을 접하고,
강은 이어져 이수가 흐른다.
진나라 동자들 여기를 보았다면,
구태여 영주를 찾아가지는 않았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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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의 제자, 서인의 연원인 율곡이 남인의 땅인 이곳에 무슨 연유로 올랐을까?
황학을 타고 신선은 날아가고 백운은 몇 천년을 떠있고,
청산을 아끼게 되니 누각에서 내려오지 못하겠네.
아전은 퇴근하고 뜰은 비었는데 한 가지 일도 없고,
석양에 갈매기 백로 강가 모래톺에 내려앉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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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8년 영천군수 이용이 처음 이 누각을 지었고, 그의 친구 포은이 명원루에 붙이는 시를 지었다.
맑은 시내 석벽이 고을을 감아돌고,
다시 새 누각이 세우져 시야가 탁트인다.
남녘 들의 누런 구름 풍년임을 알겠고,
서산의 상쾌한 기운 아침으로 불어오네.
풍류태수는 녹봉이 이천석이고,
옛 동무를 만나 술이 삼백 잔이라네.
밤 깊도록 옥피리을 불며,
밝은 달따라 빙빙 돌리라.
-포은
새로운 누각 우뚝한데 나는 새 돌아오고,
여기 오르니 좋은 회포 저절로 열려오네.
딴 고을 사는 옛 친구 다시 만나기 어렵고,
올해의 오늘은 다시 오지 않는다네.
시내가 비었으니 물은 녹봉으로 무슨 일을 이루었는가,
천리 밖에 혼자 서서 부질없이 떠도네.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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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필 윤봉오 군수가 쓴 서세루 현판과 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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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풀이 우거진 거친 만월대 고려 궁궐터, 荒城 옛 터 등을 작사한 영천 출신 이응호(왕평, 청해, 편월) 노래말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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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남의진(영천,청송, 포항 의병) 대장 정환직, 정용기 부자 순국기념비. 비석에는 수 많은 의병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1대 아들 정용기 대장은 입암 전투에서 순국했다. 2대 아버지 정환직 대장은 청하 동대산 뿔밭(각전)에서 체포되어
대구로 끌려가다 영천 감옥에 투옥되고 이 곳 조양각 아래 남천에서 총살 당했다. 감옥에서 남긴 절명시가 정말 눈물겹다.
노블레스 오블레주의 전형. 포은(고려말)-호수 정세아, 정의번 부자(임진왜란 의병장)-정환직 용기 부자(대한제국기 항일의병장)
오천 정씨 가문의 충효 정신의 화신.
몸은 없어지나 마음은 변치 않고,
대의는 무거우나 죽음은 오히려 가볍다.
뒷일을 누구에게 맡길까
말없이 새벽까지 앉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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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당, 납청당, 부엌 등의 부속 건물은 헐리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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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애 선집(현대문학), 슈크림(만인사)를 엮은 영천 출신 이중기 시인과. 시인은 창비에서 시집을 낸 한국의 대표적인 농촌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