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친구처럼 노는
아이들의 글쓰기
올해 처음 개최한 <초등학생을
위한 사계절출판사 역사 글쓰기 대회> 덕분에
많은 친구들이 먼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저도
그 여행 하나하나를 뒤따라 다니다 보니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네요. 하지만
기분 좋은 어지러움이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어린이 친구들이 역사를 열정을 가지고 대하고, 심지어
장난까치 치며 놀기까지 하는 것을 보고 속으로 감탄해마지 않았으니까요.
한때 우리는 역사를 무서운 대상으로 여겼습니다. 역사가
임금이 나라를 다스린 기록이었을 때는 평범한 백성이 감히 함부로 역사에 손을 댈 수 없었죠.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뒤에는, 역사마저
빼앗길 수는 없다는 심정으로 우리 역사를 아주 소중하게 다루어야 했습니다. 나라를
되찾은 뒤에는 일본이 망쳐놓은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우는 성스러운 작업을 해야 했기에 역시 역사는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대상이었습니다. 이제는
나라를 되찾은 지 7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어른들 가운데는 역사를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역사는 무서워할 대상도, 함부로
가까이하면 안 될 신성한 대상도 아닙니다. 친구처럼
지내며 말을 걸기도 하고, 같이
놀기도 하고, 때로는
다투기도 하는 그런 친근한 대상이어야 합니다. 역설적이지만,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역사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역사가
우리를 구속하고, 자기
검열하게 하고, 사고의
자유를 제한하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역사에 짓눌린 삶은 바람직한 상태라고 볼 수 없겠죠. 그래서
역사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우리 친구들을 보며 기분이 좋았던 것입니다.
‘역사
갖고 놀기’는
단순한 놀이는 물론 아니죠. 그
놀이를 통해 역사를 바라보는 눈을 갖게 되고, 궁극적으로
오늘을 사는 그들이 건강한 역사를 만들어나갈 수 있게 되는 겁니다. 따라서
일종의 놀이 지도가 필요하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돌보며 길가로 뛰쳐나가지 않도록 지켜주는 것과 같습니다. 또
놀이를 하다가 다투거나 다치지 않도록 지도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번에 친구들이 ‘역사
글쓰기’를
할 때 학교와 학원의 선생님, 그리고
부모님이 그런 가이드 역할을 해주셨을 겁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놀이에서 가이드 역할이 참 쉽지 않습니다. 지나치게
개입하면 놀이의 즐거움을 빼앗게 됩니다. 반면에
너무 방임하면 사고가 나서 놀이 자체가 깨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들과 부모님들은 역사 글쓰기에서 가이드로서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애를 쓰셨을 겁니다. 어떤
경우에는 글쓰기의 틀을 잡아주는 데 그치지 않고 글쓰기 과정에 깊이 개입했고, 반대의
경우에는 그저 종이만 던져주고 제멋대로 쓰도록 방치하기도 했을 겁니다. 그런
흔적을 작품과 글을 보며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심사자로서 바람직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이렇습니다. 우선
큰 틀을 만드는 과정, 이를테면
신문 형식으로 할 것인가, 인터뷰
형식으로 할 것인가, 판결문
형식으로 할 것인가, 편지
형식으로 할 것인가 등에서는 아이들의 의견을 존중하되 결정을 도와주시는 것이 좋습니다. 그다음부터는
개입의 정도를 줄여나가야 합니다. 주제나
소재를 정할 때는 아이 의견을 듣고 틀에서 벗어난 정도만 가지치기를 해주는 것이 좋겠죠. 그리고
글을 쓰는 단계에서는 맞춤법 정도만 개입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글이
두서가 없어 보인다고 글을 수정해주거나, 심지어
대신 써주는 것은 가장 나쁜 일입니다. 그것은
아이들끼리 축구하는 데 공을 서툴게 다룬다고 어른이 들어가서 골을 넣어주는 것과 같습니다.
이상이 이번 심사의 기준입니다. 단체
작품은 아무래도 여럿이 함께 공동으로 작업을 하다 보니 협동이 잘된 것에 높은 점수를 주었습니다. 단체부문
대상으로 선정된 증평초등학교의 「역사
독후 편지」는
앞에서 말한 가이드의 균형이 잘 구현된 사례로 뽑았습니다. 특히
글쓰기에서 단순히 책 내용을 요약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의 꿈과 자신의 꿈을 비교하면서 자기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참 읽기
좋았습니다. 거의
모든 글이 큰 편차 없이 비슷한 수준을 보여준 것은 그만큼 가이드의 세심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개인
작품에서도 일정한 틀을 갖춘 경우엔 글쓰기에서 얼마나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냈는가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현재의
교육과정은 창의성 계발을 중시하고, 그래서
자기 주도 학습을 강조합니다. 글쓰기에서
자신의 내면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도 바로 그러한 목표에 도달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대상으로 선정된 유민 양의 글은 글 거의 전체가 ‘나의
생각’, ‘나의
느낌’, ‘나의
주장’입니다. 비록
글 흐름이 매끄럽지 못하고, 문법이나
어법에 맞지 않은 곳이 있더라도 ‘나’를
드러낸 장점이 다른 단점을 모두 상쇄하고도 남는다고 생각합니다.
무척 인상적인 글도 있었습니다. 우수상에
선정된 이태준 군은 글에서 “엄마는
…
늘
책 읽으라고 강요하시고 강조하시기 때문에 책 읽기를 좋아해야만 하는 초등학생입니다.”라며
자기를 소개합니다. 아마도
어떤 엄마는 아들이 이런 글을 쓴 것을 보면 당장 고치라고 호통을 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태준 군의 어머니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훌륭한
가이드입니다.
역사를 친구로 여기며 역사와 자유롭게 노는 친구들이 이렇게 쑥쑥 자라고 있다니, 그
아이들이 만들어나갈 우리 앞날의 역사도 알콩달콩 재미있을 것만 같습니다. 내년에
또 성큼 자란 친구들을 글 속에서 만나기를 기대합니다.
김성환(역사책
저술가)
수상자
명단
<단체>
대상 _ 충북
증평초등학교
우수상 _ 경기
고양초등학교
장려상 _ 청주
동주초등학교
<개인>
대상 _ 대전
판암초등학교 6학년
1반
유민
우수상 _ 서울
매동초등학교 6학년
이태준
_ 밀양
미리벌초등학교 5학년
3반
김가인
_ 광주
양지초등학교 4학년
심현진
장려상 _ 광명
하안북초등학교 2학년
4반
임지원
_ 안산
시랑초등학교 4학년
이나윤
_ 의정부
청룡초등학교 6학년
1반
송윤아
_ 광주
학운초등학교 6학년
정현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