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아웃도어 11월 원고>
화개동천에서 귀를 씻다.
지리산 화개동천에 가을이 번진다. 벽소령에서 출발하여 의신계곡을 지나 힘차게 섬진강을 향하던 물소리도 그만 그윽해졌다. 쌍계사 지나 화개천을 따라 오르다 범왕리 왕성초등학교(신흥사 터) 앞 계곡 건너 바위에 최치원 선생이 새겼다는 세이암(洗耳岩) 각자(刻字)를 보기위해 발을 벗고 그윽해진 물을 건넌다.
여름철에도 몇 번 찾아왔지만 물에 잠겨 볼 수가 없었던 세이암(洗耳岩), 신라 말 최치원선생은 타락한 권력과 세상사를 등지고 이곳 지리산에 들면서 혼탁한 세상에서 들었던 온갖 더러운 말과 망상을 떨쳐내기 위해 이곳에서 귀를 씻고 바위에 그 뜻을 새겼다 전해진다. 왕이 관직을 주고 정사에 참여할 것을 종용하자 ‘나는 안들은 것으로 하겠다“며 귀를 씻었다는 다른 이야기도 전해온다.
천년 너머 옛이야기야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바위에 새겨져 오갈 데 없는 글자 ‘세이암’, 격류의 세월 앞에 희미해진 글자를 손으로 더듬어 마음에 새기고 푸른 계곡물에 세속에 찌들대로 찌든 내 귀도 씻어본다.
세이암 뒤편 능선을 오르면 세이정이 있다. 최치원 선생도 세이암에서 귀를 씻고 여기 올라 지리산 능선을 조망하며 자연에 귀의를 결행하였으리.
명문장가로 스물여덟 나이로 한림학사 자리에 올라 어지러운 당시의 사회를 개혁하려 했으나 귀족들의 반대에 부딪쳐 벼슬을 그만두고 명산을 유랑하다가 신선이 되었다는 그가 남긴 ‘입산시’를 읊조려 본다.
중아, 너는 청산이 좋다고 말하지 말라
산이 좋은데 어찌 산에서 나왔는가
훗날 내가 어찌 하는지 두고 보아라
한 번 청산에 들어가면 다시 나오지 않으리.
첫댓글 오늘날 귀를 씻어야 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김시인처럼 맑게 사는 분도 귀를 씻는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