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가 내일 지구에 멸망이 와도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한 의미가 이런 것일까? 무능한 고종황가로 인해 영욕의 오백 년 조선왕조가 무너져버렸지만 국가보다 위대한 국민은 항상 새 시대의 얼을 품고 전설보다 놀라운 일을 해낸다. 미래세대마저 식민지 백성으로 만들 수는 없기에, 오늘의 절망이 내일의 숙명이 되게 할 수는 없기에 동토의 땅을 맨 손으로 파내며 희망의 씨를 뿌렸던 우리 선조들, 그 많은 최영신들의 삶 말이다.
영화 상록수는 심훈의 소설 상록수를 신상옥 감독이 영화화하여 1961년에 상영한 고전영화이다. 신상옥 감독의 부인인 최은희가 최영신으로 열연하여 제1회 대종상 영화제(1962년)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상록수는 최은희가 주연한 1961년 원작이 있고, 한혜숙 김희라 주연의 1978년 버전(임권택 감독)이 있다.
신문사 주최 학생계몽운동에 참가했던 영신과 동혁은 동지로서의 애정을 느끼게 되고 농촌운동에 앞장설 것을 약속한다. 학교를 중퇴하고 귀향하여 농민들에게 희망을 주려고 노력하나 지주들의 방해로 실패한다. 영신도 예배당을 빌려 아이들을 가르치지만 일본경찰의 저지가 심해 학교를 세우기로 결심한다. 과중한 업무로 혹사하던 영신은 학교 준공식날 낙성식에서 축사를 하다가 쓰러진다. 이때 동혁은 동지의 배신으로 운영권을 지주에게 빼앗겨 울분을 참지 못해 농우회관에 불을 지르고 지주를 살해한다. 체포된 동혁은 고문을 당해 식물인간이 되어 가석방되고 영신은 끝내 숨지고 만다.
(1978년 상록수 네이버 영화정보)
일제 강점기, 아무 희망도 꿈도 가질 수 없었던 조선에 평등과 자유의 불씨를 피웠던 혼불은 다름 아닌 기독교(개신교)였다.
지배이데올로기였던 유교는 조선왕조의 붕괴와 함께 지도력을 상실했고, 조선왕조의 강력한 억불 정책으로 인해 산속으로 숨어들 수밖에 없었던 불교는 사회의 구심력으로부터 멀리 떠나 있었다. 하지만 일제의 탄압과 감시망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던 치외법권자인 영미권 선교사들의 보호 아래 개신교는 월등히 유리한 조건에서 한국인의 심성에 뿌리내릴 수 있었다.
민족해방의 염원과 기독교적 구원의 복음이 만나 강력한 시너지를 일으키면서 개신교회는 유교를 대신할 새로운 역사의 공간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천주교는 백 년 전에 이미 한국땅에 상륙해 있었지만 정교분리의 원칙을 고수하는 경직된 교회정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고, 탄압받는 백성의 위로자, 압제자의 양심을 꾸짖는 예언자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교육과 사회는 불가분의 관계다. 비기독인인 작가 심훈은 소설 상록수를 통해 일제 강점기의 개신교회가 어떻게 민족 혼을 깨우는 선지자적 역할을 해냈는지 생생히 기록하고 있다. 식민 백성의 뼈아픈 현실이 교육만으로 당장 독립과 해방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오직 교육만이 백성의 정신까지 침탈해 가는 공포스러운 운명을 저지할 유일한 길인 것이다.
지난 세기 교육의 역사 중 불후의 명장면을 꼽으라 하면 나는 주저 없이 1780년 영국의 글로스터의 한 가정집 2층에서 시작된 주일학교를 꼽을 것이다.
은준관 박사는 '기독교교육현장론'(2022)에서 영국 주일학교의 기원과 역사를 소개하면서 "세계 역사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었던 이 현상은 당시 영국교회가 포기한 '교회교육'의 빈자리를 주일학교가 채우고, 잃어버린 기독교교육을 계승한 결과였다"라고 적었다.
18세기 선발주자인 영국을 비롯해 전 유럽을 휩쓸던 산업혁명은 공장이 만든 도시로 농촌 청소년들을 유인하였고, 대규모 인구이동과 함께 노동계급이 출현하는 원인이 되었으며, 심각한 사회범죄가 기승을 부렸다. 또한 무산계급과 유산계급의 양극화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영국 귀족과 교회는 공장도시로 유입된 근로계층인 농촌 청소년들에 철저히 무관심했을 뿐 아니라 경멸하고 차별하는 비인도적 노선을 취했다.
철저히 주변부로 내몰린 이들의 범죄, 약탈, 살인, 폭력 등으로 영국은 심각한 아노미로 빠져들었다.
당시 산업도시 글라스터의 신문사 사장이던 로버트 레이크스는 우연히 사무실 창 너머 공장 청소년들이 벌이고 있는 살인놀이를 보고 충격에 빠진다. 그는 오랜 사유와 교정 사업의 실패 끝에 '예방은 처벌보다 강하다'는 결론을 얻고 1780년 7월 근로휴일인 일요일 오전, 한 가정집 2층 응접실로 거리의 청소년 40-50명을 초대했다. 이를 시작으로 '교회학교'가 아닌 '주일학교'의 역사가 태동하게 된다.
레이크스의 주일학교는 도시빈민이자 노동계급자들, 변변한 기초교육조차 받지 못하고 열악한 삶 속에서 일탈하던 청소년들에게 기초교육 즉 Three R(reading, writing, arithmetic)을 가르쳤다. 사회적 약자가 엄혹한 사회환경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지키고 생존하기 위한 가장 필수적이고 기본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기본교육과 더불어 간간히 이솝우화와 성경이야기를 들려주고 노래를 불렀다. 오후에는 교회에서 교리를 가르치고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이 하찮은 주일학교가 길거리의 깡패, 근로 청소년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으며, 사랑에 굶주렸던 젊은 영혼들을 일깨우기 시작했다. 주일학교는 성난 파도처럼 영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집에서, 창고에서, 교회에서 모인 주일학교는 버림받고 상처받는 근로 청소년들의 영혼과 아픔을 치유하는 장으로 변하고 있었다." (은준관, 2022).
"18세기 인간 지옥으로부터 영국을 구원한 주일학교"는 시작한 지 3년 만인 1783년에 등록한 근로 청소년의 수가 25만 명을 넘었고, 1831년에는 125만 명을 기록했다.
(주일학교의 대성공에 질투를 느낀 영국 교회가 주일학교를 교회에서 열도록 압박했고, 주일학교의 기원과 역사까지 훔쳐간 사실은 놀랍지도 않은 비밀이다.)
일제 강점기 역시 한국인에게 잊을 수 없는 지옥의 반세기였다. 그러나 그토록 참혹한 시대였기에 고통받는 조선에 오신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가 희망과 구원이 될 수 있었다.
아, 교육의 위대함. 기독교 교육이 일제 치하와 6.25의 잿더미에서 오늘의 한국을 일구어낸 지난 역사를 소설 상록수, 영화 상록수를 통해 다시 한번 뜨겁게 되돌아볼 수 있었다. 한국사회에서 종교인 망신의 대명사처럼 되어버린 오늘의 개신교로 인해 개탄을 금치 못하던 차제에 이 땅을 지켜주신 선조들을 기념하며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옷깃을 여미는 마음으로 자신을 가다듬어 본다.
첨언: 로버트 레이크스를 담배공장 사장으로 오인하여 언급한 기억을 되짚어보니 독일의 발도르프 교육과 혼동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발도르프는 에밀 몰트가 운영하던 담배공장(발도르프 아스토리아)의 이름입니다. 에밀 몰트는 세 자녀의 교육을 루돌프 슈타이너에게 맡겼는데 자폐증 등의 장애가 있던 자녀들이 서서히 정상아처럼 적응하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아 담배공장 근로자들의 자녀들에게도 슈타이너의 인지학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학교를 열었습니다.
1919년 남부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담배공장 이름 그대로 세워진 발도르프 학교는 1994년에 열린 세계 교육부 장관들의 회의에서 21세기 교육의 모델로서 선정되었고 유네스코의 지원, 연구대상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2024. 3. 18.
주의검을보내사
상록수 수상 정보
1962년 제1회 대종상
여우주연상 - 최은희
공로상 - 신필름
제9회 아시아영화제
최우수작품상
각본상 - 김강윤
남우주연상 - 신영균
남우조연상 - 허장강
음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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