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자 / 박선애
옛날 유행가는 가락도 그렇지만 특히 가사가 처량하다. 듣고 있으면 답답하고 우울해져서 즐기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 우리 집에서는 온종일 송가인, 장민호 등의 노랫소리가 흐른다. 어머니를 모시고 들어와서 남편은 유튜브부터 켜 놓는다. 언제부턴가 어머니는 드라마를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가요 프로를 자주 본다. 따라 부르거나 어깨라도 들썩거릴 만하건만 그냥 얌전히 앉아서 보고 있다. 시간을 죽이고 있는 것 같다.
어머니를 수술한 병원에서는 3주가 지나니 치료가 끝났다고 퇴원을 강요했다. 그 근처에 있는 재활 병원의 공동 간병인 실은 꽉 차서 대기자로 이름을 올려놓고 기다려도 소식이 없었다. 오빠네 집 가까운 곳에 공동 간병인 실이 있는 병원이 있어 거기로 옮겼다. 재활 치료 시설은 없었다. 여섯 명의 환자를 돌보는 간병인은 운동하는 것은 도와줄 수 없다고 했다. 오빠와 올케언니가 틈나는 대로 드나들며 운동을 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수술한 다리는 퉁퉁 붓고 걷는 것이 더 힘들어졌다.
소식이 뜸하던 친구한테서 온 전화를 받은 것은 광주에서 어머니를 보고 오는 차 안이었다. 어떻게 지내냐고 해서 어머니 이야기를 했다. 그 뒤로 또 어머니의 병세를 묻는 안부 전화가 왔다. 2주 전쯤에는 목포에 있는 ㅈ 요양 병원이 재활 치료를 잘한다고 하더라며 거기에 아는 후배가 근무하는데 다리를 놓아 줄 테니 상담을 받아 보라고 했다. 요양 병원이라 좀 꺼려졌지만 어머니를 그대로 두면 안 될 것 같고, 잊지 않고 신경을 쓰는 친구의 정성이 고마워서 그러마고 했다.
환기가 잘 되는지 요양 병원 냄새가 나지 않았다. 복도가 넓고 간호사실 앞 공간도 넉넉해서 시원하다. 어머니가 있을 2층 복도 끝에 테라스 정원이 있는데, 웬만한 마당 두세 개를 합친 것만하다. 또 산과 바로 이어져 있어 숨 쉬는 데 상쾌하다. 거기에서는 보행기를 밀거나 휠체어를 타고 운동하고 있다. 또 벤치에 앉아 쉬는 사람도 있다. 맘에 든다. 들떠서 언니, 오빠에게 여기로 모시자고 했다.
어머니와 상태가 비슷한 환자가 있는 방으로 배정해 주겠다고 했다. 제일 안쪽에 있는 방이다. 지나다니면서 보니 다른 방에는 계속 누워 있는 환자가 많다. 또 한 병실에 대여섯 명씩 있다. 어머니 방은 세 명뿐이라 여유 있다. 다른 두 분도 정신이 총총하다. 어머니 맞은편에 있는 할머니는 아흔두 살인데 휠체어를 타고 다니면서도 웬만한 건 혼자 다 한다. 옆 침대 할머니는 여든두 살인데 당뇨가 심한지 배에다 인슐린 주사를 맞는다. 둘 다 좋은 사람 같다. 새로 온 어머니를 반기고 잘 도와준다. 한 가지 흠은 그들의 큰 체구로 보아 원래 목청도 우렁찰 것 같은데, 아흔두 살 할머니 귀가 꽉 먹어서 둘이 소리 지르며 대화한다는 것이다. 텔레비전 소리도 세게 틀어 놓는다. 어머니는 시끄러워 죽겠다고 테라스 정원에서 운동하거나 쉬면서 시간을 보낼 때가 많다.
하루는 색칠 공부를 했다고 좋아한다. 또 주라고 부탁했다며 날마다 기다린다. 내가 인터넷에서 색칠 공부 도안을 내려받아 색연필과 챙겨다 드렸다. 다음 날 가 보니 세 장을 예쁘게 완성해 놨다. 어머니는 나름대로 시간표대로 산다. 아침 먹고 색칠 공부, 보행기 밀고 걷기 운동, 휴식이 오전 일과다. 점심 후에는 1층에 가서 재활 치료를 받는다. 다행히 빠르게 적응하며 잘 지낸다.
병원이 환경도 좋고 재활 치료도 잘 해 줘서 만족스런 편이다. 다만 반찬이 부실한 것이 흠이다. 홈페이지에 올라온 식단표는 그럴듯한데 간장 종지 만한 그릇에 한 젓가락씩 들어 있는 반찬은 보기부터 맛이 없게 생겼다. 어묵국이라더니 유부 몇 점이 둥둥 뜬 멀건 국물뿐이다. 이도 안 좋은 노인 환자가 대부분일 텐데 마른 고구마 줄기 나물은 덜 삶아 질기다. 돼지고기 볶음은 내 이로도 부서지지 않아 씹다 뱉었다. 입이 짧은 데다 매운 것은 입에 대지도 못하니 먹을 것이 없다.
주말에라도 밥을 드시게 해 볼까 하고 집에 모시고 왔다. 아침 일찍부터 시장 봐서 솜씨를 내 봤지만 몇 술 뜨고 만다. 처음에는 부드럽게 달랬다. 몇 번 실랑이하다가 급기야는 “밥 먹게 하려고 집에 데려왔는데 이럴 거면 병원에만 있으쇼.”라고 쏘아붙인다. 작은 소리로 안 먹고 싶은데 어떡하냐고 하는 어머니를 보니 불쌍해진다. 후회된다. 좀 낫는 것 같더니 오늘은 어째 더 아프다고, 언제 나아서 집에 갈지 모르겠다고 우는소리를 한다. 한두 번 참다가는 큰 수술 한 지 얼마나 됐다고, 당연히 아플 줄 알아야지 왜 자꾸 그러냐고 해 놓고 또 후회한다. 내 일을 포기하지 않고 움직이는 나를 어머니의 눈길이 따라다니는 것이 느껴진다. "뭐가 그렇게 바쁘냐? 여기 앉아서 쉬어라." 소파 옆자리를 두드린다. 못 들은 척했다. 병원에 데려다 주고 나니 그것도 걸린다.
어머니가 여기에 오고 나서 이틀 후에 광주의 재활 병원에서 자리가 나왔다고 연락이 왔다. 조금만 참았으면 언니가 입맛 당기는 새 반찬 만들어 가지고 다니며 잘 돌봤을 텐데 감당도 못 하면서 괜히 설레발을 친 것 같아 살짝 후회된다. 이런 내가 가끔 효녀라는 소리를 듣는다.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