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에서 여자기사 첫 메이저 세계대회 결승 진출을 이룬 최정 9단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인터뷰/ 2022 삼성화재배 결승 오른 최정 9단
"변상일 선수가 크게 괴로워하는 모습도 느껴"
개인 최고 기록인 8강으로는 부족했다. 30년 만에 다시 나온 여자기사의 메이저 4강 역사로도 만족하지 못했다. 여자기사 최초로 메이저 결승 진출을 이룬 최정 9단은 오히려 인터뷰할 때에 더 긴장하고 뜨는 모습이었다.
감격에 북받쳐 올랐다. "꿈인 것 같다. 끝나고 나니까 이제서야 다리가 막 떨린다"고 했다. "잘 믿기지 않아서 볼도 꼬집어 보았다"고 했다.
승자와 패자의 명암은 확연히 달라서 대국 중에 안타까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던 변상일 9단이 황급히 빠져 나간 대회장에 혼자 남은 최정 9단을 향해 카메라 플래시가 쏟아지고 인터뷰가 쇄도했다.
▲ 종국 직후 격전을 치른 자리에서 일어나는 최정 9단.
Q. 굉장한 승리를 거뒀다. 소감은.
A. "지금 꿈인 것 같다. 잘 믿기지 않는다. 이제서야 다리가 막 떨린다. 뭐라고 해야 될지 모르겠다. 너무 좋다."
Q. 볼도 꼬집고 하던데.
A. "아까 많이 꼬집어 보기는 했는데 아프더라(웃음)."
Q. 내용적으로 어떤 흐름이었나.
A. "전투바둑으로 가는 편이 조금 승산이 있을 것으로 여겼는데 그렇게 짜여서 만족했다. 우변에서부터 백돌을 가르고 공격하면서 기회가 있을 수 있겠다 싶었고, 중앙에서 씌워서 잡으러 갈 때에는 됐다고 보았다."
▲ "떨리는 순간에는 허벅지를 꼬집었어요."
Q. 우변에서 선수로 살아두는 수를 언제 보았는가.
A. "변상일 9단이 선수하려고 꼬부리기 조금 전에 보았다."
Q. 그렇다면 상대가 꼬부려 왔을 때 기회라고 판단했을 것 같다.
A. "그곳에서 (흑이) 선수로 살게 된다면 (상대 대마가) 너무 위험하다고 보았다."
Q. 승리를 확신한 시점은.
A. "중앙 씌웠을 때부터 됐구나 싶었다. 변상일 선수가 많이 괴로워하더라. 그 모습을 보고 판단이 맞았구나 확신했다."
▲ 최정 9단의 올해 메이저 세계대회 전적은 4전 4승.
Q. 생방송 화면으로 변상일 선수가 눈물을 훔치는 모습도 보이더라.
A. "바로 옆이어서 너무 잘 느꼈다. 마음이 안 좋기는 했는데 그렇다고 흔들리면 안 되니까 계속 심호흡도 하고 그랬다."
Q. 준결승전을 앞두고 어떤 부분을 신경 썼나.
A. "포석은 양딩신 선수와 대국할 때만큼 연구할 시간이 없었지만 국내 시합에서 몇 번 두어 보아서 어떤 점이 장점이고 어떤 점을 파고 들어야 할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전체적인 전략에 대해 많이 준비했다."
Q. 여자기사 최초의 메이저 결승이 걸린 판에서 한 번도 이겨 보지 못한 상대를 만났다. 대국장으로 올 때의 마음은 어땠나.
A. "사실 어제는 너무 너무 이기고 싶었는데 오늘은 마음이 약간 풀어졌다. 마음이 편하니까 오히려 불안하더라. 아무리 유리해도 치열하게 두자고 계속 되뇌였다."
▲ "볼을 꼬집어 보았는데 아프더라고요."
Q. 대국 중에 떨리거나 하지 않았나.
A. "떨리면 허벅지를 꼬집었다. 8강전 때처럼 오늘도 많이 꼬집어서 이따가 확인해 보아야 할 것 같다(웃음)."
Q. 기록 달성에 대한 소감도 궁금하다.
A. "현실감이 약간 없는데 최근 2주간 제가 미친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 진짜 꿈인 것 같다는 말밖에 안 나온다. 너무 좋기는 한데 결승이 남았기 때문에 기왕이면 우승으로 기록을 또 써보고 싶다."
Q. 기록적인 부분도 신경이 쓰였는가.
A. "기록보다는 어릴 때부터의 꿈이 삼성화재배 우승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향해서 한 걸음 간다는 생각이 컸다."
▲ 첫 메이저 결승이 무산된 변상일 9단은 몹시 아파했다(바둑TV 생중계 화면).
Q. 삼성화재배에 욕심이 난 이유가 있을까.
A. "잘 모르겠다. 세계대회가 많은데 옛날부터 삼성화재배가 끌리더라. 대회가 열릴 때면 대전의 삼성화재 유성연수원에서 기사들과 바둑을 보면서 놀기도 했던 기억이 좋게 남아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Q. 양딩신 9단에게 이긴 후 바로 대국했는데 마인드 컨트롤을 어떻게 했나.
A. "하루 쉬면서 기쁨을 만끽하고 싶었는데 바로 다음날 두게 되어 아쉽긴 했다. 바로 두기 때문에 너무 좋아하지 말고 오늘 4강도 피 튀기게 두어 보자고 다짐했다."
Q. 체력적인 부분은 괜찮았나.
A. "최근에 체력이 굉장히 좋아져서 조금 피곤하기는 하지만 힘들거나 하지 않았다.
▲ 힘바둑에 능하다.
Q. 좋아진 비결은 무엇인가.
A. "한약도 먹고, 부모님이 잘 챙겨주신 게 작용한 것 같다."
Q. 8강전 때와 동일한 의상인데.
A. "일단 옷 고르는 시간도 줄고, 이 옷을 입고 두면 좀 잘 두었던 것 같아서 일부러 또 입고 나왔다."
Q. 쥬스를 자주 마시는 것도 징크스와 관련있을까.
A. "감귤 쥬스가 좋다고 다니는 한의원 원장님이 추천해 주셔서(웃응) 최근에 많이 마시고 있다."
Q. 내일 결승 상대가 정해지는데 어떤 관점으로 지켜볼 것인가.
A. "삼성화재배는 항상 관전자의 입장으로 즐겁게 보아 왔는데 제 상대들이 둔다고 생각하니까 느낌이 다르다. 재미있게 보기도 하겠지만 상대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생각을 갖고 두는지 파악하면서 보겠다."
▲ 한동안 채식 식단에서 요즘 육식을 조금씩 한다.
Q. 단도직입적으로 누구와 붙고 싶은가.
A. "두 선수 모두 저와 둔다는 것 자체로 엄청난 부담을 느낄 것 같다. 김명훈 선수가 신진서 선수보다는 랭킹이 아래이기는 하지만 최근 내용도 훌륭하고 좋은 모습을 보여서 누구를 만나도 어려울 것 같은데 신진서 선수와 두면 삼성화재에서 좋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Q. 결승전에 임하는 각오는.
A. "올라간 것 자체로도 너무 영광이고 큰 기록이고 감사한 일이지만 결승에서도 지금까지 두었던 것처럼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겠다."
Q. 끝으로 응원해 주는 팬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면.
A. "결승에 올라갈 거라고 예상하신 분이 아예 없었을 것 같은데 그런 만큼 약자이기 때문에 많이 응원해 주신 것으로 알고 있다. 삼성화재배를 시작하기 전에 좋지 않은 모습이 많았는데 씻어낼 수 있어 기쁘고 결승에서도 기대하실 만큼 진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다."
▲ 결승 상대는 신진서 9단일까, 김명훈 9단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