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다 다이사쿠 SGI 회장이 20년에 걸쳐
집필하고 있는 대하소설 '신·인간혁명'.
소설 '신·인간혁명'을 제1권부터 새롭게 공부하는 데
이 연재가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21회에서는 제4권 '대광'의 장을 배워 봅니다.
제4권 '대광(大光)'의 장
역사에서 보는 아름다운 '사제의 유대' 일화
장엄한 '사제의 유대'를 느낄 수 있는 일화를
고금의 역사에서 알아봅니다.
◈ 역사를 바꾸는 대업의 뿌리에는 사제가 있다.
'쿠바 독립혁명'의 지도자 호세 마르티(1853~1895년)는, 21세기인 지금도
쿠바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 영웅이다. 마르티는 열두 살 때, 다니던
중학교 교장 선생님이던 스승 멘디베와 운명적인 만남을 이루었다. 멘디베는
마르티의 비범한 재능을 키우려고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했다. 집이 가난한
마르티는 중학교에서 기거했는데, 학교 일을 도우며 공부했다. 그러는 속에
서 마르티는 문학, 과학, 역사 등에 관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훗날 마르티는
시인, 작가, 저널리스트로도 활약하게 되는 데, 그 연원은 스승의 교육에 있었
다. 멘디베는 스페인의 식민지배에 항의하는 '펜을 든 투사'이기도 했다.
때문에 마르티가 열다섯 살 때 체포되어, 스페인으로 추방당하고 말았다.
그때 슬픔에 젖은 멘디베 부인에게 마르티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모님, 제가 적을 무찌를 테니 지켜봐 주십시오."
'적을 무찌른다'는 말은, 격렬하지만 그 속에 담긴 마음은 '반드시 스승의 정의
를 만천하에 알리겠다'는 강한 일념이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10대 때 혁명운동
에 몸을 던진 마르티는, 스승과 마찬가지로 투옥과 유배 등의 박해를 받으면서
도 정의의 불꽃을 불태우면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했다.
◈ 민중 교육의 연대 아스코국민고등학교와 맺은 우의
덴마크에 도착한 야마모토 신이치(이케다 선생님)는, 그룬트비와 콜의 사제
이야기를 상기하면서 창가교육 실현을 새삼 다시 결의한다. 마키구치 회장이
책을 통해 알게 된 민중교육, 이제는 그 흐름을 계승하는 '제자와 제자'가
교류하는 커다란 흐름으로 발전했다.
◈ 아스코 교육공헌상
그룬트비와 콜의 사제를 머리말에 소개한 《창가교육학체계》가 발간된 지
70주년에 해당하는 2000년. 폴케호이스콜레(국민고등학교)의 명문 아스코
국민고등학교가 이케다 SGI 회장에게 아스코 교육공헌상을 증정했다.
도크바이라 교장은 수상(授賞) 인사에서 "스승 그룬트비의 구상을 실현하려고
했던 콜의 투쟁도, 마키구치 회장의 구상을 현실로 만들려고 한 도다 회장
그리고 귀하(SGI 회장)의 불굴의 투쟁과 놀랍도록 유사합니다."라고 이야기
했다.
◈ 덴마크 광포의 출발점
아스코국민고등학교는 덴마크 광포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일본에서 덴마크
로 건너온 대학생이, 농장에서 일하며 덴마크어를 배워 아스코국민고등학교에
입학한다. 기숙사에서 같은 방을 쓰는 친구에게 불법을 이야기했다.
어느 날, 친구는 존경하는 교사가 "프랑스혁명은 정치혁명, 러시아혁명은
경제혁명이다. 만약 다음에 혁명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인간 내면의 변혁을
지향한 정신혁명'일 것이다."라고 하는 말을 듣는다. 일본인 룸메이트가
입버릇처럼 말한 '인간혁명'이 아닌가! 놀란 친구는 좀더 깊이 알고 싶어
불법을 신앙하게 되었다. 깊은 우정으로 맺어진 두 사람은, 훗날 덴마크의
초대 이사장, 제2대 이사장이 된다.
◈ 대담집《내일을 만드는 '교육의 성업'》
아스코국민고등학교 전(前) 교장이자 민주주의 교육의 연구가인 한스 헤닝센
박사와 SGI 회장이 엮은 대담집 《내일을 만드는 '교육의 성업'》이 2009년에
발간되었다. 헤닝센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그룬트비는 국민고등학교의
전통과 그 뿌리에 있는 철학을 '살아 있는 상호작용'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것은 이케다 회장이 늘 말씀하시는 '대화'의 정신과 통합됩니다.
◈ 삼대 회장의 나무를 식수
2000년 11월 18일, 아스코국민고등학교에서 '삼대 회장의 나무' 식수식이
열렸다. 행사에 참가한 덴마크의 계관시인인 에스터 그레스 박사가 자작한
장편시를 낭독했다.
나무를 심자
자라날 어린 나무 세 그루를
영원한 우정의 징표로써
제자가 스승의 뒤를 따르듯
도다 조세이와 이케다 다이사쿠가
마키구치 쓰네사부로의 뒤를 따르듯
('삼대 회장의 나무' 식수식에 바치는 장편시에서)
2001년에는 주민평의회가 아스코 지역에 예로부터 있는 연못을
이케다 연못으로 명명하기로 의결했다.
'베를린 장벽' 이야기
◈ 동서 분단의 비극의 역사를 되돌아본다.
'대광'에서 신이치는 베를린 장벽 앞에 선다. 이 장벽이 존재하는 동안,
동서분단은 어떠한 비극을 낳았는가? 그 역사를 되짚어보자.
'베를린 장벽'은 1961년 8월 13일에 당시 동독(독일민주공화국) 정부가 건설
했다. 흔히 오해하기 쉬운데, 동서 독일의 일반적인 국경선에 따라서 장벽을
건설한 것이 아니다. 베를린은 전 지역이 동독에 속해 있는데 그 속에 섬처럼
서베를린이 존재했다. 서베를린은 서독(독일연방공화국)과 동떨어진 곳에
있었고 그 주위를 동독이 에워싸고 있었다. 그러한 모습이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망해 연합군(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이 분할 통치를
하게 되면서, 독일 전체와는 별도로 베를린을 분할 통치했기 때문이다.
베를린은 소련의 점령구역 안에 있었지만, 수도라는 이유로 통치권을 놓고
4개국이 대립해 결국 분할 통치하기에 이르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동서로 분단된 독일 중, 서독은 순조롭게 발전했다. 한편, 동독은 소련이
부과한 무거운 전후보상금 때문에 경제 재건에 뒤떨어졌다. 언론의 자유도
없었다. 또 1959년에 소련이 동독의 '경제 집단화'를 내걸어, 많은 사람이
선조대대로 이어온 농지와 소규모 공장, 상점을 빼앗겼다. 그러한 배경에서
동독에서 서독으로 탈출을 시도하는 사람이 급증했다. 동서독일의 국경에는
당초부터 철조망과 지뢰를 설치했지만, 동베를린에서 서베를린으로 이동하는
것은 용이했다. 때문에 서베를린을 경유해서 서독으로 탈출하는 동독 국민이
많았다. 게다가 그 중에는 전문직과 지식인도 많아, 동독의 경제 발전에
큰 타격을 주었다. 인재가 서독으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베를린 장벽을
건설했다. 그것은 독일 분단의 축도이자 냉전의 상징이 되었다.
◈ 최초의 희생자와 마지막 희생자
길이 155킬로미터에 이르는 '베를린 장벽'은 302곳에 감시탑이 있고 감시병
1만 4000명과 경비견 600마리가 지켰다. 서쪽으로 탈출하려고 장벽으로 다가
서는 자는 감시병에게 체포되거나 사살되었다. 사살한 경우도 '저격수를
기다리는 것은 보수와 표창이지 재판의 절차가 아니었다.' 장벽 건설이 시작
되고 11일이 지난 1961년 8월 24일, 첫 희생자가 나왔다. 스물네 살 청년이
사살되었다. 한편, 마지막 희생자가 나온 것은 1989년 2월, 베를린 장벽을
철거하기 9개월 전이었다. 스무 살 청년이 사살되었다. 그 두 달 뒤에
감시병에게 발포명령을 철폐한다. 1989년 11월 10일에 장벽이 허물어지고,
1990년 10월 3일에는 동서독일이 통일되어, 분단에 종지부를 찍었다.
장벽이 존재한 28년 동안 사살된 희생자 수는 200명 전후라고 한다.(집계
기관에 따라 다소 오차가 있음) 자국 국민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장벽을
만들고, 죽여서라도 도망을 막는다. '전쟁의 세기'라 불린 20세기가 낳은
'광기 어린 비극'이었다.
소설《신·인간혁명》명언집(제4권)
"한 사람이 일어서면 모든 벗을 지킬 수 있다. 그리고 사회의 어둠을 깨고
정의의 새벽을 알릴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진지한 '한 사람'이다.
필사의 '한 사람'이다." (제4장 '대광') 많은 벗이 야마모토 신이치
(이케다 선생님)의 행동을 통해 '리더의 마음'을 배우고 계승합니다.
◈ 각지에서 책임을 짊어지고 활약하는 리더의 가정을 방문해
고마움을 전한다.
자신이 혼자서 모든 책임을 떠맡으려고 할 때, 협력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몸에 사무치도록 알게 되는 법이다.
그렇게 된다면 타인에 대해 결코 오만해지지 않는다. 만약, 주위 사람이
자신을 떠받쳐 주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는 리더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즉 바꿔 말해서 자신이 일체의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제4권 '개선')
◈ 민중을 고통에서 구하려고 일어서신 니치렌대성인의 모습을 통해서
진실한 동고(同苦)는, 단지 고뇌를 서로 나누어 가지고 함께 한탄하며 슬퍼하는
것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또 단순히 동정과 위로의 말만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진정한 동고의 사람에게는, 상대의 고뇌를 해결하기 위한 과감한
행동이 뒤따른다. 자비에서 나오는,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가 있다.
그리고 불굴의 신념을 지속한다.
(제4권 '입정안국')
◈ 읽기 쓰기가 서툴고 말주변이 없어 고민하는 리더에게
어서에는 "성불사를 함" (어서 708쪽)이라고 있습니다. 이야기하는 것이
불법입니다. 제목을 봉창하고, 어쨌든 사람들을 격려해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훌륭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긴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한 마디라도 좋습니다. 어쨌든 신심과 진심어린 일념
(一念)의 소리로 말하는 것입니다.
(제4권 '개선')
첫댓글 어떤 조직이든 사회이든 여성의 지혜와 힘을 소중히 여기느냐 가벼이 여기느냐, 거기에 발전의 중요한 열쇠가 있음은
논할 필요도 없다. 여성이 충분히 활약할 기회를 만든 조직은, 새로운 관점이나 폭넓은 접근을 살리며, 활력 넘치게
만들 수 있다. 최근 비지니스계의 동향을 봐도, 다양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기업일수록 창조성이 넘치고
변화에 대한 순응성이 뛰어나, 실적이 오른다고 한다. 다양성을 소중히 여기는 장점은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다채로운 영지나 감성을 모아서 새로운 창조력을 발휘하고, 사회를 풍요롭게 조화시키며 발전시킬
수 있다. 그 주축이 바로 여성이다. 복잡한 문제를 하나하나
유연하게 그리고 끈질기게 해결하는 힘, 여성의 특질이라 할 수 있는 그 힘을
환경운동에서 멋지게 발휘한 사람이 경제학자이자 사회운동가인 헤이젤 헨더슨 박사다.
박사의 말에 따르면 박사는 '평범한 주부'였다.(중략) 박사는 환경을 파괴하여 발전하는 경제 현실에
큰 의문을 품고, 그것을 바꾸고자 도전했다. 그러나 정치가나 전문가들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거대한 기업과 정부를 상대로 끈질기게 행동하기 때문에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여성'이라는 야유까지
받았다. 남편 회사의 사장도, 비난하는 편지를 보내왔다. "대학도 나오지 못한 주부가, 경제 구조를
알 턱이 있나!"라고 조소당했다. ('지지 않는 청춘' 92, 9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