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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피를 줘 02
“기다렸어.”
“10분 동안.”
망치로 관자놀이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두골이 얼얼해서 잠깐동안은 그 어떤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멍한 백지 상태.
해원은 진공 상태에 두둥실 떠있었다.
“기다렸다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소름 돋았다.
“나를?”
뭐가 이상하냐는 듯 어깨를 들썩이는 은규의 모습에 다리 힘이 쫙 풀렸다.
허탈한 웃음만이 났다. 그와 동시에 공포감도 엄습했다.
참 복잡미묘한 감정이었다.
이 상황이 웃기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고 지겹기도 했다.
해원은 오른손으로 얼굴을 쓸어 올렸다.
해원이 답답할 때마다 나오는 습관이었다.
목욕탕 물처럼 넘쳐흐르는 어제의 기억.
그 장면들을 꾹 누른 채 해원은 눈을 똑바로 뜨고 자신의 입술을 가리켰다.
“넌 이거 안 보여?”
“보여, 입술.”
은규는 한쪽 입 꼬리를 올려 미소 지으며 조용히 입맛을 다셨다.
그 모습에 해원은 온 몸에 마비가 오듯 경직됐다.
한숨도 안 쉬어졌다.
목 밑에 묵직한 덩어리 하나가 눌러앉은 기분이 들었다.
“어제 네가 나 쳤지? 그리고 던졌지, 그거. 책상.”
“내가 그랬었어?”
욕 뭉탱이가 혀끝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나를 제발 저 새끼 앞으로 내뱉어달라고 아우성들이었다.
하지만 이성은 끝까지 그들을 잡고 놔주지 않았다.
해원은 화장실 변기통에 머리를 처박히고 싶지는 않았다.
“그럼 누가 그래? 이거, 네가 나 주먹으로 쳐서, 그리고 이거.”
해원은 왼쪽 교복바지를 무릎까지 걷어 올렸다.
은규의 시선이 밑으로 내려갔다.
시퍼런 멍이 해원의 뽀얗고 매끈한 정강이에 들어있었다.
“네가 책상 던져서 이렇게 된 거야.”
“아팠겠다.”
“아팠겠다? 어! 완전 아팠다! 뭐야, 너는? 소름끼치게?”
미쳐 날뛰겠는 이 순간에도 해원은 빠르게 자체적으로 말을 가려 했다.
하지만 소름끼친단 말이,
말을 내뱉은 뒤에 바로 마음에 걸렸고 자신도 모르게 은규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 은규는 별 말 없이 해원의 걷어진 정강이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비겁한 안도감.
그러면서도 해원은 은규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걷어진 교복바지를 빨리 내렸다.
“됐다. 한두 번도 아니라서 놀랍지도 않다.”
불편한 자리가 싫어, 해원은 은규의 옆을 아주 자연스럽게 빗겨 지나가려 했다.
해원이 은규를 지나칠 때였다.
해원은 어떤 무자비하고 강한 힘에 의해 어깨가 홱 돌아가 균형을 잃고 벽에 등이 부딪혔다.
벽에 처박힌 날개쭉지에 고통이 서렸다.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어보니 은규가 바로 코앞에 서있었다.
해원은 벽과 은규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밀착되었다.
“미쳤어?”
무의식적으로 해원은 인상을 찡그리며 앞의 은규를 비켜가려 했다.
상황이 징그러웠다.
하지만 은규는 빈틈없이 해원의 어깨를 다시 잡아끌었다.
다시 한번 벽에 처박혔다.
“미쳤어?”
“말 따라하지 마라.”
“말 따라하지 마라.”
해원은 재밌다는 듯 웃으며 자신의 말을 따라하는 은규에게서 강렬한 괴기를 느꼈다.
은규와 가까워지자 그에게서 나는 비누 냄새도 더 짙게 다가왔다.
그 냄새만 맡으면 어떤 몹쓸 일이 생길 것 같아 해원은 언제나 온몸이 긴장되었다.
이유 없이 손바닥에 식은땀이 났다.
한번 구겨진 표정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해원아, 내 앞에서,”
은규는 너무나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이따위 표정 지을래?”
해원의 미간 사이 주름을 엄지손가락으로 쭉 늘였다.
이마에 기분 나쁜 스파크가 튀는 기분이었다.
남자 대 남자로서 이런 자세와 이런 행동은 해원의 상식으론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수치스러웠다.
마치 여자를 바라보는 듯한 저 눈빛.
은규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줄곧
자신을 그렇게 봤다.
“아쉽다. 웃을 때가 제일 예쁜데. 그리고 여긴, 미안해.”
해원의 미간에 머물던 은규의 손이 밑으로 내려와 해원의 입술에 닿았다.
놀라 소스라칠 지경이었다.
해원은 무의식적으로 강하게 은규의 손을 쳐냈다.
은규의 손은 해원으로 인해 공중에 어정쩡한 모양으로 머물렀다.
은규는 한쪽 눈썹을 찡그리며 자신의 내쳐진 손을 바라봤다.
내쳐진 다섯 손가락을 마치 파도처럼 움직여보는 모습이 아주 여유로워보였다.
이에 반해 해원은 조급했다.
“수업 시작했어. 매 시간 영어듣기, 수행평가에 참고한댔어.”
이때를 틈타 해원은 은규에게서 비켜섰다.
신기하게도 은규는 순순히 물러나주었다.
거울을 통해 본 등 너머의 은규는 고개를 숙인 채 시원하게 미소 지으며 두 손을 탈탈 털고 있었다.
신경 쓰지 않고 해원이 복도로 나가려던 찰나 등 뒤로,
해원을 따라 나오던 은규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해원아. 그런데,”
미치도록 무섭고 낮은 목소리에,
해원은 반사적으로 자리에 멈춰버렸다.
바로 귀 뒤에서 들려오는 말.
“예뻐 해줄 때 예쁘게 굴어라. 그 정도로 끝내고 싶으면.”
은규는 검지로 자신의 아랫입술을
톡톡
치며 그렇게 우뚝 선 해원을 어깨로 밀치곤 화장실을 빠져나갔다.
넘어질 뻔한 해원은 멀어져가는 은규의 넓은 등짝만 한동안 쳐다보며 그 자리에서 굳었다.
은규가 코너를 돌아 시야에서 사라질 때서야 비로소 털썩 쪼그려 앉을 수 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었다.
아, 미치겠다.
해원은 앞머리를 쓸어올리며 방금 그 말이 진심인지 장난인지 생각해봤다.
은규는 웃고 있었다.
그것도 해원을 스쳐 지날 때 그를 내려다보면서.
사실 생각해볼 문제도 아니었다.
해원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혼자 부인하려 한 것뿐이었다.
진심이다.
그리고 자기가 내뱉은 말대로 할 놈이다.
해원은 부딪힌 어깨를 꽉 쥐었다.
*
“야, 이해원. 중간에 들어와서는.
다 들었어도 반타작할 거면서 반만 들으면 어떡하냐? 나랑 이번에 비슷비슷하겠다.”
“어? 어. 수행평가 망했다.”
“뭐 한 번 가지고. 남자가 이런 작은 시험에 기죽냐?”
1교시 쉬는 시간,
영어듣기가 끝나자마자 태성은 뒤돌아 해원 쪽으로 앉았다.
해원은 책상에 빈대떡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머리가 좋은 놈은 아니지만 꼭 이런 시험 하나하나에 미련 가지는 놈이다.
태성은 해원의 머리를 힘내라는 듯 쓰다듬었다.
“그리고 네가 망한 거면 이 반에 있는 애들은 학교 왜 다니냐? 이렇게 있지 말고 매점 가자. 나 배고프다, 지금.”
책상에 코 박고 엎드려 있던 해원이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태성을 쳐다봤다.
해원의 하얀 볼이 괴고 있던 팔 소매에 눌렸다.
화나 죽겠고, 불안해 죽겠는 이 상황 속에서도 신기하게 잔소리는 계속 나온다.
“아침을 안 먹고 다니니까 그렇지, 아침을.
아침에 뭐라도 먹고 다녀. 아침을 먹어야 공부도 잘한데.”
“네가 내 마누라냐? 별 간섭을. 종치기 전에 빨리 갔다 오자.”
태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해원을 막무가내로 복도로 끌어왔다.
아무리 싫다고 해도 남의 말을 들을 태성이 아님을 그 누구보다도 해원은 잘 알기에 군소리 없이 따라 나왔다.
복도로 나서자마자 팔 하나가 자신의 어깨로 턱 내려앉았다.
“네가 왜 맨날 나랑 같이 다니려고 하는 지 알 것 같다.”
피곤하고 퀭한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며 해원은 말했다.
“얼마나 편한지는 알고 말하지? 맞춤 팔걸이.”
매점은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세광고등학교는 남녀분반이기에 매점에서 주로 남녀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그를 증명하듯 매점 구석구석에 남학생들과 여학생 무리들이 섞여 시간가는 줄도 모르게 얘기하고 있었다.
해원은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뭐 사먹으려고?”
오천 원짜리를 들고 뭘 먹을까 여기저기 둘러보던 태성이 해원에게 물었다.
“목말라서. 아, 근데 갑자기 초콜렛 먹고 싶다.”
지갑을 꺼내다 말고 본 옆의 여자애.
그 여자애가 초콜렛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보고 해원은 갑자기 초콜렛이 먹고 싶어졌다.
초콜렛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단 말을 들은 것 같았다.
그 여자애는 춥지도 않은지 셔츠에 춘추복 조끼 니트만 입고 수다스러운 친구의 말을 그저 들어주고 있었다.
왼쪽 가슴팍엔 ‘조아라’ 세 글자가 박혀있었다.
“야, 콜라면 되냐? 내가 사올게. 거기 있어라. 너랑 저 전쟁터로 들어갔다간 종 쳐도 못 나올 듯?
“콜라 싫은데. 딴 거 아무거나로.”
해원은 인파 속으로 뛰어든 재성을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곤 다시 뒷주머니에 지갑을 꽂아 넣었다.
그리고 계속 밀려오는 애들을 피해 조금씩 코너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원래 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1교시 쉬는 시간에 매점을 찾는지 궁금했다.
매점은 1초 1초가 아쉽게 점점 발 딛을 틈이 없이 복잡해졌다.
그러다가 우여곡절 끝에 아라가 해원에게 부딪혀왔다.
급하게 매점을 나가는 애들에게 치인 것이다.
“아, 미안해.”
아라는 누군지도 모를 사람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다시금 고개를 들었을 때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던 해원과 눈이 마주쳤다.
수수한 눈매와 수수한 콧대, 수수한 입술.
해원은 아라를 보자마자 수수하게 예쁜 애라고 생각했다.
분위기가 예쁜 애라고.
하지만 그 뿐이었다.
해원 역시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아냐. 조심해. 넘어지겠다. 어!”
그러면서 한 번 더 자신에게로 쏠린 아라의 두 어깨를 저도 모르게 꽉 잡고 다시 일으켜 주었다.
처음으로 여자의 어깨를 꽉 잡아본 해원도,
처음으로 남자에게 어깨를 잡혀본 아라도
둘 다 너나할 것 없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어………미안!”
해원은 마치 못 만질 물건을 만진 것 마냥 급하게 아라의 어깨를 놨다.
“사람이 왜 이렇게 많냐, 이해원! 그냥 매점에서 나와.”
그리고 해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저 멀리 인파 속에서 태성이 보였다.
여기저기 치이면서도 한 손엔 콜라를 들고 있었다.
아, 콜라 싫다고 했는데.
해원은 아쉽게 입을 다셨다.
“어! 아, 난 저기, 가볼게.”
해원은 태성에게 대답한 뒤,
아라에게도 쥐 죽은 듯 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곤 감당이 안 되는 사람들을 한 명씩 한 명씩 제쳐갔다.
매점에 있을 땐 몰랐었는데 매점 안이 참 따뜻했나보다.
사람들이 많이 부대껴서 그런지,
밖에 나와 보니 갑자기 오한이 들고 추웠다.
“빨리 들어가자, 진짜 춥다.”
재성이 겨드랑이에 손을 끼고는 쏜살같이 앞서 달려갔다.
해원은 아까 전의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곤 그 뒤를 따랐다.
*
“아, 그래?”
아직은 겨울이 여전히 남은 운동장.
세 명의 남학생이 그늘 진 벤치에 마주 앉아있다.
두 명은 이따금씩 번갈아가며 무언가를 얘기하고,
한 명은 벤치 의자 등받이에 두 팔을 걸어놓고 다리를 꼰 채 두 사람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늘 속에서도 새카맣게 그리고 선명하게 내보이는 눈동자.
서늘할 정도로 은규는 모든 것에 무관심하고 심드렁해 보인다.
“매점에서?”
은규는 뭐가 그리도 따분한지 고개를 뒤로 젖힌 채 하품했다.
“어, 그 때 삼김 사러 갔었는데 그러고 있더라.”
“예쁘디?”
“아, 기억이 안 난다. 야, 예뻤나?”
승호가 옆에 있던 준기를 툭 치면서 물었다.
글쎄.
준기는 혀로 입술을 훑으며 잠시 생각하는 듯싶다가 이내 예뻤던 것 같다고 말했다.
솔직히 자세히는 못 봐서 장담은 못하겠지만 그냥 예쁜 것 같긴 하다고.
은규는 말을 끝마친 준기를 한동안 빤히 쳐다 보다 시선을 밑으로 거두고
오른손으로 아랫입술을 툭툭 건드렸다.
“아, 재밌어.”
은규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지으며 무릎을 짚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학교, 그 어딘지는 모를 곳을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매섭게도 차가운 눈으로 노려봤다.
아직 부족한 글인데도 댓글로 응원해주신 분들 너무나 감사합니다
그래서인지 더 재밌게 글 수정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0^
추가로 '추천'해주신 분도 너무 감사합니다ㅠㅠㅠ
제 분에 과한 조횟수도 정말 감사합니다!!!
첫댓글 은규가 감시하나봐ㅠㅠㅠㅠㅠ은규뭔가엄청위험해보이는.....
다시 만나서 정말이지 반갑습니다 우쇼님 ㅠㅠ 덕분에 힘 얻어갑니당^0^
흐극... 은규무섭네잉 ㅠ0ㅠ.......
그렇게 무섭나여ㅠㅠㅠㅠ하하핳 그래도 은규 많이 사랑해주세여^___^V
잼있다!!♥_♥ 작가님 잘보고가여~~담편 기대되네여♥
ㅠㅠㅠ다음편 기대라니..제게 숙제를 내주시나요하핫 눈에 불을 키고 아침부터 작업중입니당ㅎㅎ!!
하핫....기대되는 작품ㅁ입니당....!!
재밋다
블랙브라더님^_^소설홍보방에서도 남겨주신 댓글 너무나 감사해요ㅠㅠ
재밌다
감사합니당 개척님^L^ 힘얻어갑니당ㅎㅎㅎㅎㅎㅎ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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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추천까지ㅠㅠ페이스북님 최고에여ㅠㅠㅠ
재밌어요^^
감사합니당ㅋㅋㅋㅋㅋㅋㅋ^^♥
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당 유룽님 ㅠㅠ
은규야 더 팍팍밀어부쳐!! 추천꾹ㅎㅎ
늦게 확인햇네요ㅠㅠ흑 메시아가르님! 추천 너무너무 감사합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