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재길 단풍
10월 15일 단풍구경을 핑계로 동생들이 모였다. 점심약속이 있는 셋째 올케는 저녁에 따로 왔다. 혼자 2시간 이상 운전하여 오다니! 항상 감탄한다. 몸을 움직이는 일에는 전혀 겁이 없다. 순발력이 좋고 손재주가 뛰어나다. 원래 전공인 타피스리를 이용한 실내장식이 집안을 온통 개성있는 분위기로 창출하는 것은 물론이다. 음식 솜씨도 뛰어나 모친 생전에 많이도 맛있게 먹고 즐거운 오후를 보냈던 것이 다 올케 덕이었다.
계획대로 산채비빔밥을 먹은 후 보통 때의 역방향, 상원사에서 월정사로 내려오기로 했다. 왕복 5시간 도보의 편도만 하려면 작전이 필요했다. 자동차 2대로 출발, 1대는 월정사에 주차하고, 나머지 1대로 모두 상원사에 간다. 산책이 끝나면 기사 2명은 월정사의 차로 상원사주차장으로 떠나고 나머지 식구는 그들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는 작전이었다. 남편의 설명이 도시 와닿지 않는데 동생들은 금방 알아들었다. 여자들을 위한 배려라 좋긴 한데 작전 수행 과정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 마치 상황판단이 안 되어 침묵할 수 밖에 없는 뒷방 신세의 노인이 된 느낌이었다. 지레 자격지심이긴 하지만 두려운 미래의 자화상이다.
2대 중 1대는 월정사를 지나 지장암 가까이 주차하고 다른 1대로 상원사주차장에 갔다. 사람들이 많았다. 코로나19에도 단풍을 즐기려는 마음은 다 같은가 보다. 10분 거리 높은 위치에 상원사 사찰이 있었다. 마당을 휘 둘러보고 둘러싼 산들의 단풍이 2% 부족한 절정이라 생각했다.
상원사는 월정사의 말사(末寺: 본사의 관리를 받는 작은 절. 또는 본사에서 갈라져 나온 절) 라 한다. 불교에 심취한 세조(재위 1455~1468)의 신앙처였다. 1464년 상원사 재건축 당시 세조가 내린 발원문과 신미(승려) 등의 글이 ‘평창 상원사 중창권선문 [平昌上院寺重創勸善文]’에 묶어져 2권의 국보로 불교박물관인 월정사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한문과 한글 번역문으로 되어 있는 두 첩(권) 중, 한글 번역본은 가장 오랜 필사본이라 한다. “부처에게 소원을 비는 내용을 적은 글”인 발원문(發願文)에는 세조의 소원과 함께 옥쇄가 찍혀 있고, 시주한 왕족과 신료의 주결(자필서명)이 있다. 권선문(勸善文)은 “(불교)신자들에게 보시를 청하는 글”이다.
인터넷 검색으로 알아낸 정보이다. 도서관 출입없이 집에서 다 해결되니 얼마나 편한 디지털 세상인가. 이런 단어도 발견했다. 인터넷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즐기는 노년층을 웹버(web silver), ‘은빛누리꾼’이라고 하는데 홈피애용자 우리가 바로 은빛누리꾼!
계곡을 따라 따뜻한 색깔의 나뭇잎들이 마치 관현악 연주를 베풀고 있는 듯했다. 파란 하늘과 크고 작은 하얀 바위들의 낮고 부드러운 현악기 배음, 그 사이를 굽이치는 맑은 물의 힘찬 피아노 멜로디, 색마다 다른 관악기, 간혹 튀는 붉은 단풍의 트럼펫의 협연은 테크 산책로에서도 숲터널에서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각자 단풍에 취한 하루였다.
주전골 단풍
10월 16일 단풍으로 유명하다는 내설악의 주전골을 가기로 한 날이다. 자동차로 1시간 간 후 걸어야 됨으로 일찍 팬션을 출발했다. 오색약수터를 지나 주차했다. 초입부터 완전 성시였다. 발열 검사와 주소를 적은 후 계곡에 들어섰다. 코로나19가 없었더라면 얼마나 복잡했을까,
의외로 넓고 평평한 길이었다. 그래서인지 늙은 부모와 함께 걷는 젊은이들이 눈에 많이 띄였다. 성국사라는 표시와 함께 사찰의 가지러한 처마, 기둥과 난간이 올려다 보였다. 검은 기둥과 흰색 벽의 대비가 단아한 정면은 사찰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다. 낙선재가 연상되었다.
마당 한구석에 양양의 유일한 보물인 통일신라의 3층석탑이 역사의 잔재로 남아 있었다. 고색창연한 2단2층탑, 용과 연이 조각된 조촐한 샘물에서 치매에 걸린 안노인의 체념의 외로움이 스며 나오고 있었다.
계곡의 본론에 들어간 듯 뽀족뽀족한 봉우리들이 시선을 끌었다. 넓지 않은 골짜기 양옆으로 높이 솟아 있는 붉은 빛이 도는 살색의 울퉁불퉁한 기암들이 사이사이에서 서식하고 있는 주홍에서 노랑에 이르는 단풍과 어우러지는 조화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천개의 기암절벽 불상이 계곡의 양벽을 장식하고 있는 외설악의 천불동 계곡에 비하면 주전골은 훨씬 작은 규모였다.
“고래바위·상투바위·새눈바위·여심바위·부부바위”가 있다는데 일치된 형상의 바위는 눈에 띄지 않았다. 단풍나무 한 그루에도 초록, 연두, 노랑, 주황. 빨강 잎들이 섞여 있었다. 햇빛 받는 위치의 순서대로 착색되는 것 같은데 화학적 설명은 이해를 도우나 환상을 깬다. “녹색을 띠는 엽록소는 분해되는 반면에 빨간색을 띠는 안토시안이 생성되어 잎이 빨간색을 나타내는 것이다”
주전골은 옛날 이 계곡에서 승려를 가장한 도둑 무리들이 위조 엽전을 만들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과거에도 위조 화폐가 있었다니! 인간의 부정적 창조력을 잊고 있었다.
선녀탕의 팻말이 가르키는 곳이 어디인지 확실치 않았다. 얕고 적은 수량의 물길과 사람들의 소음이 아름다운 선녀의 하강하는 모습을 그리기에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리라. 비좁은 바위 밑으로 사람들이 일부러 줄줄이 지나갔다. 소원을 말하면 이루어진다는 금강문이었다. 몇 발자국 가니 끝났다. 평소 간절히 바라는 바가 없었나? 좋은 기회를 놓쳤다. 되돌아 올 때는 밖으로 지나가며 모든 가족의 건강을 소원했다.
아주 짧은 물줄기가 맑은 비취색 웅덩이에 떨어지고 있었다. 용소폭포였다. 큰 낙폭을 상상했는데 장난감 크기라 다소 실망했다. 우리의 반환점이었다. 쌍방향 단풍객 줄이 만만치 않아 중간 휴식말고는 열심히 걸었던 무리없는 산책길이었다.
오랜만이라 그런지 한계령 꼬부랑 국도가 매우 낯설었다. 인제군 필례약수터 근처 맛집에서 능이삼계탕를 먹고 필례약수터를 지나 필례온천까지 산책했다. 약수터가 베 짜는 여인(필녀·匹女)의 형상이어서 필례라는 지명이 붙었다 한다. 단풍이 고운 필례계곡에 있는 필례온천은 게르마늄 함량이 매우 높은 중탄산 노천온천이라고 한다.
막내네의 순발력은 못 말린다. 모두의 휴식 시간에 용평의 중심가 횡계리에 나가서 토마토와 무화과 등, 장을 봐왔다. 횡성에서 사온 고기를 굽고 막내 올케가 즉석 소스를 만들어 맛있는 별미를 즐겼다.
선자령 단풍
10월 17일 동해를 보고자 ‘음악치유의 숲’을 거쳐 전망대까지 산책했다. 패션 오른쪽에서 출발하는 음악치유의 숲은 선자령 자락이다. 재작년에 대중가요 음악회가 열린 무대와 캠핑데크가 있는 곳이다. 접근이 쉬워 오후 늦게 떠나도 좋은 숲이었다. 10월 초부터 자주 들렸다.
그리고 양떼식당에서 푸짐한 식사를 한 뒤, 이별이 아쉬운 끈끈한 우애를 느끼며 헤어졌다. 장시간 자동차 여행, 발 디들 틈 없는 인파 생각에 꿈도 꾸지 않던 단풍구경을 3일간이나 동기들과 함께 하는 행운을 누렸으니 여한이 없다. 어느덧 모친의 위치에서 큰 동생네의 불참이 아픈 구석이었으나 건전한 부부상으로 살고 있는 동생들이 그저 고맙고 든든했다.
10월 18일 친구랑 3인 골프를 즐겁게 했다. 골프는 역시 친한 사람과 해야 된다.
상원사에서 월정사로 : 선재길
주전골
금강문
용소폭포
필례계곡
선자령길
첫댓글 와 ~ 단풍놀이도 아주 잘했구나
설명 읽고있는 나도 뭔가 어리둥절 ? 하네 ㅎㅎ
상황판단이 잘 안되
셋째 올케는 여러가지 능력이 아주 많구나
그런 배우자하고 사는 동생이 복이 아주 많으네
경위야. 4남매가 그렇게 우애롭게 잘 지내는것은 누나가 잘 이끌어가서 일까
아니것같아.
탱님께서 좋은 리더십으로 잘 이끌어가서 그래.
감사한줄 알어.
날씨가 추워지는게 많이 섭섭했겠네...
단풍이 너무 곱다..
많은 사람이 집에 꼼짝 없이 지낸 그 시간을 아주 잘 지내고 왔네..
집콕순이 경위작가님덕에 단풍구경
잘 했습니다.
글 읽으며 항상 갖는 나의 궁금증 !!
걷기도 바쁠텐데 적재적소에 맞춰
명칭은 물론 느낌을 다 표현하다니...👍👍👍
아무튼 대~단 하셔유.
와~~, 가을이 짙었네 ~~<!!!
맞어. 4 남매가 그렇게 잘 지내기 어렵지. 형제들이야 다 그러고 싶지. 다 결혼한 짝들이 잘해줘서 그러니까, 미미 말대로 고마운 줄 알아 ~~~!^*^
형제끼리 모여 함께 지내는 게 제일 좋은거 같아
밤새도록 이야기 하며 어릴적 이야기부터 끊임없이 나오지...
단풍구경 사진으로 해도 너무 좋다...단풍도 산경치도 역시 한국 경치가 우리에게는 좋은것 같아
미미는 요점정리 끝판왕이네. 맞아요 맞아!